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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요리사 삼인방은 밤새 치킨을 튀기고 피자를 만들었다. 도중부터 지친 치킨녀가 쉬고, 다른 두 사람이 배워서 튀기기도 했다.
밤새 주방의 재료를 싹싹 비우니 드디어 쉴 수 있게 된 요리사 삼인방은 홀 구석에 잠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변이 더럽다. 먹기만 하고 정리를 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중간중간 치워주던 삼인방도 새벽부터는 치워주지 않았다. 피곤해서 치울 여유가 없었을 거다. 나는 이런 일로 화낼 정도로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치킨집을 나온다. 듣자 하니 밤에는 탐식귀가 주로 나오는 모양이지만, 이틀째인 오늘부터는 낮에도 여러 몬스터가 돌아다닌다 한다. 그래서 사냥을 해볼 생각이다.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꽤 다양해서 포인트를 벌어두면 유용할 것 같았다.
치킨집을 나온다. 흠. 사냥을 나가기 전에 해둬야 할 게 있었지. 어제는 깜빡했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는 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 않는 똑똑한 아이다. 진짜 똑똑한 아이면 실수 자체를 안 하려나?
아공간에서 촛대 하나를 꺼낸다. 이건 결계 아티팩트다. 침입을 막고, 사람을 물리는 효과가 있다.
촛대를 바닥에 두니 가게를 포함한 상가를 감싸는 결계가 만들어진다. 바깥에서 들어갈 수 없음은 물론, 안에서 나올 수도 없다. 도주 방지다.
“가볼까.”
밖은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가게를 나와 다섯 발 정도 걸었을 때였나. 땅에서 뭔가 튀어 올라 내 머리를 노린다. 반사적으로 낚아채 땅에 내동댕이치니 퍽! 하고 피떡이 된다. 피가 초록색이다.
‘애벌레?’
사람 얼굴만 한 애벌레였다. 메시지가 그걸 증명한다.
[통통 벌레를 잡았습니다.]
[10p 획득.]
통통 튀어오르니 통통 벌레. 대충 그런 건가? 직관적이라 알기 쉽다. 땅을 보니 보호색으로 몸을 숨긴 통통 벌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렇게 찾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뛰어오르는 속도는 제법 빨랐으니. 일반인은 조심하지 않으면 당할 것이다. 튜토리얼의 난이도가 어떤지 대충 알겠다. 조심하면 살고, 방심하면 죽는. 그 정도의 레벨.
나는 방심하다 못해 일주일 내내 퍼질러 자도 안 다치겠다.
길을 걷고 있으니. 통통 벌레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보통은 원거리에서 공격해 상처를 입힌 후 다가가 죽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꼭두새벽부터 노동이라니.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특이한 사람도 있다. 중국 냄비 하나를 들고, 통통 벌레가 뛰는 방향으로 갖다 댄다. 그리고 냄비에 머리박고 기절한 벌레를 여유롭게 처리한다.
냄비를 들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어색한 침묵이 오간다.
“야호!”
손을 흔들어주자, 저쪽에서도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흥흥흥.”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계속 거리를 거닌다. 벌레 말고 딱히 눈에 띄는 몬스터는 없다. 탐식귀가 가끔 그늘에 숨어 있거나 했다. 밤에는 불빛보고 달려드는 놈들이 태양은 싫어하나?
벌레를 포함해 눈에 띄는 것들을 전부 처리한다. 손가락으로 공기탄을 날렸다.
걷다 보니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서로 마주 보고 숨을 쌕쌕대고 있다. 서로 다쳐 피를 흘린다. 피는 주변에 낭자해 있다.
흥미가 인다.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나도 참 좋아한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는다.
두 남녀의 설전이 한창이다.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 지치지도 않아?”
“지랄도 작작해라. 내가 너 같으면 포기하겠냐? 너, 엠창 새끼 죽일 때까지. 지옥이라도 쫓아간다.”
의외로 쫓는 쪽은 여자인 것 같다. 이럴 땐 보통 남자가 여잘 쫓던데. 이유야 뭐. 따지자면 수백 가지는 나온다.
“하. 그건 사고였다고!”
“강간한 게 사고? 사고라면 사고겠지. 네 사고(思考)가 사고(事故)나서 생긴 사고. 아니면 뇌를 사고팔고 했어? 사고(思考) 나서 뇌 대신 우동사리 채웠냐? 차사고로 뇌 팔고 우동 사 넣으셨어요? 사고팔고 지랄도 풍년이다. 우리 개소리도 정도껏 하자.”
“와우.”
작게 감탄한다. 여자의 입담이 걸쭉하다. 저 라임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디 논술 학원 다니는지 말해주면 꼭 가고 싶다.
