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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내가 드디어 완전히 미친 건가 싶다. 환각이 무서운 건 환각 보는 놈이 그걸 진짜라고 믿는다는 데 있다. 누가 공격해오는 환각이 보이면 나도 반격을 해야 하고, 거기가 허공이면 허공에 삽질하는 거고, 거기 사람이 있으면 사람 하나 잡는 거다.
“하. 뒤져야 하나.”
자살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나를 막으려면 미사일로는 어림도 없다. 핵이라도 들고 와야 하는데, 핵은 보고 피하면 된다. 즉, 답이 없다.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건 이유가 있다. 차원을 이동했는데, 보이는 풍경은 똑같다. 명동 길거리다.
지나가던 사람도 그대로. 그래도 하늘은 회색이다. 우중충한 것도 아니고 그냥 회색이라 기분 나빠. 메시지 하나면 잘못 봤겠거니 하겠는데, 눈에 보이는 풍경 전부가 이러니 내가 미쳤는지 의심하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차원이 바뀌었는데 풍경이 그대로라니. 길거리 있던 사람들도 요상하다. 하던 일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도 숫자가 많이 빈다. 반의반 정도는 빈 것 같다.
도로와 인도를 가르는 보도블록에 걸터앉아 상황을 지켜본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곧바로 서로 욕하고 죽이기 시작한다.
“니가 날 배신해!”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
“씨발 새끼, 니가 나한테 그래도 돼? 그래도 되냐고 씹새끼야!”
갑자기 시작된 난장판.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구경했다. 난 습격 받는 사람 구해주는 취미는 없다. 그것도 상황 나름이지, 다짜고짜 구해주면 귀찮은 일에 엮인다.
예쁜 여자가 습격당한다고 그 여자가 착한 년이라는 보장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귀찮게 엮일 바에 구해주지 말자. 이게 내 방침이다.
피해자와 가해지는 당사자들만 안다. 보고 있는 나도 모르고, 구경하던 너도 모른다. 우리 모두 모르니 모르는 사람끼리는 오지랖 부리지 말고 가던 길 가는 것이 전쟁통에서 내가 익힌 삶의 지혜다.
인간들은 두 부류였다. 눈 돌아가 싸우는 놈들과, 슬며시 몸을 빼는 놈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 하나가 내 옆으로 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물었다. 쥐어뜯고 싸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서로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가던 사람들이다. 물론, 아는데 모른척 했다는 경우도 있지만, 저렇게 살기 풀풀 날리며 싸울 거라면 처음부터 무시하지 않고 서로 싸웠겠지.
도망가는 사람들도, 저렇게 갑작스럽게 도망갈 이유가 없다.
아마, 아까 단체로 하늘을 보고 있을 때 무언가 있었을 거다. 그걸 지금 확인하려는 거고.
“글쎄요.......”
남자가 말을 흐린다. 자주 보던 태도다. 날 뒤통수치던 놈들이 자주 이런 표정을 했지. 모호하고, 흐린, 안쪽이 보이지 않는 표정. 언뜻 봐서는 진짜 곤란한 표정으로 보인다.
이런 표정을 하는 놈은 대부분이 물건 파는 놈이나 정치하는 놈이었다. 돈과 권력을 다루는 놈들은 지구나 아갈리나 차이가 없다.
초면인 사람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다니. 이놈도 난 놈이다. 날 놈. 천국으로 날아갈 놈.
남자의 팔을 잡고, 꺾었다.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상관없다. 팔 하나 가지고 소란 부리기에는 거리가 너무 개판이다. 살인 사건이 거리에서 벌어지는 중인데 팔 하나가 대수랴.
“으윽, 왜.......”
남자가 억울한,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이놈은 난 놈 중에서도 난 놈이다. 그러니 좀 더 빨리 올려주자. 어디로? 천국으로. 뭐, 이놈이 죽어서 천국으로 갈수 있다면의 얘기지만.
“끄아악!”
반대쪽 팔도 부숴준다. 이런 쪽으로 내 기술은 일류다.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오지도 않고 멋지게 꺾여선 안 될 각도로 꺾였다. 일견 보면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그 자연스러운 광경을 보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대로 결혼해서 애 낳으면 애 팔도 꺾여 있지 않을까?
제대로 미친 생각이군.
