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3화 (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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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면접관이 원하는 조건을 제시했으니. 구직자는 자기 PR의 시간을 가져야할 때다. 면접관은 나고, 구직자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다. 힘의 역학관계는 명확하다.

내가 위, 쟤들이 아래.

여기가 현대라면, 지구라면 나도 이런 방법은 안 썼다. 계획했던 대로 금은방에서 돈이나 바꾸고 있겠지. 그런데 여긴 지구 모양 이세계고, 법도 사회도 없는 곳에서는 힘 있는 놈이 최고다.

“다시 묻는다. 요리할 줄 아는 사람? 나중에 시켜보고 못 하면 뒤진다.”

십 년 만의 한국어가 잘도 나온다. 십 년 만인지 어떤지 나도 확실히 모른다. 확실한 건 십 년이 넘었다는 것뿐이다. 십 년이 넘었을 때부터 날짜 새는 걸 포기했다. 무서웠거든. 내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수십 년씩 지나있을까 봐.

대충 봐서 지구는 십 년도 안 지난 것 같지만. 뭐, 나에겐 다행이라는 소리다.

“빨리 안 나와? 만약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난 필요도 없이 사람을 막 죽이지는 않는다. 표지판으로 죽인 놈? 그건 필요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절대적으로 위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놈 덕분에 이렇게 대화가 편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막 죽이지는 않는데 상당히 가볍게 죽이는 것 같기는 하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어땠더라? 잊어버렸다. 더러운 기분이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는지. 참으로 세상 요지경이다.

“치킨집 알바 해봤어요! 닭도 튀길 줄 알아요!”

“와플집 창업자요!”

“한식, 중식 자격증 있습니다!”

음식 좀 할 줄 안다는 사람은 이렇게 셋이었다. 200명 정도 되는 인원 중 셋이라....... 많은지 적은지 모르겠다. 있는 게 있는 거고, 있으면 좋은 거지.

“너희는 남고, 나머지는 가봐.”

사람들이 벙찐 표정이 된다. 왜? 내가 언제 니들 죽인데?

“뭐해, 가봐. 하던 일 하고, 보던 일 계속 보라고. 파이트 스타트.”

싸우라고 시작 신호까지 주었는데 사람들이 싸울 생각을 안 하고 멀뚱히 서로 보기만 한다. 산통 다 깼는데 다시 싸우라니 뻘쭘했는지. 서로 어색하게 눈 흘기던 놈들이 흩어졌다. 그 속도가 매우 신속하다. 어디 꿀 발라놨나?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자 세 사람을 불렀다.

“저희는 뭘 하면 돼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묻는다. 치킨집에서 알바해봤다니. 이 여자 이름은 치킨녀다. 옆의 남자 두 명도 궁금한 얼굴이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말했잖아. 닭 튀기고 요리해야지.”

“진짜, 진짜로 닭을 튀기라고요?”

못 믿겠다는 얼굴이다. 사람을 이렇게 못 믿어서야. 하아. 한숨을 깊이 쉰다. 세 남녀의 얼굴이 굳는 게 보인다. 왜들이래. 나 그렇게 사람 막 죽이는 사람 아니라니까.

“그럼, 뭐하라고 불렀을 거 같은데?”

“그치만.......”

치킨녀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문다. 요리하라고 불렀는데 요리 말고 뭘 시켜? 본인이 말을 꺼내고도 조금 어색했을 것이다. 하긴, 이 판국에 진짜 요리 시킬 사람이 있으리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겠지. 그래도 이해 좀 해라. 나한테는 이 상황이 비상식적이다.

콜라 먹고 치킨 뜯으러 돌아왔는데 바로 이 꼴이다. 곱씹을수록 어이가 없네. 어떻게 돌아오자마자 다시 차원 이동에 휘말려?

“야, 혹시 몰라 묻는 건데. 차원 이동이 대중적인 교통수단이고 이런 거냐? 막 옆집 순이네 갈 때도 차원 이동하고 그래? 내가 한동안 멀리 살아 와서 그런 걸 잘 몰라.”

“아, 아뇨. 제가 겪은 것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하늘을 향해 양손을 들고, 쌍욕을 날려주었다. 엿이나 먹으라지! 빌어먹을 운명! 요리사 세 명이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개의치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하늘에게 엿을 먹여주는 것이다. 진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

오 분 정도 엿을 날리고 있으니 조금 기분이 풀린다. 팔을 내리고 세 요리사를 향해 말한다.

