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Feroce
페로체 : 거칠게
모처럼 추위가 풀린 날, 제주도의 풍경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흰 눈으로 덮여 있는 산과 푸르른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은 수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관광지였다. 그러니 크고 작은 기업들이 경쟁하듯 호텔을 지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상원 호텔은 단연 훌륭했다. 해변에 위치한 상원 호텔은 흰 건물과 야자수의 이국적인 조합을 자랑했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유명 영화의 촬영지로 선정된 건 물론, 여러 회담 역시 이곳에서 이루어진 역사가 담겨 있었다.
자부심을 느낄 법도 하건만, 시후의 얼굴은 무감각했다. 그는 그저 무표정하게 제 앞에서 이루어지는 직원들의 동선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본사의 대표이사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직원들은 기절하고픈 마음을 누르며 능숙히 움직였다.
‘대단하다, 대단해.’
뒤로 죽 서 있던 호텔 지배인들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여기까지 직접 행차를 해? 그냥 다른 임원 시키면 될 것을.’
‘호텔 경영하겠다고 5개 국어까지 익혔다더니. 이젠 프랑스어로 질문까지 던지네. 긴장 놓았다간 낭패 보겠어.’
직원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안 시후는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제 옆에 바로 붙어 있던 중년 여성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번에 시행하게 된 프로그램. 앞으로도 계속 신경 써 주세요.”
“물론입니다, 이사님. 저희 상원이 내세우는 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인걸요. 여기에 전력으로 힘을 쏟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설날 연중 문화 프로그램이 큰 호평을 받았으니, 곧 있을 3월에도 행사를 상설해 볼까 합니다.”
“그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군요. 브리핑 때 들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막힘없이 진행되는 대화에 시후는 제 앞에 있는 제주도 상원 호텔 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로 빙그레 웃었다. 시후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는 상대에게서는 관록과 유능함이 배어 나왔다.
그때까지 사무적인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시후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대학생이던 시절 그녀에게서 경영 수업을 받았던 나날이 생각나서였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룸 청소까지 직접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
“……케이터링 서비스(행사·연회 등을 대상으로 음식을 공급하는 서비스)도 직접 보고 싶군요.”
“바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가 눈짓하자 직원들이 나와 설명하기 시작했다. 올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시범 보일 수 있어 영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후는 걸음을 움직였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표표히 걷는 젊은 대표의 움직임에, 멀찍이 서 있던 사람들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묵직한 분위기와 말씨, 자세 등에 새삼 놀란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받는 동안 시후는 평온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의외로 그의 상태는 결단코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오래도록 그의 곁에 있었던 전속 비서조차 모르는 비밀이었다.
시후는 평정심을 가장한 채 속으로 혀를 찼다. 몸 이곳저곳이 얻어맞은 듯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길게 뻗어 움직이는 다리는 사실 심한 근육통을 겪고 있으며, 곧게 편 허리 역시 지끈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긴 속눈썹을 밑으로 내리깔며 제 왼쪽 손목을 보았다. 손목을 감싸고 있는 시계가 빛에 반사되어 차갑게 반짝였다.
스트랩 아래 피부가 부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시후 본인밖에 없었다. 가만히 시계를 응시하던 눈이 가늘어졌다.
감정을 읽기 힘든 묘한 표정이 섬광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을 때였다. 내려가는 계단을 디디는 순간,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신음을 내었다.
“윽.”
소리를 내자마자 머릿속에 욕이 떠올랐다. 시발. 몸이 자꾸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꼴이 불쾌했다. 그가 입꼬리를 비트는 동안 옆에 있던 비서가 눈을 크게 떴다.
타인에게 제 불편한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시후는 금방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러나 평온한 낯빛과 달리 시계를 찬 손목만큼은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다.
‘말이 되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황당함이 서려 있었다.
‘알파라는 게, 아직도 끙끙대고 있다고?’
‘알파라는 게’는 그 자신, 백시후를 뜻했다.
시후는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쑤시는 하반신에 짜증이 일어났다. 특히 퉁퉁 부어 있는 항문이 아직도 쓰라려 참기 힘들었다. 시후는 이를 악물며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단정하게 깎은 손톱이 피부를 긁었다.
예민해져 있는 몸은 지난 일을 계속 떠올리게 했다. 일에만 몰두해 보려고 했으나, 좀처럼 잘 되질 않았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과거에 시후는 한숨을 삼켰다. 날이 선 눈꼬리 아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 * *
유예준이 러트를 하게 된 그날. 시후는 억제제를 먹이는 대신 섹스를 이어 갔다.
