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326화
“아무튼 지금은 하지마.”
“네~”
재차 말하자 아쉽다는 얼굴로 대답하며 드래곤 슬레이어로부터 손을 떼는 아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다시 로로와 크리샤를 보자 아까의 대답이 제법 크리샤의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은 채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응, 저걸 보니 일단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적어도 로로를 질투하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엄청나게 상냥한 손길이었다. 로로 역시, 가만히 크리샤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로로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쓰다듬어지고 있는 광경이 굉장히 낯설어서 어색하기 그지없긴 했지만, 이제는 제법 배가 부풀은 티가 나는 크리샤가 로로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쓰다듬는 모습은 굉장히 보기 좋았다.
여러모로 날 닮게 된 로로가, 마침 검은 머리카락인 크리샤와 저러고 있으니까 정말로 딸과 엄마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내 시선을 느꼈는지, 크리샤가 로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말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재차 한숨을 내쉬면서 로로에게 말했다.
“...정말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왜 저런 바보한테... 정말로 내가 할 말이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네... 하지만, 지금도 봤다시피 저 바보를 감당하는 건 꽤나 힘들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괜찮아. 내 소원이니까. 그리고... 참는 건 잘할 수 있어.”
“글쎄, 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말이지... 뭐, 이건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를 테니까 어쩔 수 없나.”
그나저나 둘이서 뭔가 얘기하고 있는데 들어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로로가 굳게 결의한 얼굴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서 크리샤의 입가에 더더욱 호선이 그려졌다는 정도였다.
아무튼 사이가 좋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 좋게 보고 있자니, 그러니까, 하고 말을 이으며 크리샤가 로로의 어깨를 끌어 자신의 옆에 두고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얘는 내가 가르쳐둘게.”
“...엉?”
그런 의미라니, 뭐가? 아니 그보다 크리샤가 로로를 가르친다니, 뭘?
“그러는 것이 좋겠네요. 부탁할게요, 크리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들은 기분인 나와 달리 크리샤의 말에 루시아가 그렇게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서 하품을 하는 아르카도 보였지만, 이내 마음대로 하란 듯이 손을 내젓는 아르카를 보니 그녀도 대충 알아듣긴 한 모양이였다.
나만 지금 크리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 못 한 게 분명했다.
아샤나 아냐조차도 크리샤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 보이는데도.
“아니, 잠깐만. 크리샤가 로로를 가르친다니 뭘 가르친다는 건데?”
“여러 가지로. 이것저것? 어찌 됐든 간에, 이 아이도 결국 이렇게 됐으니까, 준비는 필요할 거 아냐?”
여러 가지로 이것저것이 뭔데. 준비는 또 뭐고...?
자세한 것은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크리샤가 씨익하고 웃더니 로로의 귓가에 뭔가 속삭이는 것이 보였다.
...화아악!
그리고 로로의 얼굴이 붉어졌다.
“...?!”
아마 처음으로 보는, 부끄러워하는 듯한 로로의 표정을 보고 내가 경악하는 사이에 로로에게 크리샤가 말했다.
“어때, 너도 관심 있겠지? 너도 봤다시피 당장은 무리일 테니, 그동안 나한테 배워두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해.”
“그래, 잘 생각했어. 저 바보, 처음에는 봐주긴 하는데 정말로 처음 빼곤 제멋대로니까. 뭐, 싫다는 건 아닌데... 처음엔 조금 힘들긴 하거든. 기왕이면... 잘하고 싶잖아?”
“...응. 그렇게 생각해.”
“좋아,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그리고는 홀라당 크리샤의 제안을 받아들인 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크리샤가 말했다.
“으음, 일단 나는 얘랑 먼저 씻으러 갈 테니까. 나머지는 루시아, 네가 알아서 해.”
“알겠어요, 로로... 그 아이는 크리샤에게 맡겨둘게요.”
