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하숙집의 새 식구 (4/30)

4. 하숙집의 새 식구

“무소 대위님께 들었습니다. 신기한 우연이로군요.”

마차 안이 한 차례 덜컹거렸다. 중앙 광장에 있는 정부 청사의 첨탑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정오 무렵이었다. 로미오와 갈리에누스는 단테의 12인을 선전하는 벽보가 발견됐다는 공안국의 신고를 받고 부대 앞에서 마차를 탔다. 벽보가 발견된 곳은 바치 시내로 진입할 수 있는 성벽 입구의 길목에 있는 시모네타 거리였다. 공안국은 밀수 품목을 판매하는 상점들을 순찰하던 중 벽보를 발견했다.

로미오의 아래턱에 난 멍은 어제보다 더 짙어 보였다. 밤잠을 설친 데다 아침 식사 역시 거의 먹지 않았지만 로미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마차 바퀴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스포르차 그자도 여러모로 특이한 자가 아닙니까?”

어젯밤 술집에서 조반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갈리에누스는 조반니를 체포하며 그의 집을 수색하던 일을 떠올렸다.

회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조반니의 3층 저택은 음침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공화국 최고 일류 대학의 의과대 교수라는 명망에 걸맞게 내부가 몹시 넓었다. 수색 당시 집에는 전국 각지에서 출판한 해부학서와 의학서를 비롯해 총 512권의 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수서본도 있었는데 모두 읽은 흔적이 보였다. 비토리오의 나체 그림은 무려 2,000장이나 발견됐으며 지하실에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젊은 남성의 해부용 시체가 한 구 있었다.

뇌와 장기를 그려 놓은 해부도는 지하실은 물론 집 안 곳곳에 기괴할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는데 잉크가 번진 방향이나 글씨의 기울기로 보아 조반니는 양손잡이였다. 저택의 1층에는 실내 정원이 있었고 2층에는 조리용 화로가 딸린 부엌과 응접실이, 3층에는 서재와 침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세 개의 빈방이 있었으나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1층의 실내 정원의 꽃들은 전부 말라붙어 있었는데 바닥에는 마른 잎들과 누렇게 시든 줄기들이 얼기설기 엉겨 있었고 꽃잎은 군홧발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벽과 창가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덩굴줄기들은 길게 뻗어 천장을 흉물스럽게 뒤덮고 있었다.

처음 저택 문을 연 순간 갈리에누스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싹 마른 정원을 보고 조반니가 어떻게 매일 이곳을 드나드는 것인지 의아함을 느꼈다. 줄곧 이런 상태였다면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무리였을 것이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문은 사람의 손을 탄 표시가 났는데 나무 문 주위의 덩굴이 가위로 잘라 낸 듯 듬성듬성 끊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잘려 나간 잎사귀들이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으며 발에 밟힌 흔적이 엿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으로 복도가 나왔는데 복도 오른편에 있는 응접실은 문고리에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랫동안 방치해 둔 듯 쾨쾨한 냄새가 났다. 비토리오의 나체 그림이 발견된 서재는 빼곡히 책이 꽂혀 있는 것 외에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침실과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갈리에누스는 조반니가 비토리오와의 관계를 비밀리에 유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조반니의 집 주변을 탐문할 당시 비토리오로 추정되는 청년이 조반니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조반니와 비토리오는 조반니의 뜻에 따라 수개월 동안 은밀히 만남을 이어 왔을 것이다.

“대위님께서는 일전에 스포르차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로미오는 갈리에누스의 맞은편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마차 창밖을 보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시력이 나빠 여기가 어느 거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수색을 위해 바치 대학교에 갔을 때 보았던 게 처음이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광장에서 그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색 당시 기억해 낸 것이었다. 소위 임관 때의 일이었다.

“날씨가 무척 더웠으니 계절은 여름이었을 겁니다. 우연히 광장을 지나다 보니 형을 집행하기 위해 마련된 집행대 위에 교수형을 당한 죄수가 매달려 있더군요. 형 집행이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죄수를 그리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근처를 지나던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자가 조반니 스포르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부용 시체를 구하는 것이 까다로워 그곳에서 죽은 죄수를 그렸다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됐습니다만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갈리에누스는 광장 위로 내리쬐던 햇빛에 조반니의 금발이 반짝거리던 것을 떠올렸다.

“목이 매달려 죽은 자의 발밑에 서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기이했습니다. 그가 의사이자 해부학자라는 것을 알지만 모든 해부학자가 교수형 당한 시체를 그리는 것을 즐기지는 않을 테죠. 그것도 광장 한가운데에서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갈리에누스의 말을 들으며 로미오는 술집에서 조반니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그가 어떤 자인지는 충분히 파악했다.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더군.”

“대위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머리가 좋은 자이기도 하지.”

