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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타원형 관계(1) (7/25)

제 3장. 타원형 관계

(1)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도 이제 5년 차, 나는 ‘혼밥’에 익숙해질 나이였다.

집에서 대충 차려 먹을까 학식을 먹을까 고민하다 나는 학교 앞 백반집으로 갔다. 그곳은 ‘혼밥’의 성지였다. 2인 테이블에 2인이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엔 고개를 숙인 채 야구 따위를 보며 홀로 밥을 먹고 있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합류했다. 만석인 테이블 중 유일하게 자리가 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대여섯 가지 정도의 반찬이 테이블 위에 놓였고 나는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휘저었다. 그러곤 검게 나풀거리는 미역을 건져 먹으려던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짧은 알람과 함께 밝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 자리가 없는데.”

“아, 그래요?”

미끄덩한 것을 여러 번 씹어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인영을 확인했다.

짧은 단발머리를 확인하는데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치 운명의 여자를 만난 것처럼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윤이었다.

생긋 미소 짓는 얼굴을 보자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이 여자가 왜 여기 있지.’부터, ‘왜 내 앞에 있지.’까지.

“죄송한데 여기서 같이 좀 먹어도 돼요?”

“……네?”

“그때 우리 잠깐 얼굴 봤는데. 장시현 알죠?”

“……그런데요.”

“저도 알아요, 장시현.”

“……그래서요?”

“자리 없다는데, 같이 좀 먹어도 돼요?”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음식점 사장님을 보자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하나둘씩 우리를 향하고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인지.

“그러세요.”

“고마워요.”

희윤은 아주 맡겨라도 놓았다는 듯이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가 얇은 외투를 벗고 팔을 걷어붙이는 것을 보다가 다시 숟가락을 국그릇으로 빠트렸다.

“이름이 뭐예요?”

“서한이요. 외자.”

“예쁜 이름이네요.”

조금의 악의도 없어 보이는 환한 어조였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느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선량함.

“그쪽은요?”

“장시현이 얘기 안 했어요?”

“뭘요?”

“안 했나 보네. 아니에요. 희윤이에요. 천희윤.”

희윤은 무표정한 나를 앞에 두고도 생글생글 잘 웃었다. 민망하지도 않은지.

“한 번쯤 얘기 나눠 보고 싶었는데.”

“저랑요? 왜요?”

“음, 장시현이랑 가까운 사람인 것 같으니까?”

그 말이 내겐 꼭 선배와 다시 잘해 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다.

“선배가 저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데요?”

내가 그렇게 묻자 희윤은 조금 당황한 듯 입꼬리를 구겼다.

“딱히 무슨 말을 하진 않았는데…….”

나 또한 내가 무슨 기대라도 한 것처럼 들렸을까 싶어 당혹스러웠다.

“그냥 우리는 그런 말 없어도 서로 이해하는 사이예요.”

“…….”

기분이 이상해지는 말이었다. 서로 이해하는 사이. 분명히 아까까지 윤기 넘치던 밥알이었는데 입 안에서 굴러가는 감각이 까끌거리기 시작했다.

희윤의 앞에도 국그릇과 밥그릇이 놓였고 그가 밥에 집중한 덕분에 잠깐 동안은 대화가 끊겼다. 시원시원하게 밥을 퍼서 입 안에 넣는 것을 보다가 이번엔 내가 먼저 물었다.

“선배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희윤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희윤 씨…… 눈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서요. 폴라로이드에 있던 글 봤어요. 희윤 씨가 찍어 준 사진인 거 맞죠.”

나도 내가 이런 얘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희윤에게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모든 걸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선배도 그가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윤은 잠시 동안 고개를 기울인 채로 고민하는 눈치였다. 폴라로이드 사진 따위 수십 장을 찍어 주었으니 그중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르는 것일 수도.

“제가 뭐라고 써 놨는데요?”

“선배가 성공을 갈망하고 멍청하다고요.”

아아. 희윤이 깨달은 듯 짧게 신음했다.

“장시현 이 새끼는 그 케케묵은 걸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남한테 보여 주기까지 했어요?”

나는 본의 아니게 선배에게 누명을 씌우게 됐다. 하지만 그걸 훔쳐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해명의 말은 내 쪽이 아니라 상대 쪽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오해하지 마요. 걔가 그때 한참 세상에 길이길이 남을 글을 쓰고 말겠다는 강박 증세를 보이고 있을 때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걔가 글 뽑아낸다고 별 노력을 다 했거든요. 그래서 버리기 아까워서 가지고 있는 걸 거예요.”

나는 그가 말하는 ‘오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장시현은…….”

국을 한 숟가락 떠먹은 희윤이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예민하고, 눈치 빠르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

“외로운 애예요.”

