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 354화
* * *
“우리는 신을 만들어내기로 했어.”
담담하게, 언제나와 마찬가지의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샤르를 내려다봤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야 어렴풋이, 예상하던 상황이였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이제야 처음 접하게 된 아내들의 충격은 상당히 컸을 게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서 나와 마찬가지로 샤르를 바라보던 아내들을 살펴보자. 딱딱하게 굳어버린 루시아와 입술을 깨무는 크리샤, 손톱을 깨무는 아르카가 보였다. 아직 영문을 모르는 듯한 아샤와 그런 언니와 달리 어두운 표정의 아냐가 보였다.
끝으로 카르네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상의 침묵이 길어지면 좋지 않았다.
무언은 시답지 않은 오해를 낳는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진심이라든지, 그딴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상황도 썩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샤르는 날 얼려버리고, 결과적으로 내 몸이 이렇게 돼버리게 된 원흉 비스무리한 취급을 받는 모양인데 이때 이런 진실이 밝혀져 버렸으니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신이 된다는 거 말이야.”
그렇기에, 침묵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내가 그렇게 물었다.
“그건ㅡ”
“안돼요!”
내게 샤르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루시아가 이를 갈며 그렇게 외쳤다.
“샤르비오나,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상황은 이해했어요. 당신이 우리들의 부모세대의 드래곤이란 사실도, 이지경님을 소환한 이유가 드래곤의 멸종을 막기 위함이 아니란 것도, 어떻게든 이해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가능해요! 신을 만들겠다니? 우리 드래곤들조차도 결국에는 신의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에요. 그런 존재가, 신을 만들어내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요!”
그런 루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샤르가 보였다.
“그래, 터무니없는 소리야.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박수나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렇지만, 하고 샤르가 루시아를 올려다봤다.
무릎을 꿇은 채로, 루시아를 올려다보는 샤르는 오히려 루시아보다도 훨씬 크게만 느껴졌다.
“이 모든 계획은 네가 짜내었던 것들이야. 아네모네스.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우리는 네 계획을 따라서 우리 모두를 희생했어.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읏...!”
그런 샤르의 말에 뒷걸음질 치는 루시아가 보였다. 하지만 그런 루시아를 바라보며 샤르가 말을 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했어? 그래, 불가능해.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어. 한낱 실마리에 불과할 뿐인 가능성을 붙잡는 방법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 모두가, 네가 우리에게 말해줬던 것들이야. 아네모네스, 네가 말했지. 세상이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안 이상, 우리는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고. 불가능한지, 가능한지가 문제가 아니라고. 살고 싶다면, 살아남으려면 발버둥 쳐야만 한다고. 그것이 생을 가진 존재가 마땅히 해야하는 업이라고.”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샤르는 어쩐지 울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과거를 보았으니까.
ㅡ나를 소환하기 위해 만들었던 마법진.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보았던... 마법진을 위해서 샤르를 포함한 드래곤들이 심장을 뽑아냈던, 고룡은 샤르의 아버지였으니까.
“네게 우리는 설득됐어. 그리고 네 말을 따르기로 하고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어? 기억하지 못하겠지. 넌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으니까. 그런 네가 나한테ㅡ”
“...루시아를 너무 괴롭히지 말아 줄래, 샤르? 그래서 결론이 뭐야? 내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내 물음에 샤르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눈처럼 새하얀, 은빛의 눈동자가 나를 담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알 수 없어. 본래의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해도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아주 일말에 불과한 가능성에 불과했었으니까. 지금처럼 틀어질 대로 틀어진 이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원래 계획?”
“그래, 원래 계획... 아네모네스가 안배한 대로였더라면, 너는 이 세계에 소환되는 순간부터, 이지를 잃어야만 했으니까.”
그건 흘려듣기 어려운 말인데.
너무 담담하게 말해버려서 순간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이지를 잃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본래대로라면, 넌 이 세계에 소환된 순간부터 이지를 잃고... 한없이 여체를 탐할 뿐인 종마 그 자체가 돼야 했었으니까.”
어, 그거...
“...지금이랑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평상시 운행 중이던 나랑 별다를 바가 없었다. 눈 뜨면 하는 일이라곤 아이 만들기뿐이었으니. 사실 눈을 감고 있어도 하는 일이 그거였다.
