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빗속의 사내
“오늘은 다른 날보다 늦게 가시는군요.”
비가 내리는 늦은 밤이었다.
갈리에누스는 제6군단의 부대 내 1연대 1대대 2중대장의 집무실에서 서류에 날인을 하는 로미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리할 일이 많아 평소보다 시간이 늦어졌는데 잉크 펜을 든 로미오는 집무실 책상 위에 코가 닿을 듯 깊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왼손으로 날인할 자리를 짚은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삐뚤삐뚤하게 서명을 했다.
“비가 이렇게 오니 엔초가 또 말썽일 테지. 걱정이야.”
엔초는 여덟 살 난 로미오의 둘째 남동생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천둥소리가 무섭다고 울어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밤이면 로미오는 어김없이 집에 들렀다. 열여덟 살인 첫째 남동생 피에트로는 어린 동생이 울먹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조심히 가십시오. 비가 많이 내립니다.”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로미오는 서류 위에 고개를 바짝 붙인 채 날인을 끝내고 잉크 펜을 내려놓았다. 등 뒤의 창가 너머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거셌다.
허리를 펴 바로 앉은 로미오는 목덜미가 뻐근한 것을 느끼며 갈리에누스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모셔다드릴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로미오는 잉크병 뚜껑을 집어 잉크병을 닫고 눈앞까지 들어 올려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했다.
“괜찮으니 염려 말게.”
오른팔과 허리 사이에 서류를 끼우고 반듯하게 선 갈리에누스는 로미오가 잉크병을 내려놓는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로미오는 책상 한편에 세워 두었던 지팡이를 눈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지팡이를 갖고 갈 생각이다.”
“일전에 쓰신 적이 있는 지팡이군요. 오래된 게 아닙니까? 새것을 쓰지 않으시고요.”
갈리에누스는 사관 학교에 늦게 입학해 졸업을 늦게 했기 때문에 스물다섯 살임에도 아직 직급이 낮았다. 큰 키에 부드러운 밤색 머리와 따뜻한 연녹빛 눈을 가진 그는 진중한 성격이었다.
로미오는 까다롭지 않은 상관이었기 때문에 갈리에누스는 염려되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물어보았다. 소위로 임관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로미오의 밑에서 군 생활을 해 오고 있었으니 햇수로만 5년 넘게 로미오를 알고 지냈다고 봐야 했다.
“아직 쓸 만해.”
로미오는 책상 위에 올려진 모자를 집어 눈앞으로 가져간 후 모자 중앙에 붙은 공화국군의 휘장과 붉은 자수 장식을 손으로 더듬어 머리에 알맞게 썼다.
“눈이 전보다 나빠지신 것 같습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 모양이야. 어쩔 수 없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갈리에누스는 지난봄까지만 하더라도 로미오가 서류 날인이며 옷 소매를 정리하는 일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하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에 착잡한 얼굴이 됐다. 젊은 상관이 해마다 시력이 떨어지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서류에 날인을 하는 일이 번거로우시면 제게 맡기십시오. 옷소매의 단추를 끼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봐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아직 할 만하니 걱정 마라.”
로미오는 머리에 쓴 모자를 손으로 만져 휘장이 중앙에 제대로 위치해 있는지 확인한 다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겨 정리했다.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비록 볼 수 없지만 창을 돌아봤다. 그 사이 갈리에누스가 문을 열고 기다리자 지팡이로 바닥을 쓸며 문가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복도로 나와 걷기 시작하자 벽에 걸린 등잔의 불빛이 잘 닦인 두 장교의 군화 앞코를 비췄다. 말없이 복도를 걷던 두 사람은 계단이 이어진 복도 끝에 다다라 멈춰 섰다.
갈리에누스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로미오를 향해 손을 들어 경례를 해 보였다.
“살펴 가십시오, 대위님.”
로미오는 얼굴 윤곽이 뿌옇게 보이는 갈리에누스를 향해 손을 올려 경례를 받고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칸씩 내려가는 동안 지팡이가 계단에 부딪히며 탁, 탁 소리를 냈다. 등 뒤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갈리에누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게 됐다.
장교들의 집무실과 식당이 모여 있는 중앙탑은 꼭대기부터 1층까지 나선형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달팽이 껍질처럼 둥글게 꼬인 계단은 허리께 높이의 난간 외에는 지탱할 것이 없었다. 외벽과 통하는 창이 없어 주위가 어두운 탓에 벽에 걸어 놓은 촛대 불빛에 의지해야 했는데 로미오에게 계단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장소였다. 모든 계단은 높이가 일정한 데다 발에 걸리거나 시야를 막을 만한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로미오는 언젠가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이곳 계단을 위험하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층에 다다랐을 때 빗소리는 몹시 크게 들렸다. 지팡이를 손에 쥔 채 탑을 나서자 군모와 어깨 위로 비가 쏟아졌다. 장갑과 장화는 순식간에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 들었고 군복은 몸에 착 달라붙었다.