이성적이지 못했던 건 인정했다. 물론 거기에 죄책감을 느끼기엔 백시후는 도덕적인 사람이 못 됐다. 완전히 달아오른 알파답게 성적 욕구만 채우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어차피 러트의 해결 방법은 둘 중 하나이지 않냐고. 억제제를 먹거나, 섹스를 하거나.
나는 섹스를 택한 것뿐이다. 내 성욕도 채울 겸, 유예준도 치료할 겸.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후련함을 느끼며 시후는 팔로 예준의 목덜미를 끌어안아 당겼다.
“형, 어서, 윽, 비켜요.”
“좆질이나 멈추고 말하지 그래.”
부드럽게 읊조리자 예준의 얼굴이 벌겋게 올랐다. 그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제 입술을 콱 깨물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 바람에 아랫입술이 쉽게 찢어졌다. 핏방울이 입술을 타고 아래로 뚝 떨어졌다.
시후는 퍽, 퍼억, 하고 터지는 둔탁한 마찰음을 들으며 그에게 키스했다. 길게 뻗은 혀가 피범벅이 된 입술을 핥았다. 고통 때문인지 쾌락 때문인지, 예준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후우.”
그것도 잠시, 예준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더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쿵쿵, 내리찧는 힘에 성기가 안으로 깊숙하게 밀려들었다.
굵직한 혈관이 속살을 비빌 때마다 시후의 엉덩이가 경련하듯 파르르, 떨었다. 엉덩이 골 사이에 고여 있던 액체가 어느새 흰 거품이 되어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시후는 우성 알파의 타고난 체력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러트가 온 알파를 쉽게 받아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예준의 좆이 제 극점을 찌를 때는 미소 짓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건, 그 섹스가 길어도 너무 길다는 사실을 느낄 때였다.
“윽, 미친…….”
시후의 얼굴에 미소가 가시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 위에는 이미 정액으로 범벅이 된 콘돔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좆질을 한 유예준의 흔적이었다.
그는 슬슬 체력이 바닥나고 있음을 자각하며 밑을 내려다보았다. 유예준은 벌겋게 상기된 눈가를 보인 채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긴 검지와 중지가 들어가 시후의 속을 벌렸다. 부드럽게 풀려 있던 구멍이 젖은 소리를 내며 붉은 속살을 살짝 드러냈다.
주르륵.
흰 정액이 손가락을 타고 느릿하게 흘렀다. 세 번째로 몸을 겹칠 때, 시후가 콘돔 끼는 걸 막았기 때문이었다. 흥분한 나머지 콘돔을 제대로 끼지 못하는 상대의 꼴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게 이유였다.
그는 예준의 귓불을 깨문 뒤 벌겋게 오른 귓구멍에 대고 말했었다.
‘그냥 해.’
날카로워진 목소리는 빠르게 다음 덧붙임을 이어 갔다.
‘어차피 임신도 안 되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유예준은 시후의 골반을 붙잡고는 바로 처박았다. 그리고 현재, 예준은 여전히 생좆으로 안을 들쑤셔 대고 있었다.
“……유예, 준.”
“…….”
“또 후우, 하게?”
‘설마?’라는 덧붙임을 뱉기도 전에 두 손가락이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부풀어 있던 전립선을 후벼 파는 힘이 능숙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자 시후는 인상을 팍 썼다. 오늘 처음 해 본 주제에, 습득력이 지나치게 빠르다.
“하, 너, 윽……!”
찌걱, 찌걱.
예준이 손가락을 까딱거릴 때마다 구멍이 벌름대며 수축을 반복했다. 그는 제 가랑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시후는 이 상황이 버거워진 나머지 앓는 신음을 뱉고 말았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긴장한 듯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준은 힘겨워하기 시작하는 시후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슴을 들썩거리는 상대를 지켜보다가 허리를 잡고 뒤집어 버렸다. 힘이 죽 빠져 있었던 시후는 삽시간에 엎어진 채로 엉덩이만 내밀게 되었다.
생각도 못 한 후배위 자세에 시후의 눈꼬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설마……? 그의 추측은 사실로 맞아떨어졌다. 발정 난 수캐가 덮치듯, 예준이 몸을 짓눌러 대며 제 것을 집어넣은 것이다.
“헉!”
깔린 흰 엉덩이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친 와중에도 훅 올라오는 쾌감에 괴로움이 더해졌다. 시후는 눈을 부릅뜬 채로 시트를 노려보았다.
이게 대체 뭐지?
아무리 러트가 왔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해 댄다고?
그것도 우성 알파가 버거워할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해졌을 때 예준이 하반신을 크게 움직였다. 뒤로 빠져나간 성기가 몸 깊숙하게 들어차자 ‘퍼억!’ 하고 날카로운 마찰음이 터졌다.
