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3화 〉333화 (333/370)



〈 333화 〉3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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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주인님, 그동안 미뤄두었던 보고를 해도 되겠습니까?”

훈훈했던 분위기는 잠시 후, 그렇게 운을 떼는 에루나의 말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분위기를 읽어줬으면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에루나에게 온갖 일을 다 떠넘긴 지도 일주일째인데 그럴 수도 없었다.

카르네를 안기 시작하고서 일주일 동안 침실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으니, 그동안 에루나에게 부탁했던 것들이나 시켰던 것들로 인한 것들이 잔뜩 쌓였을 테니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루는 건 에루나한테 미안한 일이었다.

“카르네? 미안한데...”

별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제  진정한 무렵인 카르네에게 떨어지자고 말하는 건 미안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서 카르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때 그 귀찮은 이야기 때문이지~? 나, 그런 거 딱 질색이니까. 응,  태교?  거에도 좋지 않을 것 같구~?”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카르네를 미안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카르네가 허리를 굽히며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쪽♥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서, 카르네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치만 너무 늦으면 조금은 짜증  거라구~? 아직은, 내 차례니까~?”

까먹지 마, 하고 말한 카르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나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거면 됐으니까~?”

그 미소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카르네를 끌어안았다.

“정말~ 이러면 더 떨어지기 싫어지거든~?”


내 포옹에 간지럽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말하는 카르네를 더욱 강하게 안아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이러다가 더 떨어지기 싫어질 것 같았다.


아쉽지만 카르네의 말을 들어서 몸을 떨어트리자 카르네가 잘했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더니 에루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에루나? 다들 지금 어디에 있어~?”


“다른 아가씨들은 다과실에 계십니다.”

“그으래~?”


에루나의 대답에 씩, 하고 웃는 카르네가 보였다.

아, 저거.

뭔가 불안한데.

아냐나 아샤한테 자주 보던, 몹쓸 장난을 생각하는 얼굴이랑 똑 닮아있었다.


설마하니 카르네가 그 둘과 동급의 일을 할 리는 없겠지만... 아니, 정말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제 자기도 임신했다고 유세부리거나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거다. 응, 그러겠지.


“...이따가 봐, 카르네.”


“응, 이따 봐~”


훌쩍하고, 방 밖으로 나가버린 카르네를 조금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에루나를 바라봤다.


카르네가 불안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나친 걱정일뿐이고 내가 할 일은 그동안 옆으로 제쳐뒀던 일들을 해결하는 거였으니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하기 싫어지긴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동안  있었어?”

 물음에 에루나가 자세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우선 엘리시스와 보레아스는 무사히 인간들의 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엘리시스의 경우엔 향후의 있을 일에 대한 대비로 ‘목줄’을 채워놨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목줄이라.

대충 어떤 것인지는 안다.

크리샤가 아리스에게 채워놓은 목줄을 이미 본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크리샤가  목줄의 소유권을 내게 넘긴 덕분인지,  능력때문인지 아리스의 목줄은 여러모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목줄이란 것이 대충 어떤 것인지는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는 있다는 소리였다.


목줄을 쥐고 있는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하고,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저주 마법.

그게 내가 알고 있는 목줄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줄을, 드래곤들이... 아내들이 어떻게 쓰는지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분명 드래곤들이 자신들에게 또는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들인 초월자들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채워놓는 녀석이었지?

일단 내가 아는 초월자라곤 엘리시스밖에 없는데. 모든 초월자가 엘리시스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녀석들을 정말로 억지할 만한 방법이란 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엘리시스라면 강제로 명령하면 명령을 거부하고 죽으면 죽었지 들을 녀석이 아니였으니까.

그런 내 의문을 읽었는지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렇기에 목줄은 초월자들에게 효과적입니다.”

“응? 그래?”

“네, 초월자들이란... 스스로 종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 한계를 벗어났기에 그만큼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에, 대다수가 성격 파탄자들인 괴짜들이긴 합니다만 그런 존재들에게도 소중한 것은 존재하는 법입니다. 아니, 대부분 벗어났기에 끝내 놓지 못한 것이야말로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그런 만큼... 초월자들에겐 목줄은 효과적입니다.”


신랄하게 초월자들을 까는 에루나의 말에 살짝 놀랐다.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에루나가 초월자들에게 안 좋은 감정이 쌓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있었다.