조반니는 남을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고 낯선 것들에 대한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날카로움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호기심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했으나 그것은 호기심이 맞았다. 대내외적인 명성으로 볼 때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사기도 했으며 재능 또한 많았다.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은 하지 않았으며 부유하고 사교적이었다. 세간의 평가를 염두에 두는 영민함도 갖고 있는 데다 침착하고 대담했으며 남을 이용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잔인함도 갖고 있었다. 비토리오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상실감이나 슬픔을 표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냉정한 자였다.

그러나 조반니가 이런 이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로미오는 미약한 의문을 품었다. 취조 한 번으로 이토록 쉽게 비밀이 드러날 수 있다면 조반니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 역시 입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의 곁에는 늘 보는 눈이 따라붙으니 모두들 쉬쉬하는 소문도 하나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5년 전 있었던 그 사건이 궁금해졌다. 방적공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일. 당시 조반니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젯밤 술집에서 스포르차 그자가 대위님을 반가워하더란 얘기를 무소 대위님께 들었습니다.”

“내가 자신을 취조했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야.”

마차가 몇 차례 덜컹거리다가 속도가 느려졌다. 박공지붕 건물들이 늘어선 시모네타 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서자 마부대에 앉아 있던 사병 두 명이 내려와 문을 열어 주었다.

“시모네타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두 사병이 옆으로 물러서자 로미오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갈리에누스가 뒤따라 내리며 보니 저 멀리 암회색 군복을 입은 공안국 간부 세 명이 서 있었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는데 남자 중 한 명이 경사인 티모테오 우초로 보이자 앞서가는 로미오에게 말했다.

“우초 경사가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간부는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요.”

단테의 12인과 관련해 체포나 취조 권한이 없는 공안국은 불법으로 운영되는 유곽이나 절도 같은 범죄 행위를 단속하고 사형 집행 및 감옥을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처럼 순찰 중에 벽보를 발견하는 경우 제6군단에 알릴 의무를 갖고 있었다. 로미오와 갈리에누스는 티모테오와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티모테오는 귀찮은 태도를 보이며 불손하게 행동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공안국의 관할 아래에 있는 일이긴 하나 권한이 제한되어 있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제6군단이 창설되기 전에 공안국이 루바노의 치안을 담당했던 터라 그들의 위세는 지금보다 대단했다. 기밀이라고 여겨질 만큼 중한 정보들이 모두 공안국의 관리하에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 중에는 공안국을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신속하게 바치의 안보 문제를 감독하고 처리했던 그들은 제6군단이 창설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위엄을 잃었다.

티모테오는 로미오가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노골적으로 구경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는데 로미오는 티모테오의 그런 태도를 지적할 성미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티모테오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갈리에누스의 몫이었다. 제6군단의 장교와 비교했을 때 공안국 간부라는 위치는 그리 대단한 것이 되지 못했다.

“두 분 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래 기다리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두 명의 간부와 함께 벽보 앞에 서 있던 티모테오는 로미오와 갈리에누스를 발견하고 먼 거리에서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간부 두 명은 손을 올려 경례를 해 보였는데 티모테오는 미적거리며 뒤늦게 경례하다 로미오의 턱에 든 멍을 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로미오를 처음 본 두 간부는 예의를 잊은 채 뚫어져라 그를 보다 시선을 거두고 조심스레 흘끔댔다. 눈앞의 젊은 장교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다.

“벽보가 발견된 곳이 여기 한 곳뿐인가?”

로미오는 골목 안쪽과 거리를 돌아보며 눈가를 가늘게 떴다. 골목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는데 양쪽으로 지붕이 낮은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골목 안에는 음식 냄새가 떠돌았고 열린 창 너머론 식기 부딪치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근처를 샅샅이 둘러봤는데 여기 붙어 있는 이 한 장이 다입니다. 이것도 못 보고 지나칠 뻔한 걸 겨우 발견했습니다. 이것 참, 밀수품 판매 단속은 언제 끝낼 수 있으려나.”

티모테오는 슬그머니 팔짱을 끼려다 갈리에누스를 흘금 본 뒤 팔짱을 풀고 로미오를 내려다보았다. 목 끝까지 단정히 단추를 채운 군복은 구김이 없었고 허리에 찬 검집은 손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반듯하게 눌러 쓴 모자에 반쯤 가려진 눈동자는 푸른 원석을 보석으로 세공한 듯 정교했으니 볼 때마다 의문을 느꼈다. 저런 눈을 하고서 맹인이라고?

“내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위님.”

갈리에누스는 벽보를 뗐다. 벽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민중이 추구하는 미래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다.

민중의 미래에는 지배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군대가 존재하지 않으며 통제를 받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개개인의 소유권과 재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민중은 자유를 추구하며 모든 민중은 평등을 추구하며 모든 민중은 해방을 추구한다. 노동자가 함께 경작하고 나눠 갖는 땅에는 지배자가 없으며 착취자가 없으며 주인이 없다. 따라서 피지배자도 피착취자도 노예도 없다.

민중은 공정한 무질서 속에서 국가 없이 존엄한 삶을 이어 나갈 열망을 갖고 있다.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단테의 12인은 민중의 힘과 연대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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