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게 이별은 어려운 일도 낯선 일도 아니었다. 연인과 헤어지는 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다간 세상은 몰라도 내 일상만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선배에겐 아니었을 것이다.
선배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를 찾아왔다. 내 집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을 것이 분명한 그가 너무도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어 마음이 쓰였다.
“얘기 좀 해, 한아.”
전 애인이 내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손목을 잡아채는 것을 딱 열한 번째 당하는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핸드폰 왜 꺼 놨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선배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새하얀 뺨을 어루만지자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선배가 전화할까 봐요.”
“…….”
선배는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던 그가 훤히 드러난 목 부근의 여전히 불그스름한 흔적들을 발견한 듯 시선을 멈추었다.
“자국이 너무 오래가네…….”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다 선배가 남긴 거예요.”
별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혹시나 그가 다른 오해를 할까 봐 사실 관계를 짚어 주었을 뿐인데 선배의 얼굴이 조금 구겨졌다. 자책하는 걸까. 고작 이런 일로.
나는 그의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한 박자 늦게야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날 내가 너무 심했지.”
선배의 따뜻한 손끝이 내 싸늘한 목덜미 위로 닿았다. 그 답답하고 뜨거운 구속을 잠깐 동안 내버려 두다가 그의 손목을 잡아끌어 내렸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잘못했으니까.”
“아니, 네 잘못 없이, 내가 잘못한 일이었어.”
선배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연인. 내가 그동안 사귀어 본 사람 중에 가장 다정한 애인이었다. 마음의 무게를 저울질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 일말의 온기를 보여 주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멀리했을 때도, 나를 손에 놓고 저울질을 했을 때도 나는 그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잠깐의 이별을 견디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까 오는 길에 휴학 신청하고 왔어.”
하지만 선배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꿋꿋하게 내 어깨를 어루만졌다. 나와 닿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이제 네가 내 미래 때문에 걱정하거나 힘들어할 일 없을 거야.”
“…….”
“네 말대로 네가 내 가족한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런 신파 같은 상황 내가 통제 못 한 게 잘못이었어.”
그가 계속해서 내게 참회할 때마다 나는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젓자 어깨를 쥐는 악력이 조금 더 강해졌다.
“나는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선배는 혼란스러워하며 그렇게 물었다.
“나를 사랑하잖아.”
“……네, 사랑해요.”
선배는 나를 미친 사람 보듯이 봤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선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다 뒤로 하고 나랑 연애를 하겠다는 그가.
“다시 만나면 되잖아요.”
“…….”
“선배가 로스쿨을 가든, 글을 쓰든, 어찌 되었든 그게 다 결정되고 나면.”
“…….”
“그 후에 다시 사귀어요, 우리.”
나를 이방인처럼 보던 선배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너는.”
그가 여러 번 침을 삼켰다. 목이 타는 듯 갈라진 목소리가 낯설었다.
“너는 어떻게 헤어지는 게 과정이야.”
“…….”
“그건 결론이잖아.”
“…….”
“어떻게 이별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완전해지자고 하니.”
지친 듯한 눈가를 거칠게 문지른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싫다고요.”
“…….”
“휴학하지 마요. 선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요. 내 핑계로 그런 대단한 걸 그렇게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제발…….”
“…….”
“나중에 나를…….”
“…….”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잖아요.”
선배는 착잡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콧대 양옆으로 움푹 팬 흠이 살이 빠지니까 더욱 도드라져 훨씬 잘생겨 보인다는,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데다 속도 없기까지 한 생각을 했다.
“그러지 않아.”
“사람 일 모르는 거예요.”
“그러지 않아.”
“왜요?”
“…….”
“왜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데요.”
나는 그가 나를 이성적으로 납득시켜 주기를 원했다. 그랬다면 곧바로 그와 다시 사귀겠다고 결정했을 테다.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그만을 특별히 사랑하니까. 열한 번의 연애 모두 그를 사랑해서 헤어지게 된 것이었으니까.
