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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새해를 앞두고 빈 첫 소원 (19/31)

19. 새해를 앞두고 빈 첫 소원

유치원은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유치원 일정에는 겨울방학이 존재하지만 회사원에게는 따로 겨울 휴가라는 게 없으니 선생님들은 출근하는 엄마 아빠를 따라 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을 위해, 돌아가면서 유치원에 나와 아이들 반을 합쳐서 교육하고 돌보고 있었다.

그동안 연차를 모아 두었던 부모들은 겨울방학에 긴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방학과 마찬가지로 랑일이는 예외였다.

일단 기준이 바빠도 너무 바빴다. 다른 직원들은 연말을 앞두고 휴가를 쓰기도 했지만 기준은 이 회사의 차기 주인이기도 해서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 사업을 구상하느라 더욱 바빴다.

기준의 야근이 길어지면서 랑일이는 희원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희원은 랑일이를 제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자기도 하고 또는 기준네 집에 가서 같이 자기도 했다. 그랬기에 요즘 랑일이는 보통 희원과 함께 집에 돌아가곤 했다.

오늘 역시 희원은 랑일이와 기준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희원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랑일이가 타고 있었다.

“마미.”

랑일이의 부름에 희원이 룸미러로 다정하게 쳐다봤다.

“응, 랑일아.”

하지만 랑일이는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다. 희원이 랑일이의 눈치를 살폈다.

“랑일아, 뭐 얘기하고 싶은 것 있어?”

하지만 랑일이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피했다. 그러고는 말이 없었다. 희원은 재촉하지 않고 랑일이가 하는 행동을 그저 지켜보았다. 조금 더 간 뒤에 랑일이가 다시 희원을 불렀다. 희원은 자연스레 평소와 다름없이 대답했다.

“마미, 동생이 있으면 좋아요?”

“동생? 음… 그럼 좋지. 랑일이가 심심하지 않고 랑일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동생에게 말할 수 있잖아. 그리고 가족이 생긴다는 건 선물을 받는 거나 다름없어.”

요즘 들어 랑일이는 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동생이 생기면서 동생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 희원은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말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따름이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랑일이가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것을 희원은 알 수 있었다.

“마미.”

“응?”

“아니에요.”

하지만 아직 어린 랑일이는 모든 게 어렵고 낯설고 그런지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럴 때일수록 희원은 아무것도 재촉하지 않고 그저 랑일이를 기다려 줄 뿐이었다.

“랑일아, 다 왔어.”

희원이 먼저 내린 뒤 뒷문을 열고 랑일이를 내리게 한 뒤 자연스럽게 안았다. 랑일이는 희원의 품에 폭 안겨서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마미, 별 보고 싶어요.”

“그럴까?”

둘이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희원은 랑일이를 품에 꼭 안고 산책을 했다. 겨울인지라 바람이 차가웠지만 랑일이를 품에 꼭 안고 걷는 이 시간은 재미있고 신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희원은 랑일이가 추울까 봐 더욱 꽉 끌어안고 길을 걸었다.

바람이 둘을 스치고 갔지만 괜찮았다. 그 순간이었다. 랑일이가 희원의 품에 꼭 안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응?”

랑일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금 기다려 주니 랑일이가 다시 속삭였다.

“마미. 나도 동생 갖고 싶어요.”

여섯 살 새해를 앞두고 랑일이가 빈 첫 소원이었다.

* * *

커다란 건물 앞에 선 희원은 긴장감으로 양손을 꼭 쥐었다. 벌써부터 알코올 냄새와 병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병원은 올 때마다 긴장되었고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기준에게조차도 말이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할 일이 생긴다면 그건 혼자로 족했다. 기준에게 말하면 분명 집안 주치의를 소개해 준다고 할 게 뻔했고 그렇게 되면 기준네 식구들 귀에 들어갈 게 틀림없었다.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희원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병원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릴 적부터 다녔던 병원이지만 한동안 오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오메가라면 응당 와야 할 히트사이클이 오지 않아서 찾았던 곳이다. 그리고 페로몬에 문제가 있다고 판정받은 곳이기도 했다. 병원에 대해서 좋았던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병원 말고 한약을 지었던 한의원에 가려고 했지만 그곳 역시 기준네 집안과 연관이 있는 곳이기에 포기했다.

안으로 들어간 희원은 압도되는 분위기에 순간 멍하니 로비에 서 있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예약을 했다고 해도 사람이 많았다. 희원은 진료실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을 연신 움직여 댔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희원은 오도카니 앉아 여러 생각을 했다.

옛날에는 사춘기 때 발현이 되는 것으로 알파인지 오메가인지를 알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는 희원이 오메가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사춘기 때 언제 올지 모르는 히트사이클에 늘 긴장하고 있었다.

주변 오메가 친구들이 히트사이클을 겪고 어딘가 모르게 성장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학교에 왔을 때 희원은 그게 부럽기도 하고 자신도 겪을 일이니 긴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희원의 히트사이클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뒤늦게 온 뒤에도 일정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찾은 병원에서는 페로몬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문제. 그 단어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고 속상한 마음에 희원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는 희원이 속상해하면 가족들도 마음 아파 한다는 것을 알고 티 내지 않기 시작했다. 속으로 삭이게 되었고 점점 자신이 오메가라는 것에 대해 잊으려고 했다.

그랬던 희원이 다시금 병원을 찾았다.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고 바라지도 않았던 ‘아이’라는 존재를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희원 님 들어오세요.”

“네.”

희원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기준은 각 부서의 새해 사업에 대해 검토하고 있던 차였다. 울리는 핸드폰에 기준이 액정을 확인하고는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희원이었다.

[혹시 오늘도 야근이에요?]

계속된 야근에 기준도 슬슬 지쳐 가고 있었다. 덩달아 원 실장도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하고 기준과 함께 내내 야근이었다. 가정이 있는 원 실장을 본의 아니게 회사가 빼앗아 갔으니 원 실장 아이들에게 새해 선물이라도 거하게 주어야겠다고 기준은 생각했다.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왜요? 일찍 들어갈까요?]

기준은 메시지를 보내 놓고도 웃었다. 희원이 아니라고 할 게 안 봐도 뻔했기 때문이다. 하루 정도는 일찍 들어가도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준이 강행군을 계속하는 것은 조만간 며칠을 통으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극우성 알파의 러트가 닥쳐올 때가 되었다. 기준은 연초에 러트가 오곤 해서 어느 때는 약을 먹어 날짜를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기준 이사가 바쁘지 않을 때가 없기 때문에 연초에서 다른 때로 러트 시기를 옮긴다고 해 봐야 별로 소용이 없었다.

[기준 씨, 미안한데 오늘은 일찍 와 주면 안 될까요?]

기준의 눈이 커다래졌다. 시간을 보아하니 아직 유치원에 있을 때인데 이 시간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아무리 지금 아이들이 겨울방학 기간이라 별로 없다고 해도 희원은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희원 씨, 혹시 무슨 일 있어요?]

기준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 놓고는 갑자기 드는 불안한 마음에 희원에게 전화를 했다. 희원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희원 씨!”

―기준 씨, 일하는데 연락해서 미안해요.

그건 기준이 해야 할 말이었다.

“통화 가능해요?”

―네.

수화기 너머 바람이 휘잉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기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희원 씨, 유치원 아니에요?”

