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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세 구의 시체는 옛 동요에 따라 토막 내 따로따로 묻어주었다. 특별히 일곱 개로 나눴다.
7개를 모두 모아 온전한 시체를 완성하면 시신이 되살아나 소원을 들어주도록 해놨다.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다.
떠나라 청춘이여. 일곱 조각난 시체를 찾아서!
도시에 가면 소문이나 내봐야지. 튜토리얼처럼 중간계도 던전이 있나? 있다면 던전과 연결 지어도 재미있겠다.
던전에서 탈출한 소원을 들어주는 전설의 보물!
세 명을 죽인 건 다름이 아니다. 얘들이 마스터 혈 길드였기 때문이다. 마스터 혈 길드의 길드 마스터와 내가 구멍동서가 된 이상 저쪽에서 동서인 나를 죽이러 올 수도 있다.
친족 살해 가능성이 있는 동서를 두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구멍동서니 친족도 아니다만.
그런 대상에게 나에 대한 정보는 되도록 주고 싶지 않다. 방금 대화를 가지고도 알아내려고 하면 많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유연화가 증언하면 일단 내가 회귀자가 아니란 것까지는 알겠지.
미래의 위험 요소도 제거했겠다.
가자, 도시로.
가자, 먹으로.
***
도시에 들어오니 그곳은 별세계였습니다. 왜 말을 알아듣질 못하니!
여기도 저기도, 나불대는 말이 전부 들리지 않는다. 따지자면 솰라솰라? 솰라솰라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언어로 한국인들이 대화하고 있다.
난 혹시 앨리스가 된 건가? 여기는 이상한 나라고? 이세계라는 시점에서 이미 이상한 세계구나. 납득했다. 이상한 세계에서 이상한 언어를 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자, 그럼 문제는 내가 이상한 세계의 이상한 언어를 쓰지 못한다는 거다.
저들 사이에 끼어서 익힐까? 그건 내가 거부한다.
의심을 머리에, 암귀를 심장에. 내가 곧 의심암귀일지어다. 말 못하는 나를 누가 등쳐먹을지 모른다. 초월적인 힘이 있어도 머리 나쁘면 뒤통수 맞는 건 똑같다.
내가 죽인 셋은 태연하게 한국어를 했으니. 저들이 한국어를 못 해서 안 한다는 생각은 안 든다. 어떤 이유가 있기에 쓰지 않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안경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좀 더 캐묻고 죽였어도 됐는데.
오랜만에 그걸 써야하나? 이럴 때를 위한 통역 마법이라는 아주 위대한 마법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거 마력 무지하게 먹는 괴물 마법이다. 그거 쓸 마력이면 대마법을 난사할 수 있다.
애초에 전혀 다른 언어를 마력에 의존해 해석하는 건데 쉬울 리가.
그래도 나는 통역 마법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왜냐? 내 마력은 무한이니까. 무한에서 백을 뺀다고 해도 무한은 여전히 무한이다.
통역 마법을 사용하자 이상한 언어가 내가 아는 언어로 번역되어 들리기 시작한다. 번역만 되어 들리는 거지, 한국어라고는 안 했다.
지금 내 머릿속은 내가 알고 있는 십여 가지 언어가 동시에 떠든다. 가벼운 두통이 인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리 잡는다. 편히 누워 눈을 감고 귀로 들리는 소리와 머리에 울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언어를 배우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모자란 지능을 뇌의 성능으로 밀어붙여 우격다짐으로 배웠다.
한 단어가 십여 가지 단어로 대응되어 들리는데 이렇게 이러면 빨리 배울 수밖에 없다. 단, 이걸 모두 듣고 이해할 수 있을 경우에. 남들하고 뇌 기능이 다른 나는 가능하다.
사흘간 숨어 있던 지붕에서 내려간다. 이렇게 내려오니, 역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흘간 언어를 배우며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날 소환한 또라이 여신과 한패인 것들을 찾아 족치자. 몽땅 찾아 발본원색하고 그놈들을 나랑 똑같은 꼴로 만들어줄 거다. 너희가 나를 중간계로 소환했으니. 난 너희들을 저승으로 송환해주마. 아주 흙으로 되돌려버릴 거다.
문제는 이게 당장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거다. 여신이 한 발 걸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다른 패거리도 신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을 어디 가서 만나냐는 거지. 쉽게 만날 거란 생각은 안 든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
부숴 먹은 666번 우라늄 소드의 보수가 시급하다. 여신의 심장에 핵폭발을 먹여준다고 사용해버려 반쪽이 났다. 이대로 두긴 찝찝하니 이거 먼저 고치고, 밥이나 먹자.
