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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남편-351화 (351/370)

〈 351화 〉 351화

* * *

“...으음, 아무래도 크리샤가 장난을 친 모양이네요.”

그리고 대충 그런 나와 크리샤를 보고 일련의 상황을 이해한 루미나, 아니 루시아가 쓴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나저나, 일단 얌전히 누워있기로 하긴 했지만 궁금한 게 있었다.

“그보다 다들 왜 그런 모습이 된 거야?”

크리샤만이 아니라 루시아도 저런 모습이라니,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했다.

설마하니 내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난치려고 로리화했을리는 없고.

그런 내 물음에 루시아가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지경님을 얼음에서 꺼내기 위해서 힘이 제법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들 영지로 돌아가서 보옥의 힘을 끌어와서 이지경님의 몸을 덮은 얼음을 녹였고요.”

평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루시아의 모습에서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뭔가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얼음이라, 마지막에 본 게 잘못 본 건 아니였구나.”

샤르와 그녀의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가는 광경을 떠올렸다. 상당히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혹시나 꿈이 아니였을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였던 모양이였다.

그리고 그런 내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네, 샤르비오나... 그녀가 펼친 대마법은 그 일대를 전부 얼려버렸으니까요. 지금도 그곳에서 이지경님만을 빼오는데 그쳤을 뿐, 여전히 얼어붙어있는 상태고요. 아무튼... 그렇게 이지경님을 덮었던 얼음 자체는 녹였지만 얼음에서 꺼낸 이지경님의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저희들 모두가 영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버렸죠. 그렇다고 이지경님을 홀로 둘 수도 없으니 저번에 사용했던 골렘을 조금 손봐서 곁에 있었던 거에요. 오늘은 저랑 크리샤의 차례였고요.”

대충의 사정은 알아들은 내가 루시아를 보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어있었어?”

“이 주 정도였네요.”

그렇게 말하는 루시아의 말을 듣고서 잠깐 멍때렸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무심코 넘어갈 뻔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오랫동안 얼어있었다.

“...카르네가 엄청 화났겠네.”

이걸 어떻게 벌충할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서.

“그나저나 몸이 이런 것도, 얼어있다가 깨어나서 그런건가?”

쩌억, 하고 그런 내 물음에 루시아의 미소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미소를 띤 루시아의 표정이 굳는 것이 보였으니까.

“...무슨 일 있어?”

“......”

내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루시아가 보였다. 크리샤의 표정을 살펴보자, 또 울먹거리는 크리샤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 말을 잘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지경님의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어요. 지금 느끼는 통증도... 아직 치료가 덜 된 상황이라서 그런 걸 거예요.”

무슨 일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내 몸에.

루시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억지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애를 쓰는 것이 훤히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큰 병에 걸린 사람한테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때때로 환자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보단 거짓말로라도 별것 아닌양 얘기하는 편이 좋은 것처럼, 루시아의 표정이 딱 그런 걸 말할 때의 표정이였다.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계속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 역시 알 수 있었다.

루시아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루시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다. 차마 그럴 수 없다는 듯이, 그랬다가는... 지금의 표정을 꾸밀수 없다는 듯이.

덕분에 엄청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 몸 상태가 그렇게 심각했나...

일단 지금도 엄청나게 아프니까 대충 심각한 건 알겠는데, 아내들이 모두 영지로 돌아가서 보옥의 힘을 끌어당겨서까지 내 몸을 치유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데도 저런 표정을 지을만큼 심각한 수준일 줄은 몰랐다.

“으으음...”

대충 눈을 끔뻑이자, 활성화된 주시자의 눈을 통해 나와 연결된 여섯 갈래의 마력 줄기가 보였다.

아내들이 하나씩 지배하고 있는 여섯 영지.

그 여섯 영지에 있는 보옥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력이 분명했다.

하나하나가 내가 가진 편린과 비교하면, 자신의 영역의 한정되긴 해도 진짜 신이 남긴 힘이라고 할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보옥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어마무시한 마력의 격류가 보였다.

사지가 뜯어진 정도는 가볍게 치유할 수 있는 대치유 마법을 몇십 번은 족히 쓸 수 있을법한 마력들이 끊임없이 내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그만한 양의 마력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내 몸이 이렇게 쑤신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마치 깨진 그릇에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마력은 끝없이 내 몸에 흘러 들어갈 뿐 채워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실제로 깨진 그릇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 고대로 내 몸 밖으로 뽑혀나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줄줄 새고 있다.

