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23/25)

외전 1.

비행 일주일 전 유학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선배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랬니?”

그 상냥한 물음에도 나는 입을 꾹 닫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하기 싫은 거야?”

“……전 여자 친구랑 같이 가야 했어요.”

“그런데?”

“걔가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미워하고 있었어요.”

“…….”

“걔한테 더 이상 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해서.”

“…….”

“생각해 보니까 저 옛 여자 친구들한테 한 번도 마지막 예의 같은 걸 차려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요.”

선배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좀 한심하죠? 이제 와서.”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지.”

“…….”

“그렇게 결정할 수도 있지.”

선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무릎에 이마를 쿵 박았다.

“뭐가 다 이상해졌어요.”

“뭐가?”

“모르겠어요. 내가 지금 선배 집에 있는 것도 실감이 안 나고 여기가 아직 한국인 것도 말이 안 되고 혜주 누나랑도 그렇게 끝난 게 맞는 건지.”

“…….”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고 내가 고개를 조금 들어 올리려던 찰나 그의 손이 내 정수리 위로 올라왔다.

“우리 애기.”

“…….”

“뭘 이렇게 다 몰라서 어떡할까.”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내게 ‘애기’라는 그 호칭이 적합하진 않을 텐데. 무지하다는 점만을 빼면.

“곧 여름이 올 거야. 그때까지 느긋하게 생각해 보자.”

“…….”

“그때도 모든 게 다 엉망처럼 느껴진다면.”

선배가 어느새 다정해진 얼굴로 말을 골랐다.

“그럼 또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고.”

울렁이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도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착하다 하며 내 앞머리를 조금 쓸었다.

“네가 없는 동안…….”

선배의 음성은 높낮이 없이 잔잔했다.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고자 함을 알았다.

“생각을 많이 했어. 원래도 많이 하지만, 평소보다 더.”

“…….”

“네가 왜 떠나겠다고 했는지 알겠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하지만 내 자존심, 신념도 포기하기 싫었고. 너는 돌아와서 다시 만나면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너한테 상처를 줬지.”

“…….”

“그냥 그게 너무 아쉽고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는데.”

늘 모호하게 이야기하던 그가 너무도 직설적이어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오늘도 우리의 대화에서 직선은 나의 모양새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일까.

“뭐 대단한 신념이라고……. 너를 죽어도 못 붙잡겠다고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아집에 불과한걸.”

“…….”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네가 지금 나타나 주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어.”

선배가 나의 뺨을 매만졌다. 뼈대가 도드라진 그의 손마디가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었다.

“가지 말아 달라고 너를 붙잡고 싶었어.”

“…….”

“나는 다음 생도, 다음 기회도, 그런 걸 믿기에 너무 세속적으로 변해 버린 인간이니까, 기약 없는 약속으로 나를 불안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조용한 목소리. 나는 가만히 그의 손에 기댔다.

“선배가 뭐가 세속적이에요. 선배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냥 너무 빨리 어른이 돼 버려서 조금 비겁해진 거예요.”

선배는 그러니 하고 웃었다.

“너를 붙잡지 않고자 했던 것도 내 진심이었어, 한아.”

“알아요.”

“연애, 어려운 거였네.”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나 선배에게나 이 연애는 어려웠다.

“선배, 제가 유학을 갔으면요.”

“응.”

“절 기다렸을 거예요?”

“아니.”

선배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그렇게 말했다. 아니. 기다리지 않았을 거야.

“너를 기다리면서 내가 느껴야 할 불안감과 네가 느껴야 할 의무감 모두 싫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겠지.”

“…….”

“구속이 없는 사랑이 좋은 사랑 같다던 내 말에 책임을 졌겠지. 네가 가면 갔구나 돌아오면 왔구나 하면서.”

“저는 선배가 너무 변할까 봐 무서웠어요. 너무 다른 곳으로 가 버릴까 봐.”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계속 변해 왔어. 나를 형상화하던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허물고 떠나길 반복했으니까. 그래도.”

“…….”

“네가 부르면 다시 돌아왔을 거야. 내가 로스쿨을 갔든, 전공을 겨우 살려 일반 회사에 취직을 했든, 전업 작가로 살아가든.”

“그래서 셋 중에 어떤 걸 하고 싶은데요?”

