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8화 (8/128)

0008 / 0128 ----------------------------------------------

귀환자.

상점, 가게들은 거의가 털려있다. 일주일치라고 했지만, 많아서 나쁠 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편의점과 식당, 카페. 성한 곳이 없다. 방범 장치는 모두 힘으로 뜯어낸 모습이다.

와플 아저씨의 와플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이 뜯겨 나가고, 어질러진 가게 안쪽을 보며 아저씨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소심한 얼굴 위로도 드러나는 표정이다.

내가 먼저 들어가 안쪽을 살핀다. 딱히 위험은 없다. 와플 아저씨는 주섬주섬 와플 기계를 챙기고, 재료를 챙긴다. 설비나 재료는 무사하다. 하긴, 이 시국에 전기 연결해 와플 굽고 있을 사람은 없겠지.

“다 됐어요.”

“다음, 중국집.”

천마루라는 이름의 중국집은 꽤 컸다.

“이 근방에선 꽤 유명한 집입니다. 제대로 된 중화요리점이거든요.”

한중이가 말한다. 한식과 중식 한 줄 안다니. 두 개 합쳐서 한중이다. 꽤 부를만한 이름이네. 한중이는 부엌에 가더니 중식 재료들과, 중화 냄비와 국자를 하나씩 챙겨 나왔다.

국자로 냄비 밑바닥을 캉캉 치며 말한다.

“중식은 이 두 개랑 중식칼 하나면 끝입니다.”

단출해서 좋겠다, 그래.

중식집을 나와, 적당한 식당 하나를 추가로 턴 다음에 다시 치킨집으로 돌아온다. 딱 저녁 시간이다. 한 것도 없는데 시간 참 빨리 간다.

“가져온 게 있으면 써봐야지?”

삼인방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자신들의 역할이 완전히 익숙해진 모습이다. 나에겐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기다리자 한 상 제대로 차려진다. 나물에 된장찌개, 제육볶음, 고등어구이까지. 제대로 된 한식이다. 냄새가 가득 차 내 코를 간질인다.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미치겠네, 이거. 주방에선 아직 더 하는 모양인데. 못 참겠다.

“그냥 먹는다? 더 나올 거 없지?”

“드셔도 됩니다.”

난 의외로 이런 예의는 철저히 따지는 사람이다. 내 기분이 괜찮을 때 한정이지만.

밥 한술에 찌개 한술. 밥과 찌개가 섞이며 입에서 씹히고 혀 위를 춤춘다. 거기에 막 무친 나물 한 젓가락. 자격증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전부 맛있다.

몇 숟갈 떠먹었는데 벌써 한 공기가 비었다. ‘한 그릇 더’를 외치려다가, 내 옆에 있는 밥솥을 깨닫는다. 이럴 줄 알고 미리 갖다 놓은 것 같다. 이거 점점 조련되는 기분인데... 아무렴 어때, 난 맛있는 거만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아직 먹을 건 많이 남았다. 부엌에서도 계속 요리되고 있다.

이거 오늘 밤도 그냥은 못 자겠다. 재료 떨어지면 또 한 바퀴 돌면 되지.

두 그릇째를 비우고, 세 그릇째를 푸려는 순간이었다. 가게 문이 거칠게 열린다. 잡종 세 마리가 들어온다. 피 묻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놈들이다. 옷이야 사방에 널렸으니. 저건 일부로다.

훈장이랍시고 저런 옷을 입고 다니다니. 수준 딱 나온다.

“이거 아주 진수성찬을 차렸는데.”

“느긋하게 밥이나 해먹다니. 병신들이야.”

“왜들 그래, 우리한테는 좋잖아?”

잡종들이 제들끼리 낄낄거린다. 갑자기 기분 팍 나빠진다. 저놈들 내 얼굴 모르나? 처음 상당히 화려하게 했는데? 표지판으로 한 놈 배때지를 뚫었다고!

잡종 하나가 걸어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나가봐. 음식은 놔두고. 여긴 우리가 잘 정리해줄 테니까.”

다른 두 놈은 아예 식탁에 앉아 밥그릇 들고 솥을 연다. 요리사 삼인방이 먹으려고 놔둔 그릇이다.

“허허.”

헛웃음이 다 나온다. 내 앞에 있는 새끼의 면상을 틀어쥔다. 놈이 어어 하며 당황하지만, 놓아주지 않는다.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온다. 남은 두 마리가 황급히 따라 나온다.

밖은 아직 해가 지고 있다. 탐식귀들이 설설 기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좋았어. 이놈들의 형을 정했다.

