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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난 놈과 나의 관계는 살가워 보였을지 몰라도,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난 놈의 팔다리를 부순 걸 사과하지 않았고,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난 놈도 거기에 대해 나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딱히 그것 가지고 서로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성향이 그렇고, 난 놈의 성향이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그놈을 믿을 마음이 없었고, 그놈도 심정도 아마 비슷했을 거다.
칼을 가는 데 말은 필요 없다. 웃을 필요도 없다. 마음속으로 고이 갈면 된다.
첫째 날, 상황 파악 못 하고 멍하니 있던 나를 떠보려고 했던 시점에서 이런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비극 같은데. 요는, 당연한 귀결, 예정된 결말이라는 뜻이다.
내가 난 놈의 팔을 부러뜨리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좋은 관계였다면? 글쎄, 그건 모르겠다. 적어도 이렇게 죽고 죽이는 관계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건 만약이고, 현재가 아니잖아?
난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남자지.
“꼭 지켜라. 나가지 말고, 아티팩트 가지고 있고. 그런데 그거 진짜지? 중간계에서 바로 싸울 일은 없을 거라는 말.”
“튜토리얼 다음에는 초보자를 위한 과정이 몇 개 있어요. 바로 싸우지는 않을 거예요. 과거랑 같다면 말이죠.”
치킨녀는 마지막에 말을 덧붙인다. 그녀도 확신하지는 못하는 표정이다.
회귀.
단 두 글자지만, 이 두 글자는 너무나 많은 걸 바꿔놓았다. 회귀자들은 미래를 알지만, 동시에 모른다. 쟤들도 운명이 참 기구하다. 그래도 나보다는 아니다.
아니, 이런 걸로 질투해서 뭐해? 뭐가 좋다고. 인생 기구하다고 나오는 건 없다. 적선 정도는 받으려나?
“난 간다. 당분간 몸 간수 잘해. 아티팩트는 씻을 때도 벗지 마.”
마지막으로 똑같은 충고를 한 번 더 한다. 난 얘들이, 정확히는 얘들 요리가 마음에 든다. 눈에 띄진 않았지만, 와플 아저씨의 와플도 특이해서 맛있었다. 듣자 하니 입소문 꽤 타는 와플집이었다고.
그래서 가급적 죽지 않고 다시 만났으면 한다. 그때 요리를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저쪽에 재료는 있으려나?
식사는 이미 끝냈다. 먹던 것에 비하면 한참 덜 먹었지만, 그래도 아마 10인분은 먹었다.
유리문을 열고 나온다. 항상 바깥에 그득하던 탐식귀도, 오늘은 깨끗하다. 천천히 걸어가며 분위기를 음미해도 좋겠다. 빠르게 난 놈을 처리하고, 돌아올 때 그러자.
난 놈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몬스터에 사람까지. 다양하게도 모아놨다. 날 위해 뭘 그리 열심히 준비했니.
어차피 다 헛수고일 것을.
쾅!
바닥을 박차니 도로가 박살 난다. 도로만이 아니다. 쾅! 쾅! 쾅! 난 놈과 나 사이에 있는 건물 벽에 구멍이 하나씩 뚫린다.
초대받은 자리에는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예의다. 상대가 먼저 와 있다면 최대한 빨리 가 줘야지.
난 놈이 뭘 준비했더라도. 벽을 뚫고 들어오는 것까지 예상하진 못했겠지. 단 한 수도 네 뜻에 따라 어울려줄 맘이 없단다.
난 놈이 숨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이 근처에선 꽤 큰 건물이다. 안에는 뭐가 바글바글하다.
벽을 부수고 들어간다. 여러 가지 뒤통수가 보인다. 여기가 딱 정문의 뒤였던 모양이다. 수많은 뒤통수가 반응해 고개 돌린다.
통수야, 통수야 이리 날아오너라. 뒤통수든 앞통수든 깨어 부숴 주마아.
퍼엉!
앞통수 몇 개가 깨져 흩어진다.
몬스터고 사람이고 할 거 없이 혼란에 빠진다. 그런 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안녕, 좋은 저녁이야. 이런 날에는 피로 목욕을 하면 잠이 그렇게 잘 오더라.”
미친 소리를 해봤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미지근하다. 날 완전히 적대하고 있군.
몬스터 수십 마리에 사람 수십 명. 탐식귀군도 있고, 개거지 장군도 있고, 왕 통통 벌레도 있다. 일반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다. 정예란 거군.
난 놈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표정에는 여유가 있지만, 저런 놈은 표정을 읽어도 나오는 게 없다.
“죽기 전 발악이냐?”
“발악인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겠죠.”
“아니. 안 해봐도 돼.”
