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4)

커다랗고 노란 달이 탑 꼭대기 층에 걸린 것처럼 지상 가까이에 떴다. 이스카가 입혀준 녹색 외투를 입은 리프는 비좁은 성벽의 계단을 올라갔다.

방어를 위해 답답하리만치 좁은 계단을 벗어나자 탁 트인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리프는 이스카와 나란히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성벽 위를 걸었다. 밤하늘은 늘 봐오던 것이지만 높은 곳에서 별을 올려다보려니 기분이 색달랐다.

'황혼과 고뇌의 탑이로군.'

이스카와 천천히 성벽 위를 산책하던 리프는 저 멀리 보이는 황혼의 탑을 발견하고서 흉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흉벽의 높이가 높아 발돋움을 해도 시야가 잘 확보가 되질 않았다.

리프는 발판 대신 딛고 올라설 물건이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스카는 그런 리프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팔짱을 끼고서 삐두름한 자세로 서있던 이스카가 결국 리프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런 게 아니라, 헉."

갑자기 눈높이가 달라지자 당황한 리프는 반사적으로 이스카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 흉벽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던 황도의 풍경이 저 앞에 펼쳐지자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스카가 저를 떨어트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바스커빌이었을 때 까지만 해도 여든 평생 고소공포증 같은 게 있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다시 태어나니 체질이 바뀐 모양이었다.

귓가에 스치는 이스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리프는 허둥지둥 찻주전자에 손을 뻗었다.

"됐어, 내가 따르지. 어린놈이 벌써 수전증이라도 생긴 모양이로군."

이스카가 등 뒤에서 팔을 뻗어 찻주전자를 들어 올리는 리프의 손을 제지했다. 손을 가늘게 떠는 리프가 미답지 않은 기색이었다.

'읏.'

리프는 이스카의 몸이 제 등에 밀착하자 리프는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옆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싶은데 테이블과 이스카의 몸 사이에 갇혀버려서 리프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스카가 어찌나 바짝 몸을 붙이고 있는지 그의 단단한 팔 근육이 옷 너머로 느껴질 정도였다.

노예 주제에 감히 비켜달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리프는 체념한 얼굴로 이스카와 테이블 사이에 가만히 끼어 있었다.

'손가락이 무척 길고 정갈하군.'

딱히 시선을 둘 데가 없어 테이블을 응시하던 리프는 찻잔에 차를 따르는 이스카의 손을 보고 문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열은 분홍빛이 도는 손톱 반달이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반듯했다.

'잘생긴 손이야.'

리프는 티포트에서 찻잎을 건져내는 이스카의 손을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쳐다봤다. 손에다가 잘생겼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그 단어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표현이 없었다.

검을 다루는 사람들은 으레 손이 투박하기 마련인데, 이스카의 커다란 손은 손바닥이 조금 딱딱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했다.

"리프."

입술을 살짝 벌리고서 찻잔을 든 이스카의 손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러셀이 그를 불렀다.

"리프!"

"예……?"

이스카를 즐즐 쫓아갈 기세로 손가락에 넋을 빼고 있던 리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러셀을 올려다봤다.

"리프, 호프만의 마법진을 수정한 마법사에 대해 언제 쯤 말해줄 거냐. 아는 게 있으면 뭐든 좀 털어놔봐.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상관없어."

러셀이 강압적인 어조로 리프를 채근했다. 평소에도 리프와 마주칠 때마다 매번 지나가듯 물어보곤 하던 질문이지만 오늘은 러셀의 분위기가 꽤 심각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리프는 쇠사슬을 손에 꼭 쥐며 고개를 숙였다.

"그 마법사를 헤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서 트리아만 마법사 놈들에게 꿀리지 않을 인재가 필요한 것뿐이지. 정보를 제공해도 너한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게."

러셀이 갑자기 조바심을 낸 이유가 바스커빌의 연구일지를 열람하러 올 서 트리아만 제국 마법사들 때문인 모양이었다.

"네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짤그랑

필사적으로 러셀의 시선을 외면하던 리프가 어깨를 움찔 튕겼다. 티아고 영감과 호아킨들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는……."

리프가 동요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인 순간, 이스카가 찻잔을 세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리프, 찻물 다시 끓여와."

"저하, 잠깐만요. 오늘은 꼭 리프에게!"

"내 말 안 들리 나? 당장 다시 끓여와. 차에서 떫은맛이 나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으니까."

이스카는 러셀의 말을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타오라는 말은 리프에게 한 것이지만, 맹수처럼 사납기 짝이 없는 이스카의 시선은 러셀을 향해 있었다.

"감히 내 명령에 토 달지 마라, 러셀."

서늘한 눈을 한 이스카는 움찔 얼어붙은 러셀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제가 주제넘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하......"

