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달에 닿기까지
(1)
진짜 이별이었다. 폭발처럼 잔해를 남겼다. 나는 그의 향기가 나는 것마다 붙잡고 울었다. 밤마다 다른 여자의 꿈을 꿨다. 내가 사귀었던 그 여자들이 번갈아 나왔다. 선배의 차례를 기다렸으나 선배는 꿈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민재 형이 집 안까지 쳐들어와 입 안에 밥을 넣어 주지 않았으면 영양실조가 왔을 정도로 내 한 몸 건사할 수도 없었다. 누가 봐도 선배가 시킨 게 분명한 기세로 민재 형은 부지런히 내게 음식을 배달했다.
여러 번 더 술에 취해 선배의 집에 찾아갔지만 늘 불이 꺼져 있었다. 세 번째로 건물에서 쫓겨나던 날 민재 형이 한숨과 함께 알려 주었다.
‘시현이 휴학하고 본가 들어갔어.’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신 좀 차려라. 출국도 얼마 안 남은 놈이.’
각자의 선택이었다. 선배는 휴학을 하고, 나는 유학을 가고……. 그런데 왜 이렇게 모든 게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다 망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겉으로는 내 인생이 너무 온전해 보여서 화가 났다.
그 와중에도 여름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죽다 살아나서 간신히 기운을 차리고 학교 앞의 백반집에서 희윤을 마주쳤다. 첫 만남처럼 희윤은 자연스럽게 내 앞에 합석하여 앉았다.
“서한 씨.”
“…….”
“앉아도 돼요?”
“…….”
“왜 이렇게 퀭해졌어요.”
희윤이 나를 보고 애틋하게 웃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수저를 움직였다.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아요?”
“……네.”
“떠난다면서요.”
“네.”
“언제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일부러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대꾸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희윤이고 나발이고 누구와도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언제 돌아와요?”
“…….”
밥을 입 안에 퍼 넣다 말고 고개를 들어 희윤을 바라보았다. 희윤은 여전히 첫 만남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고 나는 그것이 토할 것처럼 싫었다.
“사랑이 끝나면요.”
내 대답에 희윤은 낯선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난감한 듯 보이기도 했고 민망한 듯 보이기도 했다.
“장시현 휴학했어요.”
“알아요.”
나는 슬슬 그의 존재가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에게 좋은 태도를 유지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것이 선배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매주 화요일에 학교에 와요.”
희윤도 그런 내 상태를 인지한 듯 조용히 본론을 이야기했다.
“장시현 말이에요. 화요일마다 과방에 온다구요. 독서회 임원이라서요.”
“…….”
“독서회는 보통 저녁 8시면 끝나고 걘 밥도 안 먹고 혼자 도서관 단풍나무 앞에서 담배를 피워요. 어딘진 알죠?”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겠지만.
“당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망부석처럼 공학관을 보고 있어요.”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싫다는 사람을 붙잡고 뭘 어떻게 하라고. 헤어져서 나와 인사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무슨 수로 구워삶으라고.
“로스쿨 가기 전까지 글 안 쓴다고 나한테 제 노트북을 비롯한 잡동사니들을 강제로 떠넘기고 갔는데 찾아보면 뭔가 중요한 게 있을 거예요. 핑곗거리가 필요한 거면 서한 씨에게 줄게요.”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저었다.
“……필요하면 연락해요, 그럼.”
희윤이 새하얀 에코백을 어깨에 멨다. 의자를 드르륵 끌며 일어난 희윤이 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처럼 말했다.
“당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엉망진창인 꼴을 하고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내 눈엔 당신의 지난 애인들과 장시현이 뭐가 그렇게 다른지 전혀, 조금도 모르겠어서.”
“…….”
“……진심이긴 했었나요?”
그 마지막 질문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아, 이게 이렇게 되네……. 결국 선배마저 나한테 그런 걸 묻게 되는구나. 남의 입을 빌어서라도 내가 이 질문을 또 듣게 되네.
나는 이 상황이 신기하고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웃었다. 광인처럼 킬킬대는 나를 미친 건가 의심할 만도 한데 희윤은 나를 진지한 시선으로 들여다봐 주었다.
