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1화 〉321화 (321/370)



〈 321화 〉321화

“...뭐가 갖고 싶다고?”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아니 잘못 들었던 거였으면 싶어서 그렇게 되물었다.

알고는 있다.

밥과 물 대신에 들이켜  영약들과, 그동안 단련한 성과, 계속해서 상승한 능력치로 인해 상승한 능력치에 의한 오감의 강화는 이미 수십만이 살고 있는 도시 속에서, 루시아가 소환해냈던 유성낙하 마법에 공포에 질린 수많은 이들이 신음하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준으로 좋아진 상태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내뱉은 단말마마저도 모조리 귀에 닿았던 내가 바로 옆에 있는 로로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 일이, 잘못 들을 일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하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렇게 물어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이가 갖고 싶어.”

단도직입적으로, 되물은 내 말에 로로가 재차 그렇게 대답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붉은 눈, 거기에 뒤섞인 검은색.


나의 색으로 얼룩이 생겨나버린, 이제까지  번이고, 그저 내가 거둔 아이라고. 그렇기에, 그저 딸이라고만 여기려고 했던 소녀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덕분에 새삼스럽게, 정말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진지하게, 나와 눈을 마주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로로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로로가 내게 해온 고백이 단순하게 어린 딸이 자기가 크면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고백을 들은 것 같은 여러모로 훈훈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을.


"......"


진심으로 고백한 것이다.


내가 딸이라고 여겼던 아이에게.

내가 딸이라고만 여기려고 했던 소녀에게.

 아이가 갖고 싶다고 고백을 받아버린 것이다.

어딘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못들은 척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모두가 있는 곳에서 고백해온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단 둘만이 있는 자리였더라면, 그랬더라면 무시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마 분명 못들은 척,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증인이자, 증거가 된 셈이니. 설령 내가 못들은 척하더라도, 곁에 있는 아내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그래... 잘못 들은 건 아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손을 꽉 그러쥐는 카르네가 보였다. 불안한 듯 이쪽의 눈치를 살펴보는 카르네를 마주봤다. 방금전만해도 행복에 겨워했던 카르네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물들어있었다. 아니, 그녀만이 문제가 아니였다.


꾸욱, 하고 입술을 깨물고서 이쪽을 응시하는 크리샤와 보기 드물게 졸음이 싹 달아난 얼굴로, 진지한 얼굴의 아르카가 보였다.

그녀들만이 아니라...

“저기 아냐,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 거야? 오빠의 아이가 갖고 싶다니? 쟤, 오빠의 딸이잖아?”


“ㅡ글쎄, 언니. 나도  모르겠는걸.”


로로의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욱이며 옆에 있는 아냐에게 묻는 아샤와 묘하게 어두워 보이는 얼굴로 아샤의 물음에 대답하는 아냐까지.


이미 로로의 말을 곧이곧대로 같이 듣게  연인들이,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이 보였다.

그녀들의 주위로 피어오르는 마력이, 그녀들의 심기를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ㅡ 자칫 잘못했다가는 크게 펑 터질 것만 같은 시한폭탄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정도였지, 크리샤와 아르카 아냐의 압박을 직접 받고 있는 로로는 이보다 더할 것이 분명했다.

후들후들...


순수하게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검주급에 이르렀다고, 에네스타에게 보증을 받은 로로의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이 보였다.


드래곤들의 마력이, 무형의 힘이 로로를 짓누르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검주라고 하더라도, 간단하게 뭉개버릴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로로를 누르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로는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두 눈으로 나를 담아서, 자신의 소원을. 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지경님.”

스윽, 하고 그런 로로와 드래곤들의 사이를 루시아가 가로막으며 말을 꺼내왔다.


후욱, 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루시아의 마력이 로로를 둘러싸는 것이 보였다. 그런 루시아와 로로를 보며 눈살을 찡그리는 아내들이 보였다.


루시아와 아샤, 그리고 샤르를 제외한 아내들이 행사하고, 로로를 짓눌러오던 마력이 루시아의 마력에 흩뿌려졌으니까.

자신들을 방해한 루시아를 쳐다보던 크리샤와 아르카, 아냐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루시아.”

“어떻게 하실 건가요?”