―네. 오늘은 제가 나가는 날이 아니라서요.

기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학 동안에는 선생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럼에도 희원은 랑일이나 반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 쉬지 않고 매일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이 아니라니? 아침까지만 해도 그런 말은 없었기 때문에 기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희원 씨, 그럼 어디예요?”

―그냥 밖에 좀 나왔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그냥 좀…….

그러고 보니 희원의 목소리가 평소와 좀 달랐다. 기준은 그대로 옷을 챙겨 들었다. 그러고는 이사실을 박차고 나왔다. 이기준 이사가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비서실은 그야말로 당황 그 자체였다. 원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이사님, 무슨 일…….”

“따라 나오지 마요. 퇴근할 거니까.”

수화기 너머 희원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 그게 아니라, 기준 씨!” 하고 다급하게 불렀지만 기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일이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 갑자기 퇴근하겠다는 데에 원 실장은 랑일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뒤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준의 발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따라잡으려면 거의 뛰어야 했다.

“희원 씨, 어디 있어요? 나 지금 퇴근해요.”

―아니에요, 기준 씨. 그러지 마요. 바쁜 거 아니…….

“빨리 말해요. 이미 회사에서 나왔으니까.”

아직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기준은 급한 마음에 일단 이사실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복도를 거의 뛰다시피 하며 원 실장이 오는 게 보였다. 기준은 인상을 쓰며 손짓으로 저리 가라고 신호했지만 원 실장은 얼굴이 하얘져서 뛰어왔다.

“이사님.”

“희원 씨, 빨리 말해요.”

―여기 기준 씨 회사 앞이에요.

마침 엘리베이터가 올라왔고 기준은 그대로 탔다.

“희원 씨, 추운데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요. 아니다, 나 지금 내려가니까 기다려요. 딱 1분이면 돼요.”

1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원 실장이 같이 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라고 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랑일이 아니고 희원 씨 일이에요. 퇴근하니까 알아서들 정리하고 내일 봐요.”

“이사님, 뒤에 일정이 있습니다.”

“취소해요. 갑니다.”

기준은 여기까지도 많이 참았다는 듯 그대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1층까지 내려가는 그 순간에 기준은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희원이 랑일이가 유치원에 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게다가 희원도 지독한 워커홀릭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히트사이클이 아닌 이상 휴가를 내지도 않았다.

로비를 뛰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왔을 때 계단 옆쪽에 희원이 보였다.

“희원 씨.”

“아!”

희원은 정말이지 기준이 이렇게 빨리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그저 입만 헤벌리고 있었다.

“오늘 날도 추운데 왜 이렇게 하고 나왔어요? 차는요?”

기준이 자신이 들고 있던 코트를 그대로 희원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아니, 기준 씨 그러지 마요. 춥잖아요.”

“나는 실내에서 나온 거잖아요. 얼마나 밖에 있었던 거예요? 얼굴이 왜 이렇게 얼었어? 이럴 게 아니라 차로 가요.”

희원은 계속해서 아니라고, 괜찮다고, 왜 나왔냐고, 다시 들어가서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기준은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고 그저 희원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도 얼음장이네.”

기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희원의 손을 잡아 제 큰 손으로 감쌌다. 희원은 그 순간 기준이 제 손을 잡아끌었던 산책로가 생각났다.

둘이 사귀기 전에 학부형과 유치원 교사의 관계로 처음으로 단둘이 만난 날이었다. 둘 다 늦게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길에 우연히 마주쳤고 그러다 희원이 저녁도 안 먹었다는 소리에 기준이 샌드위치와 커피를 샀다.

커피를 들고 둘이 산책로를 걷다가 자전거에 희원이 부딪힐 뻔했다. 기준이 부주의한 자전거 주인에게 화를 냈고 희원의 손을 잡아 주었던 날이기도 했다.

“얼른 타요. 히터 좀 세게 틀어 줄게요.”

기준은 희원을 조수석에 앉히자마자 운전석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그러고는 이제는 머플러까지 희원에게 둘러 주려고 했다.

“괜, 찮아요.”

희원이 입술을 꾹 물었다. 기준이 머플러를 둘러 주던 그 순간도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희원 씨.”

뭔가 이상하다 생각한 기준이 희원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희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겉으로는 여리게 보이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강단 있는 희원이 눈물을 보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기준이 희원을 3월에 보고 이제는 새해를 맞이했지만 희원이 운 것은 침대에서가 고작이었다. 그런 희원이 눈물을 뚝뚝 흘려 대니 기준이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희원 씨! 왜 그래요.”

기준은 운전석을 최대한 뒤로 밀고 조수석에 앉은 희원을 뽑아내어, 그야말로 무를 뽑듯 뽑아내어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희원은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희원 씨, 어디 아파요? 몸이 아파서 그런 거예요? 병원 갈까요?”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기준은 말을 좀 해 보라고 그러고 싶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참으려고 했다. 기다려야 한다, 희원이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속으로 주문 걸듯 외쳤지만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기준 씨,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이렇게 갑자기 와서 울기나 하고…….”

“그게 뭐 어때서요. 괜찮아요, 그런 것쯤은 괜찮아요.”

기준은 손수건을 꺼내서 희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눈가가 빨갰다.

“울지 마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울지 마요.”

희원이 우는 것은 침대 위에서로 족했다.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너무 속상했다. 방실방실 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운단 말인가.

“그게요…….”

“괜찮아요, 좀 진정되면 천천히 말해도 돼요.”

너무 궁금했지만 기준은 여유로운 척하며 꾹 참으며 희원을 안심시켰다. 기준은 희원의 등을 어루만지며 마음이 진정되게 도왔다.

“기준 씨, 그게요. 진짜 별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런 말이나 해도 돼요.”

“낮에 병원에 다녀왔어요.”

병원이라는 말에 기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무슨 일 있어요? 희원 씨 어디 아파요?”

희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요, 랑일이가 동생이 갖고 싶다고 해서요.”

“친구 중에 동생이 생긴 아이가 있다면서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도 랑일이가 동생 이야기를 했던 것을 해준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쩍 요즘 들어서 동생과 같이 가는 아이가 있으면 유심히 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희원에게도 동생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페로몬 검사하러 갔다 왔어요.”

기준은 더욱 놀랐다. 그걸 혼자 하러 갔다 왔다고?

“왜 혼자 갔어요.”

“미안해요. 실망하게 되면 나 혼자 실망하는 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희원 씨.”

기준이 미간을 좁혔다.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원은 그것보다는 실망하게 둘 수가 없었다.

“기준 씨.”

“네, 얘기해요.”

희원은 울어서 눈가가 붉은 얼굴로 기준과 눈을 마주했다.

“페로몬 문제가 많이 좋아졌대요.”

희원이 또 울먹거렸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기준은 희원이 얼마나 페로몬 때문에 마음 졸여 하고 그게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이었는지 알고 있다.

“완전히 다 나아진 건 아니래요. 하지만 많이 좋아졌대요. 전에는 완전히 베타 같았는데 이젠 열성 오메가 정도는 된대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기준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안다고 하지만 그걸 어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희원은 원래가 우성 오메가인데, 그런 그가 베타라는 소리를 듣고 이제는 열성 오메가 정도가 된다니. 그 말 자체도 참 속상한데 희원은 그것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말이다.

