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화 〉 355화
* * *
샤르 앞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신이 되고 자시고의 일은 나중의 문제였고 당장은 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 먼저였다.
애당초, 샤르가 말했던 계획대로라면 이 몸 자체가 신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되어줄 그릇 그 자체인데. 이게 산산이 박살이 난 상황이니 말이다.
안 그래도 원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희박한 확률이라고 했는데 이미 진작부터 계획이란 건 죄다 틀어진 데다가, 가장 중요한 그릇마저 이 꼬라지가 됐으니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당연히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후우...”
숨을 내뱉자, 그대로 서리가 되어 부스러지는 숨결이 보였다.
곁에서 날 꼭 끌어안듯이 부축해주고 있는 카르네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동사했을 것 같은 추위가 느껴졌다.
유일하게 적색룡ㅡ 불꽃을 관장하기에, 약화된 골렘의 몸으로도 날 따라올 수 있었던 그녀가 아니였더라면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가혹한 추위.
안 그래도 여리디 여려져버린 육체가 뼈에 사무치는 듯한 오한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괜찮아~?”
“응, 덕분에.”
내 몸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곁에 있기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렇기에 걱정스레 날 올려다보는 카르네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더욱이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따땃한 카르네의 체온으로 후끈후끈한 게 조금 살 것만 같았다.
아무튼, 그대로 카르네의 체온에 몸을 녹이면서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부러뜨린 자신의 뿔을 손에 들고서, 수백 겹으로 펼쳐진 마법진째로 얼어붙어 버린 마왕이 보였다.
샤르가 자신이 치러온 대가로 펼친 대마법.
시간마저도 동결시키는, 영구동토의 추위 속에 갇혀버린 여인을 바라봤다.
“...그래, 결국 너도 이유가 있었다는 거겠지.”
샤르에게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마왕이란 족속은 한없이 가엾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신들에게 버림받은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놀아난 드래곤에 의해 태어나서... 태어난 순간 버림받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저 하염없이 굶주렸을 가엾기 짝이 없는 존재.
우우웅ㅡ
활성화한 주시자의 눈을 통해서, 그녀의 과거가 보였다.
그녀만이 아니였다.
그녀에게로 이어진ㅡ 다른 마왕들의 과거 역시 보였다.
ㅡ그래, 태초의 마왕의 기억마저도.
“.......”
한없이 신에 가깝게ㅡ 그렇게 되도록 태어났던 그는 텅 비어있던,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슬피 울었다.
배가 고파서.
자기가 배를 찢고 나와, 허기짐에 물어뜯었던 부모의 온기를 찾아서.
단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태어나서, 당연하다시피 그렇게 했던 그도 결국은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이니까.
배가 고파서 울었다.
아이니까,
어미와 아비를 찾아 울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두 손으로 찢어낸 것이, 제 어미의 배라는 것을 어찌 아이가 알 수 있었을까.
자신이 처음으로 물어뜯은 것이 제 아비의 목이였다는 것을 어찌 아이가 알 수 있었을까.
자신이 처음으로 입을 축였던 그것이, 제 부모의 피와 고기였다는 사실을 어찌 아이가 알았을까?
몰랐을 것이다.
모른 채로 지은 원죄였다.
단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였다.
태어나기를, 죄에서부터 태어나서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난 것에 불과했다.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에 불과했다.
어찌 그런 아이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초의 마왕의 사정에 불과했다.
“너는 아니었겠지.”
태초의 마왕은, 타고나기를 본래부터 신이 이 세계를 위해 마련해두었던 여섯 개의 보옥을 오롯하게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타고 태어났다.
한없이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소리였다.
스스로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조차도 가능했을 정도로.
그렇기에, 태초의 마왕은 만들어냈다.
추웠기에.
배가 고팠기에.
그는 스스로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낳았다.
마물이라고 부르는, 마왕의 자식들.
스스로가 낳고, 만들어낸 자식이자 자신의 복제.
“그리고 먹었지.”
