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5화 〉345화 (345/370)



〈 345화 〉345화

루시아의 입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힘든 거친 말에 순간 내가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워낙 소곤소곤 속삭이듯이 말하기도 했고, 도무지 루시아가 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도 않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쁘득, 하고 마왕의 이마 위로 돋아나는 실핏줄을 보고서 내가 들은 게 잘못 들은  아니란 걸 알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였구나...

그리고 그런 마왕에게, 루시아는 조소하며 말을 이었다.

“...하긴, 척박하기 그지없는 거지 소굴이나 다른 바 없는 마계에서 빌어먹다 기어나온 마왕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그런 점에선그나마 보기 흉한 몸을 가릴 생각이라도 했다는 것을 칭찬해줘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죠. 혹시 먹을 거라도 필요하신가요? 원하신다면 엘프들이 먹다 남긴 과일 찌꺼기 정도는 기꺼이 줄 수 있답니다?”

이어지는 루시아의 말에 마왕의 이마에서 돋아나는 핏줄의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그런 루시아를 바라봤다.

언제나 고상하던 루시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심지어 크리샤와 진심으로 싸우려고 했을 때도 그런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녀가, 빌어먹느니 뭐니하는 말을 연신 내뱉은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근데 루시아의 전생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격인 드래곤이 마왕의 거시기를 잘근잘근 밟아 뭉개면서 했던 말들을 생각해보면... 그 지식을 전부 이어받은 루시아가 그 정도도 못할 건 하나도 없었다.

설마...이제까지 본 루시아의 모습이 내숭이였나?

아니, 그건 아닐 거다. 하지만 적어도, 루시아 역시 한 성깔 한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화나면 장난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마왕 쪽도 마찬가지였다.

스윽, 하고 루시아를 내려다본 마왕이 피식하고 웃더니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후후, 천박한 꼴을 보고 간악한 찬탈자가 붙어먹은 저급 음마인  알았는데 이제보니 망할 도마뱀이였네요? 세상에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딴 옷을 입을 수가 있는 거죠? 혹시 그 크기만한 젖탱이에서 나온 자신감인가요? 머리로 가야 할 영양분이 전부 그딴 곳으로 쳐가서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만 좀 가려주시겠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천박함이 옮는 것 같으니.”

그렇다, 마왕도 한 성깔하는 것이였다!

빠지직, 하고 이번에는 루시아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꿈틀거리는 눈가를 보아하니 제대로 빡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차마 마왕의 말에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하는 루시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루시아의 옷차림이 좀 꼴리게 생긴 건 사실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헐벗은 거나 다른 바 없는 마왕보다는 가릴 건 다 가렸지만, 말 그대로 가리기만 한 루시아 쪽이 뭐라고 해야 할까 훨씬 꼴린 차림인 건 사실이였으니까.

거기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전부 벗어서 대놓고 알몸인 것보다 보일 듯 말 듯 은은한  더 꼴린다고.

은꼴이라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왕이 말하는 천박함이 꼴린다는 것이라면, 루시아쪽이 훨씬 천박한 게...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하지 좀 말자,  바보야?”

그렇게 말하며 내 옆구리를 비틀 듯이 꼬집은 크리샤가 이내 루시아에게 말했다.

“너도 조금 진정해, 멍청아.”

그런 크리샤의 말에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루시아가 보였다.

“죄송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알면 됐어, 그보다... 저거 마왕 맞지?”

“네, 그건 확실하네요.”

“흐으응...”

루시아의 말에 마왕을 살펴보듯 쳐다보는 크리샤와 마왕의 시선이 마주치는 것이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품평하듯이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네. 보통 천년 주기로 나타나는 녀석이였으니까. 게다가... 힘도 엄청나게 강해 보이고.”

“...확실히 그렇네요. 마계에서 넘어온 마왕은 보통 본래의 힘의 반도 채 쓰지 못할 텐데.”