“그 질문, 지금 딱 열한 번째 듣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웃으면서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걸 보면 뭐 그렇게 다른 게 없었나 봐요.”
“…….”
“그쵸?”
희윤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음식점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가 진정으로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나와 사귀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고 매도해도 상관없지만, 선배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
학교에서 같은 기수에 유학을 가는 학생들끼리 자리를 여러 번 만들어 주었다. 핸드폰을 꺼 놓고 살았기에 단톡방이 만들어진 것도 몰랐었다. 무심히 단톡방의 인원을 확인하던 나는 이소망의 이름을 보고 손가락을 멈추었다.
결국 붙었구나.
같이 가게 되는 건가.
뭐,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소망은 단톡방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나를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지를 확인하자 오늘 저녁 카페에서 세 번째 모임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출석하겠다는 의미로 투표를 남겼다.
살이 빠졌다는 걸 체감한 것은 끼고 다녔던 시계가 헐거워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라 머리를 좀 만졌는데 얼굴 살이 쏙 빠져 있었다. 이제 와서 새롭게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멀끔하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얇은 반팔 티 한 장에 위에 뭘 입을까 고민하다 오랫동안 옷장에 처박아 두었던 체크 남방 하나를 꺼내 걸쳤다. 공대생 같으니까 이딴 것 좀 입지 말라고 필히 내 여자 친구였을 누군가가 잔소리를 한 이후로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이었다.
이 시간에 건전하게 카페에서 모임을 하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라 풍만한 커피 원두 향이 낯설었다. 어색해하는 얼굴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한 씨?”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어서 오라며 내게 손짓했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 있던 이소망은 나를 확인하자마자 얼굴 근육을 굳혔다.
“처음 나오는 것 같은데, 맞죠?”
“……네, 핸드폰 고장 나서 수리 맡기느라 단체 톡 확인을 못 했었어요.”
나는 무던한 움직임으로 빈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이소망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커피를 마셨다.
이야기는 지루하고 단조롭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우리가 가게 될 학교 주변에 있다는 햄버거 맛집, 인종 차별에 대한 대응 방법,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설렘 같은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주고받았다. 내가 커피만 빨고 있자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서한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초반엔 좀 그런 편이에요.”
“그럼 빨리 친해지면 되겠다. 반년이든 1년이든, 같은 학교 같은 기숙사에서 자주 볼 얼굴들인데.”
“네.”
“무슨 과예요?”
“……화학 공학과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이소망에게로 향했다.
“어? 그럼 둘이…….”
“같은 과 동기예요.”
애써 평연한 나의 대답에 그들은 “오!” 하며 흥미를 표했다. 이소망의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뭐야, 그런데 왜 서로 모른 척했어요?”
누군가의 눈치 없는, 혹은 의도적인 질문에 모두가 나와 이소망에게로 집중했다. 나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자 했다.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그냥 민망해서요.’ 정도로 충분히 넘길 만한 질문이었다.
“1학년 때 CC 하다가 헤어졌어요.”
하지만 이소망은 그렇게 말해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
“아아…….”
사람들은 저마다 짧게, 혹은 길게 탄식했다.
“와, 되게…… 쿨하네.”
“전 하나도 안 쿨해요. 얘 땜에 휴학했어요.”
“…….”
“절 사랑했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미친놈이죠.”
“…….”
“…….”
“…….”
그동안 나를 모른 척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소망은 대놓고 나를 폄하했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있자 사람들이 슬슬 우리의 눈치를 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말했다. 이소망은 잠시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일어섰다. 나는 사람들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 먼저 카페 밖으로 나섰다.
뜨뜻미지근한 바깥 공기를 맡자마자 숨통이 좀 트였다. 한참 뒤에야 단정한 걸음으로 나온 이소망이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왜 이래? 새 인생 시작하고 싶던 거 아니었어?”
짜증스러운 내 질문에 이소망이 차갑게 웃었다.
“그랬지.”
“…….”
“너만 없었다면.”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애써 정리한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섰다. 담배를 피울까 주머니를 매만지다 갑자기 선배가 생각이 나서 목이 콱 막혀 왔다. 목에 걸린 무형의 덩어리를 삼켜내고 말했다.
