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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습격 (12/30)

12. 습격

“그래서 얼마나 볼 수 있다는 이야기요?”

신발 가게의 주인 사내는 손에 쥐고 있던 신발의 밑창을 힘껏 뜯어냈다. 천장이며 벽 곳곳에 갖가지 종류의 다양한 신발이 걸려 있는 이곳은 살라티코 거리의 어느 신발 가게였다.

“밝거나 어두운 정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모양이나 색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손으로 만지면 금방 익힐 수 있습니다. 지팡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기도 합니다. 일감만 주신다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도 보지 못하는 맹인을 쓸 바에는 차라리 시장 소년을 한 명 더 쓰는 게 나을 거요.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서 일하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 보쇼.”

가게 주인을 돕는 조수들은 기다란 탁자에 앉아 바쁘게 신발을 만들고 있었는데 일감을 찾기 위해 가게를 찾은 로미오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잠시, 가게 주인의 매서운 눈초리에 한눈팔지 않고 바삐 손을 움직였다.

“혹 제게 맡기실 일이 생긴다면 꼭 불러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참, 맹인을 쓸 일은 없다니까. 일이 많아 바쁘니 그만 나가 주쇼.”

바쁘던 중에 로미오가 귀찮게 했기 때문인지 주인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로미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보이고 가게를 나왔다. 그는 로미오를 보지 않고 있었지만 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른 아침 엔초를 화실에 데려다주고 곧장 집을 나와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하며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으나 로미오에게 일을 내주는 곳은 없었다. 하나같이 눈이 어둡다는 말에 마뜩잖은 목소리로 얼마나 볼 수 있는지를 묻고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물었다. 처음에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던 로미오는 잡화점과 향신료 가게, 포목점에서 연달아 거절을 당하자 네 번째부터는 두루뭉술하게 자신의 눈 상태를 설명하며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흘 전 퇴역식을 끝낸 로미오는 이틀 동안 광장 주변에 있는 가게들을 빠짐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군인이 아니며 지난 6여 년간 입어 왔던 군복은 낡은 옷장 속에 들어가 있었다. 영영 다시 입을 일은 없었다.

퇴역 외에도 두 가지 변화가 더 있었는데 바로 발레리아와 갈리에누스였다. 발레리아는 군을 그만두었고 갈리에누스는 제5군단으로 부대를 옮겼다. 피에트로의 죽음이 원인이 됐음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로마니엘로 대학교의 학생 두 명이 죽었다는 소문이 도시에 퍼져 있었고 그 소문이 엔초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게 뻔했지만 로미오는 피에트로가 당분간 법학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게 됐다고 엔초에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엔초가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로미오조차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닫힌 피에트로의 방문이 여닫히는 환청을 들었고 밤중에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에서 피에트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린 엔초가 피에트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변명을 둘러댔지만 엔초가 머지않아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엔초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피에트로의 죽음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조반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지난 며칠간 로미오는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혀 있었다. 단 한 번도 단테의 12인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해 본 적이 없던 그는 조반니가 제6군단의 감시를 두 번이나 빠져나갔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꼈다. 그들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었고 대담하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돼 왔던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곳에 버젓이 꼬리를 드러내고 있었던 셈이었다.

피에트로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로 인해 그 어떤 것에도 몰두할 수 없었으나 어떻게든 일을 구해야 했으므로 로미오는 바치 시내 일대를 샅샅이 뒤지듯이 돌아다녔다. 더 이상 전과 같은 풍족한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으니 조만간 로사티 3번가의 하숙집도 떠나야 했다.

문제는 불과 며칠 사이에 현저히 시력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색깔을 구분할 수 없었는데 붉은색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물체의 형상은 물론 붉은색마저 전혀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입을 옷을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골목 어귀에서 몇 번인가 넘어지기까지 했으니 이제는 정말로 지팡이 없이는 그 어디에도 쉽게 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완전히 시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졌다. 이런 수준이라면 누군가 자신에게 얼마나 보이는지를 물었을 때 빛과 어둠만을 구분할 수 있다고 대답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참을 걷던 로미오는 걸음을 멈췄다. 생각에 빠져 걷느라 걸음 수를 세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멈춰 서서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시력이 떨어져 더 이상 눈으로는 자신이 있는 장소를 파악할 수 없게 돼 후각이나 촉각, 청각에 의지해야 했다.

지팡이로 바닥을 쓸어 봤지만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곁을 지나가는 발소리를 멈춰 세웠다.

“죄송합니다. 여기가 어느 거리입니까?”

길을 지나던 나이 든 사내는 로미오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살라티코 5번가요.”

“제가 지금 어느 가게 앞에 서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앞을 못 보시오?”

“예. 저는 맹인입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오?”

“가려는 곳은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내가 직접 안내를 해 주겠소. 어디로 가려는 것이오?”

“말씀은 감사하지만 안내는 필요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만 알려 주십시오. 저는 이 근방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안다면 제가 가고자 하는 곳을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을 못 보는 로미오가 길을 헤매는 것을 딱하게 여긴 사내는 덥석 로미오의 팔을 움켜잡았다.

“지팡이 손잡이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낡았는데 어떻게 간다는 말이오? 내가 도와줄 터이니 목적지를 말해 보쇼.”

안내라고 하지만 그건 사내의 입장이지 로미오로서는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을 어딘가로 끌고 가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도 지팡이를 쥐고 있는 팔을 갑자기 움켜잡힌 터라 몸에 힘이 들어가며 주춤거리게 됐다.

“일단 이 손을 놓아주십시오. 길 안내는 사양하겠습니다.”

로미오가 손을 빼내려는데 사내가 부축을 하듯 잡아끌었다. 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한 로미오는 지팡이를 제대로 짚으려다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이마를 바닥에 부딪친 로미오는 지팡이를 놓치고 부딪친 머리를 감쌌다.

“이런! 괜찮으시오?”

사내에 의해 일으켜 세워진 로미오는 머리가 울리는 것을 느끼며 팔을 빼냈다. 잡아끌리며 바닥으로 넘어지자 순간 검은 망토의 사내가 떠올랐다. 길 가는 자를 멈춰 세워 길을 물어본 게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길은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손에 땀이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낀 로미오는 사내에게서 지팡이를 받아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 그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길을 알려 주겠다고 재차 말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집으로 갈 수 없었다. 두 번째 겁탈이 집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 집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다. 두 번째 겁탈 이후 밤낮 할 것 없이 늘 집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데다 하숙집 건너편에 있는 포목점 주인에게 하숙집 앞을 기웃거리는 낯선 자를 발견하거든 알려 달라고 감시를 부탁했지만 이런 낮에 혼자 집에 있을 생각은 없었다.

품에 든 칼을 매만진 로미오는 집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외출을 한 그라나 부인이나 조반니가 집에 돌아오는 저녁이나 돼야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 * *

“휴, 술병들이 끝이 없네. 빈 술병을 모아 팔았다면 분명 떼돈을 벌었을 거야. 아까운 술병들.”

술병이 든 나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여급은 굽혔던 허리를 펴며 어깨를 두드렸다. 온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해 앞치마는 엉망이었고 바짝 묶어 놓았던 머리는 흐트러져 잔머리가 빠져나와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은근한 눈길로 끈질기게 추파를 던지는 사내까지 있어 그를 무시하느라 배로 힘이 들었다.

저녁 손님이 몰려들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어 상자 위에 걸터앉은 그녀는 앞치마로 목덜미의 땀을 닦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위님!”

손까지 흔든 그녀는 앞치마를 털고 머리를 손질한 뒤 로미오에게로 뛰어갔다. 그가 맹인이라 할지라도 꾀죄죄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고 싶지 않았다.

지팡이로 바닥을 쓸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던 로미오는 목소리를 듣고 저만치서 눈인사를 했다. 로미오에게 가까이 다가간 여급은 그가 군복을 입고 있지 않은 이유를 물으려다 이마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흡사 자신이 이마를 다친 것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이 됐다.

“이마에 상처가 나 있는데 넘어지셨어요? 괜찮으세요?”

어린아이도 아닌 점잖은 사내에게 이마의 상처가 대수일까 싶었으나 긁힌 것처럼 보이는 상처가 안타까운 여급은 어떻게든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대고 싶었으나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 그럴 수 없었다.

“……상처가 잘 보이는 곳에 났습니까?”

거울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있다고 해도 볼 수 없는 로미오는 손으로 이마를 더듬었다. 어딘가 머쓱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왼쪽 이마에 나 있어요. 약종상이 이 술집 앞을 지나갈 거예요. 상처에 도움이 되는 약을 발라 드릴 테니 올라가지 마시고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이면 돼요.”

여급은 근심 어린 눈으로 로미오의 지팡이를 내려다봤다. 지팡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넘어진 것이려나?

“약은 됐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약을 만들어 올게요. 주방에 있는 몇 가지 재료들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초를 만들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늘 그렇게 약을 만들어 다친 부위에 발라 주셨거든요. 금방 만들어 올게요.”

“아니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여급이 금방이라도 주방으로 들어갈 것 같자 로미오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보지 못해 빈 허공에 손만 내저었다.

