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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화덕이 갑자기 맹렬히 타오르며 열기가 후끈 전해진다. 우라늄이 순식간에 녹아 액체가 된다. 우라늄 덩어리와 우라늄 소드가 합쳐지며 푸른빛을 내기 시작한다.
재빨리 결계로 공방을 감싼다. 이게 밖으로 퍼지면 이 주변은 죽음의 땅이 된다. 검 하나 만든다고 수만을 학살할 마음은 없다.
난 전문적인 대장일은 모른다. 단순한 작업 3개만 알고 있다. 녹여서, 모양을 잡고, 굳힌다. 그 과정에서 망치질하는 방법도 좀 안다. 그 이상은 모른다.
나한테 대장일을 가르쳐준 노인이 나에겐 이거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마법사에게 진실로 필요한 건, 마력을 다루는 기술이다.
완벽한 마법식도, 최고의 시약도, 모두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무결하게 통제되는 순수한 마력은 다른 모든 요소를 뒷전으로 만든다. 심지어 재능도.
마력을 먹인 불이 더욱 타오른다. 내 몸에서 뿜어진 마력에 의해 불은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인다. 이건 하나의, 가장 기본적이며 투박한 마법이다.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이 태우는 것을 가린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태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남긴다. 제련에 방해되는 불순물이 모두 타들어 간다.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공방에 떠돈다.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모두 날려버리고,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심장이 마력을 뿜는다. 내 몸에 저장된 막대한 마력이 모두 풀려 나온다. 마력이 우라늄으로 빨려든다. 푸른빛이 점점 강해진다. 투명한 빛은 눈부시지만, 그 속을 꿰뚫어보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빛의 중앙에는 액체 상태의 우라늄이 신비롭게 빛나고 있다.
우라늄은 마력을 끝없이 잡아먹는다. 한계치는 진작 넘었다. 난 완벽에 가까운 마력 통제 기술로 우라늄에 마력을 계속 욱여넣는다.
우라늄이 뿜는 빛은 계속 강해진다. 이걸 이 상태로 놔두면, 그게 바로 핵폭탄이다. 난 폭탄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검을 만들 생각이므로, 이 또한 통제한다.
방사능과 마력이 우라늄 덩어리에 차곡차곡 쌓인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이 작업에만 4시간 정도 걸렸다. 666번 우라늄 소드를 만들 당시에는 3시간이 걸렸었다.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 작업은 모양 잡기다. 마력으로 검심의 틀을 만든다. 우라늄 일부를 틀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이 뚜껑도 마력이다.
“후우.”
잠깐 불길에서 떨어져 심호흡 한다. 옆에 물병이 있어서 물도 한잔 마신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넘는다.
“저건 검심으로 보이는데?”
“맞아, 검심.”
단단한 목검 등을 만들 때 그 안에 들어간다고 검심(劍心)이다.
“단조하지 않고 찍어낼 거라면, 차라리 한 번에 찍는 게 빠르지 않나?”
“그렇지.”
나도 그렇게 배웠다. 평범한 검을 만들 거라면 그렇게 하는 쪽이 속도도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난 마법사거든.”
놀라는 영감에게 웃어주고, 화덕 앞으로 돌아온다. 앞의 작업은 지금부터 할 작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고로 마법사는 마법으로 승부해야 하는 법이다.
아공간에서 침 하나를 꺼낸다. 아주 작고 세밀한 침이다. 침으로 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묻힌다. 피 묻은 침으로 거푸집을 쑤신다. 세침이 거푸집 뚜껑을 뚫고 검심에 닿는다.
나는 검신에 문자를 새긴다. 아주 세밀하게. 빼곡히.
세침이 검심을 긁는다. 세침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로 된 선이 생긴다. 이건 혈관이다. 검을 지탱하고, 검의 성능을 최고로 끌어올려 줄 혈관. 나는 검의 심장에 혈관을 그리고 있다.
푸른 검심에 빨간 혈관이 자라난다. 검심이 내는 빛 사이 자리한 붉은 문자들은 사이하게도, 성스럽게도 보인다.
나는 계속해서 검심을 다듬는다.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루한 작업이다. 검심을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번에는 우라늄으로 검의 모양을 잡고, 그 안에 검심을 넣은 다음 굳힐 차례다. 그러면 완성이다. 이 과정은 별거 없다. 마력으로 만든 거푸집에 검심과 액체 상태인 우라늄, 그리고 이 공방 안쪽에 잔뜩 퍼져 있는 방사능 물질을 넣고 식히면 된다.
