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황홀경
300화
“…….”
“아침에도, 낮에도, 오후에도 어여쁜 너는 사실 밤에 가장 아름다운 걸 나만 알고 있다는 게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아, 음…….”
이런 얘기가 나올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혀를 타고 흐르는 꿀처럼 단내를 풍기는 우찬이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사내에게 어여쁘다니 너무하신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로 나오지 못했다. 농을 치시는 거냐고 투덜거리는 것도 하지 못했다. 꽉 끌어안은 팔의 단단함과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너무 달고 무거워서 감히 그 말이 거짓이라고 의심할 수가 없었다.
“저도 폐하가 정말 좋습니다.”
고작 뱉는 말이라고 해 봐야 멋없는 고백.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은 우찬을 어떤 말로 감동시켜야 할지 도통 알려 주지 못했다.
“그래, 알고 있어. 그거면 됐다.”
“정말 알고 계신 거 맞죠?”
“응. 네가 날 얼마나 연모하는지 알고 있다.”
“어떻게요?”
우찬이 또 짓궂게 웃는다. 무슨 대답을 듣게 될지 걱정 반 호기심 반이 앞선 순간 우찬이 대답한다.
“문 옆에 있던 바구니에 든 것을 보았거든.”
“…….”
“오늘 밤 쓰려고 준비해 둔 것이냐? 엉큼하기도 하지.”
“아닙니다!”
코끝을 찡긋 누르는 우찬을 무시하고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거기 있던 건 신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 상궁이 준비해 둔 것입니다. 일부러 몰래 숨겨 놓은 것인데 어찌 찾아내셨습니까?”
“숨겨? 문 옆 방구석에 그런 커다란 바구니를 가져다 놓고서는 그걸 숨겼다 말할 수 있느냐?”
이설이 당황한 것과 별개로 우찬도 나름 기가 막혔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네가 나와 다시 초야를 치르고 싶어 준비해 둔 줄 알았지.”
“꼭 그런 것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네가 덜 아파할 수도 있잖느냐.”
“그래도 그런 휴, 흉물스러운 것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난 오늘 밤 그것보다 더 흉물스러운 걸 네게 사용할 생각인데?”
우찬이 장포를 뒤로 펄럭이며 일어나자 무심결에 시선이 아래로 갔다. 어두운 밤 중에도 사타구니쯤의 옷감이 팽팽하기 당겨진 게 선명히 보였다. 그 너머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 확실히 알고 있는 이설은 여러모로 얼굴이 부끄러워져 얼굴을 손으로 감싼 뒤 서둘러 침소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오는 느릿한 걸음 소리가 들린다. 설아, 하고 부르는 웃음 섞인 목소리가 얄미워서 대답하지 않았다.
“설아.”
“창피하니 부르지 마십시오.”
“아까 네가 물었잖아. 오늘 너를 안을 거냐고.”
언제 이리 가까이 쫓아왔는지 뒤를 돌자 눈앞까지 우찬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깜짝 놀라 몸이 덜컥 움직이지 못한 순간 다리가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렸다. 정신 차려 보니 우찬이 겨드랑이 아래에 손으로 넣어 위로 들어 올린 뒤 엉덩이를 받쳐 안은 상태였다.
“나는 너를 오늘도 안고, 내일도 안을 거다.”
“폐하! 다치십니다. 내려 주세요!”
이설이 아무리 버둥거려도 흔들리지 않는 우찬은 이설의 목덜미에 연방 입을 맞추며 걸었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이설은 등 뒤에 닿는 푹신한 포단을 느낀 뒤에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찬이 그럴 때면 부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혹여 저 때문에 또 상처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다. 우찬이 몸을 좀 더 소중히 돌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레도 글피도. 달포 뒤에도 일 년 뒤에도. 네가 죽을 때까지 너를 안을 거야.”
“그때는 신첩이 그다지 어여쁘지 않을 텐데요?”
“그럴 리가.”