루시아의 마력으로 보호받은 로로가 한결 부담이 덜한 듯 표정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로로를 보며 안도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내 말을 기다리는 루시아도. 그 곁에서 이쪽을 방관하며 지켜보는 샤르가 보였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한다라.”

이 모두를 생각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나 자신에게 무심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찌고 앉았을 상황인데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럭저럭  버티는 수준이 아니였다.


루시아가 먼저 로로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서서... 로로를 일단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해결책이 되지는 않겠지만, 로로와 달리 나를 그녀들이 어떻게 할 리는 없었으니까.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그리고 아마, 로로의 안전을 핑계로 그녀와 떨어졌을 거다.


지금은 위험하다.

나중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식으로 타일러가며 거리를 뒀으리라.


이미 해버린 약속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테고.


하지만 그런  마음을 읽은 것처럼, 루시아는 자신이 직접 모두의 책망을 받아가며 나섰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도망칠까하는 생각을. 일단 여기서 어떻게든 무마해볼까하는 생각을 할  있을 리가 없었다.

‘...각오를 다지란 거겠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받긴 했나보네.’

낙스에서 편린을 발견하고서, 그곳에 있던 모든 편린을 흡수할 때... 나는 그 대가로 인간의 일부를 버렸다.


처음에는 한 쪽 눈을, 그 다음엔 심장을, 또 그 다음엔...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내게서 사라져가던 것을.

내게 남아있었던 인간으로써의 여러 가지들을.

어차피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조금씩 줄어들고 있을 바엔 그냥 냅다 버려버린 건데... 그 영향이 이제와서 보니 꽤나 컸다.

하나를 바치는 것으로 하나의 편린을 흡수했었던 이전과 비교해서, 상태창에서 그저 덩그러니 표기되는 것이 체감상의 전부였던 인간을 버리는 것만으로 무려  개나 되는 편린을 흡수한 것은 분명 수지가 맞는 장사였으니까.

그때는  좋은 생각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인간.

인간성.


내가 여태껏 쌓아왔던, 윤리라던가, 이지경이란 인간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것들을 전부 버리고 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반신으로써의 나를 선택한 대가를 느끼고 있는 지금으로써는 그 생각이 낙관적이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의 나였더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와중에 가장 도덕적인 방법을 찾고나 있었으니까.

그것이 모두에게 상처만 줄 일이라는  알면서도.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못해서 오만하게.


로로를 붙잡고 설교라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윤리니 뭐니하는, 이세계에서 하등 상관도 없는, 내 세계의 잣대로.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지 냉정하게.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을 뿐이였다.

마치 드래곤처럼.


그야 인간성을 모두 버린 지금이야, 내 종족은 상태창으로 봐도 반은 드래곤에 반은 신이였다. 인간이라고는 이제 쥐뿔도 없는 몸이란 소리였다. 그러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건 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주체.

에루나가 내게 조언했던 것.


내가 인간을 버리고서도 어디까지나 나, 이지경으로써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자신을 이지경이라는 인간으로, 그러한 존재로 주체를 확립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나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가정하에 움직인다.

이제 막 반신의 반열에 올라서 애매모호한 자아를, 그렇게 둘러싸서 만든 것이 지금의 나였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했을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로로.”

“응, 아버지.”


이름을 부르자, 내가 도망칠 수 없게, 나를 그저 바라만 볼뿐이었던 로로가 대답해왔다. 내가 말을 걸은 것에서부터, 어느 쪽이던간에 내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 어느 샌가 영악해진 딸아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내가 마주잡고 있던 카르네의 손을  붙잡았다.

“아...”


그렇게 한 번 꼭 붙잡아줬던 카르네의 손을 놓자, 움찔하고 그런 나를 쳐다보는 카르네가 보였다.

이윽고 떨어져나간 내 손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카르네에 나중에 반드시 제대로 사과하기로 하고서. 로로의 앞에 다가간 나는 무릎을 굽혀서 로로와 시선을 마주하고서 물었다.


“그게, 정말로 네 소원이니?”

“...응.”

고개를 끄덕이는 로로를 보고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큰하고, 가슴이 조금 저릿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억지로 쥐어짜내듯이 느끼는 자책감이었으리라.