“그럼 다행인 건데 왜 울어요.”

기준은 속이 상했다. 사실 희원이 오메가든 베타든 기준은 상관이 없었다. 희원을 닮은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아이 문제로 희원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랑일이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했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였다. 기준에게는 희원이 먼저였다.

그런데 희원은 그게 내내 신경 쓰였나 보다. 괜찮다고 말했어도 알파와 오메가, 페로몬, 아이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나 보다. 기준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게 뭐 대수라고.

“희원 씨.”

기준이 희원을 끌어다가 꼭 안았다. 희원의 여린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지 마요. 희원 씨 울면 내 마음도 너무 아파요. 나는 희원 씨 페로몬이 어떠하든 전혀 상관없어요. 우리 사이에 페로몬이, 아이가, 그 어떤 외부적인 요소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런 게 우리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어요.”

“하지만.”

“그래요. 하지만 그게 희원 씨 마음을 무겁게 한다면 희원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페로몬 문제가 신경 쓰인다면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도 좋고, 아이가 갖고 싶다면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 돼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희원 씨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그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 하기는 싫어요. 희원 씨도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앞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서 혼자 짊어지지 말아요. 혼자 생각하지도 말고, 혼자 상처 입지도 말아요. 무조건 둘이. 혼자서 하는 건 이제부터 금지!”

“그치만 기준 씨가 실망하거나 기준 씨 마음이 아픈 건 싫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응? 알았죠?”

희원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이 희원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아이 어르고 달래듯 속삭였다.

“착하다, 우리 희원이.”

“그게 뭐예요.”

“뭐긴 뭐예요. 착해서 칭찬해 주는 거지.”

기준의 다정한 음색에 희원이 작게 웃었다.

“어! 웃었다.”

“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데 확인하러 가야겠다.”

기준의 말에 희원의 얼굴이 점점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갔다. 희원이 기준의 허벅지에서 일어나 황급히 조수석 쪽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기준은 희원의 골반을 잡고는 놔주지 않았다.

“놔줘요.”

“알았어요. 장난 안 칠게요. 근데 병원에서는 또 뭐래요?”

“만나는 알파가 있냐고 물었어요.”

기준이 짓궂게 웃으며 자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희원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할 사람 있다고 했더니 축하한다고 해 주셨어요. 페로몬 문제가 어릴 때부터 계속된 거라서 사실 저는 진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잘 지내보라고 하셨어요. 기준 씨가 극우성 알파라고 했더니 그러면 더욱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힘내라고도 하셨어요.”

기준이 희원의 붉은 입술에 촉 하고 짧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희원이 눈을 크게 떴다.

“희원 씨가 말하는 게 너무 예뻐서요. 나는 우리 희원 씨가 매사 긍정적이라서 너무 좋아요. 말하는 것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희원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기준은 희원의 붉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극우성 알파랑 잘 지내는 게 어떻게 지내는 건지도 알아요?”

희원이 커다란 눈을 도로로 굴렸다. 기준이 희원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물었다.

“대답해 봐요. 응?”

“그냥, 잘 지내면 되는 거죠, 뭐.”

기준이 희원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아얏!”

“뭉뚱그려서 말하면 어떡해요. 부끄러워하긴. 우리 이제 결혼할 사이인데 아직도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떡해요.”

“그치만 어떻게 말해요.”

기준이 희원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말이다. 좁은 차 안에서 둘이 입술을 비비고 혀를 섞고 타액을 주고받는 소리가 질척하고 야하게 들렸다.

“유치원에서는 배우자 러트 때 휴가 얼마나 줘요?”

기준의 말에 희원이 눈을 크게 키웠다.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기준 씨 러트 언제예요?”

“이것 봐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더니 희원 씨는 내 러트도 모르고.”

“설마 3월은 아니죠?”

기준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때가 희원이 가장 정신없을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새 학기 시작하고 이번에도 5세 아이들을 맡을 거기 때문에 그때만큼 희원이 민감해지고 일이 많아지는 시기라는 것은 기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작년 3월에 우리 만났어요.”

희원이 생각을 더듬다 민망한 듯 배시시 웃었다. 아마 잘 생각이 안 난다는 표정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때까지는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게 기준은 못내 서운했다.

“미안해요, 기준 씨. 정말 3월은 아니죠?”

“쳇!”

이번에는 희원이 기준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놓았다.

“애교는.”

희원이 다시 기준의 아랫입술을 빨았다. 그러다 살짝 이상한 느낌에 희원이 아래를 슬쩍 내려다봤다.

“3월 아니에요.”

“다행이다. 그때 아니면 기준 씨랑 보낼 수 있어요. 같이 보내면 되는 거죠?”

기준이 허 하고 웃었다.

“3월이면 같이 안 보내려고 한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와 섭섭하네, 희원 씨.”

희원은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제 무덤을 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내가 한 번만 봐줄게요. 근데 그럼 내 러트 때 어떻게 같이해 줄 건데요?”

“네?”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들어 보고 서운했던 거 풀지 말지 결정할게요.”

“뭐를 구체적으로 말해요.”

희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면서 엉덩이를 비비는 통에 아래 깔린 기준의 것이 조금 더 반응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말 안 해 줄 거예요? 그럼 예행연습하든가.”

“네?”

“그래, 오늘 딱 좋네. 병원에서도 그랬다면서요. 알파랑 잘 지내야 한다고요. 원래 병원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해야 하는 거 알죠? 오늘 딱이네. 지금 당장 해 봅시다.”

“뭐를요? 그리고 여기 회사인데…….”

희원이 다시 엉덩이를 들썩이며 조수석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 희원의 엉덩이를 꽉 쥐고는 기준이 속삭였다.

“여기 임원 전용 주차장이라서 아무도 안 오는 거 알고 있죠?”

* * *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희원은 7세 아이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쉬웠다. 저 아이들 가운데에는 5세 때 희원이 맡았던 아이들도 있었다. 여전히 그 아이들은 6세가 되어서도, 7세가 되어서도, 늘 한결같이 유치원 대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희원을 제 담임 선생님같이 따랐다.

“선생님!”

등원한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희원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나 마나 랑일이었다.

“랑일아!”

랑일이가 도다다다 뛰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랑일이도 부쩍 자라서 아기 같았던 모습을 벗었다. 이제 종업식이 끝나고 일주일 있는 봄방학까지 마치면 랑일이도 5세 반을 떠나서 6세 반이 되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그리고 종업식을 앞두고 희원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사랑해 줄 걸,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줄 걸,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내일 화요일은 졸업식이고, 사흘 후인 목요일은 종업식이었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선생님.”

기준이 주변을 살피며 희원을 불렀다. 아직 주변에는 다른 학부모들이 있었기에 희원은 여느 학부모 대하듯 웃어 보였다.

“어디 아픈 거 아니죠?”

“네.”

“힘이 없어 보여서요.”

“아니에요.”

희원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랑일이는 희원의 다리를 붙들고는 희원을 올려다봤다. 희원이 랑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애들 종업식까지 하면 또 쉬어요?”

“네, 유치원이 너무 많이 쉬죠?”

희원이 미안한 듯 웃었다. 기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봤자 선생님은 또 하루도 안 쉬고 나와서 애들 보잖아요.”