고개를 끄덕인 크리샤가 로로를 데리고 나가버리자, 고작 두 사람이 나갔을 뿐인데 뭔가 엄청 휑했다.
폭풍이 순식간에 들이닥치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지경님? ”
“아, 응. 루시아.”
붕 떠버리려던 정신을 다잡고서 루시아의 부름에 대답하고서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며 싱긋하고 웃어 보이던 루시아가 말했다.
“로로는, 크리샤가 여러 가지로, 알아서 잘 가르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그 여러 가지가 대체 뭔데.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꾹 참고서,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루시아를 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럼... 이젠 슬슬 들어보도록 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낙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루시아의 말에 나는 연락도 않고서 일주일이나 낙스에서 뭘하고 있었는지 전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말해줄 일이였고, 셋이나 되는 편린을 찾아낸 것치고는 그다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기에 설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과연. 이제껏 다른 편린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낙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나요.”
“찾고 있었어?”
“제 나름대로는요. 이지경님과 관련된 것이였으니까요. 거기에... 크리샤도, 일단은 편린을 찾았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음, 이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네요.”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두 뺨을 붉히는 루시아를 보고서 대충 루시아가 숨긴 이유 중 하나를 알 수 있었다. 편린을 찾게 된다면 나를 찾아올 명분이 생기는 셈이였으니까. 굳이 그걸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간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내의 모습에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였다.
“...하지 말라니까.”
“아이, 참. 알겠으니까 밀지마 오빠.”
손을 대지 말라니까 드래곤 슬레이어에 대고 입김을 불고 있는 아샤를 떼어내고 있자니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쪽을 보는 루시아가 보였다.
아무튼 무사히 아샤를 떼어내자 큼, 하고 헛기침을 한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낙스에 있는 유적들에서 편린을 찾아냈다는 말씀인가요?”
“하나는 마침 보이던 녀석들의 족장인지 뭔지가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우연히 마주쳤던 투르크인지 뭔지하는 녀석들의 족장이 편린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동화되어 있었다고 하는 쪽이 맞겠지만. 나랑 마찬가지로 신체의 일부, 정확히는 뇌의 일부가 편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꺼내기 참 힘들었지.
아무리 박살을 내도 재생하려고 드는 터라, 머리째로 뜯어내서 광휘로 두개골을 갈라내고, 뇌를 끄집어내는 것으로 겨우 편린을 꺼낼 수가 있었으니까.
떼어내는 도중에도 계속 재생하려고 들어서 정말로 곤란했었다.
아무튼, 먼저 흡수했던 녀석은 뇌가 편린으로 대체 당한걸 보니 조금 무서웠지만 막상 내가 흡수하고 나니 머리 위로 고리가 생겼을 뿐이였다.
아마 뇌가 편린으로 대체된 것은 완전히 흡수하는 데 실패했거나, 아니면 자격이 부족했거나,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확실히 어딘가 맛탱이가 간 녀석이긴 했다. 말이 당신의 뇌, 편린으로 대체되었다지 어떻게 보면 뇌가 병신이 된 녀석이니 맛탱이가 갈 수밖에 없겠지만.
보자마자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길래, 죽여버린지라 딱 그 정도의 감상밖에 없는 녀석이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였으니 상관은 없었다.
로로랑 니아를 보고서 헛소리도 했었고.
“유적, 유적이라... 무슨 특징은 없었나요? 문양이 있었다던가, 그런 것들이요.”
그보다, 루시아는 투르크인지 뭐시기하는 녀석들보단 유적 쪽에 관심이 생겼나보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거리며 묻는 루시아의 말을 듣고서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 유적들. 거인들이 남긴 거라더라고. 확실히 엄청 크긴 하더라.”
“네? 거인이요?”
거인이 거기서 왜 나와? 그런 표정을 한순간 지어 보였던 루시아였지만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래서 낙스. 버림받은 땅이였나요.”
응, 루시아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던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이지경님께 이 세계에 대해서 얘기해드린 적이 있었죠?”
