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9화 〉329화 (329/370)



〈 329화 〉329화

엘리시스와 보레아스가 깨어난 것은 그 뒤로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뒤였다.

조금만 더 하면 스스로 엉덩이를 벌리며 애원하는 아리스를 볼 수 있을 뻔한 터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다행이기도 했다.


괜히 여기서 아리스를 건드리고 돌아갔다가 마누라들한테 한 소리 들었을 테니까.


안 그래도 그리 높지 않았던  하반신의 신뢰가 더더욱 떨어지는 것은 덤이였을 거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그래서, 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이유가  검은 성녀가 받았다는 신탁 때문이라는 거지?”


“그래, 맞아. 신탁이니 뭐니 나는 말도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리스를 데려간 것이 마왕이라고  녀석이 말했거든. 다들 아리스가 이미 죽은 사람 취급했는데  녀석만 살아있다고 하니 협력한 거지. 거기에 내 몸도 치료해줬었고. 뭐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우리 쪽에서 지원해주고 있었어.”


“지원이라면?”

“일단은 우리 쪽의 기사 정도일까? 뭐, 기사단에 들 정도도 아닌 수준이긴 했지만. 호위정도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외에는...”

자기보다 약한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한번 지고 나니까 처음과는 달리 묻는 것에 대해서 고분고분 잘만 대답하는 엘리시스의 도움으로 궁금했던 사실들에 대해서 이건 저것 알 수 있었다.

우선, 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가장 큰 이유는 검은 성녀가 받았다는 신탁과 이를 맹신하는 천신교가 원인인 듯싶었다.


제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인간들의 나라에선 천신이라는 신을 믿는 종교를 믿고 있는  싶었으니까.

그만큼 천신교의 입김이 셌던 것이다. 여러가지 명분이나 이유가 겹치긴 했더라도, 이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인간의 제국을 움직일만큼 말이다.


덕분에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세계의 역사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였으니까.

종교에, 신앙에 맹신한 자들이 일으킨 전쟁만 해도,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였다.

신께서 원하신다, 그 말 한마디에 수십, 수백만이 죽어 나갔던 것이 불과 수백 년 전의 일이였고 설령 그 정도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수십, 수백 명이 다치거나 죽는 일도 매년 뉴스로 들어왔던 일이였다.


그만큼 신탁이란 것은, 마력을 사용한 마법이나 투기를 다루는 기사들을 뺀다면 중세 중기에서 후기쯤으로나 보이는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켜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명분인 셈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제국이 앓고 있는 식량 문제나, 위신문제가 얽힌다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신탁이라...”

신이 내린 말이란 것이 무척이나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는 신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아내들에게서, 이미 오래전에 신들이 떠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현재 이 세계에 남아있는 신들의 흔적이라 할만한 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편린과 세계의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보옥 정도였다.

 외의 것이라고 한다면, 드래곤들이 모아놓은 책에서나  수 있는 머나먼 과거의 기록 정도일까.


사실상 신들이란 존재는 이미 이 세계에서 잊혀져버린 과거의 전유물인 셈이였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상한 것들이 잔뜩이였다.


이제까지는 별 신경 쓸 일이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하고 있었지만, 마력과 투기라는 이적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이미 옛적에 떠나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신에 대한 신앙이 이처럼 굳건한 경우는 아무래도 이상한 부분이 많았으니 말이다.

이것이 모든 종족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것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세계에서 제대로  체계를 갖추고 남아있는 종교는 인간들의 천신교 외에는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외에는 종족들은 대부분 실존하는 드래곤을 경외시하거나 따르면 따랐지 종교란 것이 아예 없었다. 인간을 제외한 종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드래곤과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걸 염두해둔다고 해도 거의 모든 인간이 하나의 종교만을 믿는다는  자체가 이상했다.


본래부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기 마련이였다. 분명 실존하지만 불과 몇백 년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들에게 있어서 전설상의 존재로만 취급받던 아내들만 봐도 그랬다.

그런 와중에, 이미 옛적에 떠나서 있지도 않은 신들을 그토록 충실하게 믿고 있다고?

이게 내가 살았던 세상이였더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아무런 이적을 보이지 않더라도, 신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신앙할 수 있을 법도 했으니까.

