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0화 〉320화 (320/370)



〈 320화 〉320화

”그나저나, 아까는 왜 그랬던 거야?”


“아까라니 뭐가?”


“아까 말이야~ 멍청하게 서서 가만히 있고...”


러브호텔을 그대로 옮겨 넣은 관람차를 보고서 스턴을 먹었을 때의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조금 그리워서.”


러브호텔을 빼다 박은 관람차의 안을 보고서 정말로 그립다는 감정을 느꼈을 리는 당연히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을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부분이 없잖아 있어도 일단은 내가 살던 곳의 풍경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러브호텔이 어쨌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다간 어떻게 될지도 뻔히 예상이 되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변명이 통한 것인지  말을 듣고서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르네가 보였다.

아니, 그냥 납득만 한 게 아닌지 조금 어두워지는 카르네의 표정이 보였다.


“그래, 이것도  세계에 있던 거니까...”


“왜 그래?”

“...아니, 생각해보니까 뭐, 그렇잖아~? 우리 때문에,  다른 세계로... 다른 차원으로 소환된 거니까. 이것들도, 아까 본 것들도 전부... 네 세계에서만  수 있는 것들, 이제는 이렇게밖에   없는 거잖아~?”

우물쭈물하며 대답하는 카르네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넌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것들이 이렇게나 잔뜩인데... 그리워도,  수 없어진 것들이 잔뜩, 잔뜩 있는데... 그런데 나는 겨우 일주일밖에 못 봤던 거나 가지고 그렇게나 짜증이나 내고...”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거의 다 끝난 일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데이트... 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카르네가 우울해지려하는 것을 보고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내가 말했다.


“그래, 엄청나게 커다란 창으로 때리기까지 했지.”


“읏...! 그, 그건...!”

“그건 뭐?”


그렇게 말하며 카르네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네가 보였다.

꼼지락, 꼼지락하고 드래곤 슬레이어를 애무하는  편, 그러고 있는 카르네가 엄청나게 귀여웠다.

“그건... 너인줄, 몰랐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쩔  없었잖아~!”


변명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카르네가 무척이나 귀여워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뭐, 뭐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카르네를 보고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미안해져서 울상인 카르네를 보는 게 웃겨서?”

“우, 웃기다고~?!”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여서, 얼굴이 붉어진 카르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이제 와서 참 빨리도 신경써준다 싶기도 하고.”


“으읏~!”


그 말에 말을 잇지 못하는 카르네에게 내가 말했다.


“뭐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거니까, 그러니까 이제 와서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한때는, 아니 한때라고 하기엔 그다지 옛날의 일도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고향이, 집이, 가족들이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기는 있었다.

그런 와중에, 크리샤가 내게 제안했었던... 편린을 소모하는 것으로 돌아갈  있다는 말에 혹했던 적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었다.

돌아가기보단, 이곳에 남아있기로 작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였다.

내 의지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카르네가 신경써줄 일은 결코 아니였다. 하물며 그런 일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 것도 보고 있을  없었다.


그래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카르네의  볼을 집어서 미소 짓는 얼굴을 짓게 만들었다.

“그보다 난 평소의 카르네가 더 좋으니까 빨리 틱틱거려주라, 응?”

“내, 내가 언제 틱틱거렸다고~?!”

“지금 그러고 있네”

그렇게 말하며 웃자 새빨갛게 익은 딸기처럼 붉어지는 카르네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놀린 모양이었다.


“돼, 됐으니까 이거 놔~! 기, 기껏 신경써줬는데... 손해 봤잖아~!”

내 손을 뿌리친 카르네가 그렇게 말하고선 휙하고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삐친 것이 아니란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부끄러워서 그런 것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응, 미안. 그리고 고마워, 카르네.”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그런 카르네의 머리카락을 다시 쓰다듬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손길을 뿌리치진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이긴 했지만. 내 손길에 머리를 맡긴 채로, 괜히 어색해서 쪼물쪼물하고 손가락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만지고만 있는 카르네가 보였다.

그런 카르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아무튼, 슬슬 만족했지?”


“...약속 지켜야 돼~?”

“그럼, 약속한  반드시 지키니까.”

거기에 지키라는 약속도 오히려  쪽에서 바라는 바였다. 솔직히 이번에 잔뜩 빼긴 했는데, 조금 부족한 느낌도 없잖아 있긴 했으니까. 그렇다고 오늘 또 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아무튼 카르네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가... 뭔가 등골이 오싹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데.


“...왜 그래?”


“아니, 일단... 끝났으니 돌아가자고.”


바지를 추스르고서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카르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사랑해, 카르네.”

“읏...!”

 말에 화악, 하고 얼굴이 붉어진 카르네가 결국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시, 시끄러워~! 이상한 소리 금지! 알겠어~?!”

“이상한 소리라니, 너무하네. 사랑한다니까?”


“그, 금지라니까~?!”

빼액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카르네를 보고서,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건 내일하기로 하고서.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차례대로 만들어졌던 세계가 무너졌다. 어차피 남아있던 것도 얼마 없었던 세계였던지라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름대로 공을 썼던 것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자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열심히 쌓은 모래탑을 무너뜨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정말로 끝임을 알았는지 내 옆으로 다가온 카르네가 입을 열었다.


