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화 〉314화
“늦어, 늦어, 늦어, 늦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늦잖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소리치는 카르네를 보고서, 루시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연락을 끊어버린 이지경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은 것이,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벌써 일주일째였기 때문이었다.
거울은 어디까지나 쌍방의, 어느 쪽으로든 연락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루시아도 먼저 이지경에게 연결을 시도해봤지만 그 역시 되질 않았기에 루시아 역시 무척이나 초조한 상태였다.
하지만 드래곤의 로드로써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는 루시아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카르네를 달래며 말했다.
“...곧 소식이 올 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카르네도 무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아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지경에게 쥐어주었던 아티펙트, 소지자의 신변의 문제를 알려주는 아티펙트는 전과 다를 바 없이 멀쩡했다.
즉, 이지경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그 사실을 카르네에게 주시시켜 말한 루시아였지만, 곧장 돌아온 카르네의 반박에 할 말을 잃었다.
“무사한데도 아무 연락도 안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혹시 거기서 딴 살림이라도 차린 거 아니냐고~?!”
“......그건 또 어디서 본 건가요.”
카르네의 말에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던 루시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토했다. 정작 아직 이지경과 관계를 맺지 않은 카르네가 하는 소리라고 하기엔 웃기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카르네의 말에 동조해서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렸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불안하다는 건가요...?’
그의 아이를 갖고, 그의 사랑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랬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루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 진정하세요. 크리샤나 아르카, 그리고 샤르에게도 연락해뒀으니... 정 뭐하면 직접 이지경님을 찾으러 가면 되니까요.”
“찾으러 가다니, 누가? 네가? 그런 몸으로~?”
“...방법이야 많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이지경에게 미움 받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좀 진정하세요.”
“...흥, 됐어. 어차피 그 녀석, 거기서 콱 죽던 말던 나랑 상관도 없으니까~!”
조금은 진정한 듯이, 다시 토라져서는 픽하니 말을 내뱉는 카르네를 보고서 루시아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카르네를 바라봤다.
“뭐, 뭐야~?! 왜, 왜 그렇게 보는 데?!”
“아뇨...”
밤마다 꼼지락거리는 카르네의 모습을 본 것을 말할까, 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관두기로 한 루시아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시아는 일주일 사이에, 더욱 커진 배를 어루만졌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 역시, 카르네처럼 어쩔 도리가 없이 날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지경이 없는, 그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자신을 진정시켜주는 것을 상냥하게 보듬었다.
“저기, 루시아. 딴 살림이란 게 뭐야?”
“오빠, 왜 안 오는 거야?”
그런 루시아를 다가온 아샤와 아냐가 묻는 질문에, 루시아는 더더욱 마음을 다잡고서 말했다.
“카르네가 헛소리를 한 거니 잊으세요. 그리고, 이지경님은 금방 돌아올 테니 둘 다 걱정하지마세요. 알았죠?”
“응...”
“내일이면 오겠지?”
“그럼요.”
그렇게 대답하고서, 품에 안겨오는 아샤와 아냐의 머리카락을, 루시아는 상냥하게 쓸어내렸다.
둘 역시 불안한 것이리라.
마냥 어려보이기만 하는 아샤와 아냐 역시 점점 늦어지는 이지경의 소식에 침울해하는 것을 보면서, 루시아는 속으로 빌었다.
‘부디 별 일이 없었으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바로 그 직후에, 별일이 일어났다.
콰앙, 하고 문을 걷어차며 흑발을 나부끼는 아름다운 여인이 침실로 들어왔으니까.
“그 바보가 소식이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ㅡ?!”
방금까지 길길이 날뛰던 카르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는 크리샤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리자, 천공성이 흔들렸다. 거대한 마력과 함께 방출된 드래곤의 피어 때문이었다.
숲거인, 숲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몬스터. 오우거조차도 들으면 오줌을 지리고, 주눅드는 포효였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드래곤이였다.
같은 드래곤의 피어를 좀 들었다고 공포에 질릴 일은 없었다.
물론, 엄청나게 시끄럽긴 했지만.