격렬한 힘에 시후는 그만 앞으로 밀려 나가고 말았다. 침대 등받이를 움켜쥐며 아랫구멍에 힘을 준 시후는 곧 “윽” 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처음 박힌 후로부터 몇 시간이고 쑤셔진 안쪽은 이제 퉁퉁 부어 있었다. 쓰라린 내벽에 계속 귀두가 들어와 쑤셔 대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시후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제야 억제제를 먹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형.”
예준이 허리를 콱 쥐며 흐트러진 숨소리를 내었다.
“하아, 하, 형.”
그놈의 형, 형. 짜증을 내려던 찰나, 굵직한 것이 속살을 밀어젖히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창백해진 시후의 얼굴에 충격받은 기색이 번져 갔다.
“천천히 좀, 해. 씹, 읏.”
숨이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수치심에 이맛살을 구기는 동안, 예준은 그런 시후의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구멍 주름이 요동치며 난잡한 소리를 내었다. 길고 두꺼운 성기는 한 번에 빠져나갔다가 다시 단번에 들어와 안에 박혔다.
“헉!”
천천히 하라고 했는데, 이 새끼가! “야!” 하고 소리 질렀으나 예준은 같은 말만 중얼댈 뿐이었다.
“형, 시후 형…….”
퍽, 퍼억, 퍽!
이러다 몸 안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좆이 빠르게 파고들었다. 눈앞이 암전된 듯 거멓게 변하는 순간 시후는 그만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자마자 예준의 손이 양팔을 잡아채 완전히 무너지는 걸 막아섰다. 시후는 인상을 쓰며 상체를 뒤틀었지만, 물풀처럼 휘감은 손가락의 악력에 이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꼼짝없이 당할 줄 몰랐던 시후는 “뭐야?” 하고 당황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예준은 그를 붙잡은 채로 허릿짓을 했다. 단단히 잡혀 버린 시후는 이제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허리를 휘는 수밖에 없었다.
“아, 흐윽, 읏, 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흐릿한 시야 안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몽롱한 표정으로 창문을 보던 시후는 제 상태를 돌아보았다.
흔들리는 몸이 잇자국과 키스 마크로 엉망진창이었다. 울긋불긋한 살결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가 안개처럼 뿌옇게 변해 있었다. 눈 부근에는 청회색 그림자마저 드리워져 정기가 다 빨렸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트너는 그런 시후를 깔고 뭉개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라, 고…….”
어느덧 애원하는 어조로 바뀌어 있었다. 굴욕적이나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가 없었다. 시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랍 쪽으로 팔을 뻗었다.
억제제를 꺼내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예준의 페로몬이 지친 몸을 휘어잡아 짓누른 탓이었다. 그를 쉽게 제압한 향은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폐부를 깊게 찔렀다. 호흡이 힘들어진 시후는 잔기침을 하며 허리를 들썩였다.
“헉!”
내벽을 벌리며 들어온 것이 극점을 꿰뚫었다. 거대한 압박감에 시후는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마를 죄 덮었다.
“!”
아무 말도 못 하는 이의 구멍을 귀두와 기둥으로 꽉꽉 채운 채 예준은 허릿짓을 이어 갔다. 달아오른 내벽이 오고 가는 성기에 달라붙어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힘들어 죽겠는 와중에도 올라오는 쾌락에 시후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파르르 떠는 그의 양다리를 예준은 제 어깨에 걸친 채로 힘 있게 내리찧었다.
시후의 몸이 반쯤 접히자 더 깊게 들어간 성기가 극점을 뭉근하게 눌러 대었다. 머리와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시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형……. 윽, 좋아, 요.”
“이, 씹…….”
결합 부위에 달라붙어 있던 흰 거품이 줄줄 흘러내렸다. 크림 같은 모양새가 엉덩이를 타고 흐르자 시후는 목울대를 힘겹게 움직였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의 신음에 예준 역시 “읏” 하고 짧게 소리 내었다. 열이 올라 있던 얼굴에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좋아해요.”
마지막 고백에 시후는 눈을 크게 떴다. 예준은 고개를 수그리며 시선을 피하더니 그런 채로 안쪽을 마구 쳐 대기 시작했다. 방금 전 말을 잊어 달라는 듯, 쉴 틈도 없이 거센 동작이었다.
성기가 내벽을 누를 때마다 고여 있던 액이 터졌다. 아랫구멍이 제멋대로 오물대며 좆기둥을 물고 늘어졌다. 창에 관통된 것 같은 충격에 시후는 “컥!” 하고 몸을 크게 들썩거렸다.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날렵한 턱을 더럽혔다.