아이가 흘린 눈물과 비명 속에서 태어난 이들은, 그대로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낳고, 스스로 잡아먹는다. 그렇게 생명을 이으며 성장한 태초의 마왕은, 결국 마계에서 벗어나 제 고향으로 돌아가... 그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드래곤들에게 척살 당했다.
그리고 그가 낳았던 무수한 존재 중에서, 또다시 마왕은 태어나, 반복했다.
영원토록, 고통과 슬픔, 그리고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엾은 족속.
하지만 아예 반복했다는 것은 어폐가 있었다.
마물 또한 결국 성장하는 법이였으니. 두 번째 마왕이 된 존재는, 마왕이 만들어낸 수많은 자식과 동시에 식량에 불과했던 한낱 마물에 불과했지만. 죽어버린 제 부모가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와 같은 힘이 이어졌다는 사실도.
알면서도, 그는 또다시 반복했다.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계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였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마왕을 버리고서, 결국 그곳에서 죽게 하기 위해서 마련된 공간이였다. 마왕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을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또다시 죄를 범한 것은 결국 그의 선택이였다.
알면서, 자신의 형제와 자매들을 먹어치웠다.
알면서, 자신의 자식들을 먹어치웠다.
그 다음 대의 마왕도.
또 그 다음 대의 마왕도 그러했다.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온 마왕들은 어김없이 마계에서 벗어나ㅡ 이 세계를 침범했다.
“가엾다는 것은 인정하마. 불쌍하기 그지없는 것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가 내 아내들과 나를 해하려고 했던 것도. 네가 죽인 수십만이나 되는 인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그녀만이 아니라.
그의 전대였던 아비도.
그 아비의 전대의 마왕도.
반복하고, 반복되어온 역사 속에서 마왕이 일으켰던 혈겁들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였다. 그들이 흩뿌린 죽음과ㅡ 무수한 슬픔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였다.
많은 드래곤들이 죽었고, 더욱 많은 인간과 이종족들이 죽었다.
단지, 가엾은 희생자에 불과했던 태초의 마왕과 달리. 그 다음의 마왕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 그렇게 된 것들이었다.
배가 고팠기에, 더욱 풍요로운 곳으로 나가고 싶었기에.
너무나 추웠기에, 더욱 따듯한 곳에서 지내고 싶었기에.
제각각의 사정이 있다곤 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은 오롯하게 그들의 몫이였다.
“그러나 동정하마, 다만 용서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다만 나를 위해 살아라.
그녀가 죽는다면, 결국 그녀의 남매ㅡ 마계에 남아있는 무수한 마물 중에서 새로운 마왕이 다시 태어나, 반복하게 되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마물에 불과했지만, 마왕이 죽는 순간, 그 중의 누군가는 마왕으로써 다시 태어나게 되어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연쇄의 고리를 끊는다.
쩌억ㅡ
손을 뻗어서, 마왕이 갇혀있는 얼음에 대자 말 그대로 사무치는 추위가 내게로 전해져왔다.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게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던 손이 그대로 얼어붙어서, 살점째로 얼음조각이 되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맹렬하고, 혹독한 추위였다.
하지만 감당할 수는 있을 정도의 추위였다.
떨어져서, 바닥에 나뒹구는 손 대신에 텅 비어버린 오른손 위로 은빛으로 빛나는 건틀렛이 생겨났다.
활성화한 전능자의 손이 그대로, 시간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영겁의 얼음을 뚫고서, 마왕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대신, 네가 치러야 할 대가를 내가 대신 치러줄 테니.”
다만 나를 위해서 살아라.
“무지한 자의 진리.”
손끝에서부터 이어진 마왕의 기억이 전부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그녀가 처음으로 느꼈던 온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부터ㅡ 그녀가 얼어붙기 직전에 느꼈던 감정. 나와 드래곤들에게 느끼던 증오마저도.
오롯하게.
전부 내게로 전해져왔다.
무지한 자의 진리.
