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 356화
* * *
“헤에...?”
나를 쳐다보는 마왕년이 보였다. 엉덩이 딱 대라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서, 그저 멀뚱하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마왕년이 양팔을 벌렸다.
“꺄우!”
“......”
아무래도 너무 빨아들인 것 같았다.
기억도, 경험도, 힘도 모조리 내게 빨려버리고서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마왕.
모든 것을 잃고서, 그 몸과 영혼마저 내게 저당 잡혀버린, 영락해버린 마왕의 모습은 실로 참담했다.
“꺄아~?”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백지라고 해야 할까,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서 사실상 다시 태어난... 유아퇴행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버린 마왕년을 보니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꺄아ㅡ 꺄아ㅡ!”
그저 안아달라고 아이가 보채듯이 나를 보며 양팔을 휘적이는 마왕년을 보고 있자니 이게 루시아랑 크리샤에게 표독스럽게 독설을 내뱉었던 그 마왕년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그야, 그때의 마왕년은 이미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기는 했다. 당연한 결과기는 했는데...
“이걸 어쩌지.”
사실상 갓난아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마왕에게 엉덩이 딱 대라고 말했던 게 엄청 쪽팔려지는데...
아니, 쪽팔린다고 하는 게 아니라 엄청 죄책감이 들었다.
“꺄, 우...”
좀처럼 내가 이렇다 할 반응조차 하지 않자, 몹시 상심한 듯 추욱 늘어지는 마왕년을 보니... 이젠 마왕년이라고 부르는 것도 미안해질 지경이였다.
“그러니까, 그게...”
“해야 할 거나 빨리 하지~? 아니면,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그건 아니지.
카르네의 말에 고개를 저은 내가 마왕에게 다가갔다.
“꺄아ㅡ 꺄앗!”
다가오는 나를 보며 반기듯이 꺄꺄대던 마왕년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옹알이듯 말했다.
“아바ㅡ 아바ㅡ”
멈칫하고, 그런 그녀가 옹알이듯 내뱉은 말에 나는 다리를 멈췄다.
그저 아무렇게나, 갓난아이가 그러하듯 내뱉은 소리에 불과할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
“꺄~? 아바ㅡ 아빠ㅡ”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올려다보는 마왕이 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건 아닐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루는 신의 힘은 완벽하지 않았으니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깊은 곳. 그녀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잃어버리려고 하지 않은 무언가가 그녀에게 남아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빠야ㅡ 빠ㅡ”
나를 바라보는 마왕의 눈에는 온전하게 애정만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할 리가 없다고, 오롯하게 그렇게 믿는 친애의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녀가 나를 이토록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꺄아ㅡ”
천천히, 마왕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더라도, 그녀의 몸마저 갓난아이가 된 것은 아니였다.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갓난아이의 그것처럼 나약해진 것은 아니였다.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 위에 돋아난 뿔을 만졌다.
그녀의 힘을 빼앗고서, 더더욱 돋아난... 마왕의 증거이기도 한 내 뿔을 만지며 마왕이 방싯하고 웃었다.
“꺄우!”
그런 그녀를, 그녀가 스스로 부러뜨린 뿔이 떨어져 나간 흔적만이 남아있는 곳을 내가 더듬었다.
“꺄르르~”
간지럽다는 듯이, 웃는 마왕이 보인다.
“너는...”
아니, 그녀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였다.
그저 아이였다.
이제 막 태어난, 갓 태어난 아이.
“꺄우, 꺄우~”
툭, 툭하고 내 뿔을 만져대는 아이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가 끝내 잃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꺄우ㅡ”
마냥 내 뿔을 만지작거리는 그녀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애정.
처음으로, 그녀가 태어나서 느꼈던... 아버지로부터 전해 받았던 온기와 같은 것.
마왕이 내게 모든 것을 뺏겨가는 와중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했던 거와 같은 것을. 그녀는 나에게,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앗아간 나에게 갈구했다.
처음으로 그녀가 받았던 온기.
그 기억을 잃지 않은 채로, 나에게도 갈구했다.
그녀의 이마를 더듬던 손을 내려, 그녀에게 내밀었다.
꼬옥, 하고 내가 내민 손을 붙잡는 마왕. 아니, 이제는 마왕이 아니게 된 아이에게 내가 말했다.
“멜로니. 네 이름은 이제 멜로니다.”
“빠아ㅡ?”
여전히 옹알이하듯 소리를 내는 멜로니의 안아 들어 올렸다.
“꺄아~!”
내게 안겨지자 잔뜩 신이 나서 버둥이는 멜로니. 그런 그녀를 툭하고, 내 무릎 위에 올렸다.
“쓰읍...”
이후에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른 채로, 내 무릎 위에서 꺄꺄거리는 멜로니를 살펴보다가, 이내 넝마짜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그녀의 드레스를 걷어 올렸다.
그런 내 눈에 새하얀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만이 아니라 신이 나서 흔들어대는 멜로니의 두 다리 사이로, 보지 역시도 훤히 보였다.
마왕, 그렇게 불렀지만, 마왕도 결국 드래곤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맨들맨들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아우?”
갑자기 시원해진 하반신 때문인지 나를 돌아보는 멜로니가 보였다. 그 순진무구한 눈빛에 한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짜악!
“꺄앗?!”
퍼뜩, 하고 몸을 들썩이는 멜로니를 다른 손으로 짓누르며, 그녀의 엉덩이를 내리쳤던 오른 손바닥을 다시 들어 올렸다.