종업식까지 끝나면 유치원도 일주일 정도 봄방학을 한다. 물론 놀 유치원은 사내 유치원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죄다 놀 직원들이다. 그걸 감안하여 말만 봄방학일 뿐이다. 여전히 선생님들은 매일 출근하며 아이들을 돌아가며 통합으로 교육, 보육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성실한 이는 희원이었다.

물론 선생님들도 연차라는 게 존재했다. 하지만 희원은 작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연차를 다 써 본 적이 없다. 기준은 그게 못마땅했다. 자신도 그러면서 말이다.

“근데 아버님.”

“네.”

“랑일이는 정말 봄방학 하는 거예요?”

랑일이야말로 희원만큼 착실하게 여름방학이건 겨울방학이건 유치원으로 계속해서 등원했기에 희원은 랑일이가 이번 봄방학 때 안 나온다는 것에 의아했다.

“네, 랑일이도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는 때도 있어야죠. 친구들 죄다 방학인데 혼자 또 나오면 너무 안쓰럽잖아요.”

“그럼 아버님께서 내내 같이 있는 거예요?”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기준이 랑일이 봄방학에 대해서 말을 먼저 꺼냈고, 그래서 기준에게 랑일이랑 같이 봄방학 때 어디라도 가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기준은 끝내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뭐 아무튼 랑일이는 봄방학 동안에는 가족들하고 함께 보낼 예정이에요.”

랑일이는 마미와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 둘을 바라봤다. 하지만 랑일이라고 해서 이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랑일이는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희원을 놓고 그 주변을 뱅뱅 돌았다.

“랑일아, 그렇게 돌면 어지러워.”

희원이 자신을 구심점으로 하여 뱅글뱅글 도는 랑일이를 저지하고 들어 올렸다.

“재미있는데.”

“어지러워.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빠하고 인사해야지. 다녀오세요.”

랑일이를 바닥에 다시 내려 주니 랑일이가 배꼽에 손을 얹고 희원을 따라서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기준은 랑일이 머리를 쓰다듬고 희원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제는 골목길에 셋뿐이었다.

희원이 랑일이를 다시 품에 안고는 기준의 차가 골목을 돌아서 나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 * *

똑똑, 이사실 문을 두드리고 이어서 원 실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사님, 저녁으로 드실 초밥입니다.”

“네, 거기 두세요.”

기준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원 실장이 쇼핑백 안에서 초밥을 꺼내며 탁자 위에 세팅을 했다. 기준이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놔두세요. 뭘 세팅까지 하세요.”

“이렇게 안 하면 안 드실 거지 않습니까.”

“이렇게 안 하면 러트 때 편히 못 쉬지 않습니까.”

기준이 원 실장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원 실장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기준은 억제제를 먹고 최대한 러트 기간을 줄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억제제에 그저 러트를 보낼 파트너만 구해 기간을 더 줄이기도 했다. 한데 이번에는 억제제를 먹지도 않고 미친 듯이 일만 했다. 마치 러트를 온전히 보낼 것처럼 말이다.

“오늘 랑일 도련님 유치원 하원 때 선생님 뵈었는데 걱정하셨습니다. 요즘 이사님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가 싶다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일이 많으시긴 하지만 끼니는 잘 챙겨 드시고 있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기준이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은 내일 랑일이 종업식까지 끝나면 그다음 날부터는 랑일이 봄방학과 함께 기준도 휴가를 가지려고 계획 중이었다. 휴가는 아마도 일주일 정도 될 듯했다. 물론 희원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여름휴가 때도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운 적이 없기 때문에 기준은 이번에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는 것이었다. 거의 입사 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하물며 랑일이가 태어났을 때도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우지는 않았다.

러트를 제대로 겪은 것은 언제일까? 기준은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극우성 알파는 러트 기간도 길었고 정도도 심했다. 억제제를 먹지 않고 오롯이 견디는 데에는 오메가와 관계를 맺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지만 기준은 지금껏 그렇게 관계를 맺을 만한 오메가가 없었다. 러트를 잠재우기 위해 하루 정도 함께했던 오메가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번 러트 때 기준은 희원과 그 시간을 오롯이 함께할 계획이었다. 공교롭게 봄방학과 기간이 겹칠 것 같아서 그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희원의 우려대로 3월에 기간이 겹쳤으면 기준은 희원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억제제를 또 복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사님.”

“네.”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린 기준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만 귀찮게 굴고 나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제가 선생님께 이사님 끼니 잘 챙겨 드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게 부디 거짓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하!”

기준이 고개를 들고 헛웃음을 웃었다. 그 말인즉 원 실장은 지금 얼른 앞에 펼쳐 놓은 초밥을 먹으라는 뜻이었다.

“전화 받고 먹을게요. 나가서 일 보세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희원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기준은 반가운 마음에 희원의 전화를 얼른 받았다.

“네, 희원 씨.”

―아직도 일하는 중이에요?

“네. 희원 씨는 뭐 하고 있어요?”

―저도 아직 유치원이에요.

놀란 기준이 허겁지겁 시계를 확인해 봤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기준은 희원이 당연히 퇴근했을 거라 생각했다.

“왜 지금까지 유치원이에요?”

―내일 종업식이잖아요. 그래서 애들한테 뭐라도 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되었어요.

기준이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제 연인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는 기준 씨는요. 기준 씨 목소리에서 피곤이 뚝뚝 묻어나요. 그렇게 일이 많아요?

“그러게요.”

기준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이제 슬슬 희원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준 씨, 몇 시에 끝나요? 저 이제 정리만 하면 되는데 데리러 갈까요?

기준은 이렇게 희원이 자신을 신경 쓸 때가 좋았다. 하지만 오늘 일찍 들어가 버리면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러트 기간 동안 조금만 몸이 가라앉으면 불려 나와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싫었다. 분명히 희원은 극우성 알파와 러트를 보내는 게 처음일 텐데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타격이 심할 거다. 그런 사람을 집에 홀로 두고 자리를 비우고 싶지는 않았다. 기준은 같이 퇴근하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았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희원 씨, 오늘은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직 일이 좀 남았어요.”

―그렇게나 일이 많아요?

“네, 그러네요. 대신 내일 랑일이 종업식 끝나면 랑일이 데려다주고 저도 좀 쉴 거예요.”

그건 사실이었다. 휴가는 모레부터였지만 기준은 내일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그 뒤부터는 한동안 쉴 예정이었다. 희원과 함께 말이다.

―우리 기준 씨 힘들어서 어째요.

“괜찮아요. 나중에 희원 씨가 많이 위로해 줘요.”

―응! 그럴게요! 내일 일찍 퇴근하면 맛있는 거라도 먹을래요? 내가 만들게요.

기준이 낮게 웃었다.

“희원 씨가 해 주는 거 너무 맛있는데, 희원 씨도 애들 졸업식에 내일 있을 종업식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잖아요. 맛있는 거는 나중에 희원 씨 바쁘지 않을 때 해 주고요, 내일은 사 먹어요.”

기준은 희원과 결혼하면 진짜로 손에 물 한 방울 못 묻히게 하려고 하는데 희원이 자꾸만 그걸 못 하게 해서 걱정이었다. 또 대답이 없어서 기준이 다시 한번 재촉했다.

“응? 대답해요.”

―알겠어요.

희원이 마지못해 대답하는 게 들렸다. 기준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희원의 다정함과 따듯함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운전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봐요.”

