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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전기만 해결하면 바로 치킨을 먹으려 했는데, 운명은 그렇게 간단하게 치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간단하긴 하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야, 치킨.”
“저, 저요?”
“치킨 튀길 줄 아는 게 너 말고 누가 있어. 주방 가서 치킨 튀겨.”
“하지만, 저건.......”
치킨녀는 창백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본다. 유리창 너머는 탐식귀 이빨로 꽉 찼다. 이빨은 저깃고, 고기는 여깃네. 여기와 저기가 이어지면 축제가 벌어지겠다. 피와 살의 축제.
세상이 끝난 표정의 치킨녀에게 손을 쉬쉬 흔든다.
“가서 볼일 봐. 장담하는데. 지금 여기서 내 근처가 제일 안전해.”
얌전히 기다리던 탐식귀들이 일제히 가게 문을 들이박으려 했다. 안 돼! 이놈들아! 이 가게 내꺼야!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유리가 구불거리며 진동한다. 웅웅 소리도 울린다. 그러나 깨지지는 않는다. 충격은 유리를 타고 모두 밖에 있는 탐식귀들에게 갔다. 달려들던 탐식귀들이 충격에 튕겨 나간다.
“휴, 유리 깨 먹을 뻔했네.”
이런 힘이 있어도, 난 깨진 유리문 가는 법은 모른다. 폭력이란 유용한 수단이며 마지막 수단이지만, 그 말은 결국 마지막이 되기 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폭력은 문명을 일으킬지언정 유지하진 못한다.
그러니까. 이 문 깨지면 곤란하다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탐식귀들이 우글거린다. 기색을 보니 지금도 여기로 몰려오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도 안 보인다. 아까는 달도 있었는데. 닫힌 공간에 달은 왜 있는 걸까?
잡생각은 그만두자. 미친놈에게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하면 힘든 것처럼. 처음부터 여긴 비상식적인 공간이었고, 비상식에 상식을 기대하면 나만 힘들다.
탐식귀가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렇게 보니 꼭 이빨에 갇힌 것 같다. 밤에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광경이다. 그래도 내 꿈에 나오기엔 너무 약해. 너희도 너무 약하고.
‘오늘 밤은 몸을 쓰기로 했지?’
이 숫자 다 때려잡으려면 중노동이 예상된다. 난 운동은 좋아해도 노동은 질색이다. 그럼 어떡한다? 아공간에 적당한 물건이 있으려나. 아, 멸망한 왕국 중 하나의 보물이 아마 철퇴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공간에 손을 넣어 찾아보니 역시 있다.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철퇴가 모습을 드러낸다. 꽤 좋은 재질을 썼다. 싸우다 부서지는 일은 잘 없겠지. 마법도 걸려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지금 신경 쓸 게 아니다.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
손잡이를 잡고 철퇴를 붕붕 돌린다. 유령들은 그 기세에 눌러 다가오지 못한다. 그래, 그렇게 모여 있어라. 그래야.......
“이런 맛이 있지.”
후웅, 철퇴가 날아가 탐식귀 뭉치를 가른다. 궤적에 있던 탐식귀가 모조리 사라진다. 던졌던 철퇴를 회수해 다시 호쾌하게 날린다. 탐식귀들의 포위망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내 뒤를 노려 가게로 돌진하는 탐식귀들에게는 콘크리트를 선물해주자. 발로 콘크리트를 때리자 부서진 콘크리트가 탐식귀를 죽인다. 간단해 보여도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기술이다. 왜냐고? 부서진 콘크리트의 숫자가 딱 탐식귀 숫자랑 같거든.
신기에 이른 힘 조절이 필요한 기예라는 거지. 자기 자랑 맞다.
탐식귀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내 손에 모두 죽었다. 도망갔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와 죽을 자리를 찾았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그래도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아마 포인트도 비슷할 것이다. 포인트가 남으면 상점에서 쇼핑이나 하자.
탐식귀 처리에는 한참이 걸렸다. 진짜 전생에 불나방이라도 되는지 이놈들은 끝없이 몰려왔다. 더 이상 탐식귀가 모이지 않을 때까지 처리한 다음 치킨집으로 들어온다. 한창 시끄럽다.
