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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네크로맨서라는 이름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아갈리에도 네크로맨시와 비슷한 마법은 있었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다고. 흑마법 백마법 구분해두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있을 건 다 있었다.
난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학파나 종파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마법을 익혔고, 또 할 줄 안다.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모르모트 시절의 인체개조가 해결해 주었다.
내 뇌는 한 번 본 것을 잊을 줄 모르고, 사고 속도는 남들의 수십 배나 된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기억력과 사고 속도는 지능과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 중 하나다.
되살리는 건 간단했다.
뇌를, 기억을 보존한 채 살려야 했으므로. 단순히 좀비나 구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요즘 다시 읽기 시작한 장르 소설의 표현을 빌리면 데스 나이트를 만드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것도 시간 지나서 뇌가 썩으면 못 살린다. 애초에 아무나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치킨녀가 되살아난 시체를 열띤 눈으로 보고 있어서 한마디 해준다. 그 눈은 꼭 그런 눈이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눈.
아갈리의 흑마법사들이 보여주던 눈이기도 했다. 흑마법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사자 소생이고. 그 목적만 가지고 흑마법사가 되었던 놈들도 왕왕 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시체 하나씩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더랬지. 시체를 인질로 잡으면 고분고분해지는 경우가 많아 상대하기 편했던 기억이 있다.
치킨녀가 시체에서 눈을 돌린다. 그 안에 있는 감정을, 나는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고.
“왜 나를 노리지?”
“유연화님께서,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전히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되살리는 과정에서 뇌가 조금 망가졌나. 발음이 어눌하다. 알아들을 수는 있으므로, 딱히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놈이 말한 내용이다.
“날 마음에 안 들어 해?”
“유연화님께서는, 자신... 보다. 눈에 띄는 자를, 원치... 않으신다.”
“.......”
너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와서 조금 어이가 없다. 내가 관심 받는 게 아니꼬와서 처리하겠다? 동생 생긴 4살짜리가 딱 할 법한 생각이다.
내가 눈에 좀 띄긴 하지. 사냥하려고 걷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의 이유가 되나?
“유연화인가? 그 년은 뭐하는 년이야?”
“마스터 혈 길드 길드 마스터의 애첩입니다.”
한중이가 대답한다. 마스터 혈이라? 한글화하면 피의 주인 정도 되나? 내가 다시 묻는다.
“그 길드 크냐?”
“한국 길드 중에선 세 손가락에 꼽혀요.”
“따지자면, 기득권이다?”
요리사 삼인방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기득권이면 정신 나간 생각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돈 있고, 권력 있으니. 다음에는 관심이라도 원하겠지. 아갈리에서 이런 경우는 자주 봤다.
그런데 이거.......
“황당하네.”
쯧쯧. 혀를 찬다. 세 사람이 궁금한 얼굴로 날 본다.
“아니, 지가 길드 마스터야? 그러면 이해하겠는데. 아니잖아?”
거대 집단의 수장이면, 하다 못 해 간부급 위치면 몰라, 얜 그냥 애첩이라며? 유연화라더니, 너무 유연해져서 뇌까지 유연해졌나? 뇌가 물렁물렁하니 사고가 제대로 안 돼?
“애첩이 왜 설쳐? 지가 길마야? 유연화, 이년이 혼자 일당백이야? 무쌍 찍고 그래?”
“그렇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요.”
보지도 않은 유연화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얘는 그냥 얼굴만 반반한 돌은 년일 거다. 전형적인 호가호위. 남편에게 빌붙어 사는 자존심 쎈 여자일 거라고, 정황이 가리킨다.
“너희들 몇 명이나 되냐?”
스토커에게 다시 묻는다.
“백 명, 조금... 넘습니다.”
옆에서 한중이가 침을 삼킨다. 치킨녀도 놀란 표정이다.
“왜 그래?”
치킨녀가 더듬더듬 입을 연다.
“명동 2구역...... 그러니까. 여기 소환된 사람의 총수는 600명이에요. 그러니까. 저쪽에만 여기의 1/6의 사람이 붙었다고요.”
600명이라.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던데. 건물에 숨어 있어서 그런가? 좁은 구역 치고는 제법 많다.
저쪽은 백 명이라... 너무 적다. 천 명의 마법사 부대도 날 막지 못하고, 십만의 보병 부대도 내 마법에 녹아내리는데, 백이 웬 말인가. 식후 운동은 되려나 모르겠다. 그러니까 식전 운동 삼자.