―네, 기준 씨도 조심히 들어가요. 너무 피곤하면 그냥 택시 타고 가요. 응?

희원은 전화를 끊기 전에 몇 번이나 당부했다. 기준은 알겠다고 조심히 들어가라며 결국 휴대폰에 대고 길게 입을 맞췄다.

* * *

아이들이 유치원을 옮기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가 퇴사를 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유치원 졸업 때까지 놀 유치원에 다녔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그만두는 것도 아니었다. 놀 유치원의 복지는 좋아서 선생님들도 웬만해서는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업식, 졸업식도 아닌 종업식인데도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다.

“으허어엉.”

“우리 아가, 왜 울어. 울지 마.”

희원은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선을 맞추고 아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유치원 행사라고 엄마가 머리도 예쁘게 땋아 주고 평소와 똑같은 원복이지만 조금 더 신경 써서 입은 티가 났다. 하지만 온통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선생님, 우리 이제 못 봐요?”

희원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다시 한번 닦아 주었다.

“선생님이랑 왜 못 봐. 3월 되면 다시 볼 수 있어.”

“그치만 이제 나 다섯 살 아니잖아요.”

이제 여섯 살이 된 아이는 3월부터 여섯 살 반에 가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희원이 담임 선생님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서 울음이 터졌다.

눈물은 전염이 있어서 한 아이가 우니까 여기저기 다른 아이들도 울기 시작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멀쩡한데 희원네 반 아이들만 그 난리가 났다.

“울지 마. 선생님이랑 계속 볼 수 있어.”

“그럼 선생님 여섯 살 반 해요?”

희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아이가 또 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희원은 우는 아이들 얼굴을 닦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치원 수료증을 품에 안은 아이들은 어느새 수료증은 팽개치고 눈물을 훔치느라 난리였다.

희원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얼굴을 훔치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한 명씩 품에 안고 부모님께 보냈다.

“3월에 와야 해. 알았지?”

희원이 손을 흔들고 인사했다. 웃긴 건 그렇게 말해도 회사를 쉬지 못하는 부모들 때문에 내일 당장 등원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거였다.

“랑일아?”

랑일이는 가장 끝줄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늘 모든 일에 앞장섰고 자리 가운데를 차지했던 랑일이가 이렇게 줄 끝에 몸을 숨기듯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희원이 랑일이를 불렀지만 랑일이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이제 랑일이랑 기준을 만나서 집에 가면 되는데 랑일이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업식에도 부모들이 참석했는데 오늘 기준은 일이 많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집에 갈 때는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기준이 못 온다고 했을 때 희원은 랑일이가 실망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희원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랑일이를 보니 역시 실망한 듯했다.

“랑일아, 아빠 못 오셔서 서운했어? 그래서 그래?”

랑일이가 고개를 젓더니 결국 희원에게 폭 안겨 들었다. 희원이 그런 랑일이를 안고 일어서자 랑일이가 희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빠 없어서 울어? 아빠한테 빨리 가자.”

하지만 랑일이가 고개를 저었다. 희원의 목에 어깨에, 눈물이 흥건하게 묻어났다.

“선생님.”

랑일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울었다.

“랑일아, 울지 마. 아빠한테 전화해 볼게.”

랑일이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희원은 들썩이는 작은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괜찮아. 울지 마.”

“선생님.”

“응?”

“이제 우리 못 봐요?”

“응?”

랑일이의 질문에 희원이 잠깐 랑일이를 떼고는 내려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희원을 올려다보는 랑일이가 귀여워서 희원이 웃고 말았다.

“우리가 왜 못 봐?”

“여섯 살 되면 못 보잖아요.”

“랑일이 여섯 살 되었으니까 다른 반으로 가는 건 맞는데.”

랑일이가 또 울먹울먹했다. 희원이 랑일이 눈물을 닦아 주고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말했다.

“랑일아, 선생님 유치원에 계속 있는데. 그리고 집에도 계속 있잖아.”

랑일이가 눈을 깜박깜박 희원을 쳐다봤다. 친구들이 우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친 모양이었다.

“집에 계속 있을 거죠?”

“그럼, 이제 선생님이 마미인데?”

“그럼 매일매일 볼 수 있죠?”

“응. 매일매일 볼 수 있지.”

랑일이가 안심이라는 듯 희원의 품에 쏙 파고들었다. 희원은 랑일이 등을 쓰다듬어 주며 기준이 얼마나 왔을까 싶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할머니 전화 왔다. 잠시만.”

박 여사로부터 온 전화에 희원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응, 희원아. 엄마야. 근데 어디 있니? 유치원에 랑일이 데리러 왔는데 안 보이네.

희원이 랑일이를 바닥에 내려 주고 손을 잡았다. 랑일이가 희원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랑일이 데리러 오셨다고요? 저 강당에 있는데 밖으로 나갈게요.”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희원이 전화를 끊고 랑일이를 바라봤다.

“랑일아, 할머니 오셨다는데?”

랑일이가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어?”

“네, 아빠 오늘 못 온다고 했어요.”

“응? 근데 왜 말 안 했어?”

“아빠가 못 온다고 할머니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오늘 할머니랑 놀고 내일 작은아빠랑 여행 가기로 했어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봄방학 때 랑일이는 유치원에 안 온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설이네랑 놀러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작은마미 가게는?”

“몰라요.”

랑일이도 자세한 건 모르는지 고개를 저었다. 희원은 자세한 건 나중에 루세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무니!”

울어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랑일이가 박 여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희원도 웃으며 박 여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늘 기준 씨가 바쁜가 봐요.”

“랑일아, 인사하고 차에 타.”

박 여사는 랑일이에게 먼저 말했다. 랑일이가 희원에게 팔을 위로 뻗었다. 희원은 얼떨결에 랑일이에게 품을 내주었다.

“마미 안녕. 전화할게요.”

“그래, 랑일아. 여행 잘 다녀와.”

랑일이가 희원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손을 흔들었다. 희원이 랑일이를 먼저 차에 태우고 박 여사와 마주 바라봤다.

“희원아, 신혼집에 기준이 있을 거야.”

“네? 회사에 있는 게 아니라요?”

“기준이가 러트 얘기한 적 있니?”

그제야 희원이 기준의 러트가 이맘때라고 얘기한 걸 기억해 냈다. 희원도 최근에 졸업식이니 종업식이니 바빠서 깜박했다.

“랑일이 걱정은 하지 말고 희원이도 좀 쉬어. 어떻게 날이 갈수록 점점 말라 가는 것 같아.”

희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 여사와 랑일이가 탄 차가 골목길을 돌아 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희원은 이제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기준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 전화를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최근에 너무 무리했는지 생각보다 러트가 일찍 찾아온 것 같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알파 오메가가 섞여 있는 행사장에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희원을 만나면 더 큰일이었다. 그래서 기준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을 마무리 짓고 신혼집으로 온 거였다.

무거운 몸을 소파 위에 눕히고 기준이 눈을 감은 순간 희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희원 씨.”

―기준 씨! 괜찮아요?

시간을 보니 종업식이 끝나고 아이들까지 하원한 뒤인 것 같았다.

“어디예요?”

―러트라면서요. 왜 얘기 안 했어요.

“아직 괜찮아요.”

