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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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녁의 인문관은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문과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학교나 재단이나 지원을 모조리 이공계 쪽으로 돌렸는데 그 덕에 건물에 대한 인문대 학생들의 불평이 끊이질 않았다. 벽이 곧 무너질 것 같다, 멀쩡한 책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음료 자판기조차 말을 안 듣는다. 

             그런 모든 낡은 것들이 모여 인문관을 이루었다.

나는 핸드폰을 여러 번 확인해 가며 희윤의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을 찾았다. 6층 103호. 복도를 따라 한참을 더 가야만 나오는 강의실을 문에 달린 창문 사이로 훔쳐보았다.

칠판에 쓰인 ‘Charles F. Hockett의 인간 언어 구성 자질’ 밑에 빼곡하게 쓰인 글씨들을 보자 지지난 학기 프랑스 문학사의 악몽이 떠올라 구역질이 나왔고 나는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의자도 쉴 곳도 없는 좁은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하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걷기도 하고, 괜히 화장실로 갔다 오고, 대체 이놈의 수업은 언제 끝나나 시계도 보고.

마침내 6시 55분이 되어서야 강의실 문이 열렸다. 독하다, 이 교수.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눈으로 하나둘씩 빠져나오는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인간들이 밀물처럼 밖으로 밀려 나왔다. 좀처럼 희윤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에게 문자를 보낼까 했으나 그러다가 놓칠까 싶어 그저 눈만 크게 떴다.

나는 캠퍼스가 좁다는 것을 실감했다. 몇몇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니 얼굴은 알 수 없었지만 전 여자 친구의 친구들인 듯했다. 이렇듯 나의 소문은 참 얕고 넓게도 퍼져 있었다.

그래서 선배도 그런 소문들을 모조리 듣게 되었을까. 그런 더러운 이야기가 선배의 귀에 들어갔다는 게 불쾌했다. 그 또한 불쾌해서 그랬을까.

사람들이 강의실에서 나오는 밀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나올 사람들은 거의 다 나왔다는 뜻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강의실 안에는 가방을 챙기는 두어 명과 교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희윤은 없었다.

아무래도 연락 없이 온 것이 패착이었나 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희윤에게 문자를 입력하고 있었다. ‘혹시 오늘 수업 안 나오셨나요?’ 다 입력하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뭐 하니? 여기서.”

소리도 못 내고 기겁을 하며 뒤를 돌아보자 선배가 서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서, 서, 선배.”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마치 뭘 훔치다 걸린 애처럼 말을 더듬었다.

선배는 아주 반듯한 차림새였다. 그가 평소에 후줄근하게 하고 다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옷에 힘을 주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질이 좋아 보이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안 그래도 충분히 눈길을 끌 만큼 잘생긴 그가 옷까지 그렇게 차려입으니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선배가 허리를 숙여 떨어진 내 핸드폰을 주웠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시계도 하고 있었다. 번쩍 빛이 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고가의 것인 듯했다.

“희윤 씨한테 돌려줄 물건이 있어서…….”

“…….”

“시간표 보니까, 이 수업 듣길래 왔는데 없네요.”

숨을 몇 번 고르고야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사할 수 있었다. 선배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울었니?”

“네?”

“눈이 부어 있길래.”

누가 나를 놀랜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지나쳐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강의실에 가까이 더 붙어 섰다. 그의 음성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

“시현 학생이 여긴 무슨 일이에요?”

교수가 선배를 알아보고 먼저 다정한 물음을 건넸다. 선배는 약간의 웃음기가 섞인 얼굴로 능숙하게 답했다.

“친구가 이 수업을 듣는데 오늘 아파서 학교에 나오질 못해서요. 과제를 대신 제출하려고 왔습니다.”

“친구 누구?”

“천희윤 학생입니다. 학번은…….”

아. 그제야 나는 여전히 문자 입력 화면의 핸드폰을 든 팔을 힘없이 떨어트렸다.

선배는 정중하게 교수에게 손에 들고 있던 프린트물을 건네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희윤 씨 어디 아프대요?”

내 물음에 선배가 흘깃 뒤를 돌아 교수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곤 턱짓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고는 먼저 앞장섰다.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그의 뒤를 쫓았다.

인문관 밖으로 나와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희윤이 아까 결석하고 꽃구경 간다고 그러던데.”

“아아…….”

“돌려줄 물건이란 게 뭐야? 전해 줄 수 있는데.”