작업 내내 검심이 빛을 냈으니 이 안에 있는 방사능 물질은 가볍게 치사량이다.
거푸집을 만들고 있는 나에게 영감이 다가온다.
“비켜라. 그런 검심을 고작 철 덩어리로 감쌀 셈이냐.”
“이거 우라늄인데?”
“그거나 그거나 똑같아!”
영감이 날 밀치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나 대신 연장을 든다.
“아까 녹인 그 반쪽짜리. 그거랑 똑같이 하면 되냐?”
영감이 짜증스럽게 묻는다. 그 옆얼굴은 어딘가 신나있다. 나도 가끔 이럴 때가 있으므로 잘 안다. 이건 스위치가 들어간 거다.
“일단은?”
“옆에서 불이나 때고, 마력이나 넣어!”
영감은 희희낙락하며 액체 우라늄을 담아둔 통에 손을 댄다. 철을 녹일 때보다 수배는 족히 뜨거운 불길에도 영감은 아랑곳 않는다.
우라늄은 철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지만, 우라늄에 마력을 먹이기 위해 통상 온도보다 훨씬 높여둔 거다.
영감은 능숙하게 검심에 액체 우라늄을 붓는다. 신기하게도 액체는 흘러내리지 않고 뭉친다. 영감의 주변으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마법은 아니다. 나랑 비슷한 종류. 정신력만으로 마력을 조종하는 것이다. 보통 정신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능력. 초능력이 필요하다.
영감이 두드리는 것만으로 액체가 저절로 움직여 모양을 잡아간다. 나는 옆에서 검에 계속 마력을 채운다. 채운다기보다는 이제 감싼다는 것에 가깝다. 마력이 꽉 차서 더 이상 안 들어간다. 그렇게 새로운 우라늄 소드는 계속 내 마력에 길이 든다.
완성된 검은 부서지기 전의 검과 똑 닮았다. 손에 들어보니 감촉도 거의 같다.
“어떠냐?”
묻는 영감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는 얼굴이다. 뿌듯하게, 요놈 봐라 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추가금은 안 줄 거요.”
영감의 표정이 썩는다. 그러더니 또 웃는다.
“줘도 안 받는다.”
“일 끝났으면 난 간다?”
“끝까지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놈이구나.”
“해줘? 존댓말?”
“됐다. 그 검에 이름은 붙였냐?”
“글쎄.”
재탄생한 우라늄 소드는 전과 같지만 달랐다. 전의 우라늄 소드가 투박했다면, 이건 투박하면서도 귀티가 난다. 투박한 귀티라니. 이상하지만 진짜로 나는데 나한테 어쩌라고.
“777번 우라늄 소드?”
귀티나니까 행운도 불러오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지은 네이밍이다. 내가 생각해도 잘 지은 것 같다.
영감은 땅이 무너지는 것을 본 눈으로 날 본다. 놀라고 어이없어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 이름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줘 봐.”
영감은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손에서 우라늄 소드를 뺏어다가, 글자를 새긴다.
베이기 전에는 백 걸음 가까이 오지 못하며 베인 후에는 열 걸음 걷지 못한다.
영감이 가져온 검에는 멋들어진 필체로 그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전백귀후십귀(前百鬼後十鬼). 그게 그놈 이름이다.”
“전백귀후십귀?”
“방사능 때문에 그놈을 들면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할 거 아니냐.”
나는 목을 간질이듯 웃는다. 666번과는 또 달라도 재미있다.
“그럼 이걸로 하지 뭐. 별명은 667번 우라늄 소드로 해야겠어.”
영감이 표정을 와락 구긴다. 그런 표정 지어도 안 돼. 이건 내 검이라고. 본명을 받아들여준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영감이 표정을 풀고 나에게 묻는다.
“보검, 명검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을 아느냐?”
아는 척 좀 해보려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안 된다.
“알아.”
“쯧.”
“혀 찼어?!”
“안 찼다.”
참으로 뻔뻔한 영감이다. 꼬장꼬장한데 뻔뻔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실력은 끝내준다. 제자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고생 좀 하겠어.
“뭐 해? 안 가? 이틀 정도 먹지도 않았잖아.”
“네놈이 검을 완성할 때까지는 안 갈 거다. 죽여도 이 자리에서 죽을 거야!”
영감이 소리를 빽 지른다. 영감 말대로 이 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을 위해서는 아직 한 과정이 필요하다. 어쩐지 그걸 알 수 있다.
