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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남편-364화 (364/370)

〈 364화 〉 364화

* * *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내 가슴을 베개 삼아서 곤히 잠들어있는 샤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샤르의 머리카락이 사르락거리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렇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리하고선, 여전히 잠들어서 깰 기색이 보이지 않는 샤르의 귓불을 어루만져봤다.

“으응...”

뒤척이다, 칭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내 손바닥에 뺨을 비벼오는 샤르가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엄청나게 귀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내 눈에 처음이었는데도 내 성욕을 끝까지 버텨내며 받아내느라 고생한 샤르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런 샤르의 모습은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체력이야 어떻게 회복된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마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나 역시 그런 경험을 몇 번이나 해봤으니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영약을 계속 입에 퍼부어서, 덕분에 몸은 멀쩡하다고는 해도, 피로는 어디까지나 피로였다.

오히려 몸은 멀쩡한데 정신만 점점 피로해지는 기분은 어떤 의미에선 더했다.

그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샤르한테 그런 짓을 해버렸다.

끝까지 버티길래 무심코ㅡ 라는 변명을 하기엔 스스로도 너무나 쓰레기 같은 이유였다. 나중에 샤르가 일어나면 제대로 사과하기로 마음먹고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야, 내 가슴 위에 엎어져 있는 샤르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ㅡ

“이걸 어쩐다...”

꼬박 하루 동안 샤르를 안고, 그동안 굳이 셀 필요도 없을 만큼 잔뜩 사정한 드래곤 슬레이어가 여전히 빳빳하게 발기한 채 샤르의 보지 안에 박힌 채로 있었다.

마개 대신 자지를 박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러지 않으면 모처럼 샤르의 안에 잔뜩 냈던 정액들이 모조리 흘러내릴 지경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도 너무 싸다 보니 생긴 문제였다.

적어도 샤르가 깨어날 때까진 이러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딱히 문제가 아니었다.

샤르가 위에 누운 채로 있기는 해도, 무겁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데다가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게, 그런 샤르의 살결이 맞닿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분 좋을 따름이었다.

단지 문제라고 해야할 건 지금의 상황보다는 내 몸 그 자체의 문제였다.

신의 육체가 된 덕분일까.

그토록 잔뜩 싸질러놓고서도 여전히 빳빳한 드래곤 슬레이어가 증명하듯, 내 성욕이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원래부터 조금씩, 조금씩 강해져 왔던 성욕이 이번에 있어서 폭발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와중에 내게 한계가 없어져 버렸다.

샤르를 완전하게 뻗어버릴 때까지 안았는데도 불구하고, 하기 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해서, 오히려 지금이 더 활력이 넘치기까지 했다.

정말로 규격 외의 것이 돼버렸구나.

지치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건, 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반신이 되었을 무렵에도, 충분히 그런 느낌으로 움직일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과 같이 아무리 해도 만전이란 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꼬박 한 달은 내내 섹스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몸이긴 했다.

하지만 단순히 지치지 않게 됐다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에 대한 것의 자각이 늘어날수록 육체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가 와닿았다.

단순히 지치지 않게 됐다는 것을 넘어서, 이 몸의 한계가 없어졌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이제는 꽤나 명확해졌다.

덕분에 영 실감이 가질 않았다.

지금도 샤르와 맞닿아있는 내 몸은, 피가 흐르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었지만. 그 모두가 실감이 가질 않았다.

그 모두가 그저 단순히, 그런 형상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 내 몸에서 모든 피를 쏟아내고 심장마저 뽑아버린다고 한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야 당연히 힘이 좀 들기야 하겠지만, 죽지는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소 시간이 걸려도 심장이든 뭐든 전부 재생할 것이 분명했다.

불사.

완전해진 내 몸은, 수명이나 죽음이란 불완전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치지 않는다는 건, 그것의 부산물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 몸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언제나 완전한, 죽지 않은 세포로 이루어진 셈이 된 거니. 그야 당연히 지칠 리가 없었다.

영원토록 그대로니, 그야 당연히 죽지도 않는다.

사실, 이런 와중에도 끝없이 생기는 성욕 같은 것보다는 이쪽의 문제가 더 고민됐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야 죽지 않게 됐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사락, 사락 샤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언제나 변치 않을 것처럼만 보이는, 이 은빛 머리도 언젠가는 빛을 잃게 된다.

아무리 오래 살아간다고 한들, 드래곤 또한 수명이 있었다.

수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가는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보기엔 몇십 세기를 까마득하게 넘기며 살아가는, 불멸에 가까운 존재라고 해도.

그래도 그뿐인, 결국에는 수명을 가진 필멸자에 불과했다.

반신일 적만 해도 아내들이 나보다는 더 오래 살 거라고만 여겼는데, 이제와서는 내가 아내들보다 오래, 더군다나 내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만이 아니라 그 후손들보다도 오래 살게 돼버렸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샤르가 지금의 내 아이를 갖게 되어서, 설령 신의 힘을 일부라도 이어받게 된다고 할지라도.