나는 그가 이미 휴학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선배는 약하게 인상을 쓴 채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

“그래도 방금 결심한 게 하나 있긴 한데, 그 결심을 이행하러 같이 가 줄래?”

나는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며칠 뒤 선배가 나를 애스턴 마틴에 태우고 중고차 매장에 도착한 순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선배가 내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마지막 인사를 해, 한아.”

하지만 정작 그는 내게 애스턴 마틴과의 끝인사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서류를 작성하고 딜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를 보며 멀뚱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한 시간여 만에 돈 봉투를 받아 든 선배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오늘 맛있는 거 사 줄게.”

“진짜 판 거예요?”

나의 현실 부정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됐어. 이 차가 있는 한 나는 계속 가족이라는 틀에 얽매일 것 같으니까.”

“……잘했어요.”

“잘했단 얼굴이 아닌데, 지금.”

“안 아쉬워요?”

“왜? 돈 벌어서 다른 차 사면 되는데.”

선배에게 차는 정말로 단순한 운송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선배 같은 남자를 처음 봐서 당혹스럽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는 너는 저 차가 왜 좋은데?”

“멋있잖아요.”

“그런가. 다 똑같아 보이는데.”

“예술적이지 않아요?”

이번엔 선배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예술…….”

그가 헛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내 인생에 예술은 글 말고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돈 많이 벌어야겠네. 한이가 예술적이라고 생각하는 차 사려면.”

“선배는 선배의 기준대로 살면 되죠.”

“그럼 우리는 뭣 하러 사귀니.”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한 선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고 같이 걷자는 의미였다.

              ***

선배는 차를 판 돈으로 내게 디저트를 사 줬다. 주말에 선배가 알바를 했었던 카페였다. 월화수의 술집, 목금의 햄버거 가게, 주말의 카페 중 이 카페가 가장 일이 편하다고 선배는 말하곤 했었다. 나도 여자 친구들과 종종 들르곤 했었는데 정말 커플들만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카운터를 보던 알바생이 선배를 알아본 듯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자그마한 마들렌까지 서비스로 데워 주며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형 일 그만두고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맞죠?”

“그렇게 됐네. 여기가 혼자 올 만한 곳은 아니잖아.”

“어우, 그렇다고 남자 둘이서 올 곳은 아니죠.”

알바생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나는 웃음기 없이 담백하게 인사했다.

“화학 공학과 서한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정수라고 합니다. 가끔씩 여자 친구랑 오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매번 여자가 바뀌었잖아요.”

콜록. 커피가 목에 걸려서 역류하며 기침이 시작됐다. 선배가 내게 휴지 몇 장을 집어 내밀었다.

“왜 애를 놀리고 그래, 정수야.”

정수 씨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손을 내저었다.

“전 부럽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는데. 지금은 여자 친구 없나 봐요?”

나는 선배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는 내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겠다는 듯 소파에 몸을 조금 기댄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있어요.”

내 대답에 선배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오, 역시. 언제 한번 데려와요. 제가 카운터 볼 때 오시면 또 서비스 줄게요.”

“그럴게요.”

“시현 형은 아직도 여친 없어요? 민재 형 말로는 평생 안 사귈 것 같다던데.”

“민재 형이 제가 아는 그 민재 형이에요?”

선배가 대답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물었다. 선배는 내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응. 이 카페도 민재가 추천해 줘서 들어오게 된 거였거든.”

그의 인맥은 놀랍지도 않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 중 절반이 민재 형을 알고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이따가 민재 형이랑 술 먹기로 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어떡할래, 한아.”

선배는 내게 의사를 물었다.

“글쎄요. 제가 술을 잘 못 해서.”

하지만 내 앞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정수 씨를 보자니 싫단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선배는 곤란해하는 나를 대신해서 짧게 대답했다.

“잠깐 얼굴만 보고 오자, 그럼.”

하지만 그 상대가 민재 형인 이상 ‘잠깐 얼굴만 본다.’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었다. 민재 형은 선배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며 그를 끌어 앉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술잔을 부딪히고 있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한이는 며칠 새 얼굴이 좀 좋아졌네. 인생에 제일 긴 솔로 기간은 잘 보내고 있어?”

민재 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수 씨가 나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여자 친구 있다던데요?”

민재 형은 입을 조금 벌렸다.

“벌써? 여자 안 사귄다며, 이제.”