러셀은 숨을 죽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스카는 오랫동안 곁에서 저를 모셔온 측근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기분이 뒤틀리면 바로 목을 쳐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무서울 만큼 머리가 비상하고 이성적이지만, 한편으론 독재자처럼 논리나 도덕 따위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꼬맹아, 얼른 차 타가지고 와. 저러다 러셀 놈 피 말라 죽겠다."

햄튼이 게걸음으로 리프에게 슬금슬금 다가와 귀엣말을 던졌다.

"네."

햄튼이 등을 떠밀자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리프는 도망치듯 거실에서 빠져나왔다.

짤그랑, 짤그랑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가 아치형 천장을 타고 복도에 울려 퍼졌다. 복도를 지키는 근위병들은 순례자처럼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소년을 보고도 이제 놀라지 않았다.

'내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지.'

리프는 앙상하게 마른 제 어깨를 끌어안았다.

바스커빌의 연구일지에서 고대 마법병기의 설계도를 찾아내려는 세력, 호프만의 마법진을 수정한 마법사를 찾아내려고 하는 러셀. 마치 바스커빌이 저지른 짓을 잊지 말라고 누군가 일부러 그를 괴롭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하도서관의 망령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리프는 제가 어떻게 해야 황혼과 고뇌의 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출렁, 출렁

수증기가 가득 찬 욕실에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퍼져나갔다. 온천처럼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욕탕에는 금발 소년과 어吾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몸을 담그고 있었다.

리프가 입은 커다란 셔츠가 물 위로 풍선처럼 부풀었다. 쇠사슬에서 잠시 풀려난 리프는 비누거품을 머금은 해면을 명하니 조물조물 거렸다. 해면에서 흘러내린 새하얀 비누거품은 이스카의 가슴을 타고 욕탕의 물 위로 툭, 툭 떨어졌다.

"또 정신을 딴 데 팔고 있군."

리프를 제 무릎에 앉힌 채로 목욕시중을 받던 이스카의 목소리가 욕실의 벽을 타고 우렁우렁 울렸다.

"네놈, 낮부터 얼을 빼고 있더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이스카는 제 가슴에 성의 없이 해면을 문지르는 리프의 손목을 꽉 움켜잡으며 인상을 썼다.

"그게, 저는……"

출렁, 하는 소리와 함께 욕탕 바깥으로 물이 넘쳤다. 리프는 흠칫, 놀라며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그가 눈을 깜빡거리자 금색 속눈썹에 맺힌 물방울이 눈물처럼 툭, 떨어졌다.

"이상할 정도로 당황하는군. 설마 몰래 도망칠 계획이라도 세우고 있었나?"

이스카가 리프의 양쪽 손목을 움켜잡고서 욕탕의 벽에 거칠게 밀어 붙였다.

"저하,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단지……."

기분이 심란해서 넋을 빼고 있다가 엄한 오해를 사고 만 리프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거짓말 하면 분명 이스카에게 들킬 것이다. 하지만 제가 환생하기 전의 삶과 얽힌 복잡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었노라고 이스카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망치고 싶으면 어디 도망쳐 봐. 네놈뿐만이 아니라 네가 가족처럼 여기는 그 노예 놈들까지 극형에 처할 테니까."

이스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리프의 귀에 속삭였다.

"절대 도망칠 생각 같은 거 안 해요."

리프는 절박하게 고개를 흔들다가 움찔, 어깨를 튕겼다. 벌거벗은 이스카와 밀착한 탓에 리프의 배에 딱딱하게 발기한 이스카의 성기가 닿았기 때문이었다.

찰박, 찰박

리프가 긴장하자 물살도 파도가 이는 것처럼 점점 거칠어졌다.

'읏.'

손목보다 굵은 이스카의 성기는 리프의 복부에 적나라하게 문질러졌다. 옷이라도 입고 있었다면 좀 나았겠지만 하필이면 리프가 걸치고 있는 긴 옷이 가슴께까지 말려 올라간 상황이었다. 하반신은 리프도 이스카와 마찬가지로 속옷 한 장 입지 않은 상태였다.

'느낌이 이상해......'

이스카에게 손목을 붙들려 옴짝달싹도 못하는 리프의 얼굴 위로 혼란스러운 감정이 번졌다. 목욕 시중을 들면서 제가 황자의 성기를 건드리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묵직한 페니스가 일방적으로 맨살에 닿으니까 몹시 곤혹스러웠다. 성기도 신체의 일부분에 불과한데 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감정이 이는 건지 리프는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군."