희원에게 전화만 받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주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바지 속에 감춰 둔 성기가 꿈틀 움직였다. 희원이 운전 중인 것 같아서 비집고 나오는 신음을 애써 삼켰다.

“희원 씨.”

아직 남아 있는 이성을 끌어모아서 기준이 희원을 불렀다.

―네, 기준 씨. 뭐 필요해요? 빨리 갈게요.

“그게 아니고. 운전 조심히 하라고요. 그런데 알파 러트 기간 때 같이 안 있어 봤댔죠?”

―네에.

희원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물었을 때도 희원은 자신이 경험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희원 씨가 경험 있었으면 화날 뻔했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혹시 무섭거나 마음 안 내키면 안 와도…….”

―기준 씨, 나 다 왔어요! 그리고 자꾸 그런 말 하면 나 내 히트사이클 때 기준 씨 안 만날 거예요!

희원의 대답에 기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희원이 히트사이클 때 저한테 말도 안 하고 피하면 그것만큼 화나고 서운한 게 없을 거다.

그나저나 이제 몸에 열이 오르는 게 희원이 빨리 왔으면 싶었다. 성기 끝에서 프리컴이 묻어났다. 기준은 바지 속에서 성기를 꺼냈다.

“하아.”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갔다. 그때였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고 희원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기를 꺼내 주무르고 있는 기준을 희원이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희원은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 숲으로 걸어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속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기준이 희원을 향해 손짓했다. 희원은 기준의 손짓에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에서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모양인지 기준은 쓰리피스 정장 그대로였다. 다만 바지만 살짝 풀어 흉흉한 성기만 밖으로 끄집어 내놓은 상태였다.

“이리 와요.”

기준은 희원을 부르면서도 제 성기를 계속해서 주물렀다. 커다란 성기를 큰 손으로 잡고는 움직이는 광경에 희원은 아랫배가 벌써부터 묵직해져 옴을 느꼈다.

“어서요.”

기준을 코앞에 두고 희원은 망설였다. 평소 보던 기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정한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날카로운 눈도 나른한 상태였다. 알파의 러트라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서 희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요? 싫어요?”

기준의 물음에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싫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희원의 히트사이클 때 희원을 안았던 기준의 모습과는 묘하게 달랐다. 그러고 보니 오메가 히트사이클일 때 희원도 저런 모습인지, 기준에게 제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 건지 궁금했다.

희원이 소파 앞에 다다랐을 때 기준이 손을 뻗어 희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기준의 알파 페로몬이 희원의 몸을 휘감았다. 그 바람에 영향을 받은 희원은 기준의 위로 엎어지고 말았다.

“하아, 좋다. 희원 씨.”

기준이 희원의 허벅지에 제 성기를 문지르며 몸을 틀어 희원을 눕히고 제가 그 위로 올라탔다. 그러고는 희원의 쇄골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남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기준은 희원의 향을 잘 알고 있다. 희미한 향을 맡는 것으로도 열이 오르고 몸이 달아올랐다.

“기준 씨.”

“응, 죽을 것 같았어요. 희원 씨 너무 보고 싶어서.”

말은 평소에도 하던 내용이었지만 몸짓이 완전히 달랐다. 기준이 허리를 움직이며 희원의 허벅지에 성기를 문질렀다. 그러면서도 쇄골에 박고 있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기준의 뜨거운 숨이 희원에게도 전달되었다.

“좋아, 너무 좋아요. 희원 씨는 자기 페로몬이 얼마나 나를 미치게 하는지 모르죠.”

기준은 좋다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면서 손을 움직여 희원의 셔츠 안으로 집어넣고 단번에 유두를 찾아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비볐다.

“읏! 기준 씨! 아아!”

기준의 손길에 작은 과실과도 같은 유두가 바짝 섰다. 기준은 뾰족하게 선 유두를 계속해서 괴롭히면서 희원의 허벅지에 프리컴을 묻히며 자위했다. 온몸이 기준의 페로몬에 파묻힌 희원이 바르르 떨었지만 벌써부터 정신이 반쯤 나간 기준은 계속해서 허리를 들썩일 뿐이었다.

“읍!”

기준이 희원의 쇄골을 이로 콱 씹는 바람에 희원이 신음을 삼켰다.

다른 이 같으면 아픔에 다짜고짜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사 모든 일에 참아 왔던 희원은 이 순간에도 소리를 입 밖으로 내기보다는 아픔을 삼키는 쪽을 택했다. 택했다기보다는 그동안의 습관이었다.

기준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키고 참고 인내하기보다는 희원이 자신과 있는 동안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길 바랐다. 본능대로 하기를.

기준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려서 씨익 웃었다. 질척한 정액이 희원의 검정색 슬랙스에 길게 흔적을 남긴 상태였다.

“기준 씨.”

“야해요.”

희원이 눈썹을 팔자로 눕혔다. 지금 누구더러 야하다고 그러는지. 남의 바지에 사정한 건 기준이면서 기준은 희원더러 야하다고 했다. 희원은 자신이 남긴 흔적도 아니면서 귓불이 발갛게 무르익었다.

“점심 먹었어요?”

기준이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이 물었다.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밥 먹어요.”

“기준 씨, 괜찮아요?”

희원은 히트사이클이 왔을 때 뭐를 먹을 정신도 없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점심 식사를 언급하는 기준이 신기했다.

“밥 먹어요. 먹이고 먹어야지. 나중에 희원 씨가 나 욕할라.”

“네?”

그때는 기준이 하는 말이 뭔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 * *

“으읏! 읏!”

왜 침대가 아닌 이런 곳에서 홀딱 벗겨져 먹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준이 밥을 차렸고 희원이 설거지를 한다고 했던 게 화근이었던가. 기준이 식탁 위의 것들을 다 치우고 희원이 개수대 앞에서 물을 틀어 거품을 묻히던 찰나였다.

“기, 기준 씨, 그만. 아아!”

기준이 희원의 뒤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희원의 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물고 빨고 핥기 시작했다. 희원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걸 들을 기준이 아니었다. 어느새 페로몬을 풀고는 희원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깨물었다.

희원은 기준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들고 있던 접시와 거품이 잔뜩 묻은 손 탓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뒤에서 자꾸만 기준이 밀어서 희원은 싱크대에 자신의 앞부분이 닿지 않게 하느라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속수무책으로 기준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준 씨, 그만, 안 돼, 거기 안 돼요.”

“괜찮아. 쉿.”

볼기짝을 옆으로 벌리고는 오밀조밀한 주름을 하나하나 핥아 가기 시작했다. 러트를 맞은 극우성 알파가 페로몬을 있는 대로 흘리는 바람에 이미 희원도 뒤가 젖어 있는 상태였다. 기준이 혀로 구멍을 콕콕 쑤셨다. 오싹한 감각에 희원이 피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러는 바람에 구멍을 움찔거리며 조르는 듯이 보이게 했다.

“조르지 마요. 아직 시간 많으니까.”

“조르는 게 아니라! 아아!”

혀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잘생긴 콧날이 볼기 사이를 찔러 댔다. 희원은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냥 정신을 잃는 게 더 나을 것만 같았다. 부끄러워서 몸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기준이 좆질하듯 허리를 놀리며 머리를 움직였다. 달콤한 오메가 향이 꿀처럼 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구멍을 찢고 파고들고 싶었지만 그러면 희원이 놀라서 도망갈지도 몰랐다.