“니들 어디 살아?”
“삼한 모빌...”
“어디냐면.......”
“설명 안 해도 돼. 어딘지 아니까.”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려는 치킨녀를 말린다. 거기가 어딘지는 나도 안다. 이 격리 공간의 구석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다. 아파트 전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 반이 잘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주변에는 몬스터가 적어 잘 안 갔는데, 큰 집단 하나가 있다면 납득이 된다.
“먼저 들어가서 음식 해. 난 조금 있다 들어갈게.”
설명 안 해도, 셋 모두 내가 뭘 하려는지 아는 눈치다. 사회물 조금 먹었단 건가?
“그 목걸이 벗지 마라. 탱크에 맞아도 보호해주는 목걸이니까.”
착용자의 몸과 옷까지만 보호하고, 그 이상은 못 보호한다는 게 흠이다.
삼인방을 뒤로하고, 삼한 모빌을 향해 걷는다. 아, 말 안 했던 게 있다.
“오늘은 중식 좀 해봐. 짜장면 먹고 싶어!”
“알겠습니다!”
한중이의 대답에 힘이 난다. 역시,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야.
룰루랄라 콧노래가 삼한 모빌까지 이어진다. 모빌이 가까워지자, 날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은 점점 늘어난다. 내 콧노래는 그치지 않는다. 감시자들은 감시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본거지까지 들일 생각인가.’
끌어들일수록 저들은 지형적 이점을 얻는다. 대신, 지형을, 거점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저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 한 방에 많은 걸 걸고 있다는 말이 된다.
모퉁이를 도니 큰길이 나온다. 앞에 모빌이 보인다. 건물은 반만 있고, 반은 검은색에 삼켜서 보이지 않는다. 큰길 끝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나와 있다.
마중까지 나오고, 친절한 녀석들이다. 그 친절을 불우이웃 돕기에 썼다면 더 좋았겠는데.
여자 하나가 앞으로 나온다. 키도 크고, 몸매도 잘 빠졌다. 얼굴도 반반하다. 아갈리에서 미녀 탐방 실컷 하고 온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진짜 예쁜 거다. 쟤가 걘가? 유명화? 유명화?
뇌가 유연한 여자. 그래, 유연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건가요?”
유연화가 말한다. 찡그린 표정도 나쁘진 않네. 그 얼굴과 몸매를 감상하듯 바라본다. 시선을 느낀 유연화가 불쾌한 심정을 담아 말한다.
“뭐하는 거죠?”
“아니. 어떻게 따먹을까 해서.”
“무, 뭐, 뭐라고욧!?”
요 며칠 맛있는 요리 먹으면서 조금 얌전해졌는데, 난 원래 미친놈이다. 미친놈은 미친 짓을 하는 한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알 거 다 알고 왔으니. 용건만 빨리빨리 하자. 그리고 너는...... 전리품삼지 뭐. 아랫도리 적혀 둬. 내 껀 조금 크다? 자위라도 안 해두면 후회할 거야.”
나는 천박한 말투를 좋아하신 않는다. 그래도 쓸 때는, 그걸로 효과를 볼 수 있을 때다. 곱게 자라거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저게 사람 덩어린지 자존심뭉치인지 분간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효과 만점이다.
“저, 저 천한 것이!”
이것 봐라. 효과 만점이다. 털뭉치는 털이 뭉친 건다. 저건 살뭉치도 아니고, 단백질뭉치도 아니고, 자존심뭉치다. 자존심 뭉터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랄 맞게 꼬여 들여다봐도 모른다. 아마 자기들도 모를 거다.
자존심뭉치, 성격 지랄 맞은 사람들을 표현할 때 이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나는 시인의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예술가는 광자가 많다더니. 미치면 예술가가 되나 보다.
“저녁 준비하고 있거든? 빨리하자. 너는 빨리 아랫도리까고 자위 시작해. 난 허언은 안 한다? 안 적셔두면 진짜 힘들 걸?”
“저놈을 눕혀 잡아다 내 앞에 무릎 꿇리세요! 당장!”
내 좌우 건물 옥상에 숨어 있던 것들이 움직였다. 끝에 무게추가 달린 쇠사슬을 던져 팔다리를 감는다. 정확도가 제법이다. 고작이거? 라는 말을 하려는데 쇠사슬을 타고 전기가 흘러온다.
앞에선 주섬주섬 무언가를 뒤에서 꺼낸다.
