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챙! 끼이익, 챙!
숫돌로 날카롭게 갈아둔 대검이 뜨거운 햇빛을 반사했다. 대여섯 개의 칼들이 허공에서 격돌할 때마다, 미세한 불똥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이를 악문 사내들이 뿜어내는 땀 냄새와 쇠 비린내가 선선한 바람에 섞여 사방으로 퍼졌다.
'일대 다수의 전투라는 게 실제로 가능한 거였군.'
연무장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던 리프는 축축한 토끼풀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비 때문에 바닥이 질척질척해진 연무장 중앙에선 흑발 남자가 눈빛이 형형한 기사들 상대로 놀이라도 하듯 몸을 풀고 있었다.
"제길, 으아아!"
챙, 챙!
기사들이 몸을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누군가 황자의 칼을 받아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왕관 모양으로 검은색 물보라가 일었다.
보통 황자와 기사의 대련이라고 하면 기사들이 황자에게 일부러 져주는 광경을 상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무장에서 벌어지는 대련은 실제 전투 그 이상으로 긴박하고 격렬했다. 게다가 기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두르는데도 흑발 남자 한 명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저, 저하. 이제 그만, 허억. 헉……"
녹초가 된 기사들이 진흙탕 위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백기를 흔들었다. 땀에 젖고, 바닥을 구르고,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 쓴 상태라 그들의 몰골은 패잔병처럼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훈련 상태가 엉망이군."
가벼운 셔츠 차림인 이스카는 검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진흙을 털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직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떨어지면 어떡하느냐는 투였다.
"훈련 상태가 엉망인 게 아니라, 저하의 체력이 괴물 같은 겁니다. 엄한 녀석들 잡지 마시죠. 어른이 어린애 괴롭히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팔짱을 끼고서 대련을 참관하던 햄튼이 쯧쯧, 혀를 차며 반박했다.
"흠, 그럼 네가 내 대련 상대를 하면 되겠군."
이스카가 잘됐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었다. 소드 마스터인 햄튼이라면 기사들처럼 사정 봐주면서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어흠, 험! 카운티 정, 어서 다음 조를 준비시키지 않고 뭘 꾸물거리나."
햄튼은 이스카가 오른손으로 칼을 쥐자 오한이라도 든 사람처럼 부르르 몸을 떨더니, 황급히 기사단부단장을 쳐다봤다. 왼손이라면 모를까 오른손에 칼을 쥔 황자는 절대 안 된다. 절박한 감정이 깃든 햄튼의 얼굴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와 대련하기 싫은가보지?"
이스카가 햄튼의 어깨를 뒤에서 꽉 붙들었다.
"어허허, 저하. 싫은 게 아니라…… 전 저하처럼 혈기왕성한 미혼이 아닙니다. 남편이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곯아떨어지면 어느 아내가 좋아하겠습니까, 예?"
사색이 된 햄튼이 제발 사정 좀 봐주라는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군."
햄튼의 설득이 통했는지 이스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하, 이해해 주셨, 으억!"
햄튼이 안도한 순간, 이스카가 그를 진흙탕 위로 내리꽂았다. 흙탕물이 높게 치솟는 광정은 흡사, 진흙거인이 마법에 의해 탄생하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특별히 신경 써서, 너는 제일 마지막에 상대하도록 하지. 세 번째 조를 준비시켜."
얼굴에 흙탕물이 튄 이스카가 섬뜩하게 웃으며 햄튼을 내려다봤다. 대련을 거듭할수록 더욱 손속이 거칠어지고 치밀해지는 이스카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맨 마지막에 햄튼을 상대하겠다는 의미는 사정을 봐주겠다는 게 아니라, 집에 네발로 기어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우리 차례가 왔구나."
"오늘 비번인 녀석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황자가 세 번째 조를 지목하자 그 조에 속하는 기사들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터덜터덜 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얼굴엔 절망과 체념, 그리고 공포가 번져 있었다.
"수건 가져와."
다시 대련에 돌입하기 직전, 이스카가 리프를 바라보며 외쳤다.
연무장 구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있던 리프는 처음엔 이스카가 제게 명령을 내린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수건을 가져다주거나 장비를 교환해주는 일은 일반적으로 종자가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뭘 멍하니 년을 빼고 있어. 당장 수건 가져와.”
