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4화 〉334화 (334/370)



〈 334화 〉334화

일단 아무 말도 없이 멋대로 내려갔다가 터졌던 일도 있고 해서 마침 다들 모여있으니 내려가기 전에 말을 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내가 들어와서 말을 꺼내기 전만 해도 뭔가 화기애애해보이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내들이 생겼다는 결과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일단, 먼저 하나만 물어볼게.”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크리샤가 탁자를 두들기며 나를 흘겨보는 것에 어깨를 움츠리자 그런  보고서 한숨을 푹 내쉰 크리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너 미친  아니지?  봐도 수상쩍다면서 걔한테 직접 찾아가서 해결하겠다고? 그게 정말로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긴  거야?”

너무 심한 말이였다.


하지만 저 말이 크리샤가 실제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무척이나 순화해서 표현한 것임을 상태창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는지라 더더욱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상태창에서  그대로였으면 지금 같이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내 머리를 쪼개서 뇌의 유무를 확인할 기세였으니 말이다.


하여튼간에 크리샤의 말이 어디까지나 날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것이라는 거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로 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저기, 그렇게 이상… 하지.”


아무리 그래도 뇌가 있는지 없는지 직접 보고 싶어하는건 좀 심하지 않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반발심에 말을 꺼내보려다가 째릿하고 말을 잇는 나를 노려보는 크리샤를 보고서 그냥 그런 거로 치기로 했다.


그렇게 이상한거냐고 물었다가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며 긴 잔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 기분이  탓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땐 그 예감을 믿어서 나쁠 건 없었다. 다시 얌전히 닥치고 있기로 한 내가 입을 닫고 있자니, 옆에 있던 루시아가 차를 마시고는 말했다.

“…크리샤의 말이 조금 심하긴 했지만,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아, 이지경님이 미치셨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내게 루시아가 상냥한 어투로 위로하듯 말해왔지만, 어디까지나 상냥하게 포장한 거부라는 건 똑같았다.


그리고 그런 루시아의 말을 들은 크리샤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툭툭, 하고 테이블을 검지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거 같잖아?”

상당히 날이 선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크리샤를 흘긋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인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지경님께 심하게 말한 건 맞잖아요? 크리샤.”


“하아?”

“…내가 잘못했으니까 너희끼리 싸우지 말아 줄래?”

일단 크리샤와 루시아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괜히  때문에 둘이 싸우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휙 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별로 싸운 건 아니거든?”


“단순한 의견 교환이었을 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내 중재가 어떻게든 먹혔는지 표정을 푸는 둘을 보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그렇게 둘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아르카가 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마안 정말로 나쁜 방법은 아닌 거얼? 그 검은 성녀니 뭐니가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는 몰라도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는, 나중엔 덜 귀찮아질 수도 있는 방법이니까아.”


으응?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표정과는 달리 어째  편을 들어주는 듯한 아르카를 보고서 희망을 담아 그녀를 쳐다보자, 아르카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혹시나 해서 그런 아르카에게 기대를 담아봤지만 아르카가 스윽하고 손을 뻗어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아? 나아는 그걸 굳이 네가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

“아니, 그건 그렇지만…”


“…아니며언 뭐야아? 혹시 우리랑 떨어지고 싶다거나아?”


상냥하게 어루만지던 아르카의 손가락이  뺨을 움켜쥐는 건, 그렇게 아르카가 말을 잇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어디까지나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해온 아르카였지만 이게 그냥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아니란 건, 그런 그녀가 내 뺨을 움켜쥐고 있는 악력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반쯤 진심을 담아서 내 뺨을 꼬집고 있었으니 말이다.

싸늘하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뭔가 온기라도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아르카의 그 한마디로 갑자기 분위기가 팍 식다 못해서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바뀐 것이 느껴졌다.

“……”

“……”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루시아와 크리샤, 그리고 아르카가 보였다. 그 셋만이 아니라, 간식을 가지고 티격태격대던 아샤와 아냐도, 아까부터 조용하던 카르네도, 여전히 무표정하게 이쪽을 응시할 뿐인 샤르도.

어쨌거나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이 다 합쳐서 여덟이나 되는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적막함이 방 안에 가라앉은 것도 잠시, 가장 먼저 입을  것은 루시아였다.


“…그러고 보면, 이미 전례가 있기는 하네요.”


조용하게,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뿐이란 듯이 말을 꺼낸 루시아의 말을 크리샤가 턱을 괴며 받았다.

“그렇네, 이 바보가 멋대로 내려가서, 어디의 멍청이가 크게 사고 쳤던 게 얼마 전이였지 아마? 뭐, 기분은 이해하겠지만…”

나라도 그랬을 테고, 하고 중얼거리는 크리샤를 루시아가 무척이나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며중얼거렸다.


“크리샤, 당신한테 그런 배려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루시아의 말을 들은 크리샤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기분을 이해하겠다는 거지, 나라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아, 그러신가요? 하긴, 당신이라면 저와 달리 좀  대단한 일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아?”

또 둘이서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는 크리샤와 루시아는 둘째치고서, 꾸욱하고 아르카가 내 뺨을 꼬집는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한 소리였는데에, 대답이 너무 늦는 거 아냐아?”

“…아니, 너무 황당한 소리를 들어서 잠깐 당황했을 뿐이거든?”

“그으래애?”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다. 더욱 강해진 아르카의 악력이 바로 그 증거였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더라면 이걸로 볼이 뜯겨나가고 남았을 만큼의 힘으로 내 볼따구를 잡아당기고 있는 아르카를 보면서, 내 신뢰도가 왜 이리 낮은가 하는 궁극적인 의문에 빠져 있을 때, 그런 나를 제쳐놓은 아내들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말이 대화지, 거의 토론 같은 느낌으로.