인간이 아닌, 나라는, 인간이었던 이지경이란 본연의 존재가 느끼는 죄책감.


로로의 아버지로써 있기로 원했던 내가 느끼는 죄책감.


좀 더 확실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런 걸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거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선을 그으려고 했었더라면, 지금같이 그녀를 대했으면 안됐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에루나보다도 더욱 깊숙하게 연결되어있는 영혼의 복속은, 그 모두를  수 있게 해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서 그녀를 대한 것이. 그것이 문제였을 뿐이였다.


정말로 내가 로로의 아버지가 되고자 했더라면.


처음 크리샤와의 관계를 그 아이에게 들킨 이후로, 매일 밤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그녀를 말렸어야 했을 것이다.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서든 타일렀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내게도 몇 번이나 그럴 기회가 있었다.


편린의 문제로 로로에게 상의하러 갔을 당시에, 한밤중에 방에 있던 로로가 땀투성이로 나를 맞이했다던가 하는 일도 있었으니. 그때 로로를 모른 척했고, 돌아왔을 당시의 아르카도 그를 눈감아줬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다.


조금씩 커져가는 그녀의 마음을, 훨씬 오래 전에 내쳐야했었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그녀의 아버지로 남아있길 원했더라면.


그래야만 했었다.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뿐이였다.

태어나서, 가장 사랑으로 보살펴줘야했을 존재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이제껏 상처만 받아온 그녀에게. 그를 대신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로로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쏟지 못한 것도 알고 있었다.


마냥 관심을 쏟을 상황이 아니였다고 변명하려면, 그러려면 그럴 수야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결과이니, 변명할 거리가 되지 못하니.


선택으로 말미암은 결과는 오직 그 자신만이 책임져야하는 법이었다.

“분명 약속했었지.”

낙스에서 돌아오면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로로와 했던 약속은, 단순히 약속이였지만 이제와서는 언약이 되어 내게 얽혀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함부로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였는데.

모처럼 생존본능이 일 해줬는데도 눈치 채지 못한 내 둔감함을 탓해야할까.

“...뭐, 이미 늦었나.”

씁쓸하게 웃어보이고는, 로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날 사랑하니?”

“...응.”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딱 잘라서 말할  있을 만큼 내게서 완전히 인성이란 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인간으로써의 나를 버렸다고는 해도, 결국 주체는 나였기에 여기까지 와서도 여전히 우유부단한 것을 탓하며, 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내 말을 기다리는 딸아이를 바라봤다.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폭력과 애정결핍이 낳은 일그러지고, 망가져버린 부성애.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 너는  아이를 낳게  것이다, 로로.’

로로의 아비였던, 추악하기 그지없는 개새끼가, 자락스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도 아까울 쓰레기가 로로의 피를 주먹에 묻히며 읊어댔던 저주는, 여전히 사슬처럼 로로를 얽매고 있었던 것이다.


폭력으로부터 주입된, 어긋난 성관념. 애당초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러한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구하고서, 그런 그녀의 운명을 거두고서, 그런 그녀의 아버지를 자칭한 것이 잘못됐던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로로가 느끼는 것이 아마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내 선택이니까.


“닮았구나, 너랑...”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아내들을 둘러봤다.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미간을 찌푸리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을 보니 대충 스스로도 납득한 것일 거다.

그래, 로로는 닮아있었다.

로로와 내가 처음 이세계에 소환됐을 당시의... 지금은 내 연인이 된 드래곤들은, 그녀들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자신의 자식들조차도 ‘도구’로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던, 망가져있던 드래곤들과 망가져있는 딸아이는 꽤나 닮은 꼴이였다.


끝없이 내게 요구하고, 욕정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질투하는 아내들처럼.

로로 또한 그런 것이다.

이미 혼으로 연결되어있음에도, 끝없이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증거를 원하고, 나와 더욱 굳건한 연결고리를 갖고 싶어 하는, 이미 오래 전에 고장나버린 가엾은 나의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그게 네가 바라는 소원이라면, 내가 이뤄주마.”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의 결과라면, 내가 마땅히 책임지기로 했다.


그것이 무엇을 낳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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