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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남편-360화 (360/370)

〈 360화 〉 360화

* * *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무슨 알의 껍데기마냥 날 감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였다.

갑자기 이게 웬 건가 싶어서 톡하고 두드려봤더니, 그대로 파사삭하고 부서져 버렸다.

그렇게 세게 치진 않은 것 같았는데, 가루가 되어버리니 오히려 이쪽에서 더 놀라버렸다.

하지만 나보다 놀란 건 따로 있었다.

갑자기 껍데기를 부수고 튀어나온 나를 보더니,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아내들이 보였다.

골렘이 아닌, 본체인 걸 보니ㅡ 그녀들도 내게 마력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서, 각자의 영지에서 돌아와 그 뒤로 계속해서 내가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걱정했냐고 묻는 것보단 이쪽이 나은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더니 하나같이 대답하지 못하는 아내들이 보였다.

“저기?”

이윽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붉히는 것도 보였다.

뭔가 반응이 조금 이상한데.

감동적인 재회인데, 달려와서 와락 안기거나 그러는 걸 아니여도, 좀 더 극적인 반응을 원한 건 사치였나보다.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어째선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해하는 아내들의 모습은, 그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으니.

그런 그녀들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고서 더더욱 얼굴을 붉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참.

두 눈이 멀쩡해서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는데. 눈 하나로 봐도 엄청나게 사랑스러웠는데, 두 개가 되니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녀들이 모두 내 아내란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서, 곧 답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거인죽을 다 먹은 뒤로부터 대충 하루 정도 지나있었다.

체감상 거의 수십 년은 거기에서 갇혀있던 기분인데, 정작 실제 시간은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나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상태창.

혹시라도, 내가 헛것이라도 봤던 건 아닐까 싶어서 속으로 중얼거려봤지만, 언제나처럼 눈앞에 떠올랐던 푸른빛의 상태창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내 안에 있던 편린, 주시자의 눈이 없어져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즉, 조금 전까지 내가 겪었던 그 모든 것들이 착각이 아니란 것이기도 했다.

사실 굳이 이렇게 확인할 필요도 없긴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고 있는, 내 몸에 대한 것들이 증거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상태창이 없어지다니, 조금 섭섭한 기분이었다.

물론, 상태창이 없어도 나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 훤히 알 수 있기는 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뭐, 상태창이 떠올랐어도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기는 했다.

지금 느껴지는 힘은, 스텟으로 표기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상태가 됐는데도 완전한 신이 아니란 게 믿기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나에 대한 것들을 알아감에 따라서 더더욱 그런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주인님,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루시아나 크리샤도 나랑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면서 차마 내게 다가오지 못하는 가운데, 내게 다가온 에루나가 그렇게 물었다.

“응,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아주 괜찮아.”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는 아내들에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원인도 대충 예상되기도 했고.

드래곤들은 본래부터 신의 종으로써 창조됐던 피조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육체만이었지만, 확실히 신이 된 셈이었다.

나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거야 당연했다.

단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주인으로만 여기고 있는 에루나에게는,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을 뿐이었다.

전이나 지금이나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언제나 자신의 주인이었을 뿐이니.

“참, 에루나. 빌렸던 거 지금 돌려줄게.”

“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이는 에루나에게 내민 손 위로 스멀스멀, 드래곤 하트를 솟아올랐다.

불멸자의 심장 안에 박혀있던, 에루나가 내게 줬던 드래곤 하트였다.

이제 불멸자의 심장도 없어졌고 내게 더는 필요도 없으니 돌려주는 것이 맞았다.

“이건...”

에루나의 표정에서 놀라는 기색이 비치는 것을 봤더니 꽤나 즐거웠다. 좀처럼 놀란다거나 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시종이였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루나가 평소와 같이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과연, 확실히 지금의 몸으론 변하신 주인님을 모시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긴 하군요. 알겠습니다.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게 있다면 어느 정도는 주인님을 감당할 육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죠. 앞으로도 주인님을 보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라고 준 게 아닌데?”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게 이걸 주신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하며 에루나가 내 하반신을 바라보길래, 나 역시 그런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 하반신을 봤다.