로미오가 저번에 왔을 때만큼 표정이 어두웠으나 감히 무슨 일이 있는지 캐묻지 못한 여급은 조심스레 로미오의 표정만 살폈다. 오갈 데 없이 허공을 내젓던 손을 내린 로미오는 지팡이를 고쳐 쥐며 짧게 미소를 지었다.

“항상 제게 친절하시군요. 상처는 금방 아물 겁니다. 고맙습니다.”

여급은 로미오의 미소에서 자신을 향한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가 힘든 일을 겪은 사람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러 온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일이 고된가 보군요. 목소리가 지친 것처럼 들립니다.”

“누가요? 제가요?”

“오늘 특별히 일이 힘드셨습니까?”

“아니에요, 지치기는요. 이까짓 일쯤이야 거뜬하죠.”

여급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다 술이 든 상자를 발로 차자 로미오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술병이 든 상자를 옮기고 계셨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일행을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오지 않아 2층에 올라가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남으니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대위님은 제 손님이신걸요. 어서 들어가세요.”

술집 문을 연 여급은 로미오가 안으로 들어오자 문을 닫고 그가 계단까지 걸어가는 것을 봐 주었다. 먼저 올라가며 뒤따라오는 로미오를 지켜보던 그녀는 계단을 두 칸 남겨 두고 로미오가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질 뻔하자 황급히 그의 팔을 붙들었다.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흔들리는 지팡이 손잡이를 단단히 잡은 로미오는 다른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았다. 여급이 늘 앉는 그 자리로 데려가자 로미오는 손으로 더듬어 의자를 찾아 앉았다.

“우선 술을 한 병 부탁합니다.”

“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세요.”

“그리고…… 저, 혹시…….”

여급은 로미오가 탁자 아래로 내리고 있는 손을 매만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잠시 말을 삼키다가 주저하며 물었다.

“이곳에서 일을 거들 사람을 구하지는 않습니까?”“아니요. 저희는 일손이 모자라지 않아요. 왜 그러세요?”

“실은 제가 얼마 전에 퇴역을 했습니다. 일을 할 만한 곳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곳이 없더군요. 혹시 사람을 구할 일이 생기거든 제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눈이 어두워 일을 익히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무슨 일이든 좋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만약 사람을 하나 더 쓰신다고 하면 제게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자존심을 세우는 성격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자연히 목소리가 작아졌다. 여급은 로미오가 군을 나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으나 아래층에서 자신을 찾는 소리에 다른 말은 묻지 못했다.

“그럴게요. 꼭 말씀드릴게요. 그럼 술을 가져다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 감사드립니다.”

여급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나니 로미오는 조반니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었다.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거나 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없었고 창밖의 거리 풍경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뿌옇게나마 보이던 거리였지만 이제는 창의 위치를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자신의 손만 만지던 로미오는 뒤축이 낡은 신발이 자꾸만 발꿈치에 밟히는 것을 느꼈다. 일을 계속 구하기 위해서는 신발부터 먼저 사야 했다.

술을 마시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 혼자 앉아 있던 로미오는 주위가 소란스러운 탓에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술집에 도착한 조반니가 계단을 올라와 테이블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언제 오셨는지… 저런, 제가 놀라게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눈이 어두운 로미오는 종종 주위 사람들을 동화 속의 요술적인 존재로 느꼈다. 그들은 갑자기 바로 앞이나 옆에 나타났다가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요술을 부렸다. 지금의 조반니처럼.

“선생님이셨군요. 주위가 소란스러워 발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멀리서 걸어오며 대위님을 불러야겠습니다. 그러면 놀라지 않으시겠지요?”

“아닙니다… 조용한 곳에서라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이곳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로미오가 귀엽다고 생각한 조반니는 깨끗하지만 염료가 다 빠진 로미오의 옷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숙여 신발도 확인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어딘가에 다녀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이마의 상처도 발견했지만 별 신경쓰지 않고 무시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요.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술을 한 병 시켰으니 선생님께서 식사를 시키십시오. 전 뭐든 괜찮습니다. 곧 엔초가 돌아올 시간이라 얼른 가 봐야 합니다.”

잠시 후 급사가 술을 들고 올라오자 조반니는 유난히 즐거운 태도로 음식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탁자 가득 차려지자 그는 오리 구이 요리를 로미오의 접시에 덜어 주었다. 한 접시씩 차지하고 먹을 수 있는 국물 요리도 있었지만 조반니는 일부러 먹기 어려운 음식을 시켰다.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갈고리 고양이 술집을 고른 두 사람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주 시끄럽거나 아주 조용한 곳이 적당했는데 저녁 무렵의 갈고리 고양이 술집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하숙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엔초나 그라나 부인에게 대화 내용을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날 묘지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며칠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생각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하신 말씀들이 믿기 어려워 선생님께서 거짓을 얘기하고 계신다는 의심도 해 봤습니다. 제6군단이 그토록 찾던 존재가 제 눈앞에 이렇게 나타났고 심지어 선생님이라니요. 제가 아닌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조반니는 가운데에 놓고 먹을 수 있는 빵 한 덩이를 뜯어내 로미오에게 덜어 주었다. 그가 다 먹고 난 후 금방 다시 자신에게 부탁할 수 있도록 아주 조금만 덜어 줬다.

“만약 그들을 체포해야 한다면 저는 제6군단에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그들을 검거하는 것은 저의 염원이자 제6군단의 오랜 염원이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제게 있어 좋은 제안이며 나쁠 것 없는 이야기라는 판단이 듭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를 믿고 모든 비밀을 밝혀 주신 선생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인 제가 군과 결탁하는 것은 부담이 따릅니다. 대위님께서 군을 떠나신 이상 저는 그들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으니까요.”

조반니는 오리 구이를 우아하게 한 점 잘라 먹으며 로미오의 얼굴을 구경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그들의 와해가 위험을 무릅쓸 만큼 선생님께 중요한 일입니까?”

로미오는 빵을 먹을 생각 없이 대화에만 집중해 있었다. 그가 열성적인 학생 같다는 생각에 조반니는 풋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저는 공화국 시민으로서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외줄 타기를 하는 삶은 제게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즐깁니다. 올빼미들의 틈에 섞여 들어간 것은 제게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와 가장 존귀하신 통령 각하를 위한 일을 하고 있으니 영광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식욕이 없어 포크만 쥐고 있던 로미오는 조반니가 이야기하는 동안 접시 테두리와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더듬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헛손질을 하다 빵 덩이를 겨우 잡았다.

“운 좋게 그들과 접촉해 입단의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생애 두 번 다시 없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을 떠돌다 이 나라에 정착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루바노인들과 어울리며 루바노의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진 저는 이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올빼미의 일원이 됐습니다. 모든 단원들에게 상위 단원으로 활동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영원히 말단 단원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아니었지요.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 대의를 행한다는 사실에 더 끌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위님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대로 ‘공화국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반니는 소리 없이 포크를 내려놓고 로미오를 구경했다. 음식을 씹는 턱의 움직임과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젖을 바라보다 뺨이 부풀었다가 꺼지는 것을 지켜봤다. 식사 예절을 어기는 법이 없는 조반니였지만 로미오가 희고 고른 치아로 빵을 뜯어 먹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어 그의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탁자 위에 팔까지 얹고 턱을 괬으나 로미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야기했다.

“눈이 먼 제가 그들의 틈에 쉽게 숨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칫 저로 인해 남은 기회를 전부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입단을 결정하더라도 순조롭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음식이 됐든 음악이 됐든 그림이 됐든 새로운 것에서 신선한 자극을 찾고 금방 질려 버리는 조반니였지만 로미오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바치 대학교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때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시들지도 않고 바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문자 그대로 꽃같이 아름다웠다.

왜 자신이 지금까지 그를 몰랐는지 의아했다. 로미오 같은 미인을 이제야 알아본 것이 애석했다. 그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의 아름다움을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이 꺼져 가는 순간을 수도 없이 보았고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조각하고 그리며 영원한 것은 없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로미오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빵 한 덩이를 먹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웠다.

“피에트로를 생각하면 그저 시간을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이 죄처럼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피에트로는 죽었고 다시 살아올 수 없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도 즉시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로미오와 곧 몸을 섞을 생각을 하니 아랫도리로 열이 몰렸다. 로미오의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하자 여지없이 성기가 섰다. 어차피 로미오가 보지 못하니 성기가 마음껏 서도록 다리를 벌려 편하게 앉았다.

로미오가 하는 말을 무시하며 두둑한 성기를 봐 달라는 듯이 그의 쪽으로 배를 내민 조반니는 혼자만의 더러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로미오를 겁탈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지난번과 달리 오늘은 그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싶었다. 성적인 쾌감을 느낄 때 로미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목소리가 변할지 궁금했다. 목석같은 그가 과연 성기를 빨릴 때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했다.

상상에 빠져 있어서였을까, 피식대며 로미오의 얼굴을 구경하던 조반니는 그의 입술에 빵 부스러기가 묻자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

“여기 묻었군요. 귀엽게도.”

엄지로 로미오의 입술을 훔친 조반니는 떼어 낸 빵 부스러기를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쪽, 소리 내 손가락을 빨았다. 자신이 ‘귀엽게도’라고 말한 것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다시 턱을 괴기까지 했다.