선배는 손을 내밀었으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돌려줄게요.”

선배와 희윤에게 또 다른 만남의 계기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들 사이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서서 이어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

“그러렴.”

선배는 태연하게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

“둘이 많이 가까워졌나 보네. 희윤이가 자기 걸 빌려주는 애가 아닌데.”

“…….”

나는 머뭇거렸다. 딱히 이 상황에서 할 필요가 없는 말이 생각이 났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나의 신조를 떠올렸으나 선배 앞에서 나의 입은 늘 나를 배반하고 불필요한 말을 기어이 뱉어냈다.

“……신경 쓰여요?”

그 순간 인문관 옆의 가로등들이 한 번에 주르륵 켜졌다.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빛줄기에 눈이 부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밝은 빛 아래서의 선배는 더더욱 근사해 보였다. 대학생이 아니라 꼭 전문 모델 같았다. 어둠보다는 빛의 영역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뭐가?”

선배의 음성에 웃음기가 서렸다. 나는 도무지 따라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희윤 씨랑 제가 가까워진 게 신경 쓰이나 해서요.”

“…….”

“혹시 저한테 질투 같은 게…….”

거기까지 말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스스로의 꼴이 추하다는 것을 이제 자각한 참이었다. 둘이 이어 줄 마음이 추호도 없다면서 나서서 둘의 서사를 제공하는 꼴이었다. 내게 질투를 해서 희윤에게 나 같은 놈과 어울리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선배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어떤 남자 친구도 제 애인이 나 같은 소문을 가진 놈과 어울리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선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거 듣기에 따라 도발적이고 깜찍스러운 질문인 것 같은데.”

내가 분수 넘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반쯤 숙였다.

“말을 듣고 보니 질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묘한 음성에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선배는 느긋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꽃구경을 간 것도 질투가 나고, 너와 가까워진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렇네, 한아.”

“…….”

“그러니까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따지거나 되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희윤은 내가 선배를 잊는 데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를 만날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선배가 연상되었고 부질없이 선배의 생각으로 시간을 죽여야 했으니까. 오늘 같은 악몽을 다시 안 꾼다는 보장도 없었고.

“선배도 같이 가자고 해요, 꽃구경.”

나는 주먹으로 내 입을 치고 싶었다. 입 닥쳐, 제발. 지금 무슨 연애 카운슬러처럼 네가 둘을 엮어 주고 있잖아.

슬쩍 올려다본 선배는 인상을 조금 찌푸린 채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희미한 웃음을 걸친 채였다.

“그럴까, 그럼. 꽃 보러 가기엔 이미 늦었고.”

그가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나를 보았다.

“별이라도 보러 갈래?”

나 때문에 흔들렸다는 그는 복수라도 하듯이 그를 더는 좋아하지 않겠다는 내 얄팍한 다짐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어 놓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몇 마디로만.

“……지금요?”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의심도 없이 선배를 따라나서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유사 스토커로 1년을 살아왔으므로 누구보다 그의 스케줄을 잘 알았다.

“선배 아르바이트 안 가요?”

“그만뒀어, 햄버거 집.”

“왜요?”

선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다정했다가, 무감했다가, 날카롭다가. 혹은 내가 그의 모든 변화에 너무 예민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와 봐, 한아.”

마지막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자상했다.

선배는 나를 학교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전 여자 친구 중 차가 있는 여자는 혜주 누나를 비롯해 세 명 정도였는데, 학교 주차장은 주차비가 필요 이상으로 비싸 그들은 학교에 자차를 끌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주차장은 내게 돈이 썩어나는 학생이나 교수들이 차 자랑을 하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장소였다.

학교 앞에 자취하는 선배가 차가 필요할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누르고, 번쩍 플래시를 터트리는 차량을 본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저거, 저거…….”

“응?”

선배가 자연스럽게 그 차량 쪽으로 향했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애스턴 마틴 아니에요?”

경악스러운 내 표정을 쳐다보던 선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차는 잘 몰라서.”

저 차를 뭔지도 모르고 타고 다닌다고?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한국에 들어와 타고 다니는 영국 고가 브랜드의 가장 최신형 스포츠카, 최고 시속이 350km/h에 육박하는 저 슈퍼카를?