예준은 바르르 떠는 그의 턱 아래를 콱 깨물었다. 동시에 뒤로 물러났던 좆이 다시 움직이며 끝까지 파고들었다.
극점을 힘껏 짓누름과 동시에 불룩하게 솟은 혈관들이 전립선 부근을 긁어 댈 때였다. 시후의 눈동자에 당황해하는 기색이 퍼져 나갔다.
“비켜!”
경악한 시후는 밀치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도 유예준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더 세게 끌어안기만 했다. 숨쉬기가 힘들어진 시후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
긴장에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져 경직되었다. 그 안에 틀어박힌 성기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러트인 알파만이 할 수 있는 일, 노팅이었다.
가뜩이나 두꺼운 좆이 크기를 더하며 안을 치받았다. 뱃속이 터질 것 같은 위협을 느낀 시후는 시트를 부여잡았다.
부푼 성기가 가장 깊은 데까지 밀려 들어왔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충격이 몸 안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좆은 계속해서 제 몸을 키워 가고 있었다.
“흑, 흐윽……! 그만, 해……!”
예준은 거친 숨을 뱉으며 시후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동시에 극점을 짓누르던 성기가 꿈틀대더니 토정을 하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내벽 이곳저곳을 범하는 정액의 양은 일반인보다도 많았다.
시후는 저를 꽉 끌어안고 있는 예준을 피해 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발정 난 개의 성기를 닮은 좆이 구멍 안을 틀어막은 탓이었다.
“아, 읏?!”
빈틈없이 박힌 구멍이 꿈틀거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도 알파는 계속해서 정액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아무 자극도 받지 않은 시후의 성기 역시 사정했다. 작은 요도구에서 나온 액체가 가슴과 아랫배를 더럽혔다.
강한 오르가슴에 상체가 크게 꿈틀거렸다. 그런 시후의 육체를 짓누르며 예준은 밑으로 손을 내렸다. 손가락들이 피부를 타고 미끄러지는 동작은 피아노 치는 행위를 닮아 있었다.
우아하게 내려가던 손가락은 곧 아랫배에 멈추었다. 볼록하게 올라간 배를 누르자 즙 같은 정액이 새어 나와 예준의 음모와 음낭을 흠뻑 적셨다. 시후는 무언가 말할 듯 입을 벌렸으나,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가쁜 호흡만 내뱉었다.
몸 안으로 들어간 성기가 한 번 더 팽창했다. 더 부풀어 오르는 존재감에 시후의 눈동자가 뿌옇게 변해 갔다. 백야처럼 새하얗던 시야가 삽시간에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이런, 미친…….
마지막 말을 뱉었는지 삼켰는지는, 시후 자신도 몰랐다. 사납게 돋아난 혈관이 속살을 짓뭉개는 순간, 정신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흣……!”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이 시트 위로 무너져 내렸다. 축 늘어지는 그를 안으며 예준은 귓바퀴를 물었다. 여린 살갗을 잘근잘근 씹자마자 발딱 서 있던 시후의 성기가 두 번째 정액을 쏘았다.
충격적인 사정을 마지막으로, 시후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이후 시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건 고통이었다. 눈꺼풀을 깜빡이자마자 올라오는 통증에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 온몸이 심하게 아파 왔다.
여기까지 생각한 시후의 입매가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얻어맞은 것 같다는 표현이 사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아서였다.
타인의 좆이 계속해서 제 뱃속을 때렸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뒤이어 그 성기가 노팅을 해 버렸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크기에 버둥대다가 사정과 동시에 기절해 버렸던 자신 역시 기억났다.
“……하.”
얼굴 쪽으로 열이 확 쏠렸다.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짚던 시후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긴 다리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분해 주먹으로 허벅지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다 가까이 있던 전신 거울을 발견했다. 거울 안에 비친 제 꼴을 본 시후는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꼴 하고는.”
목소리가 적 갈라졌다. 시후는 이마를 감싸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 제 목을 부여잡았다. 그런 채로 입을 일자형으로 굳힌 채 거울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엉망진창이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몰골이었다. 보기 좋게 넘겼던 머리 모양새는 헤집어져 제멋대로 뻗쳐 있었다. 턱 아래로 이어지는 목선은 온통 키스 마크투성이였으며 그 아래 위치한 쇄골이나 어깨, 복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근에 시선을 둔 시후는 인상을 팍 썼다. 가뜩이나 붉어져 있던 얼굴색이 더욱 짙어졌다. 처음 당하는 노팅에 죽기 일보 직전, 제 아랫배를 꾹꾹 누르던 예준의 손가락이 생각나서였다.