그런 만큼, 크리샤의 뒤를 쫓듯이 들어온 아르카가 귀를 손으로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끄러워어, 이 바보야. 이젠 조금은 얌전해질 때도 됐잖아아?”
“네가 지나치게 태평한 거거든?!”
오자마자, 투닥거리는 자매들을 보고서 루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소식을 전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른 행동력이였다. 아이를 갖게 된 이후로 매사에... 이전보다도 훨씬 조심스러워진 자신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다른 둘의 모습에 루시아는 일종의 감탄 같은 감정을 느끼며 말했다.
“크리샤, 아르카. 일단 진정하세요. 그리고, 샤르는요?”
“뒤에 있잖아!”
“샤르는 키가 작으니까아 네가 그 커다란 배로 가리고 있으면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이.”
“너도 크거든? 나보다 늦게 가진 주제에... 너, 그거 사실 다 살 아니야?”
“흐응, 내 아이가 네 아이보다 더 건강하다는 증거겠지이.”
“...둘 다 시끄러워.”
그 말대로, 샤르 역시 크리샤와 아르카에 가려져있을 뿐, 뒤에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불만을 토하는 샤르를 본 루시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 모두 모이게 된 거군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이지 않는,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일곱의 드래곤들이 일 년 사이에 대체 몇 번이나 모인 걸까.
그 이유들이 하나같이, 이지경이였단 사실에 루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남자.
이지경이 갖게 된 영향력이 지금에와서는 이만큼 커다랗다는 소리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드래곤들이 모두 모인 이상 낙스에서 소식이 끊긴 이지경을 구해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됐다.
물론...
“뭐? 지금 내 아이가 네 아이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야?”
“글쎄에... 그렇게 들렸어?”
쓸데없는 일로 다시 붙으려고 하는 크리샤와 아르카를 말려야하겠지만.
“어쨌거나, 다들 진정...”
재차 늘어난 일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또 다시 중재에 나서려는 루시아가 멈칫했다.
아니, 루시아뿐만이 아니였다.
방금까지 투닥거리던 크리샤와 아르카도.
무표정하게 그런 둘을 보며 귀를 막고 있던 샤르도.
자신의 품에 안겨있던 아샤와 아냐도.
그리고 카르네까지도 모두 조용해졌다.
쩌억, 하고 그런 그녀들의 눈이 갈라졌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드래곤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들이 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가.
무지막지한 것이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다들 뒤로 물러나~!”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카르네였다. 평소에는 철없이 구는 카르네였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격이 그런 것이었지. 드래곤으로써의 본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온전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듀락시아, 카르네의 영지였다.
화르르륵!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붉은 갑옷으로 둘러싸인 카르네의 손을 휘젓자.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창이 소환됐다.
그녀 자신보다는, 그녀의 전생... 부모격의 드래곤 시절에 더욱 많이 사용했던 무기였지만, 카르네에게도 익숙한 무기였다.
다루는 법부터, 그 지식, 경험까지도 온전히 그녀의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무장을 마친 카르네가 곁에 있는 루시아와 아샤, 아냐를 자신의 뒤로 물리고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고위급의 마법을 준비했다.
저 멀리, 땅을 내리비추는 태양의 불길보다도 뜨겁게. 창의 끝이 달아올랐다.
무엇이든지, 꿰뚫는 것을 불태워버리는 업화의 창.
거대한 범위를 파괴하는 마법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력한 마법이 창에 펼쳐졌다.
“샤르!”
“......아마, 괜찮아.”
그리고, 영지 안에 있는 자신보다는 못해도, 일단은 당장 전투가 가능한 샤르를 부른 카르네였지만. 그런 카르네의 말에 샤르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런 상황에서도 영문을 모를 샤르의 말에 노호성을 터트린 카르네의 귀에, 쩌적하고... 경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공성에 몇겹이나 걸쳐서 펼쳐진, 오직 드래곤과 그들에게 허락된 이들만이 넘어설 수 있는 결계가 억지로 찢어지는 소리였다.
“...무슨...”