뭘 이런 거 가지고 길고 짧고를 대보려고 해. 안 대봐도 다 보이는데.
오랜만에 마법이나 써보자.
쿵.
발을 구르니, 땅에서 흙으로 된 창이 솟아나 몬스터를 모두 정리한다. 오래 끌 것도 없다.
원샷, 올킬.
얼마나 깔끔하고 좋아.
탐식귀들이 흩어져 사라지고, 개거지와 벌레들이 가죽과 내장만 남기고 생명의 불꽃이 꺼진다.
“야, 표정관리 안 된다.”
눈꼬리를 파르르 떨던 난 놈이 바로 표정을 다잡는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니 뼈아프네요. 이것들 테이밍 하느라 사흘 동안 잠도 못 잤는데.”
“이런 일로 밤도 새고, 팔자 참 좋다? 나라면 잠이나 실컷 자두겠는데. 뭘 이런 거로 밤을 새고 그래.”
“핵폭탄 3개, 그때 말한 걸 전혀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하기도 하셔라. 그래서 달라지는 게 있디?”
“적어도. 제가 모든 것을 사용할 결심을 하는 데는.”
몬스터의 시체들이 타오른다. 마력으로 된 불꽃이다. 시체를 삼킨 불꽃이 난 놈의 손으로 모인다. 그리고 난 놈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몸도 같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사람들의 몸을 태우는 불꽃은 생명을 빼앗는 불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효과가 있는 모양인데, 물어도 가르쳐주진 않겠지.
그 불꽃들도 작은 실로 난 놈과 이어진다.
난 놈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증가한다. 그 증폭률은 족히 수백 배는 된다. 난 놈이 힘겨워하는 것이 눈으로도 보인다. 저 정도면 생명을 깎아 쓰는 수준이다.
“그 정도까지 내가 싫었어? 으이그. 말을 하지.”
좀 더 빨리 보내주는 건데. 헤매이는 중생에게 안식을 선물해주는 것은 참된 사람, 차칸 사람의 의무다.
“당신이 말을 해서 통할 인간이었다면,”
“넌 날 너무 잘 알아. 그래서 죽어줘야겠어.”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죽마고우인줄 알았다. 난 저런 친구 둔 적 없는데! 저런 놈을 죽이려니 오랜 친구 하나를 죽이려는 것 같네. 철든 친구 말이야. 정든 친구를 잘못 말한 거 아니다.
철든 친구. 날 죽이려고 철(金) 들고 있는 친구. 친구를 빙자한 적이구만 이거.
“좋아. 친구를 보내는 거니까. 그냥 보내면 재미가 없겠지.”
수명까지 깎아가며 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데, 그냥 보내면 예의가 아니다. 염라대왕 앞에서도 할 말이 궁할 거다. 넌 왜 죽었느냐? 하는 대왕의 물음에, 눈 깜빡하니 끔뻑 죽었습니다. 하면 폼이 안 산다.
염라 앞에서 할 말 정도는 만들어서 보내주자. 철든 친구를 위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선물이다. 첫 번째는 팔다리 부러뜨린 그거다.
아공간에서 검을 꺼낸다. 검의 모습을 본 난 놈이 뒤로 물러선다. 검집에 들어 있어도 이 검의 비범함은 모두 숨길 수 없다. 이건 그런 검이다.
검을 뽑는다. 검신이 드러난다. 녹색 검신이 빛을 뿜으며 찬란히 빛난다. 난 놈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녹색으로 빛나는 금속. 딱 떠오르는 게 있잖아?
“이 검의 이름이 뭔지 알아? 악마의 검. 용사의 검. 천재검(天災劍). 사상 최악의 날붙이 등등 많은데.”
이 이름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에 가까운 것들이다.
“난 이놈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지. 666번 우라늄 소드.”
말하며 낄낄 웃는다. 조금 오글거리면 어때. 이놈 성능은 진짜거든.
우라늄 소드. 이게 우라늄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냥 방사능 비슷한 걸 뿜어내는 금속이고, 그걸 가공해 검을 만들었을 뿐이다.
하나 확실한 건.
방사능은 진짜다.
난 놈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난 낄낄 웃는다. 그래, 저 표정이 보고 싶었어. 저 이해 못 할 무언가를 보는 표정. 저런 놈이 저런 표정을 할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낄낄.
“진짜 방사능 물질은 사실 초록색 빛은 안 내. 푸른색은 가끔 있어도. 그래서 특별히 초록색 반짝반짝을 추가했지. 이쪽이 알기 쉽잖아? 저쪽 얘들은 이걸 보고 죽음의 빛이니 뭐니 했지만.”
그래서 조금 재미없기도 했다. 저쪽이라는 표현, 난 놈이 듣더라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지. 내가 중간계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멋지지?”