로미오는 어두컴컴한 연병장을 지나 2연대의 장교들이 사용하는 서쪽 탑을 지나쳤다. 서쪽 탑 근처에는 군의관이 머무는 숙소와 장교들의 말을 기르는 마구간이 있었고 조금 더 가면 사병들의 숙소가 있었다. 부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회색빛 담장은 평소보다 더 황량하고 스산해 보였고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는 횃불만이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빛났다.
멀리 거대한 철문 입구가 어렴풋하게 보였는데 그 아래에는 문을 지키고 서서 비를 맞는 군인들이 있었다.
두 군인은 그들 쪽으로 걸어오는 로미오를 바라보다 얼굴이 보일 거리가 되자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로미오가 바로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그 자세로 기다리던 그들은 로미오가 지팡이를 쥐지 않은 손을 올려 경례를 받은 뒤 손을 내리자 뒤이어 손을 내렸다. 출입자 확인을 위해 설치된 담벼락 위의 초소에서 경비병이 로미오의 얼굴을 확인하고 출입자 명부에 이름을 기록했다.
군인 중 한 명이 로미오가 건넨 출입 허가서를 확인한 뒤 다시 돌려주며 철문의 걸쇠를 풀었다. 두 군인이 함께 손으로 문을 밀자 끼이익, 하는 음산한 소리가 났다.
“조심하십시오.”
문을 바깥쪽으로 전부 열어젖힌 군인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로미오가 맹인 대위라는 것을 아는 그는 로미오가 철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전부 지켜보다 다시 손을 올려 경례했다. 로미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열 때와 마찬가지로 육중한 소리를 내는 철문을 닫고 들어갔다.
몸을 돌린 로미오는 걸음 수를 세며 걷기 시작했다. 하숙집이 있는 로사티 거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루바노 정부 청사가 있는 중앙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로사티 거리는 상점이 즐비해 있는 살라티코 거리나 시장 가까이에 있는 몰베나 거리처럼 낮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교적 형편이 좋은 이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학비가 비싸다고 알려진 근방의 로마니엘로 대학교 학생들이 하숙 생활을 하기도 했다.
로미오는 몇 년 전에 동생들과 그곳으로 이사해 어느 노부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의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피에트로는 로마니엘로 대학교에 다녔고 엔초는 어느 유명한 조각가의 화실에서 조각과 그림을 배웠다.
부대 담장 밖에서부터 상점과 식당이 늘어선 거리까지 이어진 길은 흙바닥이었다. 로미오는 장화 안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오래 걷지 않아 사람들과 마차가 지나다니는 넓은 거리가 나오자 중앙 광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에는 드문드문 상야등이 커져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정부 청사 직원이 사다리를 들고 다니며 상야등에 횃불을 붙였는데 비가 많이 와 꺼져 있는 곳이 많았다.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각인 데다 빗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로미오는 건너편 거리에서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형체만 알아볼 뿐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차는 바퀴 소리로 들어 알 수 있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멀리 있는 사람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인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곧 로사티 거리가 시작됨을 알리는 팻말이 꽂힌 포목점이 나타났다. 그 포목점을 지나서부터 로사티 1번가가 시작됐는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양쪽으로 길이 이어졌다. 하숙집이 있는 3번가는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로미오는 젖은 장갑을 낀 손으로 지팡이를 쥔 채 바닥을 쓸며 포목점이 있는 1번가로 들어섰는데 잠시 후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물웅덩이 위에 신발 밑창이 닿는 소리도 함께였다.
철벅, 철벅…….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그 소리가 들려 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던 로미오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발소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비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는데 그 소리가 큰 것으로 미뤄 옷자락이 긴 모양이었다.
쏴, 하는 빗소리 틈으로 로미오는 등 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장갑이 축축하게 달라붙어 연신 지팡이를 고쳐 쥐며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유지했다. 젖은 머리칼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눈가를 성가시게 했고 군홧발에 차이는 물웅덩이는 발목까지 튀어 올라 신발 뒷굽을 흠뻑 적셨다.
군화 안에 가득 들어찬 빗물이 발을 디딜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 걸음걸이를 고치는데 등 뒤의 발소리가 빨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봐야겠다는 예감이 든 순간이었다.
“이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미오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난데없이 어깨가 밀쳐져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쿵!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가 쓰러지고 턱과 뺨이 맨땅에 세차게 부딪혀 얼얼한 것은 잠깐이었다. 남자는 다짜고짜 로미오의 모자를 발로 걷어차 멀리 날려 보내더니 머리채를 틀어쥐었다.
“아, 윽……!”
로미오는 바닥에 무릎이 꿇린 채 상체가 일으켜졌다. 너무도 느닷없이 일어난 일인 데다가 머리카락을 틀어쥐는 손아귀 힘이 억세 판단력이 서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거리 한복판이었다. 지난 몇 년간 로미오가 수도 없이 오간 길이었다. 갑자기 등 뒤로 다가와 위협하는 남자는 대범하기 짝이 없었다.