리프가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이스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당장이라도 리프의 멱살을 잡으러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올 기세였다.
"수, 수건이요?"
리프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이스카를 바라봤다.
'지금 나한테 시킨 거 맞지?'
그제야 이스카가 심부름을 시킬 사람으로 저를 지목했단 사실을 깨달은 리프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수, 수건은 어디에 있지?'
체구가 가녀린 리프가 좌우로 주춤거릴 때마다 그의 옷 위로 늘어진 쇠사슬이 장신구처럼 짤그랑, 짤그랑하고 가녀린 소리를 냈다. 여기가 연구실이거 나 도서관 같은 장소였다면 비품이 어디쯤 있을지 유추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리프는 연무장이란 곳에 처음 와봤다.
"어이, 꼬마. 저쪽이야."
리프가 허둥대자 기사들이 팔을 뻗어 종자가 대기하고 있는 방향을 일러줬다. 누더기 같은 후드를 쓴 리프는 기사들 덕분에 간신히 수건을 놓아두는
곳을 찾아냈다. 열여덟쯤 되어 보이는 다른 기사의 종자는 물도 가져가는 게 좋을 거라며 리프에게 수건과 함께 수통도 함께 챙겨줬다.
"허억, 헉. 저하. 여기."
"대책 없이 느려 터졌군. 탑에서도 이렇게 굼뜨게 일했나?"
이스카가 숨을 헐떡대며 뛰어온 리프의 손에서 수통과 수건을 낚아챘다.
"죄송합니다."
리프는 고개를 숙이면서 뭔가 의아하단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더 빨리 가져왔을 텐데 왜 굳이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지목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인 것이다.
"다음부턴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재깍재깍 가지고 와."
위압적인 체구를 가진 이스카가 진흙을 닦은 수건을 리프에게 휙 던지며 경고했다.
'다음 번?'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못 되는 리프는 수건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발레라도 추듯 허둥거렸다.
"왜, 내가 노예인 널 시종으로 부리는 게 뭐가 잘못 됐나?”
리프의 얼굴에서 의문을 읽었는지 수통에 든 물을 얼굴에 뿌리던 이스카가 이를 내보였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나운 맹수 같은 남자가 더 포악해 보였다.
절레절레
리프는 황자가 내민 수통을 받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목에서 짤랑짤랑, 하는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생각해보니 왜 라는 의문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노예에겐 일을 시키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른 대가로 황혼과 고뇌의 탑에서 황궁으로 끌려오게 됐지 만 리프가 노예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해......'
리프는 종자에게 수건과 수통을 다시 가져다주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대련이 시작됐는지 챙, 챙, 하고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일방적으로 기사들을 몰아붙이는 이스카의 모습은 커다랗고 검은 짐승 같았다. 날렵하고 교활하고 자비심 없는……. 하지만 리프는 이스카가 어떤 짐승을 닮았는지는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황자의 궁에 나이 지긋한 내무대신이 방문했다.
이스카 황자와의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된 내무대신이 의자에 앉자, 시녀들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재상 대리직을 맡고 있는 이스카 황자의 궁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새하얀 대리석기둥과 바닥, 황금으로 세공된 창틀, 자주색으로 염색된 벨벳커튼 및 현란하면서도 이국적인 거대한 도자기, 실내에 은은히 감도는 유향의 냄새.
이 방에서 이질적인 존재는 발가락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너덜너덜한 신발을 신은 리프 하나밖에 없었다.
"황비가 황태자에게 새 후궁을 붙여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백발에 중후한 인상의 내무대신이 냅킨을 무릎 위에 펼치며 말했다.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는군. 오늘내일하는 산송장에게 후궁을 붙여줘 봤자 후계자가 생길 리 없다는 걸 본인도 잘 알 텐데."
이스카는 포도주를 마시며 입가에 싸늘한 조소를 머금었다.
"저하가 이해하십시오. 제 배로 낳은 아들을 제위에 올릴 수 없게 됐으니 얼마나 절박하겠습니까."
내무대신이 점잖게 고개를 조아렸다.