눈이 어둡다고는 하나 입술에 조반니의 손이 닿은 직후 그가 손가락을 빠는 소리를 들은 로미오는 일순 행동을 멈추고 조반니를 쳐다봤다. 그는 아주 또렷하게 ‘귀엽게도’라는 말까지 했다. 자신의 입술에 묻어 있던 무언가를 가져가 그대로 먹은 것도 분명했다.

마침 빈 접시를 들고 그들 곁은 지나가던 여급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가렸다. 그녀는 술집 앞의 고양이들이 사람처럼 앉아 빵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본 것처럼 크게 놀라 눈이 커졌다.

“지금, 무슨…….”

로미오가 할 말을 잃은 듯 자신의 입술을 만지고 나서야 조반니는 조금 전 한 행동을 뒤늦게 깨달았다. 삽시간에 웃음을 그친 그는 턱을 괸 손을 재빨리 풀었다.

여태 로미오에게 거절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몸 이곳저곳을 가볍게 만져 왔는데 그의 입술을 훔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져가 먹기까지 했다. 지난번 네베의 술집에서는 술에 취한 척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지만 지금은 술에 취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술병은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 있으니 당연했다.

머릿속으로 즐거운 상상을 하느라 미처 본심을 숨기지 못한 것은 멍청한 행동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로미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당혹스러워 보였다.

“죄송합니다, 대위님.”

로미오는 조반니가 말한 ‘귀엽게도’가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 말을 들어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조차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데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조반니가 자신을 귀엽게 여길 이유는 없었다. 귀엽다는 말은 자신이 엔초에게나 쓰는 말이었다.

“무례하게 느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단지…….”

로미오는 조반니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곤란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건 입에 음식을 묻히고 먹는 어린아이처럼 손수 입이 닦여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에는 자신의 손등에 조반니의 입술이 닿았고 이번에는 자신의 입술에 조반니의 손이 닿았다. 그의 손끝이 입술의 빵을 가져갈 때의 감촉이 아직 선명했다.

피에트로를 매장하며 눈물을 흘리던 자신의 뺨을 닦아 준 조반니였다. 그가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입술에 묻은 것을 가져가 먹는 것은 얘기가 달랐다. 이것 역시 자신이 엔초에게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대위님께서 들으실 거라는 생각을 미처 못 하고 멋대로 한 말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조반니는 거듭 사과하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고 있었는데 이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만약 레오나르도나 친치아가 옆에 있었다면 적어도 친치아는 킥킥대며 구경했을 것이다.

“……죄송스러워하실 것까지 없습니다. 조금 전 행동에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로미오는 입을 닦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선생님께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분이시라는 걸 압니다. 식사 중에 제 입술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신경 써 떼어 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이런 행동은 되도록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행동하시는 것은…… 예, 솔직히 말씀드려 조금 불편하군요.”

조반니는 한숨을 쉬며 눈가를 문질렀다. 이래서 조심해 왔던 것이다. 이제 로미오의 몸을 건드리는 것은 전보다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오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건드리면 로미오가 더 강한 강도로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할 것이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말보다 손이 빨라 그만 실례를, 아니죠. 귀엽다느니 하는 무례한 말을 했으니 말이 더 빨랐다고 할 수 있죠. 정신이 정말로 어떻게 된 것인지… 부디 저를 탓해 주세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어떻게 그런 무례한 행동과 언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죄송합니다. 대위님을 우습게 알거나 비웃으려고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로미오에게 잘 보이고자 온갖 가증스러운 방법을 써 왔던 조반니는 주절대며 사과를 하더니 식탁이 내려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과장한 것이었다.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어쩌자고 그런 말과 그런 행동을…….”

조반니가 실수로 발이라도 걷어찬 것처럼 과도하게 미안해하자 로미오는 약간 당황했다. 그래서 마치 입장이 뒤바뀐 것처럼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놨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제가 식사 자리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엔초조차 오늘 아침에 제가 식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 소매에 묻은 수프를 닦아 주었을 정도입니다. 옷소매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거나 단추가 삐뚤어졌을 때 알려 주는 이들이 없다면 저는 옷을 단정하게 입을 수도 없을 겁니다.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만, 제 입가나 옷에 부스러기 따위가 붙어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 전처럼 직접 도움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미오는 조반니의 입장을 고려해 되도록 공손히 말했다.

그는 피에트로의 시신을 묻을 수 있도록 도와준 데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하고 단테의 12인의 단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이런 일로 조반니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로 선생님께서 기분 상하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로미오가 마하는 동안 눈가를 짚고 있던 조반니는 슬쩍 손을 떼며 로미오의 눈치를 살폈다. 이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눈물까지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는 로미오의 표정에서 강한 모욕감이나 불쾌함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눈을 굴렸다. 화가 나진 않은 모양이지?

“……선생님.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십니까?”

대답이 없자 로미오는 조반니가 자신의 앞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되물었다. 상대가 자리를 비운 것도 모르고 혼자 이야기하다 뒤늦게 자신이 혼잣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자주 있었다.

“듣고 있습니다.”

사람의 표정을 관찰하는 개처럼 로미오의 표정을 자세히 뜯어본 조반니는 생각에 빠졌다. 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아쉽지만 로미오가 자신의 저의를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대위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이해했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조반니는 다시 턱을 괬다. 딱딱하게 선 성기를 누르기 위해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조금 전까지 쩔쩔매는 연기를 했던 것은 금방 잊고 포크를 들었다.

“그러면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까요?”

조반니가 재촉하자 로미오는 입술에 빵이 묻을 일이 없도록 아주 작게 뜯어내 한 입 먹으며 말했다.

“저는 덫을 놓고 기다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입단을 결정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혼자만으로도 그들의 와해를 충분히 이끌 수 있을 겁니다. 제게는 상위 단원들을 완벽히 속여야 하는 위험부담이 따르기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틈으로 섞여 들어가려는 것은 피에트로를 위해서입니다. 피에트로가 억울하게 죽은 이상 그들을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군을 떠났으나 저는 지금껏 그들을 쫓아왔습니다. 사관 학교에 입학했던 소년 시절부터 퇴역을 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테의 12인의 절멸은 제 목표와도 같았습니다. 그 목표를 이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피에트로가 죽고 군을 나온 지금 제가 더 잃을 것은 무엇이 있으며 망설일 이유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대위님의 결정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피에트로를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입단을 위해…….”

조반니는 말을 하다 말고 뒤를 홱 돌아봤다. 그는 등 뒤로 지나가던 어느 풍채 좋은 사내를 보더니 난데없이 눈을 번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번개처럼 사내에게 달려든 조반니가 그의 멱살을 틀어잡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요!”

“당신, 날 미행했지?”

큰 소리가 나자 술집 안의 이목이 쏠렸다. 느닷없이 목이 움켜잡힌 사내가 켁켁댔지만 조반니는 손을 놓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로미오는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슨 일입니까?”

조반니가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었는데 대답하는 상대는 밭은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로 보아 조반니가 그를 밀치거나 넘어뜨린 것 같았는데 조반니가 말한 ‘미행’이라는 말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설마 저자가…….

“미행이라니! 난 그저, 켁, 엑…! 여기 술을 마시러 온 것뿐이야!”

손님들에게 술을 가져다주던 여급이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 달려와 조반니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조반니는 꿈쩍도 하지 않고 거칠게 멱살을 당겼다.

“둘러댈 생각 마. 당신은 분명 날 미행했어. 내 뒤를 밟아 여기까지 따라왔지?”

“왜 이러세요! 우선 이 손부터 놓고 얘기하세요!”

“미행은 무슨, 큭, 켁! 악……!”

“똑바로 말해. 분명 미행이 이번 처음은 아닐 거야. 왜 내 뒤를 밟았지?”

조반니의 손아귀 힘에 목이 졸린 사내가 눈이 뒤집히며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자 1층에서 급사들이 쫓아 올라오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달라붙어 조반니를 막았다.

사람들에 의해 조반니가 떨어져 나가자 사내는 바닥에 엎드려 거칠게 기침을 했다. 조반니는 그 짧은 사이에 조용히 격분해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큭, 콜록…! 당신 대체 뭐야? 누가 누굴 미행했다는 거야!”

여급은 기침을 하는 사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다 창백한 낯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로미오를 발견했다.

“당신은 분명히 날 미행했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조반니가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여급은 사내의 옷을 털어 준 뒤 두 사람이 말싸움하도록 내버려 두고 로미오에게 다가갔다.

“오해가 있었나 봐요. 이제 괜찮아요. 놀라셨죠?”

로미오가 소리만으로 크게 놀란 것 같아 그를 안심시킨 여급은 사내에게 가져다줄 물 한잔을 위해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로미오가 억센 힘으로 손목을 잡는 바람에 그에게 붙들렸다. 팔이 저릴 정도로 로미오의 손힘이 강해 몸을 움츠리는데 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자가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그의 인상착의를 제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혹시… 검은 망토를 입고 있습니까?”