영감처럼 목숨을 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보고 싶긴 하다. 내 피를 먹이면 이 검이 어떻게 될지. 아까부터 검이 나에게 피를 먹이라고 소리 없이 속삭인다.
검 끝에 손가락을 살짝 댄다. 그리고 긋는다. 피가 흘러 검신을 적신다. 나는 손가락을 날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내 재생력을 생각하면 몇 초면 나을 상처가 낫지 않고 있다.
검은 피를 한 바가지나 먹고야 만족한다. 검이 떨린다. 손에 든 나는 검심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낀다. 검심에서 흘러나온 나온 마력이 검을 한 바퀴 휘감고 다시 검심으로 돌아간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는다. 생각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잘 나왔어.”
“잘 나오긴 이놈아. 마검도 성검도 봤는데 광검은 처음이다! 검이 붉다, 붉어!”
영감의 말대로다. 육감이나 기감이 있는 예민한 사람이라면 검을 감싼 희미한 붉은 기운을 볼 수 있을 거다. 주인인 날 담아 미친 검. 이건 광검이다. 솔직히 광검은 나도 처음 본다.
공방을 나와 대장간 문을 연다. 셈은 다 치렀고, 볼일도 끝났으니 이제 갈 거다.
“아, 영감 칼 고마워. 잘 쓸게.”
검심은 내가 만든 거지만, 검을 만든 건 영감이다. 영감의 기술과 집념이 없었다면 전백귀후십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 검으로 뭘 벨 거냐? 그렇게 미친 검을 만들어가며 무얼 할 거냐.”
영감이 묻는다. 말투가 사뭇 진지하다. 대답해줄 의리는 없지만, 검의 값을 치르는 셈 치자.
“내 앞을 가로막는 것. 재수 없는 것. 이 미친 세상. 좆같은 이 세상.”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불합리의 체현과도 같은 세상에서 나는 물들지 않을 거다. 저항하고 또 저항해주마. 이 미친 세상에. 그리고 하나 더.
“날 이리로 소환한 새끼들을 모두 족쳐야지. 날 끌어들인 값을 치르게 해야겠어.”
방구석에 앉아서 패스트푸드 먹으며 게임이나 하려고 했는데, 내 문명 생활과 여가 생활이 모두 종말을 고했다. 음식에 대한 내 갈증은 동시에 문명에 대한 갈망이다.
좆같게도, 그것들을 내 눈앞에서 날아갔다. 난 뒤끝 있는 사람이다. 뒤끝 빼면 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빌어먹을 소환자들, 아마 신으로 추측되는 그놈들에게 죽창을... 아니, 우라늄 소드를 꽂아줄 테다.
“미친놈다운 대답이로다. 광검의 주인으로 이보다 어울릴 순 없겠어.”
“그래서 말인데, 영감. 혹시 이 근처에 신 없어? 여신이나 반신이나 이런 놈들.”
“신?”
“좆같은 세상을 베어야 하는데, 그 전에 시운전 삼아 신이나 베어보게.”
“소설을 너무 읽었어. 그놈들이 고작 벤다고 죽을 것 같으냐?”
영감이 혀를 끌끌 찬다.
“정 그렇다면 마스터 혈 길드의 마스터를 찾아가 봐라. 그의 실력은 반신에 가깝다고들 하니.”
“마스터 혈?”
그놈들이 또 이렇게 꼬이나? 일단 유연화가 중간계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반응을 봐야 하나. 마스터 혈 길드와 비벼보려면 그쪽이 제일 확실할 것 같다.
그나저나 의외다. 마스터 혈 길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힌다고 했는데, 그런 길드의 마스터가 반신에 가깝다니. 요리사 삼임방도 유연화를 아니까 그 정도라면 한중이가 나한테 귀띔이라도 줬을 것 같단 말이지. 이것도 회귀의 차이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도 아갈리에 처음 소환됐을 때로 회귀시켜주면 한 달 안으로 무쌍 찍고 다닐 자신이 있으니까.
“그럼 난 간다.”
“다시는 오지 마라.”
“싫어.”
저렇게 말하면 괜히 더 오고 싶어진다. 다른 무기가 부서지면 또 와버려야지. 어째 난 괴짜들과 잘 맞는 것 같단 말이야. 끼리끼리 모인다는 건가.
공방 바깥은 태양이 환하고, 내 배는 꼬르륵 거린다. 먹거리 냄새에 이끌려 나는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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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를 타려면 올라가기까지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 법입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 중에 이환이라는 닉네임 쓰시는 분이 계시던데. 이환. 그리운 이름이네요. 에든로벤은 입지적인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