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8화 〉338화 (338/370)



〈 338화 〉338화

혹시라도  새끼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머릿속으로 내 아내들을 가지고서 이렇고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 훅, 하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였다.

뭐지 이거.

엄청 기분 나쁜데?

아니 기분 나쁜 수준을 넘어서,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혐오감, 아니 그보다 더한 좆같음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죽여버릴까.

아니, 죽이는 거로는 부족했다. 우선 기분 나쁜 저 눈깔을 후벼 파내고서, 그 안에 녹은 쇳물을 들이 부어버리고 싶었다.

펄펄 끓는 쇳물이 이내 굳어, 비어버린 두 눈을 대신해서 채우고서. 영원한 어둠으로써 드리우리라.

아니,  전에 먼저 저놈의 것을 잘라다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고개를내저었다. 아니, 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여기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함이지 내가 깽판을 치려고 온  아니였다.

그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흘끔하고 아내들을 봤을 뿐인 란자크의 눈을 뽑니, 뭐를 뽑니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 방금까진 이렇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 본 상대를 이토록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였다.

이성적으로 할 생각이 아니니까.

“...왜 그러시나요, 이지경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나를 걱정스레 묻는, 란자크따위에게는 일절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루시아의 말에 살짝 웃으며 대답하고선, 나는 비활성화 상태로 두었던 무지한 자의 진리를 활성화시켰다.

우우우ㅡ

낮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휘광으로 이루어진 고리가 서서히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내가 란자크에게 느끼고 있는 불쾌함이 조금씩 희석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띠링~

귓가에 울리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불쾌함이 가셨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의 기능 ‘무지한 자의 진리’를 활성화합니다. 상태이상 ‘용의 독점욕’. ‘용의 질투’, ‘용의 본능’을 중화시킵니다.]

아, 역시.

딱히 짐작이 가는 거라곤 없는, 전조도 없는 이상한 상태라서 혹시나 싶었는데 이거 반룡이 되면서 생긴 부작용 비스무리한 거였나보다.

아니, 비슷한 전조야 용화가 시작됐을 때부터 있기야 했는데... 그게 반이나 용이 되면서 더욱 심화된 느낌이였다.

아무리 그래도 상태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심화됐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근데 이게 고작 절반만 용화됐을 뿐인데  정도란 것에 나는 아내들을 살펴봤다.

...여태껏 내가 다른 여자랑 붙어있을 때마다, 그녀들이 무슨 심정이였을지, 얼마나 괴롭고 힘겨웠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벌레굴에 온몸이 던져진 채로, 산채로 뜯어먹히는 듯한 기분 나쁜 혐오감, 불쾌감.

그저 내 소유의 것을 바라봤을 뿐인 란자크에게 느끼는 과하다 못해 비이상적인 질투. 이건 저주라고 할 만했다.

드래곤이 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숫자가 줄어든 계기가 질투라는 사실도, 과연 이 정도라면 그럴 만도 싶었다. 혹시라도 드래곤간의 삼각관계라던가, 사각이라던가,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서로 말 그대로   하나는 죽는 혈투를 벌였을 테니까.

그렇게 줄고 줄어서, 불과 전 세대의 드래곤은 아내들의 어버이, 혹은 전생이나 마찬가지인 세대에 이르러서는열이 되지 않았던 것이고.

“...어머?”

갑작스레 품에 안겨진 루시아가 깜짝 놀란 듯 그런 소리를 냈다가, 이내 후후하고 웃으며 나를 끌어안아 왔다.

“잠깐~? 뭐하는 거야~?!”

“이 바보가! 루시아 너는 뭐가 좋다고 끌어안고 난리야?!”

“...흐으응? 뭐야아, 혹시 그런 플레이가 하고 싶어진 거야아?”

그런 나를 보며 제각각 반응을 보여오는 아내들 역시, 그림자의 손으로 끌어당기듯이 내 곁에 끌어와 품에 안았다.

덕분에  팔에 루시아와 크리샤, 그리고 내 가슴팍에 아르카와 카르네를 동시에 끌어안은 듯한 괴상한 형태가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두를 평등하게 안아주는 방법은 이뿐이니까.

아무튼, 서로가 내 품에 안기려고 드는 몰골이 된 우리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엄청 기괴하고 두려운 것을 보는 듯한 얼굴인 란자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아내들이다.”

“허, 허면 앞선 그 두 분께서도...?”

“물론, 그 둘도 내 아내지.”

순간적으로 란자크의 표정이 묘해졌다.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꺼림칙해보이는 표정인데... 뭐지, 이 기분.

다른 의미로 기분이 나쁜데?

 새끼 지금 내 욕하고 있는 거 아니지?

지금 저거  페도새끼라고 생각하고 있는  같은데.

확실히 아샤랑 아냐는 겉보기에는 어린 소녀에 불과하긴 했지만, 어찌됐건 그 둘 역시 드래곤이였다. 성장이 조금 더딜뿐이지 지금도 매일 조금씩은 자라고 있고. 다른 아내들이 그렇듯이   조금만 기다리면 쭉빵한ㅡ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아샤와 아냐도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일단 연령상으로 보면 누나뻘인 거다. 아니, 누나라기보단 누님이지.

문득 그 둘에게 내가 누나라고 부르는 상상을 해봤다.

뭐지?

정신 나갈 것 같은데.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뿐,  둘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일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하는 짓만 보면 로로보다도  철이 없는 둘에게 절대로 누나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누나라고 부를 일이 있다면 아샤나 아냐보다는 루시아나 크리샤, 아르카... 그리고 조금 후하게 쳐줘서 카르네까지가 한계이리라.

