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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상태창, 그게 뭐더라. 익숙한 명칭인데 뜻이 잘 안 떠오른다. 간단히 말하면 상태를 말하는 창이라는 뜻이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지.
“야, 상태창이라는 말. 어디서 쓰는 거더라?”
잔뜩 굳은 남자에게 묻는다.
“게임, 게임에서 씁니다!”
아, 그랬지. 게임에서 캐릭터 상태창이라는 게 있었다. 체력 나오고, 마력 나오고, 레벨업하면 스텟 올리는 그거.
“어떻게.......”
어떻게 여는지 물으려는 찰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오른다.
[이름 : 진휘]
[진명 : ^$#^#ɣɗɓœɱɰʇ°!%##:L:ad]
[히a : [email protected]$£¥ ㅁㅣㄴ처ㅂ : Å↑〓 마ㄹur : ≪⤻∉㈸ ㅈㅓㅇ시s 력 : $%^$^]
상태창이 미쳤다. 뭐야 이게? 내 상태가 차마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이라는 건가? 아니면 나 때문에 메시지가 망가진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애초에 난 소환될 예정에도 없던 존재인 것 같고 말이야.
대충 봐서 무엇을 말하려던 건지는 알겠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잡다한 거 없이 단출한 상태창이다. 진명은 뭔지 모르겠다. 그러니 알만한 놈에게 묻자.
“진명이란 게 뭐야?”
“진명이 나타내는 건 여러 가지입니다!”
남자가 힘차게 대답한다. 꼭 군대에서 군기 주는 것 같다. 많이 당하고 많이 쪼았었지.
“그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기도하고, 재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진명에 따라 특별한 능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좋아. 잘 들었으니까. 꺼져.”
“옙!”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내가 쫓아올까 걱정되는지 죽어라 달려갔다. 상태창에 대해 생각해볼까 하지만, 그만둔다. 나와 있는 게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다.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 몬스터 사냥. 포인트 모으기.
통통 벌레를 잡으며 생각한다. 이놈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무튼 여기는 모르는 일 투성이다.
길거리의 벌레보다, 구석진 곳의 탐식귀를 잡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벌레는 듬듬히 있지만, 탐식귀는 일단 발견하면 수십 마리가 몰려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난이도 조절인 걸까? 초보는 벌레를 잡고, 중수와 고수는 탐식귀를 몰이사냥하라는 거.
몰이사냥이라고 하면 어젯밤에 봤던 그 여자도 하고 있었지. 혼자서 이백 마리가량을 잡으려 했으니. 보통 여자는 아닐 거다. 자세도 그럴듯했고.
탐식귀를 찾아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어쩐지 사람이 몰려 있는 장소를 찾았다. 골목길이다. 음산한, 탐식귀가 많아 보이는 골목길.
툭툭. 뒤쪽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뭐,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이렇게 몰려 있어?”
“이 앞에 특수보상이 있는데, 그거 때문이죠.”
“보상?”
되물었지만, 그것만으로 의리는 다했다는 듯 남자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그거면 충분하기도 했다.
특수보상이라. 구미가 당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 같으니 한 번 기다려보자.
기다리며 앞쪽을 살핀다. 몇 명, 게임으로 표현하면 파티라 해야 하나? 튜토리얼도 그렇고 상태창도 그렇고, 이 미친 세계는 게임이 모티브 같으니 그렇게 하자.
앞쪽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파티 단위로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하는 중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1분에서, 길면 5분 정도.
시간은 다르지만, 나오는 모습은 비슷비슷했다. 만신창이가 되거나, 울적한 표정이거나. 성공한 걸로는 안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기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난이도가 꽤 높은 것 같다.
“나랑은 상관없나.”
어렵다 해도 튜토리얼이다. 그래 봤자지.
기다리고 있자니 줄이 줄었다. 나까지 몇 팀 남기지 않았을 때, 앞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제길, 앞으로 조금이었다고!”
방금 나왔던 파티의 남자가 난동을 부리며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내 앞에 있던 대기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막아!”
대기자들이 막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가세한다. 남자의 목이 떨어져 구른다. 소동은 짧게 끝났다. 다시 줄을 서고, 파티가 골목길로 들어간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이다.