이스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숨을 꾹 멈추고 있는 리프의 얼굴을 살폈다. 살짝 벌어진 입술,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 가슴께까지 말려 올라간 셔츠 아래로 보이는 조그만 유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이스카가 그렇게 물은 순간 리프의 배를 압박하는 커다란 성기의 존재감이 한층 더 뚜렷해졌다.

"아, 아무 생각도 안 해요."

리프는 저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군."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이스카의 머리카락에서 리프의 쇄골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근육이 물결치는 이스카의 등 위로도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정말 아무 생, 아읏!"

첨벙!

리프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튕겼다. 그의 손목을 움켜잡은 이스카가 갑자기 분홍빛 유두를 깨물었기 때문이었다.

"민감한 몸이군."

거추장스러운 리프의 셔츠를 벗겨버린 이스카는 제가 깨물지 않은 왼쪽 유두를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리프의 왼쪽 유두는 이스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꼿꼿하게 일어서 있었다.

'왜 이러는 거지? 화가 난 건가?'

손목을 붙잡혀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리프는 겁에 질린 눈으로 이스카를 올려다봤다.

"저하, 히익!"

이스카가 왼쪽 유두를 혀로 둥글게 자극한 순간, 리프가 목을 움츠리며 새된 신음을 흘렸다. 등허리에서 낯선 감각이 짜릿, 하고 일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설 줄은 몰랐는데."

이스카가 수면 아래로 보이는 리프의 사타구니를 빤히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완전히 발기한 건 아니지만 리프의 미성숙한 성기는 분명 비스듬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겪어 본 적 있나?"

입가에 음험한 미소를 띤 이스카가 리프의 입술에 손을 가져간 순간이었다.

'화가 난 건가?'

손목을 붙잡혀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리프는 겁에 질린 눈으로 이스카를 올려다봤다.

"저하, 히익!"

이스카가 왼쪽 유두를 혀로 둥글게 자극한 순간, 리프가 목을 움츠리며 새된 신음을 흘렸다. 등허리에서 낯선 감각이 짜릿, 하고 일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 정도에 설 줄은 몰랐는데."

이스카가 수면 아래로 보이는 리프의 사타구니를 빤히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완전히 발기한 건 아니지만 리프의 미성숙한 성기는 분명 비스듬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겪어 본 적 있나?”

입가에 음험한 미소를 떤 이스카의 커다란 손이 리프의 옆구리를 애무하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하읏!"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리프는 이스카의 손이 제 옆구리를 쓸어내리자 입술을 깨물며 등을 둥글게 말았다. 그는 여자를 겪어 본 적 있냐는 이스카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자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타인에게 여기저기 만져지는 게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이번인 처음인 리프는 정체불명의 공포를 느끼며 온몸을 긴장시켰다. 찰박, 찰박, 하고 물살이 요동치는 소리가 욕실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낯선 감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무리 몸을 웅크리고 숨을 꾹 멈춰 봐도,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짜릿짜릿한 통증으로부턴 벗어날 순 없었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사타구니에 제대로 털도 안 난 꼬마가 여자에게 올라 타볼 기회가 있었을 리가 없을 텐데."

이 상황을 즐기는 기색이 분명한 이스카가 리프의 목을 혀로 핥으며 얇은 어깨를 쓰다듬었다.

"흣!"

리프는 발바닥에서 저릿한 통증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리프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설익은 페니스는 물속에서 점점 더 꼿꼿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스카의 손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리프가 자지러지는 반응을 보이는 곳만 골라 집요하게 더듬어대고 있었다.

"그, 그만! 이러지 마세요…… 저하."

이스카에게 붙들려 이상한 짓을 당하던 리프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본능적으로 이스카를 밀어내려고 하는 리프의 눈동자엔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했다. 이스카가 제 유두를 손끝으로 건들 때마다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뭘 그만하라는 거지? 응?”

이스카는 제 품에서 바르작거리는 리프를 안고서 욕탕 밖으로 나왔다. 리프의 귀에 이를 세우며 코웃음 치는 그는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손에 넣은 악당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숨 쉬기가 괴로워.'

발가벗은 채로 욕실 바닥에 등을 댄 리프는 목을 움츠리고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스카의 축축한 혀가 귀를 핥자 등허리가 오싹해졌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은 이스카의 건장한 몸에서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리프의 젖은 금발은 대리석 바닥에 넓게 퍼져 있었다.

"볼품없이 말랐군."

이스카는 숨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리프의 가슴을 빤히 내려다봤다. 심드렁한 말투와 달리 이스카의 성기는 불끈불끈 움직이며 리프의 페니스와 비벼지듯 맞닿았다.