내리는 비 때문에 로미오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남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가느다랗고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내와 몸을 섞어 본 적이 있나?”
일부러 본래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것으로 금속 물체를 긁어내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방금 전 ‘이봐.’ 하고 불렀을 때의 목소리는 저음이었다.
“당신 대체 누, 아, 으윽……!”
로미오는 머리 가죽을 다 뜯을 것처럼 거칠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심장 박동이 빨리 뛰기 시작하고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 몸에 열이 오르고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사내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없는 것으로 알아 두지. 이리 따라와라. 재미를 좀 봐야겠어.”
남자는 로미오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붙들더니 험하게 쥐고 흔들며 로사티 1번가 입구 포목점 옆의 골목으로 걸어갔다. 놀랍도록 빠른 그의 걸음걸이에 로미오는 몸부림을 칠 새도 없이 바닥에 다리가 닿아 질질 끌려갔다. 빗소리 틈으로 군화 뒤축과 허리춤에 찬 검 끝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냈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남자는 로미오의 머리채를 놓으며 그를 내동댕이쳤다. 바닥 위로 떠밀리듯 넘어져 물웅덩이 위에 주저앉은 로미오는 몸을 일으키며 고함을 질렀다.
“버젓이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서 감히 이런, 윽……!”
그러나 남자가 배를 발로 걷어차 골목 담벼락에 등을 부딪히곤 바닥으로 쓰러졌다. 남자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로미오의 멱살을 움켜잡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입 닥쳐라. 소리 지르면 목뼈를 부러뜨려 버릴 테다.”
숨을 멈춘 로미오는 이마와 코, 눈꺼풀, 뺨 위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검은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망토 끝에 달린 머리 부분의 덮개로 이마와 눈을 가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어두웠고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코와 턱의 윤곽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키가 크다는 것이었다. 뿌연 어둠 속에서 보이는 몸 전체의 형상이 컸다.
“죽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남자는 골격이 큰 몸을 갖고 있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멎은 듯 두근거림이 둔중해졌다. 배를 걷어차여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살해 위협 앞에 전신의 감각이 무뎌져 갔다. 위험을 감지한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망쳐라. 이곳에서 벗어나라.
남자는 로미오의 양쪽 손목을 한 손으로 끌어당긴 상태로 망토 안에 손을 넣어 뭔가를 찾았다. 그 틈에 로미오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주먹으로 그의 왼쪽 뺨을 후려갈겼다.
퍼억!
뺨을 얻어맞은 남자의 고개가 돌아가 휘청거리자 로미오는 허리춤에 찬 검을 빼내려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미처 검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남자의 발에 아래턱을 걷어차이고 뒤로 나가떨어져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윽!”
바닥으로 쓰러지자 턱뼈가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것처럼 아려 왔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손으로 턱을 감싸니 입 안에 찝찔한 피가 고였다. 입술이 찢어져 바닥 위로 피가 뚝뚝 떨어지자 눈앞에 가깝게 보이는 바닥이 적갈색으로 물들었다. 아랫니 두 개가 흔들려 입술을 물자 잇몸이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턱을 비롯한 얼굴 아래쪽 전체가 욱신거렸다.
“으, 흡…….”
찢어진 입술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아 입 안에 고인 침과 피가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뺨을 문지르더니 바닥에 엎드려 턱을 움켜쥐고 있는 로미오를 노려봤다.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은 그는 뒤로 물러서서 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로미오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커, 헉……!”
로미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자 남자는 가까이 다가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시 한번 배를 걷어찼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로미오는 신음하며 손으로 배를 감쌌다.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몸을 떠는데 남자가 다시 배를 걷어찼다.
입 안에 고인 피를 토해 낸 로미오가 발을 막으려고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남자는 발로 밀어 손을 치워 내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과 배, 허리를 가리지 않고 걷어차고, 걷어차고, 또 걷어차는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으, 아, 윽……!”
로미오가 벽 쪽으로 밀어붙여져 고통스레 신음했지만 남자는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체중을 실어 로미오를 인정사정없이 밟고 걷어찼다. 아무렇게나 때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몸의 특정한 몇 군데를 번갈아 정확히 가격하고 있었다.
근육이 끊어지고 살이 짓이겨지는 고통에 로미오는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하며 바닥 위에 웅크렸다. 입 안으로는 빗물과 흙이 섞여 들어왔고 뺨과 코는 바닥에 문질러졌다. 허리춤에 찬 검은 덜그럭대며 바닥에 부딪혔다.
남자의 발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몸을 움츠렸지만 소용없었다. 가슴을 가격하는 압박감과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신음 소리는 쇳소리에 가까워졌고 남자의 발을 막아 내는 것에 급급해 몸부림도 서서히 멎어 갔다.
