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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쌓아 올린 시체가 산을 이루고 성을 이뤘다. 나는 그 시체들 꼭대기에 앉아 담배를 태운다.
담배 연기를 훅 불었다. 연기는 허공에서 피 냄새와 섞여 녹아들었다. 진득한 피 냄새가 달라붙은 공기는 차갑고 끈끈하다.
“후우. 시체 위에서 담배피는 것도 몇 번째야.”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아서 처음 몇 번은 재미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정신에 가해지는 몇 안 되는 자극이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하면 물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질렸다.
담배를 다 태우고 터덜터덜 시체의 산에서 내려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산이 몇 개나 있다.
“저건 천 명짜리고. 저건 삼천 명짜린가.”
동산을 둘러보며 견적을 내보았다. 하도 쌓다 보니 이제 척 봐도 몇 명짜리 동산인지 감이 왔다. 동산이라면 순수한 이미지인데, 이건 너무 순수해 빨간 피가 줄줄 흐른다.
툭, 발로 차니 동산 하나가 무너진다.
“또 이러셨군요.”
어느새 노인 한 명이 다가와 있었다. 내 부하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실력하나는 확실하다. 나 빼면, 이 영감이 가장 많이 죽였다. 영감은 피가 튄다며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을 싹둑 잘랐는데, 오늘도 백발은 피로 물들어 있다. 그런 주제에 30년 기른 수염만큼 절대 못 자른다고 남겼는데, 이 수염도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럴 거면 머리는 왜 잘랐는지.
“냅둬, 이게 유일한 즐길거린데.”
“알겠습니다.”
노인이 입을 꾹 다문다. 노인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는 미친놈이고, 이건 미친 짓이다. 그래도 미친놈이 미쳐 돌은 놈이 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미쳐 돌은 놈이 되면 세계가 망한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그래서 나는 미쳐 돌은 놈이 되지 않도록 몇 가지 미친 놀이를 만들었는데, 이 시체 쌓기가 그나마 효과가 좋다.
쌓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전투가 끝나고 하나씩 쌓을 때도 있고, 싸우면서 죽인 놈을 그때그때 던져서 쌓는 방법도 있다. 최고 기록은 싸우면서 만든 건데, 군대 하나를 통째로 죽여 쌓아버렸었다.
딴생각 한다고 그냥 막 던지다 보니 만들었었지.
“이걸로 끝이지?”
“정화는 끝났습니다.”
“준비는?”
“성물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가능합니다.”
노인의 눈은 어딘가 멀었다.
“이 지랄 맞은 이고깽도 끝이고, 이 정신나간 학살도 이제 끝이다.”
18살, 이세계로 소환되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싶지만, 진짜로 소환된 걸 나보고 어쩌라고. 소환자는 당대 최강국이었다. 대륙 일통을 이룬 새끼들이 제국의 위엄을 보인답시고 금지되어있던 차원 마법을 선보였다. 거기서 소환된 것이 나다.
소환이 성공했으면 귀빈대접이라도 받겠는데, 이 빌어먹을 마법은 실패한다. 실패도 대실패라 제국의 수도인 제도가 날아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실험을 참관하던 황제도 뒈졌고, 그 밖의 계승자들도 뒈지고, 실력자들도 모두 뒈졌다.
세상천지 전쟁통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차원 마법의 산물로 모르모트가 되었다가, 그 후로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어 지금 이 지경이다. 뭐가 일어나면 요지경이 되는지는 나도 모른다.
세상이 요지경, 이지경 지긋지긋하다.
노인과 함께 들판을 걷는다. 피가 실개천을 이루고 흐른다. 치울 놈은 다 치워놔서 그런지 좀 덜 흘렀다. 내가 한 미친 짓 중에는 시체 피를 짜내 강을 만든 적도 있는데, 진짜 강이 되어 흐를 때는 나라도 좀 식겁했다.
“오셨습니까!”
막사로 돌아오자 막사를 지키던 병사가 우릴 반겼다. 막사라 해도 천막 하나가 끝이다. 200인용이라 그래도 안은 제법 넓다. 쓰는 사람은 12명밖에 없다. 우리 편 출정자도 12명으로 끝이다. 참으로 단출한 전쟁이다. 아마 노자나 장자도 우리가 검소하다고 칭찬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도 미친 사실인데, 더 미친 사실은 12명이서 전쟁이 된다. 나를 포함한 열둘 모두 만부부당의 강자들이다. 혼자서 쫄래쫄래 수천, 수만 대군에 돌격해서 도륙내고 돌아오는 게 우리들의 전쟁이다. 이러니 사람이 미치지. 아니, 이러기 전에도 미쳤었나?