사람이 죽고, 시체가 나뒹구는데 다들 자기 일에 열심이다. 죽은 남자의 파티원 둘이 남자의 시체를 수거해간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것도 무관심이다. 엄청난 광경이군. 명동 길거리가 배경이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여긴 튜토리얼이지만, 저들의 몸과 마음은 이세계로 가 있다.
회귀, 난 놈은 시간여행에 비유했는데, 내 눈에는 그것보다 훨씬 지독한 무언가로 보인다. 추잡한 표현을 써보자면.
시간 강간. 인성 강간. 인간 강간.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저들은 저렇게 됐고, 한순간에 쌓아온 인간성이 잃거나 변했으며, 인간으로서의 저들 또한 변해버렸다.
흥미롭다.
역시, 재미있다.
내 차례가 왔다. 안쪽을 보는 건 처음이다. 좁은 골목이라 뒤쪽에서는 안이 안 보였거든.
“혼자?”
“혼자.”
구경꾼들의 물음에 간단히 답한다. 그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날 본다. 혼자 들어가는 사람이 적긴 하더라.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중간쯤 들어오니 주변 광경이 뒤틀린다.
‘공간이동이군.’
저항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몸을 맡긴다. 공간이동 후에도 풍경은 골목이다. 단,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한 명 간신히 들어갈 만큼 폭이 좁았는데, 세 명이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좁은 건 여전하다. 골목 안쪽에 탐식귀랑 통통 벌레가 가득하거든. 조금 과장해 발 디딜 틈도 없다.
골목길 안쪽에는 보란 듯이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몬스터를 뚫고 저기까지 가면 되는데, 일반인은 꽉 찬 몬스터를 뚫을 수단이 마땅찮을 거다. 아무리 이질적인 정신을 하고 있더라도, 저들의 몸은 어제까지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난 아니지.”
저런 수준의 몬스터라면, 문자 그대로 무한하게 몰려와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발을 뒤로 당기고, 어깨고 당기고, 주먹도 당기고. 살짝 힘줘서.
주먹 한 방.
-파아앙!
폭풍 같은 바람이 불어친다. 골목에 있던 몬스터들이 모조리 안쪽으로 날려간다. 모두 풍압에 짓눌려 죽는다.
정리 끝.
참 쉽죠?
골목길 끝에 있는 상자에 다가간다. 그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으엑.”
탐식귀는 죽으면 사라지지만, 통통 벌레는 죽으면 시체가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까 이 상자에도 통통 벌레의 체액과 장기가 가득 묻어 있다. 폼 한 번 잡으려다 괜한 짓을 해버린 기분이다.
엄지와 검지로 체액이 묻지 않게 조심하며 상자를 연다. 안에는 구슬 하나가 들어 있다.
[명동 골목길 던전을 공략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p가 주어집니다.]
[랜덤 기능 구슬을 획득 했습니다.]
구슬을 주워드니 다시 공간을 이동해 골목 입구로 돌아온다. 내가 구슬을 들고 있는 걸 보고, 주위에서 술렁댄다. 감탄과 경악, 시기와 질시, 부러움. 귀찮아질 여지가 있으므로, 바람처럼 움직여 여길 벗어나자.
***
바람처럼 움직여 인파에서 멀어난 나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구슬을 꺼냈다. 백색 투명한 구슬을 손가락 사이로 굴린다. 랜덤 기능 구슬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
[랜덤 기능 구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됐다. 구슬을 사용하자. 구슬이 마력으로 화해 사라진다. 마력의 흐름이 내 몸을 감는다.
마력. 마나, 에테르, 또는 기(氣)라고도 부르는 것. 세상의 근원인 그것은 아갈리에서도 있었고, 명동에도 있었다. 사실, 처음 명동 거리를 보고 조금 안심했었다. 이쪽으로 오면서 마법을 잃으면 어쩔까 했거든.
대기에 마력이 없어도 내 체내의 마력으로 어떻게든 되지만, 그래도 있는 게 좋은 건 틀림없다.
내 몸을 감은 마력은 이어서 몸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그걸 거부했다. 아무거나 먹으면 배탈 난다고. 이런 건 받아먹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은 납득했는지 몰라도, 나는 아직 믿고 있지 않다. 이 세계를, 이 차원을,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여기 사람을.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다. 이런 세계를 덮어두고 믿으라니. 나에게는 무리다.