혼란스러운 눈으로 이스카를 올려다보는 리프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제 벌거벗은 몸에 문질러지는 이스카의 페니스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평소에도 이스카가 목욕 중에 발기했던 건 마찬가진데 지금은 왜 이렇게 불길하고 두려운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나이일 텐데 하루에 몇 번이나 수음을 하지? 혹시 내 궁에서 일하는 시녀들의 치맛자락 속을 상상하면서 허벅지를 비벼대나?”

이스카가 돌멩이처럼 딱딱해진 리프의 유두를 벙글벙글 돌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 그런 짓 하지, 하윽!"

리프는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서 펄떡 등을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유두를 비벼대는 이스카의 손길 때문에 온몸이 오싹오싹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상해. 몸이 뜨거워…….'

리프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움찔움찔, 허리를 뒤틀었다. 누군가 실로 꽉 묶어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아랫배가 불편했고, 깃털로 피부를 살살 건드리는 것처럼 사타구니가 간질간질했다.

"뭘 안 한다는 거지? 수음? 아니면, 음탕한 상상?"

"두, 둘 다요!"

위기감을 느낀 리프는 얼른 몸을 뒤집어 네발로 기어가듯 이스카의 품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리프는 제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꼴로 어디를 가려고?"

이스카는 리프가 한발을 미처 내딛기도 전에 커다란 팔로 등 뒤에서 그를 옭아맸다.

"흐익!"

"숨어서 몰래 수음이라도 할 생각인 건가?”

삐쩍 마른 리프를 가슴에 폭 안은 이스카는 허리를 깊게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짐승이 그르릉 거리는 것처럼 목을 울리며 웃은 이스카는 분홍빛이 도는 리프의 수줍은 페니스를 손에 쥐고서 장난감처럼 주물럭거렸다.

"헉……!"

제 물건에 난생처음 타인의 손이 닿자 리프는 혼이 나갈 만큼 기겁했다. 손목을 잡힌 거와 다를 바 없다고 되뇌며 놀란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시, 싫어요!"

공황상태에 빠진 리프는 바닥의 물기 때문에 발이 미끄러지든 말든 이스카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마구 버둥거렸다.

"노예 주제에 말버릇이 그게 뭐지? 매질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건가?"

이스카는 제 품에서 펄쩍펄쩍 날뛰는 작은 고양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리프의 허리를 더욱 꽉 붙들고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한편, 리프의 페니스를 쥐락펴락하는 이스카의 손길은 더욱 집착적으로 변했다.

"자, 잘못했어요. 저, 저는 다만. 하윽!"

창백해진 얼굴로 변명하던 리프는 펄떡펄떡 몸을 튕기며 진저리를 쳤다.

누군가 실로 꽉 묶어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아랫배가 불편했다. 제 성기를 손바닥으로 감싼 이스카의 손을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리프의 성기를 희롱하는 정갈한 손은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내놈 주제에 몸이 이렇게 예민하다니 정말 쓸모가 없군."

이스카는 리프의 성기뿐만이 아니라 고환까지 손에 쥐고서 굴려댔다.

"하윽! 악. 으읏, 응."

리프는 입술을 깨물며 바들바들 어깨를 떨었다. 제 육체에 가해지는 폭력적인 자극에 눈물이 핑 돌았다. 평생을 바쳐 마법에만 매진했던 바스커빌이었을 때나 노예인 현재를 통 털어, 리프는 단 한 번도 성적인 애무를 받아본 적 없었다.

"허억, 흑! 으읏. 저하, 제발……."

리프는 어린애처럼 울먹거리며 이스카의 손을 떼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리프의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허수아비의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하반신에서 퍼지는 뜨끈하고 낯선 감각 때문에 머릿속이 지잉, 하고 울렸다.

리프는 성경험도 없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성욕 자체가 희박한 편이었다.

따라서 성기를 거침없이 만져대는 이스카의 손길은 리프에게 감당하기 힘들 만큼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제발, 뭐. 빨리 가게 해달라는 거냐?”

이스카는 가녀리고 매끈매끈한 몸이 제 품안에서 바들바들 떠는 게 몹시 마음에 드는지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리프의 몸이 너무 야들야들하고 왜소해서 좀 더 꽉 끌어안고 싶어도 여기서 더 세게 힘을 주면 으스러질 것 같아 자제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흐읏!"

발가벗은 채로 이스카의 팔에 온몸을 의지하다시피 한 리프는 신음을 잇새로 흘렸다. 이스카에 의해 쾌감인지 고통인지 모를 것을 통제당하는 리프의 금색 머리카락은 이스카의 팔뚝 위에서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

'괴로워, 그만......'

리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리프의 새하얀 발은 이스카의 크고 넓적한 발 위에서 버둥거렸다. 아직 미성숙한 육체를 가진 리프에겐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인 성적 쾌감은 통증과 다를 바 없었다.

"저하, 싫어요. 하윽, 제발……."