“치킨을 만들고 있습니다.”
난 놈이 주방 상황을 알려준다. 요리사 세 명은 모두 주방에 있는 모양이다. 난 놈은 어디서 가져 왔는지 책을 읽고 있다. 제목을 보니 무협지처럼 보인다. 고딩 때 자주 읽었었지. 지금 와선 기억나는 내용이 하나도 없지만.
“저쪽에 있습니다.”
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난 놈이 한쪽 벽을 가리킨다. 책이 한가득 꽂힌 책장이 있다. 대부분이 판타지나 무협지다. 시간 때우기도 좋겠어. 이 치킨집을 고른 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자 시간은 2019년이다. 4년 정도 지났다. 의외로 그렇게 많이는 안 지난 것 같아 다행이다.
다시 생각하니 다행이 아니다. 귀환하기 무섭게 괴상한 곳으로 날아와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데 다행은 무슨 다행. 다행(多幸)이 아니라 무행(無幸)이나 음행(陰幸)이라 불러야지.
치킨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어 보인다. 이참에 호기심이나 해결하자. 책을 읽고 있는 난 놈에게 말한다.
“아는 거 전부 말해.”
“네?”
난 놈이 고개를 든다.
“난 그런 거 싫어한다. 그냥 우리 편하게 가자. 응?”
저놈은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안다. 내가 회귀하지 않았다는 것까지는 유추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세계, 아갈리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그걸 모르는 이상, 난 놈은 나한테 안 된다.
안다고 뭔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난 놈이 저러는 건 그냥 떠보는 거다. 그리고 난 그런 행동을 정말 싫어한다.
노려봐주자 난 놈은 포기했는지 한숨을 작게 쉰다. 그리고 입을 연다.
“튜토리얼 후에는 중간계에 떨어집니다. 중간계의 역사는 수만 년이나 되는데, 여러 종족이 싸움을 벌이고, 재앙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곳으로.......”
“짧고, 간결하게.”
“힘이 전부인 곳입니다. 쌔면 장땡. 저희가 미래의 기억을 얻은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호오?”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회귀의 이유를 안다? 이건 꽤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다.
“악마나 용, 반신. 이런 괴물들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 약합니다. 제가 죽었을 때 인류는 거의 멸종 위기였습니다. 멸망을 막기 위해, 모종의 방법을 써서 전 인류의 기억을 과거로 돌린 걸지도 모릅니다.”
“흐음.”
짧지만, 참 긴 설명이다. 일단 저쪽(?)에는 인간 말고 다른 종족이 기득권을 잡고 있단 거고. 인류는 거기에 치여 멸종위기에 처한다라. 인류가 멸종당하는 입장에 서다니.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건 그거고.
“이딴 짓할 여유가 되면 힘이나 더 기르지. 왜 지금 이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전설의 용사라도 있나?”
있긴 있네.
나.
내 별명 중 하나가 전설의 용사였다. 정치가들이 선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자기들이 만든 전설에 씹혀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래도 일단 소환한 놈들이 날 노린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왜냐? 난 회귀 안 했거든.
“인류 전체가 이럴 겁니다. 저희가 18년 차 소환자니까. 앞 사람들은 이미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중간계에서 활동하고 있겠죠.”
“그래서, 이러면 멸종 안 한다냐?”
“적어도 조금 더 버티겠죠. 그쪽 세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미지의 광물을 선점하거나 미래의 지식을 알 수 있으면 많은 걸 할 수 있겠죠. 복권 번호랑 주식 정보를 싸 들고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거, 이해하기 쉽네.”
한 번에 팍, 하고 머리에 꽂히는 설명이다. 역시 난 놈이야. 이렇게 직관적으로 와 닿게 설명하는 건 힘든데 잘도 해낸다.
“나는 중간계에서 어느 정도일 것 같아?”
“글쎄요. 힘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말로 하면, 흠....... 핵폭탄 3개를 한 번에 터뜨리는 정도?”
재보진 않았지만, 그 정도는 될 거다. 무리하면 거기서 더 커질 수도 있고. 난 놈은 잠시 말을 잃은 표정이다. 그 반응이 썩 만족스럽다. 이게 격의 차이란다.