신과 반신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좀 더 오래 살지언정, 영원하진 않을 거다.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영영 죽음이란 걸 잃어버리게 돼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늙어서, 죽어갈 모두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는 거였다.

“......정말로 끔찍한 일인걸.”

나에 대한걸 자각하면 할수록 신이 된다는 건 너무나 무거운 업이었다. 고작 육체만이 신이 됐음에도 이런데, 완전하게 신이 돼버린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돼버리는 걸까?

지금이야 나 스스로가 죽고자 한다면 어떻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은?

스스로 자살하는 방법도 사라지지 않을까?

어쩌면 승천이라든지, 해탈이라든지, 흔히 내가 살아가던 세계의 신의 모습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리는 걸까?

누군가는 그것을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 속박을 필요로 해서 신이 되고자 했는데 그렇게 돼버리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었다.

아내들을 위해.

내 아이들을 위해.

그래서 신이 되고, 이 세계를 지킨다고한들.

그 모두가 죽은 다음에는?

어쩌면...

어쩌면 이 세계를 버려버린 신들도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나처럼 신이 되어버린 존재였든 혹은, 처음부터 신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든 간에. 그렇게 무한한 세월을 지세우다가, 목적을 잃게 되어버렸다면.

그렇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들에게 버림받은 이 세계가 그랬다. 유희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지고, 질려서 버림받은 이 세계 또한 신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예전에야 마냥 무책임하게 세계를 만들었다가, 내버려 두는 거로도 모자라서 멸망하도록 수까지 쓴 신들이 개 같은 새끼들로만 보였는데, 어쩌면 그것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했던 게 아닐까?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지 않았을까.

한 차원을 가볍게 만들고, 가볍게 멸망하도록 하는 것보다 영원 속에서, 아주 잠깐 동안의 유희가, 그 영원을 잠깐이라도 잊게 할 유희가 더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아닐까?

질려버린다는 것.

자극에 무뎌져 간다는 것.

목적을 잃어버린 영원한 존재에 있어서는, 그것은 죽어가는 것이나, 아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잔뜩인데, 마냥 한참 먼 미래의 일을 가지고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충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을 떨쳐내고서 천장에 박혀있는 보석의 숫자나 세보기로 했다.

“......”

신이 된다는 점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또 한가지 알아버렸다. 심심풀이 삼아 세어보려고 했던 보석의 숫자를 그냥 알려고만 생각했더니 알아버렸다.

숫자가 만개가 가볍게 넘었는데, 알아내는데 걸린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세보기로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정확한 숫자가 머릿속에 떠올라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정말로 신이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모호하지만 내 영역이라고 할 만한 이곳에선 내가 알고자 하는 거라면 알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전부 알아버리고 말아버리고 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재미없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무척이나 재미없었다.

“...으, 응. 숨... 막혀.”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어느샌가 나는 샤르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지쳐서 기절하다시피 했던 샤르마저도 눈을 떠서는, 나를 보고 있었다.

깜빡, 깜빡하고 은빛의 두 눈동자로 한참이나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샤르가 입을 열었다.

“...이상한, 표정.”

“이상한 표정?”

내가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샤르가 말했다.

“...인상을 찡그리고... 무척이나 아파하는, 으응... 아니, 아픈 게 아니라...”

곰곰이 무언가를 떠올리던 샤르가 아, 하고 말을 이었다.

“...슬픈 얼굴. 응, 맞아. 그거... 왜?”

슬픈 얼굴, 그렇게 말하는 샤르를 보고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슬픈 거였구나.

그제서야 나는 내가 슬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아직 까마득하게 머나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뒤섞이고, 흔들려서ㅡ 그러나 어떻게든 고쳐냈다고, 멀쩡하다고 여겼던 내 자아의 어딘가가 이미 무뎌져 있었음을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머나먼 미래, 하지만 언젠가는 오게 될 미래.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이.

그러한 아내들과 나 사이의 아이들이.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언젠가는 죽게 될 거라는 미래를, 그런 미래를 지켜보게 될 나 자신을 그저 단순하게 끔찍한 일이라고만 여기며, 그마저도 받아들이고 말아버리고 마는 내가.

그러한 나 자신에게, 나 스스로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슬퍼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왜, 슬퍼하고 있어?”

그것을, 이제야 겨우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기 시작한 샤르가 나보다 먼저 눈치챈 것이다.

찰싹, 하고 다소 힘 조절이 안 된 채로 내 뺨에 손을 얹은 샤르가 말했다.

“...내가 혼자 잠들어서 그래? 그러면, 미안해. ...응, 이제 다시 괜찮아졌으니까, 원한다면 또, 해도 되니까ㅡ”

내가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을지언정, 내가 슬퍼한다는 사실에 그런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샤르를 보고서, 나는 그저 그런 샤르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단지, 더욱 강하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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