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13화 (1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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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증인들은 남겨두고, 결계 안의 나머지 인원을 정리했다. 학살자 퀘스트가 뜨며 죽인 사람이 표시되었다. 94명이었다. 내가 죽인 놈이 죽인 놈까지 포함된 숫자였다.

오랜만에 물을 빼서 기분이 좋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치킨집으로 돌아가자, 안쪽에선 고소한 짜장 냄새가 풍긴다. 다른 냄새도 많이 나는데, 짬뽕 짜장밖에 모르겠다.

“나 왔다.”

“바로 내올까요?”

치킨녀가 주방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묻는다. 얼굴은 땀투성이다.

“당연하지.”

결계에 흩어진 놈들을 사냥하고 오느라 시간은 벌써 저녁때다. 빨리 먹고 싶다. 이렇게 길어질 일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호러 놀이랑 술래잡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호러 놀이는 숨죽이고 있는 놈 근처에서 맴돌다 한 번에 휙 덮치는 거고. 술래잡기는 전기톱 휘두르며 계속 쫓는 거다. 전기톱은 한 놈이 무기로 쓰고 있는 걸 뺏어 썼다.

치킨녀가 음식을 서빙한다. 냄새대로 짜장에 짬뽕에 탕수육까지. 그리고 다른 음식도 많이 나왔는데, 팔보채랑 유산슬 빼고는 뭔지 이름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나한테는 맛있으며 그만이다.

짜장과 짬뽕은 보통 중국집에서 파는 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못 느끼겠다. 대신 다른 건 놀랄 만큼 맛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부엌에서 한중이가 나온다.

“맛은 어떠십니까?”

볼이 빵빵 하도록 음식을 집어넣고, 엄지 하나를 치켜 올려 주었다. 아마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할 거다. 음식을 씹어 삼키고, 한중이에게 묻는다.

“음식 다 된 거야?”

“아뇨. 잠깐 음식 설명을 해드리러 나왔습니다.”

“설명? 그런 건 필요 없는데.”

“필요합니다. 무슨 재료가 어디에 쓰였는지 조금 집중하는 것만으로 음식 맛은 완전히 달라져요.”

“그래? 해봐.”

음식 맛이 달라진다는 말에 냉큼 받아들인다. 맛이 좋아진다는 데 뭔들 못할까. 용암에서 목욕한 다음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한다면, 용암을 파낼 거다.

“완자는 찜과 튀김으로 두 종류 준비했습니다. 새우 살을 베이스로 비계를 조금 섞었죠. 빨간 거 노란 거 순으로 드시면 됩니다.”

재빨리 상을 훑으니, 빨간 완자랑 노란 완자 둘 다 아직 남아 있다. 먼저 빨간 걸 입에 넣는다. 살짝 매우면서 짜고, 또 익숙한 맛이 입에 퍼진다. 그 사이로 탱탱한 새우 살이 씹힌다. 비계의 기름이 혀에 고소함을 더해준다. 새우의 맛과 매운맛이 기름기를 잡아줘 느끼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씹히는 게 있다. 바삭바삭 부서지며, 새우와 비계 사이에서 춤추는 무엇이 있다. 잘게 다져져 잘 모르겠지만, 익숙한 맛이 작게 입 안을 맴돈다.

“빨간 튀김의 튀김옷은 라면 스프와 매운맛 과자입니다. 태양 과자. 아시죠?”

“그래, 그거야!”

물결 모양의 그거! 그 과자 맛이다. 내가 좋아하자 한중이도 웃는다. 내가 완자를 삼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중이가 설명을 계속한다.

“노란색은 전분을 튀김옷으로 썼습니다. 거품 간장에 살짝 찍어 드시면 됩니다.”

“거품 간장?”

“거기 손도 안 댄 그겁니다.”

한중이가 간장 종지에 올라가 있는 검은 거품을 가리킨다. 뭔지 몰라서 손도 안 대고 있었는데, 이런 간장도 있나?

“분자요리라는 방법입니다. 제 스승님은 전통을 고집하셨지만, 전 이런 것도 좋아해서요.”

장난이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한중이가 웃는다.

“그러니까, 진짜 셰프 같은데.”

요리 설명도 그렇고, 스승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자격증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요리사 같다.

“소환 전에는 중식집 셰프였습니다. 말단이었지만요. 회귀 때문에 그것도 멀게 느껴지지만.......”

한중이의 표정이 흐려진다. 시간 강간범께서 한 건 하셨다. 유망한 셰프 지망생 하나를 짓밟았어. 회귀나 소환이나, 전부 제대로 된 게 아니다. 세계가 미쳐 돌았다.