“너를 사랑하니까 그러지 않아.”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내게 전혀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귈 수 있는 이유였지만 반대의 경우엔 그 명제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그를 못 믿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증명해 보여요, 선배.”
“…….”
“로스쿨이든 등단이든 공모전이든 다 상관없고 난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
“어떤 방식으로라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단 걸…… 증명해 보여요.”
선배는 날카롭고 처연한 눈꼬리를 서서히 치켜올렸다. 아주 복잡하고 서러운 얼굴로 그가 머뭇거렸다.
“한아.”
“…….”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가시적인 걸로 증명되지는 않는 것 같아.”
“…….”
“하지만 너한테 그걸 가르쳐 주기엔 내가 그럴 자격이 안 되겠지.”
“…….”
“정작 나부터가 그런 구차한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받고자 했었으니까.”
그가 느릿한 움직임으로 나를 조금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이 나를 옭아매었으나 그는 내 딱딱한 어깨에 잠시 이마를 묻었다 떼어냈을 뿐 더 구질하게 굴지는 않았다. 마침내 깨달은 자의 표정을 한 그가 내 목덜미의 가장 짙은 멍 위로 따뜻한 입술을 짓눌렀다.
입술이 떨어지며 그의 떨리는 눈꺼풀이 보이자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잘 지내란 말, 내 입으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힘없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서글펐다.
“다만 네게 이런 이별이 흔한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
“너에게 그저 하나의 행인이 되는 순간이 늘 두려웠지만.”
“…….”
“이제는 그 두려움보다 더 너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이 아닌데 마지막 인사처럼 말하는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다.
***
얼룩덜룩한 목덜미를 하고 언어 시험을 보았다. 재작년에 봐 두었던 시험 점수가 유효 기간이 다 되어 가서 유학 요건에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험 결과가 나오는 2주 동안은 학교도 가지 않고 칩거했다. 내 집에서 선배의 향기가 흐릿해질 즈음엔 반팔만을 입어야 할 날씨가 되어 있었다.
선배는 그 이후로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쯤이 지난 후에 핸드폰의 전원을 켰으나 한 통의 문자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스스로가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집 밖으로 꺼낸 것은 혜주 누나였다. 그의 끈질긴 연락에 못 이겨 집 주변의 식당으로 끌려 나온 나는 초여름의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헤어졌니?”
“…….”
누나는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귀신같은 촉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내 표정에서 답을 얻은 듯 피식 웃었다.
“잘됐다.”
“……위로 같은 거 해 주는 게 정상 아냐?”
“내가 왜?”
누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그게 누나지.”
“……무슨 뜻이니?”
“누나는 이기적이고, 나를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잖아.”
혜주 누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기울이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넌 그럼 대체 내가 왜 이렇게 너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해? 시간이 남아돌아서? 졸업반인 내가 마냥 심심해서?”
“…….”
“됐어. 대답하지 마.”
내가 뭔가 실언을 해서 누나가 마음이 상했나 싶었지만 누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나 유학 가려고.”
선전포고하듯이 말하자 커피를 마시기 전 습관적으로 빨대를 매만지던 그의 손길이 멎었다.
“왜?”
“응?”
“왜 갑자기?”
누구보다 내게 유학을 권장하던 사람이 진지한 얼굴을 하는 것이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가라고 등 떠밀 땐 언제고.”
“……넌 도무지 아는 게 없구나.”
“…….”
“그렇게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로 새 여친이랑 헤어져서 유학을 간다고 하면 전전 여친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 나쁘지 않겠니?”
쏘아붙이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냥 늘 그러했듯이 나를 어린 애 가르치듯 하는 나긋나긋한 누나 특유의 어조였을 뿐.
나는 눈 밑을 슥 문지르며 물었다.
“다크서클 그렇게 심해?”
“거울은 안 보고 사는 거니?”
“……맨날 보는데.”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자 누나가 눈썹을 조금 구겼다. 나는 입을 합 다물고 얌전히 앞에 놓인 주스를 빨아 마셨다.
“한아.”