크리샤의 말에 그제서야 마왕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루시아도 심각한 표정이 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둘을 내려다보던 마왕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어머, 그래도 거기에 껌둥이는 생각이라도 하는 걸 보니 옆보단 조금 낫네요. 천박한 옷차림인 건 맞지만. 그래도 젖탱이만큼은 옆에 있는 젖소인지 도마뱀인지 모를 것보다는 겸손하니까요. 그래서 머리가 좀 돌아가나보죠?”

“...뭐?”

빠드득, 하고 단 한 번에 크리샤를 딥빡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마왕의 언변에 감탄했다.

말만 들어보면 루시아보다 크리샤를 높게 평가한 것 같지만, 실상은 지금 자기보다 가슴이 루시아는 젖탱이가  젖소니 뭐니하면서 깠지만, 반대로 자기보다 가슴이 작아 보이는 크리샤에겐대놓고 가슴이 작다고 디스한 거니까.

크면  대로 얕보고 작으면 작은 대로 얕보는, 실로 마왕다운 내로남불에 나도 모르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

“크윽...”

크리샤한테 옆구리를 잡히고 있었다는 걸 까먹었다.

“후, 후후... 후후후... 재밌는 소리를 하네. 뭐? 겸손? 내 가슴이, 겸손하다고? 후, 후후후후...”

꽈아아악,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크리샤가 내 옆구리를 쥐어뜯는 악력이 점점 강해져 갔다.  애꿎은 내 옆구리 가지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크, 크리샤...?”

이것 좀 놔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는 크리샤가 보여서 닥치기로 했다.

“이번 대의 마왕은, 유언으로 남길 말이 그렇게도 없었나 봐?”

“저런, 겸손한 줄 알았는데 몸만 그렇고  잘난 줄 아는 도마뱀인 건 똑같았네요?”

“헤에, 좋아. 네 모가지를 뽑아버리고, 그 볼품없는 뿔에다가 지금 한 말 그대로 적어줄게.”

“그게 가능하다면, 어디 한  해보시던지요.”

부들거리며 간신히 비틀 듯 미소를 띠고는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와 그런 크리샤의 말에 피식하고 웃는 마왕.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뻔했다.

이미 개빡친 크리샤의 패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나저나 조금 말이 통하나 싶었더니, 착각이였네요. 아무래도 영양분이 머리에 미치지 않은  옆에 있는 천박한 도마뱀이랑 다를 바가 없었나 보군요. 하긴, 그러니까 그런  옷이랍시고 입었겠죠. 그것도 깨닫지 못했다니,  실책이에요.”

키득거리며 마왕이 손을 휘젓자, 그녀의 뒤편에 있던 문으로부터 무언가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 기어 나온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 너머로 나온 것은, 뼈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팔이였으니까.

“하지만, 멍청한 도마뱀들 덕분에 시간을 벌었으니 이득이였네요.”

“......”

“......”

그리고 그 광경을 보게  아내들이, 방금까지 분노했던 것도 온데간데없이 안색이 창백해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작 뼈.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거대하기만 할 뿐인 뼈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그 거대한 뼈의 팔이 쥐고 있는 것.

그 팔만큼이나 거대한 창은 특히나 어마무시한 힘이 담겨있었다.

“...큰일인 거얼?”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르카.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는 것이 졸음이  달아난 듯 싶었다.

아르카가 저런 얼굴일 적은 제대로 화가 났을 때 빼곤 보기 힘든 거였는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아르카의 말에 엄청나게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저걸 보자마자 뭔가 등골이 오싹오싹한  넘어서, 다리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본능적인 거부감. 꺼림칙함. 태생부터가 저것에 대하여 알고 있는 듯한, 피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뼈를 보는 순간부터 그랬는데, 그보다는 그 뼈가 쥐고 있는 창이 더 문제였다.

고오오오...