가슴 아래 갈비뼈 부근을 노리듯 재차 그곳만 걷어차던 남자는 로미오가 완전히 벽 쪽으로 몰려 몸을 만 채 발길질을 맞고 있자 잠시 후 발을 멈추었다.
“……윽, 흐…… 으…….”
신음하는 로미오를 우뚝 서서 내려다보던 남자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 앉았다. 품 안에 손을 넣은 그는 잡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리띠용 줄을 꺼냈다. 품이 넓은 웃옷을 입을 때 허리 부분을 조일 수 있도록 천을 꼬아서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로미오의 몸을 돌려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양손을 등 뒤로 끌어당겨 손목을 겹치게 했다. 줄로 빙빙 둘러 묶는데 로미오가 잡힌 팔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집어치, 윽, 하악……!”
순간 남자가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세게 물더니 로미오의 몸을 뒤집어 두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입 닥치라고 했을 텐데.”
“악… 아, 학……!”
“내가 널 못 죽일 거 같나?”
바닥에 누운 채 목이 졸려 상체가 들어 올려진 로미오는 삽시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양손은 남자의 팔을 떼어 내려고 옷소매를 박박 긁다 허공에 허우적거렸고 흰자위가 크게 드러난 눈은 부릅떠진 채 경련하듯 떨렸다.
“하, 악……!”
남자는 로미오의 얼굴에 불그레하게 피가 몰리고 눈가가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목을 쥐고 흔들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처럼 팔다리를 내저으며 신음하는 로미오를 빤히 보다가 손바닥으로 목을 감싸자 맥박이 펄떡거리는 게 느껴졌다. 빗물에 젖은 피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가냘픈 목젖은 크게 꿀렁거렸다.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자신을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또렷했다.
“……악…… 아, 악……!”
남자는 마치 얼굴을 보여 주려는 것처럼 로미오에게 가까이 고개를 가져다 댔고 로미오는 그런 남자의 눈동자를 올려다봤다.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고개를 대고 자신을 보는 남자의 눈동자는 금색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버거워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데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몸 안의 장기들이 팽창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발끝에서부터는 점차 힘이 빠졌다. 귓가의 빗소리가 아득해져 가며 의식이 흐려지려는 찰나 목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풀렸다.
남자가 미련이 남는 듯 한 번 더 꽉 쥐었다가 놓자 로미오는 그대로 바닥 위로 쓰러졌다.
“후, 윽, 하아…….”
숨통이 트이자 머리에 올랐던 열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입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고 어깨는 위아래로 크게 들썩였다.
남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로미오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로미오가 바닥에 축 늘어지자 그의 손을 끌어당겨 손목에 줄을 빙빙 두른 뒤 매듭을 지어 단단히 묶었다.
로미오는 축축하게 젖은 바닥 위에 뺨을 댄 채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법은 잊은 것처럼 입술을 오므렸다가 벌리며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에 온 신경을 쏟았다.
“……하, 하아…… 하…….”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 뒤론 뜨뜻한 피가 흘러들어 갔고 어깨를 비롯한 팔의 근육들은 단단하게 경직됐다. 손끝은 굳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고 정신은 몽롱했다.
남자는 손을 다 묶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지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비에 축축하게 젖어 달라붙은 허리끈을 풀고 속옷과 함께 바지를 잡아 내리자 뻣뻣하게 선 성기가 덜렁거리며 밖으로 드러났다. 성기를 손으로 쥐고 흔든 남자는 엎드려 있는 로미오의 군복 바지로 손을 뻗었다.
엉덩이를 덮고 있는 군복 자락을 접어 올리는데 허리띠에 옷이 걸리자 허리 아래로 손을 넣었다. 허리띠를 홱 젖혀 벌리니 단추들이 뜯겨 나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빗물에 젖은 금발 머리를 쓸어 넘긴 검은 망토의 남자, 조반니는 골목 너머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보았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거리를 주시하고 있으니 마차 한 대가 지나갔다. 마차 바퀴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엎드려 있는 로미오의 배 밑으로 손을 넣었다.
허리띠에 가려져 있던 군복 바지 허리춤을 푸는데 로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조반니는 거친 숨을 헐떡이는 로미오를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서 내려다봤다.
“……이런 짓을 하지?”
쉰 목소리가 띄엄띄엄 끊겨 들렸다. 대꾸 없이 로미오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바지와 함께 벗기자 로미오가 얼굴 위로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에 눈을 감으며 다시 물었다.
“……왜 이런 짓을, 윽… 하아…… 하는 거냐?”
어둠 속에서 맨 엉덩이가 드러나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속옷과 바지를 허벅지 아래까지 끌어 내려 무릎에 걸치게 했다.