“그래 봤자 네 손해야. 어차피 나는 학과 공식 걸레인데, 그 소문 좀 더 퍼진다고 잃을 게 더 있겠어?”
“의자왕 납셨네.”
“그냥 지금 들어가서 장난친 거라고 해.”
“내가 왜?”
자조적인 회유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묻고 싶어졌다.
“딴 데선 생판 첨 보는 남인 척하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는데?”
“…….”
나는 힐끔 이소망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언제 웃었냐는 듯이 다시 무표정했다.
“응?”
고개를 조금 들이밀며 대답을 재촉하자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빡 치잖아. 새삼스럽게.”
“…….”
“너 장학생인지 뭔지 암튼 특혜받아서 가는 거라며. 왜 하필 내가 가는 학교니?”
“…….”
“새 인생 살아 보려고 했는데 하필 네가 또 같이 간다잖아. 짜증 안 나게 생겼어?”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짜증 날 만한’ 일인지. 그냥 같이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 아닌가. 결혼했다가 이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사귀다 헤어진 것뿐이었는데.
“나한테 미련 남았어?”
그렇게 묻자 이소망은 대놓고 나를 비웃었다.
“너 그 정도 아니거든?”
“그럼?”
“…….”
이소망은 어느새 담배를 물고 있었다. 얘가 원래 담배를 피웠었던가. 나랑 헤어진 인간들은 왜 하나같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 줄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야.”
“응.”
내가 순순히 대답하자 그가 나를 한번 쓱 보고 다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너는 정말 그대로다.”
“…….”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야.”
“뭐가.”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톤으로 말이 나갔다. 선배의 지난 말들이 겹쳐 들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소망은 갑자기 딴소리를 해댔다.
“……네가 미울 때. 미워서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을 때.”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버텼는지 알아?”
담배를 피워서인지 낮고 허스키해진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나긋했다.
“넌 평생 그러고 살겠지.”
“…….”
“평생 그런 인간밖에 안 되겠지. 남의 진심을 이용하고 하찮게 보고, 그러다가 너의 진심이 뭔지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그런 시시하고 허무한 인간으로 살겠지.”
“…….”
“빈껍데기만 남아서 인형처럼 무의미한 ‘사랑해.’를 반복하는 그런 불쌍한 인간. 옛 연인을 길에서 봐도 왜 마음 아파야 하는지 모르는 백치인 채로.”
모욕성이 짙은 말을 아주 덤덤하게 뱉은 이소망이 꽁초를 구둣발로 꾹꾹 짓밟았다.
“평생 그러고 살다가…… 남이 온 마음을 다해 꺼내서 보여 주는 사랑과 기쁨, 증오와 슬픔 같은 것도 온전하게 믿지 못하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주고 싶어도 줄 수도 없고.”
시를 외우듯 나지막한 목소리에 슬슬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긴 했냐’는 질문에 진정으로 그랬었다고 대답하지도 못하는 그런 찌질이로 살면서.”
“…….”
“차라리 그 누구도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여기면서 살겠지.”
“…….”
“네 진심을 알게 되는 게 무섭고 두려우니까.”
이소망은 불현듯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과에 나도는 소문들을 듣자면 네가 그런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너무 기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소망은 구김살 없는 얼굴로 예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
“나는 이제 너를 용서해 줄게.”
심장이 꽉 조여드는 기분, 목구멍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고 귀가 멍멍해지는 기분. 이런 게 뭔지 모르겠다. 현대 의학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
“울어?”
놀란 말투로 이소망이 물었다. 나는 가만히 손등으로 뺨을 문질러 보았다. 눈물 한 방울이 촉촉하게 묻어 나왔다.
“왜 우는 거야? 내가 한 말에 상처받은 거야?”
“…….”
“설마. 너 같은 쓰레기가?”
뺨 위로 이소망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소망은 눈썹을 누인 채로 내 눈물을 문질러 닦았다.
“울지 마.”
“…….”
“나는 너를 너무 사랑했어서…… 아무리 그래도 우는 너를 보면 속이 쓰리단 말이야.”
나는 이소망이 정상인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나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