마치 쐐기처럼 꼬아져 있는 창은, 창이라고 하기보단 거대한 꼬챙이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솔직히 창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물의 척추뼈를 통째로 뽑아서 다듬은 것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이질적이고, 야만적인 형태의 창은, 머나먼 과거의... 지극히 원시적인 창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긴 거랑 달리, 거기서 느껴지는 힘은 진짜였다.

그리고, 뼈만 남아버린 팔과 비교해서 꺼림칙하다고 해야할까, 거부감은 저 창이 더하면 더했다.

아니, 뼈만 남은 팔이 단순히 꺼림칙하다는 정도라면, 저 창은 흡사 천적을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창이 뭔지 모르겠지만, 장난 아니게 위험한  분명했다. 적어도, 저거에 맞는다면 아픈 꼴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오싹오싹하고, 등골이 떨려오는 게 진짜 장난 아니였다.

나만 해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본신에 비하면 훨씬 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골렘의 몸을 빌리고 있는 아내들에게는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창백한 것을 넘어서서, 이젠 새하얗게 질린 수준에 이른 아내들의 얼굴이 보였으니까.

꼬옥, 하고 어느새 다가온 아샤와 아냐가 나를 끌어안아 왔다.

“오빠...”

“저거... 무서워...”

무서운 거라곤 에루나의 잔소리뿐이라고만 생각했던, 천진난만한 독불장군 그 자체였던 아샤와 아냐마저 겁에 질려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아내들을 보며 마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제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오만하고, 오만한... 저주받을 도마뱀들아? 나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패배마저 욕보인 너희 족속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내가, 그저 400년을 벌레 같은 인간들의 사이에 숨어서, 그저 그 긴 시간을 가만히 버텨온 줄 아셨나요?”

우우웅...

그녀의 발밑으로부터 솟아오른 촉수들이, 뼈밖에 남지 않은 팔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질척한 마력들이, 이내 뼈 위로 근육과 힘줄, 살가죽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자, 보도록 하세요. 당신들의 조상이였던 도마뱀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던 자의 힘을. 그가 당신들의 조상의 척추를 뽑아 만든 당신들의 천적을.”

무슨 척추뼈처럼 생겼다고 했는데, 저거 진짜 척추뼈였나보다.

그것도 드래곤의 척추뼈.

뭐야, 왜 거깄어요. 돌려줘요.

드래곤의 뼈가 왜 드래곤도 아닌 녀석한테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졸라 비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금니 하나로 만든 광휘랑은 비교도 안되는 무기였다.

근데 그런 무기를.

어느새 완전히 육체를 수복해서는, 칠흑 같은 근육으로 가득찬 거대한 팔이 쥐고서, 이쪽을 향해 겨누었다. 그 순간에 쭈뼛하고, 소름이 돋아올랐다.

그러자, 창으로부터 투기가 솟구쳤다.

고오오오오ㅡ!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울림과 함께, 불타오르는 거대한 투기.

내가 단번에 도시에 있는 마수를 지워 없앴던 투기와 맞먹는다면 맞먹을 거대한 투기를 보고서.

“자, 드래곤 슬레이어. 제게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갑자기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 튀어나와서 순간 벙찔 뻔했지만 창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투기를 보고서 정신을 차렸다.

드래곤 슬레이어.

내 다리 사이에 달린 녀석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용을 죽이는 데 특화된 무기를, 한때 드래곤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거인의 시체가 휘둘러오는데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촤아악ㅡ!

뻗어 보낸 그림자의 손으로 아내들의 허리를 휘감으며, 나 역시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콰과과과가가가ㅡ!!

나와 아내들이 방금까지 있었던 곳들이 거인의 창이 뿜어낸 투기에 통째로 불살라 사라지듯이 도려지는 것이 보였다.

이미 뒈져버린, 거인의 뼈가 뿜어내는 투기 자체만으로도 이미 초월적인 폭력  자체였는데 거기에 드래곤의 뼈로 만든 용살 특화 무기라니.

맞으면 반은 드래곤인 나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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