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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남편-350화 (350/370)

〈 350화 〉 350화

* * *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보석들이 잔뜩 박혀있는, 그 천장이 말이다. 처음엔 부담스럽기만 했던 천장이였는데 이젠 보면 볼수록 안심이 되는 천장이 되었다.

수면이 필요하지 않게 된 몸이 된 이후로, 이렇게 천장을 보며 깨는 경우가 드물어졌긴 했지만, 그 대신에 무리하거나 뭔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이랬으니 말이다.

천장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일이 어떻게든 잘 해결됐다는 의미였다. 일단 살아있어야 천장을 보든 말든 할 테니까.

“후... 으으읍!”

내 방의 천장을 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즉시 한숨을 내쉰 것을 후회했다.

한숨을 내쉬는 게 무슨 폐부를 찌뿌러뜨리면서 토해내는것마냥 고통스러웠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단지 한숨을 쉬었을 뿐인데 온몸의 삭신이 쑤셔왔다.

눈을 뜨고 한숨 좀 내뱉은 것뿐인데 이 모양이라니, 몸을 움직이면 어떨지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의식을 잃기 직전에 보았던, 뇌리에 아로새겨진 듯한 광경을 떠올리자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끄오오오읍...”

내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통증이란 통증을 죄다 신경에 쑤셔 박아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무수한 개미 떼가 야금야금 생살과 뼈를 씹어대는 듯한 느낌이였다.

한마디로 존나게 아프다는 소리였다.

에네스타한테 한참 두들겨 맞았을 때 앓아누웠던 건 장난인 수준으로 온몸이 아팠다. 물론 그때야 대부분의 충격은 막힌 덕분에 아픈 이유는 단순히 운동을 너무해서 생긴 근육통이였던 반면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였지만.

아무튼, 몸이 이렇게나 아픈 이유야 뻔했다.

한계치를 넘어서 몸을 굴려 먹은 대가였다.

그냥 불멸자의 심장을 최대로 활성화하는 것도 쓰고 나면 상당히 찌뿌둥해지는데, 거기에 몇 개나 되는 기능을 더하고 더해서 내가 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능력치를 뻥튀기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긴 그때만 해도 움직이는 대로 육체가 터져나갈 정도였다.

유효하게 맞았던 공격이라곤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가슴을 관통했던 마법뿐이였는데 온몸에 피칠갑을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불멸자의 심장이 뻥튀기 해주는 게 능력치만이 아니라 재생능력도 있어서 버틴 거지 그게 아니였으면 내 능력에 내가 자멸했을 거다.

아무튼, 그만큼 무리를 했으니 반작용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는데 이건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그래도 어떻게든 허리를 세우자...

“......”

뭔가 보이면 안 되는 게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

밤하늘처럼 새까맣고,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의 소녀가 내 허벅지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색... 색...”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들어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

내가 알고 있는 한 이토록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존재는 나를 제외하면 둘 뿐이었다.

하나는 크리샤였고 하나는 내 딸이자 연인(예정)인 로로였다.

그 둘을 제외하면 저마다 알록달록 자유로운 머리색을 가진 이세계인 중에서, 특히 이런 나잇대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내가 아는 녀석 중에는 없었다.

그럼, 이 꼬마애는 누구?

내가 모르는 검은 머리카락에, 그것도 내 방에 당연하다는 듯이 있는 소녀의 정체가 대체 뭘까?

적어도 나와 관계된 이란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있을 수 있을 턱이 없으니 말이다.

일단 에루나는 제쳐두더라도, 질투심 많은 우리 마누라들이 나랑 전혀 무관계인 여성을 내 방에 들여 보내줄 턱이 없었다.

...스스로 유추해낸 정보만으로도 엄청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쓰읍... 진정하자.”

동공이 흔들리는 것만으로 뇌가 흔들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나는 가까스로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기로 했다.

“후, 후우... 쓰으읍...”

심호흡하느라 폐가 짜부가 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진정했다.

다행히 통증 덕분에라도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꼬마애를 살펴봤다.

사실 꼬마라고 했지만 열댓 살은 돼 보이는, 아샤나 아냐보다 조금 어릴 뿐인 소녀에 가까웠다.

잠들어 있는지라 확실하진 않지만, 눈꼬리가 살짝 치켜세워진 게 한 성깔 할 것처럼 보였다.

잠든 모습이 엄청, 진짜로 천사 같지만 깨어있다면 뭔가 천사라기보단 날개가 검게 물든, 숨 쉬듯이 날 깎아내릴 수 있을 것 같은 타천사같은 성격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소녀란 소리였다.