* * *

“흠…… 그러니까 선생님께선 이자가 선생님을 미행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분명합니다. 저는 이미 전부터 제 뒤를 밟는 자가 있다고 의심해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따라다니는 시선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술집 안이 공안국 간부들의 등장으로 어수선해졌다. 티모테오 우초 경사는 조금 전 소란을 해결하기 위해 간부들과 함께 갈고리 고양이 술집을 찾았다. 그는 지난번 출판 축하회에 이어 로미오와 조반니가 또다시 함께 있자 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사내가 정말로 조반니를 미행했는지 조사했다.

그러나 조반니의 말과 달리 사내는 이 술집을 자주 찾는 손님인데다 오늘 함께 술을 마시기로 한 일행까지 있었다. 사내를 포함한 그들 일행은 단단히 화가 났으나 뒤늦게 조반니가 명성이 자자한 의사임을 깨닫고 수군댔다. 물론 수군대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조반니를 가리키며 귓속말을 주고받는 이들은 술집 안에 몇 명 더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달리 미행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급사의 말에 따르면 이분은 즐겨 주문하는 술의 종류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다만 정말로 선생님을 미행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저희가 이 구역의 단속을 돌도록 하겠습니다.”

사내가 미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됐으나 조반니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경고조의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금으로서는 별수 없겠군요.”

행패를 부린 것으로 모자라 끝까지 억지를 주장하는 조반니의 태도에 사내가 벌컥 성을 내려고 하자 티모테오가 막아섰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포르차 선생님은 명망 있으신 분인데 이런 일로 좋지 못한 소문에 휘말리게 되셨습니다. 이미 술집 안의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이시죠?”

“이보시오! 내가 저자를 공격한 게 아니오. 저자가 나를 공격했다는 말이오!”

“압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먼저 이분께 사과를 드리는 게 좋겠군요. 어쨌든 선생님께서 멱살을 잡으셨고 이분도 많이 놀라셨으니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재판을 한 건 앞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티모테오가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를 바라며 조반니에게 사과를 종용하자 조반니는 누그러지는 기색 없이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만 움직여 말했다.

“사과드립니다.”

“헛, 참!”

“소란이 가라앉았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조반니의 곁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화를 들은 로미오는 긴장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멀찍이 물러나 섰다. 여급의 말에 따르면 조반니가 공격한 사내는 검은 옷을 입지도 않았고 눈동자가 금색도 아니라고 했다.

공안국이 돌아가자 조반니의 명성을 알고 있어 부담을 느낀 사내가 씨근덕대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화가 덜 풀렸는지 술을 잔뜩 주문했다.

조반니와 로미오는 식사를 채 다 마치지 못했으나 어쩔 수 없이 술집을 나왔다.

“괜찮으십니까?”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로미오는 조반니의 기색을 살폈다.

“예, 괜찮습니다. 운 나쁘게 이런 일을 겪어 불쾌하지만 별도리가 없군요.”

사내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던 조반니의 목소리를 떠올린 로미오는 잊고 있었던 사건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가 5년 전 어느 술집에서 방적공을 때려죽였던 사건. 그 사건에 관해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려죽였다는 기록에 어폐가 있을 수도 있었고 오늘처럼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누군가를 죽일 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정말로 조금 전 그자가 선생님을 미행한 것이 맞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짐작 가는 것이 없습니다.”

“공안국이 도착하기 전에 여급이 제게 그 사내와 잘 아는 사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는 절대로 수상한 자가 아니라고 장담했습니다. 만약 그자가 아니라 다른 자가 선생님을 미행하는 것이라면 단테의 12인과 관련이 있지는 않겠습니까?”

“저도 그 생각을 하던 참입니다. 어쩌면 단테의 12인의 단원 중 하나가 제 뒤를 밟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단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아는 것이 아닌 데다 상위 단원들에게 정체를 숨기고 비밀리에 활동하는 하위 단원들이 있습니다. 지부에서 저를 감시하기 위해 누군가를 파견한 것이라면 그들 중 하나가 제 뒤를 밟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단테의 12인이 무슨 이유로 선생님을 감시한다는 말입니까?”

“피에트로의 일로 조사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조직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상위 단원이 군의 조사를 받으면 조직에서는 해당 단원의 활동을 견제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이미 저는 중앙 지부에 불려가 조사를 한 차례 받았으며 조사 중에 대위님에 관한 질문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대위님과 친분을 갖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의심 없이 넘어가기는 했으나 모쪼록 앞으로 조심해야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입단을 결정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입단은 오로지 상위 단원의 추천으로만 이뤄집니다. 비록 조사를 받았다고는 하나 입단 결정에 있어 제 권위는 강력합니다.”

조반니는 술집의 2층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쩌나요. 허기가 지지 않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만 돌아가죠.”

“저는 의사 협회 모임이 있어 그곳에 가 봐야 합니다. 혼자서 하숙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신가요?”

조반니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길 바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로미오를 쳐다봤다. 실처럼 가늘게 뜬 눈이 의미심장해 보였지만 로미오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예, 집으로 가는 길은 익숙합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퇴역한 후로부터 로미오는 아침 일찍 하숙집을 나서는 조반니와 마주치거나 저녁 늦게 돌아오는 그와 밤 인사를 나눌 때가 많았다. 오늘 아침에도 하숙집 문 앞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던 두 사람이었다.

조반니는 나중에 뵙겠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낀 것처럼 싱글거렸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두 사람은 각자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는데 서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조반니가 등 뒤에서 외쳤다.

“대위님!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로미오는 볼 순 없으나 멀어지는 발소리와 목소리를 통해 그가 저만치 멀어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발소리를 내며 멀어졌던 조반니는 잠시 후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로미오가 작은 점이 되어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조반니는 갈고리 고양이 술집의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미 오늘 아침에 로미오를 겁탈할 마음을 먹은 그는 거침없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어지럽게 엉긴 골목을 따라 걷다 큰 거리가 보이자 골목 어귀에 섰다.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니 멀리서 로미오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방향을 틀어 포목점이 있는 로사티 1번가가 아닌 다른 거리로 들어섰다. 길을 돌아가려는 로미오의 의중을 간파한 조반니는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곳곳을 누비던 그가 멈춰 선 것은 또 다른 골목 어귀였다.

“자,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혼자 중얼댄 조반니는 골목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길에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지팡이를 좌우로 쓸며 걸어오는 로미오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자 침착하게 그를 기다렸다. 바로 조금 전에 헤어졌지만 이렇게 훔쳐보고 있자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로미오를 주시하는 조반니의 눈빛은 바로 조금 전에 함께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하고 역겨웠는데 그는 흡사 다른 사람인 양, 조반니에게서 분리된 어떤 낯선 사내인 양 로미오를 쳐다봤다.

“그렇지. 좀 더. 더 가까이…….”

이윽고 지팡이 소리가 가까워지며 로미오가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조반니는 발끝으로 그의 지팡이를 걸었다. 탁, 쓰러진 지팡이가 골목 안으로 굴러들어 오자 조반니는 뒤로 물러섰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그는 로미오가 지팡이를 찾으려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의 발 앞에 쓰러져 있는 지팡이를 발로 굴러 소리를 냈다. 이쪽을 쳐다본 로미오는 팔을 뻗어 벽을 더듬더니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조반니가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며 그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리는데 로미오가 생각을 바꾼 것인지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을 불렀다.

“죄송합니다만 제 지팡이를 주워 주시겠습니까?”

순간 조반니는 재빨리 뒤돌아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길을 지나던 행인이 로미오의 지팡이를 대신 주워 건네자 그는 감사 인사를 하며 받아 들었다.

“그렇게 한단 말이지.”

별다른 수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로미오가 다시 걸음을 옮겨 저만치 멀어지자 조반니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바치 시내의 지도를 그린 그는 막힘없이 방향을 틀어 걷다가 다시 어느 골목 어귀에 멈춰 서서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나 저 멀리서 로미오가 걸어오고 있자 품 안에서 둘둘 뭉친 손수건을 꺼냈다. 어서 빨리 그의 맨살을 만지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으나 이 거리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로사티 3번가가 나왔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로미오가 어느 상점 앞을 지날 무렵 상점 주인이 나와 사과 한 바구니를 건넸다. 로미오와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는 주인이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로미오가 인사를 하며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주인이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가자 로미오는 한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한 손에는 사과 바구니를 든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스무 발자국. 열 발자국. 다섯 발자국. 골목 어귀 바로 근처까지 로미오가 다가왔는데 운 좋게도 마침 주위가 한산했다. 로미오를 추월해 앞서 걸어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뒤따라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리 반대편에 사람들이 있었으나 길 한쪽에 붙어 서서 걷고 있는 맹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로미오가 바로 앞을 지나가려는 그 순간 조반니는 대담하고도 놀랍게 한 손으로 로미오의 입에 손수건을 쑤셔 넣으며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껴안아 골목 안으로 끌어당겼다.

“읍……!”

사과 바구니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과가 와르르 쏟아지자 조반니는 골목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사과들을 발로 밟아 으깼다. 남은 사과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골목 여기저기로 굴러갔다.

“읍, 으, 그……!”