나흘째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다. 뱃가죽과 등가죽이 들러붙어 감격에 겨워 통곡하고 계시다. 니들은 원래 만나면 안 되는 관계야. 잘못된 만남이라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뱃가죽과 등가죽에 비하면 양반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적어도, 둘이 만난다고 누가 죽지는 않는다. 죽어도 걔들이 죽지 누굴 죽이진 않는다. 반면 뱃가죽과 등가죽은 둘이 만나면 누가 죽는다. 누군가 아사해 죽는다.
조금 굶는다고 내가 죽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배고픈 건 불쾌하다. 음, 순서를 바꿀까. 좋아. 먼저 먹고 우라늄 소드를 고치자.
내 복장은 지구의 평상복이었지만, 여기도 옷차림은 다들 비슷해 눈에 띄진 않는다. 행인 중 하나를 물색해, 어깨를 툭 부딪친다.
짜증이 난 행인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몇 번 고개를 숙여주자 행인은 다시 걸음을 옮긴다.
내 손에는 행인이 가지고 있던 지갑이 들려있다. 이 정돈 기본이지.
현대적인 거리라 그런지 여기는 가판에서 음식도 판다. 어제 발견하고 눈독 들여 둔 꼬치구이를 먹자. 돈의 단위가 어떤지는 말을 배우며 대충 익혔으니 문제 없다.
꼬치를 하나 사 뜯으면서 장사하는 아저씨한테 묻는다.
“이건 무슨 고기야?”
쫄깃하고 담백한 게 자꾸 손이 간다. 이걸로만 한 끼를 해결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불스아이.”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저렇게 붙임성 없어서 장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고기가 깡패다. 식당은 맛으로 승부해야지. 아무렴.
꼬치를 세 개째 먹고 있자니 이 꼬들꼬들한 고기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불스아이라고 했지? 나중에 알아보자.
내 앞 가판대에 꼬치 막대가 20개쯤 쌓이자 대충 배가 찬다. 아저씨가 날 질렸다는 눈으로 보고 있다. 눈으로 날 보면서도 손으로는 새로 꼬치를 굽는 게 장인의 포스가 느껴진다.
“잘 먹었수다.”
인사하고 가판을 뒤로한다. 이제 대장간 차례다. 대장간도 봐둔 곳이 있다. 현대적인 도시에 대장간이 웬 말이냐 싶지만, 역시 여기가 판타지이기는 한지 무기점도 있고 대장간도 있다.
딱히 대장간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있는 게 더 편하다. 소위 말하는 마검이나 성검은 장인이 만든 무기에 추가로 마법을 걸거나 해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로 검을 만드는 과정은 중요하다.
아갈리에서는 그랬다.
눈여겨 둔 대장간으로 향한다. 이 근처에 대장간은 세 곳 정도 있는데, 여기가 제일 후미진 곳이고, 제일 오래된 곳이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무기도 여기가 제일 질이 좋다.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대장간에 들어가니 30대 아저씨가 나온다. 안에선 땅땅거리는 망치질 소리가 있다.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늙었으면 좋겠다. 일종의 선입견이다. 늙으면 솜씨 좋지 않을까 하는.
“대장간을 반나절. 아니, 하루 빌리고 싶은데.”
아저씨가 얼굴을 구긴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알아볼 정도다. 예상했던 일이다.
“돈은 충분해.”
아공간에서 금덩이를 꺼낸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 여기서 금도 통화로 쓰인다는 건 벌써 알아뒀다. 거래할 때 돈 대신 금 부스러기를 쓰기도 했으니까.
아저씨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더니.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곤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뒤에 할아버지 하나를 달고 나왔다.
꼬장꼬장하게 생긴 게 내가 생각했던 장인의 모습 그대로다.
“여길 빌리고 싶다고?”
“보수는 보이는 데로.”
손에 든 금덩이를 내민다. 영감은 금덩이를 한동안 바라봤다.
“스승님.”
아저씨가 영감을 작게 부른다. 보채고 있네. 낡아서 그런지 돈이 궁한가보다.
“대장간에서 무얼 할 거지?”
영감이 나한테 묻는다. 나는 아공간에서 반쪽짜리 우라늄 소드를 꺼낸다.
“이거.”
영감이 손을 내민다. 남의 검을 이렇게 달라 하다니. 성격 나쁜 놈에게 걸리면 그냥 목이 달아났다. 나는 그렇게 불한당은 아니므로. 영감에게 검을 건넨다.