나는 선배가 ‘카푸어’일 확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선배는 한 번도 내 앞에서 물욕을 내보인 적이 없으니까. 친구 차인가 생각해 봤지만 어떤 친구가 애스턴 마틴을 선뜻 빌려줘. 그리고 저건 빌렸다고 마음껏 탈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나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았는지 선배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저번 주에 아버지가 주셨어. 타고 다니라고.”

“…….”

“로스쿨 붙으면 원하는 걸로 다시 뽑아 주시겠다던데.”

순식간에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선배는 굳은 표정의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타기 싫니? 내 자존심 구겨 받은 차라서?”

“……아뇨.”

나는 그의 쪽으로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내가 감히 건드려도 되는 문인지 겁이 나 행동이 소심해졌다. 하지만 선배는 거침없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내부는 더 근사했다. 베이지 컬러의 가죽이 문까지 뒤덮여 있어 따뜻한 느낌과 스포츠카 특유의 사나운 느낌이 공존했다. 생각해 보면 모델 자체도 부드럽게 연결된 보디와 대비적으로 날카로워 보이는 헤드라이트가 선배와 잘 어울리긴 했다.

그의 집안은 그냥 여유 있는 정도가 아닌 듯했다. 이래서…… 글을 그만두겠다고 했던 거구나. 나는 곧바로 납득했다. 나였으면 문창과로 진학할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이런 집안에서 자랐으면서 어떻게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을까.

그가 더 대단해 보이고 더 멀어 보였다. 혼잣말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선배라는 사람이 손닿을 수 없이 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가 글을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가는 편이 그에게 훨씬 이로울 것 같았다.

고급 스포츠카는 시동이 걸리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감히 손을 대도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선배가 “안전벨트, 한아.” 하고 말했다. 나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안전벨트를 맸다.

부웅. 엄청난 승차감으로 차가 출발했다.

차가 도로를 질주하자 주변 차량들이 쭈뼛대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선배의 뾰족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스포츠카 안의 그는 너무 낯설어 다른 사람 같았다. 부잣집 도련님 같기도 하고 막 나가는 재벌 3세 같기도, 그냥 잘생긴 사업가 같기도 했다.

“왜, 내가 이 차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선배가 물었다. 나는 서둘러 도리질을 쳤다.

“아뇨.”

“…….”

“그냥 좀…… 이상해서요.”

민재 형도 제법 금수저 태가 나는 사람이었고, 그들이 함께 다녔던 고등학교 또한 명망 높은 사립고였기에 선배의 집안도 어느 정도 부자일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몰랐지만.

그는 원래 이렇게 살았던 사람인 것이다. 문창과보다는 로스쿨에 가깝게, 빠듯함보다는 부유함에 가깝게……,

나보다는 희윤에게 가깝게.

“그게 안 어울린다는 뜻이지, 한아.”

선배는 그렇게 말했으나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주 따뜻한 말투였다. 나는 입술을 꽉 물었다 떼며 말했다.

“선배, 왜…….”

“응.”

“왜 갑자기 다정해요?”

“…….”

“갑자기 저랑 별은 왜 보고, 이런 비싼 차 왜 태워 줘요?”

분위기를 망치는 말이라는 건 모르지 않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희윤 대신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고 그와 드라이브를 하며 애써 잡은 마음이 뒤집힐까 두려웠다.

“왜 그렇게 살갑게 말해요. 섹스도 잘 못한다고 해 놓고.”

선배는 한참 말이 없이 운전만 했다. 공기조차 정적으로 느껴졌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그가 액셀을 밟았다. 차체가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내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괜한 것을 물었다고 안전벨트를 만지작댈 즈음 낮게 침잠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 앞에서 울지나 말든가, 한아.”

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를 싹 감춘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다정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또 울었니?”

‘또.’ 나는 내가 언제 그의 앞에서 또 울었던가, 생각해 보았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지난번 중앙 도서관 앞에서 그 찰나에 나의 눈물을 봤을까.

“오늘은 몇 번째 전 애인이 네게 뭘 쏟던?”

나의 전 여친이 내게 커피를 부은 것마저 그는 알고 있었다. 희윤에게 들었을까.

하지만 그래서 뭐. 그게 뭐. 그건 내 사정이었다. 내가 누구에게 돌을 맞든 커피에 맞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선배에게 정해진 역할이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이렇게 까무러치게 비싼 차를 타고 다닌다면 더더욱.

“왜 신경 쓰는데요?”