"황비가 이국의 주술사를 불러서 매일 수상쩍은 의식을 치른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레테의 강을 절반쯤 건너간 황태자를 소생시켜보겠다고."
접시에 올라온 통구이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햄튼이 기름진 거위 다리를 쭉잡아 묻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할망구, 은근히 배포가 작군. 구질구질하게 이국의 주술사 따위에게 돈을 낭비하다니. 화끈하게 소원을 들어줄 마족을 소환하면 우리도 황비의 목을 벨 구실이 생겨서 편하잖아."
러셀이 접시 모양대로 회를 친 바다생선을 포크로 돌돌 말며 투덜거렸다.
'훈제를 하거나 염장을 하지 않은 바다생선이라니, 황도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말을 타고 달려도 열흘은 걸릴 텐데…….'
식당 벽에 장식품처럼 서있던 리프는 러셀의 접시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을 응용한 건가. 세상이 많이 변했군.'
환생한 후론 황혼과 고뇌의 탑 울타리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리프는 속으로 허, 하고 감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생선을 상하지 않게 육지까지 운송해올 방법은 마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백 년 전이라면 싱싱한 바다생선을 식재료로 공급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다는 발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사치였다.
"네놈, 본분을 망각하고 또 얼을 빼고 있군. 내 잔이 비어있는 것 안 보이나."
이스카가 유리로 된 포도주잔을 손가락으로 치며 리프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아무 말씀도 안 하셔서."
딴 생각에 빠져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리프는 허둥지둥 포도주가 든 병을 들고서 이스카에게 다가갔다.
"멍청한 놈,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시종을 왜 곁에 둔다고 생각 하나. 내가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잔이 비었으면 재깍재깍 포도주를 채우란 말이다."
이스카는 제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는 얼굴로 리프의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윽."
목줄이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리프는 이스카의 가슴팍에 포도주를 쏟았다.
"젠장,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놈이군."
"다, 닦아드릴 게요……!"
옷이 찢겨져 나가는 소리에 흠칫 놀란 리프가 어깨를 움츠렸다. 굶주린 커다란 짐승이 제 몸에 올라탄 것처럼 정계심이 이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술기운에 잠식된 리프는 너무 졸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려하는지 짐작을 하지 못했다.
간신히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온 게 느껴졌다.
"네가 그렇게 다리를 오므리고 있으니까 잘 볼 수가 없잖느냐."
두 눈으로 리프를 담을 수 있게 된 이스카가 리프를 타박하며 늘씬한 하반신에 시선을 던졌다. 선정적인 느낌을 주는 새하얗고 긴 리프의 다리를 따라 시선을 거슬러 올라가자 수줍은 곳을 감춘 도톰한 엉덩이가 보였다.
"네 가장 은밀한 곳을 보여 다오. 넌 착한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응?”
이스카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리프에게 낮게 속삭이며 제 앞섶을 풀어 헤쳤다. 그의 큼직한 손은 비밀스러운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 리프의 엉덩이를 꽉 잡아 비틀었다.
"읏."
이스카에게 가장 내밀한 곳을 보여줘 버린 리프가 본능적으로 제 성기 아래쪽을 손으로 가리려 했다.
"못된 아이가 될 셈이냐?"
이스카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리프의 손을 저지했다.
리프의 손을 치운 이스카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혀로 제 입술을 핥았다. 성난 제 물건을 받아들일 리프의 그곳이 눈앞에 빠끔 드러나자 숨이 더 가빠져왔다.
이 가녀린 몸이 절 받아들이기엔 너무 작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아이를 안으려 하는 제가 최악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예쁘다고 해사하게 웃으며 손에 뺨을 비비던 이 아이를 지금 당장 가지지 않으면 그는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네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 보려 했는데, 내가 내 인내심을 너무 과신했던 모양이다."
이미 페니스가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스카는 리프의 새하얀 가슴에 손을 뻗었다. 제가 찢은 옷 사이로 슬쩍 드러난 유두는 차가운 공기가 닿아서 그런지 쫑긋 곤두서 있었다.
"이스카 님 뭘하시려는…… 거예요?”