이것저것 많이 들었었다.
이세계가 도바난, 드래곤들의 땅이라고 불리던 대륙과 인간을 비롯한 종족들이 살아가던 아투스, 그리고 낙스라는 대륙으로 나뉘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의 대륙과 그 외, 낙스로 나뉘어버린 거라던가.
드래곤과 거인이 한바탕하고, 그 결과 패망한 거인들이 사라지게 됐다던가.
거인이 남긴 유산이 내 정력제 신세가 되어버린 일로 꽤나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아마, 낙스는 과거 도바난과 마찬가지로 거인들이 지배하던 대륙이었겠죠. 그걸... 승리한 드래곤들이 분리시켜서 격리했다고 보면, 네. 이지경님이 발견한 유적들에 대한 것들도 납득할 수 있겠네요.”
“...제대로 된 기억은 없나 봐?”
“선대의 드래곤... 제 전생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전부 물려받은 것은 아니니까요.”
조금 방법이 특이하지만, 결국에는 전생.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별개라고 말하는 루시아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역시 이미 알고는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외에 다른 건 없었던 거죠?”
“딱히... 뭐, 대단한 건 없었는데. 그냥 크기만한 유적이였어.”
“그런가요. 뭐, 이미 수천 년도 전에 멸망한 종족의 유산이 보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긴 하네요... 참, 그거 외에는요? 다른 건 없었나요?”
이내 유적에서 관심을 바꾼 루시아의 질문이나, 도중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기 시작한 아샤와 아냐, 아르카의 질문들을 받아가며 대답해줬다. 대충 낙스에서 어떤 생물이 사는지, 낙시안들의 수준이나 의복은 어떤지, 유적 말고도 거인의 흔적은 또 없었는지 등이였다.
뭐, 진짜 휑하니 아무것도 없던 곳이라 금방 다들 관심을 꺼버리긴 했지만.
“...무슨 할 말 있어?”
샤르만 빼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샤르에게 그렇게 묻자, 이내 고개를 젓는 샤르가 보였다. 워낙에 무표정인 샤르였지만 굳이 상태창을 볼 필요도 없이 딱 봐도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할 말이 없다는 샤르에게 굳이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정말로 말하고 싶어진다면 어련히 알아서 말해줄 테니까. 오히려 그편이 좋았다.
“그건 그렇고, 에루나는 어디 갔어? 안 보이는 건 둘째치고,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아, 에루나는...”
내 물음에 루시아가 대답하려던 때였다. 쩌억, 하고 눈앞에 여느 때와 같은 시녀복 차림의 에루나가 걸어나왔다.
피투성이로.
“...에루나?”
“실례했습니다, 주인님. 급히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에루나를 보고서 일단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피투성이긴 했지만, 에루나에게는 상처 하나 없었다. 시녀복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보니 피투성이인건 손부터 팔뚝까지였고 나머지는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부엌에서 뭘 잡고 있다가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코끝에 닿은 혈향은 꽤 익숙한 것이였다.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이건 분명... 인간의 피 냄새였다.
“무슨 일이야?”
에루나가 난데없이 인간을 잡고 있었을 리는 없었다. 애당초 에루나가 인간들과 관련될만한 일이...
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굳이 내가 낙스까지 갔었던 이유. 그곳에서 엘리시스와 보레아스를 구해왔던 이유를.
“설마, 그새 전쟁이라도 난 거야?”
에루나를 비롯해서 아내들이 최대한 전쟁을 미루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묻자 고개를 내저은 에루나가 말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제국은 여전히 요정향의 엘프들과 테 베르나의 드워프들의 항의로 한창 씨름 중이니 말입니다. 거기에 기상악화 마법에 의한 악천후 속에서 세이렌들과 씨 서펜트, 크라켄들을 뚫고 전쟁을 할 정도로 인간들이 강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응, 그것도 그렇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인간이였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세계의 인간들은 조금 그랬다. 몇몇 일부를 제외하면 단순히 숫자만 많을 뿐인, 그저 그뿐이 자랑인 종족들. 딱 그 수준이였다.