나는 그 네 가지 중 단 한 가지도 동의할 수 없었다.

“뭐, 그것도 옛날 얘기니까.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대수롭지 않게 말한 희윤은 마저 밥을 먹기 시작했으나 나는 입맛이 뚝 떨어져 수저를 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서한 씨가 보기엔 장시현이 어떤데요?”

나는 내가 아는 선배에 대하여 떠올려 보았다.

등록금을 번다고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남에게 다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 공과 사가 확실하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나와는 너무도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중 가장 먼저.

“선배는 일단 잘생겼고…….”

희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탁 소리가 나게 수저를 내려놓은 그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느 정돈 인정할게요. 우리 과 애들 중에 걔 소재로 글 한번 안 써 본 앤 없을 테니까.”

“어른스럽고…….”

“그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 걔가 남의 고민 잘 들어 주지.”

“또 만사에 여유롭잖아요. 빈틈도 없고, 아쉬울 것도 하나 없고…….”

흐음. 희윤이 콧소리를 냈다.

“서한 씨 아직 장시현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아주 기분 나빴을 말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첫사랑으로부터 들었을 땐 그저 겸허해지는 말이었을 뿐이다.

“걔가 어디가 여유로워요. 까칠한 예술가 그 자체인데.”

“선배가요?”

“와아, 이 새끼 이거 짜증은 맨날 나한테만 부렸나 보네.”

그조차도 부러웠다. 선배의 짜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속지 마요.”

희윤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제 전 남친에 대하여 비밀 정보라도 알려 주는 사람처럼.

“다 내숭이에요, 그거. 걔가 그렇게 웃는 건 자기 약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니까요.”

희윤은 번개처럼 밥을 먹어 치웠다. 음식을 세 번 씹고 목구멍으로 넘겼다. 입맛이 돌지 않아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고 있는 나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태도였다.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일찍 식사를 시작했는데 먼저 짐을 챙겨 일어난 것은 그쪽이었다.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 몫을 계산했다.

“테이블 꼽사리 끼게 해 줘서 고마워요. 담에 기회 되면 또 봐요. 장시현이랑 같이.”

“선배랑 같이…… 요?”

“싫음 말구.”

네덜란드 문화는 원래 이렇게 쿨한 건가?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희윤은 이미 가방을 메고 있었다.

“저기요.”

나의 부름에 그가 돌아보았다.

“네?”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한국에 왜 돌아왔어요?”

희윤의 짧은 단발머리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사랑이 끝나서요.”

              ***

약점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더불어 가장 큰 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나는 생각 같은 것이 너무나 싫지만 어쨌든 간에 생각해 보기로.

희윤이 말했던 장시현의 ‘약점’과 선배가 말했던 자신의 ‘흠’이 닿아 있을 것만 같은데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별처럼 멀어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우선 ‘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건 나도 있는 거니까.

사람들이 나의 흠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여자 경험이 너무 많고 소문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문은 더러울지언정 나의 여자 경험은 그다지 대단치 않았다. 그냥 좀 반반한 얼굴에다가 곁을 안 주는 성격 덕에 먼저 환심을 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그런 흠은 대학에서는 더 나쁠 수 없이 최악이다. 그보다 더 큰 흠이 무엇일까.

사람을 하나 죽인 게 아니고서야.

나는 선배가 가진 결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이해를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그는 내게 그의 개연성을 납득시켜 주지 않았다.

다만 한없이 나를 울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제가 있어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파묻혀 있다가 컵라면이라도 사 먹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푸르른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왼쪽 오솔길에 머리가 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사레가 들린 것처럼 콜록거렸다. 그러자 그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귀신을 생각했으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혜주 누나였다.

“누나, 여기서 뭐 해?”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누나 또한 나를 확인한 것인지 눈을 크게 떴다.

“담배 한 대 피우려고.”

“누나 담배도 피워?”

누나는 보기 드물게 민낯이었다. 우리는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는 내 앞에서 항상 완벽한 상태였는데 이런 얼굴은 또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 골초야. 몰랐겠지만.”

“왜 말 안 했어?”

안주머니를 뒤지던 누나가 손을 멈추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픽 웃었다.

“그걸 몰라서 묻니?”

“…….”

누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 휠을 돌렸다. 나는 긴 머리가 혹시 불에 닿을까 싶어 한 손으로 그의 왼쪽 머리칼을 슬쩍 넘겨 주었다. 흠집 하나 없이 희고 가는 목이 드러났다. 담배에 불을 붙인 누나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후우, 부풀어 오르는 연기와 함께 그가 말했다.

“너는 참…… 이상한 애야, 한아.”

“…….”

