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15화 (1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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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전략, 어머니, 아버지. 이 불초 자식이 신을 죽였습니다.

날 소환한 게 이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꼭지가 돌아 필살기를 써버렸다. 우라늄 소드의 검신 반이 사라졌다. 그리고 여신은 상반신 반이 없는 모습으로 내 앞에 누워있다.

심장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도려 내어져, 얼굴도 반밖에 안 남았다. 얼굴이 반인 미인이니. 반미인이다. 굳이 따지자면 난 친미파다. 쌀 좋아한다고. 반미인인 이 여신과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저쪽에서 꼬셔도 친해질 생각도 없다. 성노예 정도면 몰라?

핵폭발은 우라늄 소드로 사용할 수 있는 필살기다. 만화 보면 필살기 맞고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던데. 이건 그런 거 없다. 다 뒤진다. 일단 걸리면 군대도 박살 나고, 국가도 박살 난다.

아무래도 그 위력은 신도 죽일 위력일 줄은 나도 몰랐다. 현대과학이 너무 위대하다.

“이야, 여신이 한 방에 죽어부럿어! 이거 짝퉁 아냐?”

솔직히 많이 당황스럽다. 너 신이라며?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날 여기로 부를 정도의 힘은 있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한 방에 죽어?

현대 과학이 너무 위대해 두렵다. 두려워 못 살겠다.

어쨌든 사실 하나.

신은 뒈졌다.

그냥 이렇게 쓰니 조금 밋밋한가.

신은 뒈졌다. -진휘.-

훨씬 있어 보인다. 자칭 여신의 남은 이마 반쪽에 새겨주자. 비석 대신이다. 아무아미나불. 아무에미나불. 아무 에미나 나불거려 이 사실을 널리 알려라. 내가 신을 죽였다!

극악왕생하시길. 극악(極惡) 속에서 왕생(往生)해라. 홧김에 죽인 게 실수였다. 너무 편하게 죽였다. 넌 고생 좀 더 해야 돼.

토닥토닥. 부디 (나에게)좋은 곳에서 왕생하라는 의미에서 머리를 토닥이고 있는데 여신이 눈을 뜬다. 신은 뒈졌다, 라는 명언을 새겨놓은 이마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다.

외눈박이 병신이 날 본다.

아, 이거 어색하다.

“안녕하세요.”

무심코 존댓말이 나온다. 난 존댓말은 잘 안 쓰는데도 나왔다.

“어... 째서.......”

이년이 지금 뭐라고 했지? 어색함이 싹 사라지고 열불이 치솟는다. 말 한마디로 내 가슴에 유황불을 지피다니. 이년 참으로 달변이다. 말이 칼보다 날카로워.

반만 남은 생머리를 머리채 쥐고 들어 올린다. 얼굴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여신에게 말한다.

“이 씨발 년이? 다시 말해 봐.”

“어, 째서.......”

희미한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 안 돼. 아직 뒈지지 마. 내 말은 듣고 뒈져.

“내가. 씨발. 그 고생을 해서. 씨발. 돌아왔는데. 씨발. 또 이 꼴이야! 씨발 년아! 내 인생이 재개발 당했어. 다 엎어졌다고! 그런데 재개발 한 년이 내 앞에 있네? 안 찌르고 배기냐!”

사람 인생을 이따구로 좆같이 만들고 제가 불렀습니다. 하고 앞에 나타나다니. 그리고 본인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자각도 없다. 이년 또라이다. 나보다 더한 또라이.

“이제 뒈져도 돼.”

할 말 다했다. 이제 넌 뒈져라.

머리카락에서 손을 뗀다. 중력에 따라 낙하하는 반쪽짜리 얼굴을 움켜쥐고, 땅에 찍는다. 쿠웅. 검은 공간에 큰 소리가 울린다.

“이럴, 순... 없.......”

열리지 않는 입을 비집어 열며, 여신이 애통하게 말한다. 그 말이 여신의 유언이었다. 눈이 감기고, 여신의 몸이 소멸한다.

“씨발 년이 마지막까지 사람 속 뒤집어 놓네.”

이럴 순 없어? 없긴 왜 없어. 니가 재개발한 인생들을 대표해 내가 널 쳐 죽인 거라고 생각해라. 그중 9할 9푼이 내 몫이다.

여신이 죽으며 나온 무언가가 내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난 그걸 마력을 써서 막는다. 이게 뭐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어슴푸레 느껴진다.

쉬쉬 저리가. 지지야, 지지.

계속 내 몸으로 들어오려는 그것을 막는다. 먹으면 체할 것 같다. 또라이 여신이 죽어 남긴 건데 아무렴.

그런데 진짜 저거 뭐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생각한다. 아, 생물을 죽이면 영혼을 흡수한다고 했지.

여신이 생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여신의 영혼인 것 같다. 아님 말고. 일단, 여신과 관련된 무언가라는 점에서 절대 내 몸에 받아들이진 않을 거다.