“그러고 보면, 낙스에 갔었을 때도 예정보다 늦게 돌아왔었지?”

“일언반구도 없이,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늦으셨었죠. 마력이 부족했다는 말은 하셨지만, 한마디쯤은 해주실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러게, 덕분에 오지도 않는 연락을 기다리느라 이 바보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었더라.”

“글쎄에, 확실한 건 어떤 껌둥이가 며칠 동안이나 너무 늦게 오는  아니냐면서 밥도 먹질 않았던가아? 에루나가 아이를 생각하라고 말하고서야 먹었었지이?”

“…그거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었지 않아?”

“그랬던가아? 그랬던 것 같기도오? 뭐어, 그랬으면 미안해애?”

“…됐어, 아무튼 그때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렇고. 확실히 이 바보가 자주 돌아다니려고 하는 건 확실하다는 거지.”


자주라니, 일단 낙스때랑 저번일이랑 다 해도 겨우 두 번뿐인데…?

뭔가 조금 억울했지만 그런  생각을 알 길이 없는 그녀들이 서로 이야기하던 중에, 무언가 결론이 나왔는지 루시아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두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이곳에 계시는 것이 답답하시기라도 하셨었나요? 이지경님?”


“확실히이 크리샤가 이것저것 늘려놓기는 했지마안 여기가 좁긴 좁으니까아. 답답하긴 할지도오.”


“전에 이 바보가 했던 이야기 중에, 여행하는 걸 좋아했었다고도 했었고.”


“…흐으응?  그런 얘기는 못들었는데에?”


“아, 그래?”


크리샤에게 예전에 흘리듯 말해줬던, 내가 살고 있었던 세계의 일에 대한걸 그녀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아르카가 크리샤의 말에 뭔가 분한 얼굴을 하는 것이 보였다. 반대로 그런 아르카를 보면서 의기양양해하는 크리샤의 모습도.

…응, 못 본 거로 하자. 설명하라는 듯이 날 쳐다보는 아르카의 시선도 모르는 걸로 치자고.


모른 척하니까 더욱 강해진 아르카의 볼 꼬집기에 살짝 아프긴 했지만 버틸 만 하니까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좁다느니, 답답하냐느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천공성에 크리샤가 붙여놓은 섬까지 더하면, 거의 제주도만한 섬이였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이미 거주하고 있는 숫자만 해도 제주도의 3분의 1정도고 그래도 한참 남는 땅이 있으니까 그쯤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그만한 크기의 섬이다. 더군다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이였다.
이런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을 좁다고 할만한 사람은 아마 드래곤들뿐이리라. 반대로 말하자면, 드래곤에게는 먹히는 주장이라는 소리였다.


아르카의 말과 크리샤의 말이 그런 주장에 신빙성까지 더해줬는지 루시아가 입을 다물고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진지하게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처우가 너무 부족했던 게 아니였을까하는 그런 고민이 가득해보이는 표정으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거지만, 루시아는 생각보다 허당기질이 다분했다. 아니, 허당기질이라기보단 뭐든지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야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문제는 그런 과한 생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그녀들에게 있다는 사실이였다.

표정만 봐도 내 아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태창을 보지 않아도 좋지 않은 생각인데 뻔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말을 잘못 꺼내기만 해도, 아마 천공섬이 섬에서 대륙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부족하기는커녕 너무 넓어서 아직  방 찾는 것도 가끔 헷갈리는 사람한테 무슨…

그리고  와중에 주변 분위기에 주눅이 든 듯, 불안한 눈초리로 내 옷자락을 붙잡는 아샤와 아냐가 보였다. 평소답지 않게, 내 옷자락의 끝부분만 겨우 붙잡고서 쌍둥이 소녀들이 나를 올려다봤다.

“…저기, 오빠? 루시아랑 크리샤랑 아르카가 한 말이 정말이야?”

“언니랑 아냐가 말썽부려서 그런 거야? 응?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서 자꾸 다른 곳에 가고 싶은 거야?”

아마 내가 여기서 그렇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묻는 둘을 보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마냥 어린아이 같은 둘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은 내가 고개를 저으며 그런 둘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니, 절대로 그런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정말로?”

“진짜지, 오빠?”

“그래, 그냥 조금 신경 쓰여서 빨리 처리하고 편해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해본 말이니까…”

그 말에 안심한듯한 표정을 짓는 아샤와 아냐를 보고서 일단 큰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했다.


“…저기~?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제까지 무슨 일인지 아무런 말도 없던 카르네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뭔가 다른 아내들보다도 온도가 한참 밑도는 듯한 싸늘함이 가득한 카르네의 목소리에 움찔한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런 나를 보며 카르네가 입을 열었다.

“이유야 어쨌거나~ 네 말은 또 멋대로 나랑 떨어져 있겠다, 뭐 그런 거 아냐~?”


어…


“응? 맞지~? 처음에는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는데 말이지~? 그도 그럴 게, 조금 전까지 나한테 이제 떨어지지 않겠느니 뭐니 했던 누구 씨가, 그새 그걸 까먹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


시선이 아프다.


아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시선이 아팠다.

타닥타닥, 카르네의 시선이 꽂히는 내 얼굴에 불씨가 튀기고 있었다. 이글이글, 눈앞에서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는 불꽃들을 보면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 카르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지~? 계속 듣다 보니까 그게 또 아닌 거 있지~? 정말로, 바로 조금 전에 자기가 했던 말을 까먹고서 말이지~? 응~?”


여러모로 반신이 되면서 마법 저항능력도 올라간 터라 이 정도는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점점 커지는 불씨들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빡쳤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카르네의 상태를 보고서 진땀을 빼고 있자니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꾸욱하고 깨물은 카르네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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