“분명히 가까이 둘 만한 사람이 아닌 걸 아는데, 어느 순간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있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닿을 수 없이 멀리 가 버려.”

누나가 그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내 손등이 닿았던 것을 털어내기라도 하듯이.

“나는 가끔 민희가 부러워.”

“누나가? 설마.”

6개월쯤 전에 만났던 민희 누나는 제 절친인 혜주 누나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민희 누나는 혜주 누나와는 정반대의 측면으로 제멋대로였다.

그는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했다. 조금이라도 슬픈 영화를 보면 화장이 다 지워지도록 펑펑 울었다. 그래서 나와 영화를 보는 날엔 화장을 하고 나오지 않기에 이르렀다. 나를 좋아하는 마음도 처음부터 숨기질 못했고 내게 남은 미련도 그대로 다 내보였다.

그가 과 술자리에서 만취한 상태로 울며불며 내게 매달린 날, 내 칭호는 일반 걸레에서 초특급 쓰레기 걸레 새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 성격이 싫어서 남들 보는 앞에서 그와 대판 싸웠다는 혜주 누나가 그를 부러워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누나는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걔한테 가장 우선시되는 건 자기 감정이잖아. 반면 나한텐 그게 자존심이고.”

“……그래서?”

“가장 지켜야 할 것, 가장 소중한 것, 그런 건 다 약점이야.”

“…….”

“그게 다 약점이 되는 거야.”

약점. 나는 멍하게 그의 말에 이끌렸다. 나 혼자서는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단편적이고 사전적인 정의 이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누나는 내게 나눠 주었다.

“나는 내 자존심이 가끔 미웠어.”

“……그게 누나 약점이 돼서?”

“그래.”

그의 입에서 나온 연기가 흐리게 내 눈 앞을 가렸다가 이내 서서히 사라졌다. 헛된 웃음으로 그가 말했다.

“그 대단하고 엄청난 자존심이…… 내 발목을 잡았어. 그럴 때마다 생각해. 지금 내 발목을 이렇게 견고하게 옭아맨 게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

“살면서 내가 약점 같은 게 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 발밑에, 정말 가까이에 있더라.”

“…….”

“너는 내게 계속 그걸 일깨워.”

반쪽이 된 누나의 얼굴을 보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슬프다거나 답답한 게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회피하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혜주 누나는 늘 내게 지혜를 알려 주었다. 강의력이 좋은 교수님에 대한 정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게 돕는 족보, 어른들이 하는 연애의 방향성, 약점에 대한 견해.

나는 엉망인 혜주 누나의 얼굴을 보며 궁금해졌다.

선배도 무언가에 발목을 잡혀 이런 얼굴을 한 적이 있을까.

있다면 언제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순간은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다. 선배는 절대로 어떤 것에도 발목 잡히지 않는 신적인 존재일 것 같았다.

“한아, 처음에는 너를 참 어리석은 애다. 그렇게 생각했어.”

“…….”

“나는 소문도 자기 관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네가 칠칠치 못하다고 여겼어. 혹은 그런 자기 자신한테 취해 있거나.”

나는 가만히 혜주 누나의 말을 듣다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지금은?”

“지금은.”

누나의 손에서 다 피운 담배가 떨어졌다. 그가 모포처럼 걸친 하늘하늘한 생김새의 가디건을 어깨 위로 걸쳐 입었다.

“지금은…… 모르겠어, 한아.”

“…….”

“네가 그 소문을 즐기는지, 수많은 여자에 둘러싸인 네 삶을 사랑하는지, 어디까지 가야 네가 만족할지. 판단할 수 없고 내 판단을 믿을 수 없어.”

“…….”

“지금은 네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외려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선배를 생각했다. 선배의 말을.

‘꼭 금기 같은 애야, 너는.’

그렇게 말한 선배는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외면하듯이.

‘한 번 깨면 돌이키기 어려워.’

남들에게서 듣는 나에 관련된 정의는 늘 낯설었다.

금기 같다고 하질 않나,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질 않나, 그런 말들은 양귀비 같은 경국지색을 이야기할 때나 하는 말이었다. 현실감도 없고 믿을 수도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깊이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마, 누나.”

나는 부들부들한 그의 가디건 위에 손을 올려 조심스럽게 툭툭 두드렸다.

“나 그렇게 대단한 애 아니야.”

선배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애가 아니라고.

“그냥 걸레잖아. 필요하면 가져다 쓰다 마는, 고작 그런 수준의.”

스치는 여자마다 꼬시는 그런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알면서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라고.

“어리석어지지 마. 나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야.”

내가 이러는 이유는 그냥 다…….

“얼굴 빼면 볼 것도 없어, 솔직히. 그치?”

다 선배 때문이라고.

선배가 내 발목을 잡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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