나는 쉽게 물들지 않는다. 의심을 심장에, 암귀를 머리에. 내가 곧 의심암귀일지어다.
그러니, 거부한다. 나는 불안정하지만, 나로서 완성된다. 나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나며, 외부에서 나를 재어 자르고, 판가름에 끊는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거면 된다. 어차피 인간은 호접몽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나로 완성된다.
내 몸을 감싼 마력이 주변을 떠돌다 사라진다.
[랜덤 기능 구슬로 하브헤메릉@#▷◑$Ⅵ㎫‰%@∞¶☞]
그리고 또 메시지가 미쳐버렸다. 얘 너무 자주 미친다. 약 챙겨 줘야 할 것 같아. 시스템아 아프지 마. 아니, 아파도 돼. 날 소환한 게 누군지 모르니 너나 잔뜩 엿 먹어라. 아프기 싫으면 날 소환한 사람을 찾아와.
상태창은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는데, 이건 확실한 내 책임이다. 내 존재와 행동은 이세계의 법칙에 무언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영향인지. 나쁜 영향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포인트도 충분히 모았고, 던전이라는 것도 하나 클리어했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그러니까 돌아가자.
치킨집으로 돌아오니, 난 놈이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기보다는 나갈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내가 결계를 통과해 들어가자 난 놈이 화들짝 놀란다.
이 결계, 안에서 밖이 안 보이거든. 안 그러면 감금 효과가 없잖아?
“나가게?”
내 질문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난 놈이 눈에 띄게 긴장한다. 그렇게 긴장할 건 없는데. 난 그냥 가볍게 물었어.
“아니, 내가 무슨 사람 잡아먹는 괴물도 아니고. 그냥 묻는 거야. 나가게?”
“네, 네네. 저도 사냥이 하고 싶습니다.”
“왜?”
“생명을 죽이면 그 영혼 일부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텟이 오릅니다.”
“올ㅋ.”
뭐야 그거. 쩔어. 죽이면 쌔 지다니. 그럼 난 신도 됐겠는데. 아갈리에 그런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 갑자기 아쉬워진다.
“다녀와.”
결계를 풀자 안과 밖이 연결된다. 난 놈은 빠르게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미 하루가 지났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난 놈은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진 게 된다.
치킨집으로 들어가자, 요리사 삼인방이 곤히 자고 있다. 요리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상한 건 아니다. 반면, 난 놈은 어제 새벽에 잠들었지. 이걸 노렸나?
책장에서 책을 빼든다. 장르 소설을 읽으며 시간이나 보내자.
속독으로 시리즈 하나를 독파할 무렵, 삼인방이 부스스 눈을 뜬다. 밖은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슬슬 깰 때도 됐다.
“배고파. 밥 줘.”
눈꼽도 때지 않은 삼인방에게 말한다. 이러니 꼭 아이 같군.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 아이들은 밥 먹기 싫어하니. 보챌 정도면 중딩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린 삼인방이 난감하게 시선을 교환한다. 치킨녀가 대표로 말했다.
“재료가 없어요.”
“아.”
다 먹었지. 먹을 수 있는 건 어제 싹싹 긁어 다 먹었다. 남은 재료가 없다. 쩝. 어떡한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세 쌍의 시선이 따라온다.
“가자. 밥 구하러.”
어떡하긴. 구해야지.
요리사 삼인방과 함께 가게를 나온다. 결계를 다시 사용하자, 가게가 사라지고 공터의 풍경이 보인다. 환각을 보고 삼인방이 신기해한다.
중년 남자가 소심하게 손을 든다.
“저기.......”
“왜?”
“이 근처에 제 와플집이 있는데, 거기 가보고 싶어서요.”
“와플?”
“와플 가게 합니다. 처음 소개도 그렇게 했어요.”
그랬나? 기억 안 난다. 치킨 기능공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하나는 뭘 한다고 했더라?
빤히 바라보자. 남자가 내 시선에 담긴 뜻을 읽는다.
“한식, 중식 자격증 있습니다. 도구랑 재료만 있으면 바로 만들 수 있어요.”
“좋아. 와플집 갔다가, 중국집 갔다가, 정식집은 있으려나?”
이렇게 한 바퀴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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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주제가 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회귀? 귀환? 먹방인 것 같기도 하고. 갑질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