요는, 쫄병 코스프레하고 있는 이놈도 웃으며 만 명 정도는 도륙낼 강자다. 그리고 진짜 웃으며 도륙하는 미친놈이기도 했다. 나도 사람 죽이면서 웃진 않는다. 아마도...?
이런 놈이 제일 약하다고 집보고 있는 게 우리 군의 실정이다. 세상에서 제일 또라이 같은 군대가 아닐 수 없다.
“성물은?”
“피리네가 라스에게 주었고, 라스는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나도 먼저 간다. 다른 놈들 오면 말해.”
“알겠습니다!”
쉬라고 막사를 만들었는데, 쉬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마지막 전투였으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쫄병은 메신저나 하라지.
노인과 털레털레 걷는다. 대화는 없다. 우리는 주변을, 우리가 만든 참극을 눈에 새긴다. 익숙한 풍경이다. 내가, 우리가 지나가면 산이나 강이나, 사막이나 눈 덮인 산이나 이런 풍경이 된다. 붉음은 언제나 붉음이었고, 그건 언제나 같았지만, 또 언제나 색달랐다.
지금의 붉음 또한 다른 붉음과는 다른 붉음이다. 여기서만 있는 붉음, 지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붉음.
내가 맡은 영역을 벗어나니 다른 시체들이 보인다. 무언가에게 뜯어 먹힌 시체, 터져나간 시체. 썰려 죽은 시체. 산과 들에 시체가 열렸다. 빨강이 잘 익었다.
찬찬히, 우리는 전장을 한 바퀴 돈다.
“돌아갈까.”
내가 물었고, 노인이 끄덕인다. 우리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풍경이 달라졌다.
조용한 숲이다. 산뜻한 공기가 코를 파고든다. 이곳은 문명의 향취가 느껴지지만, 동시에 자연의 향취도 있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전원적인 풍경이다.
우리의 걸음은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게 한 장소를 향한다. 숲의 중앙. 드래곤도, 엘프도 없는 심심한 이세계지만, 세계수는 있었다. 마력이 세계수 주변은 마법을 사용하기 쉽다.
세계수는 성스럽고도 난잡했다. 나무 주변을 언제나 떠돌던 정령들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복잡한 마법진이 빼곡하다. 주변에는 다섯 개의 성물이 놓여 있다. 이 세계에 신은 없다. 성물이라 해도 마법 물품, 아티팩트의 일종이다.
마법진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끝나가냐?”
“조금만 더.”
마법사, 라스는 말이 짧은 놈이다. 무슨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이다. 대화하려면 미칠 노릇이지만, 시끄러운 것보다는 좋다.
나도 마법은 조금 쓸 줄 알지만, 라스는 수준이 너무 높다. 도와줄 수도 없으므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라스가 하는 꼴을 구경하기로 했다. 노인도 옆에 서 있다.
라스의 손에서 마력이 춤춘다. 수백에 달하는 마법진이 그 손끝에서 조율되어간다. 맑은 푸른빛의 실이 너울거린다. 생명은 없지만, 라스의 주변에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저 실로 고기 꿰어서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라스가 손을 멈췄다.
“끝.”
“언제라도 갈 수 있냐?”
라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바로 가자.”
“인사는 안 하십니까?”
옆에서 노인이 묻는다. 짙은 일자 눈썹 아래의 굳은 눈매가 대답을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알고 있으면 묻질 말든가. 눈치는 빠른데 이 할아버지는 너무 고지식해서 탈이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봤다. 푸르고, 또 푸르다.
사실, 여기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여자도, 돈도, 권력도, 원하면 모두 손에 들어온다. 인류의 존망까지 내 손에 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이 좋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왜 굳이 돌아가려 하느냐?
콜라, 콜라가 마시고 싶다.
탄산 가득 들어간 시원한 콜라가.
진짜 미치도록 콜라가 마시고 싶어서 직접 만들려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탄산은 어떻게 만들고, 그걸 또 물에 어떻게 넣을지 깜깜했다. 콜라 한 캔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때 처음 알았더랬지.