선대의 드래곤들이 펼친 결계는, 자신들도 함부로 부수기 힘든 결계였다.
안쪽에서라면 몰라도, 바깥에서는 절대로 부술 수 없는, 무적의 결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단숨에 깨져나갔다.
그리고...
벌어진 틈 사이로, 은빛으로 빛나는 손이 튀어나왔다.
“읏...!”
튀어나온 손과, 거기에 담겨져있는... 천공성에 모여있는 일곱의 드래곤조차도 압도하는 거대한 기운에 놀란 카르네가 창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빼꼼하고, 손에 이어서 나온 낯익은 얼굴 때문이였다.
“아, 카르네. 오랜만이야.”
눈이 마주치자, 태평하게 은빛의 손을 흔드는... 방금까지 씹고 있었던 이지경의 얼굴을 본 카르네는 멈춰 섰던 창을 다시 휘둘렀다.
“...너무하네.”
“네가 잘못한 거잖아~!”
머리에 커다랗게 난 혹을 문지르며 하소연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츤츤거리는 카르네의 반응이었다. 그런 카르네를 바라보자 움찔, 하고 몸을 떨기는 했지만 팔짱을 끼고서 나를 노려봤다.
카르네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편이 없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 마찬가지의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드래곤들이 이쪽을 영 탐탁치 않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마력이 없었는걸.”
나름 아낀다고는 했는데, 깨어나고 보니까 그새 마력이 동나있었으니 거울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돌아오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멋대로 넘어온 것은 분명 잘못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 내 대답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크리샤가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건 그런게 아니거든? 이 바보야. 거기서 대체 뭘 했는데... 손이 그렇게 된 건데?”
“아, 이거?”
크리샤의 말에 내가 손을 들어올렸다.
은빛의 건틀릿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멋있는 손이 거기에 있었다. 손가락을 튕기면 인류의 절반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손이였다. 보석은 안 붙어있지만.
“멋지지?”
그렇게 말하자, 잔뜩 얼굴을 찡그리는 크리샤를 보고서 쫄아서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래보여도 멀쩡했다. 거기에 원래대로 돌리는 방법도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활성화되어있던, 전능자의 손을 비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해결됐으니까.
“...그렇다면 상관없긴 한데.”
납득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크리샤가 보였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였다. 잠자코 나를 보고 있는 루시아의 표정이 심각했으니까. 그런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지경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응, 물어봐도 돼. 루시아.”
그녀가 뭘 물어보려는 것인지, 대충 예상은 갔지만.
꿀꺽, 하고 루시아가 침을 삼키고서는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지경님, 설마 신이 되신 건가요?”
그 말에 씨익, 하고 웃었다.
그리고 잠자코 있었던 비활성화중이었던 기능들을 차례대로 활성화시켰다.
아직 드래곤도, 이미 멸종한 거인들도 번성했었을 당시에. 그런 머나먼 과거보다도 더 머나먼 과거에 떠나가 버린 신들이 남겨둔 힘의 파편들.
이 세계를 창조했고, 또 주무를 수 있었던 신들의 힘이 담긴 조각들.
편린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힘을.
나는 차례대로 깨웠다.
과거를 아우르고 비쳐보는 주시자의 눈.
수많은 가닥으로 이어지는 미래의 순간을 훔쳐보는 헤아리는 자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는, 불멸자의 심장
이미 갖고 있던, 세 개의 편린들이 깨어났다.
그러자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각각 백색과 어둠으로 물들었다.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는 마력의 흐름과, 세계의 흐름들이 눈에 비쳐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를 내다보는 지혜, 무지한 자의 진리
그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자의 날개, 역치의 날개
내 머리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원형의 고리와, 등 뒤로는 반대로 달린 듯한 천사의 날개, 그것을 닮은 날개가 돋아났다.
은빛의 건틀렛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전능자의 손까지 합친다면 모두 여섯 개나 되는 편린의 힘들.
그것들이 일제히 깨어나자, 온갖 것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일단, 대답만 하자면...”
긴장한 듯 한 얼굴로 나를 보는 루시아에게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