엉덩이 살 사이로 작게 닫혀 있는 선홍빛 구멍과 음낭이 보였다. 물에 젖은 옷을 억지로 벗겨 내느라 로미오의 몸이 흔들렸는데 그의 조그만 구멍만은 조금도 벌어지지 않고 닫혀 있었다. 쑤셔진 경험이 없는 것처럼 뻐끔대지도 않는 데다 색까지 보기 좋게 발긋해 모양과 조임이 쉽게 상상됐다.
흥분하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한 차례 했지만 이 순간을 너무 기다렸던 터라 손끝이 떨렸다. 취조실에서 마지막으로 본 로미오의 모습이 여태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는데 이제야 그의 몸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바지와 속옷을 모조리 벗고 자신에게 뒤를 내보이고 있는 로미오라니.
꿈에서나 보던 광경이었다. 저 좁고 작은 구멍이 자신을 얼마나 만족시켜 줄지, 로미오의 신음 소리가 얼마나 끝내줄지, 그의 배 속이 얼마나 따뜻할지 이제 곧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자 오랜 염원을 하나 이룬 기분이었다.
곱상한 얼굴을 보며 상상했던 대로 로미오의 엉덩이는 작고 매끈하고 둥글었다. 좀 더 피둥피둥하게 살이 올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입 다물어라.”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말한 조반니는 내심 기분이 좋아 미소를 억누르며 로미오의 엉덩이를 만졌다. 장난을 치듯 주물러 대다가 허벅지를 벌리자 로미오가 힘을 줘 버텼다. 살점을 뜯어낼 것처럼 쥐어 짜내듯 움켜쥐니 로미오는 신음하며 허벅지를 양옆으로 벌렸다.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로미오의 엉덩이 골 사이를 더듬어 오므라든 구멍을 찾아내니 로미오는 고통에 찬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비틀었다. 픽 웃은 조반니는 로미오의 몸 위로 올라타 앉아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잡았다. 어린아이의 팔뚝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굵은 성기는 사람의 몸에 달렸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람했다.
성기 뿌리 쪽을 잡아 로미오의 하얀 엉덩이에 대고 툭툭 치자 물에 젖은 피부가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뒤로 해 본 적 없겠지?”
조반니는 무릎으로 로미오의 허벅지를 누른 뒤 성기를 밀어 넣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로미오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성기 귀두를 로미오의 구멍에 대고 문지르던 조반니는 입맛을 다시며 힘을 줘 밀어 넣었다.
“윽……!”
로미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등 뒤에 올라타 있는 상대가 조반니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딱딱하고 축축한 성기가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느낌에 고개를 떨었다.
생살을 칼로 찢어 내는 듯한 통증에 발작하듯 엉덩이를 들썩인 것은 조반니가 힘을 줘 귀두 전체를 밀어 넣은 직후였다.
“아, 악……!”
뭉툭한 귀두가 한 번도 손 닿은 적 없는 곳을 짓이기고 들어오자 로미오는 두 다리를 번갈아 내뻗었다 오므리며 몸부림쳤다. 묶인 손을 풀기 위해 팔을 뿌리치고 발로 바닥을 차며 무릎으로 기어 일어나려고 하자 조반니가 등을 팔로 눌렀다.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을 크게 뜬 로미오는 신음인지 말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엉덩이를 비롯한 온몸을 잘게 떨었다.
“악, 그, 흐…….”
삽입이 버거울 정도로 구멍이 빡빡해 조반니가 후, 하고 숨을 내쉬자 입술과 턱에 맺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조반니는 성기 뿌리를 손으로 잡고 팽팽하게 선 기둥 부분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조임이 너무 심해 귀두가 끊어질 것처럼 아린 데다 로미오가 점점 더 심하게 몸을 떨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성기를 쑤셔 넣었다.
귀두살을 물고 있는 불그레한 구멍이 도무지 다 벌어지지 않을 것 같자 로미오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누르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게 했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박을 수 있게 되자 허리 힘만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윽, 하, 악……!”
로미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다시 바닥에 뺨을 대며 고통스러워했고 조반니는 그런 로미오의 허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엉덩이를 잡았다. 동그랗게 솟은 엉덩이 위로 쏟아진 빗방울들이 허리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조반니는 귀두를 비롯한 성기 기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로미오의 엉덩이를 터뜨릴 기세로 움켜쥐었다. 허리에 힘을 바짝 주고 깊숙이 성기를 박자 로미오가 이를 악물고 신음했다.
“윽, 흐읍, 으…….”
조반니는 로미오의 입가에 피와 침이 뒤섞여 흐르는 것을 구경했다. 턱은 발에 걷어차여 둥그스름하게 부었고 입술은 찢어져 부풀어 올랐는데 일그러진 파란 눈동자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성기를 밀어 넣으면 밀어 넣을수록 삽입이 버거워지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엉덩이를 양옆으로 잡아 벌렸다.
“이렇게 안 들어가서야 몇 번 쑤시지도 못하겠군.”