“그렇게 됐어요.”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번거로워 그렇게 대답하자 민재 형의 표정이 변했다. 눈웃음이 묻어 있는 눈가를 보니 또 나를 놀리고 싶은가 보다.

“역시 습관 고치기 어렵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니까.”

“한이 씨 별명이 뭔데요?”

“민재야.”

존재감 없이 듣고만 있던 선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남의 약점 이용해서 네 위신 세우지 마.”

“…….”

“…….”

선배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작 분위기를 망친 당사자는 고요했다.

선배는 유독 나의 별명과 관련된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가 신경 쓰고 쓰지 않고는 그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닌 듯했다. 그렇게 망가진 분위기는 민재 형의 넉살 덕분에 금방 돌아왔지만 선배의 표정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

“나는 가끔 한이 너를 이해하기 어려워.”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온 선배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항상 까칠하게 굴면서 왜 정작 가까운 사람들한테 싫은 소릴 못 해.”

“제가 그래요?”

“응.”

“……앞으로 안 그럴게요.”

“봐 봐, 또.”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예민함을 사랑하지만 늘 어려워했다.

“왜 그딴 말 들으면서 가만히 있니.”

“귀찮잖아요. 틀린 말도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야?”

선배의 표정이 와그작 구겨졌다.

“이게 무슨 황당한 자학성 발언이야? 틀린 말이 아니라니.”

“그런 뜻이 아니라……. 어쨌든 제가 제 여자 친구들한테 못된 애인이었던 건 맞아요. 선배한텐 어땠는지 몰라도.”

“그래서.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고?”

미안해서. 미안해서인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러면서 무슨 죄책감을 가져 본 적이 없어?”

선배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가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렇다고 해도 제삼자에게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거야. 사람들 앞에서 위악 좀 그만 부려.”

“…….”

“속상해 죽겠으니까.”

나는 말없이 선배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그는 순순히 입을 벌려 주었다. 숨결이 진득하게 얽혔다. 그가 뜨거운 숨을 한숨처럼 내쉬며 내 뺨을 감쌌다.

“이제 그런 소리 듣지 않게 내가 잘할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자 선배가 농담이 아니라며 얼굴을 굳혔다.

“선배가 잘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내가 잘해야 네가 다음 여자 친구를 또 안 만들지.”

“어떻게 잘할 건데요?”

“글쎄.”

선배가 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씻고 나오면 보여 줄게.”

              ***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선배가 아직도 내 위에 있다는 것은 호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볐다.

“잘 잤어?”

“뭐 해요, 선배…….”

“너 일어나길 기다렸지.”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쇄골에 입술을 묻었다. 어제 그에게 깨물고 빨려 자국이 남았을 게 분명한 위치였다. 어젯밤의 기억이 몰려오며 얼굴과 아래로 피가 몰렸다.

“으음.”

선배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옆구리 부근을 빨다 말고 웃었다.

“뭘 했다고 벌써 섰어?”

“아침이잖아요.”

선배가 허리를 숙여 아직 발기하지 않은 내 좆을 입에 물었다. 축축한 입 안이 귀두를 꽉 조이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신음하며 베개에 비볐다. 혓바닥이 기둥을 부드럽게 핥아 올렸다.

“흐읏, 응.”

그가 웃을 때마다 목구멍이 떨려서 새로운 자극이 전해졌다. 그가 손으로 축축해진 것을 애무하며 말했다.

“목소리가 야한 것도 아침이라서 그런 거야?”

“왜 놀려요…….”

“안 놀렸어. 진짜 야해서 그런 거야.”

그가 나의 가슴팍에 코를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한테서 묘한 냄새가 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거 제 향수 냄새 잔향이에요.”

“하여튼, 무드 없기는.”

선배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 콧날 위로 손가락을 튕겼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선배의 목을 끌어당겨 쇄골과 목 사이를 이로 깨물었다. 선배가 약하게 신음했다. 아마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혀끝에 치아 자국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혀로 핥고 입술로 빨아들인 후 떼어내니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잘하네, 이제.”

낮은 목소리로 선배가 말했다.

“저는 뭐든 빨리 배우니까요.”

선배가 내 다리를 벌렸다. 종아리에 그의 등허리가 닿게 감싸 안자 둔부에 제 좆을 비비던 선배가 못 참겠다는 듯이 미간을 움직였다.

“어제 못 해 준 말이 있는데.”