생각은 일단 한쪽에 접어둔다. 언제 꺼내 곱씹으며 킥킥 대면 좋다. 유머러스한 사고는 중요하다. 미친놈이 미쳐 돌은 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나는 질문하는 게 아냐. 확인받는 거다.”
손에 불덩어리 하나를 만든다. 남자가 공포에 질린다. 공포는 안에 혼란을 가지고 있다. 이 와중에 혼란이라. 대단한 놈이다. 보통 공포로 머리가 새하얘져 아무 판단도 못 하던데.
이건 확실한 정보다. 심심해서 병사 하나를 가지고 장난친 적도 있다. 후에 장난의 감상을 물으니 병사 본인이 직접 대답한 거다. 당해본 사람이 십중십 그렇게 말했으니 맞는 말이겠지.
남자가 눈을 들었다. 그런 눈으로 봐도 안 통한다. 눈맞춤에는 이골이 난 몸이거든.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을 네가 봤어. 앙?
그런 느낌으로 눈싸움해주자 남자가 눈을 내리깐다. 나한테 빌어도 안 통한다는 것을 잠깐 사이에 깨달았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놈이다. 길다가 차원 이동에 휘말렸고, 그중에 이런 놈이 있다니. 세상 참 신기하구만.
짜증 났으므로 다리도 하나 부숴주었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다.
“그래서, 이건 뭔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는 사설 긴 건 싫어해. 요약해. 짧게. 최대한 짧게. 네 남은 다리 하나가 거기 달려있다.”
남자는 입을 다물고 눈살을 찌푸린다. 잠깐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연다.
“이세계에 소환되었습니다.”
“그건 알아.”
남자가 잠깐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다. 금방 표정을 회복하고는 다시 차분히 말을 잇는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알맞은 단어를 찾는 듯 침묵 뒤에 꺼낸 말이 퍽 이색적이다.
“뭐?”
그래서 되물었다. 시간여행? 여기 SF였냐? 아니면 내가 아갈리에 가 있는 동안 과학이 급격히 발전해 시간여행이 가능해지기라도 했나? 말이 안 되잖아. 시간여행이라니.
“사, 사실입니다! 소환 직후 미래의 기억이 머리에 흘러들어왔단 말입니다. 저 사람들이 싸우는 것도 그거 때문입니다. 여기선 서로 죽이고 배신한 일이 많았어요!”
남자가 필사적으로 말한다. 잠시 생각해본다.
미래의 기억이 생겨났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와 겹친다. 과거는 미래가 없고, 미래는 과거가 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에 먹히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을 먹으니. 남는 건 있는 것이다.
미래의 내 기억을 과거의 내가 받아들이면 거기에는 과거에 있는 미래의 내가 있다. 체감으로 보자면 시간여행을 한 것이 맞다. 나는 과거에 있으며,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되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더럽게 복잡하네.
요약하자.
소설에서 본 단어 중 딱 알맞은 단어가 있다.
회귀했다.
이러니 얼마나 좋아.
“좋아, 그렇군.”
모르던 놈들이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는 것도, 멀쩡하던 놈들이 갑자기 도망가는 것도, 모두 이해됐다. 이해는 됐다.
“씨펄, 난 뭐야?”
이해만 됐다. 저놈들은 회귀했다 치자. 그럼 난 뭔데? 난 미래의 기억도 없고, 이런 이상한 곳에 온 적도 없다. 회귀? 하긴 했지. 아갈리에서 지구로 막 돌아온 참이지. 생각하니 또 화나네. 씌펄. 내가 뭔 죄라고 이런 일을 당해. 아직 콜라도.......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야, 상점 물건은 어떻게 됐어? 편의점이나 가게에 있는 물건들.”
“일주일간 버틸 식량이 그것들입니다.”
“올레!”
환성을 지르며 남자를 방치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든다. 신속하게 냉장고 앞으로 간다. 그곳에는 있다. 있었다.
콜라가. 뭉텅이로.
“살아있길 잘했어.”
지구를 찬미하고 문명을 찬미하고 삶을 찬미하고 이때까지 자살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신 멀쩡히 살아있는 나를 칭찬한다.
콜라를 한 캔 꺼내, 뚜껑을 딴다. 청량한 소리가 내 영혼을 정화한다. 지체하지 않고 들이켠다. 혀가 춤추고 목구멍이 기쁨에 떤다. 이날까지 살아있어 좋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대로 캔 하나를 모두 마시고, 나머지 캔을 양손으로 한 아름 안는다. 그대로 밖으로 나와 다시 남자에게 돌아온다. 놈은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피난해 있었다. 부러진 팔과 다리로 용케 기어갔다 싶다.