다 잡은 먹이를 코앞에서 놓칠 수는 없었다. 잘 구슬려서 잡아먹어야 했다.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는지도 모르게끔 말이다.

“기준, 기준 씨, 아앙, 아아, 아!”

춥춥 질척한 소리가 나는 가운데 희원이 못 참겠는지 엉덩이를 더욱 흔들기 시작했다. 기준도 무릎을 꿇은 채 희원의 엉덩이에 매달려서 질펀하게 굴고 있었다. 일순 신음을 높게 낸 희원의 구멍에서 뭔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준이 생수 마시듯 그 물을 핥았다.

“하아, 하, 아아.”

생경한 감각에 희원이 결국 쓰러지듯 바닥에 엎드렸다. 그걸 놓칠세라 기준이 등 뒤로 덮쳤다. 커다란 맹수 한 마리가 사냥감을 덮치듯 기준이 그대로 희원의 등을 누르고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갖다 맞췄다.

“구멍 빨아 준 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희원이 등을 둥글게 말며 어떻게 해서든 기준의 기다란 성기에서 엉덩이를 감추려고 했다.

“뭐가 창피해. 나는 희원 씨 앞에서 자위하는 것도 보여 줬는데, 응? 빨아 주는 게 그렇게 좋아서 내 얼굴에 쌌어요?”

“그게! 그게 아니라!”

억울했다. 자신이 일부러 얼굴에 싼 것도 아닌데 기준은 희원의 어깨에 젖은 얼굴을 문지르며 목 뒤를 잘근거리면서 계속해서 야한 말을 지껄였다. 희원이 도망치듯 앞으로 움직이자 기준이 그건 못 봐준다는 식으로 희원의 배에 팔을 두르고 엉덩이를 들게 했다.

“집어넣을 거예요. 나도 싸고 싶어.”

“아아! 아읏!”

평소에는 그래도 다정하게 섹스했는데 러트를 맞이한 기준은 조금 더 야하고 조금 더 짓궂었으며 조금 더 난폭했다. 그대로 자신의 성기를 희원의 구멍에 찔러 넣은 기준이 커다란 짐승이 만족한 듯 낮은 신음을 내쉬었다.

나른한 숨소리와 뜨거운 몸이 희원을 내리누르며 바닥에 엉덩이만 쳐들고 엎드리게 했다. 기준이 다리 한쪽을 세워 몸을 지탱한 뒤 그대로 뒤에서 쑤셔 박기 시작했다.

희원은 기준이 움직이는 대로 쭉쭉 밀리며 더운 숨만 내쉬었다. 신음을 지를 여유도 없었다. 벌린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 바닥에 고였다.

“바닥에 질질 싸지 말고 나 줘. 응? 희원 씨 거 나한테 버려.”

기준이 희원의 얼굴을 뒤로 돌리게 해서 그대로 입을 맞췄다. 뜨거운 숨이 서로 오가며 혀가 얽혔다. 혓바닥을 서로 문지르고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빨았다. 누군가의 침인지 알 수 없는 타액이 서로 겹쳐진 입술 사이로 줄줄 흘렀다. 기준이 희원의 뺨을 잡고는 아깝다는 식으로 핥고 먹었다.

“희원 씨한테 나오는 건 다 맛있어요.”

기준이 뒤에서 좆질을 하면서 희원이 흘리는 눈물을 핥았다. 희원은 자신의 뒤를 찢을 것처럼 파고들며 찔러 오는 거대한 몽둥이에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맺혀서 줄줄 울었다. 기준은 그 눈물방울도 아깝다는 듯 혀로 핥고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희원 씨, 우리 아기 가질까? 응?”

기준이 난폭하게 찔러 대면서도 귓가에 감미로운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희원 씨 닮은 공주님 갖고 싶어. 응?”

“아아, 아! 기준 씨, 너무 세요.”

“응, 천천히 할게. 응? 대답해 봐요. 읏!”

“으응, 응, 기준 씨 닮은.”

기준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희원의 날개 뼈를 꽉 물었다.

“아아!”

“희원 씨 닮은 공주님. 응?”

“으응. 응.”

희원은 이제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기준이 희원의 안쪽을 찔러 대는지 이러다가는 뱃가죽을 뚫고 기준의 성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접합부가 홧홧했다. 앞은 이미 프리컴이 질질 흘렀다.

기준이 가랑이 사이로 손을 가지고 와서 희원의 성기를 감쌌다. 그러고는 귀두를 엄지로 쓱쓱 문질렀다.

“아아! 아! 그만 그만!”

희원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사정감이 밀려왔지만 기준이 귀두를 막고서는 놔주지 않았다. 쾌감이 온몸을 두들기고는 뇌로 왔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아! 기준 씨!”

기준이 희원의 몸을 돌렸다. 접합부가 맞물린 채로 돌아가는 바람에 안이 크게 휘저어졌다. 희원이 울면서 기준의 목을 팔로 감쌌다. 기준이 상체를 바짝 붙이고는 그대로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기준의 배와 희원의 배 사이에 희원의 성기가 짓눌리면서 희원이 싼 정액이 질질 흘렀다. 희원이 허벅지를 벌벌 떨었다.

“아악!”

기준이 희원의 안에다 정액을 쏟아 넣었다. 이내 안이 억지로 확 벌어지는 느낌에 희원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알파가 제 영역을 표시하는 방법 중에 하나인 노팅이 시작된 거였다.

* * *

욕실에서 씻고 나온 기준이 젖은 머리를 말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희원을 바라봤다. 주방에서 시작해서 식탁 위에서, 소파에서, 그리고 침대에서 관계를 맺으며 희원을 울렸다. 희원은 기준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며 쾌감에 점점 잠식되어 갔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갖는 관계에 버거워하더니만 나중에는 희원도 오메가 페로몬이 짙어져 기준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기준이 희원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얀 얼굴 여기저기를 만지다 붉어진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희원이 살짝 눈을 찡그리자 기준이 손을 떼고는 이번에는 둥글지만 오뚝한 코를 만졌다.

희원은 선 하나하나는 뚜렷한데 눈꼬리 선이 예뻤고, 콧방울이 둥글둥글해서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기준은 희원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기준은 희원의 옆에 누웠다. 희원에게서 제 알파 향이 물씬 풍겨 왔다. 기준은 배부른 사자처럼 미소 지으며 희원을 끌어다 품에 안았다.

“희원 씨.”

희원을 불렀지만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는지 희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기준은 희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시 한번 웃음 지었다.

“사랑해요, 희원 씨.”

대답하지 않아도 그저 좋았다. 품에 쏙 들어와 있는 이 따듯한 몸만 있으면 기준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러트의 기운이 일시적으로 수그러든 기준은 그제야 희원의 정수리에 턱을 대고는 지친 몸을 쉬었다.

얼마나 잤을까? 품 안에 있던 희원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기준은 피곤한 몸에 쉬이 눈을 뜨지 못했다. 그동안의 피로가 러트와 함께 몰려와 조금만 더 잤으면 싶었다. 러트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풀어낸 기준은 그렇게 조금 더 수마에 빠져들었다.

반면 몸을 일으킨 희원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뻐근한 허리를 두들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기준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 기준 씨, 피곤했나 보다.”