술기운이 온 몸에 퍼져 모든 감각이 둔해진 리프가 숨을 할딱거리며 물었다. 이스카가 그의 목을 핥으며 유두를 문지르자 따끈하다고 느꼈던 사타구니가 답답하고 괴로워졌다.
"기분 좋은 일을 하려는 거다."
이스카는 한 손에 다 들어올 것 같은 리프의 새하얀 다리를 벌리며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아플 만큼 단단해진 그의 페니스는 어서 저 미성숙하고 여린 몸을 찢고 들어가고 싶다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일…….'
의식이 몽롱한 리프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심을 풀었다. 밤마다 이스카에게 나쁜 짓을 당한 탓에, 리프는 지금 제게 일어나는 일을 몽정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네가 좋아서 미칠 것 같다."
이스카가 리프의 그곳에 손가락을 넣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으응.”
허리 안쪽에서 달큰한 울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몽정이라 생각해서 긴장이 풀어진 리프는 그만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리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이스카는 리프의 그곳을 부드럽게 풀어주던 행위를 멈췄다.
새액, 색
"네놈......"
리프를 유심히 살핀 이스카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의 검붉은 페니스는 잔뜩 성이 나 있는데 리프가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편안한 얼굴을 하고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부엉이가 높게 울었다.
이스카는 잠든 녀석을 덮칠지, 아니면 한껏 비틀린 욕망을 참아야할지 고민하며 리프를 심난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침대 위에 금발을 흐트러트린 리프의 몸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밤이 깊어질수록 이스카의 고민 또한 깊어져만 갔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리프가 알코올이 단 한방울이라도 섞인 음료를 마실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거란 사실이었다.
머릿속이 백지가 된 리프는 황급히 제 소맷자락을 잡아당겨 이스카의 옷에 묻은 포도주를 훔쳤다. 포대자루처럼 까끌까끌한 리프의 겉옷은 순식간에 포도주로 붉게 물들었다.
"집어치워. 그딴 더러운 옷으로 포도주를 닦아봤자 내 옷만 더 지저분해질 뿐이란 것 모르나?”
이스카는 거친 손길로 리프를 밀어내고서 냅킨으로 직접 셔츠를 닦았다.
"읏!"
몸집이 작은 리프는 훌쩍 뒤로 밀려나 대리석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마, 괜찮으냐?”
햄튼과 러셀이 동시에 리프를 내려다봤다.
리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를 부를까요?”
내무대신이 종에 손을 가져가며 이스카에게 물었다.
"됐어."
이스카는 엉거주춤 서있는 리프에게 다시 포도주를 따르지 않고 뭐 하는 거냐는 눈짓을 보냈다. 포도주 때문에 피를 흘린 것 같은 모습이 된 리프는 종종걸음을 쳐 테이블로 다가갔다.
"저 노예는 어디서 데려온 아이입니까."
내무대신은 황자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는 리프를 흘끔 쳐다봤다. 이스카 황자가 얼마 전부터 거지꼴을 한 노예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 것 없어."
이스카는 흥미를 가지지 말라는 투로 못을 박고서 화제를 바꿨다.
"황비가 후궁에 관한 의제를 올리면 바로 인허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인허하신다고요?"
내무대신이 깜작 놀랐는지 꿩의 배를 가르던 손을 멈췄다.
"보기보다 비정하군, 비스바덴 경. 나도 측은한 마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야. 아무리 우리와 적대관계라고 해도 모정에서 비롯된 애절한 행위를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이스카는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가며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가져갔다.
"측은, 도리……."
포크와 나이프를 든 자세로 얼어붙은 내무대신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배려나 동정심 같은 건 이스카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내 생각에 황태자의 다섯 번째 비 자리엔 스펜서 백작의 여식이 어울릴 것같군."
이스카가 스테이크를 큼직하게 썰며 말을 덧붙였다.
"아!"
내무대신은 이스카의 의중을 그제야 알아챘는지 무릎을 탁, 쳤다.
"스펜서 백작이라, 정말 안성맞춤이군요. 소문에 스펜서 가문의 여식들은 남자아이를 잘 낳는다고 하니 황비도 기뻐할 겁니다."
내무대신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이고 주억거렸다.