리프는 아랫배가 단단히 조이는 것을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싫어? 앙큼한 거짓말을 하는군. 네 물건은 좋다고 꺼덕대는데."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리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그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고 있는 이스카의 팔뚝 위로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리프의 매끄러운 피부를 손바닥으로 탐하는데 정신이 팔린 이스카는 제 품에 안긴 소년이 우는 줄도 알아채지 못했다.

"싫어!"

제 몸을 지배했던 낯선 감각에 몸서리를 치는데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흠, 벌써 간 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참을성이 부족하군."

이스카의 리프가 제 손에 토정한 액체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낮게 코웃음을 쳤다.

"허억, 헉. 흐읏......"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정을 하게 된 리프는 가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랫배를 옥죄던 괴로운 감각에선 간신히 해방되었지만 공사장에서 고된 노역이라도 한 것처럼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울었군. 그렇게 좋았나?”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이스카가 눈이 빨갛게 충혈 된 리프의 뺨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히익!"

겁에 잔득 질린 리프가 제 몸을 끌어안으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뭐지, 그 반응은?"

이스카는 리프가 제 손을 피해 도망친 게 몹시 불쾌하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 저하. 차, 차라리 매질을 당할 테니까 이런 벌은 주지 마세요."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리프가 어깨를 덜덜 떨며 입술을 달싹였다. 욕실에 자욱하게 퍼진 수증기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리프의 금발, 그리고 대리석보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때문에 리프는 신비롭고 애처로운 분위기를 흘렸다.

"네놈,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내 손에 정액까지 쏟아놓고 뭐가 어 째?"

"하, 하지만 이런 일은 책에서……."

리프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포로에게 행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무릎을 끌어  안았다. 성고문을 가하는 광경은 직접 본적 없지만 풍문으로 들은 바가 있었다. 책에선 수음을 하면 꿈결처럼 기분이 좋아진다고 묘사했으니 이건 분명 일종의 성고문인 게 분명했다.

"책? 그딴 소린 집어치워. 누가 보면 내가 널 겁탈이라도 하려고 한 줄 알겠군."

이스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프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윽!"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리프가 신음을 흘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리프는 이스카에게 팔을 붙들린 채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착각하지 마. 네놈처럼 봐줄 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비루먹은 노예 따위에게 내가 성적으로 흥분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 것 같나?" 

이스카가 몹시 불쾌하다는 듯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죄송해요……."

리프는 제 눈앞에서 꺼덕대는 검붉은 페니스를 외면하며 작게 웅얼거렸다. 황자인 이스카의 눈빛이 하도 험악해서 리프로서는 가슴속에 차오른 복잡한 의문들과 질문을 저 깊은 곳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내각회의에 참석한 귀족 각료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숙청을 당하는 자리에 억지로 끌려온 것처럼 잔뜩 숨을 죽인 각료들이 흘끔 흘끔 눈치를 살피는 대상은 테이블 상석에 앉은 재상 대리였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무를 보는 이스카 황자의 기분은 최악을 달리고 있는 듯했다.

"다음 달부터 황후궁과 라일라 황녀궁의 품위지출비를 전년도 삼할 수준으로 삭감해."

온몸으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던 이스카 황자가 서류를 휙휙 넘기며 재무대신에게 명령했다.

"저하, 말도 안 됩니다. 전년도 대비 삼할이라니요! 그렇게 무턱대고 예산을 줄이신다면 제국의 국모이신 황후마마의 위엄이 손상……."

궁내부차관이 파리해진 얼굴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엄? 귀족들의 생일선물 명목으로 매달 금화 삼천 개를 지출하는 게 황후의 위엄인가보지?"

이스카가 보석 상인과 비단, 각종 수입품 상인으로부터 입수한 지출 자료를 테이블 위에 집어던지며 으르렁댔다.

"전면적인 회계감사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예산 삭감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전해."

단숨에 궁내부차관의 입을 다물게 만든 이스카는 이번엔 루마티 강 상류 댐공사를 맡고 있는 남작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뮌스터 경, 공사비 착복에 관한 투서가 내손에 들어왔는데 이걸 어떻게 해 명할 건지 궁금하군."

이스카가 턱짓을 보내자 편백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짝 앞에 대기하고 있던 근위병들이 뮌스터 남작 쪽으로 다가갔다.

"저, 저하. 제가 아닙니다! 자재 조달을 맡고 있는 랜스 상회가 공급가격을 부풀린 겁니다."

뮌스터 남작은 손을 벌벌 떨며 결백을 주장했다.

"랜스 상회가 자재가격을 부풀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건, 책임자인 네놈이 눈을 감아줬다는 거군."