뭔가 조금 다른 느낌도 들긴 하지만...


뭐랄까, 괜히 파고들면 좋지 않을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대충 내가 이해한 것이나 에루나에게 확인하기로 했다.


“아, 아무튼... 그러니까 그 목줄이란 게 초월자들이 소중한 거랑 관계된 거란 거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하긴 그러니까 목줄이란 거겠지, 하고 납득하고 있던 나에게 에루나가 말했다.

“따라서 엘리시스의 남편이였던 뮬런은 전후사정을 듣고 주인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으응?”

거기서 왜 엘리시스의 남편이란 사람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던 나를 보며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엘리시스의 목줄로 그녀의 남편인 뮬런이 채택됐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딸들 역시 목줄로서 가치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협상을 통해 뮬런 스스로가 충성을 맹세하고 목줄이 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확실히 인간치고는 꽤 유능하고, 인간들의 제국에서도 표면적으론 대공의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여러모로 쓸모는 많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에루나가 내게 건네준 반지를 받아들였다. 얼결에 받긴 했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뭐로 만든 지는 모르겠지만 검은빛이 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용이 또아리를  듯한 반지였다.

아무튼, 그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에루나에게 물었다.

“이건 또 뭔데?”

“엘리시스에게 채워둔 목줄을 파기할  있는 반지입니다. 이 반지에 대고 명령하시면, 언제 어디서든 목줄을 파기하실 수 있습니다.”

“......”

말이 목줄이고 파기지 그거 뮬런을 죽인다는 거 아닌가?

약점을 잡아서 명령을 듣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격에서 죽여버릴 수 있는 수단까지 마련해놓다니 이래서야 진짜 마왕이나 할 짓이였다.


일단은 마왕이 맞지만...


뭐랄까,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맡긴 자를 내 마음대로 죽여버릴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일단...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아무튼, 다른 건? 전쟁 쪽은 어떻게 됐어?”


혹시 모르니까 인벤토리에 던져놓기도 뭐한 물건이라 일단 품에 챙겨놓고서 그렇게 묻자 에루나가 입을 열었다.

“네, 엘리시스에게 목줄을 채운 이후 드네아 공작가에서 전면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있으며, 이에 천신교쪽에서 성전 모독을 이유로 뮬런에게 파문형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드네아 공작가 휘하의 마흔 두 개의 가문 역시 제국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음?”

“쉽게 말하자면 현재 인간들의 제국은 양분됐다고 보면 됩니다. 또 드네아 공작가를 통해 천신교에서의 신탁을 부정하는 여론을 만들고 있으며 제국 내에서 나빠진 식량 사정으로 생겨난 빈민과 피난민들에게 재물을 풀어 끌어들이는 것으로 민심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에루나의 말에 그녀가 뭘 하고 있었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절대왕정, 그것도 제국정의 국가가 수습하기 힘든 대규모의 혼란 상황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수습에 나서는 대귀족이 있다는 것은 몸통에서 새로운 머리가 솟아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기존의 머리였던 이들에게 무척이나 껄끄러운 상황이란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내 예상대로, 이어지는 에루나의 말은 현재 제국의 상황을 알  있게 해줬다.


“덕분에 드네아 공작가와  밑의 가문의 영지로 몰려들기 시작한 제국민들과 봉신을 자청해오는 귀족들의 숫자로만 따지자면, 이젠 어느 쪽이 진짜 제국인지 모르는 수준이겠죠. 실제로도 현재 라이어스 제국 황실의 혈통은 드네아 공작가에도 이어져 있으니 적당한 명분을 찾아내서 엘리시스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도 명분으로도 그리고 민심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는, 새로운 황제가 언제든 세워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란 건가.

에루나에게 전쟁을 막으랬더니 나라를 쪼개고 앉아있었다.

물론  전부터 자연재해나 괴수라고 불릴만한 몬스터들을 끌고 온다거나 단순히 전쟁을 지연시키는 방법도 스케일이 어마무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나아가서 원래 내가 살던 세계의 한국보다도 서너 배는 더 큰 나라를, 제국을 둘로 쪼개고 있다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에루나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였다.