흘러들어오는 마력이 고대로 빠져나가는 걸 생각하면 줄줄이 아니라 콸콸 새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

잘은 모르겠는데, 진짜 장난 아니게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던 루시아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차렸는지 입을 열었다.

“...완전히 부서진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될 거에요. 고위급의 치유마법으로도 치료하기는커녕 현상유지에 급급할 정도로...”

“...그거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멀쩡히 붙이는 거 아니였어?”

“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잘린 게 아니라 부서진 거니까요.”

부서진 거랑 잘린 거랑은 다르구나...

루시아가 말하는 부서졌다는 게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설명을 요구하는 내 시선에 루시아가 눈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생명력까지 전부 끌어당겨서 저희를 감싼 게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에서, 거기에 한계에 가깝게 생명력까지 소진해서 그릇이 부서진 거라고... 거기에, 페널티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줬을 거예요.”

“페널티?”

“이지경님이 마왕에게 했던 선언, 그것도 용언으로 한 덕분에 일단은 맹세나 다름없는 것이 돼버렸으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마왕년에게 도발 삼아 했던 말 때문에 내 몸이 이 모양이 된 거라고? 아니 그거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거란 말에 황당해서 말을 잃은 나를 본 루시아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설명해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루시아 탓이 아니니까 그러지 마.”

“맞아, 이 멍청이가 사고 친 거니까.”

“......”

맞는 말인데 좀 슬프다, 크리샤... 하지만 크리샤에게 뭐라 말할 수도 없는게,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가 쿡 찌르면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였기 때문이였다.

아무튼 대충 상황은 알았다.

어째서 그녀들이 골렘의 몸, 그것도 저만큼 작은 소녀에 불과한 몸이 됐는지도.

보옥으로도 부족해서, 자신들의 마력도 전부 내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최대한 많은 마력을 보내기 위해서, 한계까지 아끼고 아낀 결과. 저만한 골렘을 유지하는 것도 최선이었을 정도로.

상황은 이해했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내 감각으론 자고 일어나보니 전신 불구의 장애인이 된 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것도 몸에 꽂힌 주삿바늘이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몸.

이런 사실이 믿어질 리가 있나.

“그래도 치유마법이 아주 효과가 없는 건 아니였던 모양이네요. 이지경님의 의식도 돌아왔으니 곧 완전히 치유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애써 밝게 말하는 루시아가 보였다. 처음 그녀를 봤던 때처럼, 가면처럼 덮어씌운 듯한 미소를 지은 채로.

저런 루시아의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거짓말이구나.

대체 얼마나 심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거 참, 크리샤가 했던 장난이 싹 잊힐 정도로 충격적인걸.

“음...”

다시 한번 몸 상태를 살펴봤다. 마력이 쥐뿔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투기도 마찬가지였다.

텅텅 비었다.

딱 그런 느낌이였다.

본래 이세계에 오기 전에는 있지도 않았던 힘이였던 둘인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까 엄청나게 허탈했다.

원래 없을 때보다는 있다가 없어지는 게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상태창.”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상태창」

「이름 : 이지경(베헤노스)」

「칭호 : 차원을 넘은 자, 단죄하는 자, 벌레만도 못한 자, 부덕의 군주, 드래곤들의 연인, 마왕, 릴리스의 아버지, 음마들을 굴복시킨 자, 초월자, 반신」

「성별 : 남성」

「나이 : 27세」

「직업 : 부덕의 왕, 마왕, 반신」

「종족 : 반룡반신)

「근력 : 2(F)」

「민첩 : 3(F)」

「체력 : 7(F)」

「지력 : 101(SS)」

「마력 : 0(F)」

「매력 : 0(F)」

「행운 : 1(F)」

「생명력 : 70/70」

「마나력 : 0/0」

「지구력 : 23%」

「고유 특성 : 차원을 지배하는 자(SSS), 변혁하는 자(SSS), 반신의 신체(SSS)」

「보유 특성 : *반신(SSS), 백금률(SS), *배덕의 군주(SS), *예속 각인 : 에루나 투아레(A), *마왕(S), *조교사(A), *검사(A)」

「보유 기능 : 주시자의 눈(EX), 불멸자의 심장(EX), 헤아리는 자(EX), 무지한 자의 진리(EX), 역치의 날개(EX), 전능자의 손(EX), *카마수트라(SSS), *베헤노스 검술(S), *용린갑주(S)...」

「상태 : 전 능력치 감소 중, 맹약의 페널티 적용 중」

“오오...”