소스라치게 놀란 로미오가 몸부림을 쳤지만 조반니는 입을 꽉 눌러 골목 안쪽으로 끌고 갔다. 지팡이를 놓친 로미오는 자신을 뒤에서 껴안고 있는 조반니를 팔꿈치로 밀어내려 했지만 조반니는 로미오의 양팔을 단단히 안고 숨 쉬지 못하도록 그의 가슴뼈를 눌렀다.

“오랜만이군. 그간 내가 그립지는 않았나?”

작은 새가 지저귀듯 고음의 목소리로 말한 조반니는 로미오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며 저항하자 그의 머리채를 잡아 벽 쪽으로 집어 던졌다. 딱딱한 벽에 나가떨어져 몸을 부딪친 로미오는 그대로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나 머리를 박은 충격으로 로미오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지 못했다.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손바닥은 벽과 바닥에 쓸려 피부가 벗겨졌다. 어떻게든 품 안에서 단도를 꺼내려고 했지만 구역감이 치밀며 현기증이 일었다.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들었던 고개를 그대로 떨구며 바닥에 찧는데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자루가 머리 위에 씌워졌다.

“읍……!”

시장에서 물건을 담을 때 흔히 쓰는 끈 달린 자루가 머리에 씌워지자 소리가 차단됐다.

조반니는 로미오가 자루를 벗을 수 없도록 턱 아래에 끈을 묶은 다음 쓰러져 있는 그의 멱살을 잡고 골목 안으로 끌고 갔다.

“읍…! 흡, 으……!”

어느 여관이 위치해 있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조반니는 머리 위에 난 여관의 2층 창문을 올려다봤다. 열린 문 너머에서 불빛과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뒷문이 없었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찌든 물 때 냄새가 나는 으슥한 골목은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골목 밖보다 서늘했다.

입이 막힌 채 악을 쓰는 로미오를 벽으로 밀어붙인 조반니는 그의 양팔을 등 뒤로 잡고 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로미오가 거친 신음 소리를 내며 어깨를 비틀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읍…! 읍, 윽… 읍!”

바지춤에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저항이 거세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등을 발로 걷어차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쿵, 소리를 내며 옆머리부터 부딪친 로미오가 쓰러져 나뒹굴자 조반니는 그에게 다가가 양팔을 발로 밟았다.

“불구가 되고 싶지 않다면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윽, 극, 흡……!”

오른쪽 팔꿈치를 신발 굽으로 힘줘 누르자 로미오가 팔을 빼내기 위해 몸을 들썩였다. 조반니는 체중을 실어 로미오의 팔 위에 올라서더니 주머니에서 허리띠용 줄을 꺼냈다. 다음 순간 두두둑, 하고 오른쪽 팔꿈치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로미오가 발작을 하듯 전신을 떨었다.

“으윽읍, 윽……!”

로미오의 오른쪽 팔꿈치 뼈가 부러진 것을 알아차린 조반니는 인상을 쓰며 그의 오른팔에서 발을 뗐다. 손목을 잡고 팔을 확인하려는데 놀랍게도 로미오가 부러진 오른팔로 거칠게 손을 뿌리치며 언제 준비해 온 것인지 모를 단도 한 자루를 품속에서 꺼냈다. 칼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노련하게 휘둘렀으나 손이 엇나가 조반니의 신발 밑창을 찌르는 것에 그쳤다.

단도가 발바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신발에 박힌 순간 조반니는 로미오의 턱을 걷어찼다. 다시 한번 쿵, 하고 뒤로 넘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로미오는 그대로 몸이 축 늘어졌다. 자루 안에서는 맥없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조반니는 신발에서 단도를 빼 살펴보더니 로미오에게 다가가 웃옷 앞섶을 헤치고 쇄골 위에 칼을 들이댔다.

“제법이군. 하지만 반항해 봤자 네게 득 될 것이 없다. 협조한다면 금방 끝내지.”

“윽, 흐……!”

쇄골 아래가 찢어지며 피가 맺히자 조반니는 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로미오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했다. 그의 두 팔을 묶은 조반니는 바지와 속옷을 벗기기 위해 로미오의 허리끈을 풀었다. 팔이 부러진 데다 반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로미오는 허벅지를 모으며 난폭하게 저항했다. 억지로 다리를 벌리게 하자 그는 몸을 둥글게 말며 버텼다.

머리에 뒤집어씌운 자루 안에서는 고통에 찬 숨소리가 들렸다. 허벅지를 다시 벌리게 했으나 로미오는 힘을 주며 모았고 조반니는 주먹질을 하려는 것처럼 팔을 들었지만 금방 다시 손을 내리고 로미오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머리에 여러 번 충격이 가해진 탓에 술을 마신 사람처럼 휘청거린 로미오는 조반니가 이끄는 대로 벽에 등을 대고 섰다.

“으읍, 흐, 읍……!”

조반니가 다시 바지를 벗기려 들자 로미오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무릎을 모았다. 바지가 벗겨지는 것만은 막기 위해 남은 힘을 쥐어 짜내 안간힘으로 몸부림쳤다.

“여러 명과 해 보고 싶은가? 내게 시간은 많아. 원한다면 장소를 옮기지. 뒤가 다 벌어져서 주먹 정도는 거뜬히 들어가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조반니가 멱살을 끌어당겨 똑바로 서게 하자 로미오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조반니는 온건하게 로미오를 협박했다.

“아니면 옷이 벗겨진 채 이 골목에 버려지길 바라나?”

자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로미오의 일그러진 얼굴이 짐작 갔다. 힘을 줘 모으고 있는 그의 허벅지 사이로 무릎을 넣어 벌린 뒤 속옷과 바지를 한 번에 내리니 성기가 드러났다.

음모가 없는 선홍빛 성기를 보자 흥분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로미오의 은밀한 이곳을 보는 게 얼마만의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밑으로 늘어진 성기 기둥과 음낭은 로미오가 비틀거리자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자루 너머에서 로미오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윽, 그, 하는 숨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조반니는 몸서리를 치듯 어깨를 부르르 떨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지금 이 순간 마치 로미오가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몸에 관한 권한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에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조반니는 로미오의 속옷과 바지를 발목 밑으로 끌어 내려 완전히 벗기곤 그의 쇄골에 입술을 묻으며 엉덩이를 주물렀다. 손안에 잡히는 흰 엉덩이 살을 자국이 남을 정도로 억세게 주무르자 로미오가 고개를 웅크리며 몸을 비틀었다.

손바닥에 와 닿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에 성기가 서기 시작한 조반니는 로미오의 목을 타고 올라가 그의 귀밑을 빨았다. 아프지 않게 이로 물고 애무하는 동안 로미오가 고개를 마구잡이로 내저었지만 그럴수록 더 집요하게 빨며 엉덩이 사이의 구멍을 괴롭혔다.

“읍……!”

좁은 구멍 사이에 손가락이 들어가자 로미오가 허벅지를 굳히며 발끝을 들었다. 뒤를 파내듯이 손가락을 넣었다가 뺀 조반니는 코 속 깊이 로미오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그의 목을 맹렬히 빨아 댔다. 손가락을 더 안쪽으로 넣어 주름져 달라붙는 구멍을 벌리자 로미오가 벽에 뒷머리를 대며 고통스러워했다.

성기는커녕 손가락 끝도 겨우 들어가는 작은 구멍을 거칠게 쑤셔 대던 조반니는 로미오의 엉덩이 살을 뜯어낼 것처럼 양옆으로 벌려 더 깊이 손가락을 넣었다.

“하아… 안이 끝내주게 따뜻하군. 아주 좁기도 하고 말이야.”

주름진 돌기들이 손가락을 물어 대는 느낌이 들자 조반니는 검지에 이어 중지와 약지까지 구멍 안으로 넣었다. 벽에 밀어붙여진 로미오가 주저앉을 것처럼 몸을 떨었지만 조반니는 봐주지 않고 손가락을 더 깊숙이 넣었다. 그의 신음 사이로 제발, 하는 말이 섞여 들렸지만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잇자국이 남도록 로미오의 목을 빨았다.

쯔걱, 쩍, 쯔억…….

구멍 안을 마음껏 휘저으며 눌러 대다 손가락 세 개를 쑥 빼내자 작은 주름들이 벌름대며 오그라들었다. 조반니는 로미오의 머리에 씌운 자루를 살짝 들추더니 그의 부어오른 턱과 터진 입술을 확인하고 씩 웃었다. 뺨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난 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반니는 손수건을 물고 있는 로미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로미오가 입술을 받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오므려 이를 닫자 혀를 넣었다. 추웁, 춥, 침이 고이는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빨며 혀로 그의 잇몸을 간질이던 조반니는 로미오가 고개를 피하기 위해 벽에 등을 부딪치며 몸을 들썩이자 양손으로 로미오의 머리를 잡았다.

“흡, 으… 그읍……!”

“춥, 훕, 하아… 추읍, 흡…….”

“그, 으읍……!”

게걸스레 한참을 입술만 빨던 조반니는 다시 로미오에게 자루를 씌워 끈을 묶은 다음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로미오의 성기를 입에 넣었다. 피부에 배어 있던 살냄새가 얼굴 가득 끼쳐 오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말랑하고 발긋한 로미오의 성기가 벌겋게 될 정도로 힘껏 빨자 로미오가 허리를 뒤틀며 저항했다.