“하나만 더 묻자. 여기서 치킨 먹을 수 있냐?”
“치킨?”
남자가 어이를 상실한 얼굴로 날 본다. 그렇겠지. 이 상황에 치킨 먹겠다고 하는 놈이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남들은 상상도 못 했던 짓을 하니까 미친놈이 미친놈이다.
“치킨 몰라, 치킨? 치느님. 돼, 안 돼? 대답만 해.”
“요리할 줄 아는 사람만 있다면.......”
식겁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이놈을 잡아 팔 두 개와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고 편의점에 들러 콜라를 한 아름 가져오는 동안에도 아직 싸우고 있다. 다시 보니 움직임에 제법 각이 잡혀 있다. 이세계로 소환되고, 또 회귀했다면 몸을 지킬 무술 정도는 배웠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급히 정신을 차린다. 누가 죽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들 중 치킨 기능공, 그러니까 치킨 튀길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놈이 죽으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그마아아안!”
음파 공격에 가까운 외침에 창문에 금이 가고 싸우던 사람들이 귀를 부여잡는다. 일단 싸움을 멈추는 것에는 성공했다.
사람들이 고갤 돌려 날 본다. 어리둥절한, 그리고 채 연소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들이 진하게 남은 얼굴이다. 저놈들이 무슨 감정을 가지고 칼질하고 주먹질하든 내 알 바는 아니다. 쟤들 감정은 쟤들 감정이고, 나랑은 관계없다.
“치킨 튀길 줄 아는 사람, 피자 만들 줄 아는 사람. 기타 요리할 줄 아는 사람 다 나와!”
오직 음식만이 중요할 뿐이다. 내가 뭐 때문에 아갈리에서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눈치다. 그래서 좀 도와주기로 했다. 아무나 하나를 지목한다. 칼 든 남자가 걸렸다. 칼에는 피가 흥건하다. 피의 양을 보니 세 명은 담근 거 같다. 10분도 안 돼서 많이도 담갔네.
“야, 너. 치킨 튀길 줄 알아? 묻는 말에만 대답해.”
옆에 있는 표지판을 손으로 잡아 뽑았다. 아래쪽의 철근이 같이 딸려 나온다. 칼잡이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모습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대답이 틀리면 오늘이 증조할아버지 따라 삼도천 도하 여행 가는 날이라는 건 알았겠지.
칼잡이의 눈이 떼굴떼굴 굴러간다. 눈치는 있는 데 표정관리는 영 어색한 놈이다. 내 발아래 누워 있는 남자와 비교하면 너무 어설퍼. 이런 놈이 지천에 널려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긴 하다.
신뢰와 신용이라는 말이 사랑과 자애보다 더 높은 순위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이냐고? 그 정도로 신뢰와 믿음이 결여된 사회가 탄생할 거라는 말이다.
아, 지금도 그러던가?
“거짓말하면 알지?”
우지끈, 철봉이 반으로 접혔다. 미래에 뭐했던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꼴 보니 지금은 전부 일반인이다. 무력시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모, 못한다.”
“다른 요리는?”
“못한다.”
“응, 넌 나가리.”
들고 있던 표지판을 던진다.
멋지게 날아가, 명중.
뿌득, 하고 놈의 뒤에 삼각 표지판의 꼭짓점이 튀어나온다.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다. 피가 튀는 것만 빼면 하나의 예술품이라 해도 믿을 모습이다. 작품명은...... 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의 철퇴. 정도면 되려나. 저건 철퇴라기보다는 창이지만.
남자는 쓰러져 퍼덕이더니 죽었다. 다른 사람들도 슬슬 상황파악이 된 것 같다. 나는 다시 입을 연다.
“치킨 튀길 줄 아는 사람? 다른 요리도 좋으니까. 아무튼 나한테 맛있는 밥 좀 먹여줄 사람?”
나는 배고프고 목마르다. 십 년이 넘은 갈증이 내 목구멍과 위장에 똬리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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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도 안했는데 찾아오시는 분들은 어떻게 찾아오시는지. 참 신기하네요.
약은 약입니다. 어떤 약일지는 아직 저도 모릅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