물론, 콜라 말고도 이유가 없진 않다. 치느님도 먹고 싶었고, 피자랑 햄버거도 고팠다. 내가 무슨 요리사도 아니고 만들어 먹는 건 죽어도 안 됐다.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뭐든지 뿅뿅 만들어 쓰던데 전부 거짓부렁이다. 수백 년간 차근차근 쌓은 문명을 몇 달 만에 뚝딱뚝딱 만드는 고딩이 있으면 그놈이 날 때려도 용서한다. 어쨌든, 여기서 콜라를 만드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고로,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피자, 햄버거, 족발. 배달 음식 종류별로 시켜서 게임 한 판 돌리면서 먹을 거다. 시원한 콜라 한잔하고 함께.
주지육림을 다 즐겨봤는데, 역시 그게 최고다.
돌아가자.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놀자.
그게 질리면 가게라도 하나 차리자. 찻집이나 음식점이 좋겠다. 사연 있는 손님들에게 커피 한 잔, 음식 한 그릇 내주는 그런 로망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사실, 감정은 다 뭉개지고 로망만 남았다.
빌어먹을.
시선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할아범과 라스가 날 바라보고 있다. 인사하냐, 마냐 하던 중이었지.
“필요 없어.”
손사래 치며 말한다. 인사한다고 받을 놈들도 아니고,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구차하게 구는 것도 안 맞았다. 그냥 이대로 가는 게 좋다. 영감도 딱히 뭘 더 말하진 않았다. 그냥 해본 말이니, 대답을 들은 것만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라스가 마법진을 사용한다. 나는 그 중앙, 세계수 앞에 서 있다. 올 때처럼 실패할 걱정은 없다. 몇 번이나 확인했고, 성물도 모았다. 날 소환하고 뒤진 그놈들은 몰랐지만, 성물이 가진 마력이 차원 마법의 열쇠가 된다.
안전은 전과 비할 바가 못 된다. 거기에 일반인이었던 나는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만약의 상황이 생겨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빛이 세계수를 물들인다. 내 눈앞도 물든다. 새하얗게 덧칠해져 가는, 마지막 이세계의 풍경을 눈에 새긴다.
“잘 가.”
라스의 배웅과 동시에 빛이 세계를 삼키고, 몸이 어디론가 날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익숙하고 그리운 잡음이다. 그것들이 고막을 때리는 순간, 머리에서 번개가 튄다. 한국어를 듣고 감격할 날이 올 줄이야. 그것보다 한국어를 다시 들을 날이 올 줄이야.
천천히 눈을 뜬다. 콘크리트 숲에 사는 주민들이 보인다.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아무리 만들려 노력해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들이 있다.
기쁘지만, 동시에 무덤덤했다. 기쁜 건지 기쁘지 않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당황스럽진 않다. 납득할 뿐. 이제 와서 이 정도는 새삼스럽다.
“좋아. 환전부터 하자. 그 다음은 콜라.”
아공간에 있는 금을 조금 팔아 배부터 채우자. 그리고 콜라를 마시자. 그때야 진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날 것 같다. 우선 지나가던 사람에게 금은방이 어디 있는지부터 물어보자.
“야, 아니, 잠깐, 이 씨발.......”
말을 걸다 말고 머리를 북북 문지른다. 그런 나를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야 신기하겠지. 외국어를 씨부리던 놈이 욕은 원어민이니까. 마지막 씨발 빼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아갈리 대륙 말이다.
한국어를 쓴 지도 십 년이 넘는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말이 안 나왔다. 후, 일단 심호흡 좀 하고,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툭툭, 마력이 뇌를 건드렸다.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보통 이러면 죽는데, 나는 괜찮다.
뇌출혈로 두개골 안쪽이 피바다가 될 때 즈음, 대충 한국어를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발음 좋고. 이 그림이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이면 이 그림은 니가 먹을 기린 그림이다. 문장도 이상 없음.”
좋았어. 준비를 마치고 나는 지나가던 사람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기요. 여기, 금은방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이 흔들렸다. 이 감각, 겪은 적이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감각이다. 18살 때, 내가 아갈리 대륙으로 소환되기 직전의 상황과 똑 닮았다.
공간이 괴리되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탈출은 불가능하다. 억지로 찢고 탈출하면 몸이 조각나는 수가 있다.
“씨발, 개씨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차원 이동 방법은 안다. 그런데 하려면 개고생이다. 아갈리에서도 성물이 없었다면 몇십 년이 더 걸렸을 거다. 그걸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아무리 소리쳐도 이미 시작된 현상은 멈추지 않는다. 비가 떨어지고, 시체가 썩어 사라지듯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사람의 힘으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간이 조각나고 깨져 부서졌다.
눈앞에 괴상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일주일 간 생존하세요.]
씨발,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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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입니다. 정신나간 작품을 지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