내 키는 큰 편이다. 평균이었는데, 모르모트로 다양한 실험을 당하며 조금 자랐다. 얼굴을 쥐고 손을 들면, 상대는 어지간하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지금 잡힌 놈도 공중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이, 인혁이를 내려놔!”

“인혁이?”

도통 모르겠다는 듯 대답한다. 상대는 더욱 열불을 낸다. 그리곤 공격해 들어온다.

“찔러!”

언제 내 뒤로 돌아온 다른 한 놈과 앞뒤로 합공이다.

빙글, 들고 있던 놈을 뒤로 돌려 고기 방패로 세우고, 앞에서 공격하는 놈의 얼굴을 잡는다. 놈은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얼굴을 잡혔다.

푸욱. 아주 찰진 소리가 들렸다. 뒤를 보자 칼이 방패를 통과해 내 앞까지 와 있다. 사람을 관통하기는 의외로 힘든데, 아주 있는 힘껏 찔렀구나.

“이야, 친구에게 원한이 많았나봐?”

“힉?!”

찌른 놈이 놀라 칼을 놓치고 엉덩방아 찧는다. 저건 놀람보다는 무서워한다는 얼굴인데? 자기 친구를 찔러서 그런 것치고는 조금 반응이 이상하다. 조금 떠볼까?

“뭐, 치명적인 자리는 아니니까. 죽진 않을 거야. 근데 더럽게 아픈 자리네. 너, 정말 지독하다?”

찌른 놈이 몸을 부들부들 떤다. 창백해진 얼굴이 파랗다 못해 검어질 지경이다. 정색해 뇌졸중으로 죽는 거 아냐? 그 정도로 창백하다.

그 반응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찔린 놈은 찌른 놈의 공포의 대상, 트라우마의 대상이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한 걸 보면, 평소부터 어지간히 괴롭혔을 테고.

이것들 재미있네?

그런 이놈은 뭐지? 찔리지도, 찌르지도 않은 놈을 본다. 면상을 잡혀 발버둥 치지만, 헛짓이다. 내 손아귀 힘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또 검으로 찌른다고 피가 날 정도로 피부가 무르지도 않고.

“어디 계세요?”

가게에서 치킨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다 말고 나왔다. 이렇게 중요한 걸 잊어먹다니. 나도 참 바보 같긴.

내 식사를 방해한 간 큰 세 놈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밖에는 왜 나가셨어요?”

“누가 시비를 걸더라고. 나가보면 재미있을 거야.”

치킨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바깥에 나갔다가, 창백해져서 돌아왔다.

“재미있지?”

웃으며 묻는다. 치킨녀는 대답 않고 바로 주방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창백해질 광경은 아닐 건데? 밖을 보니, 탐식귀가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아, 저러면 창백해질 만하다.

밖은 신경 끄고, 식사를 시작한다. 찌개랑 국 종류가 조금 식었다. 국물은 따끈따끈할 때부터 퍼먹기 시작해, 식어가는 걸 계속 먹어야 제맛인데. 살짝 화나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삼인방에게 다시 데워달라 하기도 미안하다. 그냥 내가 데우자. 손을 뜨겁게 해. 국그릇과 찌개 그릇을 감싸니 금방 모락모락 김이 난다.

식사를 다시 시작한다. 새벽까지 한식 축제를 벌였다.

***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이다. 요리사 삼인방은 구석에서 고이자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밤을 새지는 않았다. 한식이 포만감이 좋은 건지. 어떤지. 어제보다 빨리 만족해 새벽 무렵에는 식사가 끝났다.

가게 구석에는 난 놈도 있다. 저놈은 밤늦게 들어와 밥 먹고 바로 자더라. 재수 없어 날려줄까도 생각했는데, 그만뒀다. 저만한 설명충을 구하기도 힘들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걸 명쾌히 해결해줄 놈이 없다.

“뭔가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잠시 앉아 고민한다. 그래도 생각나지 않는다. 바람이나 쐴 겸 바깥으로 나오니 탐식귀가 우글거린다. 너무 많아 숫자가 몇인지도 모르겠다. 한식에 취해 어제는 정리하지 않았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몰리는구나.

포인트도 벌 겸, 주먹질 몇 번으로 모두 정리한다. 그러자 탐식귀 사이에서 투두둑, 덩어리 세 개가 떨어진다.

“아.”

뭘 까먹고 있었는지 기억났다. 내 식사를 방해한 잡종 세 마리.