덕분에 구멍을 더 조이며 부풀어 오른 성기를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 전 일을 떠올린 아랫배가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손의 압박감이 배에 남아 있었다.
굵은 눈썹을 구긴 채 시후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뻗쳐 있던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곧은 이마를 완전히 덮었다.
‘……걔가 알파라고?’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자 그제야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확실히, 유예준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줄 때가 있었다.
별안간 시후를 흠칫하게 만들었던 향, 요즘 들어 훌쩍 커 버린 키와 덩치, 그리고 며칠 전에 앓았던 열감기.
과거의 자신 역시 우성 알파가 되기 전 비슷한 상태를 겪었던 적이 있었다. 쇳덩이처럼 무거워지는 몸에 불쾌감을 느끼며 한참 앓았던 것이다. 그게 몸살이 아니라 사실 우성 알파로 발현하기 위한 단계였음을 알았던 건, 주기적으로 했던 신체검사 덕분이었다.
“아.”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드물기는 하나, 후천적으로 알파나 오메가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어쩌면 유예준은…….
그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서 희미하게나마 인기척이 나고 있었다. 시후는 가까이 두었던 가운을 잡아 대충 걸쳤다. 그리고 끈으로 묶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나갔다.
“윽.”
최대한 덤덤한 얼굴을 해 보려 했으나, 3초도 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문을 열자마자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페로몬 향 때문이었다. 몇 발자국 걷던 그는 곧 고개를 깊게 수그렸다.
무슨 페로몬 향이 이렇게 짙지? 어떤 알파의 향에도 이토록 동요한 적이 없었다. 자신과 비등하게 겨룰 정도의 페로몬을 가진 사람은 친동생이자 똑같은 우성 알파, 백도영이 다였다.
그랬던 자신이 거실 전체를 에워싸는 향에 버거워하고 있었다. 유쾌하다고는 볼 수 없는 기분에 몸이 서늘해졌다.
이 공격적인 향이 목젖을 눌러 댔던 충격이 떠올랐다. 동시에 딱딱하게 달아오른 성기가 전립선을 짓이기던 짜릿함도, 부푼 좆의 크기에 뱃속이 터질 것 같던 위태로운 감각도, 모조리 기억났다.
“시후, 형.”
무언가를 꾹꾹 억누른 것 같은 음색이 시후의 정신을 일깨웠다. 예준은 식탁 옆에 선 채로 제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울기 직전인 얼굴이다. 그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나를 쓰러뜨려 범하고 싶다는 페로몬을 풍기면서도, 얼굴만은 저토록 순하디순하니 참 웃긴 일이다.
“누가 보면 내가 널 덮친 줄 알겠다.”
고저 없는 음색으로 침묵을 깨자 예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느릿하게 올렸다. 황당하다는 뜻이 없지 않아 담긴 미소였다.
“형 뒷구멍 따먹은 건 너잖아, 예준아.”
댕그랑!
바닥을 요란하게 울리는 건 티스푼이었다. 시후는 식탁 위를 훑었다. 회색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알약 봉지, 연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컵.
저런 건 또 어디서 난 거지. 의식을 잃은 사이 약국이라도 다녀온 것인가. 물끄러미 응시하는데 조심스러운 음성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카드 키가 있길래요.”
“아.”
진열대에 올려 두었던 카드 키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언제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카드 키를 용케도 본 모양이었다. 잘도 외출했네, 하고 생각하는 동안 예준이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 모셔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별안간 뜸을 들이는 모양새에 시후는 다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계속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예준이 바닥을 향해 눈꺼풀을 내렸다. 긴 속눈썹과 눈물점이 어우러져 처연한 분위기를 풍겼다.
“형이 안 된다고 해서.”
‘내가?’라고 물어보려 했던 시후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잠인지, 기절인지 모를 상태에 그런 말을 읊조렸던 게 언뜻 기억나서였다. 관자놀이가 지끈해지며 안개처럼 뿌연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형!’
귓전을 쟁쟁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울먹거리고 있었다. 물기 촉촉한 부름에 잠깐 정신이 들었던 시후는 예준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댄 채 시후만을 뚫어질 듯 응시하고 있었다. 색소 옅은 눈동자에 담긴 건 두려움이었다.
그런 예준을 향해 시후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응급차 부르는 거면 관두라고. 병원은 절대 안 된다고.
‘당연히 안 되지.’
뒤가 뚫려 기절이라. 그 꼴로 병원에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러다 어느 질 나쁜 기자 놈한테 걸릴 확률도 농후했다. 상원 그룹 차남께서 복상사당할 뻔했다는 지라시가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인상을 쓰던 시후는 갑자기 하반신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가 한쪽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시후는 허벅지 사이를 붙였다. 살덩이가 달라붙으며 ‘찰싹’ 하고 젖은 소리가 미세하게 터졌다.