자세를 고치길 반복하다 음모만 겨우 보이는 상태로 완전히 성기를 삽입한 조반니는 로미오의 엉덩이에 아랫배를 맞붙이고 하늘을 향해 몸을 젖혔다.
“후우…….”
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분 좋게 숨을 고르고 있으니 로미오가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닫힌 입술 너머로 이를 딱, 딱 이를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상체를 숙이고 손을 뻗어 로미오의 등을 짚자 손끝에 매끈한 피부가 닿는 느낌이 좋았다. 걸친 것 없이 드러내 놓고 있는 날씬한 허리와 좁은 골반, 보기 좋게 살집이 붙은 엉덩이, 쭉 뻗은 마른 허벅지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가 엉덩이 부분만 볼 수 있도록 군복 바지를 벗고 다닌다면 온종일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뒷모습을 구경할 자신이 있었다.
“좋은 몸을 가졌군.”
조반니는 본래의 목소리로 중얼댔지만 로미오는 조반니가 나지막한 저음으로 말한 것을 듣지 못했다.
허리를 몇 번 비튼 조반니가 성기를 빼내자 안으로 움푹 들어가 있던 구멍 주위의 주름들이 급하게 성기를 뱉어 냈다. 겨우 한 번 삽입되었을 뿐인 구멍에 귀두를 맞춘 조반니는 한 번에 뿌리까지 푸욱, 쑤셔 넣었다.
묶여 있는 로미오의 손을 잡아 끌어당긴 그는 허리를 뒤로 물려 성기를 반쯤 빼더니 구멍을 찢어 낼 듯이 거칠게 다시 박았다. 질겁한 로미오가 상체를 일으키려고 윗몸을 들었지만 조반니는 등을 숙여 자세를 낮춘 다음 허리 짓을 빨리했다.
“윽, 하악…! 아윽……!”
로미오는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끔찍한 고통과 배 안이 뭉개지는 느낌에 전신을 버르적거렸다.
흡사 성기가 아니라 칼날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는 허리 짓에 맞춰 철퍽대며 빗물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는 손의 감촉은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뜨뜻한 열이 치고 올라왔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엉덩이에 박혔다가 빠져나가는 굵은 성기는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고 몸이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릴 때마다 얼굴은 바닥에 쿵, 쿵 부딪쳤다.
이 모든 무자비한 행위 앞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은 비 오는 날 밤 로사티 1번가 포목점 골목에서 낯모르는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었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윽…… 아윽……!”
조반니는 로미오의 엉덩이를 아프도록 쥐고 격렬하게 허리를 쳐 올렸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구멍 안에 자신의 성기를 쑤셔 넣는 데에 몰두한 그는 흥분에 젖어 있었다. 몰아쉬는 숨소리가 잔뜩 들떠 엽기적으로 들렸다.
난폭하게 허리를 흔들며 윗몸을 숙인 조반니는 로미오의 어깨 밑으로 손을 넣어 몸을 껴안았다. 귓가로 입을 가져가 혀로 귓불을 건드리고 이로 깨물었다. 질척하게 침을 묻히며 핥아 올렸다가 귀 안으로 혓바닥을 넣어 뜨뜻한 숨을 불어 넣었다.
“귀를 잘라 가도 될까?”
“학…… 아, 악… 윽……!”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니고 싶은걸.”
조반니는 자신의 허리 짓에 따라 흔들리는 로미오의 몸을 빈틈없이 껴안았다. 군복 위로 드러난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조급하게 허리 짓을 하다가 손으로 가슴팍을 더듬었다. 피부 아래에 자리 잡고 있을 갈비뼈를 상상하며 이곳저곳을 더듬으니 딱딱하게 선 젖꼭지가 만져졌다.
아랫배에 쉴 새 없이 부딪치는 부드러운 엉덩이와 좁고 따뜻한 구멍이 로미오와 몸을 섞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시켜 저도 모르게 ‘아, 대위님.’ 하고 부를 뻔했으나 가까스로 그 말을 삼켰다.
찌걱, 찌걱, 찌걱…….
물이 튀는 소리와 살 부딪치는 소리가 골목 안을 요란하게 울리자 조반니는 로미오의 관자놀이에 자신의 뺨을 댔다. 한 몸이 된 듯 껴안고 허리를 움직이니 빗소리 틈으로 로미오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더 가까이 듣기 위해 로미오의 위에 납작 엎드린 조반니는 육중한 근육질 몸으로 로미오를 깔아뭉개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로미오의 몸이 유달리 작고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건장한 조반니의 밑에 눌리자 두 사람의 체구 차이는 두드러져 보였다.