상태창을 통해서 내 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니 한층 더 내 몸이 얼마나 씹창이 나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고유 특성이랑 보유 특성중 하나인 백금률, 그리고 편린으로 얻게 된 기능들을 제외하곤 죄다 예전의 포식자를 봉인했을 적처럼 죄다 봉인된 상태였다.

더군다나 신체 능력은 죄다 한 자릿수로 떡락했다. 그것도 체력을 제외하면 밑에서부터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대폭락 상태였다.

그나마 지력은 멀쩡한 걸 보니, 내 머리는 멀쩡한가 보다.

하긴 머리마저도 맛탱이가 갔더라면 이런 생각도 못 했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나저나 마력도 바닥에다가...

“...저기, 지금 내 꼴이 어떤지 좀 봐도 될까?”

1도 아니고 0이 돼버린 매력이 신경 쓰인다.

그런 내 말에 루시아와 크리샤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품에서 거울을 꺼내서 크리샤에게 건네줬다.

거울을 손에 쥔 크리샤가 주춤거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 충격받지는 말고. 알겠지?”

“걱정하지 마, 대충 어떨지는 상상이 가니까.”

상상은 가는데, 크리샤가 저렇게 말하니까 엄청 긴장된다.

“...그래, 그럼... 자.”

내 몸 위에 걸터앉다시피 한 크리샤가 거울을 들어다가 날 비췄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오...”

개씹창이 나 있었군그래.

이러니까 매력이 0이지.

루시아가 했던 말이, 완전히 부서졌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였다.

확실히 완전히 씹창이 난 상태였다.

오히려 이쯤 되니까 살아있는 게 이상한 수준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죄다 터져나간,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 몸을 억지로 기워낸 듯한 꼴이였으니 말이다.

“...이지경님?”

무슨 꼴이 되어있든 간에 놀라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솔직히 이 정도일 줄 몰라서 나도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한참이나 말이 없는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로리아, 아니 루시아가 보였다.

응, 이러고 있으면 더 걱정하겠지.

“일단, 루시아. 나 일어났다고 모두한테 전해줄래?”

“아, 그랬었죠. 네, 알겠어요.”

내 말을 듣고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아를 보다가 이번에는 크리샤에게 말했다.

“크리샤도 슬슬 무거우니까 내려와 주고.”

“...내가 무겁다고?”

“나 환자.”

“......그래. 알았어.”

설마하니 내가 내 상황을 이렇게 써먹을지는 몰랐다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몸을 일으키는 크리샤가 보였다.

“후, 좀 살겠네.”

“...그렇게 무거웠어?”

“그래, 크리샤. 살 좀 빼야겠다.”

“이거 진짜 몸 아니거든?! 골렘이라서 그런...”

“그래그래.”

손을 뻗어서 토라지려하는 크리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읏...”

화를 내려다가도 쓰다듬 한 방에 화를 가라앉히는 크리샤가 너무 귀여워서 껴안아주고 싶었다.

근데 그러면 엄청 아플 것 같으니까 그만두기로 했다.

그 대신에크리샤에게 말했다.

“금방 나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 같은 거 하지 않았거든.”

“거짓말하네.”

그런 내 말에 휙하고 고개를 돌리는 크리샤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응,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걸.

나 때문에 다들 우중충해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보기 좋았다.

“그럼 루시아, 크리샤. 다들 올 때 동안 난 잠깐 쉴 테니까 나가줄래?”

“굳이? 우리가 있어도 상관없...”

“알겠어요. 자, 크리샤. 이지경님의 말대로 하죠. 지금은 에루나도 없으니... 이지경님의 말대로 모두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저 혼자서는 힘들테니까요.”

"잠깐, 알겠으니까 잡아당기..."

뭐라 말하려는 크리샤를 데리고 루시아가 방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 한참 뒤에야 울컥하고 아까부터 올라오려던 걸 억지로 참아내고 있던 헛구역질을 했다.

구역질과 함께 피 뭉텅이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응, 이걸 어쩐다.”

피토까지 하다니. 내 몸이 존나 뒤져가고 있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느낌이라 엄청 기분 나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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