“따라와.”

다행히 눈에 보이는 곳에 치킨집이 있다. 우선 치킨부터 먹고, 나머지를 생각하자.

“저기.......”

주저주저 치킨녀가 말을 건다.

“왜?”

“저분은, 놔두고 가나요?”

그녀의 손가락이 바닥을 가리킨다. 내 발아래에는 난 놈이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 용케도 아직 날아가지 않았구나. 아, 팔다리 부러져 못 날지. 내가 날려 줘야하나? 그런데 지금 날리기는 조금 아깝다.

난 궁금한 게 많거든. 그렇다고 요리사 삼인방에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은 안 나올 것 같고. 이놈이 요약은 참 잘하더라. 좋아, 정했어. 일단 가져가서 써먹자.

이빨로 손가락에 작은 상처를 내, 그 피를 마시게 했다. 팔다리가 고쳐지며 난 놈이 일어선다.

“이건.......”

난 놈은 자기도 놀란 눈치다. 나를, 내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는 게 자기 몸이 치료된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내 피를 마시고 회복됐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다.

“너도 따라와. 도망가면...... 뭐, 재미있을 거야.”

아주아주 재미있을 거다.

“아, 요리사들, 너희들은 저기 콜라 가지고 와라.”

재미 전에 먹을 건 좀 챙기자.

***

나는 재미있어지기를 기대했는데, 난 놈은 도망가지 않고 얌전히 쫓아왔다. 그래도 저 무표정한 얼굴 안에서는 날 어떻게 죽일지. 또는 어떻게 도망갈지에 대한 생각이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있겠지.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보다 저런 놈이 더 무섭다. 마지막까지 숨겨서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놈들이. 그래도 뛰어봐야 벼룩이지만.

치킨집 문은 열려 있었다.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디 보자, 숫자는 셋. 부스럭거리는 게 식량을 뒤지고 있겠군. 제길!

주방으로 뛰어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난장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의식주. 그중에서도 식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항이다.

배짱 두둑한 놈들이야. 내 치킨을 먹으려 하다니. 굳이 따지면 내 것도 아니지만. 내가 노린 시점에서 이 치킨집은 내 거다. 내가 노린 치킨집을 노렸다는 것이 저놈들의 불운이다. 나는 닭 가슴살 하나도 나눠줄 마음이 없다.

“제길, 죽여!”

죽이라는 말이 태연하게 나오고, 죽이기 위한 행동이 당연하게 나온다. 다짜고짜 서로 죽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회귀 전에 이놈들이 살던 곳도 정상적인 곳은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곳에 앞으로 내가 가야된다는 소리고. 제길, 생각하니 또 화나네.

날 잔뜩 선 식칼을 휘둘러오는 빡빡머리의 손을 낚아채며 한 바퀴 회전한다. 회전력에 빡빡머리의 몸이 공중에 뜬다. 그대로 땅에 던지려다가. 던지기 직전에 깨닫는다. 이거 여기 찍어버리면 주방이 쓸 수 없게 된다.

아래는 기각. 그럼 위는?

빡빡머리의 몸이 위로 붕 뜬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기각. 천장이 뻥 뚫린다. 어디보자. 그럼 어디로 던져야하나? 빡빡 머리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돈다. 빡빡 머리가 공중에서 빙빙 돈다. 주방을 부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며 생각을 계속한다.

위도 아래도 안 되면 옆은? 여기도 벽이 있다. 그럼 벽이 없으면? 다행히 주방에서 정문까지는 직선으로 뚫려있다. 정했다.

“정문으로 들어왔으니까, 정문으로 나가라.”

겨냥해 손을 놓으니. 빡빡머리가 주방을 통과해 정문으로 날아갔다. 저 속도니. 뭐, 살기는 글렀겠지. 이어서 다른 두 놈의 손을 잡고, 빡빡머리와 똑같이 날렸다. 반응하지도 못하고 두 놈은 날아갔다. 꾸역꾸역 뭘 담고 있던 자루는 그대로 남겨둔 채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저놈들은 못 먹고 죽었으니. 때깔이 나쁘겠다. 유령이 되어서 돌아와도 상대해주지 말자.

