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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황홀경 (254)화 (254/300)

달의 황홀경

254화

“아읏!”

양쪽 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껴안은 몸이 안쪽으로 동그랗게 옹송그렸다. 안은 것 같지도 않은 이 작은 몸에서 무슨 힘이 남아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 대는지 용할 노릇이다. 어깨를 바짝 끌어당겨 이설의 머리를 제 턱 아래에 붙여 고정시켰다. 식은땀이 흐르는 볼에 턱이 닿았다.

“이건 뭐, 다시 초야 때로 돌아간 것 같네.”

바짝 조이다 못해 뻑뻑하기까지 한 내벽을 살살 긁어내리며 우찬이 옅게 웃었다. 내심 아닐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 손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

우찬이 오늘 중 가장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이설의 볼에 흐르는 땀을 혀로 핥았다. 짭조름한 맛이 나는 게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설은 우찬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를 옴찔거리며 밭은 숨과 단말마의 비명을 같이 쏟아 냈다.

“아파?”

“아파, 아, 아……! ……싫,”

아프냐고 물었지, 싫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 말이 나올세라 우찬이 손가락을 더 깊숙이 확 밀어 넣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한 이설은 목 막힌 소리로 울어대며 버릇처럼 베갯잇을 꽉 잡았다.

어깨를 한 바퀴 돌려 안은 우찬 역시 버릇처럼 이설의 손을 감쌌다. 예전 같았으면 베갯잇을 놓고 제 손에 깍지를 끼어 잡을 이설을 기대했다.

“싫, 어 흐으…….”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설은 우찬의 손을 뿌리치고 벗겨진 자기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 위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싫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자신의 손을 뿌리친 것만은 확실하다. 그나마 좋게 풀린 기분이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설의 손짓 발짓 한숨 하나에 변덕이 들끓듯 했다.

“싫은 게 아닌 것 같은데.”

들어올 때와 같이 배려 없이 한 번에 쑥 빠져나가는 손가락에도 자극을 느끼고는 이설이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그새 손가락 두께만큼의 자극에는 적응이 된 건지 손가락이 빠지는 길의 반응은 유달리 교성에 가까웠다.

이설이 허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우찬은 손을 앞으로 옮겨 다시 성기를 손에 쥐었다. 아까보다 더 단단해진 살덩이에서 미세하게 올라선 핏줄이 느껴졌다.

“네 몸은 이리 좋아하고 있잖느냐.”

위아래로 슬슬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손길에 이설이 교태 어린 신음으로 반응했다. 고간 사이에 손을 댔다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다짜고짜 구멍 사이에 손가락을 먼저 밀어 넣은 게 잘못이었다. 그간 이설이 길들여진 순서로는 성기를 애무하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혼자 싸게 하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축 늘어져 있을 때 아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살살 만져 줘서 몸을 달아오르게 해야 했다. 손가락 두 개가 적당히 부드럽게 드나들 정도가 되면 엉엉 울며 매달리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도망쳐봐야 길들여진 몸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결국 매달릴 곳은 저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점도 있는 액이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성기 앞을 살살 만져 주다 막았다를 반복하자 이설이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

“으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것도 지금뿐이라는 거 알 텐데.”

옷가지에 파묻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길게 드러난 목선부터 귀까지가 새빨갛게 물들여 있었다. 꽉 다문 어금니는 어떻게든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맞물려 있을 것이다.

“얼마나 더 내 화를 돋울 셈이야.”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를 못들을 리 없는데도 이설은 완강히 버텼다. 성적 쾌락에 마음껏 이성을 놓아 본 지 오래라 오래 참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

우찬은 미끌거리는 성기 끝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관두고 손을 거뒀다. 몸을 세우고 일어나 이설의 발치로 갔다. 우찬이 사라진 뒤에도 아직 옹송그린 몸을 모로 눕히고 있는 이설은 간신히 숨만 헐떡였다.

“그래, 아직 남은 밤은 기니까.”

“…….”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보거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이설이 버틸 수 있는 여력도 더는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다. 마음 같아서는 속곳에 손가락을 넣기도 전에 제 음경을 쑤셔 넣고 싶었다. 여유로운 척 이설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우찬도 숨 한 번 쉴 때마다 머릿속에 어떤 끈들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심정이었다. 이설이 떠나기 전은 물론 이미 그 전부터 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전에는 색욕에 달아오른 욕정을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이설 없이 버티는 밤들이 끔찍했다.

그 오랜 밤을 견디고 마침내 손에 넣은 몸이었다. 안아도 진즉 안아 먹어 치웠어야 했다. 성마른 몸의 열기가 어서 이설을 품에 안아 태워 버리라고 재촉했다.

“앞으로는 이딴 거추장스러운 옷들은 입고 있을 필요도 없다.”

옷을 벗기는 시간조차 아깝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나신의 이설이 기다리고 있다면 무척 만족스러울 것 같다. 기뻐 반기지 않는 얼굴이라도 그 정도는 한 번쯤 참고 넘어가 주리라.

아직 허벅지 무릎쯤 되는 사이에 걸려 있는 하의가 거슬렸다. 옷이란 옷은 모조리 벗길 생각이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담장에 세운 채로 몇 번이나 박아 넣을 것이다. 치욕에 얼룩진 얼굴로 결국 제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설의 모습이 눈에 선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달이 뜬 뒤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것이다.