-쿵.
영감 손에 들린 검이 떨어진다. 영감은 당황한 얼굴이다. 우라늄 소드가 겉보기완 달리 좀 무겁다. 평소에는 그냥 검과 똑같이 생겼거든. 내가 레이저 쇼를 해주지 않았다면 난 놈도 이게 방사능 물질이라는 걸 몰랐겠지.
영감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검을 든다. 그리곤 유심히 살핀다.
검을 살피던 영감의 눈이 커지고, 입이 조금씩 벌어진다. 이내 기겁하며 검을 던져버린다. 검이 건물 벽에 꽂힌다. 와우. 손잡이만 남기고 푹 들어갔어. 이 할아버지 힘이 장사다.
“넌 나가 있어라!”
영감의 불호령에 아저씨가 가게를 나간다. 영감이 심각한 얼굴로 날 본다.
“이 밀도, 이 촉감. 저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들고 다니는 건가?”
나는 말없이 영감을 본다. 영감도 날 본다. 오오. 이 할아버지 666번 우라늄 소드의 재질이 뭔지 대충 아는 눈치다. 저걸 보기만 하고 알아채는 게 가능한가? 저 상태로는 방사능도 안 나오는데?
어쨌든,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물론.”
벽에 꽂힌 우라늄 소드를 잡아 뽑는다. 트리거를 넣으니 검이 자체 발광한다. 초록색으로.
“그, 그만!”
영감이 기겁하며 물러난다. 나는 낄낄 웃는다. 그래, 저 모습을 보고 싶었어. 생각한 반응이 그대로 나타나니 얼마나 좋아. 즐겁다, 즐거워.
“이건 그냥 발광효과. 방사능 안 나와, 영감.”
영감이 와락 얼굴은 구긴다. 나는 저 반응도 재밌다. 영감이 꼬장꼬장한 얼굴이라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직접 수리할 거냐?”
“내가 수리할 줄은 어떻게 알고?”
“아니냐?”
“아니, 맞는데.”
말투가 띠껍다. 이 영감, 만만찮다.
“좋아, 들어와.”
영감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니 예상했던 대로 애장간이다. 그런데 예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전체적으로 은색이고, 잘 정리된 것이 어디 공장을 보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노인이 킥킥 웃는다.
“생각했던 모습과 달라서 당황했나? 신경 좀 썼지.”
으음. 괜히 진 기분이야. 이 영감도 괴짜가 분명하다. 장인이라 괴짜인 걸까, 괴짜라서 장인이 된 걸까.
깔쌈하게 생겼어도 도구는 내가 쓰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아공간에서 우라늄 덩어리를 꺼내, 화덕에 달구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라늄이라고 말하고 있긴 해도 난 이게 우라늄인지 플루토늄인지 그것도 아닌 전혀 다른 물질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방사능 비슷한 걸 뿜고, 핵분열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우라늄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우라늄 덩어리를 녹이고, 덤으로 반만 남은 우라늄 소드도 녹인다. 이렇게 불 앞에 있으니 욕심이 생긴다.
이걸 만든 것도 꽤 옛날이다. 그때와는 내 마법 실력이 다르다. 이참에 우라늄 소드를 새롭게 재탄생 시켜주자.
노인은 나가지 않고 뒤쪽 벽에 서 있다. 내가 불을 만지는 걸 구경할 모양이다.
“거기 있을 거유?”
“왜, 안 되냐?”
“내 제련은 좀 특별해서. 방사능 나올텐데?”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러니까. 구경하다 피폭당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누가 장인 아니랄까 꼬장꼬장한 거로도 모자라 똥고도 있다.
아공간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 노인에게 던진다.
“이게 뭐냐?”
“항방사능제? 방사능 면역제? 아무튼 먹으면 죽진 않는 거.”
노인이 내용물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확인도 안 하고 나는 작업을 시작한다. 살고 싶으면 마시고, 죽고 싶으면 안 마시겠지.
나는 팔을 걷어붙인다.
우라늄을 녹이기에는 아직 불이 약하다. 그래도 내 작업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렇게 불 앞에 앉아 있지만, 나는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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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탈을 쓰고 주먹질도 하고 무기도 두드리고 하지만 전부 겉핥기 입니다. 제대로 못 해요.
방사능 물질은 엄밀히 따지면 방사성 물질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1인칭 시점이므로 방사능 물질이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기타 용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