선배가 고개를 사선으로 꺾으며 운전을 하다 말고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 짧은 시선조차 강렬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평온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걱정되게 하고 돌아다니기에 걱정 좀 했어.”

“…….”

“꽃 볼 시간이 아니길래 별 보자고 했고, 차에 태우고 싶어서 태웠고.”

“…….”

“싫어?”

나는 내가 싸가지가 없게 물어서 선배 기분이 상했나 싶어 급하게 덧붙였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싫다는 게 아니라.”

“…….”

“별은 한 번도 보러 간 적 없어서요.”

슬쩍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꾸했다.

“다행이네.”

“…….”

“싫다고 했어도 어차피 여기선 못 내리니까.”

나는 우리가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멀리. 갈 수 있는 데까지.”

그는 그 말 이후로 입을 다물었고 나 또한 생에 다시 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애스턴 마틴의 내부를 찬찬히 뜯어보고 운전하는 선배의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 보니 차는 한적한 공터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뻐근한 목을 돌리다가 운전석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비현실의 영역에 들어온 것처럼 몽롱했다.

“다 온 거예요? 죄송해요. 원래 조수석에서 자면 안 된댔는데.”

“누가?”

“……전 여자 친구가요.”

선배가 헛웃음을 지었다.

“내리면 돼요?”

“아니.”

“…….”

“앉아 있으면 돼.”

선배가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나는 멍하니 애스턴 마틴의 루프가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어 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밤하늘을 보았다. 서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선명한 별빛이 눈이 부시게 번쩍거렸다. 나는 진주처럼 박혀 있는 별들을 셀 수조차 없어 입만 벌리고 있었다.

“글이 안 써지면 가끔 강원도에 와. 천문대도 가고, 바다도 보러 가고.”

“…….”

“그럼 내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느껴져.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 집이 아니라.”

“…….”

“이런 차를 타고 와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시선을 돌려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별을 보던 때처럼.

“이런 차가…….”

혀가 꼭 내 것 같지 않게 굴러갔다.

“저한테 흔들리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뻣뻣하게 굳은 혀끝을 입 안에서 말아 보았다. 뇌의 허락 없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아니라곤 못 하겠네.”

“…….”

“속물 같아 보여?”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희윤이는 그렇다던데.”

“선배 속물 아니에요.”

“…….”

“저였어도 거절 못 했을 거예요.”

“그래?”

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나는 선배의 눈빛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아버지가 주신 차에 너를 태우니까 기분이 아주 이상해.”

“…….”

“내 유치한 반항에 너를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너 때문에 다 일그러지는 것 같기도 하고.”

“…….”

“그러니까 내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마.”

선배의 손이 천천히 가까이 와 내 눈가를 쓸었다. 아직도 부어 있는지 그의 엄지가 닿는 곳이 따끔거렸다.

“그런 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까.”

그는 나의 전 여자 친구들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혜주 누나와 연서 누나와 은지와……, 기타 등등의 그 여자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나를 매만지던 손이 다시 빠져나갔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한기에 몸을 조금 떨었다.

“춥니?”

선배가 다시금 손을 뻗어 조수석 앞의 수납장을 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가까워지는 그의 향기에 몸을 문 쪽으로 밀었다. 그가 담요를 꺼내다 말고 기막혀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왜 쫄고 그래.”

“…….”

“내가 뚜껑 열린 차에서 네 다리라도 벌릴 만큼 쓰레기로 보이니?”

“…….”

노골적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선배는 농담이었다는 듯이 비스듬히 웃고 있었으나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점차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면 내가 오해하는데.”

“…….”

“이럴 땐 싫다고 해야지, 한아.”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 싫은데 왜 싫다고 해야 돼요?”

선배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나는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어떤 눈으로 나를 보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싶었다.

미련 같은 게 남지 않도록.

창백한 무표정의 선배를 바라보다가 내가 먼저 몸을 옮겼다. 내 몸을 덮은 담요를 걷어내고 운전석 쪽으로 넘어갔다. 다리가 걸려서 조금 낑낑대기는 했지만 무사히 그의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나를 노려보는 선배의 시선이 따가웠다.

과방에서와는 다르게 여유 있게 몸을 움직였다. 그의 목을 감싸고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에서 숨결을 주고받았다. 그의 미간이 점차 깊이 파였다. 그제야 나는 입을 벌리지 않은 채로 그의 입술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가 떼어냈다.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졌다.