비스듬히 관자놀이를 괸 이스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저하, 오해입니다! 저도 랜스 상회의 비리에 대한 제보를 얼마 전에야 접했습니다. 맹세코 미리 알고 있던 게 아닙니다."

"자세한 변명은 재판 때 들어보도록 하지."

이스카가 손가락을 까닥 움직이자 근위병들이 뮌스터 남작을 포박했다.

"저하, 저하! 믿어주십시오!"

뮌스터 남작이 근위병들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신전의 문처럼 두꺼운 회의장의 문은 쾅, 소리를 내며 매몰차게 닫혔다.

내각 회의장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부 대륙의 설원이라도 된 것처럼 고요해졌다.

"자,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이스카는 얼굴에 핏기가 가신 귀족 관료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간에 무리를 줬다. 원래도 성질이 더러운 인간이 다음번엔 누구의 숨통을 끊을까, 라는 얼굴로 등 뒤를 어슬렁거리니 수명이 단축되는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러셀 경, 저하께서 도대체 왜 저러시는 게요?'

점잖은 인상을 가진 내무대신이 피가 마른다는 얼굴로 러셀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이스카의 호위기사인 햄튼은 회의장에 흐르는 살벌한 분위기는 전혀 알지 못하는 건지 몰래몰래 과자를 입에 집어넣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러셀은 푹 삶은 시금치 같은 몰골로 내무대신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스카의 심복인 러셀의 눈가엔 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도 이스카가 굶주린 맹수처럼 흉포해진 이유를 몰라 죽을 맛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군요. 빨리 저하의 기분이 풀리셔야할 텐데.'

나이 지긋한 내무대신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불충분한 보고서를 제출한 각료들이 이스카 황자에게 멱살을 잡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제가 이스카 황자와 같은 편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성이 잔혹한 이스카 황자는 제 수하라고 해서 딱히 자비를 베푸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악마보다 교활하고 잔인한 이스카의 적이 되었다간 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더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 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마들렌이란다."

홍차와 함께 다과를 내온 시녀장 테사가 쇠사슬을 찬 노예 소년에게 과자를 권했다.

"잘 먹겠습니다."

리프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오렌지 빛이 도는 마들렌을 집어 들었다. 원래 그는 단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테사에게 차를 끓이는 법을 배우면서 홍차에 과자를 곁들이는 걸 즐기게 되었다.

"축제에 참가해 본 적 있니?"

작은 입으로 마들렌을 먹는 리프에게 테사가 물었다. 그녀가 리프를 바라보는 눈길은 꼭 손자라도 대하는 것처럼 온화하고 다정했다.

"아니요."

이스카의 명령 때문에 실내에서도 후드를 쓴 리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혼과 고뇌의 탑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했지. 나이가 들면 기억이 깜빡깜빡 한다니까."

테사는 한탄하듯 작게 한숨을 내쉼 뺨에 손을 얹었다.

"곧 제국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가 열릴 거란다."

리프는 테사가 왜 축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여태껏 축제라는 것에 신경을 써본 적 없었다. 마법사란 족속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오로지 연구뿐이었기 때문에 황혼과 고뇌의 탑에서 지낼 땐 휴일이나 명절을 의식할 일이 전혀 없었건 것이다.

"축제날 함께 구경을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저하께 잘 말씀드려 볼 게. 햄튼 경 부인인 로잘린 님 기억나지? 로잘린 님이 마차를 태워주실 거야."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리프는 귀가 쫑긋해졌다. 축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잘하면 티아고 영감과 호아킨들을 만날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티아고 영감은 무릎이 안 좋은데, 그새 신경통이 더 심해진 건 아니겠지? 지하도서관에 숨겨둔 은화로 티아고 영감에게 약을 사다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황혼과 고뇌의 탑 노예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설렜던 것도 잠시.

'황자가 과연 허락을 해줄까......'

이스카의 얼굴을 떠올린 리프는 그늘진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리프는 마스터 호프만에게 마법진을 그려준 일 때문에 이스카의 감시를 받고 있는 처지였다. 게다가 얼마 전 욕실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이스카는 리프에게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온갖 사소한 트집을 잡아가며 저를 괴롭히는 황자가 축제에 나가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해줄 확률은 몹시 희박했다.

"리프, 내가 구운 타르트 좀 먹어봐."

인상이 서글서글한 시녀 한 명이 은쟁반을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은쟁반 위에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타르트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어머, 마리엔느. 네가 자발적으로 과자를 굽다니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내가 다과 좀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부탁할 땐 못 들은 척 귓등으로 흘리더니."

시녀장이 찻잔을 손에 들고서 생긋 웃었다.