다리에 걸쳐진 하의를 손으로 확 잡아끈 순간이었다. 움찔거리는 것 말고는 미동도 없던 이설이 갑자기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때마침 무방비하게 있던 우찬이 발뒤꿈치에 얼굴을 세게 맞고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침상에 누워 있던 볼록한 몸이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아윽!”

낮게 울리는 신음 소리가 교성보다는 고통 어린 비명에 더 가까웠다. 받쳐 주는 이 하나 없이 그대로 바닥에 쿵 떨어진 모양이었다.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바로 세우며 손등으로 입가를 쓸어 닦았다. 말라붙은 핏자국 위로 피가 다시 묻어 나왔다. 얼마나 있는 힘껏 발을 굴린 건지 얼굴 전체가 다 얼얼할 정도였다. 검술 대련 중인 때를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맞은 것은, 것도 고의적으로 얼굴을 맞아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입가가 터진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안연한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호위군에게 미리 물러나 있으라 말하지 않았다. 다 지켜보고 있을 호위군이 상황상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기둥 뒤에 너울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짧게 고개를 저은 뒤 바닥에 발을 내려앉았다. 엎어져 누운 이설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다칠 뻔했잖아.”

“…….”

“응? 설아, 네가 다칠 뻔했다고.”

다정한 목소리에 깔리는 음산한 기운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맞은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이설을 안으려다 두어 번 어깨와 배 같은 곳을 맞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두 명백히 실수였고 우찬은 그걸 핑계로 이설을 더 쉽게 다룰 수 있었다. 이설은 제 손톱으로 인해 우찬의 살갗에 붉은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세상이 다 무너질 것처럼 굴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과할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는 태도였다. 함께 굴러떨어진 포단 위로 얼굴을 묻고 몸을 덜덜 떨며 엉금엉금 기어 우찬을 피했다.

“어딜 가.”

발치에 이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우찬이 이설의 발목 한쪽을 잡아 아래로 쭉 당겼다. 부드러운 포단과 함께 끌려오는 이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듯 발버둥을 쳤다. 일부러 다치지 않은 쪽을 붙잡은 거였는데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찰나 이설이 고개를 휙 돌렸다.

“하아, 하아……, 제 몸, 에……, 손……, 마십,…….”

숨이 차 더듬거리는 말과 함께 입안에서 피가 철철 쏟아졌다. 입술은 물론 턱 아래로 줄줄 흐르는 피 때문에 오히려 생기가 느껴졌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이미 숨이 넘어간 줄 착각했을 것이다.

순간 할 말을 잃은 우찬이 손에 힘을 빼자 아래로 툭 떨어진 발을 황급히 포단 아래로 감췄다. 공포에 질린 두 눈이 멍하니 앉아 있는 우찬을 바라봤다.

아까 성기를 주물거리는 자극에도 잘 버틴다 싶더라니. 입안 여린 살이라도 물어 피를 본 모양이었다. 안쓰럽다 동정하기도 지쳤다.

“더는 내가 못 버틸 것 같은데.”

제 귀로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우찬이 중얼거렸다. 생각하고 뱉은 말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잔잔한 수면의 파동처럼 몸을 덮쳤다.

침상과 바닥 사이에 몸을 끼고 간신히 숨만 고르던 이설의 위로 짙은 그림자가 생겼다. 한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우찬이 아주 느릿하게, 숲에서 만난 사냥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조용히 발을 옮겼다. 겁먹은 눈동자로 한참이나 높은 위를 쳐다보던 이설이 침상 옆면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죽을 때까지 네가 날 증오하고 저주해도 오늘 일은 절대 후회하지,”

다급힌 이설의 행동에 맞춰 갑자기 덜그덕 하며 나무 서랍 빠지는 소리가 났다. 정신없는 소란에 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느라 잠깐 시선을 거뒀다 돌아온 짧은 사이 이설이 양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손과 함께 덜덜 떨리는 물건은 등불 빛을 날카롭게 튕겨냈다.

자리에 멈춰 선 우찬이 싸늘한 얼굴로 이설을 내려다봤다.

“그걸로 뭘 할 건데.”

“가까이 오, 오지 마세요!”

“네가 지금 그걸로 할 수 있는 건 너 스스로를 찌르거나 아니면 나를 찌르거나 둘 중 하난데.”

“…….”

“아무래도 나를 찌르기로 마음먹은 것 같군.”

“그러고 싶지 않으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

헐떡이던 숨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남아 있는 물기와 쉰 목소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절규하는 비명을 무시하며 우찬이 조금 더 가까이 발을 옮겼다. 이설이 당황하며 엉덩이를 밀어 뒤로 물러났다.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뭘까.”

“제, 제 몸에 손대지 마, ……마세요.”

“아니. 난 너를 안을 거야.”

우찬이 거리를 더 좁혔다. 이설의 손에서부터 시작되는 날카롭고 긴 칼날의 사정거리에 우찬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이설은 등 뒤에 협탁이 걸려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검을 거두지도 못하고 손만 사정없이 떨어 댔다.

“내 손이 잘려 나가고,”

“폐하!”

순식간에 거리를 확 좁혀 들어온 우찬이 검의 끝을 맨손으로 확 움켜잡았다. 놀라 피할 겨를도 없던 이설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침소 곳곳에서 호위군 여럿이 튀어나와 두 사람을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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