한중이는 금방 표정을 바꾸고 설명을 계속한다.

“노란 완자부터 일단 드셔보시죠.”

노란 튀김옷 입은 완자를 씹는다. 식감이 장난이 아니다. 쫄깃한 튀김옷 안에 있는 새우가 씹히고, 거품 간장의 식감도 특이하다. 날치알을 먹는 것 같은데, 혀로 굴리면 날치알이 사르르 사라지고 간장이 남는다.

“마지막은 새우완자 찜입니다. 찜은 그냥 새우 살만 뭉쳤습니다. 새우 맛을 그대로 느낄 겁니다.”

그 말대로다. 씹는 순간 새우 향이 입을 가득 채운다. 내가 새우를 먹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진다. 여운처럼 남아 있던 매콤함과 쫀득함이 새우 맛에 밀려난다.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네, 달라.”

약간 멍하게 끄덕인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혼자 막 먹을 때랑 집중해서 맛을 느낄 때는 그 맛의 스펙트럼이 달랐다.

내 감각이 남들 수배에서 수십 배를 넘나든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충분히 다르고, 훨씬 맛있다.

“좋아, 계속해.”

“저건, 오향장육으로 다섯 가지 향신료를 쓴 간장을 쓰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여섯 가지로 해봤습니다.

“저건 녹두활어라는 녹두와 잉어로 만든 요리로.......”

“저건 천마루에서 가져온 제비집으로 만든 제비집 스프입니다. 사실 제비집 자체는 별맛이 없습니다. 건강식이고, 식감으로 먹는 거죠.”

“전복 간장 조림입니다. 중식 간장으로 맛을 냈죠.”

내가 기억하는 한, 살면서 가장 즐거운 식사였다.

***

소환되고 오 일째 아침. 가게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탐식귀가 있다. 호랑이도 한 입에 삼킬 정도로 크다. 탐식귀가 날 보고 운다. 소리 대신 마력이 뿜어진다. 마력을 타고 탐식귀의 의지가 전해진다.

식욕, 탐욕, 아주 날 먹겠다고 환장했다. 이게 어디서 냄새나는 입을 벌려? 냄새는 안 나지만.

거대한 탐식귀가 날 삼키려 한다. 아래 이빨을 손으로 잡고, 땅에 메쳤다. 이런 공격에도 요령이 있다. 초인 정도 되면, 전부 몸이 땅보다 단단해서 땅에 찍고, 갈아도 큰 피해가 없다. 반대로 땅이 아파한다.

이럴 때는 땅을 강화하면 된다. 그러면 유효타가 들어간다.

거대한 탐식귀가 터져버렸다. 진짜로 터졌다. 땅과 충돌한 이빨이 산산이 부서지고, 이빨을 감싸던 어둠은 흩어진다.

[탐식귀군(貪食鬼軍)을 죽였습니다.]

[100p 획득.]

조금 크더라니. 쫄이 아니라 장군이었다. 쫄은 다 어디 두고 장군이 혼자 왔데. 이놈은 고문관이구나.

호위도 없이 다니는 장군이라니. 아군 입장에서는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여차할 때 연락도 안 되고, 만약 습격당해 죽으면 어쩌자고.

트롤 장군도 잡았으니 사냥이나 가자. 포인트를 모아도 좋을 것도 없는데. 나는 대책 없이 모으고 있다. 이제 그냥 게임하는 기분이다. 스코어 갱신하는 느낌.

학살자 퀘스트도 있으니 몬스터를 많이 죽였을 때도 뭐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아직 보이진 않는다.

오늘은 사냥 목록에 인간을 추가해볼까? 수치가 보이니 100명은 채우고 싶어진다. 좋아, 중간에 나한테 시비 거는 놈이 있으면 죽이자.

.......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 날 보면 피하기 바빴다. 전에 냄비 들고 벌레 잡던 형씨는 멀리서 날 보자마자 도망갔다.

인사까지 했는데, 조금 상처받았다. 모두 날 무서워한다. 훌쩍훌쩍. 나처럼 차칸 사람이 어디 있다고. 밥도 잘 먹는 차칸 아이인데! 너무 먹어서 문제지!

하룻밤 사이에 날 보는 시선이 완전히 변했다. 원인은 하나밖에 없지. 여기 있는 총원이 600명이고, 그중 1/6에 달하는 인원이 속한 파벌이 하루 만에, 정확히는 수 시간 만에 증발했다.