내 말에 샤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냥 말했다.
“달라. 그 계획대로 됐었다면, 나도 지금쯤 임신 중이였을 테니까.”
그게 다른 점이였구나.
하긴, 나처럼 순서니 사랑이니 뭐니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안고 다녔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드래곤은 임신하기 힘들 텐데?”
무작정 많이 한다고 드래곤이 임신하는 생물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아니였다. 나만 해도 무던히 노력한 결과, 인간을 반쯤 벗어던질 무렵에서야 가능했던 일이였으니까.
그리고 내 물음에 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그런 경우를 염두해두고서... 소환된 존재의 종족을 흡정귀로 만드는 술식을 걸어뒀었어. 한때, 거인을 따르다가 멸종해버린 종족. 그 종족은 어떤 종족과도 아이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아네모네스의 안배.
루시아와 키스하는 순간, 느닷없이 발동했었던 안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안배가 발동되고서야 내 종족이 일부나마 흡정귀가 되었던 것도 떠올랐다.
“본래대로라면, 넌 소환된 순간부터 흡정귀가 되어서, 이지를 잃고 우리들을 안아야만 했어.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그야, 처음부터 그런 술식이, 그 술식을 위해 준비해뒀던 매개체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만약을 대비했던 아네모네스가 자기 자신에게도 걸은 술식 덕에 완전한 실패는 아니였지만... 결과적으론 우리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한 셈이였지.”
실수였어, 하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샤르가 보였다.
“...에루나야?”
머릿속에 떠오른, 드래곤이 안배해놓은 계획을 유일하게 어긋나게 할 수 있었던 존재를 떠올리며 그렇게 묻자 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에루나. 우리가 설계하고, 우리들의 몸으로 만들어낸 골렘.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유일무이한 골렘. 그녀를 만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들이 아직 연약하고 아무런 힘도 없을 알에서, 자아확립이 끝날 헤츨링기가 끝나기 무렵까지 우리를 수호하도록 명령해뒀어. 그리고, 그 수호의 업이 끝나면, 소환될 존재를 영원토록 따르고 보호하도록 하게 했지. 그리고 그게 문제였어.”
그녀는 우리가 한 계획을, 자신의 주인이 이지를 잃은 종마가 되는 것을 막고자 움직였으니까.
“그녀는 네가 소환될 마법진에 손을 대서, 본래 그곳에 있어야 할 하나의 편린을 뽑아 자신의 몸에 숨겨뒀지.”
에루나에게서 받았던 편린, 귀걸이에 깃들어있던 헤아리는 자를 떠올렸다. 어떻게 드래곤들인 아내들도 찾지 못했던 편린을 에루나가 지니고 있었는지 의문이였는데 샤르의 설명 덕에 풀리고 말았다.
“하나의 종족을, 이미 멸종해버린 종족으로 바꿔버리는 데는 마땅히 신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그것이 없어져버린 이상... 넌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소환된 거야.”
“...다행인가?”
“너에게는 그렇겠지. 우리에게는... 글쎄,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나 또한 보류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널 계획대로 하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건 다행이네.”
샤르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어찌저찌 경위는 알겠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는 것이 있었다.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되자마자 씨를 뿌려댈 뿐인 종마 신세가 됐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은, 어찌 됐건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결국에는 날 신으로 만들 계획은 전혀 오리무중인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날 어떻게 신으로 만들려고 했던 거지?”
“......”
샤르가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육신은 너도 눈치챘다시피 편린으로 만들어졌어. 신의 힘을 담은 파편. 그 파편으로 짜낸 그릇. 마땅히 신의 힘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셈이야. 거기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흡정귀가 되었을 네 종족... 그 종족은, 다른 종족과의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것 말고도 다른 특징이 있었어.”
이건 나도 알고 있었다.
“...힘을 흡수하지. 맞지?”
“그래, 맞아. 교접을 통해서... 대상의 힘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지. 그 종족이 끝내 거인과 함께 멸망한 것도, 그 힘 때문이였고.”
...대충 이해했다.
내가 어째서 편린을 흡수할 수 있는지도.
그리고 편린을 흡수할 때마다, 어째서 신체 일부를 잃어버리게 되버린지도.
힘을 합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 성질을 지닌 편린.