선배가 한 팔로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제 쪽으로 당겼다. 그 바람에 입술이 잠시 다시 닿았으나 어린 애들 장난치듯이 다시 떼어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눈꼬리를 올려 웃으며 혀끝으로 그의 윗입술을 핥았다. 다시금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선배가 뒤통수를 강하게 잡아챘다.

“애태울래?”

성대를 긁는 소리가 났다. 짓씹듯이 말한 그가 그대로 나를 밀어붙이며 내 입을 열었다. 등 뒤로 짓눌리는 애스턴 마틴의 핸들이 느껴졌다. 이거 망가지면 수리비가 얼마야. 나는 어느 쪽이 더 아찔한지 구분해낼 수 없었다.

선배는 거칠게 입 안을 헤집어 놓았다. 내가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내 목과 등을 단단하게 쥐고 있었다. 그의 혀가 입천장을 쓸어 올릴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다.

숨이 막혀 가벼운 현기증이 일 때가 되어서야 선배는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이 길게 늘어졌다.

“이걸 진짜…….”

선배의 목소리는 정욕에 젖어 있었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뾰족하게 혀를 내어 내 턱선을 핥았다.

“여기서 잡아먹을 수도 없고.”

말과는 다르게 선배의 손이 아랫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바지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선배……!”

공터는 조용했다. 사람은커녕 차 한 대 없었다. 하지만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선배가 달래듯이 주변을 둘러보는 나를 토닥거렸다.

“괜찮아. 아무도 안 와.”

“흐읏.”

“손으로만 해 줄게.”

선배가 한쪽 손으로 조수석에 떨어져 있던 담요를 가져와 그와 나의 접합부에 덮으며 나머지 손으로 나의 좆을 속옷 밖으로 꺼냈다. 귀두 위로 까슬까슬한 담요가 느껴졌고 곧이어 보드랍고 차가운 손이 성기를 만지는 감각에 눈을 꽉 감았다. 입술이 다시 맞닿았다.

그가 좆의 기둥을 위로 뽑아내듯 문지를 때마다 발끝이 찌릿찌릿했다. 나는 금세 발기했다. 선배가 축축한 소리와 함께 입술을 떼어내며 웃었다.

“여기 봐, 한아. 너 때문에 이 담요 이제 못 쓰겠다.”

내 좆이 발기한 데까지 불룩 솟아 있는 담요를 한 번 내려다보고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웃는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가 노련한 손길로 귀두 밑의 성감대를 쓸었다.

괜히 약이 올랐다. 손을 아래로 더듬어 선배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한쪽 눈썹을 구겼다. 속옷 위로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쉽게 꺼내지는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가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들숨과 날숨을 고스란히 공유할 만큼 가까이. 나른한 음성으로 그가 물었다.

“남자 좆이라서 거부감 드니?”

그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잡아 제 좆을 속옷 밖으로 꺼냈다. 담요 아래로 미끈하고 뜨거운 기둥을 조심스럽게 감싸자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밤바람이 차갑게 얼굴에 부딪히는데, 반대로 담요 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하게 달아올랐다.

“내가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돼, 한아.”

“흐으으.”

“자위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의 말대로 그를 따라 했다. 그가 내 좆의 기둥을 쥐어짜듯 위로 당기면 나도 그렇게 했고 엄지로 요도 위를 살살 문지르면 나도 최대한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간간이 그와의 키스가 너무 깊어질 때면 손을 놓치기도 했다.

“으응, 흣.”

거북함 같은 것은 금방 사라졌다. 담요 아래 가려져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했고 선배의 손이 지나치게 기술적이기도 했다. 나는 열감에 들떠 나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거리며 나도 모르게 그의 좆 위로 손톱을 세웠다. 귀두 밑을 약하게 긁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었네, 한아.”

선배가 낮은 한숨과 함께 젖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픽 웃었다.

“정말 빨리 배워.”

“흣.”

“남자랑 처음이라고 바들바들 떨던 게 이젠 만지기도 잘하고…….”

그가 한쪽 팔로 나의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쿠퍼액으로 젖은 손이 맞닿았다. 그가 한 번에 좆 두 개를 겹쳐 잡았다. 나는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것이 나의 좆에 비벼지는 감각에 흥분했다.

선배의 손이 작은 편이 아닌데도 좆 두 개를 한 번에 잡기에는 빠듯한지 그는 손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손에 잡힌 것들을 흔들었다. 나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키스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혀를 얽어 왔다.