그래, 내가 아는 누구를 엄청 닮은 소녀였다.

그래, 크리샤가 어릴 적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소녀였다.

“진정, 진정하자...”

다시 거칠어지는 숨을 진정시킨 내가 손을 뻗었다.

스르륵, 하고 머리카락을 건드려봤다.

움찔, 하고 그러자 소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흠칫한 내가 손을 떼어냈다.

“으으음...”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버린 나와 눈가를 부비며 잠에서 깬 소녀의 눈이 마주쳤다.

깜빡깜빡.

소녀의 눈이 깜빡였다.

밤처럼 어두운, 검은 눈동자.

“...일어났어?”

“어, 어어...”

내 대답인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듣고는 소녀가 게슴츠레 웃는 것이 보였다.

뭔가 장난스러운 듯한 그 웃음마저도 크리샤를 닮았다. 그 사실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아, 아이...”

설마하는 심정으로, 내가 지어줬던... 크리샤와 나 사이에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아이샤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을 때였다.

검은 머리의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삐쭉하는 미소를 짓더니 입을 벌렸다.

그리고 외쳤다.

“엄마아ㅡ 파파가 일어났어!”

“어흑?!”

몸 상태가 영 아닌 것도 잊고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가 욱신하고 쑤셔오는 통증에 다시 주저앉은 내가 신음을 토하며, 눈앞의 소녀를 바라봤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소녀가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왜애, 파파?”

그리고 확인 사살하듯이 재차 나를 파파라고 불렀다.

아니, 진짜로?

일어나보니까 딸이 태어났다고?

딱 봐도 크리샤를 닮은, 크리샤의 딸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가 나를 보고서는 파파라고 했다.

파파, 즉 아빠다.

즉 나보고 아빠라고 한거다.

그러니까, 저 소녀가... 내 딸이라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였다.

일어나보니까, 내 딸이 저만큼 클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고!

아니.

“아니.”

너무 당황해서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생각과 입이 같이 놀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턱하고 막혀버려서, 도저히 무슨 생각이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눈앞에 소녀가 내 딸이라는 사실보단, 내가 그만큼 오랫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사실에 당황해버렸다.

...진정하자.

그리고, 일단 정리해보자.

족히 십 년, 아니 드래곤인 나와 아직 반도 드래곤이 아니던 시절에 생긴, 크리샤와 나 사이의 아이다.

일단 반은 인간이라고 보면 될까?

설마하니 내가 강해졌다고, 반은 드래곤이고 반은 신이 되버렸다고 해도 이미 한참 전에 생겨버린 아이가 변할 리는 없었다.

즉, 아직 인간인 시절의 나와 드래곤인 크리샤 사이에 생긴 아이라고 보는데 옳으리라.

세세한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은 드래곤이라고 하면 될 거다.

그런 아이가 저만큼 자랐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걸까?

인간과 비슷한 성장이라면 십 년.

조금이라도 드래곤과 비슷했다면 족히 수십 년은 지났다는 소리였다.

아내들이 전생의 힘과 지식을 물려받음으로써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거지, 드래곤에게 있어서 대충 300년 가까이는 아직 어린 시절이라고 들었으니까.

즉 저만한 소녀라면, 드래곤의 기준으론 아직 300살 이내라고 보면 된다는 거였다.

반은 인간이니 그보다는 적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악의 경우엔 족히 수십 년은 지난 거로 봐도 좋았다.

“아니, 진짜...?”

내가 최악의 경우 수십 년, 아니 그보다 더 심하면ㅡ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과 같다면, 족히 수백 년은 잠이나 퍼자고 있었다고...?

남편이란 작자가 잠이나 퍼자고 있는 동안, 크리샤가ㅡ 아니 크리샤만이 아니라 루시아나 아르카, 아샤와 아냐, 카르네... 거기에 에네스타까지 홀로 아이를 낳고 키웠다는 소리가 아닌가.

“오... 오오...”

이런 미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올 크리샤의 잔소리를 시작으로 온갖 구박을 들을 것만 같았다.

아니, 잔소리로 끝나면 다행이지... 그대로 멱살을 붙잡힐지도 몰랐다. 아니, 멱살로 끝나면 다행이지... 정말로 내가 의식을 잃은 채 그만한 시간이 흐른 거라면, 멱살로 끝날 리가 없었다.

...내가 대체 무슨 꼴을 당할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지저스.

그때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거의 본능적으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문을 향해 시선을 옮긴 내 눈에, 황금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살짝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파파라니 지금 무슨...”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카락처럼, 황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아, 어. 어어억...!”