한참이 지나고서 누나가 나를 불렀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기다려도 될까?”
“…….”
“네 유학 말이야.”
누나는 원래 농담 같은 걸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오늘은 그중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천천히 빨대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기다리겠다고. 그건 꼭 연인 사이에 해야 할 말 같았다. 선배와 나 사이에나 있을 법한 그런 말……. 우리는 이제 그냥 지인일 뿐인데.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를 만큼 연애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아니.”
“…….”
“돌아오면 다시 만날 거야. 사귀던 사람이랑.”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하고 반복해도 참 쉽지 않았다. 언제 커피, 혹은 커피잔이 날아올지 모르는 이런 카페에서는 더더욱.
나는 도저히 혜주 누나의 감정선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사귀었던 여자 중 가장 심플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그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는지…….
“그렇게 약속하고 헤어진 거니?”
“……약속까지 한 건 아니지만.”
“그럼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고?”
그 말이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나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아닐걸. 내가 자기 첫사랑이랬어.”
“…….”
“아무튼. 다시 만날 거야.”
내 말이 그에게 대책 없는 투정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기에 일부러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선배는 나를 붙잡았었고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반지를 나눠 끼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들지 않고 학업에만 열중할 자신이 있었다.
누나가 천천히 커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너는 참 오만하고 솔직하고…….”
“…….”
“어리다.”
선고를 하듯 떨어지는 그 말에 이유 없이 빈정이 상해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삐딱하게 그를 응시했음에도 누나는 내 시선을 한순간도 피하지 않았다.
“연애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정작 진심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
입술이 마르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 되었다.
“그럴 만도 해. 너는 많은 걸 타고났으니까.”
“…….”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네가 안쓰럽게 느껴지네.”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또한 누나의 말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누나를 만난 건데.”
“…….”
“진심 같은 걸 모르는 건 누나나 나나 똑같잖아.”
“…….”
“그런 의미에서 우린 서로에게 적당히 좋은 합의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누나를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이상하고, 이상한 걸 넘어서 더러웠다.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를 동시에 삼킨 채 숨을 참는 기분이었다. 누나는 내 질문엔 대답할 생각도 없는 듯 태연하게 마저 남은 커피를 마셨다.
누나가 나를 이토록 애타게 한 적이 있었나. 그와 알고 지낸 모든 시간을 통틀어.
마침내 누나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힘없이 웃었다.
“그래. 나는 너랑 다르다는 둥,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었다는 둥 그런 약아빠진 말은 안 할게. 아닌 건 나도 아니까.”
“…….”
“우리 관계에서 내가 템포를 잃은 거 맞아. 그 점에 있어선 가끔씩 네게 미안하긴 한데…….”
누나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는 것 같지 않았다.
“나한테도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어. 놀랍게도.”
“대체 무슨 말을…….”
나는 바보같이 선 채로 우중충한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관둘 때가 된 것 같다.”
누나의 눈동자에 반짝하고 투명한 것이 빛났다.
“너랑 시작할 때에는 내 마음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나고 나니까 오히려 네 마음이 더 중요해져 버렸네.”
“…….”
“그게 참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말했잖아. 내 약점은 자존심이라고.”
“…….”
“만약 유학을 일찍 마치게 된다면…….”
그답지 않은 서정적인 목소리에 나는 영문 모르게 서글픈 감정에 잠겼다. 누나는 눈을 부릅뜬 채로 제법 오래 머뭇거렸다.
“마지막으로 내 졸업식에 와, 한아.”
“…….”
“그동안 제멋대로인 내 장단 맞춰 준다고 고생했어.”
내가 멍하니 서 있는 동안 누나는 어느새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는 손안의 모래처럼 순식간에 내게서 멀어졌다.
자그마한 뒷모습을 초점 없이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다 모르겠고 쉬고 싶었다.
누나와의 연극이 마침내 끝났다.
온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을 자격을 갖춘.
하지만 공허했다.