“아, 흣, 뭔데요?”

선배가 엉덩이를 잡아 벌리며 부드럽게 삽입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크기에 소리 내어 신음했다. 그와 동시에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한다고, 한아.”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흣, 흐윽, 윽. 어젯밤의 정사로 부풀어 오른 구멍이 화끈거렸다.

“아, 선배, 아프, 아파요…….”

맹렬한 기세로 내 옆구리를 핥던 그가 우뚝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파?”

쑥, 그의 것이 반쯤 빠져나갔다. 나도 모르게 아래에 확 힘을 주자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근데 왜 조이고 그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게 아니라…….”

그가 내 뺨에 입술을 짓눌렀다. 쪽, 쪽, 소리가 나게 입 맞춘 그가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가 아픈데? 나 좀 자존심 상하려고 하는데.”

“……어제 그렇게 박아댔으면서, 아침부터 또 하니까…… 쓸려서…….”

그가 걸치고 있던 귀두를 확 빼냈다. 흣, 신음과 함께 몸을 웅크리자 그가 허리를 숙이며 내 다리를 더 넓게 벌렸다. 그 사이를 빤히 들여다보던 그가 다정하게 말했다.

“젤 좀 사 둬야겠다.”

“아니, 그만하자는 건 아니었……, 는데요.”

뚫렸던 구멍이 점차 오므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아쉬워서 인상을 찌푸리자 선배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애기, 이렇게 귀여워서 어떡하지.”

“선배, 그놈의 애기 소리 좀…….”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내 한쪽 허벅지를 제 어깨에 걸친 그가 혀를 길쭉하게 내어 내 구멍 위를 핥았기 때문이다.

“헉, 선배. 잠깐…….”

“쉬이, 안 아프게 해 줄게.”

뜨끈하고 뭉클한 것이 구멍 안팎을 문질러댔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자국을 남길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그거, 진짜, 흐읏, 이상하다고요.”

“응.”

그가 양쪽 엄지로 둔부를 잡아 벌렸다. 차가운 공기에 속살이 노출되어 흠칫 놀란 사이에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닿았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며 그를 불렀다.

“선배, 선배애.”

“으응.”

그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혀를 안쪽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나는 주먹 쥔 손으로 자국도 남지 않을 시트를 무용하게 긁었다.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선배애, 그거 하지 마요.”

아득해진 시야 너머로 선배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던 감각도 점차 사라졌다. 그가 손등으로 젖은 입술을 문질렀다. 그조차도 외설적이게 느껴졌다.

“한아, 네가 그렇게 애기처럼 말끝을 늘이면서 나를 부르면 진짜…….”

그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내 양쪽 다리를 모두 제 어깨에 걸치게 한 그가 다시금 거세게 삽입했다. 흐윽!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너한테 이러는 생각밖에 안 들어.”

“선배, 아, 아, 좀, 천천, 히.”

선배가 혀를 대었던 곳이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좆을 빨아 당겼다. 감각이 온전히 살아나 단단한 것이 미끄러지며 들어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둔부를 조이자 그가 고개를 돌려 아프지 않게 내 종아리를 깨물었다.

“평소엔 무뚝뚝하면서 침대에선 왜 이렇게 애교를 부려.”

기가 막혔다. 내가 대체 언제…….

“또 그렇게 불러 봐. 선배애애, 하고.”

선배가 내 골반을 틀어잡고 콱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좆이 가장 안쪽까지 틀어박혔다. 꽉 닫혀 있던 곳이 벌어지는 감각에 천장을 향해 솟아 있던 발가락이 꿈틀거렸다.

“응? 얼른.”

“그게, 그게 뭔데요. 아, 잠, 잠깐만…….”

그가 다시 허리를 쳐올림과 동시에 내 사정이 시작되었다. 배에 흩뿌려지는 흰 액체를 본 선배가 내 좆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귀두를 훔치는 능숙한 손길 탓에 성감이 이미 최고치까지 고조된 상태였는데, 그가 그것과 엇박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애원하듯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안, 안 돼요. 잠깐만. 좀, 기다렸다가, 힉.”

파들파들 떨리는 종아리를 보고 그가 짓궂게 웃었다.

“아까처럼 불러 보라니까. 내가 빨아 줄 때처럼.”

“어떻게, 모르겠, 흑. 선배, 선배, 그만, 그만.”