조반니의 성기에 의해 몸이 결합된 둘은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서로 나체를 맞대고 있었는데 로미오에게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조반니의 체온과 숨소리는 짐승의 그것처럼 우악스러웠다. 고상하거나 교양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데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야만스러워 역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로미오의 뒷구멍은 조반니의 성기를 이루는 모든 것과 밀착되고 비벼지며 점점 더 척척하게 달라붙었다. 박았다가 뺄 때마다 잡히는 귀두의 주름, 핏줄, 꿈틀거림.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 내는 동안 조반니의 성기 끝에서 나온 분비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안쪽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벌리면 벌려지고 짓누르면 우그러지는 항문 살과 굵고 단단하긴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의 부드러운 살로 이뤄진 성기는 마찰될수록 서로의 모양을 맞춰 가며 더욱 죄이고, 쪼그라들고, 헐거움 없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태어나 한 번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로미오의 뒷구멍은 허락 없이 억지로 뚫고 들어온 조반니의 성기를 힘껏 조이며 쉽게 빠지지 않도록 물어 댔다. 겨우 성기 하나일 뿐이지만 생전 처음으로 한데 닿아 붙어 오는 살덩이였기 때문에 몸을 꿰다시피 하며 박히는 데도 허겁지겁 빨아들였다.
“크윽, 후우…… 하…….”
나무랄 데 없는 만족스러운 조임에 허리를 흔들던 조반니는 몸을 일으켜 성기를 쑥 빼내더니 로미오의 어깨를 잡아 몸을 뒤집어 눕혔다.
고통에 질려 얼굴이 시체처럼 하얘진 로미오는 쏟아지는 비에 눈을 감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조반니는 그런 로미오의 발목을 잡아 위로 들었다. 로미오의 성기와 엉덩이가 정면으로 보이자 조반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엉덩이 사이를 들여다봤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허벅지 사이에 자리해 있는 음낭과 배꼽 쪽으로 누워 있는 성기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코로 냄새도 맡고 만져 보고도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대충 음낭만 주무르곤 회음부 부근을 더듬어 구멍에 성기를 쑤셨다.
“윽……!”
성기가 배 속에 들어와 박히자 로미오가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괴로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조반니가 허리를 뒤로 물리자 성기 크기만큼 넓게 벌어졌던 구멍이 다시 급하게 오그라들었는데 핏줄까지 빨아들일 기세로 조여 대는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윽… 흡, 아흑……!”
“후…… 하아…….”
로미오는 조반니가 발목을 잡아 누르는 탓에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몸이 짓눌렸다.
엉덩이 사이로 성기가 들락거리자 몸이 위쪽으로 밀려났는데 머리 위로 보이는 자신의 종아리에는 군복 바지와 속옷이 걸려 있었다. 발끝은 거친 허리 짓에 따라 맥없이 흔들리며 빗물을 떨궈 냈다.
조반니는 기분 좋게 한숨을 내쉬며 로미오의 표정을 확인했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두툼한 성기가 엉덩이 골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는데 성기가 삽입될 때마다 빗물이 맺힌 허벅지가 바짝 경직되는 게 보였다.
허리 짓하던 속도를 늦춘 조반니는 성기 뿌리까지 힘주어 푹, 푹 박으며 로미오의 몸을 밀어붙였다. 엉덩이가 저릴 정도로 과격하게 쑤셔 대자 로미오가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입을 크게 벌리며 숨넘어갈 듯 괴로워했다.
“윽, 아… 아윽……!”
조반니는 입맛을 다시며 혀로 입술을 축이고 허리 짓 하는 속도를 높였다. 예상했던 대로 빨리 사정감이 몰려왔다. 평소보다 흥분한 탓이었다.
아랫배로 로미오의 엉덩이를 후려치고 좁은 배 안을 마구잡이로 들쑤시니 접합부가 눅눅하게 뜨거워졌다. 두 다리를 뒤로 쭉 뻗어 바닥에 발끝을 세우고 로미오의 종아리를 자신의 다리에 걸친 조반니는 위에서 찍어 내리듯 성기를 쑤셨다. 로미오의 배 속 깊숙이 자리한 장기를 밀어내고 꼬리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추삽질하니 다리 근육에 경련이 일었다. 빗물에 젖은 음모가 로미오에게 닿았다가 떨어질 정도로 가깝게 삽입하자 로미오는 몸을 버르적거리지조차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악, 읏, 흡……!”
“허윽, 흑… 후우…….”
조반니는 자신의 허리 짓에 의해 바닥에 눌려 있는 로미오를 내려다보며 거북한 신음 소리를 냈다. 본래 목소리를 감춰야 하는 까닭에 신음 소리의 높낮이가 오락가락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괴이하고 끔찍하게 들렸다.
퍼억! 퍽! 내장까지 뭉개며 처박히던 성기는 사정 직전이 되자 비좁은 구멍 안에서 꾸물대며 움직였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허리 짓을 하던 조반니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며 엉덩이를 크게 움찔댔다.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고 양 손가락은 무언가를 붙잡거나 뜯어내려는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큿……!”