마냥 새하얗던 멜로니의 엉덩이에 내 손바닥 모양으로 물이 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조금이나마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도 느껴졌다.
“차라리 아니었으면 했는데.”
애당초 이런 이유로 오긴 했지만, 지금의 멜로니를 보고서 차라리 아니였으면 싶었는데. 샤르가 했던 말대로 멜로니의 엉덩이를 내리친 것으로 페널티가 해소되어가는 것을 느껴버린 이상, 이제는 그만둘 명분을 찾을 수가 없어졌다.
‘진심이야?'
‘네 힘을 돌려받고 싶으면 해야돼. 네가 맺은 계약, 네 스스로 맺은 언령을 통해 그렇게 된 거니까.'
샤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마왕에게 했던 말, 도발하느라 했던 말이 일종의 약속이 되어서 망가진 몸을 고정시키고 있다고 했던가? 내 몸을, 그릇을 고치려면 우선 적어도 그것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었지.
쌓은 업을 청산하지 않는 이상, 결국 계속 쌓일 뿐이라고.
이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런 말을 하면 안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어서 멜로니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짜악!
“후에에에엥~!”
처음에는 그저 놀란 것에 불과했지만, 두 번째로 엉덩이를 내리치자 멜로니가 울기 시작했다. 아파서 우는 것은 아니리라.
솔직히 아픈 건 내쪽이 더 아팠다.
모든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그래도 마왕이었던 그녀의 몸이 약할 리가 없었다. 근력이 한 자릿수로 떨어져 버린 내가 전력으로 엉덩이를 내리쳐봤자 아프기는커녕, 간지럽지도 않으리라.
오히려 때린 내 쪽의 생명력이 감소할 지경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멜로니는 서럽게 울었다.
설마하니 나한테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처음으로 제 부모에게 혼쭐이 난 아이처럼 울었다.
그런 멜로니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을 내리쳤다.
세 대, 네 대... 멜로니의 엉덩이를 내리칠수록, 점점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멜로니의 엉덩이도 점점 붉어져만 갔다.
열대째가 됐을 무렵에는, 멜로니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히끅거리며 울음을 참았다. 그저 꼬옥하고, 울기 시작한 멜로니에게 건넸던 내 한쪽 손을 붙잡고만 있었다.
“...이거 참, 못할 짓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계속해서 멜로니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암만 봐도 내가 개쓰레기가 된 기분이 드는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옆에서 보기엔 그렇게 보이긴 했으니까 안심해~?”
“대체 어딜 보고 안심하라는 건데.”
카르네의 팩트폭력에 속이 쓰려왔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전부 잃고서,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거나 다름없는 상태인 멜로니의 엉덩이를 마구 내리친 내가 쓰레기가 아니면 뭐가 될까.
시뻘겋게 변한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로,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들다시피 한 마왕의 모습을 보면 더욱이 모두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새끼는 쓰레기라고, 모두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잖아...”
이러지 않으면 이 세계가 좆망한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좆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긴 했다만.
“히끅... 흑...”
잠든 채로,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멜로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내 손길에 차츰 색, 색하고 숨을 고르며 깊은 잠에 빠져갔다.
정말로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아니, 되어버린 것처럼이 아니라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어버린... 애정을 갈구하는 갓난아이에게 엉덩이를 후려친 개쓰레기인거고.
이거 참.
“좆같네.”
무지 기분이 좆 같았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해도 도통 되질 않았다. 다만, 멜로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뿐이였다.
“...그나저나 이름을 지어주다니. 이 녀석을 거두기라도 할 셈이야?”
“그러면 안 돼?”
내 시선을 받은 카르네가 움찔하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실수했다.
조금 기분이 그래서, 무심코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카르네에게 짜증을 낼 일이 결코 아니었는데.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에루나한테 맡길 생각이야.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멜로니가 마왕이였던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지금은 이렇지만.
마왕이자, 동시에 드래곤이기도 한 존재였다. 언제 힘을 되찾을지도, 혹은 되찾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다시 드래곤에 맞먹는 힘을 지니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되리라.
더군다나, 이렇게 된 아이였다.
이미 치러야 할 대가를 모두 치루게 된 그녀에게 이 이상의 죄를 묻는 건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러니 내팽개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책임은 져야지.”
더군다나,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는 와중에, 내가 거두기로 한 녀석이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하겠다면야... 그나저나, 멜로니라니 무슨 뜻이야~?”
자신 때문에 내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는지, 카르네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선 그렇게 물었다.
움찔, 하고 이번에는 내가 그런 카르네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른 대로 말한 거뿐인데?”
“...흐응~?”
그런 내 반응에 카르네가 보내오는 의혹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가슴이 루시아만큼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멜론만해서 멜로니라고 지었다고 말하면 내 허리가 반으로 접힐 테니까.
물론, 접히면 안 되는 방향으로.
결코, 들켜서는 안 되는 진실을 가슴 속에 묻은 채로 멜로니를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안아 올렸다.
죽을 만큼 아팠던 것도, 멜로니의 엉덩이가 시뻘겋게 될 때까지 두들기다 보니 페널티가 해소된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만했다.
잃어버린 능력치도 전부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사람 구실을 할 정도론 돌아왔다는 뜻이였다.
물론, 여전히 골골대는 꼴이 변한 건 아니였지만.
“자, 그럼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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