콱. 선배가 뿌리까지 세게 박아 넣음과 동시에 사정이 끝났다. 구멍 안쪽이 꿈틀거리며 그의 좆을 애무했다. 그가 내 양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두르곤 내 얼굴 옆으로 제 손을 짚어 가까이 다가왔다.

사정의 여운에 젖어 구멍을 움찔거리는 동안 그는 좆을 빼내고 구멍 안의 움직임을 마음껏 만끽했다. 귓바퀴를 따라 그의 혀가 여러 번 오갔다.

“밑을 빨아 줘야 그렇게 부르는구나.”

노골적인 음담패설이었다. 그는 내 치부를 알아낸 것이 기쁜 표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니까 더 좋다. 네가 정신을 못 차려서.”

사정이 완전히 끝나고 몸이 축 늘어지며 구멍에서도 힘이 풀렸다. 그제야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이 풀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눈꺼풀과 콧날, 입술 위로 부지런히 입맞춤이 떨어졌다.

허벅지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힘을 주자 그가 푹푹 쑤셔대던 좆을 빼내고 이내 사정했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제 손으로 기둥을 잡고 문지르면서 길게 사정한 그가 내 안쪽 허벅지에 아직 식지 않은 것을 문지르며 말했다.

“꿈결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와 몸을 맞대는 이런 것이 꼭 꿈 같았다.

“이게 연애구나, 한아.”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혼이 쏙 빠져나간 와중에도 조금 웃었다.

‘이게 섹스구나.’

마침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안경 낀 선배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는 것은 괜한 특권 의식마저 느끼도록 만드는 행복한 일이었다. 안경을 낀 그는 조금 더 지적으로 보이고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약간 휘어 둥글게 만들었다.

“너 때문에 공부가 안 되는데, 한아.”

“네?”

그가 손끝에서 돌리던 펜을 탁 내려놓았다.

“왜 자꾸 훔쳐봐.”

“안 훔쳐봤는데요.”

“그럼 왜 대놓고 쳐다봐.”

“…….”

“신경 쓰여서 법전이 안 외워져.”

그가 한쪽 손으로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다시 내가 원래 아는 선배로 돌아왔다.

“안경 되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알아.”

“…….”

“예전에 누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어.”

선배는 자기가 잘났다는 것을 잘 안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자만하지 않는다. 그것이 완벽하게 그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나서 어떻게 했는데요?”

“뭘 어떻게 해? 못 들은 척했지. 여지 주고 싶지 않으니까.”

“나쁘네요.”

“너만 하겠니?”

그가 피식 웃으면서 테이블 너머로 내 손을 잡았다. 내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작거리던 내 손등에 제 얼굴을 비볐다.

“네가 흘린 여지에 얼마나 헷갈렸는데.”

“선배가요?”

“응.”

“…….”

“너 완전 선수인 줄 알았어.”

그런 적 없는데……. 시선으로 그를 쫓았지만 용기가 없어 말을 하지 못한 것을 그렇게 느꼈던 걸까. 억울한 기분이 들었으나 나의 손 구석구석을 연구라도 하듯 매만지는 선배의 손길에 또 금방 마음이 풀렸다.

“네 손 빨고 싶어.”

그는 이제 완전히 내 앞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와의 연애는 섹스와 일상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특히 이렇게 게슴츠레한 눈과 잠긴 목소리로 나를 꼬시는 듯한 목소리를 낼 때.

“이따가…… 밤에 해요.”

그가 혀를 빼꼼 내밀어 내 손등의 맛을 보았다. 내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즐기듯이 그가 소리 내서 웃었다.

“알았어. 이따가 밤에.”

“…….”

“대신 내가 빨아 주면 그걸로 아래 쑤시는 거 보여 줘.”

여기가 선배의 집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선배의 주변인들은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란 걸 상상이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어 나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위하는 거 보여 달란 거죠?”

“역시 똑똑한 내 애인.”

그에게서 간신히 풀려난 손을 테이블 아래로 숨기자 그가 안 잡아먹는다며 나를 타박했다. 그를 훔쳐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생긴 나는 괜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져서 교재에 고개를 처박았다.

내 끈질긴 시선을 퇴치하는 데 성공한 선배가 나지막한 웃음과 함께 안경을 다시 썼다.

나는 낭만적 연인의 순간들이 내 안에 하나씩 축적되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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