혀끝에 닿는 로미오의 성기는 따뜻하고 매끈했으며 입 안에 가득 찰 정도로 컸다. 별다른 맛은 나지 않았으며 음모가 없어 까슬한 느낌 없이 보들보들했다. 양손으로 허벅지를 붙든 채 로미오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의 턱과 목젖이 훤히 보여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아랫배와 미끈한 성기 뿌리가 보기 좋아 콧대가 배에 문질러질 정도로 성기를 깊이 삼키자 목구멍에서 쿨쩍대는 소리가 났다.

아래로 처진 성기 기둥을 핥고 빨다 음낭을 한쪽 볼에 담고 입 안에서 굴렸지만 성기는 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둥 전체를 혀로 조이고 요도 구멍을 핥으며 고개를 앞뒤로 움직여 빨아 댔지만 마찬가지였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로미오의 신음 소리는 쾌감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고통에 찬 숨을 삼키며 무릎만 자꾸 굽혀 댔다.

“흐읍, 윽…….”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로미오의 성기를 뱉고 자리에서 일어선 조반니는 자신도 바지를 벗고 속옷을 젖혔다. 거무죽죽한 성기가 바짝 선 채 퉁 튀어 오르며 로미오의 성기에 닿자 로미오가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삽입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조반니는 구멍이 보이도록 로미오의 한쪽 다리를 들어 엉덩이가 자신을 향하게 했다. 아래가 다 벗겨진 채 다리가 들려 올라간 로미오는 아랫배가 크게 들썩일 정도로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반항했다.

발그스름한 주름 입구에 귀두를 비빈 조반니는 허리를 낮춰 자세를 잡곤 그 상태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읍, 으으윽, 흐으……!”

로미오가 허리를 틀고 몸을 푸들거렸지만 그는 팔꿈치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고개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머리의 충격도 상당했다. 스스로의 몸부림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려 하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허리를 붙들었다.

구멍 안은 손가락으로 여러 번 쑤시고 벌렸음에도 성기가 들어갈 틈 따위는 없었다. 삽입이 잘되지 않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다른 한쪽 다리도 들어 올렸다.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두 다리가 들린 로미오는 몸이 공중에 뜬 채 벽에 등만 붙인 자세가 됐다.

로미오의 몸을 반으로 접어 벽에 붙인 조반니는 아래에서 위로 허리 짓을 하며 그의 뒷구멍에다가 성기를 쑤욱, 박았다. 끝까지 들어갔다가 뒤로 빠지며 허리 짓 속도를 올리자 로미오의 벽이 등에 쓸리며 그의 뒷머리가 쿵, 쿵 부딪쳤다.

“그, 읍… 흐으윽, 읍……!”

척추부터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에 로미오는 괴성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부림쳤다.

뼈가 갈려 나가고 몸 안의 장기가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처절한 통증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느닷없이 습격당한 순간 직감했던 사실이 몸 안으로 성기가 들어온 지금 더욱 잔인하게 실감됐다.

이로써 세 번째 겁탈이었다.

검은 망토의 사내는 두 번째 겁탈에서 끝낼 마음이 없었다. 그는 분명 여태껏 기회를 노려 온 것이었다. 그가 다시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리석은 만용이었다.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은 자루 속에 머리가 담긴 채 겁탈을 당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먼 맹인이었다.

“하, 그래… 이 느낌이지, 후우…… 여태 이걸, 큿, 얼마나, 기다렸는지, 하…….”

조반니는 엉덩이를 드러낸 채 숨을 헐떡대며 허리 짓을 빨리했다. 핏줄이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온 그의 성기는 보기 거북할 정도로 벌건 데다 거대했다.

구멍 안쪽의 주름들이 성기를 밀어내며 뱉어 내려고 했지만 조반니는 음낭이 뭉개질 정도로 로미오의 배 속 깊이 성기를 처박았다. 질척대는 소리와 함께 로미오의 아랫배 부근에서부터 윗배까지 성기 윤곽이 불룩하게 드러나자 로미오가 벽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부딪치며 자루 속에서 신음했다.

몸의 떨림은 오히려 조반니의 성기를 더 세게 조였고 이미 옷을 벗을 때부터 흥분해 있던 조반니는 자신의 성기를 조이며 안으로 우므러드는 주름의 압박에 기분 좋게 이마를 찌푸렸다.

“하아, 후우, 후…….”

검질기게 달라붙는 불그레한 구멍과 귀두를 감싸는 축축함, 삽입할 때마다 느껴지는 살벽의 꿈틀거림, 성기를 긁어내는 듯한 강한 조임에 사정감을 느낀 조반니는 로미오의 성기가 위아래로 덜렁거릴 정도로 잘게 허리 짓을 하더니 곧 로미오의 몸 안에 정액을 쏟아 냈다.

“크윽!”

사정의 쾌감에 엉덩이를 움찔대던 조반니는 손톱으로 로미오의 허리 뒤쪽을 긁었다. 느릿하게 성기를 물렸다가 다시 박자 불긋한 구멍이 찔끔대며 정액을 토해 냈다.

아주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성기가 박혔다가 뽑혀 나오는 모양새를 감상하던 조반니는 정액이 밀려 나오도록 성기를 쭉 밀어 박았다. 성기 부피만큼 비집고 흘러나온 정액은 로미오의 엉덩이 골 사이에 맺혀 질퍽한 거품을 만들어 내더니 조반니의 성기를 타고 흘러내려 빽빽하게 숱 많은 그의 음모를 적셨다.

강한 조임에 귀두가 얼얼한 것을 느낀 조반니는 정액으로 가득 찬 로미오의 배 속에서 찔꺽, 찔꺽 소리가 나도록 허리 짓을 크게 했다.

“하, 후우…… 하아…….”

눅눅한 구멍이 성기를 깊이 삼키자 조반니의 성기는 금세 다시 단단해졌고 다리를 벌린 채 몸이 축 늘어진 로미오는 저항할 힘을 잃은 듯 고개를 옆으로 떨궜다.

정액으로 흥건해진 성기를 뽑아내자 정액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성기를 받아 낸 직후라 바로 다물어지지 않는 구멍은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작게 벌어지며 움직였다.

두 다리를 내려 주자 로미오는 서지 못하고 벽을 타고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더러운 바닥 위에 허벅지를 벌린 채 앉은 로미오는 다리 사이가 정액으로 푹 젖어 있었다. 풀어 헤쳐진 목에는 잇자국과 붉게 빨린 자국이 보였고 쇄골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아래가 다 벗겨진 채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쓰고 널브러진 로미오는 벽에 등을 기대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어 가슴이 오르내렸지만 탈진한 것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발끝을 움직인다거나 허벅지를 오므리는 행동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후우…….”

땀에 젖은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린 조반니가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자 로미오는 종잇장처럼 일으켜져 벽을 보고 섰다. 실은 선 것이 아니라 조반니에 의해 붙들린 것이었지만 조반니는 개의치 않고 로미오의 엉덩이만 안아 올려 뒤에서 구멍을 비볐다. 감질나게 귀두로 구멍을 후벼파다 한 번에 끝까지 쑥 쑤셔 박아 허리 짓을 했다.

철퍽, 철퍽! 벌겋게 불뚝거리는 성기에 의해 정액은 구멍 밖으로 밀려 나왔고 의식을 반쯤 잃은 로미오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자세가 되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엉덩이를 그대로 잡고 그를 무릎 꿇린 후 등 뒤에서 성기를 쑤셨다.

바닥에 어깨와 가슴을 대고 엎드려 흔들리기 시작하자 로미오의 무릎이 바닥에 긁혀 붉게 변했다. 머리에 쓴 자루에도 거뭇한 자국이 묻어 나왔다. 바닥에 처박힌 로미오의 머리 옆으로 쥐 한 마리가 지나갔지만 조반니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허리를 놀렸다.

“후우, 후…… 흐음…….”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던 조반니는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며 다시 한 번의 사정을 맞았다. 근육이 굳고 호흡이 일시적으로 멎으며 앞서보다 더 많은 양의 정액이 터져 나와 주름 입구를 비집고 부르륵 쏟아졌다.

엎드려 있는 로미오는 움직임도 없었고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리 사이에 늘어진 성기가 앞뒤로 흔들릴 뿐 허리를 꼬거나 들썩이지 않았다.

“크으, 윽!”

쾌감에 고개를 뒤로 젖힌 조반니는 큰 숨을 몰아쉬며 허벅지를 후들후들 떨었다. 배를 앞으로 내민 채 성기 뿌리를 꿈질대며 이맛살을 찌푸린 그는 사정이 끝났음에도 성기를 빼지 않고 다시 허리 짓을 이어 갔다. 정액으로 눅눅해진 로미오의 배 안에서 성기는 다시 단단해지며 크기가 커졌다.

뒤늦게 로미오가 정신을 잃었음을 깨달은 조반니는 로미오의 몸 위로 상체를 숙여 그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웃옷 안으로 손을 넣어 유두를 세게 꼬집으며 튕겼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로미오가 자루 속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움찔 들었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자 정액으로 뒤엉켜 있던 안이 꿀럭대며 머금고 있던 것들을 토해 냈다.