드네아 공작가가 아무리 강성하다고 하더라도, 제국이 무너지고 있던 상황을 틀어막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대부분의 일들이 에루나를 통한 이쪽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인간들로선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일들이라고 하더라도, 무려 일곱이나 되는 드래곤을 길러낸 골렘에게는 별거 아닌 일들에 불과한 것일 테고, 그런 에루나의 뒷배로는 그 일곱의 드래곤이 가진 막대한 재력이 있었다.


당장의 라이어스 제국에서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식량도 일단  소유로 있는 천공성과 천공섬의 곳간만 열어도 몇 년은 먹여 살릴 수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도 이게 일주일 만에 가능한 건가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


일을 시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완벽한 일 처리가 아닌가 싶었다.

하긴, 나라가 쪼개질 판인데 전쟁이나 하자고 하는 미치광이는 없을 테니까. 확실히 전쟁을 막는 방법이긴 한데...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에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미리 작업하고 있어 뒀기에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거기에 엘리시스가 가진 무력과 드네아 공작가에서 지닌 위세 덕에 일이 더욱 쉬워졌고 말입니다.”


보통은 작업해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말이지...

뭐, 에루나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라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제 전부 끝났다고 여겨도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제국이 쪼개질 판인 상황이니 상당히 혼란스럽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일어난 것과 비교할 순 없을 테고 라이어스 제국 역시 당장 일을 수습하려면 수습해야지 전쟁을 벌일 여건이 되지 않게 된 셈이니까.

남은  적당히 안정될 때까지 뒷수습을 해두는 정도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으려니 에루나가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다.

“...불안하게시리 왜 그래?”

“안타깝게도, 주인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희망적인 관측과는 달리 검은 성녀 쪽에서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묘한 움직임?”


“네, 아무래도 갑작스레 전향한 드네아 공작가를 보고서 저희 쪽의 개입을 어느 정도 눈치챈 모양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검은 성녀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지에서의 실종자가 평소의 몇 배나 증가했다는 에루나의 말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말이 실종자지 죄다 어떤 꼴이 됐을지는 뻔히 예상이 갔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드네아 공작가에서 하는 것처럼, 천신교쪽에서도 재물을 풀어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등 세력을 부풀리고 있다고 하니... 설마 싶지만, 만에 하나라도 천신교에서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켜버릴 가능성도 없다곤 할 순 없었다.

“...그냥 내가 직접 내려갔다 올까?”

차라리 내가 내려가서 검은 성녀인지 뭔지를 처리하는  더 나을 것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말해보자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에루나가 보였다.


그리고 골똘히 고심하기 시작하는 에루나가 보이자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했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막상 에루나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 보니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 일을 벌인 듯한 예감이 마구 들었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잠깐, 하지만 에루나치고는 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그렇게 대답한 에루나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이제까지 아가씨들이나 저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여오던 검은 성녀가 이토록 티를 내가며 급하게 움직이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 시점에서 주인님께서 직접 나선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올 것이 분명합니다. 상대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까지 확실치 않은 상황인 만큼 먼저 나서는 것도 좋은 수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 근데 진짜 괜찮을까?”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에루나가 말했다.

“카르네 아가씨와 주인님께서 노력하신 덕분에 샤르 아가씨 차례까진 시간적인 여유도 다소 있으니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을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에 카르네 아가씨를 설득하셔야 하겠습니다만...”

어째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다른 것을 말하는 에루나를 보고서 내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말해놓고서 이러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검은 성녀가 마왕이랑 관련된 건 확실해 보이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왕은 아내들의 부모격... 선대의 드래곤들이 다굴을 놓아가며 잡았던 존재였다.

 결과 상당히 처참한 최후를 맞은 마왕이였지만, 그렇다고 마왕이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였다.


무려 드래곤들이 모여서 해치울 만큼 강한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그걸 나 혼자서 처리하는 게 가능하려나...?


반신이 되는 것으로 넘쳐났던 자신감은 얼마 전에 아내들이 협공에 의해 무너진 지 오래라 다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내들의 협공에서 내가 완전히 진 것도 아니고. 그거랑 이거랑  상관이 없는 거긴 했지만.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녀가 정말로 마왕 수준으로 강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조용히 움직여왔을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어쩌시겠습니까? 주인님.”


내 의사를 묻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보랏빛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아마 내가  선택하던간에 에루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 선택을 따라줄 것이다.

“...좋아.”

생각을 마친 내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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