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 3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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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신이 사라지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죽지 않고 영원을 살아가는 신들이었으나, 그럼에도 사라지는 일은 있었다.
다른 신에게 먹혀서 그 힘을 모두 잃게 되거나, 자신이 가꾸던 세계의 흥미를 잃고서 영원하게 잠에 들기를 선택하거나.
그런 식으로 먹히거나, 잊힌 끝에 하나의 세계가 멸망할 때 같이 사라져가는 신들이야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았던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신들이, 다만 그저 먹혀서 사라지는 신들이란 것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때때로, 그런 신이 태어나고는 했다.
힘을 추구해서, 그저 마냥 날뛰며 다른 신들을 잡아먹는 신이.
그리고 그런 신이 태어날 때면, 신들은 힘을 모아서 그런 신을 잡아 죽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신들도 영원을 살아가는 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으나, 그렇다고 소멸하는 것을 바라는 신들은 몇 없었다.
따라서, 신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했다.
상당히 특징적인 신들만을 노리는 덕분에, 모든 신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도 위험에 처할까봐 두려워 모인 신들에 불과했지만.
그 수만 스물이 넘었고, 그중에는 이미 몇 개나 되는 차원을 거느리고 있는 대신격의 존재도 있었다.
제아무리 신들을 잡아먹고 그 힘을 키운 신이라고 해도, 신들의 눈에 띄게 된 지 얼마 안 된 신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저마다 다른 차원이었지만, 어림잡아서 아직 1억 년도 채 살지 못한 어린 신.
여기 모인 신들이 하나같이 그 몇 배나 되는 세월을 살아가며, 힘을 키워왔던 신들이니 전력은 차고 넘쳐났다.
“최소 다섯 이상의 신을 잡아먹은 자다. 너무 얕잡아보면 손해가 클 것이 분명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 모여있는 신 중에서도 유일하게 대신격이라고 부를만한 힘을 지닌 존재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잘만 사냥하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겠지.”
그 또한 지금 날뛰는 어린 신과 비슷한 부류의 신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날뛰는 어린 신과는 달리 신을 먹고 그 힘을 취한다는 과격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이름대로 약탈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신들을 약탈하고, 범해서 노예로 부리는 신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신을 종으로 부리며,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빼앗고, 망가뜨리는 것으로 영원한 세월을 유희하는, 신들의 신으로서 그 스스로가 찬란히 빛나는 신.
그가 굳이 이런, 나약해서 서로 힘을 합치려고 모인 신들의 사이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신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운 신.
그 신을 먹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드높은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신이 더욱 강해지는 법은 얼마 없었다. 신앙을 받아가며 힘을 키우거나, 자신에게 정해진 업에 마땅한 행위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신을 직접 잡아먹고 그 힘과 권능째로 빼앗거나.
마지막의 경우에는 대부분 공공의 적이 되어 신들에게 갈가리 찢긴 채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자신만 해도 그걸 알기에, 고작 해봐야 약탈에 그친 것이 아닌가. 그 자신이 약탈의 신이었기에 신들을 약탈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벌써 대신격을 가진 신이 된 지도 수억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능은 언제까지나 두 개에 그친 채였다.
아무리 힘을 쌓고 쌓더라도, 그 권능까지 늘지는 않은 채 정체된 지도 벌써 수억 년.
‘나는 보다 드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리라.’
이미 그 자체로도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신, 그것도 그 신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대신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위의 무언가가 있음을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고 싶었다.
“신을 잡아먹는, 악독하기 짝이 없는 신을 죽이고... 우리 모두 영광되리라!”
그렇기에 모인 신이 스물.
저마다의 신들이, 혹시 다음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부추겨서 모이게 만든 이곳에서. 나는 신들을 포식한 신과 모두를 잡아먹고, 더욱 드높은 곳으로 향할 것이다.
스물이나 되는 신들과, 신을 먹은 신을 잡아먹는다면... 그 어떤 신들이 모여온다고 한들 하등 상관없을 테니.
“오는구나...!”
그때, 차원이 억지로 열어젖혀지는 것을 느낀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런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을 본 다른 신들도 그곳을 쳐다봤다.
쩌저적, 차원이 허물어진다.
아무리 신에 이른다고 해도,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벽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깨부수며 넘어온 것은...
“...드래곤?”
“드래곤이 어째서...?”
제법 미색이 고운 인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저건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은 신들이 자신들의 노예나, 시종, 혹은 노리개로 자주 부려먹는 생물이었다. 적당히 강하고, 적당히 튼튼하고, 적당히 오래 사는 그들은 제법 쓸모가 많았으니.