조반니는 뜨거운 숨을 느긋하게 들이마시며 로미오의 엉덩이를 모아 쥐었다. 끈적거리고 부드러운 안이 성기 기둥을 조여 대고 뿌리를 뽑아낼 듯이 빨아들였다. 두툼한 성기에 눌린 구멍 안쪽이 처음과 비교해 많이 벌어지자 성기는 더 수월하게 깊이 쑤셔졌다. 본래 부드럽고 연약했을 안쪽이 단단한 귀두에 의해 이리저리 찔리고 비벼지며 부어올라 성기가 파묻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 안쪽 전체가 물컹하고 따뜻해 성기가 살벽에 닿을 때마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눅진한 만큼 빠르게 좁혀 들어 성기를 조이는 로미오의 안은 네 번째 겁탈을 계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읍, 으흐읍……!”

로미오가 괴롭게 신음하며 등 뒤로 묶인 손에 힘을 줬다. 경련을 하며 등을 둥글게 웅크린 그는 바닥에 무릎을 문지르며 손수건을 문 상태로 기침을 토해 냈다. 숨소리에는 비음이 섞여 있었고 호흡은 비정상적으로 느렸다.

“……후읍, 윽……!”

스스로 언제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알지 못하는 로미오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 소리와 다리 사이를 치받는 딱딱한 성기를 느끼고 몸을 비틀었다.

머리에 씌워진 게 무엇인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이마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땀인지 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묶인 팔은 저려서 감각이 없었고 팔꿈치에서는 심각한 통증이 느껴졌다. 입술은 터져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았고 잇몸에는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현기증 때문에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리는 동작이 의식 없이 절로 반복되었다. 입 안에 든 손수건은 침으로 축축한 데다 목구멍의 숨통을 막았다.

“윽, 흑… 읍…….”

울음소리 같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동안에도 몸은 계속 흔들렸다. 남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곳이 사내에 의해 벗겨지고 만져지고 있었다. 겁탈이 처음이 아닌데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몸은 자신의 것인데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엉덩이 사이는 살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쓰라렸고 허벅지는 질척했다. 숨을 제대로 내뱉을 수도 없었고 들이마실 수도 없었다. 엎드려 있는 이곳이 바닥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어느 골목에서 습격을 당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등에 팔이 닿아 있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살갗이 불에 익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반으로 갈라 죽인다 해도 이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는 자세 때문에 목이 잔뜩 굽어 가슴이 졸리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의식을 잃은 사이 사내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공포감이 몸을 덮쳤다. 숨은 점점 더 헐떡거리게 됐고 목구멍 안쪽에서는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머리의 두통과 묶인 팔의 통증이 너무 심해 당장 이 통증만이라도 어떻게든 가시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좁은 자루 안에서 숨을 헐떡대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입을 크게 벌려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등 뒤에서 성기를 몸 안으로 넣었다가 빼고 있는 사내는 자신의 골반을 잡고 마구잡이로 몸을 흔들어 댔다. 굵고 두꺼운 성기가 아랫배를 지나 갈비뼈 아래까지 깊이 치고 들어오며 자신의 몸을 점령했다.

사내의 손이 닿아 있는 자리도, 그의 아랫배에 부딪히는 자신의 엉덩이도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피부가 나무껍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서걱서걱했다. 몸이 경화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엉덩이뼈와 피부 사이에 사내의 성기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바늘로 피부를 기우듯 성기가 날카롭게 배 속을 후벼 팠다. 성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꿰인 자국이 남는 것처럼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으흐, 읍…….”

견딜 수 없는 극심한 복부 통증에 허리를 말며 등을 낮추자 배 속에서 정액이 출렁였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와 침은 자루에 고였고 코와 뺨은 자루 아래의 바닥에 눌려 긁혔다. 이명이 들려 자신의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불 속에 달궈지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뜨거웠고 부러진 팔꿈치 뼈는 엉망으로 어긋나 피부를 뚫고 나올 것처럼 저렸다. 정신이 흐려지는 느낌과 함께 눈꺼풀이 닫히자 몸의 고통도 아득해져 갔다.

“하아, 흐음…… 후…….”

바쁘게 허리를 놀리던 조반니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팔뚝과 허벅지의 근육이 갈라지며 목에 힘줄이 선 그는 로미오의 고개가 꺾여 바닥에 이마가 처박히는 것을 보고도 계속 성기를 박아 넣었다가 뺐다.

요염하게 들려오던 로미오의 신음 소리가 멎자 힘이 들어가 있던 그의 몸도 맥이 풀려 늘어졌다. 조반니는 로미오가 정신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로미오와 살을 맞대고 있다는 만족감과 그의 몸 안에 여러 번 사정을 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희열이 성기의 조임만큼이나 기분 좋았다. 로미오를 겁탈하고 있는 지금 그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고 전에 없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는 로미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나흘 정도 그를 지하실에 묶어 두고 여한이 없을 정도로 겁탈하고 싶었다. 그의 옷을 전부 벗겨 알몸으로 만들어 구석구석 핥고, 냄새 맡고, 빨며 손이든 입이든 성기를 쥐여 주고 물려 주고 싶었다. 뒤가 다 붓고 헐고 찢어지고 짓무르도록 사정없이 성기를 박아 몸 안 깊숙한 곳까지 정액이 들어차도록 만들고 싶었다. 배 속이 정액으로 젖어 치덕거리면 로미오는 앉지도 서지도 못할 것이다. 구멍 안에 언제든 손가락을 쑤셔 넣을 수 있게 옷을 못 입게 하면 그는 지하실을 알몸으로 돌아다닐 것이다.

그가 걸어 다닐 때마다 다리 사이의 선홍빛 성기가 귀엽게 흔들릴 것이다. 의자에 앉으면 의자 위로 늘어질 것이고 편히 바닥에 누우면 허벅지 위로 늘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로미오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얘기를 건네고 싶었다. 모든 비밀을 밝혀 그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함께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로미오와 날마다 살을 맞대고 몸을 섞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원할 때 로미오의 옷을 벗기고 그의 몸을 만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서로의 알몸을 보며 함께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거닐고 잠이 들고 싶었다.

쩌어억, 찔퍽… 쯥…….

구멍을 헐어 버리게 만들려는 것처럼 험악하게 성기를 욱여넣어 쑤셔 대자 로미오의 엉덩이 살이 아랫배에 눌리며 철퍽철퍽 소리를 냈다. 배 안에 찬 정액을 밀어내고 로미오의 배 속 끝까지 성기를 밀어붙이니 귀두와 살벽이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묵직하고 두꺼운 성기로 강하게 처박을 때 나는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듣기 좋았다.

너무 박아 대 귀두가 무르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마저 좋았다. 정액에 절여지다시피 한 성기는 일부러 정액을 바른 것처럼 흥건했는데 로미오의 엉덩이와 두 다리 사이도 다르지 않았다. 너무 오래 젖어 있어 구멍은 축축하고 붉었으며 퉁퉁 부어올라 다물어지지 않고 계속 정액을 뱉어 냈다.

“윽… 하, 후우…….”

목울대에서부터 진동하는 거친 신음을 낸 조반니는 사정이 가까워 오자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기를 박아 댔다. 격렬한 추삽질에 음모에 엉겨 있던 정액은 사방으로 튀었고 로미오의 엉덩이 살집은 뭉개지듯이 눌렸다.

발끝을 펴고 허리에 힘을 준 상태로 판판한 아랫배가 움푹 꺼질 정도로 급하게 성기를 쑤시던 조반니는 처음인 것처럼 정액을 왈칵 쏟아 냈다.

“크윽……!”

양이 많은 데다 색이 짙은 정액은 로미오의 비좁은 배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멍 밖으로 그대로 밀려 나왔다.

같은 방식으로 로미오의 배 속에서 다시 크기를 키워 억세게 추삽질을 하다 네 번째 사정과 다섯 번째 사정을 끝낸 조반니는 반쯤 정신이 나가 숨을 헐떡였다. 정액은 로미오의 허벅지를 타고 여러 갈래로 흘러내려 무릎 뒤쪽에 고였다.

부르륵… 성기를 빼내자 구멍은 처음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넓게 벌어져 벌름거렸다. 로미오의 흰 엉덩이에 검붉게 달아오른 귀두를 툭툭 치던 조반니는 구멍이 좌우로 벌어지자 꾸역꾸역 성기를 쑤셔 넣었다. 무너지는 로미오의 골반을 틀어잡고 아랫배를 내밀어 퍼억, 퍼억 폭력적으로 허리 짓을 하자 땀과 정액으로 젖은 구멍이 정액을 끊임없이 쏟아 내며 다급하게 성기를 물었다.

배 안에 쌓인 정액에 성기가 마찰되자 거품이 일어나며 배 안이 정액 거품으로 차올랐다. 질퍽거리는 속살이 성기에 달라붙는 느낌이 강해 눈썹을 찌푸린 조반니는 뻐끔대는 소리를 내며 구멍을 손으로 눌렀다. 푸욱, 쩝, 귀여운 소리가 나며 구멍 안으로 손톱 끝이 밀려 들어가자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빌어먹을…… 젠장, 하아…….”