잡종들은 온몸이 너덜너덜해 걸레짝이다. 그래도 치명적인 상처는 하나도 없고, 살이 파이고 뼈가 갉아 먹힌 것 정도다. 어제 특별히 선물해준 생명유지 마법이 제 기능을 한 모양이다.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내, 놈들에게 먹인다. 완전히 회복시킬 생각은 없다. 간신히 몸 가눌 정도만.

내 피는 효과가 너무 좋아서 이런 조절은 못 한다. 먹으면 시체 빼고 완전 회복이다. 격만 따지면 아갈리에 있던 만능약(아마, 익숙한 용어를 빌리면 엘릭서 정도?)보다 높다.

탐식귀의 한 끼 식사가 되었던 놈들이 정신을 차린다. 안색이 안 좋다. 이빨만 둥둥 떠다니는 괴물들에게 하룻밤 시달리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구나.

세 놈이 정신 차리길 기다렸다가, 어제 찔렀던 놈에게 방금 만든 아티팩트 하나를 쥐여준다. 약한 파이어볼 기능이 달린 단검이다.

찌른 놈은 자기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그런 놈에게 내가 말한다.

“끝을 겨누고, 파이어라고 외치면 불꽃이 나가. 하루 5번 쓸 수 있지. 선물이니까, 가져가.”

그 말만 해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유리 너머로 바라보니. 찌른 놈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유리에는 환각을 걸어 저쪽에선 내가 안 보이도록 해놨다.

찌른 놈은 제 손이 들린 단검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허공으로 들고 입술을 연다. 하늘로 파이어볼 한 발이 날아간다.

진짜 파이어볼과 비교하면 약하지만, 어디 불붙이기에는 차고 넘치는 화력이다. 사람 몸에 불붙이기도 충분하다.

찌른 놈은 하늘을 보고, 단검을 보고, 다시 하늘을 본다. 다음에는 아직 비몽사몽 하는 찔린 놈을 본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썹이 떨린다. 알기 쉬운 고뇌하는 표정이다.

찌른 놈이 주변을 살핀다. 산만한 동작이 정신없어 보인다. 찌른 놈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단검을 겨눈다. 그리고 세 마디 단어를 읊조린다.

파이어.

불덩어리가 날아가, 찔린 놈을 덮쳤다. 찔린 놈이 타는 놈이 된다. 불에 타는 놈. 사람 머리에 타고, 사람 등에 타던 놈이 이번에는 불에 탄다. 탔기 때문에 탄다. 타 죽는다.

찌른 놈에서 태운 놈이 된 남자는 타는 놈의 비명을 가만히 듣는다. 그 표정은, 웃는다. 장절하게도 웃는다.

남은 한 놈은 그걸 보고는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다. 주저앉아 있다. 필사적인 얼굴로 무어라무어라 말하고 있다. 태운 놈이 그놈을 본다. 한 발 앞으로 뗐다가, 다시 뒤로 뺀다. 고민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남은 하나는 방관자였던 모양이다. 방관자는 미울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힘을 얻은 지금은 뭘 택할까.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의 입장에서 피해자는 무엇을 볼까.

“오.”

선택을 한 것 같다. 태운 놈이 움직인다. 다른 놈을 부축하고, 가게에서 멀어진다.

“쳇, 해피엔딩인가.”

실망하고 돌아서려 할 때다. 내 뒤에서, 길 저쪽에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아티팩트가 발동한다. 비명이 울린다. 부축 당하던 놈이 단검을 들고 있고, 태운 놈이 타고 있다. 태운 놈은 불에 타면서 소리친다.

왜!

왜!

방관자에서 태운 놈이 된 남자는 말없이, 비틀거리는 몸으로 최대한 빠르게 사라진다. 단검을 품에 꼭 쥐고 있다, 소중하게.

길에는 불탄 시체 두 개가 남는다.

내가 만든 단검은 완전히 의외의 사람에게 들려 사라졌다. 주려고 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을 보게 해줬으니. 선물로는 아깝지 않게 되었다.

유리문에 걸린 마법을 풀고, 가게를 나와 결계를 설치한다. 난 놈의 부탁이 있고, 요리사 삼인방도 딱히 도망갈 것처럼은 안 보이니. 안에서 밖으로는 나갈 수 있게 해둔다.

사냥이나 가자.

바친 제물 두 개가 효험이 좋았는지. 날이 아주 맑다.

뭘 태우든 재는 금방 날아가 푸른 하늘에 섞일 것이다. 하늘에 섞여 푸른 자유 누리라. 조금 부럽네.

============================ 작품 후기 ============================

제목을 바꾸니 조회수가 5배 늘었습니다.... 역시 제목이 반 이상이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