“진짜로, 약속 지켜야한다~?”


재차 다짐하라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붙잡는 카르네를 보고서,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너나 도중에 그만해달라고 울지나 마.”

“...너, 너무 심하게는 하지말고.”

“음... 생각해보고.”

“...심술쟁이.”


그런 내 말에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카르네. 들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청력은 카르네의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뭐, 귀여우니 넘어가자.

그리고ㅡ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덧씌웠던, 내 세계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세계로. 내가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이걸로 대충 전부 끝났으니까, 목욕이나 하고 오랜만에 눈이나 붙일까 하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럴 수는 없어보였다.

“안 되는  안 되는 거예요. 특히 당신은...”


“하지만,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걸.”


“그건...”


“...이게  일이래.”


그런 내 눈에 비친 것은, 무척이나 험악한 분위기로 서있는 루시아를 비롯한 아내들과 로로였다. 곁에 있는 니아나 바록과 바쿠. 심지어 곁에 끼게 된 보레아스조차도 무척이나 난감해하는 것이 보였다.

“흐으응,  전설속의 드래곤이 이렇게나 인간적일 줄은 몰랐는걸.”


그 와중에 미친년은 여전해보였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릿저릿하고 압박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는 엘리시스를 바라보다가, 이쪽을 본 니아가 눈에 띠게 다행이라는 얼굴로 달려들 듯이 내게 안겨왔다.


“주인님~! 오셨어요?”


마치 위험한 곳에서 긴급히 탈출하듯이 날듯이 내게 안긴 니아를 받아들고서 말했다.


“그래, 니아야.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니까...”


우물쭈물 말을 아끼는 니아를 대신해서, 대답한 것은 으드득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이빨을 꽉 깨물고 있는 크리샤였다.


“무슨 일이긴, 이 바보야! 네가 대책 없이 해버린 약속때문이잖아?!”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소리지르는 크리샤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제멋대로 크리샤의 온천에 루시아랑 같이 쳐들어갔을 때 이후로는 저렇게나 화를 내는  본적이 없었는데.

“야, 약속이라니 뭐가?”


“게다가 까먹기까지 했어?! 너 진짜ㅡ!”


“그만, 크리샤 너무 흥분했어요.”


“이게 흥분하지 않고 넘어갈 문제야?!”

“그래도, 너무 화를 내면 몸에 좋지 않아요. 당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으읏...!”

루시아의 말에 크리샤가 부글부글 끓는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팩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 무슨 일인데 그래~?”

덕분에 바짝 쫄은 카르네가 그런 나의 손을 꽉 붙잡으면서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준 카르네의 질문에 루시아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지경님, 정말로 로로와... 낙스로 가기 전에 계약을 하신 것이 맞나요?”

계약.


말이 계약이지, 드래곤 수준에 이른 존재들은 가볍게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언약이 되어, 약속  자체가 구속이 되고는 했다.


드래고니안이 되면서 반은 드래곤이 비스무리한 것이 되어버린 나도 어느 정도 겪어봤으니 알고는 있었다.

그 전에도, 드래곤들이 얼마나 약속을 중시하는지, 또  약속으로 인해 구속을 받는지도 보아왔으니 더더욱 그랬다.


오싹오싹하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카르네와 약속했을 때도 느꼈던, 무언가 잊어버린 것이 무엇이였는지 기억도 났고.

로로와의 약속.


낙스에서 돌아오면, 뭐든지 그녀가 갖고 싶다는 것을 주기로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했지, 근데 그게 왜?”


“...나머지는 직접 듣는 것이 빠르겠네요.”

평소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고 말았을 루시아였는데도 차마 입에 담기 싫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로로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런 루시아의 시선을 따라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로로를 바라봤다.

저주라는 이름으로.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녀가 원치도, 바라지도 않았던 것들만 잔뜩 겪었던 소녀가. 내가 거둬들이고, 내가  세계에서 다시 낳은 소녀가.


내 딸이.

날 닮게 되어버린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단 둘이 있을 때에만 부르도록 허락했던 호칭으로, 느릿하게, 나를 부르는 로로의 검붉은 두 눈동자에 내가 비쳐보였다.

“...뭐든지, 내가 원하는 걸 준다고 했었지.”

“...그랬었지.”


단지 쳐다보고 있을 뿐인 로로였지만, 그녀의 감정이 내게 흘러들어왔다. 혼의 구속, 운명의 속박. 내가 거둬들이고, 그녀의 전부를 가져갔기에.


그녀가 마땅히 누려야했던 권리도, 부당한 운명도, 피할 수 없었던 저주도. 오롯하게 내가 가져가고, 그녀에게서 빼앗았기에.


 첫 가신이였던 에루나보다도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어있는 영혼의 고리를 통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상태창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있었다.

접으라고 했었다.

그럴 수 없었다고 했었다.

그녀의 감정을, 그녀가 내게 갖고 있는 감정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딸’이라는 이름과 함께 거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이 자그맣게. 처음으로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나, 아버지의 아이가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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