***
혜주 누나 없이 유학 준비를 했지만 크게 힘들 일은 없었다. 영어는 원래 못 하는 편은 아니었고 경비도 학교에서 거의 지원이 되었으니까.
다만 나는 경미한 욕구 불만에 시달렸다. 선배와의 황홀한 성생활이 갑자기 중단된 까닭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침대 위를 느긋하게 뒹굴곤 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납득했다.
문제는 혼자 욕구를 풀어 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절정이 오긴 하는데 극도의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동안은 비교 대상이 없어서 몰랐는데 선배의 다정한 말이 없는 성행위는 공허했다.
그럴수록 유학 준비에 집약적으로 몰두했다. 한국에서만 나고 자라 영어로 면접을 볼 일이 없었기에 그 점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말할 상대도 없이 흰 벽을 보고 중얼거리듯 면접 연습을 했다. 물론 내정자인 내게는 면접 따위는 그저 형식만 맞추면 되는 일이겠지만.
화창한 날 국제관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들어가는 그룹 면접이었는데, 겨우 시간을 맞춰 도착한 나는 내 바로 앞 번호를 달고 있는 이소망을 보고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29번 학우님.”
“…….”
“29번 학우님?”
면접 도우미가 나를 툭툭 쳐서 부를 때가 되어서야 나는 바보같이 탄성을 내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소망의 무덤덤한 시선이 내게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번호표를 받아 들어 셔츠 가슴팍에 달았다. 몸이 떨릴 때마다 번호표가 같이 흔들렸다.
“26번부터 입장하실게요.”
면접장은 백색 조명과 창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금빛 햇살로 온통 환했으나 이상하게 내겐 밤만큼 낮은 명도로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숨이 조금 막혀 넥타이를 손으로 흐트러트릴 뻔했다.
이소망은 철저히 나를 타인처럼 대했다. 우리가 헤어진 지도 오래되었으니 인사를 나누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들 정도의 무표정으로 그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정중앙에 앉은 교수가 영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켰다. 정말 말 그대로 간단하게 이름과 학과, 유학을 가게 될 학교를 말한 나와는 달리 이소망은 주절주절 길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그 소개를 통해 그가 나와 같은 학교를 교환 학생 자격으로 지원했으며 6개월 전부터 그 학교에 대해서 조사했다는 점, 가서 어떤 클럽을 통해 인맥을 넓히고 싶은지까지 알게 되었다.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내게 질문이 떨어졌다.
“서한 학생은 이 유학을 통해 뭘 얻고 싶습니까?”
예상안에 있던 너무 뻔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은 혀를 부드럽게 푸는 데 몇 초를 보냈다.
「……우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금 넓히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었고, 그 영향으로 물리학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지원하는 학교에 전문 코스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준비했었던 답을 그대로 내어놓자 교수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가 내가 내정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서 그 시선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아는 것 같았다.
교수는 이소망에게는 보다 다양한 것들을 물었다.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지, 룸메이트와 트러블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이소망은 모든 질문에 성실하고 길게 대답을 이어갔다.
“아, 마지막으로. 이소망 학생은 휴학 기간이 길던데.”
나도 모르게 시선을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
“이 질문은 한국어로 대답해도 좋습니다.”
나는 흘깃 눈을 굴려 옆을 보았다. 이소망은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없이 앞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인가요?”
이소망이 말이 없자 교수가 다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잠자코 답을 기다렸다.
“……그 당시에는 휴학을 통해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차분하고 점잖은 목소리였다.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그 톤 그대로의 목소리.
“여러 문제들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
“무작정 쉴 요량으로 휴학을 하고 나니 막상 다시 학교에 나오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것들로 인해 힘들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동기들보다 한 살 어린 탓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우리는 같은 조기 졸업생 출신이지만 성향이 매우 달랐다. 나와 다르게 이소망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의 연애는 그의 인간관계에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소망과는 가장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연애를 해야 했다. 고작 한 달 반을 사귀었지만 다섯 번도 넘게 헤어질 뻔했었고, 우리가 강의실에서 소리를 높여 싸운 이야기가 과 내에 별의별 형태로 다 부풀려져 퍼졌었다.