우찬이 몸을 숙이고 가까이 다가왔다. 등불을 등진 우찬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수려한 이목구비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게 빛났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상관없고.”
귓가에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흩어졌다. 우찬이 저를 어여쁘게 봐주는 것도 좋고, 어여쁘지 않아도 내내 좋아해 줄 것이라는 말도 좋다. 이설은 참을 수 없는 타는 목마름에 먼저 우찬의 목을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향긋하게 풍기는 술 냄새에 웃음이 먼저 났다.
“왜 웃느냐?”
“술, 드셨습니까?”
“차란과 소운이 하도 권하기에 한 잔 맛만 보았다.”
“그래서 늦으신 거군요.”
“그건 아니고.”
대답 후 이번에는 우찬이 깊게 입을 맞췄다. 섞여 오는 혀에서 과일 향 달큰한 술 냄새가 자꾸만 났다. 이설이 더 매달려 애원할수록 우찬은 서둘러 이설의 옷가지를 벗겨 내기 시작했다. 이설도 질세라 우찬의 상의를 벗기려 애를 썼지만 익숙지 않아 헛손질만 한참. 이설이 반나체가 되었을 때쯤 입술을 뗀 우찬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앉았다.
“언제쯤 사내 옷을 벗기는 게 익숙해질 테냐?”
“내년쯤에는…….”
“그렇게 오래는 못 기다린다.”
말은 차갑게 하면서도 마주 보는 상대가 못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우찬이 웃옷을 직접 벗었다. 달빛 사이로 얼핏얼핏 비치는 근육들을 지나 옆구리에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얼룩덜룩한 혈흔까지 천에 묻은 것을 보며 괜스레 착잡해진 이설이 조심스레 손바닥을 갖다 댔다.
“입에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널 얻은 훈장 같은 거지. 개의치 말거라. 죽지 않았으니 됐다. 죽었어도 어쩔 수 없었고.”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폐하.”
“응.”
이설은 문득 자신이 우찬을 부를 때면 그래, 응, 하는 다정한 대답으로 제 말을 기다려 주는 우찬이 새삼 좋았다.
“외람된 질문이오나 폐하께서 귀천하시거든 하늘 어디로 오르시는 겁니까?”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다고? 왜?”
진득하게 입을 맞추다 말고 저승길 얘기를 꺼내는 이설이 이상하긴 했는지 우찬이 기가 막혀 물었다. 이설도 이게 정상은 아니란 생각은 들었지만 나름대로는 중요한 문제이다. 사는 동안 함께 있는 게 중요한 만큼 죽어서도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게 우찬이다.
“비록 제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께서는 한날한시에 이생을 떠나시지는 못하였지만 두 분 다 결국 달로 돌아가 만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래서 너도 나와 이생 그 이후까지 함께 하고 싶다 이 말인 거지?”
“예.”
“퍽 낭만적인 얘기를 꺼내는구나. 술은 내가 마셨는데 취하기는 네가 취하였나?”
슬금슬금 이설의 웃옷을 벗겨 내던 우찬이 피식 웃더니 애잔하다는 듯 이설을 내려다봤다. 이설은 그게 인생에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웃음기 없이 우찬에게 보챘다.
“하여 저와 함께 달로 가실 건가요?”
우찬이 휙 걷어낸 상의가 바닥 저 어딘가로 날아갔다. 대답 대신 쇄골 어귀에 진하게 입을 맞추자 이설은 언제 짐짓 무서운 얼굴로 보챘냐는 듯 달아오른 신음 소리를 원 없이 질러댔다.
“가자.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하읏!”
쇄골 위를 배회하던 입술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가슴 언저리에 멈췄다. 침 묻은 입술이 붉은 젖꼭지를 빨아 비벼대는 소리가 외설스럽게도 들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한 전율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이설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비틀다가 우찬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폐하, 그만, 멈춰 주세, 읏!”