애당초 내 몸 자체가 편린으로 만들어진 것이니ㅡ, 당연히 새로운 편린을 흡수하는 족족 그 편린이 깃들 신체가 아작이 난 것이였다.
다른 종족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흡정귀로 만든 것도, 결국 내 힘을 늘리기 위한 것의 일환이였을 테고.
“...그리고 때가 된다면ㅡ 우리 모두가 멸종을 피할 수 있을 수준이 된다면... 너는, 그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예정이였어.”
“...신 만들기, 맞지?”
“그래, 맞아. 이지를 잃고, 우리와 아이를 만들어낸 너를... 우리는 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시키기로 한 거야.”
스윽, 하고 샤르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네 몸에, 신이 이세계에 남기고 간 또 다른 신들의 힘... 우리가 다스리는 여섯의 보옥을 먹이고, 그 육신 그 자체에 신성을 담을 계획이였어. 그러면... 너는, 신이 될 수 있었지. 설령, 그것이 무지할 뿐인, 그저 존재할 뿐인 신성에 불과하더라도. 네 육신은 그 존재 자체로 신으로서 존재할테니. 네 힘으로 마계를 틀어막고, 없어져버린 여섯의 보옥을 대체할 생각이였지. 그러면... 신이 존재하지 않아 무너질 예정인 이 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 전에, 루시아가 샤르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지경님을 이용하고, 끝내 희생시킬 계획을 만들었다는 소리인가요...?!”
“그래, 아네모네스. 네 계획대로라면 그렇게 될 예정이였지. 우리들이 소환한... 우리들의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우리들의 남편이였을 존재를. 우리들의 세계를 위해서, 빈껍데기로 만들어서, 단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로써 사용할 생각이였어.”
“아...”
무너지는 루시아를 지탱한 크리샤가 샤르를 노려봤다.
“...그래서, 그 계획이 지금은 실패했다는 거잖아? 너희가ㅡ 아니,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지경은 이지를 잃지 않았어. 그리고, 심지어 그 그릇이라는 것도... 이 바보의 몸뚱어리도 만신창이가 되버렸고. 이제 어쩔 생각인데, 지금...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말에 샤르가 날 쳐다봤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넌 그저 아무것도 모를 뿐인 희생자에 불과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아니야. 계획대로는 아니였지만... 너는 마땅한 조건들을 갖췄으니까.”
신의 육신으로써 준비한 몸을 가지고.
이미 여섯이나 되는 드래곤들을 안고, 그 힘을 흡수했다.
“거기에... 원래는 얻지 못했을, 다른 편린들도 얻었어.”
드래곤들이 마련했던 편린은, 그들이 찾아다닌 끝에 가까스로 구해낸 두 개의 편린뿐이였다. 하지만 나는 두 개를 넘어서, 여섯이나 되는 편린을 흡수하고 다루고 있었다.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 된 셈이야.”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넌 이지를 잃지 않았어. 너 스스로 존재하지. 네가 만약 신이 된다면... 만에 하나라도, 신이 될 수 있다면... 너는 온전히,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거야.”
전능하고, 전지한.
한 세계의... 유일한 신이 된다.
“그 때가 된다면, 너는 우리가 계획했던 모든 사실을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너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도, 단지 너를 희생해서 우리를 구하려고 했던 것도ㅡ.”
더더욱, 자세를 낮춘 샤르가.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그러니 부탁할게. 신이 되어줘. 그리고... 우리를 미워하지 말아줘.”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샤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서, 끝내 이마를 바닥에 댄채로 내게 애원하는 그녀에게.
이천년이 넘는 세월을, 드래곤에게 있어서도 짧지 않은 세월을...
더군다나 자신의 아버지의 심장마저 뽑아가며ㅡ 단지 멸망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을, 모든 것을 희생했을 그녀에게.
“내가 말했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내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욱신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몸을 움직여서, 내 앞에서 단지 사과할 뿐인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너희를 사랑하겠다고. 그렇게 약속했잖아, 그렇지 샤르?”
하물며ㅡ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되게 된 이유라던지 사정이라던지ㅡ 그딴게 어떻던간에.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과, 내 아이들이 태어날 세계를 위한 것이라면야.
“까짓거 해줄게. 신이든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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