스펜서 백작은 황비파이긴 하지만 황태자비의 아비인 갤러거 정과 원수지간과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 다섯 번째 후궁의 존재는 그렇지 않아도 세가 기우는 황비파에 분열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스펜서 백작 딸이 아들을 쑴풍쑴풍 잘 낳는 여자면 우리한텐 안 좋은 거 아니야?"
이스카와 내무대신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햄튼이 러셀에게 귀엣말을 던졌다.
"황태자 자체가 아이를 못 낳는 몸인데 후궁이 아들을 낳는 체질이든 딸을 낳는 체질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러셀은 정치에 까막눈과 다름없는 햄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만 대꾸했다.
"후궁에 관한 의제가 올라왔을 때 라일라 황녀나 제스터 황자가 뒤에서 그녀를 추천하면 모양새가 더 그럴듯하겠지."
"물론입니다."
내무대신이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포도주잔을 비웠다.
'이번엔 실수하지 말아야지.'
포도주병을 품에 안고서 매의 눈으로 식탁을 주시하던 리프는 빈 잔을 채우기 위해 재빨리 내무대신에게 다가갔다.
"멈춰. 지금 뭐하는 짓이지?”
조심조심 포도주를 따르는데 이스카가 리프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잔이 비면 바로바로 채우라고 하셔서……."
이스카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리프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
"멍청한 놈, 내가 언제 다른 사람 시중까지 들라고 했어."
"아......"
리프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눈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에 달고 있는 쇠사슬에서 짤그랑, 짤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이스카의 요구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삼백 년 전과는 황궁의 예법이 많이 바뀌었나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노예로 태어나긴 했어도 리프는 거의 어두컴컴한 지하도서관에서만 지냈다. 그래서 그는 저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시중을 드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모셔야하는 지도 잘 몰랐다.
"흐음, 음……"
그러나 리프의 추측과 달리, 황궁을 몇십 년 동안 드나든 내무대신의 얼굴엔 의아하단 기색이 가득했다.
"이 감귤 소스, 새콤한 것이 아주 풍미가 좋습니다. 러셀 경."
현명한 비스바덴 경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아무 것도 못 본척했다. 이스카 황자의 성격이 워낙 제멋대로인데다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무대신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자 이스카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시녀들이 목욕물을 미리 준비해둬서 그런지 욕실은 온천처럼 뜨거운 김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따라 들어오지 않고 뭐하는 거냐."
이스카는 포도주가 묻은 셔츠를 벗으며 리프에게 으르렁거렸다.
'목욕 시중도 들어야 하는 건가.'
리프는 멍한 얼굴로 이스카가 벗어던진 셔츠를 주워들었다.
'하긴, 이런 일은 여자보단 남자의 시중을 받는 쪽이 더 편할 수도 있겠군.'
홀로 고개를 주억거린 리프는 뜨거운 수증기 너머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이스카의 등을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스카가 벗은 옷가지들이 리프의 발에 걸렸다.
첨벙
이스카가 욕탕에 들어갔는지 물이 넘치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리고, 걸을 때마다 빠끔 발가락이 얼굴을 내미는 리프의 남은 신발에도 목욕물이 닿았다.
'액체 형태로 된 비누인 건가?'
리프는 쟁반 위에 놓인 목욕도구를 살피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욕실에 꽉 찬 수증기 탓인지 쇠사슬이 잘그락, 잘그락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저하, 저기…… 팔 좀 만져도 될까요?”
목욕도구를 문질러 거품을 낸 리프는 욕탕 옆에 무릎을 꿇으며 이스카에게 머뭇머뭇 물었었다.
"설마 너, 목욕 시중도 처음 드는 건가?"
이스카는 욕탕 밖으로 팔을 꺼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네……"
리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방울이 맺힌 이스카의 팔뚝에 손을 가져갔다. 이스카의 피부에 해면을 문지르는데 왠지 온기가 느껴지는 대리석 조각상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가시군. 몸종에게 주인 모시는 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줘야 하다니."
리프에게 한쪽 팔을 맡긴 이스카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투로 물에 젖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수증기 때문에 덥군. 숨 쉬기도 힘들고.'