유일한 연결 고리였던 나와 헤어지고 그가 무너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덕분에 ‘이 세상에서 서한 너를 가장 증오해.’라는 말을 열두 번이나 들었지만. 그는 내가 더 이상 피곤한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이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 쉬었던 만큼 스스로와 해외 생활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 무엇일지 찾았기에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저만큼 오래 이 교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기다려 왔던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끝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이소망은 변했다. 나와 헤어지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고 욕하던 그 애가 아니었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인 나와 다르게, 이소망은 변했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이름표를 툭 떼어내곤 재킷의 깃을 다듬으며 발걸음을 재촉한 이소망은 여전히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바지 주머니 속의 담뱃갑을 손으로 더듬었다.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자 나를 스쳐 지나가던 학생이 고개를 돌려 나를 쓱 돌아봤다.
주변이 휑한 인문관 옥상은 학교 흡연 구역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탓에 낡은 계단을 올랐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옥상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누군가 예의상 심어 둔 초라한 나무 두어 그루가 보였다. 나뭇잎이 자욱한 담배 연기에 가려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내가 대체 왜 많고 많은 교내 흡연 구역을 두고 굳이 계단을 오르고 올라 여기까지 왔는지 스스로 이해되지 않아 허탈하게 웃었다.
“……서한 씨?”
멀리서 조심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담배를 꺼내다 말고 슬로우 모션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흩어지는 회색 연기 너머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희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선배의 얼굴이었지만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 본 것일 거라 믿었다.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인문관 옥상에서 희윤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선배.
하지만 선배가 나를 보는 시선을 통해 나는 내가 인지한 것이 그가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놀란 듯 눈썹을 구겼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차분해졌다. 그는 말없이 나를 보다가 천천히 라이터를 든 손을 들어 올렸다.
능숙한 손길로 제 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라이터를 희윤에게 넘겨주며 검지와 중지 사이로 담배를 옮겨 들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너무나도 당혹스러워서 말문이 턱 막혔다. 뭐야, 지금. 날 무시한 거야? 희윤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내게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체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선배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단 한 번도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제야 나도 그의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았다. 그에게는 희윤 외에도 몇몇 동행이 더 있었다. 선배는 조금 굳은 얼굴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목소리들이 뒤섞여 머릿속에서 엉켰지만 어떤 말도 해석되지 않았다. 담배를 입에 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선배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던가. 한 달 전 호텔에서 내게 담배를 물려 주었을 때만 해도 불을 어떻게 붙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럼 나와 헤어지고 나서 배웠을까. 이별의 설움을 견디기 위해?
희윤은 여러 번 나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선배는 의도적으로 나를 외면했고 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깡통에 던져 넣고는 옆 사람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곤 나의 반대쪽으로 돌아 옥상을 빠져나가 버렸다.
희윤이 그제서야 가슴이 들썩이게 숨을 몰아쉬며 내게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가 내게 라이터를 내밀었다. 선배가 아까 희윤에게 주었던 그 라이터를 멍하니 받아 들자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라이터 없는 거 아니었어요?”
여전히 영혼이 나간 채로 담배를 입에 물자 희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선배의 라이터를 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인문관까진 웬일이에요? 공대생이.”
그제야 나는 내가 선배를 보고자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관성처럼.
“장시현 하여튼 유난하고는……. 저렇게 티를 팍팍 낼 것까진 없는 건데.”
희윤이 한숨처럼 말했다.
“서한 씨가 이해해요. 원래 처음 연애해 본 애들은 다 저런 거잖아요.”
“……왜 저러는 건데요?”
“네?”
진심으로 이해가 안 돼서 물었는데 돌아오는 표정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놀란 표정이었다.
“왜 저러는 거냐구요, 선배.”
“둘이 헤어진 거, 아니었어요?”
희윤의 의아한 목소리에 속이 뒤집혔다.
“……맞아요.”
“…….”