태초의 모습 그 자체인 내 몸이 보였다.

홀딱 벗고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완벽하고 완전한 육체란 건, 그쪽도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이게 완전체가 아니란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부르기도 뭐할 지경으로 진화해버린 아들놈을 보고 있자니,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인 루시아가 말을 걸어왔다.

“...흐흠, 그, 이지경님? 몸은...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흘끔흘끔, 내 하반신을 훔쳐보면서 그렇게 묻는 루시아를 보니 조금 장난치고 싶어졌다.

“괜찮은지 아닌지 시험해볼래?”

“네? 아니, 그... 저, 저는...”

그런 내 말에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던 루시아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선, 이제 제법 티가 나기 시작한 자신의 배를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갈등하는 루시아를 보고서 장난은 이쯤 하기로 했다.

“농담이야.”

그리고, 그렇게 말하자 곧바로 추욱하고 늘어진 루시아가 말했다.

“그, 그야 그렇죠? 알고 있었어요. 네에, 알고 있었어요...”

“응, 그러니까 둘째 때 기대해.”

“네?! 아, 앗... 네, 네에...♥”

그런 내 말에 말을 더듬던 루시아가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저 계속해서 감상하고 싶을 따름이었지만 질투심 많은 다른 아내들이 삐지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어렵사리 고개를 돌려선 처음에 눈을 마주친 것을 제외하고선 아까부터 이쪽을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크리샤를 불렀다.

“크리샤.”

움찔, 하고 내가 부르자 몸을 떠는 크리샤가 보였다. 그런데,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저기, 크리샤? 혹시 화났어?”

“그런 거 아니... 읏!”

내 물음에 버럭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크리샤가 보였다. 새빨갛게 물든 귀를 쫑긋거리는 크리샤를 보고 있자니, 확실히 다들 반응이 조금 이상한 거 같긴 했다.

“크리샤. 이쪽으로 와.”

내 말에 으으, 하고 신음하던 크리샤가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있는 크리샤를 보며 내가 툭툭하고 옆자리를 치며 말했다.

“여기 앉아. 그리고 나를 봐.”

스윽, 하고 자리에 앉은 크리샤가, 이내 고개를 돌려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크리샤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흐읏...”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파르르 떠는 그녀를 보고서, 그리고 새삼스레 계속해서 깨닫고 있는 나에 대한 것들 덕분에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상태창, 정확히는 주시하는 자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나에 대한 것들.

그러니까, 스텟부터 시작해서 칭호라던가 기능이라던가 하던 것들은, 상태창이란 형태로 내게 알기 쉽게 보여줬을 뿐. 어찌 됐건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설령 주시하는 자가, 상태창이 없어졌다고 한들 내가 이미 갖고 있던 능력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소리였다.

더군다나, 신의 육체에 이른 지금은.

그렇게 얻었던 모든 것들이 가장 완전한 상태로 바뀌었다.

즉, 이런 뜻이었다.

“크리샤.”

“햐읏?!”

턱을 집어 올리자 달뜬 신음성을 흘린 크리샤의 눈이 몽롱하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모든 드래곤의 아버지.

드래곤들의 종마.

내가 얻었던, 칭호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던 것들. 그 능력들의 효과는 드래곤이란 종족에게서 호감을 얻고, 또 드래곤을 임신시키는데 특화된 능력이었다.

이게 완전해졌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지는 뻔한 거였다.

스르륵, 하고 턱에서부터 천천히 크리샤의 몸을 더듬어 내려가자, 부들부들 몸을 떠는 크리샤가 보였다.

즉, 그거였다.

난 드래곤 한정의 캣닢 같은 게 된 거였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대충 비슷하니 그런 거로 치기로 했다.

하지만 뭐, 아내들이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해버리는 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었다. 더더욱 곤란한 건, 태어날 내 자식들도 결국 드래곤이란 사실이었다.