이름과 달리 그 힘은, 다른 어떤 신의 파편과 비교해서도 너무나도 잔혹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였다.
대상이 일궈온 인생, 그 업, 그가 겪어온 모든 경험마저도 전부 앗아가서ㅡ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였으니.
실로 신답다면 신 다운 힘이기도 했다.
설령 자신의 창조물에,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라고는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버릴 수 있던 신들이 남기고 간 힘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그럴듯했으니.
“쓰읍...”
그 대신에, 이 힘을 사용할수록 너무나 버거웠다. 당연했다. 가볍게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존재가 쌓아온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신이라면 몰라도ㅡ 반신, 그것도 이미 추레해질대로 추레해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반신에 불과했다.
사실, 힘만 따지고 보면 내가 마왕을 집어삼키는 것보다 마왕이 날 집어삼키는게 더욱 쉬울 정도로 약해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지금의 내게 저항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되려 잡아먹히는 것이 내쪽인게 당연할 정도로 힘의 차이가 심했다.
버거운 게 당연했다.
당연하니까, 당연하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버텨냈다.
“끄응...”
버티면 버틸수록,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하면 더할수록, 본래의 색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 대신에, 내가 힘겨울수록.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그녀 역시 점점 비워져만 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어받은 운명.
결국에는 세계마저도 먹어치우도록 예정되어있던 마왕의 업부터ㅡ 그녀가 타고난 모든 힘마저도.
내가 흐릿해져 가는 만큼, 그만큼 그녀 역시 흐릿해져 가는 것이 당연했으니.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다.
무수한 기억이.
무수한 경험이.
나라는 존재를, ‘이지경’이라는 존재를 흐릿하게만 했다.
불과 20여년을 살아온 인간 ‘이지경’이란 존재가 수백년을 살아온 마왕의 딸의 존재에게 침식당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다.
“일단은 나도 마왕이긴 하니까.”
정당한 방법으로 계승한 것은 아니긴 했지만, 어찌어찌 나 역시 마왕의 업을 이어받은 자였다.
극히 일부, 이 세계에서 드래곤에게 내려진 저주ㅡ 그 힘의 일부를 이어받은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마왕은 마왕.
마왕의 업을 마왕이 이어받는 것이기에 그다지 어려울 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이어받은 마왕의 힘은 부덕.
그릇된 것들을 삼키는 마왕의 권능 그 자체를 이어받은 존재였다.
포식자.
그래, 나는 포식자였다.
오롯하게 마왕이 이어받은 권능 그 자체 역시 나 또한 가지고 있었다.
삼키는 존재.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가 나보다 더욱 커다란 존재에게 집어삼켜지기전에, 그 전에 내가 그 존재를 삼켰다.
하나하나ㅡ 그녀가 처음으로 먹어치운 자신의 형제를 보며 느낀 감정을.
배가 채워진다는 기쁨과, 자신의 혈육을 삼켰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을.
자신의 아비가 죽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슬픔과, 그 죽음이 모욕당한 사실에 분노한 감정을.
뿌리깊은 드래곤에 대한 원한을ㅡ
전부 삼켰다.
“웁ㅡ”
그리고, 얼음에서 나와 내 품에 안겨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을 바라봤다.
마왕.
마왕이였던 여인.
“에으...?”
모든 기억을.
모든 힘을 잃고서.
나의 것으로 전락해버린 존재를 내려다봤다.
더 이상 그녀는 마왕이 아니였다.
마왕이란 존재는 전부 내게 이어졌으니.
대신, 빈껍질이 되어버린, 가여운 과거를 지닌 여자만이 거기에 있었다.
“네게 첫 명령을 내리마.”
갈기갈기 찢겨진 내장조각과 토해낸 순간부터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져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피를 입가에서 훔쳤 닦아냈다.
그리고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백치가 되어버린 마왕을 보며 말했다.
“엉덩이 딱 대.”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린 육신을, 그릇을 고치기 위한 첫 번째.
우선 내게 주어진 페널티부터 지우고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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