과거의 기록과 뿌리깊이 내려진 신앙은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신성시되었고, 종교로써 존재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있지도 않은 신을 믿는 것보다 확실한,  다른 선택이 있었다.


바로 스스로 단련해서 인지를 초월하는 능력을 얻는 것이었다.

무던한 노력과, 타고난 재능이 필요로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이고 확실한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 신과 노력과 재능만 있다면 누구라도 확실하게 거머쥘 수 있는 투기와 마법.

인간들이 과연 어느 쪽을 택할지는 뻔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신앙은 그런데도 무척이나 번성하고 있었다. 뭐, 유일한 종교에다가 거의 모든 인간이 믿고 있으니까 번성하고 있다는 말로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자면, 이 세계에서 단 하나의 종교만이 있는 셈이니까.

“흐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확실했다.


이 세계에, 정확히는 인간들에게 퍼져있는 천신이라는 신을 믿고 있는 종교는 의도적으로 뿌려지고 퍼져있는 종교란 사실이 말이다.


유일신의 유일 종교. 내가 살았던 곳보다 더한 위상이였다.


단 하나의 종족의 신이라지만, 일단 이세계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인간이였으니까.

그런 점에서 역시 가장 수상쩍은 건 검은 성녀였다.

뭐, 검은 성녀라는 존재를 알게 된 시점부터 이년이 마왕의 딸이거나, 마왕과 관련된 존재라는 것쯤은 대충 눈치채긴 했지만.

궁금한 건  검은 성녀나 그 윗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목적이였다.

엘리시스나, 그녀의 남편이자 일단 표면적인 드네아 공작가의 가주를 통해서 기사들과 용병들을 모았던 거야 이번에 에루나를 통해 알게 된 마물 사태처럼, 예상했던 대로 부하를 만들기 위함이란 건 확실해졌다.

하지만 굳이 종교를 만들어내서, 있지도 않은 신을 인간들이 믿게 한 것이나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딱히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애매했던 의혹에서, 확신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엘리시스에게 물어본 가치는 있었다.

이건 나중에 에루나랑 따로 상담받기로 했다. 이런 것은 에루나에게 묻는 것이 내가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그렇게 정하고 있자니 이쪽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엘리시스가 보였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 엘리시스에게 내가 묻자 고개를 끄덕인 엘리시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일단은. 그래서 궁금한 건 그게 끝이야?”


“묻고 싶은 건 전부 물어보긴 했지.”


딱히 이 이상의 것을 물어보더라도, 이 검에 미친 여자가 알고 있을  같지도 않아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상 드네아가의 운영은 엘리시스의 남편이란 작자가 전부 하고 있던 모양이고, 엘리시스는 대충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검의 수행이나 하던 모양이니까 이 이상의 것을 알려면, 드네아가의 가주인 뮬런이란 작자랑 대화하는 게 나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긴 귀찮았다.


사실 지금 얻은 정보로도 충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하자 흐응, 하고 이쪽을 쳐다보던 엘리시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쪽에서 하나 질문해도 될까?”


“질문이라... 돌아가는 거 때문이라면 안심해. 약속한 대로 너랑 보레아스는 무사히 돌려 보내줄 테니까. 애당초, 그러려고 찾으러 갔던 거고.”

“그래,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 하고 묻자 엘리시스가 물었다.

“너... 아니, 당신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간에. 당신, 아리스랑 무슨 사이야?”


그런 엘리시스에 말에 여태껏 옆에서 잠자코 있었던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는 건가요?! 어머니!”

“갑자기고 자시고.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거란다. 그러니 시끄럽게 굴지 마렴. 아니면 네가 대답할 거니? 그래, 그래도 좋지. 그럼 일단,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달고 있던 그 귀엽던 고양이 꼬리는 어디로 갔는지 대답해보렴?”


엘리시스의 지적에 아리스가 구멍만 덜렁 뚫려있어 허전해진 시녀복을 손으로 감췄다. 그러고선 시뻘겋게 얼굴을 물들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그러니까…”


꼬리의 이야기가 나오자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는 아리스는 누가 보더라도 잘못한 것을 딱 걸린 아이 같은 모습이라 조금 우스웠다.