검을 자랑하듯 앞으로 내민다. 난 놈과 오십 명의 결사대가 뒤로 물러난다. 내 검, 반짝반짝 멋있는데 말이야. 구경시켜 달라 하면 잠깐 빌려줄 용의도 있다.
우라늄 소드. 이런 물건을 만드는 놈은 중간계에서도 나밖에 없을 거다. 들고 다니기만 해도 피폭돼 뒈지는 무기를 누가 써?
물론, 난 괜찮다. 난 방사능 면역이다.
“덤벼. 덤비라니까.”
난 놈은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 가까이 올 생각을 않는다.
“안 와? 안 오면 위험할걸? 너희 지금도 피폭되고 있어.”
우라늄 소드가 초록색으로 빛난다. 조명 하나 없는 실내가 환하다. 검을 뽑은 순간부터 이 근방은 내 영역이다. 나 빼고 전부 뒈지는 죽음의 영역.
난 놈이 기침을 한 번 한다.
“...?”
놈은 당황하며 입가를 닦아 낸다. 난 놈의 손에 피가 묻는다. 입가도 피투성이다.
“내 우라늄 소드가 쬐끔 쎄.”
가까이 있으면 꽥하고 죽는다. 아갈리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한 번은 전쟁하다 귀찮아서 우라늄 소드 뽑고 전진 중앙을 달려 돌파한 적도 있었다.
다음 날 적 지휘관은 모두 죽었고, 두려움에 질린 적들은 스스로 항복했다. 그놈들은 날 인간 취급해주지도 않더라. 우라늄 소드가 나쁜 건데....... 모오땐 우라늄 같으니!
난 놈을 시작으로, 다른 놈들도 차례차례 쓰러진다. 우라늄 소드가 뿜는 방사능은 그냥 방사능이 아니다. 내 마력으로 증폭된 방사능이다. 효과 직빵이다.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난 놈과 오십 명의 결사대가 모두 쓰러진다. 그리고 조금 지나다 모두 숨을 거둔다.
“에잉, 쯧. 휘둘러보지도 못했네.”
기분 좀 내보려다가 이게 뭐야. 투엣. 난 놈의 시체 위로 침이나 뱉는다. 그래도 칼 자랑은 했으니 다행이네. 666번 우라늄 소드를 초록색으로 코팅한 보람이 있었다.
중간계에 가면 이걸로 더 재미 볼 수 있으려나? 그건 조금 기대된다. 나는 방사능의 지배자다!
시체들을 불로 소각한다. 죽은 척 한다든가. 진짜로 죽었다 되살아나는 놈들이 간혹 있다. 난 놈이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법도 없다. 뒤처리는 확실히 해야지.
[탐식귀왕을.......]
[개거지왕을.......]
[대왕 통통 벌레를.......]
잡다한 메시지는 전부 무시하자. 길어서 읽기도 귀찮다.
아공간에서 콜라 하나를 꺼낸다. 미지근하다. 마법으로 차게 식혀 뚜껑을 딴다. 소설 보면 아공간은 시간이 흐르지 않던데. 내 건 안에서도 흐른다. 식량 창고로는 못 써먹는다.
콜라를 한 모금하며, 내가 뚫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캬아. 날씨 좋고.”
달이 밝다. 너무 밝아 밟아주고 싶다. 너무 밝아서 재수 없다. 엿이나 먹어라.
느긋하게 산책하며 치킨집으로 돌아간다.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막판 포인트 벌이라는 건가.
산책해 돌아가니 10시. 마지막으로 닭을 튀겨 요리사 삼인방과 함께 먹다보니 12시가 되었다.
공간이 뒤틀리고, 눈앞이 달라진다.
새하얀 속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다. 주변은 온통 검다. 뭐야 저거? 미친년? 예쁘긴 한데, 예쁘게 미친 건가? 저런 속옷을 뭐라 하더라? 네글리제?
“어서 오세요. 저는 인간의 신이랍니다.”
“날 소환한 게 너냐?”
본능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다소 뜬금없는 그런 말이 튀어나온 이유는 별거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새김질했으니까. 날 소환한 년놈이 누굴까, 하고.
항상 생각하던 것을 마침 신이라는 놈이 나타났으니 한 번 질러본 거다. 그런데 그게 당첨이었다.
“그렇습니다. 조금은 제게도.......”
뇌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666번 우라늄 소드를 손에 든다. 달려가 자칭 신이라는 미친년의 심장을 찌른다.
“오냐, 이 새끼야. 너 오늘 잘 만났다!”
뒤져라! 개새끼!
핵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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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미친 주인공에 미친 무기. 그리고 미친 기술.
p.s 방사능 물질은 원래 방사성 물질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