“씨발. 몸이나 팔면서 살려달라고 빌던 년이!”
여자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할 말이 궁해진 남자가 마주 여자를 공격했고. 여자도 똑같이 화났다. 속된 말로 빡쳤다.
“개새끼가!”
사실을 말하면 사람은 대답이 궁해지고. 사실로 몰아붙이면 화를 내고 욕을 한다. 내 사회경험 같지 않은 사회경험으로 알아낸 사실 중 하나다.
도발에는 이게 진짜 제격인데, 나는 진언이라고 부른다. 진언, 이름도 꽤 있어 보인다.
“뚜껑을 따서 우동사리를 꺼내주마! 숙성은 잘 시켰냐!”
“와우.”
감탄만 두 번째다. 어쩜 입을 열 때마다 저렇게 주옥같은 말이 튀어나올까. 저건 배워서 나올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역시 입담도 재능인가?
감탄 소리가 좀 컸나? 얼굴 붉히던 두 사람이 나를 발견한다. 나는 손을 흔들어 준다.
“하던 거 계속하쇼. 나도 내 볼일 볼 테니.”
“그 볼일이 뭔데?”
여자가 까탈스럽게 묻는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
여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남자도 조금 화를 가라앉힌 모습이다.
“싸움구경.”
한순간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저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얼굴이다. 분노로 눈앞이 하얘질 때의 표정.
“씨발 놈이!”
“뒤져!”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노린다. 남자는 식칼을 들고 있고, 여자는 장검을 들고 있다. 장검은 상점에 파는 걸 봤다. 포인트까지는 모르겠다.
“어허.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건데.”
경고하지만, 두 사람은 듣지 않는다. 소리가 귀로 들어가도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다. 날 공격하는 놈들을 살려두는 취미는 없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건드린 것도 있고 하니. 일단 제압만 하자.
다가오는 두 흉기를 검지와 중지만으로 잡는다. 두 얼굴에 놀람이 번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기를 손에서 빼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10초쯤 그렇게 잡고 있자. 두 사람이 슬슬 정신을 차리고, 거의 동시에 무기를 놓고 물러난다.
뭐야, 니들 사이좋잖아?
손가락에 힘을 주니 장검과 식칼이 톡 부러진다. 싸구려는 이래서 안 된다. 손가락 힘 하나 못 버텨서야.
“우리 사이에 관계 확인은 끝난 것 같은데?”
여자의 굳은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남자는 찌푸린 얼굴로 비스듬히 땅을 본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그럼. 다시 싸워.”
“?”
“?”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좋은 남녀에게 부러진 칼을 다시 쥐여 준다. 조금 짧아지긴 했어도. 살인에 대한 유용성은 여전하다. 눈, 머리, 심장. 찌를 곳은 많다.
“레디, 파이트!”
신호를 줬는데도 두 사람은 싸우지 않았다. 답답한 녀석들일세.
“싸워. 싸우라니까? 그러려던 거 아냐?”
칼도 쥐여 주고, 동기부여까지 해줬는데도 두 사람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싸우라던 때는 잘 싸우던 놈들이 판 깔아주면 전부 이러더라. 어디 부끄럼 타지 않는 타고난 싸움꾼 어디 없으려나.
저거 봐. 저거. 두 사람 다 빈틈투성이다. 파고들어 한칼 먹이면 피하지고 못하고 황천행이다. 저런 틈을 놓치다니. 둘 다 기껏해야 이류다.
“이 남자는 절 강간했어요.”
“무슨 소리. 몸을 줄 테니 살려달라며!”
“이 남자가 무기도 갑옷도 전부 뺏었어요. 진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요!”
“창녀가 어디서 입을 놀려!”
요것 봐라? 꼬라지가 아주 재미있게 돌아간다. 뱅뱅 돌아 화살이 나에게 왔다. 저놈들은 지들끼리 싸우기 싫으니까 판단을 나에게 넘겨버렸다.
여자는 저놈이 나쁜 놈이니까. 저놈을 죽여 달라하고.
남자는 저년이 나쁜 년이니까. 저년을 죽여 달라한다.
왜 니들 일을 나한테 그러는데? 니들끼리 잘 해결해. 그럼 되잖아?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책임 전가는 계속된다.
“먼저 동맹을 배신했으면서.”
“이 개년이? 네년이 먼저 식량을 빼돌렸잖아!”
“미약은 상점에서 천 포인트나 하더라? 뇌가 고장 났냐? 그 포인트면 죽은 사람이 세 명은 줄었어!”
대강 사정은 알았다. 둘 모두 등신 쪼다다. 이런 상황에서 남을 왜 믿고, 동맹은 왜 해? 인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참으로 긍정적으로 살아온 아이들이다. 남자나 여자나 외모는 20대 초중반이니. 내 입장에서 보면 얘들 맞다.