그때까지 연신 시후의 안색을 살피던 예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급히 두 손으로 컵을 건네는 낯빛이 낮달처럼 창백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됐고.”
시후가 손을 저어 거절했다. 덤덤한 말투였음에도 예준은 크게 혼난 아이처럼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사 부를 테니 그 차 타고 병원 가.”
“지금 당장”이라고 말을 덧붙이다가 잔기침이 나오고 말았다. 소리 내어 쿨럭거리려던 시후는 입술을 물며 참았다. 제 뺨에 닿는 시선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러다 울겠다.’
귀엽고 안쓰럽다. 그러나 당장 다가가 안아 줄 수는 없었다. 공간 전체를 뒤덮은 유예준의 알파 페로몬 때문이었다.
넘실거리는 향은 사나우며 불안정한 느낌이 묻어났다. 서로 접촉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또 녀석에게 깔려 당하기에는, 체력이 바닥난 지 오래였다.
“내가 보기엔 너, 후천성 알파야.”
“제가……요?”
“그래, 어쩌면 우성 알파일 수도 있겠고.”
읊조리는 시후의 입매가 살짝 비틀렸다.
“유예준.”
“……네.”
“나갈 준비해.”
“형은 어떻게 하려고요?”
“나 왜.”
“상태, 안 좋으시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예준의 눈 부근이 발갛게 올랐다. 잘 익은 사과를 닮은 색깔이었다.
“죄송해요.”
“…….”
“죄송해요, 형.”
시후는 두 가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달래야겠다는 연민, 진짜 울려 보고픈 즐거움. 예쁘게 달아오른 얼굴이 눈물범벅으로 되면 꽤 보기 좋을 것 같았다.
한참이고 침묵을 지키던 그는 어깨에 힘을 빼었다.
“후천성은 한동안 불안정한 거 알지? 언제 또 러트 올지 몰라.”
다음 순간,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뜸을 들이고 말았다.
“……안정될 때까지 얼굴 보지 않는 걸로 하지.”
말을 마치자마자 느낀 건 아쉬움이었다. 시후는 제 감정이 낯설어 미간을 찡그렸다. 어째선지 입 안이 썼다. 별 기분을 다 느낀다고 생각하는 동안 예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
외마디 소리를 내는 예준의 표정이 허물어져 있었다. 꼭 버림이라도 받은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시후는 나도 아쉽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음으로써 수줍어질 분위기는 사양이었다. 대신 가운을 잡아 옆으로 젖혔다. 드러난 가슴과 옆구리, 배에는 잇자국이 가득했다. 어떤 곳은 유난히 세게 물었는지 피멍마저 들었다.
격렬한 정사의 흔적들에 예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인상을 쓰는 그의 얼굴에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죄책감 어린 모습을 마주하며 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적을 깬 건 유예준이었다. 그는 먼저 시후에게서 뒤로 걸음질 쳤다.
“그렇게 할게요.”
운전기사가 찾아오고, 집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예준은 시후와의 거리감을 유지했다. 혹시라도 지난밤과 같은 사고를 벌이지 않겠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혼자 남은 시후는 한 손을 올려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더 다정하게 말해 줄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뒤늦게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이쪽이 기절할 정도로 박혔는데 뭘 다정하게 대해 주냐는 억울함이 들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상태 속에서 시후는 식탁 위에 있던 잔을 들었다. 그새 잔 안에 있던 물이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한 모금 마시며 아직도 널브러진 약봉지들을 살폈다. 기겁하여 바깥으로 뛰쳐나갔을 예준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주르륵.
아까부터 허벅지를 괴롭히던 액체가 기어코 다리를 타고 떨어졌다. 시후는 물을 입 안에 머금은 채로 고개를 수그렸다. 까만 눈동자에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번져 갔다.
‘별일을 다 당하는군.’
그의 시야 안으로 들어온 건 흰 정액 방울이었다. 바닥 위에 떨어진 정액은 분명 그의 뱃속 안에 있었을 것이었다. 얼마나 많이 싸질러 놨으면 아직도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정말 예준이 우성 알파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좋아해요.’
격렬했던 정사를 떠올리자 언젠가 예준이 했던 고백이 덩달아 생각났다. 낯간지럽기 짝이 없는 속삭임을 회상한 시후는 눈썹 사이에 힘을 주었다. 잊어 보려고 했으나 기억은 더 생생하게 되풀이될 뿐이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사랑과 성욕도 구분 못 하나.”