쭉 늘어서 있던 건 폼 잡으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저걸 숨기기 위한 거였나. 무슨 공구처럼 생긴 물건을 하나씩 들고 나를 겨눈다. 그 모양이 꼭 총 같다.
“쏴라!”
두두두두! 총구에서 대못이 날아와 내 몸을 때린다. 전기가 지지고 대못이 때리지 꼭 종합 안마받는 것 같다. 편안한 게 눈 감으면 잠들겠다.
전기 통하는 사슬과 대못 발사기라. 저런 걸 할 수도 있구나, 신기하네. 공격에 대한 내 감상은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뭘 바래?
대못의 탄막이 멈추고, 앞쪽에서 뭘 던진다. 이상한 플라스크가 공중에서 폭발하고, 철조각이 튄다. 다른 병에선 염산으로 보이는 액체가 뿌려진다.
이어서 이상한 포대가 잔뜩 날아온다. 포대가 고운 입자가 사방에 퍼진다. 불꽃이 튀자 그것들이 폭발한다.
주변이 후끈 달아오른다. 마사지 다음에는 사우나다. 서비스 참 좋네. 누가 보면 날 죽이려던 게 아니라 대접하기 위해 부른 줄 알겠다.
“이 정도면 죽었겠지?”
“난다 긴다 해도 어차피 튜토리얼. 이 정도면 충분해.”
귀를 기울이니 반대쪽에서 이런 대화가 들린다. 그거 금기어야. 누가 안 가르쳐 주든? 불꽃이 사그라든다. 그 안에서 드러난 내 모습을 보고 저놈들이 놀란다.
유연화가 재빨리 분위기를 수습한다.
“버티는 것도 예정에 있던 일이에요! 빨리 다음 공격을!”
유연화의 말에 다른 자들이 분주하게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유연화의 모습을 보고 나는 작게 감탄한다. 그래도 눈치가 좀 있다.
유연화 좌우에 있던 남자 둘이 물약을 마신다. 남자들의 몸에서 마력의 기류가 올라간다. 저 정도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일당백까지는 안 돼도 일당오십은 하겠다.
일당오십의 전사 둘이 무기를 든다. 무기에 희미하게 마력이 덮인다. 일당오십은 거뜬히 견딜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저놈들에겐 저 상태가 정상이고 지금이 이상한 거던가?
회귀했으면 미래에는 더 강했을 거 아냐. 능히 백을 감당할 힘을 가졌다가 잃은 건가. 그 심정이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슬을 타고 흐르는 전기가 강해진다. 앞에선 도핑한 두 놈이 달려온다.
“두 번 당해줬으면 됐지. 너무 욕심 많은 거 아니냐?”
나도 공격 좀 하자.
왼손으로 오른팔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잡는다. 내 팔이 안 다치게 넉넉하게 잡고, 그걸 당긴다.
묵직한 게 월척이다. 다섯 놈이 쇠사슬에 매달려 하늘로 떠오른다. 쇠사슬 끝에는 커다란 기계도 달려 있다. 저게 전기를 통하게 한 건가?
쇠사슬을 그대로 정면으로 휘두른다. 달려오던 두 놈이 옆으로 몸을 날리고, 앞쪽에 있던 놈들이 혼비백산해 달아난다.
콰앙! 사슬을 잡고 있던 다섯과 휘말린 둘을 더해 일곱이 피떡이 되고, 기계가 완전히 망가진다. 왼팔을 감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 똑같이 당긴다. 이번에는 헛손짓이다. 내가 당기기 전에 모두 손을 놓아버렸다. 기계만이 땅에 부딪혀 부서진다.
나는 팔을 감고 있는 사슬을 풀어 땅에 내려놓는다. 안마부터 사우나까지 풀코스로 받았더니. 상태가 양호하다.
사슬을 피했던 도핑자 두 명이 다시 달려온다. 아따, 열심히도 달린다. 조금 느긋이 와도 되는데 말이야.
‘달리나, 걸으나. 내 눈에는 전부 똑같이 보여서.......’
턱, 손으로 창과 검을 잡는다. 이번에도 엄지랑 검지만 쓴다.
‘의미가 없으니까.’
손가락에 힘을 주니 무기가 부러진다. 아직 여유 부리는 유연화에게 말한다.
“눈에 띈다고 사람도 죽이고, 재미있지? 사는 게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지?”
그런데 좀 더 재미있는 게 있어. 그걸 가르쳐줄게.
============================ 작품 후기 ============================
만렙이 초보자 사냥터에서.a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