“헤어진 건 맞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돼서.
나는 몇 번 빨지도 않은 담배를 버리고 휙 돌아섰다. 희윤은 고요했다. 나를 붙잡지 않고 그저 무던히 자신의 무리로 돌아갔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거의 뛰다시피 했는데도 선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인문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망칠 것까진 없잖아.
억울함이 밀려왔다. 점점 변질되는 감정의 종착지가 어딜지 몰라 불안하고 화가 났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뜨뜻한 햇빛 덕분인지 정수리 위로 뜨거운 무언가가 휙 회전하는, 아니 폭발하는 기분이 났다.
“여보세요.”
-…….
“선배.”
신호음이 한참이 지나고서야 선배는 전화를 받았다. 고요한 숨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선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속이 답답해지고 머리로 열이 올랐다.
-내가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는데?
“…….”
-응? 한아.
덤덤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한 달 만에 듣는 선배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단조로웠다.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전화까지 걸었어.
무슨 말을 듣고 싶냐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선배가 그렇게 도망치듯 흡연 구역을 빠져나간 게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이라…….
“……담배 배웠어요?”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니?
선배가 힘없이 웃었다. 나는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에 인문관에 있던 사람, 선배 맞죠.”
-그래.
“왜, 도망갔어요?”
-…….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당황스러움과 짜증과 분노가 번갈아서 명치끝을 강타하는 기분이었다.
-헤어졌잖아.
“…….”
-헤어졌잖아, 한이 너하고 나.
“그래서요?”
수화기 너머로 선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숨소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서 그냥 날 모른 척 지나쳤단 뜻이에요? 한 달 만에 본 건데?”
-…….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우리가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니었는데 인사 정돈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 정돈 물을 수 있는 거 아니냐구요.”
쏘아붙이듯 묻자 선배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대체.
“…….”
-우리가 뭘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선배의 목소리에 낮은 짜증이 섞여들었다.
-헤어지겠다고 했을 때 적어도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
-너한테 연애라는 건 그저 팀플 같은 거야?
“…….”
-길 가다 마주치면 인사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보잘것없었냐고.
팀플이라니.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나는 우리가 완전히 끝났다고 여긴 적도 없었고, 유학에서 돌아오면 그를 다시 만날 거니까, 그러니까…….
-한아, 나는.
선배가 터져 버릴 것 같은 음성으로 말을 하다 멈추었다.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추고 홀리듯이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한테는 네가.
조용하지만 물기 어린, 참고 또 참는 사람처럼 인내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너를 너무…….
나는 그 뒤의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선배는 그 말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의 직전에. 사랑의 맥락, 그 직전에.
끊긴 핸드폰의 바탕 화면을 바보처럼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왜 우리가 인사도 못 해야 하는데. 내가 키스를 하잔 것도 아니었고, 섹스를 하잔 것도 아니었고. 뭐 그렇게 대단한 걸 바랐다고. 선배는 헤어진 연인에게 내가 대체 더 어떻게 예우를 지켜 주기를 바라길래……
왜 이소망처럼 나를 스쳐 지나가요.
내내 멍했다. 선배와 헤어지겠다고 결심했을 때보다, 붙잡는 그를 뿌리치고 그의 집을 나왔을 때보다 지금이 더 공허하게 느껴졌다. 유학을 위해서 집을 슬슬 정리해야 하는데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과제 제출 기한도 두 번이나 놓쳤다.
지지부진한 감성적인 생각 따위를 질색하는 내 귓가에 선배의 목소리가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내게 연애가 팀플 같았냐고. 아니. 나는 팀플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화공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고 대다수가 내가 스스로 나를 소개하기 전에 나에 대해서 떠들고 다녔다. 그런 사람들과 비즈니스가 끝났는데 알은체를 할 이유가 없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를 알은체하는 사람들은 내 전 애인들밖에 없었다. 내게 다정한 것도 매정한 것도 모두 그들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주 소수와만 연결된 채로 오래 살아와서 선배가 나를 단절한 순간, 내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