혼자 실실 웃고 있으니. 난 놈의 대답이 내 기분을 망친다.
“각 종족의 최상급 강자나, 고룡, 반신들이 아니면 견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많아?”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다. 기껏해야 한둘일 줄 알았는데, 너무 많다. 힘은 중요하다. 일신의 힘만이 마지막까지 남는다. 고로, 난 내가 약한 걸 보고 있지 못한다. 강해질 궁리나 조금 해둬야겠다.
중간계라는 곳에 도착하면 거기서도 좀 알아보고.
“제가 알기로, 그런 존재는 백을 넘지 않습니다.”
제 딴에 위로하려는 모양인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백이나 된다고? 난 놈의 말을 무조건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저쪽 가서 안심하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시간 나면 준비도 조금 해둬야겠다.
이래 봬도, 난 마법사다. 마법사는 준비하면 강해진다.
“저기... 치킨 다 됐는데요?”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치킨녀가 말한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무 기뻐 그만 몸이 반응해 버렸다. 뻘쭘한 표정으로 넘어진 의자를 세워 다시 앉는다. 대화에 집중해 몰랐지만, 고소한 냄새가 가게에 가득하다.
“가져와.”
요리사 삼인방이 치킨을 나른다. 탐식귀를 잡는 데 한참이 걸렸고, 난 놈과 대화한 시간도 짧지는 않다. 뭘 그렇게 오래 만드나 했는데, 이건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치킨이 다섯 마리다! 종류도 모두 다르다!
치킨 다섯 마리가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갈리에서는 꿈에서도 보고 환상으로도 본 광경이다. 그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눈에 보이고, 손이 닿고, 먹을 수 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어깨가 들썩인다. 흐아. 진짜 미치겠네. 입가가 저절로 풀어진다. 몽롱한 것이 기뻐 죽을 것 같다. 그럼 안 되지. 죽어도 먹고 죽을 테다.
가장 기본적인 프라이드부터, 그것도 다리부터.
한 입 베어 물자, 그곳은 열락이었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부드러운 살을 삼킨다. 혀와 입이 기뻐 날뛴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목이 막힌다.
콜라, 콜라가 필요해.
그렇게 생각하니, 바로 옆에 콜라가 있다. 난 꺼낸 적 없는데? 치킨녀가 눈웃음치는 게 보인다. 좋았어. 넌 점수 땄다. 좋아해도 돼.
콜라 한 잔을 한 번에 비운다.
진짜 눈앞이 하얘진다. 뇌네 마약이 조금 과한 것 같다.
“하아.......”
기쁨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 난 이걸 위해 살아왔던 거야. 그리고 이걸 앞으로 먹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는 거지. 씌블, 기분이 또 나빠진다.
중간계에서 할 일이 늘었다. 날 소환한 놈을 찾아보자. 찾아 죽여 버리자. 아갈리 때는 뒈져버려 복수도 못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길 빌자.
말도 하지 않고 닭 하나를 모두 비운다. 고개를 드니 요리사 삼인방과 난 놈은 따로 식탁을 차려 치킨을 먹고 있다. 날 보고 치킨녀가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간다. 뭐가 더 있나?
더 있을 것도 없는데, 괜히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치킨녀는 내 상상 이상을 보여줬다.
“와우.”
감탄이 터졌다. 터질 수밖에 없는 게, 커다란 피자 한 판이 주방에서 나오는 그녀 손에 들려 있다. 이건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인데. 생각지도 않은 선물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레시피가 있어서 구워봤어요. 맛은 어떨지 몰라요.”
“괜찮아. 지금은 썩은 피자도 먹을 수 있을 거 같거든.”
“농담도.”
치킨녀가 실없이 웃는다. 농담으로 생각하나 본데, 난 진심이다. 블랙홀에 휘말려 아갈리에 썩은 피자나 치킨이 떨어졌다면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걸 먹었을 것이다.
치킨은 잠깐 밀어놓고, 피자 한 조각을 든다.
“재료 얼마나 남았어? 몇 인분?”
“바로 쓸 수 있는 건 30인분 정도 있어요. 피자는 10판 정도.”
오늘 밤은 길어질 것 같다.
원더풀, 쎄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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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은 위대하십니다. 치-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