리프는 팔등으로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홈쳤다. 뜨거운 수증기도 수증기지만 이스카의 몸을 해면으로 닦는 일 또한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이스카의 팔뚝이 두 손으로 감싸도 잡히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두꺼운 탓이었다.
'가슴에 비누칠을 해야 하는데 만진다고 물어봐야하나?'
리프는 이스카의 어깨를 거쳐 쇄골 쪽으로 손을 뻗으며 흘끔 이스카의 눈치를 살폈다.
"왜 이리 쭈뼛거려. 그렇게 뜸을 들이다간 목욕물이 다 식어버릴 거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지루한지 이스카가 성질을 부렸다.
'신분 높은 사람이라 그런지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개가 아니군. 호아킨이나 바토의 등목을 도와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리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욕탕에 빠지지 않고 이스카의 가슴에 비누칠을 하려면 자세를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욕탕의 구조는 일반적인 욕조의 형태가 아니라 온천처럼 바닥 아래로 움푹 들어간 형태였다.
'이제 반대쪽 팔에 비누칠을 할 차례군.'
수증기 때문에 얼굴이 발갛게 익은 리프는 이스카 몰래 후드를 벗었다가 다시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바닥이 물기로 미끄러운 탓에 이스카는 반대쪽으로 건너가다가 넘어졌다.
"무슨 일이야!"
리프의 비명소리를 들은 이스카가 단숨에 욕탕 밖으로 뛰쳐나왔다.
"으으, 별거 아니에요."
욕실 바닥 위에 쪼그려 앉은 리프는 욱신거리는 팔꿈치를 문질렀다.
"미끄러져 넘어진 건가? 멍청한데다가 부주의하기까지 하군."
물에 흠뻑 젖은 이스카는 헛웃음을 흘리며 리프에게 다가왔다. 물을 뚝뚝 흘리는 그의 시선은 리프의 신발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얼굴 쪽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옷 벗어."
이스카가 리프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예?"
제가 보는 앞에서 후드를 벗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이스카였다. 팔꿈치를 감싼 리프는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며 발바닥에 힘을 줬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긴장하지 않으면 또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이 목욕 시중을 드니까 목욕을 하는 느낌이 안 들어."
이스카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지저분해 보이는 건가?'
리프는 고개를 숙여 제 옷을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틈이 날 때마다 빨긴 했지만 워낙 남은 옷이라 청결한 느낌을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긴 했다.
리프는 이스카가 지켜보는 앞에서 겉옷을 벗었다. 아니, 벗으려고 했지만 쇠사슬 때문에 막혀버렸다.
"저하, 그런데 옷을 벗으려면 이 쇠사슬을ㅡ"
풀어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스카가 리프의 옷을 찢었다.
"이제 됐나?"
이스카가 리프의 누더기 같은 겉옷을 욕실 구석으로 홱 집어던지며 뒤를 돌았다.
'하나밖에 없는 겉옷인데.'
리프는 억울하고 허탈한 얼굴로 이스카의 등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를 돈 상태인데도 이스카의 페니스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으음, 비정상적으로 큰 성기군......'
리프는 미간을 모으고서 이스카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곧 원래의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이음매가 전부 뜯어진 신발을 벗었다.
리프는 바스커빌이었던 시절부터 성적인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와."
맨발이 된 리프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욕탕으로 다가가는데 이스카가 그렇게 말했다.
"뭘 그리 놀라. 상체만 씻는 것도 목욕이라고 부르나?”
이스카가 꾸물대지 말고 어서 들어오라는 듯 오만한 얼굴로 턱짓을 보냈다.
'어떡하지?'
리프는 곤혹스러워하는 물기를 머금은 해면을 주물럭거렸다.
"빨리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이스카가 눈썹을 찌푸리며 리프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어!"
리프는 손에 해면을 쥔 채로 욕탕에 빠겼다. 풍덩, 하는 소리가 시끄러울 만큼 욕실에 크게 울려 퍼졌다.
"어푸, 켈룩, 켁."
리프는 기침을 하며 얼굴의 물기를 손바닥으로 훔쳤다.
"쭈뼛거리지 말고 빨리 끝내도록 해."
이스카는 리프의 손을 제 복부 쪽으로 가져갔다.