목 안에서 긁어 올린 듯한 굵은 신음 소리를 낸 조반니는 온몸을 들썩거리며 허리를 떨었다. 입을 벌린 채 눈을 감은 그는 그 상태로 흠칫흠칫 떨며 사정했다. 고통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강렬한 황홀감에 목과 뺨이 벌게져 있었다.
로미오의 배 안에 정액을 양껏 쏟아 내는 동안 따뜻한 점막이 성기를 감싸는 것을 느낀 조반니는 원을 그리듯 허리를 돌리다 말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있는 로미오는 입술을 물고 있었는데 몰골이 엉망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로미오와 같은 아름다운 사내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엉덩이를 드러낸 채 자신의 정액을 받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그의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부분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비좁고 따뜻한 로미오의 배 속과 자신의 성기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우…….”
정액을 전부 토해 낸 성기가 말랑하게 작아질 때까지 기다리던 조반니는 서서히 허리 짓을 늦추며 숨을 골랐다. 로미오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앉자 로미오가 반쯤 정신을 잃은 채 두 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정액에 젖은 성기를 빼내 흔들며 털어 내는데 귀두 끝에 피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속옷과 바지를 추슬러 입은 조반니는 허리끈을 묶고 로미오의 앞에 앉았다. 로미오의 무릎을 벌려 구멍을 들여다보니 입구가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개의치 않고 엉덩이 골 사이를 더듬어 회음부를 찾아내자 부어오른 게 느껴졌다.
“어디 확인해 볼까?”
회음부 주위를 힘주어 누르자 질퍽한 구멍 밖으로 희끄무레한 정액이 한가득 비집고 나왔다. 한 번 더 힘주어 누르자 덩어리째 뭉쳐진 정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 위로 떨어졌다.
개운함에 후련한 한숨을 쉰 조반니는 로미오의 손을 묶고 있던 줄을 풀어 품에 넣었다. 골목을 빠져나간 그는 거리로 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로미오의 앞에 모자와 지팡이를 던졌다. 가시지 않은 흥분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또 보자고. 다음번에는 좀 더 여유를 갖고 대해 주지.”
누워 있는 로미오를 향해 손을 흔든 조반니는 옷을 툭툭 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로미오는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어두컴컴한 골목 벽을 바라봤다. 발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이후에도 축 늘어진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벽 한가운데 시선을 고정하고 눈을 감으니 귀가 먹은 듯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납덩이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쿵, 쿵, 쿵 느리게 뛰었다.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온몸을 식혔다가 데웠다. 좁아져 있던 시야가 서서히 넓어지자 차츰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후두둑, 툭, 투둑…….
조금씩 고개를 움직여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로미오는 뺨과 목, 가슴, 배, 허벅지 위로 사납게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손으로 바닥을 짚었으나 그 짧은 동작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느린 몸짓으로 상체를 일으켜 앉는데 엉덩이 사이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눈앞은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벽을 더듬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주 천천히 발끝에서부터 힘을 줘 종아리와 허벅지 힘으로 바닥을 버티고 섰다.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고 서서 벽에 이마를 기대고 있는데 오한이 일었다. 엉덩이 뒤로 손을 가져갔지만 손끝에 닿는 피부가 딱딱한 껍질처럼 느껴졌다.
느리게 손을 더듬어 짓무르고 부은 주름을 찾아내니 정액이 미끈거리며 묻어 나왔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자 크게 열렸다가 오므라드는 안쪽이 정액으로 질척거렸다.
“윽…….”
손가락을 넣어 긁어내자 피가 섞인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개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는데 두들겨 맞은 탓에 어깨와 가슴, 허리 전체가 쑤셨다. 서 있는 것이 힘들어 구부정하게 몸을 숙인 상태로 속옷과 바지를 끌어 올려 입었다. 뜯어진 단추를 꿰는데 손끝이 아무렇게나 떨렸다. 여러 번의 헛손질 끝에 겨우 단추를 꿰고 허리띠를 채운 뒤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바닥에 엎드렸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모자를 찾았다. 손끝에 모자챙이 걸리자 집어 들어 머리에 썼다. 지팡이를 찾기 위해 무릎으로 기다가 허벅지 살갗이 벗겨질 것 같은 고통에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다시 일으켜 바닥을 더듬다가 지팡이 손잡이가 만져지자 끌어당겼다. 일어서기 위해 어깨를 폈지만 힘에 부쳐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로 비를 맞았다.
“…….”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어른거리는 바닥을 보며 숨을 쉬는데 갈비뼈 아래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참 만에야 지팡이를 바닥에 짚고 벽을 더듬어 일어선 로미오는 느린 걸음으로 벽을 따라 걸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의 뼈가 어긋나 삐거덕대는 것 같았고 현기증이 느껴졌다. 묶인 손목은 울긋불긋하게 상처가 남아 있었고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보니 턱과 입술이 부어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로사티 3번가로 이어지는 거리를 바라봤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뺨 아래로 눈물이 떨어져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로미오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