하지만 결국, 그뿐. 하찮기 짝이 없는 필멸적인 존재임은 변하지 않았다.
때때로, 신의 자리에 오른 드래곤들도 간혹 있었으나ㅡ 그들 역시 자신의 동족이였던 드래곤들에게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이 된 이상, 한때 자신의 동족이었다고 한들, 결국 신이 아닌 자에 불과했으니 당연했다.
아무튼,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한 드래곤이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 나온 것을 본 신들을 황당하게 그 드래곤을 바라봤다.
근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 드래곤을 시작으로, 차원 너머로 무수한 드래곤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건...”
그때, 한 신이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서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이 그 신에게 말했다.
“뭔가 아는 것이 있나?”
“저, 붉은 드래곤. 제가 알고 있는 신이 아끼던 노예입니다. 반항적이고 앙칼진 게 괴롭히는 맛이 좋다고 자랑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신이 가리키는 드래곤을 보니, 확실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줄을 차고 있었는지, 그 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자국이 보였다. 등 뒤로 채찍질을 받았던 흔적이나, 온갖 고문을 당했던 흔적마저도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든 것들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나도록 살갗을 전부 드러내다시피 한 차림인 덕에 신들은 모두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신은 어떻게 됐지?”
“...소식을 듣지 못한지 꽤 지났습니다.”
신에게 있어서 꽤 지났다는 소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차원마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제각각인 이상 더더욱 그러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신을 포식하고 다니는 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소식이 들려오지 않게 된 신들이 몇이나 되었지?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신이기에, 신들의 소식이 없는 것쯤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기에... 소식이 끊겨버린 신들에 대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헌데, 그게 아니었더라면?
그렇기에 신을 포식하던 자가 알려진 것이, 극히 최근에 불과했던 거라면?
그때 그 드래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 드래곤만이 아니라 차원을 넘어 들어온 모든 드래곤들이 그러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서, 마땅히 와야 할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멈춰서기 시작했으니. 그리고는, 그들은 포효했다.
ㅡ경배하라!
ㅡ우리들의 신을.
ㅡ용들의 해방자를.
ㅡ역병을 먹어치우는 자, 죽음을 마시는 자, 신들을 먹어치우는 자, 탐식의 지배자를!
“...부름이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그렇게 생각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은 중얼거렸다.
“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멍청한 것들을 보며,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은 외쳤다.
“보면 모르겠느냐 이 천치들아! 부름, 부름이란 말이다!”
본래 신은, 자신들을 추앙하는 이들의 부름으로써 강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모든 신이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식으로 불려져 강림하는 신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렇기에 부름이야말로 마땅하게, 신들이 자신들이 기거하는 천상에서 내려와 강림하는 수단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불려진다면... 본래 좁아터진 천상과의 경계를 넘어오기 쉬워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한데, 이미 차원에 저만한 균열을 열어젖히고서도 신을 부른다고?
저만한 균열이면 아무리 대신격인 자신이라도 넘나들기에 충분할 진데... 그런데도 불러야만 한다고?
“막아라! 이 빌어먹을 것들아! 저들이 부르는 것을 막아!”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의 노호성에, 대신격이 살기를 담아 외치는 것에 신들이 자신들의 권능을 드래곤들을 향해 쏟아부었다.
하지만, 벌레마냥 짓이겨지는 것이 당연할 드래곤들은 그런 권능을 막아섰다.
“...모두, 저 모두가 반신격에 이르렀단 말인가?”
반신과는 달랐다.
말이 반신이지, 신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약해빠진 필멸자에 불과한 반신과는.
저들은, 말 그대로 하나하나가 절반 정도 진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도 그럴게, 신이 자신의 일부를 떼어다가 준 존재들만이 반신격에 이르를 수 있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는 법이었다.
힘을 나눠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자신이 약해진다는 뜻이었다.
나눠주면 나눠줄수록, 그 자신이 약해지는 만큼, 대신격이나 되는 신들도 기껏해서 둘 셋 정도나 되는 반신격을 거느릴 뿐이었다.
그런데...
“저, 모든 드래곤들이...?”
신들의 권능을 막아서는 드래곤들이 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그 모두가 반신격이었다.
그토록 많은 힘을 나눠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러져야만 이곳에 강림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고?
필사적인 드래곤들의 저항은, 그러나 서서히 뚫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반신격이라고는 해도, 상대가 스물이 넘는 신들이었으니. 그들이 쏟아붓는 권능에 하나둘, 추락하는 드래곤들이 보였다.