건조하게 혼잣말을 뱉으며 시후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따뜻하다고는 볼 수 없는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풋풋하고 어설프던, 거친 호흡이 끼어들어 있던 목소리가 계속해서 시후의 귀를 괴롭혔다.
‘좋아해요.’
시후는 식탁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아무 말이 없는 그의 긴 목덜미가 옅게 상기되어 있었다. 시후 자신은 눈치채지 못한 반응이었다.
* * *
“좋아한다고.”
중얼거리는 시후의 앞에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었다. 창 너머로 제주의 앞바다가 아름다움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푸른 바다색을 응시하며 시후는 계속 예준을 떠올렸다.
지난 사건만 아녔으면 여기로 예준을 데려왔을 것이다. 마침 방학이겠다, 함께 제주도를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여러모로 아쉽게 되었다. 같이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어서, 첫 삽입 섹스가 그렇게 끝나서. ……유예준을 못 봐서.
“…….”
마지막 생각에 시후는 두 눈을 감았다. 잘생긴 얼굴에 혼란스러워하는 빛이 섬광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래서 몸정이 무섭다는 건가. 유예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흥분과 함께 애틋한 느낌이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시후는 그런 자신이 우습다고 여김에도 안쓰러운 마음을 접기가 힘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예감만으로 제집 앞으로 찾아온 유예준을 알아서였다. 어두컴컴한 겨울, 거센 눈발이 내리는 거리 위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그 큰 몸이 아직도 생생했다.
‘멍청이.’
가뜩이나 날카로운 눈꼬리가 한층 치켜 올라갔다.
‘귀찮은 놈.’
일부러 못되게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간질간질한 기분은 여전했다.
결국 시후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애가 뭐 하고 지낼지 신경이 쓰인다.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고,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하…….”
그는 나지막하게 숨 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보기 좋게 세팅했던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지고 말았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기다란 손가락들은 연신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잠시 후, 시후의 표정이 묘하게 허물어져 있었다. 제 뺨에 내려앉은 붉은 기운을 모른 채 밑으로 손을 내렸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룸,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시후는 그렇게 수음을 시작했다.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헤집으며 성기를 움켜잡았다. 몇 번 훑는 것만으로 기둥이 빳빳하게 세워졌다. 단단히 기립한 것을 검지로 쓰다듬자 살짝 갈라진 귀두에서 투명한 액이 흘렀다.
“후.”
입술 사이로 나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유독 성감이 높아져 있었다. 귀두를 만지자마자 몸 안에 정전기가 일듯 짜릿해 왔다. 이러다 1분도 되지 않아 싸지르는 건 아닌가, 하는 직감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쾌감에 하반신이 저린 와중에도 이 상황이 우스웠다. 대낮, 호텔 룸에서 혼자 자위라. 그것도 유예준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발정 나선.
긴 속눈썹에 반쯤 가려져 있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별안간 간지러워진 건 다름 아닌 회음부였다. 드로어즈에 가려져 있던 부위가 깃털이라도 내려앉은 듯 민감해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시후의 입술이 꿈틀, 움직였다.
“…….”
성기를 잡고 흔들던 손이 멈추었다. 그러자 몸은 진정되기는커녕, 더 애탄 열망에 휩싸였다.
회음부가 빨렸던 기억이 함께 떠올랐다. 한 번도 타인에게 만져진 적 없던 부위는 예준에 의해 흡입당했다. 그곳을 빈틈없이 감싸던 입술이, 부드럽게 쓰다듬던 혀가, 꼭 뽑아낼 듯이 쪽쪽 빨던 애무가 생생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얼했다. 시후는 한참이고 멈춰 있다가 곧 하의를 완전히 벗었다.
손가락은 기둥을 타고 음낭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회음부를 쓰다듬었다. 몇 번 눌러 주자마자 성기 끝에서 더 많은 양의 액이 흘러나왔다. 꼭 러트라도 온 듯 온통 예민해진 몸뚱이가 낯설었다.
끝을 세운 손가락은 이제 도톰하게 부푼 둔덕을 지나 더 아래로 향했다. 시후는 상체를 일으키며 다리를 벌렸다. 높게 세운 양 무릎이 잘게 꿈틀댔다.
“……윽.”
손가락을 감싸는 제 내벽이 뜨거웠다. 시후는 다른 손으로 침대를 짚은 채 계속해서 아랫구멍을 휘저었다. 그의 처음을 가져간 유예준보다 더 능수능란한 동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동정이었던 유예준과 달리, 백시후는 수많은 파트너의 뒤를 가지고 놀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제 뒤 정도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립선 부근을 정확히 찾아낸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볼록하게 올라온 부위를 만지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아…….”