딱 봐도 루시아와 나 사이의 딸이였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인데도, 벌써 똑 부러질 것 같은 얼굴의,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소녀와 눈이 마주친 내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 인정해야 했다.

아마 너무 무리한 탓에, 아니면 마지막에 보았던... 주변의 모든 것들을 얼려버리던 샤르의 마법에 의해 얼어붙은 탓에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의식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내 자식들이 태어나고, 저만큼 자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루, 루...”

루미나오스, 나와 루시아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딸이라면 지어줄 예정이었던, 루시아에게 그렇게 지어주라고 말해주었던 이름.

루시아에게서, 빛에서 태어났기에, 빛과 별의 의미를 담아서 지은 이름.

그 이름이 입에서 나올까 말까 하다가.

“아...”

마찬가지로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녀가, 나를 보더니 환하게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그마저도 루시아를 너무나도 닮은, 태양이 지상에 내리비추는 황금빛처럼 주변이 환해지는 것만 같은ㅡ 눈이 부신 미소를 지으며, 내 딸이. 루미나가 입을 열어서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이지경님?”

“...으으응?”

파파가 아니고, 이지경이라는 내 이름이 날 것 그대로 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당황한 내 눈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이샤가 보였다.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이 입술을 꽉 깨물면서 그러고 있는 아이샤.

아니, 아이샤가 아니라...

“푸, 푸흐흡... 푸하하핫!”

이제는 숨기기 힘들다는 듯이 빵하고 터져버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구 웃기 시작하는 아이샤, 아니. 이유는 몰라도 로리화한 크리샤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

속았구나.

날 속였구나...!

“크리샤, 너...!”

“날 보는 표정이 바보 같길래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였나보네?”

그런 크리샤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휙휙하고, 내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한 크리샤가 도리어 날 덮쳤다.

“무, 무슨 힘이...”

장난 아니게 강한 크리샤의 힘에 이렇다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서 그대로 깔리자, 그런 나를 깔아뭉갠 크리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내가 강한 게 아니라, 네가 약해진 거야. 지금 이 몸은, 진짜 아무런 힘도 없거든? 근데 그것보다 넌 더 약한 거고. 그러니까 무리해서 괜찮은 척 하지 말고 얌전히 누워나 있어.”

“......”

웃는 얼굴로, 하지만 그 속에 나를 걱정하는 것을 억지로 숨긴 듯한 미소를 띤 채로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가 보였다.

...무리하고 있는 거 들켰구나.

손을 무슨 바람 빠지는 풍선마냥 대충 휘적거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는데, 그런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다 들킨 모양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런 크리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웃느라 나온 거라고 치기엔, 그 밑으로도.

또 그 밑으로도.

흘러내렸다가, 말라붙어버린.

몇 번이고 흘러내린 눈물이, 또 몇 번이고 다시 말라붙어버린 듯한 자국들이 보였다.

몇 번이나 그랬던 걸까.

얼마나 울고 있었던 걸까.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낸 듯한 흔적들을 찾게 됐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내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생기기라도 했어?”

“...응.”

정말로.

조심스레 손을 뻗어, 이미 말라붙어버린 눈물자국을 더듬었다. 흠칫하고 몸을 떠는 크리샤가 보였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엄청나게 사랑스럽네. 크리샤.”

“...바보.”

그런 내 말에 툭, 하고 내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진짜 바보 멍청이. 내가, 우리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몇 주나 퍼질러 자기나 하고...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도 않고... 응?”

“미안.”

“나는, 정말로... 네가... 읏...”

뚝, 뚝하고 가슴팍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엄청 무거웠다.

“그렇게 걱정시켜놓고, 일어났더니 날 보자마자 그런 표정이나 짓고 말이야... 이, 바보 멍청이!”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할까. 눈을 떠보니 로리샤가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그런걸 말할 수 있을 수가 없었다.

그 크리샤가 울고 있는데, 할 말이 있어도 해선 안됐다.

“...그러니까, 괜히 강한척 하지 말고. 내 말 알아들었어?”

한참이나 울던 크리샤가 조금 진정이 됐는지 부끄럽다는 듯이 새침하게 날 쏘아붙이며 그렇게 말했다.

응, 이제야 좀 크리샤다웠다.

“...알아 들었냐니깐?”

“응... 얌전히 누워있을게.”

“그래, 잘 생각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크리샤 덕분에 마치 아기라도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면 누나 플레이를 하고 싶다곤 했지만, 아기 플레이는 아니였는데.

음...

“응애, 크리샤 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누워있겠다고 하지 않았어?”

크리샤의 말에 그냥 얌전히 누워있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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