“뭐해? 들어와.”

홀에 있는 사인방을 부르자 주춤주춤 주방으로 들어온다.

“넌 나가.”

난 놈이 발을 돌려 주방을 나갔다. 삼인방은 표정이 나빴다. 보아하니 내가 날린 세 명을 본 모양이다. 인육포를 봤을 테니, 저항 없는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그놈들은 죽어도 쌌다. 저쪽이 먼저 죽이려 했는데, 내가 살려둘 이유가 어디 있어?

“치킨녀.”

“저, 저요?”

치킨녀가 화들짝 놀라 몸을 쭉 폈다. 어지간히 당황한 것이 보인다.

“견적 내.”

“견적?”

치킨녀는 어벙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찡그린 내 표정을 보고 치킨녀가 몸을 떤다.

“치킨 만들 수 있냐고.”

“아, 네네. 네!”

치킨녀가 주방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움직였다. 손을 달달 떠는 게 굳이 관찰하려 하지 않아도 보인다. 요리할 때는 좀 그만 떨어주지 않으려나. 역시 치킨은 제대로 만들어진 걸 먹고 싶다. 수전증 걸린 손으로 만든 거 말고.

주방을 살피던 치킨녀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선다. 꼿꼿이 직립한 게 꽃꽂이에 써도 될 것처럼 보인다.

“되, 될 것 같아요!”

“그럼, 만들어.”

내 말에 치킨녀가 황급히 덧붙인다.

“저, 전기만 들어오면요!”

와락, 표정이 구겨진다. 전기? 그런 게 들어올 리가 없다. 명동 거리처럼 보여도 여긴 이세계고, 이세계에는 발전소가 없다. 있어도 여기까지 연결된 전선 같은 건 없다.

갑자기 기분이 빡 나빠진다. 들떴던 기분이 한 번에 가라앉는다. 만들 수 있다고 직접 요리사까지 뽑아왔는데 전기가 없단다. 치킨 만들 수 있다고 한 놈이 누구였더라? 아, 그놈이다.

난 놈.

“야, 치킨 만들 수 있다며!”

나오는 대답에 따라선 언제든 난 놈의 목을 딸 준비를 해둔다. 날 속인 죄도 크지만, 치킨으로 날 기만한 죄는 더 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치킨이다. 내가 십 년 넘게 기다린 치킨. 내 심정을 똑같이 느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내가 지금 저놈을 죽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몬스터를 잡으면 전기를 쓸 수 있습니다!”

난 놈도 죽음의 위기를 직감했는지 다급하다. 눈치는 참 좋은 놈이야. 점점 더 살려두면 안 될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놈도 대충 알 거다. 이럴수록 죽기 좋아 진다는 걸.

그래도 대답안 하면 바로 죽을 판인데, 대답 안할 수도 없다. 머리 좋은 놈에게는 머리 좋은 놈 나름의 딜레마가 있는 법이다.

대답함으로써 난 놈은 당장 조금 더 살길 선택했다. 미래의 죽음을 끌어와 과거의 생으로 바꾸는 것이다. 연금술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저놈은 무려 불확실한 미래의 일을 끌어와 현재의 생(生)을 연성하고 있다. 라스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짓은 못했는데.

“몬스터?”

그것과는 별개로 몬스터라는 단어에는 관심이 간다. 아갈리에도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있었고, 내 취미 중 하나가 또 몬스터 사냥이다. 여기서도 몬스터가 나온다니 조금 반가운 기분이 들것도 같다. 그렇다고 엿 같은 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아니고.

“밤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죽이면 포인트를 주는데, 그 포인트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아, 갑자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네.”

이런 일을 표현하는 알맞은 단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다시 마력으로 뇌를 건들여 볼까 하는데, 치킨녀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게임.”

“맞아, 그거야! 이게 무슨 게임이야? 몬스터를 죽이면 전기를 쓸 수 있어? 미쳤구나!”

일주일간 어쩌고 하는 메시지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미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친 건 이 세상이었다. 몬스터와 전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지 내 고철 깡통으로는 아무리 굴려도 연관성을 못 찾겠다.

몬스터를 죽이면, 포인트를 주고, 그 포인트로 전기를 쓸 수 있다.

몬스터 -> 포인트 -> 전기

이런 미친 공식이 성립하는 세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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