이래서야 엄청나게 곤란해졌다.

제2, 제3의 로로 같은 경우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충 효과를 내려보기로 했다.

딱히 어렵진 않았다.

결국 내 안에 있을 뿐이고, 비슷한 거야 이전에도 활성화니 비활성화니 자주 해왔던 거였으니.

어느 정도, 그러니까 딱 이전의 나만큼 정도로만 능력들의 효과를 낮추자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크리샤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크리샤가 째릿하고 나를 보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괜찮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딱히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었는데, 괜히 나를 노려보는 크리샤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했을 뿐이야.”

이것 외도 조금 과하다 싶은 것들을 차츰 조율해나가기로 하고서, 나는 크리샤를 어찌어찌 달래준 끝에, 이어서 아르카나 아샤와 아냐, 그리고 카르네와도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르.”

내가 부르자 고개를 들어 올린 샤르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반쪽이 눈에 들어왔다. 차디찬 얼음에 갇혀있는 샤르의 절반에 손을 뻗었다.

단지, 그거면 충분했다.

한 방울, 한 방울.

녹아내린 끝에, 모든 얼음이 사라지고서야 닿은 뺨을 어루만졌다. 말랑말랑, 기분 좋은 감촉의 뺨이었다. 어쩌면, 이 뺨의 감촉을 영영 몰랐을 뻔했다는 사실이 사무치도록 두려웠다.

물론, 이젠 그럴 일이 없어졌지만.

“응, 이제야 보기 좋네.”

이걸 해낸 것만으로도 신이 되니 뭐니하는 일을 하길 잘한 것 같았다.

샤르가 감겨있던 나머지 반쪽 눈을 뜨고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두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단지 그뿐이었다.

뭐, 나도 감사의 인사를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나 때문에 그렇게 된건데 내가 고치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자,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었다.

“이제 보옥을 흡수하면 됐었지? 샤르.”

“...응, 맞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샤르가 자신의 뺨에 얹어있는 내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하는 게 있어.”

“응?”

아직도 또 뭐가 남았나 싶었을 때.

천천히, 샤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고 하기엔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맞았다.

쪽, 하고 내 입술에 닿은 부드러운 것의 감촉이, 샤르의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살짝 차가운, 녹아내리기 직전의 얼음과 같은 온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체온이 샤르에게 전해질수록 맞닿은 입술도 서서히 따듯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발돋움하며 내게 입술을 맞췄던 샤르가 천천히 떨어지고선 나를 올려다봤다.

“...응, 역시 잘 모르겠어.”

두 눈을 끔벅이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샤르가 자신의 입술을 더듬었다.

“하지만, 단지 입술을 맞췄을 뿐인데 심장이 무척이나, 무척이나 두근거려서... 조금 가슴이 갑갑한 기분이야. 이게 모두가 말하던 사랑이란 감정인 거야? 그게 아니면...”

샤르비오나 크락수스.

최후의 은색용.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오직 한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감정을 포기한 존재.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에 나를 바라보며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쪼록 그 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그녀의 남편으로써, 내가 마땅히 해야할 역할이리라.

팔을 뻗어, 그대로 샤르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그리고서 내게 안긴 채로 멀뚱히 나를 올려다보는 샤르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술을 맞췄다.

처음의 입맞춤.

사실 입맞춤이라기보단 입술박치기에 가까웠던 그것보다, 좀 더 길고, 진한 키스.

“응, 읏, 츄우...”

어색하게나마 내 입술을 받아들여오는 샤르의 입술을 계속해서 탐했다.

그렇게 한참을 샤르와 입술을 맞춘 내가 입술을 떨어트리며 물었다.

“어때? 이제 좀 알겠어?”

그런 내 질문에, 샤르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여전히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말한 샤르가 나를 올려다보며 살포시 웃었다.

처음으로 웃어본 것처럼, 아직은 어색한 그 미소는 그렇기에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줘.”

그렇게 말하는 샤르와 나는 다시 한번 입술을 맞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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