하기야, 누가 보면 자매로밖에 보이지 않는 둘이지만 일단 모녀사이였다. 아리스가 엘리시스의 앞에서 마냥 아이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자신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아리스를 흘끗 쳐다보던 엘리시스가 도로 시선을 내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딸은 대답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당신이 대답해주겠어?”


엘리시스가 그렇게 말하고선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서, 아리스를 쳐다봤다.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이쪽을 보는 아리스가 보였다.

잔뜩 부끄러워하면서도 입 모양으로 말하면 죽어버릴거라고 협박해오는 것이 귀여웠다. 날 죽이지는 못하니, 죽어버리겠다니 실로 우습기 짝이 없는 협박이라 더더욱 그랬다.

“아아, 뭐. 그거라면야 얼마든지 대답해줄 수 있지.”


아리스 녀석도 참,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런 표정을 지어버리면 이럴 수밖에 없잖아.

“아리스.”

“뭐, 뭔가요?”

내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서,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는지 눈치를 살피는 아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내게 입을 맞춰라.”

“잠깐, 여기서 그런...!”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아리스의 몸은 솔직했다. 솔직하게, 내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쪽ㅡ♥

가볍게 내 뺨에 입술을 맞춘 아리스가 내게서 떨어지면서 입술을 닦으며 이쪽을 죽일 듯이 쳐다봤지만, 그래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는 입술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거기 말고. 여기.”

그런  말에 굳은 얼굴로 저항하는 아리스가 보였다.


꽤나 괴로울텐데. 이젠 익숙해졌는지 표정이 조금 굳은 수준에서 버티는 아리스를 보고서.

촤르르륵ㅡ


소환해낸 복종의 사슬을 당기며 아리스를 끌어안았다.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보여줄까? 아리스. 너랑 내가 무슨 사이인지.”

결국, 입술을 깨물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춘 아리스를 천천히 떨어뜨리고선, 한쪽 팔로 안은 채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엘리시스에게 말했다.

“대충 이런 사이지. 그래, 궁금한 건 좀 풀렸나?”

어깨를 으쓱이며 묻는 내 말에 엘리시스가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아리스와 나를 번갈아쳐다보던 엘리시스가 말했다.

“그래. 전에 했던 말이 단순히  도발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였나보네.”

“뭐라고 했었더라?  딸 엉덩이가 쩔었다고 했던가?”

“다, 당신 어머니한테 무슨 말을 한거죠?!”

휙하고, 내 행동에 잔뜩 토라져서 이쪽을 보지도 않고 있던 아리스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날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 그냥 장난으로 그랬어. 그러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의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흣?! 다, 당신...!”

내 행동에 기겁하면서 몸을 떨어뜨리려는 아리스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래서, 엘리시스. 네 딸이랑 내가 무슨 사이인지 알았으니 어쩔 거야?”

그런  말에 엘리시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선, 나에게 말했다.


“딱히, 아무것도 안할 거야. 그냥 확인했을 뿐이니까. 확실히,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별수 없지. 당신이 나보다 더 강하니까.”


“엉?”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렇게 말한 엘리시스가 나도 몰랐던 사실을 토해냈다.

“내 딸이, 정부인도 아닌 첩실이라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확실히 위로 드래곤이 일곱이나 되면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하고선, 일단 귀여운 내 딸이니까 너무 괴롭히지는 말라는 엘리시스의 말이 들려왔지만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전에, 엘리시스가 한 말이 머릿속에 빙글빙글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첩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아내... 루시아라고 했던가? 내 팔을 잘랐던  여자지? 아무튼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는데, 뭐 틀린 거라도 있어?”


“......”


순간 사고가 정리되지 않아서 멈칫했다가, 이내 제정신을 차리고서 엘리시스에게 물었다.

“루시아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시아가 그런 말을 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튼, 그건 이제 됐고. 대련이나  번 더 할래?”


폭탄을 집어던져놓고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미친년을 쳐다봤다.


일단… 엘리시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엘리시스가 이런걸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그럴 형편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루시아가 엘리시스에게 그런 말을  것이 된다는 거였다.

“…미안하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이지. 그런건 나중에 하지.”

나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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