"시녀장님도 귀족들에게 선물로 받은 과자며 케이크를 저희들에게 안 나눠주시긴 마찬가지잖아요."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한 마리엔느도 생긋 웃으며 시녀장의 말을 받아쳤다. 마리엔느는 언뜻 상냥하고 순둥순둥해 보였지만 실제 성격은 생긴 것과 정 반대로 냉소적이었다. 근위병들이 죽네 사네, 하고 그녀 앞에서 난리를 피워도 내 알 바 아니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구애를 거절해버렸다.

"리프, 어서 먹어보렴. 마리엔느가 성격은 나빠도 과자 굽는 솜씨만큼은 황궁에서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호호호, 시녀장님도 농담을 참 진짜처럼 하신다니까. 리프가 진짜라고 믿겠어요."

리프를 사이에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 튀기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분위기가 살벌하군. 꼭 마법학회에 참석한 기분이야……'

마리엔느와 테사 사이에 낀 리프는 곤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황궁에 적을 둔 두 여인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어쩐지 마법사들이 학회에서 논문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던 광경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마법사들은 말다툼을 할 때 적식 있는 단어와 고상한 화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비비 꼬인 대화들을 간단하게 풀어보면 '댁은 참 머리에 든 게 없는 빌어먹을 쌍놈이요.' '허허, 그러는 댁도 대가리에 동만 찬 고집불통이구려. 욕창이라도 걸려서 앓아눕길 기원하오.' 라는 내용들이 대다수였다.

딸기 타르트를 야금야금 갉아먹던 리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대륙 전역에서 같은 날 벌어지는 축제라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신성한 승리의 날에 대해선 리프도 언뜻 들어본 일이 있었다. 하지만 황혼의 탑에 갇혀 살다보니 그게 뭐하는 날인지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대륙 연합군이 대역적 바스커빌을 공개적으로 참수한 걸 축하하는 기념일이란다."

테사가 마리엔느를 대신해 축제의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그렇군요……."

천천히 고개를 숙인 리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식욕이 사라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타르트도 쟁반 위에 내려놓았다.

바스커빌이 대륙인들에게 대역적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스커빌의 죽음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는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공개적으로 참수를 했다니, 내 시체를 전장에서 도시로 가지고 돌아온 모양이군…….'

리프는 무릎위에 올려놓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쇠사슬이 짤그랑, 짤그랑 하고 여린 소리를 냈다.

대륙 연합군들이 그의 주검을 가지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열한 뿐만이 아니라 과시하길 좋아하는 대륙 연합군 놈들이 바스커빌의 시체에 어떤 짓을 했을지 저절로 머릿속에 훤히 그려져서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축제 마지막 날엔 바스커빌을 처형하는 순간을 재연한단다."

"타국 사람들이 그 재연을 구경하려고 축제기간 때 일부러 관광을 올 만큼 대단한 볼거리야. 광장에선 공짜로 사과주를 나눠주는데 그게 진짜 별미고."

테사와 마리엔느는 리프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재잘재잘 축제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대화는 원래 의도와 달리 리프를 더 괴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신경 쓰지 마. 비참해할 것도 없어. 삼백 년 전에 대역적으로 낙인 찍혔으니 이건 어필 수 없는 일이야.'

가슴께가 꾹 조인 리프는 쓴 약이라도 삼키는 것처럼 원망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 과거도 현재도, 리프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리프, 혹시 타르트가 입에 안 맞아?"

리프가 홍차에도 타르트에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는 걸 알아챈 마리엔느가 불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마리엔느, 그러게 설탕을 너무 많이 넣지 말라고 했잖니."

리프의 입맛을 미리 귀띔해줬는데도 왜 달게 만들었냐는 듯 테사가 한숨을

푹 쉬며 마리엔느를 나무랐다.

"아니에요. 맛있어요. 그냥 배가 불러서……"

리프는 저를 위해 타르트를 만든 마리엔느가 상심해하자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기분이 가라앉아서 그런지 덩달아 몸 상태도 나빠겼다.

"하지만 얼마 먹지도 않았잖니. 혹시 속이 안 좋은 거니?"

테사는 당장 바늘을 가져와 리프의 손이라도 따줄 기세였다.

'어떡하지?'

리프가 곤란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거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이스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양옆에선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조이고 요사스러울 만큼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거리들이지?"

거실에 발을 들인 이스카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타르트와 과자를 보고 눈을 크게 비틀었다.

"저, 저하."

"오셨습니까."

나이 지긋한 시녀장과 마리엔느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난 이스카에게 인사했다. 아직 황실 예법에 익숙하지 않은 리프도 엉거주춤 한쪽 발을 뒤로

당겨 인사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었을 텐데?"

높은 구두를 신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을 옆구리에 낀 이스카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제게 선물이 들어와서 리프에게 좀 나눠준 것뿐입니다. 바로 치우겠습니다, 저하."