그 여신 또라이였다고. 나도 깨갱할 또라이! 그런 년이 남긴 물건을 어떻게 받아먹어.

여신이 영혼인지 뭐지 모를 물질. 귀찮으니 여신이 남긴 똥이라 하자. 여신의 똥이 자꾸 나에게 엉겨 붙는다. 똥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배로 나쁘다.

훠이훠이. 꺼져버려.

손으로 흩어보려고 하지만, 흩어지지 않는다. 나도 오기가 생긴다.

“오냐, 해보자. 이거지.”

여신을 죽이고, 여신이 싸놓은 똥하고 드잡이질이라니. 나도 참 미쳤구나. 그래도 저 여신의 똥을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절대로 사양이다.

여신의 똥은 끈질겼다. 이렇게 굵고 질긴 똥을 싸놓고 가다니. 여신의 시체가 있다면 오줌이라도 싸갈기고 싶다. 여신은 나한테 똥을 남겼으니. 내가 오줌을 선물해주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똥과 나의 사투가 끝나지 않는다. 내 신세가 처량해 우울증 걸릴 지경이다. 이 빌어먹을 똥 덩어리. 이제 너와 나의 악연을 끝내자.

아공간에서 지팡이를 뽑는다. 농축 우라늄 봉으로 만든 지팡이에 최고급 마석을 박고, 보석과 봉을 내 피로 정제한 지팡이다.

아갈리에서의 평을 따르면, 일국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지팡이다.

“뒈져라! 또라이의 똥 덩어리!”

마력을 무한으로, 말 그대로 무한으로 퍼붓는다. 내 심장은 무한의 마력기관이다. 마력을 무한대로 생산한다. 무한한 마력에 공간이 흔들린다.

여신의 똥도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조금만 기다려라. 네 주인 곁으로 보내주마.

공세를 강하게 하자. 여신의 똥이 조각나 찢어진다. 여신보다 여신이 죽고 남긴 똥이 더 힘들었다. 자기 똥보다 약하다니. 여신이 불쌍하다.

마침내 악의 근원이 쓰러졌다. 그런데 이년이 뭐라고 했지? 탐탁지 않은 말은 한 기분이었는데. 내 머리는 보고 들은 건 안 잊는다. 바로 기억을 되살린다.

‘어서 오세요. 저는 인간의 신이랍니다.’

‘날 소환한 게 너냐?’

‘그렇습니다. 조금은 제게도.......’

그렇습니다. 조금은 제게도? 이년 혼자 벌인 일이 아냐? 원흉 더 있어?

서러워서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더러워서 못 살겠다.

여신이 싸고 간 똥도 더럽고, 저런 또라이 년과 한패가 더 있다는 것이 더럽고. 날 가지고 노는 이 세상이 더럽다. 더러워서 다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내가 미치면 인류가 망하고, 인류가 망하면 돌아가는 길이 없어지니까 아갈리에서는 되도록 심신 안정을 위해 애썼는데. 이젠 그러기도 귀찮아지려고 한다. 그냥 확 미쳐버려?

미칠 땐 미치더라도 우선 여길 나가야겠다. 여신이 죽고 지진 난 것처럼 공간 전체가 흔들린다. 근데 여긴 어디야? 여신 때문에 신경 못 썼는데, 이 공간 자체도 기이하다. 주변이 전부 검고. 검은색 말고 다른 색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공간이 무너지며 밖이 보인다. 뭐야? 가만있어도 되는 거였어? 아마 여긴 아공간 비슷한 거였나 보다.

공간에 공간을 덧씌워놨다가, 덧씌운 공간이 사라지면 원래 공간이 나타나는 원리로 생각된다. 상대가 신인데 뭔 짓인들 못 하겠어.

새로 드러난 공간은 빈 공터다 조금 떨어진 곳에 도시가 보인다. 근데 그 도시가 또 요상하다.

단적으로 말해 콘크리트 정글이 저기 있다.

이야, 중간계. 분발했어. 이세계 최신 건축 양식을 들여올 줄이야. 는 개뿔. 그냥 소환된 인류가 지은 거겠지. 우리가 18년차라니 앞에 왔던 사람들이 18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도 아닐 거다.

생각해보면 저런 건축물이 있어도 이상할 건 전혀 없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 양식을 흉내 냈다면, 식문화도 흉내 내지 않았을까. 여기서도 치킨, 피자, 탕수육을 먹을 수 있는 걸까. 완전한 문화생활을 영위하지는 못해도 식문화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을까.

당장 가보자...... 라고 말하고 싶은데, 날 관찰하는 놈이 셋 있다. 시선이 제법 노골적이다. 우선 저놈들부터 손 봐야겠다.

“야.”

내가 말을 걸자 세 놈이 혼비백산한다. 이백 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앞에 있으니 놀랄 만하지. 난 그냥 빨리 움직인 것뿐인데, 이놈들은 내 움직임도 못 본다.

“니들 뭐야? 왜 날 감시해?”

“당신을 감시한 게 아닙니다.”