근데 내 나이가 몇이지?
쩝. 까먹을 게 없어서 내 나이도 까먹네.
“가위바위보.”
내 말에 두 놈이 고개를 돌린다.
“몰라? 가위바위보.”
남자가 들고 있던 식칼을 뺏는다. 남자는 반응도 못 한다. 내 손에 들린 식칼이 손가락 사이에서 춤추다 바로 잡힌다.
꿀꺽, 남자가 침을 삼킨다. 여자는 말이 없다.
반으로 부러지긴 했어도, 칼은 칼이다. 사람 손에 들리면 위협적이며, 하물며 그 손이 내 손이라면 무서워하기엔 충분하지.
“쉬워. 이긴 놈은 죽고, 진 놈은 산다. 왜 이긴 놈이 죽냐고? 이긴 놈이 살면 뻔해서 재미없잖아. 지기 위해 노력해봐.”
이게 또 의외로 어렵다. 이기려 하는 게 습관이 돼서, 항상 이기는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찾거든.
“하지만...”
“저년이...!”
꽥꽥, 시끄러워질 조짐이 보였으므로. 조기 진압한다. 내가 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나는 기회를 줬고, 너희는 그걸 걷어찼고. 그리고 나에게 맡겼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 사정 따위 알 바 없다. 그러니 그냥 가위바위보나 해.”
“사람의 정이.......”
“감정에 호소하시게? 그 감정은 얼마짜리든? 맹왈 공왈 떠들어도 꽁알꽁알이다 이거야. 인의예지는 인면수심 앞에서 수심 2천 미터까지 가라앉지. 빛도 못 보고 꼬라 박혀 죽는다고.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여자가 입술을 깨문다. 난 놈의 말을 들어보면, 중간계는 힘 있는 놈이 장땡인 장소다. 그런 곳에서 살았다면 알겠지. 인간성이 얼마나 값싼 것인지. 가끔 비싼 것도 있는데. 그건 진짜 가뭄에 콩 나듯 나온다.
“빨리해. 가위바위보.”
험악한 목소리지만, 내심 살짝 들떴다. 회귀란 것은 미래의 내가 과거에 있는 거고. 과거의 내가 미래의 인과를 모두 끌어안고 있다.
과거가 미래를 후회하며, 과거에서 미래를 곱씹고, 과거에서 미래를 복수한다. 미래의 내가 죽고, 과거의 내가 복수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인과가 사실로서 머릿속에 틀어박힌다. 그건 사실이 아니되 사실이며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났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기억만으로 이들은 서로 죽이려 한다. 재미있는 일이다.
난 놈 말대로 소환된 인류가 전부 이러면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돌아가면 난 놈에게 소환된 인류의 숫자를 물어보기로 하자.
“나 바쁜 사람이야. 시간 끌지 마.”
지금은 일단 이 상황을 즐기자.
남녀는 마지 못 해 손을 든다. 둘이 표정이 똑같다. 썩어 있다.
“가위바위.”
“가위바위.”
““보””
남자가 지고, 여자가 이겼다. 여자는 한순간 좋아했다가, 내가 말한 조건을 떠올리고 절망한다. 이긴 놈이 죽는다. 여자가 죽는다.
한 타이밍 늦게 그걸 깨달은 남자가 환호한다.
“잠깐.......”
“난 변명을 싫어해.”
여자가 풀썩 쓰러진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다. 가지고 놀 기분도 아니라 그냥 깔끔하게 보내줬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갔을 것이다. 앞으로는 죽을 일도, 죽일 일도, 배신당할 일도 없다.
귀찮은 일도 아무것도 없다. 이 남자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거고. 어떻게 보면 이 여자가 진짜 행복하겠지. 제길, 조금 부럽다.
“히. 히익.......”
갑자기 쓰러진 여자의 맥을 확인하고, 남자가 주저앉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를 살려둘 걸 그랬나? 이런 뻔한 반응은 재미가 없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살려주자.
이놈도 운이 억세게 좋다. 싸울 때 보니 기량도 역량도 여자가 위였다. 계속 싸웠으면 여자가 높은 확률로 이겼다. 그런데 여자는 나에게 겁먹었고, 먼저 나에게 선택을 떠넘겼다.
남자는 뒤따라 한 거고. 먼저 떠넘긴 것은 여자다. 그 떠넘기기 끝에 여자가 죽었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는 선택 한 번을 그르쳐 스스로 죽어버렸다.
“세상 참 신기해.”
살 사람이 죽었고, 죽을 사람이 살았다. 결과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 때문에.
신기한 노릇이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상태창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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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적인 회귀물을 따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