증인을 잔뜩 남겼으니.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는 건 쉬웠을 거고.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네. 그래도 우리 얘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데? 어제도 화기애애하게 식사했다고. 난 먹기만 하고 대화는 거의 안 했지만.

요리사 삼인방도 눈치가 없지는 않으니 어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텐데, 그냥 무시하는 건가? 걔들이라면 그럴 것도 같다. 내가 불빛에 모여든 탐식귀 수백 마리를 주먹질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으니까.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난 맛있는 식사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대충 해질 때 즈음 돌아오니.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리사 삼인방도 사냥에 바쁜 모양이고. 저녁까지 시간도 조금 남았으니 사람이 없어도 이상한 건 아니다.

이렇게 되니 꼭 백수 같은데. 나 혼자 너무 태평하다. 그래도 어쩌라고. 난 평생 할 고생을 벌써 했어. 이 정돈 상관없잖아?

딱히 할 일도 없고, 다시 나가서 사냥하긴 귀찮다. 책이자 보자.

책장으로 걸어가 책을 뽑으려니. 책상 옆 탁자에 태블릿 피시가 있다. 옆에 충전기도 같이. 전기도 들어오니까. 이것도 충전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담아 패드 전원을 켠다. 불이 들어온다.

“오오!”

무심코 소리 낼 정도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갑자기 확 문명인이 된 기분이다. 그래, 문명인에게는 인터넷과 전자기기가 필요해.

야만인이 십여 년 만에 문명을 접하는 감격의 상봉이다.

패드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인터넷이 안 되면 어떠하랴. 패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안에는 게임도 몇 개 깔려 있다. 막상 패드 안에 게임이 없으면 조금 섭섭할 뻔했는데 다행이다.

게임 중에서 익숙한 리듬 게임이 보인다. 퍼펙트 클리어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기억이 있다.

어디, 오랜만에 몸이나 풀어볼까.

....... 라고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치는 곡마다 퍼펙트, 힘들지도 않다. 아무리 빠른 노트도 느리게 보이고, 어떤 복잡한 패턴도 눈에 잡힐 듯 훤하다.

내 인지 능력과 반사 신경은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해 있다. 어떤 곡이라고 그냥 보고 치면 퍼펙트다. 이러니 재미가 없다.

리듬 게임은 안 되겠다. 비슷한 이유로 신체 능력이 필요한 게임은 전부 후보에서 제외하자. 게임은 재능빨이라더니.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이야.

다행히 턴제 rpg나, 방 탈출 게임 등. 신체능력이 필요 없는 게임도 몇 개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고 있었더니 요리사 삼인방이 돌아왔다.

“아, 벌써 와계셨어요? 바로 식사준비 할게요.”

한 가방 빵빵하게 채워 온 치킨녀가 주방으로 들어간다. 다른 두 사람의 가방도 가득 물건이 들어 있다. 저게 다 내 배로 들어갈 거라 생각하니 뿌듯해진다.

그날 밤도, 그리고 다음 날도. 난 놈이 돌아오지 않았다.

***

튜토리얼 시작 7일째 날이 밝았다. 저녁이 되었다.

“오늘 12시가 지나면 끝이라 했지?”

“네, 오늘 밤 12시가 지나면 중간계로 소환돼요. 특수 보상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정산도 하고요.”

치킨녀가 내 질문에 답한다. 시간은 8시. 가을의 8시는 어둑하다. 탐식귀들도 나오고 있어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이 근처는 원래 사람이 적던가?

다른 길목은 인적이 드물진 않은데, 이 주변은 유난히 적은 느낌이다. 이것도 나 때문이려나.

탐식귀가 유령처럼 떠다니는 거리를 한동안 바라본다. 이렇게 보니 마치 폐허 같다. 핵전쟁 이후의 거리가 이런 모습일까. 탐식귀를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유령이라고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밤에 어디 나갈 거야?”

세 명 모두에게 묻는다. 세 명이 서로 눈치 보더니. 내 옆에 있는 치킨녀가 대답한다.

“아뇨.”

“웬만하면 나가지 마. 아티팩트 꼭 들고 있고.”

치킨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난 놈의 위치를 찾는다. 난 놈은 내 피를 먹었다. 복잡한 마법도 필요 없이. 그걸 매개로 하면 된다.

찾았다. 놈의 주변에 뭐가 많다. 몬스터로 느껴지는 것도 있다.

오늘 밤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입에 웃음이 걸린다.

============================ 작품 후기 ============================

아, 새우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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