오랫동안 시녀장으로 일해 이스카의 성미를 잘 알고 있는 테사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서 변명했다.

"내 궁에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군. 선물이든 뭐든 저 녀석에게 과자 같은 것 주지 마. 노예 따위가 그런 걸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시녀장이 이스카에게 용서를 빌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자는 날 많이 싫어하는구나......'

리프도 테사를 따라 머리를 조아리며 혼잣말을 되뇌었다.

단 음식은 원래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자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게다가 노예에게 과자나 차를 허락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드문 일이었다. 그럼에도 리프의 마음이 불편해진 건 이스카가 저를 싫어해서 괴롭히는 걸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저하, 어디로 들어가면 되나요? 항상 쓰던 그 방? 저희는 거실에서 저하를 즐겁게 해드려도 괜찮은데."

이스카가 데리고 온 여자가 훌러덩 옷을 벗더니 속옷만 입은 채로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었다.

'헉.'

테사와 마리엔느가 테이블을 치우는 걸 돕던 리프는 여자가 옷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바스커빌이었던 시절, 그의 밑에서 일하던 마법사들이 춘화를 돌려보는 걸 몇 번 목적한 적은 있었다. 인체해부도도 공부하긴 했지만 여성의 가슴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하, 저는 저하를 처음 모시지만 다른 가게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만족시켜드릴 자신이 있어요."

노예 소년이 당황하든 말든, 염색약으로 억지로 금발을 만든 여자는 이스카의 팔에 풍만한 가슴을 비벼대며 교태를 부렸다.

"시끄럽게 구는 것 안 좋아하는 거 알 텐데?"

이스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들을 손님방으로 밀어 넣었다.

"테사, 목욕물을 준비해."

리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손님방으로 향한 이스카가 쾅, 하고 문을 닫으며 시녀장에게 명령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리프가 본 것은 젖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들이 이스카에게 달라붙는 광경이었다.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리프는 움찔 놀랐지만 이내 이스카가 흘끗 절 쳐다본 건 착각이거나 우연이었을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상식적으로 헐벗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굳이 제 반응이라도 살피듯 얼굴을 쳐다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잠잠하시더니 또......"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녀장이 피로한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 생각엔 저하가 그간 여자들이랑 난잡하게 놀아나지 않고 조용히 지낸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고 봐요. 원래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해소할 여자들을 불러들이는 분이었잖아요. 근위병들 말론 집무실에서도 태연하게 구음을-."

"쉿,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구나."

시녀장이 엄한 얼굴로 마리엔느를 꾸짖었다.

"내 정신 좀 봐."

비두름한 태도로 이스카의 행실을 비난하던 마리엔느가 아차, 하는 얼굴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저도 알만큼은 알아요."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리프가 불쑥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테사나 마리엔느는 리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정말인데......'

리프는 쇠사슬을 만지작거리며 이스카가 매춘부들과 함께 들어간 손님방을 흘끗 바라봤다.

'역시 그때 그건 날 괴롭히려고 만져댔던 거구나.'

후드로 얼굴을 거의 다 가리다시피 한 리프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쩌면 차 시중도 그만 두라고 할지도 몰라.'

리프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발을 꼼지락거렸다. 앞으로 차를 마시지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아쉬웠다.

황궁에 들어와서 딱 하나 좋은 일이 있다면 그건 홍차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리프는 차를 끓이는 일도 좋아했다. 향이 제대로 우러나오도륵 주의를 기울이는 게 마치 마법 시료를 조합하는 과정처럼 느껴져서 즐거웠던 것이다.

"리프, 아까 저하께서 하신 말씀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분명 진심이 아니셨을 거야."

리프의 기분이 가라앉은 걸 눈치 챘는지 마리엔느가 리프의 입에 타르트 조각을 쏙 밀어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읍."

반사적으로 타르트를 삼킨 리프는 눈을 부릅뜨고서 손님방을 바라봤다. 제게 과자를 주지 말라는 명령을 황자가 내렸는데 이래도 되나, 하는 우려가 든 것이다.

"다과와 차는 저하께서 명을 거두실 때까지 1층에 있는 내 방에서 먹으면 된단다."

시녀장은 그쪽은 보지 말라는 듯 리프의 팔을 잡아당겼다.

"맞아. 물래 먹으면 돼."

테사와 마리엔느는 황자의 명을 거스르겠다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렸다.

"하지만 들키면…….”

"괜찮아.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 되지."

리프가 만류해 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테사와 마리엔느는 태연자약 하게 웃으며 리프를 데리고 거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굳게 닫힌 손님방에선 교태 섞인 높은 웃음소리와 아양을 떠는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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