확실히 루시아나 크리샤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기도 하고, 아르카도 조금 묘한 구석은 있어도 누님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니까. 카르네는 덤벙되더라도, 조금 치켜세우면 우쭐대면서 어른인체하는 누나로 치면 될테고.

흐으으으음...

누나라...

“......”

“......”

“......”

“...뭐, 왜?”

갑자기 품에 안겨있던 아내들이 슬쩍, 밀어내듯이 떨어지더니 나를 흘겨보는 것이 보였다. 난처하다는 듯, 별 꼴이라는 듯, 재미있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듯, 제각각 다른 표정으로나를 쳐다보던 아내들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정 관리 좀 하지?”

“뭐어, 안 봐도 뻔하지이. 또 바보 같은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 거얼?”

“아무리 그래도 이런 데서까지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내가  어쨌다고.

그저 아내들에게 누나라고 부르면서 칭얼거려보는 상상을 해봤을 뿐인데 너무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칭얼거리는 내게 젖가슴을 물리는 루시아나, 매몰차게 거절했다가도 계속 졸라대면 이내 싫다는 표정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훑어주며 대딸해주는 크리샤나, 귀찮다는 얼굴로 입술을벌려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빨아주는 아르카나, 우쭐대면서 내가 해달라는 플레이를 해주려고 어설프게 누나인 체하는 카르네를 상상했을 뿐인데.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상상만 했을 뿐인데 진짜로 너무했다.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관계로 일을 마치고서 돌아가면 해달라고 졸라댈 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오빠, 빨리 왔네~!”

“언니랑 아냐가 오빠한테 주려고 잔뜩 들고 왔어~!”

그렇게 말하며 뛰쳐들어온 아샤와 아냐가 우리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아샤는 오빠한테 맛있는걸 주려고 열심히 했는데.”

“왜 우리 둘만 쏙 빼고 그러고 있어?”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품에 안겨있는 루시아와 크리샤, 그리고 아르카와 카르네를 보고서 그렇게 말하는 둘을 보고서 팔을 벌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어주는 아내들과, 그렇게어찌저찌 명이 더 들어올 공간이 생기자 둘이 눈을 빛내며 뛰어들 듯이 내게 안겨 왔다.

아무튼 뛰쳐 들어온 아샤와 아냐마저도 내게 안겨 오고 란자크의 표정이 한층 오묘한 진리를 들여다본 현자와 같은 형상이 되었지만, 그런  중요하지 않았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란자크의 생각 따위야 어찌 됐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아샤와 아냐의 뒤를 이어서 주방장과 하녀들이 실어날라온 요리들을 먹어봤는데 과연 아샤와 아냐가 내게 그토록 먹이려고 들었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꽤 맛이 좋았다.

아내들도 호평한 것을 보니 대단한 요리기는 했다. 온갖 산해진미,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에루나가 해왔던 요리로 단련된 아내들도 만족하게 할만한 요리를 내올 수 있는 실력은 그다지 없을 테니까.

 입맛에는 에루나의 것이 좀 더 나았지만.

그렇게 적당히 요리도 즐기고, 란자크의 안내를 받아서 이곳저곳 구경도 해보기도 하고 인어들을 만나보기도 하면서 있다가 문득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느긋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엄청 느긋하게 아내들과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오빠, 저쪽에 대머리들이 잔뜩 그려져 있어!”

“엄청 웃긴 그림이야!”

“선대 왕들의 초상화입니다만...”

아샤와 아냐의 말에 란자크가 비질땀을 흘리며 그런 둘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것이 보였다.

란자크 왕국의 왕들이 대대로 탈모 유전자를 타고난 근본 있는 대머리 집안인 걸 알게   둘째치고서,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아샤, 아냐. 이제 그만 놀고 가봐야지.”

“에, 벌써?”

“어차피 지금이나 좀 있다가 가나 거기서 거기 아니야?”

그것도 그렇긴 한데.

빨리 끝내고 천공성에 돌아가서 누나 플레이가 하고 싶다고.

아직 샤르의 차례가 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누나 플레이를 즐긴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이런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

“어서 끝내고 가서 놀아줄게.”

“흐으으음~”

그런 내 말에 잠깐 고민하던 아샤와 아냐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대신 잔뜩 놀아줘야 돼?”

“돌아가면 정말로 잔뜩 놀거니까~”

뭔가 지금 아샤랑 아냐가 말하는 논다랑 내가 말하는 논다가 서로 맞지 않는  같은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물론 착각이든 아니든 바뀌는  없지만.

“제국으로 향하신다면 지금 즉시 모실 전함을 수배하겠습니다.”

아무튼 란자크에게도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자 기쁜듯한 얼굴로 흔쾌히 전함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저거 저러니까 괜히 며칠 정도 더 여기서 머무르고 싶어졌지만, 정말로 그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였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됐다.”

슬쩍 구경하면서 봤을 때  전함이란 녀석도 말 그대로 전함이란 이름답게 크고 멋지긴 했지만 대놓고 배가 바다를 건너오면 걸리기 쉬운 일이였다. 물론, 마법을 써서 모습을 숨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정도의 대규모의 교란 마법을 펼쳐놨는데 탐지 마법 하나 깔아놓지 않았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배로  생각은 없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바다를 건너시려고...?”

하지만 배도 없이 바다를 건너겠다는 내 말에 란자크가 그렇게 물었다.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건지, 아니면 이대로 내가 눌러앉아 버릴까 두려운 것인지 어느 쪽인진 모르겠지만. 란자크의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배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거든.”

나 말고.

내 아내들이.

바다를 지배하는 용.

아드리아의 지배자인 아샤와 아냐에게 있어서, 바다를 건널 수단이야 차고 넘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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