파정은 내가 조금 더 빨랐다. 사정의 순간 내 좆을 주무르는 손길에 목이 뒤로 젖혀지며 별이 보인 듯했으나 진짜 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담요가 축축하게 다 젖었는데 선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도리어 그 담요로 제 좆을 닦아냈다. 내 아랫배에 튄 정액을 손으로 훑으며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그를 내려다보다 흔들리는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선배.”

“응.”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느릿느릿 내 허벅지를 어르던 손길이 멎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제가 여자였으면…… 뭐가 달랐어요?”

“…….”

“달랐을까요.”

높은 고도 탓인지 차가운 밤공기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지나갔다. 선배의 잘생긴 얼굴이 45도의 각도로 다시금 가까워졌다. 입술이 겹쳐지기 전에 그가 말했다.

“네가 여자였으면…….”

“…….”

“내가 너한테 매달렸을 거야, 한아.”

“…….”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어떤 가치도 저울질하지 않고…….”

“…….”

“너를 완벽한 운명이라고 여겼을 거야.”

흐윽. 울음이 터짐과 동시에 그가 나의 서러움을 모조리 먹어 버렸다. 분명히 입술과 혀가 맞닿아 있는데 나는 그를 놓친 사람처럼 애틋해 울었다.

그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나의 숨을 통제하듯이 키스했고, 그래서 나는 어쩌면 그가 내가 우는 이유를 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추웠다. 선배가 차 루프를 닫고 히터를 틀어 줬는데도 자꾸만 몸을 움츠리게 됐다. 흔한 음악 하나 없이 우리는 도로를 달렸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로등이 별똥별처럼 기다란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 갔다. 내가 도시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뭘 좀 먹여서 들여보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 새벽에 문을 연 24시 음식점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나와의 마지막 기억이 김밥 따위를 씹어 먹는 모습은 아니기를 바랐다.

“그냥 집에 갈게요.”

“어디 살아? 데려다줄게.”

“……정문에서 조금 더 가서 태권도 학원을 끼고 우회전하면 돼요.”

꽉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가 그래, 하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고급 가죽 냄새에 섞인 음란한 냄새와 정적인 그의 체취가 마구잡이로 섞어 머리와 마음을 어지럽게 했을 따름이다.

“여기 내려 주세요.”

차가 거칠게 멈춰 섰다. 그런데도 덜컹이는 느낌 없이 부드러운 정차처럼 느껴졌다. 역시 좋은 차는 다르구나.

마음을 먹고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선배는 그런 나를 보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또 울면 집에 안 보내 줄 거야.”

“…….”

“울지 말고 가.”

그렇게 말할 때 그는 진짜 어른 같았다. 나는 꾸역꾸역 울음기를 삼켜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배.”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마지막 말로는 어떤 것이 좋을지. 내가 남자라서 안 된다던 그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럼 다음 생엔 선배가 여자로 태어나요.”

그를 만나기 전 나는 단 한 번도 감정에 잠식당해 본 적 없다. 나의 인생은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늘 정답에 가까운 길이었다. 아쉬울 것 없이 완벽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나는 모호한 것에 대해 배웠다. 모호하게 행동하는 법과 모호한 마음에 대한 자각. 내 삶은 그렇게 반쯤 불투명해져 버렸다.

“그럼 제가…….”

“…….”

“운명이라고 느낄게요.”

그 모든 모호함의 끝이 이곳이었다. 오늘 이후로는 그로 인해 희미해지거나 탁해지지 않을 것이다.

비싼 스포츠카 안의 선배는 싸구려 호프집에서 남은 안주로 밥을 때우던 사람과는 다르게 편안해 보였고 나는 그가 내도록 편안하기를 바라므로.

“어쩌지, 한아.”

안타깝다는 듯이 나를 달래는 이 다정한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내세 같은 건 안 믿는데.”

이번에는 또 왜 헤어졌냐며 나를 타박하던 그 따뜻한 시선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래도.

“운명이라고 느껴 줄래?”

나의 모호함의 원천, 당신만은…….

“잘 자, 한아. 다음에 또 보자.”

선명히 잘 지내기를.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 스포츠카로 별을 보러 다니고, 앞치마 대신 고급 시계를 착용하고, 나와의 하룻밤 유희 대신 희윤과 남들 보란 듯이 연애를 하며…….

그렇게 잘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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