속살의 돌기와 주름의 갈라짐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진 조반니는 성기를 더 빨리 쑤셔 넣으며 정신을 잃은 로미오의 몸을 흔들어 댔다. 숨이 가빠 올 만큼 허리 짓을 빨리하느라 자세가 무너지자 로미오의 골반을 부서뜨릴 기세로 단단히 잡고 젖은 음모가 그의 엉덩이에 붙도록 꽉 삽입했다.

질척한 속살을 헤집고 뭉개려는 것처럼 정신없이 성기를 쑤셔 대니 이곳이 어디인지 잊게 되며 의식이 몽롱해졌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킬 틈조차 없어 고개를 든 채 숨을 내쉬었다.

로미오의 엉덩이를 밀고 무릎을 펴 그를 완전히 바닥에 엎드리게 한 조반니는 로미오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 팔을 펴 바닥을 짚었다. 상체를 숙인 상태로 엉덩이를 움직이자 음낭이 로미오의 엉덩이 살에 묻혀 간지러웠다. 한 손으로 엉덩이를 벌리자 희끄무레하고 발긋한 구멍이 우둘투둘하게 핏줄이 선 성기를 우물우물 삼키는 게 보였다.

로미오의 배 밑으로 손을 넣어 그의 늘어진 성기를 쥔 조반니는 불편한 자세로 손을 흔들다 로미오를 옆으로 눕혀 태아와 같은 자세를 만들었다. 성기 뿌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욱, 삽입한 후 한숨을 몰아쉬며 빠른 속도로 쑤셔 대자 성기 끝의 감각이 등줄기를 따라 치고 올라왔다. 괴로울 정도로 좋은 쾌감에 전신의 근육이 조여들었다가 풀어지며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입가엔 침이 흘렀고 음낭은 팽팽하게 부풀어 꿈틀댔다.

성기가 녹다 못해 로미오의 배 속 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사정이 영원하길 바랄 정도로 쾌감이 점점 거세지니 어지럼증이 이는 것처럼 눈앞이 돌았다. 아랫배에 열기가 응축된 것처럼 저리게 뜨거워지자 사정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아, 대위님, 윽…… 크읏, 하아…….”

목과 뺨이 붉게 변한 조반니는 관자놀이와 목이 땀에 젖어 로미오를 불렀다. 넋이 나간 듯 허리를 움직이는 그는 거칠게 신음하며 허겁지겁 성기를 쑤셨는데, 몸에 성기가 달린 것이 아니라 성기에 조반니가 달려 허리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발가락에서부터 손끝까지 벼락같은 쾌감이 몸을 훑고 지나갔고 성기는 개나 말의 그것처럼 붉게 번들거렸다. 서로 사타구니가 정액에 절여져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빠르게 부딪쳤다 떨어지자 정액이 굳으며 피부가 말라 갔다. 처박을 때마다 주름이 졌다 펴지는 로미오의 음낭에는 조반니의 음모 몇 가닥이 들러붙어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침을 흘리며 신음하던 조반니는 곧 로미오의 허리를 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윽!”

정액을 투둑 뿜어낸 성기는 뿌리부터 불끈거리며 로미오의 배 안에서 움직였고 조반니의 엉덩이는 근육 모양이 도드라질 정도로 바짝 힘이 들어갔다.

눈이 풀린 조반니는 온몸을 심하게 떨며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앓는 것 같은 숨소리는 빠르고 잦게 들렸는데 평소의 목소리와 전혀 달랐다. 로미오의 구멍에 성기를 넣은 채 사정했지만 정액은 양껏 터져 나와 무성한 음모에 한가득 들러붙고 로미오의 뒷허벅지를 적셨다.

“후우, 후…… 허억… 후… 후으…….”

침을 떨구며 열기가 오른 숨을 몰아쉬던 조반니는 긴 사정이 끝나자 부어오른 성기를 빼냈다. 푸륵,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성기는 굵직한 귀두부터 기둥까지 움찔대다 점차 크기가 작아졌다. 불그레한 안쪽 살을 내보이는 로미오의 구멍은 더 이상 오므라들지 못하고 힘없이 정액을 뱉어 내기만 했다.

성기 기둥을 로미오의 엉덩이에 비벼 닦은 조반니는 두 손을 깍지 껴 로미오의 아랫배에 대고 눌렀다. 작은 거품이 된 정액이 걸쭉하게 로미오의 허벅지를 타고 흐르자 다시 한번 아랫배를 눌렀다.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진한 정액은 배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후우…….”

뒤로 물러난 조반니는 덜렁거리는 성기를 내놓은 채 바닥에 앉았다. 힘이 풀린 그는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봤다. 굵은 귀두와 성기 기둥이 마치 물에 분 것처럼 정액에 흠뻑 절어 있었다. 긴 다리를 쭉 펴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정신이 차츰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옷소매로 눈가의 땀을 닦으며 여관 창문을 올려다본 조반니는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속옷과 바지를 추슬러 입었다. 음모가 축축하게 젖은 데다 요도에 아직 정액이 고여 있었지만 대충 닦고 바지 끈을 조였다. 흘러내려 모양이 망가진 머리를 정돈하고 옷을 턴 뒤 바닥에 누워 있는 로미오에게 다가가 머리에 씌운 자루를 풀어 줬다.

자루를 거두자 로미오는 입 안에 손수건을 문 채 잠든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뺨과 이마는 피투성이였고 턱은 부어오른 데다 입술은 찢어져 있었다.

“대위님?”

장난을 즐기는 소년처럼 짓궂은 미소를 지은 조반니는 로미오의 입에서 손수건을 뺐다. 허리를 숙여 로미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춘 그는 벌어진 잇속으로 혀를 넣어 로미오의 혀를 빨았다. 개가 물을 마시듯 쩝쩝 소리를 내 입술을 빨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코앞에 있는 로미오의 얼굴을 뜯어봤다. 땀과 피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도 마음에 들었고 결 고운 검은 눈썹도 마음에 들었다. 오목하게 팬 눈썹 아래의 눈꺼풀과 미끄러지듯 우아한 콧날도 마음에 들었다.

“스읍, 하아… 후… 습…….”

입술을 뗀 조반니는 축 늘어진 로미오를 덥석 안고 그의 목에 코를 대 냄새를 맡았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서도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로미오의 맨 허리와 엉덩이를 쓸어내리며 몸을 더듬었다. 날개뼈가 만져지는 가녀린 등과 살집이 없는 잘록한 허리, 곡선을 이루는 작고 동그스름한 엉덩이를 몇 번이고 쓰다듬고 나서야 로미오의 뒷머리를 받쳐 바닥에 바로 눕혔다.

조반니는 납작 엎드려 로미오의 하얀 배에 코를 댔다. 냄새를 더듬어 가며 배꼽을 핥은 그는 성기 뿌리로 이어지는 맨들한 부분에 코를 비비고 음낭까지 내려갔다. 자신의 정액으로 젖어 있는 다리 사이를 자세히 살피다 늘어진 성기에 뺨을 비비고 두 다리를 모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넣어 냄새를 맡았다. 정액 범벅이라 체취보단 비릿한 냄새가 더 컸지만 로미오의 맨 살갗에 코를 문질러 대며 한껏 냄새를 들이마셨다.

“스으읍, 하아…… 정말 돌아 버리겠군… 돌아 버리겠어.”

다시 위로 올라가 로미오의 입술에 긴 입맞춤을 한 조반니는 먼지투성이가 된 속옷과 바지를 끌어 올려 옷을 입혀 줬다. 마지막으로 상처가 난 로미오의 이마에 입을 맞춘 조반니는 그의 머리칼을 넘겨 주며 속삭였다.

“언젠가는 제 정체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요.”

로미오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수건과 그의 머리에 씌웠던 자루를 챙긴 조반니는 손목의 줄을 풀어 주고 로미오의 팔꿈치를 살핀 뒤 골목 끝으로 가 지팡이를 주워 들었다. 가볍게 한 번 휘둘러 보니 절로 혀를 차게 됐다.

“이런 형편없는 지팡이를, 쯧.”

조반니는 지팡이로 바닥을 쓸며 몇 발자국 걸어 보더니 지팡이를 힘껏 벽에 내리쳤다. 반으로 부러진 지팡이가 바닥으로 내팽개쳐지자 발로 밀어 멀리 보냈다. 마침 발치에 사과 하나가 떨어져 있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워 드는데 골목 밖에서 공안국 간부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조반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골목 끝으로 달아나 숨었다.

잠시 후 공안국 간부들이 골목 어귀로 들어서더니 쓰러져 있는 로미오를 발견했다. 뒤늦게 골목으로 들어선 티모테오도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사과들을 둘러보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로미오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대위님, 정신 차려 보십시오. 대위님?”

놀라서 주변을 둘러본 티모테오는 불 켜진 2층 여관 창을 올려다봤다. 뒷골목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고개를 내민 급사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분이 왜 여기에 쓰러져 있는지 아십니까?”

골목 끝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반니는 티모테오와 급사의 대화를 엿듣다 돌아섰다. 나른함에 하품을 한 그는 걸음을 서둘러 어두운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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