'마음을 비워. 저자는 이런 일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신분이 아니니까.'
해면을 쥔 리프의 오른손은 이스카에 의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리프는 거북한 감정을 쫓아내기 위해 제가 노예란 사실을 상기하려고 애썼다.
'이상하다. 자꾸 커지는 느낌인데…….'
이스카의 사타구니를 해면으로 문지르던 리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느낌이 그저 기분 탓인 건지, 아니면 정말 이스카의 페니스가 아까보다 더
커지고 딱딱해진 게 맞는 건지 도통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도 못난이인데 얼굴까지 빨개지니까 한숨이 나올 정도로 덜떨어져 보이는군."
이스카는 제 가슴에 안기다시피한 리프의 금발을 쓸어 넘기며 코웃음을 쳤다. 리프의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넘긴 그의 손은 리프의 허리를 더듬었다.
"다음부터 목욕을 할 땐 이건 풀어야겠어."
이스카는 제 품안에서 꼼짝도 못하는 이스카의 입술을 바라보며 쇠사슬을 만지작거렸다. 목욕물이 워낙 뜨거운 탓에 황자는 제 몸에 일어난 신체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목욕을 하러 들어간 건 아니지만 뜨거운 물에 한참동안 몸을 담갔다 나온 탓에 리프의 피부가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리프는 그제야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여든 넘게 살았던 전생의 기억과 삶의 정험, 그리고 그 때 쌓았던 지식은 지금 이 순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건지 찬찬히 설명해 보렴."
"저하 때문에……."
이스카에 대해 생각하니까 가슴이 따끔거리고 멀미라도 하듯 배가 울렁거렸다. 어쩔 땐 제 뺨이나 머리를 만지는 이스카의 손길을 떠올리다가 사타구니 부근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잠깐만, 혹시 또 저하가 너한테 몹쓸 짓을 한 거니?”
리프가 손을 가늘게 떨며 이스카를 언급하자 마리엔느가 흥분했다. 하지만 눈치 빠르고 노련한 테사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계속 말해보렴. 저하가?”
시녀장은 조카의 고민 상담이라도 들어주듯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리프에게 뒷말을 재촉했다.
"오늘 아침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 못 했어요……."
리프는 머뭇머뭇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테사는 제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예감하고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마리엔느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두 손으로 급히 입을 가렸다.
"저하께 하고 싶었다는 말이 뭐였는지 말해보겠니?”
"모르겠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리프는 혼란스러워 하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차분히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이 뭔지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엉터리 마법수식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리프, 혼자서 억지로 생각을 쥐어짜려고 할 필요는 없단다."
리프를 빤히 관찰하던 테사가 갑자기 싱긋 웃으며 차를 마셨다.
"저하와 함께 있다 보면 네가 뭘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야."
테사의 조언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리프는 그녀의 조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게, 저하는 요즘 많이 바쁘신 걸요."
리프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제 뺨을 문질렀다. 리프의 귓가엔 오늘은 아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스카의 차가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단다. 네가 저하를 만나러 가면 되니까."
테사가 화사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리프는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라는 표정으로 시녀장을 올려다봤다.
국무를 보느라 바쁜 이스카가 저를 반겨줄 리 없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 노예인 리프는 황자의 궁 주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침 저하께 제출해야할 아주 중요한 서류가 있는데 잘 됐구나. 리프 네가 저하께 가져다드리렴."
테사는 쇠뿔도 단김에 빼야한다는 기세로 리프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 잠깐만요. 시녀장님,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면서 왜 이리 잔걱정이 많은 거니. 내 장담컨대 아무 문제없을 거란다. 게다가 너 혼자 덜렁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나도 같이 따라갈 거야. 마리엔느, 너는 저하께 가져다드릴 서류 좀 챙겨 놓으렴. 난 리프와 외출 준비를 할 테니까."
테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를 준비해 놓으라고 마리엔느에게 지시했다. 마리엔느는 그녀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서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프는 제가 왜 외출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옷방으로 끌려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테사는 축제 날 리프에게 입히려고 제가 준비해 놨던 옷을 벌써 꺼내게 됐다며 아쉬워했지만 그건 순전히 말 뿐으로, 그녀는 인형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