그럼에도, 부름은 멈추지 않았다.
ㅡ마땅히 이곳에 오셔야 할 분이시어.
한때, 어떤 신의 노예였다던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ㅡ오소서, 모든 용의 아버지시어.
그리고, 그것이 넘어왔다.
아무런 소리 없이.
그저 넘어왔다.
“고생했다.”
툭, 하고 끝내 마지막까지 남아 부름을 마친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자 드래곤은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힐 따름이었다. 칭찬을 들어 기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러는 드래곤을 쓰다듬던 그것이 이쪽을 바라봤다.
“많이들 죽었구나.”
아니, 이쪽이 아니라 권능을 막아서다 추락해서 죽어간 드래곤들을 바라봤다.
“저들이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곁에 있던 드래곤이, 그것에게 대답하는 것이 들려왔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죽었어.”
이래서 그냥 내가 좀 더 힘들고 말겠다고 한 건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것이 손을 휘두르자, 아직 생명이 끊어지지 않은 드래곤들이 다시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수가 처음과는 달리, 절반 가까이가 줄었음을 확인한 그것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로, 많이 죽었어.”
“저들을 그 지옥들에서 구한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원해서 당신께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죽은 자들도... 당신이 구했던 그 수많은 드래곤 중에서, 당신을 따르는 그 수많은 드래곤 중에서, 당신을 따라온 극히 일부만이 죽었을 뿐입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죽어버렸다. 힘을 좀 더 나눠줬어야 했었나... 뭐, 이미 늦어버린 일이지. 후회해봤자 늦었으니... 살아남은 모두는 뒤로 물러나라.”
그의 말에, 드래곤이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살아남아서, 그의 곁으로 날아올랐던 드래곤들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서, 그런 드래곤을 따라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니까.”
그것이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서자, 신들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대신격에 이른,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 또한 그러했다.
“대, 대체... 얼마나...”
얼마나 많은 신을 먹어치운 것인가.
그렇게 묻고 싶어질 만큼, 거대하기 짝이 없는 신이었다. 소문으로 들은, 고작 다섯 정도의 신을 먹어치운 신은 결코 아니었다.
최소 서른 이상.
아니, 그 모든 드래곤들을 반신격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
적어도, 백... 그 이상을 먹어치운 신이었다.
그리고, 그 신이 입을 열었다.
“나는 포악한 자다.”
“나는 영원한 자다.”
“나는 탐식하는 자다.”
그렇기에.
“나는 포악한 영원히 탐식하는 자다.”
신의 이름은, 그 신을 규정짓는다. 스스로의 권능이 무엇인지, 죄다 까발린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이름을 밝히는 것 따윈 하등 상관없다는 듯이, 그 신은 말했다.
“나는 너희를 먹으러 이곳에 왔다.”
“크흡, 흡, 끄으읍...”
광휘, 정확히는 광휘를 닮은 거대한 신력에 꿰뚫린 신이 숨을 들이켰다. 광휘만이 아니라, 수많은 검들이 그런 신의 몸에 꽂혀있었다. 하나같이 내가 만들어낸 검들이긴 했지만. 꾸물꾸물,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의 피, 힘들이 검을 타고 내게 흘러들어왔다.
“내, 내가... 찬란히 빛나는... 약탈의 신인 내가...”
신이 허덕이면서 말하는 걸 들은 내가 중얼거렸다.
“이름 한 번 좆같구나, 너.”
찬란하게 빛나는 약탈의 신? 금태양의 신이라도 되나? 많은 신의 이름을, 부패한 죽음의 오수라는 이름을 지닌 신도 보았던 나였지만, 이 이름만큼 좆같음을 느끼는 이름은 없었다.
NTR의 신이라...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곧 사라질 신이었다.
“4억 년을 넘도록 살아온, 대신격인 내가 이렇게 사라질 순 없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서, 폭발하듯이 권능을 내게 뿌리는 금태양의 신을 바라봤다.
“너의 모든 것을 빼앗으리라ㅡ!”
그리고, 먹었다.
“제법 큰걸.”
묵직하게 차오르는 힘을 느끼며, 그런 힘들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역시나 필요 없는 권능들은 따로 분리해서, 힘 그 자체로 정제했다.
나를 따르는 드래곤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이었다.
근데...
“...음, 이건... 제법...”
빼앗은 권능은, 먹어치운 신들이 신들이다 보니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건 꽤 마음에 드는 권능이었다.