희원이 기준의 얼굴 여기저기를 어루만졌다. 그러다 잘생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자 혹시 깨우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얼른 손을 뗐다.

“조금 더 자요.”

희원은 일어나서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멈칫하고는 눈을 찡그렸다. 다리 사이로 기준이 싸 놓은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욕실에 들어간 희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기준이 얼마나 빨고 깨물었는지 몸 여기저기가 죄다 붉었다. 기준이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누르고 박았는지, 위에서 몸을 내리누르고 어떻게 흔들었는지 모든 게 기억난 희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알파 러트라는 게 그런 거구나.”

알파와 몸을 섞은 것도 기준이 처음이었고 그러다 보니 러트를 같이 보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희원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다 노팅했던 게 기억나서 자신도 모르게 한동안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있었다.

욕실에서 나온 희원은 냉장고를 열어 봤다. 기준은 여기서 며칠이나 묵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냉장고 안을 꽉꽉 채워 둔 상태였다. 물론 기준이 직접 장을 본 것은 아니겠지만 필요한 식재료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희원은 뭐를 해 줄까 생각하다 그동안 기준이 제대로 된 집밥을 먹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가장 기본적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지락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부를 양념해서 부쳤다. 그리고 달걀을 풀고 채소를 집어넣고 달걀말이를 했다. 마트에서 사 놓은 낙지젓갈에 마늘, 파 등 다진 양념을 집어넣고 다시 무치기도 했다.

“희원 씨.”

어느새 잠이 깬 기준이 주방으로 들어와 희원을 불렀다. 불 앞에서 팔팔 끓는 된장찌개에 파를 집어넣던 희원이 기준을 바라보고 배시시 웃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희원 씨, 여기 있으면 어떡해요. 한참 찾았잖아요.”

“집이 운동장만 한 것도 아닌데 뭘 한참을 찾아요? 그리고 옷 좀.”

기준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서 있어서 희원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자꾸 얼굴이 달아올랐다.

“언제 나왔어요?”

“기준 씨 밥해 주려고요. 옷 입고 이리 와서 먹어요. 기준 씨 아까 너무 대충 먹었잖아요.”

점심은 대충 먹었고 그 직후 곧바로 러트 때문에 이리저리 휩쓸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이제 늦은 저녁이었다. 저녁밥이라고 하기보다는 야식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상으로는 말이다.

기준이 희원의 뒤로 와서 희원을 품에 안았다. 희원이 얼른 스토브를 껐다. 기준이 희원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는 깊게 들이마셨다.

“희원 씨한테서 내 페로몬 냄새 나요.”

“으응. 좀 저리 떨어져요.”

기준이 앞섶을 희원의 엉덩이에 문지르자 희원이 뒤로 손을 뻗어서 기준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기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준 씨…….”

“희원 씨, 나 좆 좀 봐요. 단단하게 서서 아프겠죠?”

“옷 좀 입어요.”

“밥 먹기 전에 한 번만 먼저 빼고요, 응?”

희원은 제 엉덩이를 찌르는 딱딱한 성기에 기준을 밀어내는 손에 더 힘을 주었지만 기준의 페로몬이 더 짙어지는 것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기준에게 이끌리어 또다시 침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기준은 제 허벅지 위에 올려 둔 희원의 눈가에 입을 촉촉 소리가 나도록 맞췄다.

“흐으, 흑, 이제 그마안.”

“우리 공주님 만들려면 더 많이 해야 해요.”

“기준 씨, 이제 그만 조옴.”

희원은 아래에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러다 밑이 안 다물리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몰래 구멍을 조여 봤지만 그 구멍에 좆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는 기준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입으로는 그만하라고 하면서 유혹하는 거예요? 그렇게 입맛을 다시면 내가 더 좆질을 해 줘야지.”

“아읏! 읏! 기준 씨! 그만 흐읏, 그만.”

희원은 기준의 페로몬에 이제 몸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온통 기준의 페로몬을 뒤집어썼더니 자기 페로몬도 기준의 페로몬하고 같았나 싶을 정도였다.

“나도 읏, 그만하고 싶은데, 자꾸 희원 씨가 졸라 대니까.”

기준이 허리를 쳐올리며 희원의 유두를 쪽쪽 빨았다. 바짝 선 유두는 기준이 하도 빨아서 새빨개져 있었다.

“나중에 공주님이 이걸 먹을 거 아니에요. 좀 질투 날 것 같은데.”

“아아! 기준 씨, 아파! 아파요.”

희원이 울면서 기준의 머리를 쭉쭉 밀었다. 하지만 기준은 유두를 더 빨고 잘근잘근 씹었다. 희원이 도망가려고 하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리자 기준은 그것조차 마음에 안 든다며 희원의 골반을 잡고는 밑에서 쾅쾅 쳐올렸다.

“희원 씨 닮은, 읏, 공주님은 얼마나 예쁠까? 아읏, 씨발 죽겠네 정말.”

기준의 페로몬이 진해지면서 희원의 페로몬도 같이 진해졌다. 달콤한 향에 기준은 희원의 목에 입을 맞추며 조금 더 빠르게 허리를 올렸다.

“공주님 아니면 어쩌려고……!”

계속해서 공주님 타령을 하는 기준에 희원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기준의 귀에는 들릴 리가 만무했다. 기준은 근거도 없이 공주님을 확신하고 있어서 희원은 기준이 흔드는 대로 흔들리면서도 황당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딱 봐도 공주님 아읏, 이라니까요. 희원 씨, 조금 더 움직여 봐요.”

기준도 슬슬 한계가 오는지 희원에게 같이 움직일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희원은 더 이상 힘이 없었다. 기준의 위에서 기절했으면 좋겠을 만큼 힘이 들었다.

“아읏! 아아! 아, 천천히, 쌀 것 같아. 아!”

희원은 기준의 목을 꼭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 입을 막았다. 신음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준은 그런 희원이 더 예뻐서 어서 안에다 제 씨를 뿌리고 싶었다.

“으읏!”

희원이 기준의 배에 정액을 싸지르는 동시에 기준도 희원의 안에 질펀하게 싸질렀다. 그러고는 희원이 어디 가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기준의 성기가 팽창하면서 제 정액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꼭 막았다. 희원은 그대로 기준의 품에 고꾸라지듯 잠에 빠졌다.

* * *

주말도, 그리고 월요일과 화요일도 기준의 러트 때문에 휴가를 낸 희원은 수요일에 기준의 차를 타고 출근했다.

“희원 씨, 너무 무리했는데 오늘도 휴가 내면 안 돼요?”

“정작 러트였던 기준 씨도 출근하는데 내가 휴가 내면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건강이 최고지.”

“기준 씨는 나를 너무 과보호해요.”

희원의 대답에 기준이 황당하다는 식으로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요?”

희원의 물음에 기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기준이 아침에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희원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희원 씨는 과보호가 뭔지를 모르는구나?”

기준의 말에 샌드위치를 먹던 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준을 바라봤다. 기준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희원의 입에도 물려 주었다.

“지금 기준 씨가 하는 게 과보호 같은데요.”

다시 신호에 걸리자 희원이 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기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그냥 보호, 그리고 이건 과보호.”

기준이 희원의 입술 옆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손으로 한 번 닦아 주고, 그다음에는 웃으며 입술 옆을 자신의 혀로 핥았다. 희원이 그 자리에서 펄쩍 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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