슬슬 올라오는 쾌감에 아랫배와 허벅지에도 힘이 들어갔다. 혼자 뒤를 풀기에 용이한 자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후는 꿋꿋하게 손가락만 움직였다. 엎드린 채 엉덩이만 들어 뒷구멍을 쑤시기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이제 더 상할 것도 없지 않나?’
달아오른 귓가에 또 다른 자신이 웃음기 어린 어조로 읊조렸다.
‘이미 뒤치기도 당했으면서, 새삼.’
뒤치기. 러트로 인해 정신이 나가 있던 그 아이는, 시후를 뒤집어선 그대로 구멍 안에 제 것을 쑤셔 넣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올라와 목 부근이 뜨끈해졌다. 시후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손가락을 더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그런 채로 손끝을 세워서는 전립선을 가볍게 긁어내렸다. 눈앞이 뿌옇게 변함과 동시에 성기에서 불투명한 액이 터졌다.
“큭.”
잇새 소리를 내던 시후는 곧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내었다. 희고 길어 잘생긴 손가락은 바로 성기를 잡아챘다. 그런 채로 한 번 훑자마자 더 많은 양의 정액이 흘러내렸다.
찌걱, 찌걱!
음탕한 소리가 들뜬 귓구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시후는 두 눈을 꽉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치솟은 어깨에 간지러워진 귀를 비볐다. 잠시 후, 더 많은 양의 액체가 시후의 손바닥을 잔뜩 더럽혔다.
“……하.”
가쁜 호흡에 가벼운 웃음이 서려 있었다. 갈 데까지 갔다. 이제는 뒷구멍을 쑤시며 자위까지 하고.
그게 우습기는 하지만, 또 생각보다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뽑아서일까, 마음이 후련해졌다. 바로 샤워를 한 뒤 다시 옷을 갈아입을 때도 그의 안색은 평온함을 유지했다. 정액 냄새 대신 스킨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후가 할 건, 제주도에 들어올 때부터 들었던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유예준에게 연락하기.’
그래서 몸은 어떤지, 안정기에 들었는지, 정말로 알파인 건지 궁금했던 점을 모두 물어볼 예정이었다.
창문 앞으로 서며 시후는 왼손에 찬 시계를 살폈다. 다음 스케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서로 근황을 주고받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시계라.”
혼잣말을 읊조리며 시후는 시계를 말끄러미 응시했다. 햇빛에 투명하게 반사되는 손목시계는 고가의 명품이었다. 금색 테두리가 포인트인 시계는 예준에게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것이 예준의 크고 단단한 손목을 감싸는 모양새를 상상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잘 어울리겠다.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귓바퀴에 익숙한 음성이 닿았다.
― ……형.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콱 잠긴 음성이었다. 밝다고는 결코 볼 수 없는 목소리에 시후는 눈썹 사이를 찡그렸다.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 여보세요?
“듣고 있어.”
― 아…….
“목소리는 왜 그래.”
―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이에요.
대답하는 대신 예준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읊조리는 음성에 담긴 진심이 시후의 가슴에 콱 박혔다. 지나치게 끈적거리고, 지나치게 깊은 마음이다.
“……대답해, 말 돌리지 말고.”
반사적으로 퉁명스러운 음색을 내고 말았다. 멋쩍고 민망해서 한 행동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어색한 침묵이 흘러갔다. 상처받은 건지, 아니면 당황한 건지 예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제야 경직되어 있던 시후의 안면 근육이 풀어졌다.
너무 딱딱하게 말했나. 시후는 미간을 짚고 있던 손을 내려 천천히 살폈다.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건 제 손목이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드러난 손목에 멍이 들어 있었다.
얼마나 세게 물어 댔으면 아직도 울긋불긋한 걸까. 자신이 알파였기에 망정이지, 베타였으면 기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그게, 읏!
별안간 귓바퀴에 옅은 신음이 닿았다. 억누른 듯한 소리에 시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는…….”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통화가 끊어졌다. 시후는 잠시 정적을 지키다 아무렇지도 않게 재연결을 시도했다. 뭔가를 잘못 눌렀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러나 예준은 전화를 받는 대신 ‘뚝’ 하고 다시 연락을 차단해 버렸다. 매끈했던 이마에 슬슬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연락 시도마저 실패로 끝났을 때, 시후는 선홍색 입술을 달싹였다.
“……은근 열받네.”
나긋한 말씨였으나 서늘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중얼거림이었다.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으나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시후에게 돌아온 건 딱딱한 기계음이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님을 확인한 시후의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유쾌하다고 보기 힘든, 오히려 빡쳤다고 봐도 무방할 미소였다.
이것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