셋 중 안경 낀 놈이 대답한다.

“그럼?”

“일주일 후면 여기에 명동이 나타납니다. 그때까지 무슨 특이한 일은 없나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명동이 나타나?”

얘들 표정이 이상해져서, 재빨리 덧붙인다.

“내가 기억이 좀 왔다 갔다 해. 그러니까 천천히. 바보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알겠지?”

버그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보다는 기억상실 쪽이 잘 먹히리란 계산이다.

안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인류가 소환되는 대소환.......”

그런데 첫 마디부터 이상한 말이 나온다.

“모든 인류?”

맙소사. 이거 전인류 대상이었어? 전 연령 이용가 예능 프로도 아니고, 전 인류 이용가 이계 소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말이 잘 나오네. 욕이 잘 나와. 씨발.

몇 명 소환도 아니고, 전 인류? 여신을 죽인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역시 그년은 족쳐야 할 년이었어. 내가 인류의 구세주다!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구세주는 아닌가? 내가 인류의 영웅이다!

전 인류의 삶을 똥통에 처박은 또라이 년 하나를 찔러 죽였다고!

“무슨 일이신지......?”

내 성취감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안경이 묻는다.

“아니, 그냥 옛날 일이 좀 생각나서. 그때 나는 쥑여줬지. 설명 계속해.”

5분 정도 전의 나는 쥑여줬다. 진짜로 신을 죽여줬다. 안경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입을 뗀다.

“대소환은 40년에 걸쳐 이루어지며, 15년 차부터는 지구의 도시들도 부분부분 중간계로 날려 옵니다. 사실 지구 전체가 옮겨지는 셈입니다.”

옵미 씨발.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를 옮겨 놔? 어떤 또라이적인 발상을 하면 이런 생각이 나오는 거지? 여신한테 물어볼 걸 그랬다. 여신님, 약 뭐 쓰세요? 좋은 거 쓰시면 저도 좀 나눠주세요.

“그래서?”

“일주일 후 여기에 명동이 나타납니다. 그걸 위해 특별한 일이 없나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딱 나타난 게 나고?”

안경을 포함한 세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황은 대충 알았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궁금한 게 생긴다.

“대소환인 40년 걸리고, 지금이 몇 년이지?”

현실감있는 연기를 위해 헷갈리는 척해준다.

“올해가 18년 차입니다.”

“올해가 18년 차면 인류 반 정도가 여기 있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왜 저쪽에선 반응이 없냐?”

내가 아갈리로 소환되기 전에도 지구에선 대량의 실종자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이야긴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못 들었다. 난리가 났어도 백 번은 났어야 할 일인데도.

“소환되는 사람, 사물, 지형에 대한 기억이 사라집니다.”

“사라져?”

“없던 사람이 됩니다. 남매가 외동이 됐는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명동 거리가 사라지면 명동은 옛날부터 그린벨트였다는 걸로 이해됩니다.”

“호오.”

이건 처음 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지구는 상당히 개판이 되어 있었구나. 지구 인구 절반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런데, 너희 누구냐? 왜 날 감시하고 있지?”

태연하게 말한다. 마치, 너와 나는 처음 봤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이라는 듯이.

안경과 다른 두 명의 표정이 썩는다. 당연하다. 방금까지 멀쩡히 대화하던 놈이 맛이 가버렸으니까.

“당신을 감시한 게 아닙니다.”

안경이 아까와 똑같이 대답한다. 내 반응은 아까랑 좀 다를 거야.

“너흰 누구야? 대소환은 뭐고? 아, 소환이 뭐지?”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눈의 초점을 최대한 흐린다.

“저희는.......”

“너흰 누구냐고!”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 내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헤엄친다. 어푸어푸. 시선이 허공에 빠졌다.

“마스터 혈 길드입니다.”

안경은 당장 도망가고 싶은 얼굴이다. 대화가 안 되니 교류가 안 되고, 교류가 안 되니 상대의 뜻을 모른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미친놈이 앞에 있다면, 그리고 그 미친놈이 자신 정도는 쉽게 죽일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불안할까.

친절한 내가 그 불안을 잠재워주도록 하자.

“마스터 혈? 그럼 안 되지. 안 돼.”

다른 말을 했다면, 하다 못 해 자기 이름을 댔다면 살았을 것을. 그 이름을 댄 게 너희 불행이다.

“아?”

목이 세 개 떨어진다.

자, 이걸로 불안은 없다. 마스터 혈 길드에 내 정보를 줄 순 없지. 난 비싼 남자야. 비밀은 저 머릿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따로따로 묻어줄게. 이 동요가 언제부터 토막살인 사건에 대한 사건일지가 되었지?

세상 말세다. 말세야.

============================ 작품 후기 ============================

원래 신은 쉽게 안 죽습니다. 저건 싸울줄 모르고 방어구도 안 끼고 왔는데 방무뎀 즉사기 맞았아서 그래요!

만렙도 방어구 안 끼고 도핑 안 하면 얄짤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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