그 숫자가 문제라서 세계의 지배자를 자칭하고 있지만... 그런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 드래곤들의 앞에서는 숫자 따위야 얼마나 많던 하등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이 서로 전쟁을 일으키던, 죽어나가던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일단, 이쪽에서 실수해서 생겨날 뻔한 전쟁 때문에 죽어 나가는 건 역시 조금 그렇기도 하고, 쓸데없는 일로 루시아가 상처받는 꼴을 보기 싫어서 전쟁을 막고 있을 뿐이였다. 솔직히 이것마저도 조금 귀찮았다.
현재 제국을 비롯한 인간들의 연합과 란자크인지 뭔지하는 바다에 있는 섬 나라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일들도, 모두 아내들이 부담하고 있는 짐덩이들이였으니까.
아무튼 아무리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악재등을 전부 무시하고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해상왕국인 란자크 왕국과 붙을 순 없었다.
동물들도 제집에선 한 수 먹어주고 싸우는 법인데 하물며 바닷일로 먹고사는 왕국과 악천후와 몬스터들을 감안하고 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란자크 왕국에서 해안가를 봉쇄하고 농성만 하더라도 죄다 고기밥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란자크 왕국의 식량은 이쪽에서 대주고 있으니 몇 년이고 농성이 가능한 상태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기상악화는 상당히 마력을 많이 소모하는 마법이기도 하고, 엘프들과 드워프 사절단도 계속 물고 늘어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엄청 귀찮으니까.
그래서 일단 전쟁의 원인이 된 실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스에 다녀왔던건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에루나가 인간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는지였다.
그런 의문을 담아 에루나를 쳐다보자, 고개를 숙이며 에루나가 대답했다.
“엘프들을 비롯한, 제국에 있는 엘프와 드워프 사절단을 인간과 마수들이 습격해왔기 때문입니다.”
“...습격? 마수?”
습격했다는 건 이해했다.
좆간이 좆간짓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면 됐으니까.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인간들의 나라에서 엘프와 드워프들을 노예로 부리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족속들도 있다는 것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 그런 과격분자들의 눈에는 노예문제니 뭐니하면서 따지고 드는 이종족들의 사절단들은 귀찮기 짝이 없으니, 편하게 전부 슥삭하려고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수라니? 내가 알기론 마수는 마왕이 만들어내는 괴물들을 말하는 거였다.
예전에 봤던 것처럼. 마왕이 인간의 몸을 제물로 삼아 만드는 일종의 권속이자 생체병기들이였다.
그리고 마왕은 나였다.
즉, 내 권속이 내 아내들이 보낸 이들을 습격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안다.
애당초 난 마수를 만든 적이 없으니까. 에네스타를 비롯한 권속은 여럿 만들었지만, 마수 같은 걸 만드는 취미는 없었다.
마수를 만드는 방법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사람을 제물로 해서 만드는 괴물.
그런 걸 내가 만들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아무튼, 그 피는 그럼 마수의 피란 거네?”
“인간의 것도 조금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뭐, 인간으로 만드는 거니까 인간의 피랑 비슷해도 이상할 건 없지.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던 건 마수로 변했기 때문인가.
“다치진 않은 거고?”
“제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실제로 이 몸으로 유일하게 다친 적은 주인님께 안겼을 때뿐입니다만, 혹시 확인해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피투성인 손으로 치맛단을 잡아 올리려는 에루나를 저지했다.
아무튼 에루나가 다친 게 아니라면 됐다.
자, 그럼 어떻게 된걸까.
어째서 인간들의 제국에서, 마수 따위가 튀어나온 걸까.
“뭐,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마침, 그 제국에서 무려 공작 부인이나 되시는 초월자가 이쪽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