“쉬이, 가만히 있어야지 설아. 그래야 네가 원하는 걸 해 줄 수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거란 무엇일까. 숨을 헐떡이는 이설이 우찬의 머리카락을 잡을 손을 반대쪽으로 당겨 봤지만, 우찬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내 젖꼭지를 빨기만 하던 우찬이 앞니로 가슴 주변을 씹기 시작하자 이설이 허리를 뒤로 꺾으며 움찔움찔 뒤로 물러났다.
우찬은 그게 귀찮았던 모양인지 이설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 마주 앉은 뒤 허리를 양팔로 세게 포박했다. 이설은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에 간헐적으로 자극이 올 때마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간드러지는 신음을 여과 없이 뱉어 냈다.
“설아 근데 생각해 보니 말이다.”
“아흐, 폐핫!”
“너는 달로 돌아가지 못하지 않느냐?”
어째서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우찬이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아랫도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이설이 깜짝 놀라 우찬을 밀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절벽 앞에서 네가 달을 두고 한 맹세를 저버리지 않았어? 날 버리고 가지 않았느냐 설아.”
“앗! 그건!”
무슨 변명을 할 틈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흥분감에 머릿속이 잠식되어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우찬은 그때 생각을 하니 분하기라도 한 건지 이설의 음경을 꽉 쥔 채로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어 만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자극에 눈앞에 섬광이 펑펑 터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도 이설은 그게 뭔 줄도 모르고 신음만 자지러지게 흘려보냈다. 보지 않아도 제 아래가 무척 단단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우찬의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하늘이든 달의 뒤편이든 어디든 흐으, 좋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면 아흣,”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우찬의 정수리 위에 얼굴을 숙였다. 꺽꺽거리는 울음소리와 내지르는 신음 소리가 한데 뒤엉켜 자신이 지금 울고 있는 건지 기뻐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 어디든.”
고개를 든 우찬이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달뜬 신음에 지쳐 뒤로든 앞으로든 몸이 고꾸라질 것 같던 이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발가락을 안쪽으로 말았다.
몸이 뻣뻣해지는 동시에 흐물흐물 아래로 녹아내린다. 우찬이 아래에 강한 자극을 줄 때마다 엉덩이가 번쩍 위로 튀어 올랐는데 그때마다 우찬이 귓불을 깨물었다.
“설아 근데 아직 네 대답을 듣지 못한 게 있는데.”
“무, 무슨, 하읏. 폐하 제발 조금만 천, 천히!”
온몸이 달아오른 뒤로는 우찬이 귀에 대고 숨만 쉬어도 가슴이 헐떡거린다.
“때가 되면 나와 출궁하여 함께 살겠느냐? 그때는 더 이상 네가 소의도, 후궁도 아니게 될 텐데.”
우찬의 손놀림이 조금 느려지자 그나마 대답이 수월해졌다. 그 새 땀을 뻘뻘 흘리며 반쯤 풀린 눈으로 이설은 우찬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괜찮겠느냐?”
“그게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물이 젖은 신음 소리와 함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비로소 폐하께서 저만의 사람이 되시는 것 아닙니까. ……다른 후궁들 같은 건 없이 저와 오직 폐하만 존재하는 세상.”
“그래 그런 세상.”
“폐하 진심으로,”
“진심으로 은애한다, 설아.”
숨을 헐떡이는 사이 우찬이 말을 가로챘다. 비장한 각오로 깊이 들이마신 숨을 어이 없이 뱉으며 이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슬금슬금 우찬이 아랫도리에 집어넣은 손을 움직인다. 다시 아찔해지는 감각에 정신이 나가기 전에 이설이 우찬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생에 가장 솔직한 마음을 털어 욕심을 낸 단 한 사람이다.
“진심으로 연모합니다, 폐하.”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다가오는 우찬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화사하게 퍼지는 미소가 보름달 달빛처럼 환하게 빛난다.
이 황홀한 기분에서 영원히 깨지 않을 수 있기를.
죽어서도 이 황홀경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기를.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