찬란.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권능이었다. 능력도, 아주 좋진 않더라도 나쁘지도 않았고.
“이것도 따로 챙기고... 그럼...”
나는 내가 흡수하지 않고 따로 챙겨놓은 권능들을 살펴봤다.
방금 얻은 찬란의 권능 말고도 꽤 많았다.
부패하는 나무의 뿌리를 내리는 자로부터 빼앗은 나무의 권능부터 시작해서, 녹아내리지 않는 혹한을 뿌리는 자로부터 빼앗은 혹한의 권능 같은... 아내들에게 어울릴 법한 권능이 보이면 열심히 따로 챙겨놨다.
그리고 이번에도 꽤 수확이 좋았다.
스물이나 되는 신들을 먹었으니, 하나같이 권능의 꼬라지가 개판이긴 했지만, 찬란처럼 가끔 그럴듯해 보이는 권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오수의 권능 같은, 이상한 것이긴 했지만 이건 잘 분리하기만 하면 그럴듯한 권능으로 만들 수 있는 법이었다.
아샤나 아냐에게 건네줄 권능의 후보로 챙겨둔 순수(??)의 권능이라던가는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 원본이 오수였다는 건 말해선 안 되겠지.
“...신이시어, 이제 다음 차원으로 가실 때가 됐습니다.”
그런 내게 다가온 드래곤이 고개를 숙였다. 온몸에 흉터와 상처가 자글자글하게 남아있는 붉은 용, 라그나였다. 맨 처음 드래곤들을 구했던 차원 때부터 나를 따라온 드래곤이었고, 흉터나 상처를 진작 치유할 수 있었음에도 남긴 채로 드러내고 다니는 괴짜 녀석이었다.
하지만, 날 오래 따라다닌 만큼 주워 먹은 것도 꽤 많아서 내가 거느리고 다니는 드래곤 중에서는 가장 신에 가까운 녀석이기는 했다.
녀석의 말에 주변을 보자 확실히, 서서히 무너져가는 차원이 보였다.
여태껏 멀쩡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신을 죽이자 무너지는 것을 보니 이 차원의 주인이 그 녀석이었나보다.
차원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데 힘이 드는 만큼 그 전에 이곳에서 떠야 하긴 했다.
하지만...
“...아니, 다음은 이제 됐다.”
신이 되고서, 아내들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들을 먹어치우며 쏘다닌지도 벌써...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도중에 핍박받는 드래곤이 있는 차원이 보일 때마다 찾아가서 죄다 구하다 보니, 끌고 다니는 녀석도 제법 많이 생겨버렸고, 그 녀석들이 날 따라다니다가 빌빌대며 죽는 꼴을 보기 싫어서 힘을 나눠주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더군다나, 처음에는 그냥 신의 힘만 덜렁 줘서 아내들을 신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권능 없이 신이 되봤자 반신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알맞은 권능까지 찾아다니느라 더더욱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다.
크리샤한테 부패의 권능 같은 걸 줄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들에게 줄만한 권능을 그렇게 모으다 보니, 너무 모아버리긴 했지만.
아무리 상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훨씬 빠른 곳만을 찾아다닌 덕에, 그쪽에서는 내가 겪은 시간에 비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지라도 쌓인 시간이 시간인 만큼,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 분명했다.
“...다음 차원은 됐다 하시면?”
“슬슬 돌아갈 때가 됐지.”
그렇게 말하고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보는 라그나에게 말했다.
“그러니, 너희도 이제 각자 돌아가라. 이제 너흴 괴롭히는 신도 없고, 너희의 고향에 내가 두고 온 힘이 있으니 차원이 무너지는 일도 없잖아?”
“...저희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당신이 저희의 고향인즉, 당신이 돌아가시는 곳이 저희가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그리 말하고선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쳐다보니 차마 그냥 돌아가라고 하기도 뭐했다. 반신격이 되어서, 불사는 아닐지언정 불로의 존재가 되어 수만 년을 날 쫓아다녀 온 녀석에겐 어느 정도 정도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냐... 그럼 마음대로 해라.”
꽤나 멀리까지 와버려서 내 고향의 차원... 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내들이 있는 차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마침내 찾아서, 차원을 열려고 할 때 그런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온 라그나가 물었다.
“...헌데, 신이시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돌아가시나이까?”
무엇이 있냐고?
“그야,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이 있지.”
“...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이들도.”
라그나가 오열했다.
음, 녀석도 내가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감동을 먹은 모양이었다. 근데 저렇게까지 오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상한 녀석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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