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1화 〉311화 (311/370)



〈 311화 〉311화

얌전히 길안내를 시작한 마라의 뒤꽁무니를 얼마나 쫓았을까?

스르륵, 스르륵하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마라의 엉덩이와, 뱀의 꼬리로 이어지는 사이의 부분이 슬슬 눈에 박힐 쯤이였다.


쉬잇, 하고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마라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럼  되지. 이름도 생각해뒀는데.”

마누라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데려가서 기를 생각이었던 마라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창을, 그림자의 손으로 가로챘다.

“오... 제법...”


꽈드드득, 하고 그림자의 손에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손아귀 안에서 회전하는 창이 보였다.

혹시 몰라서 마력을 아낌없이 부어넣어서 만든 그림자의 손인만큼 힘도 내구성도 뛰어났었는데도 그랬다.


지금의 투창이 적어도 검주급, 그 이상의 실력자가 쏘아 보낸 투창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이내 얌전히 그림자의 손아귀 안에서 힘을 잃은 투창이 보였다.

검주급의 실력자가 던졌든 뭐든, 그뿐이었다.


“엿차...”


그림자의 손을 도로 흡수하고서, 떨어지는 창을 받아 챘다.


꽤나 묵직했다. 그리고 창의 끝부분에 묘한 무늬도 새겨져있었다.


“아는 무늬니?”

그래서 낙스 출신의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대답을 해온 것은 바쿠였다.

“투르크 부족의 창입니다. 저 꼬여있는 무늬는 대전사라는 의미고... 투르크 부족은 살기 위해서, 다른 부족들을 습격하고 식인을 하는 부족입니다.”


“그래?”

범인을 알았고,  범인이  싹수가 노랗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젠 답례를 해줄 차례였다.

“로로야.”


“응, 아버지.”

로로에게 투창을 넘겨주자 내가 건넨 창을 붙잡은 로로가 창을 움켜쥐고서 자세를 잡았다.

나도 아직 시야에 잡히지도 않은 목표를 향해서, 정확하게 조준하는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죽이진 말고.”

“응.”


로로가 창을 쏘아 던졌다.

슈우우욱!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창의 끝을 바라봤지만,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버려서 끝까지 쫓을  없었다.

“맞췄나?”

“...몰라. 창은 처음이니까.”


로로가 그렇게 대답해서 확인해봤다.


넓게 퍼트린 감각을 통해서,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들이 잡혔다.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스무 명 안팎의 적은 수였다. 그 중 유독 빠른 이들의 숫자는 대충 여섯 정도였는데, 그들과 떨어진  명의 기척도 느껴졌다.

바닥에 엎어져서 꿈틀거리고 있는 기척이였다. 아마 로로의 창을 맞은 녀석이리라. 아직도 기척이 잡히는 걸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배가 뻥 뚫렸네.’


감각을 통해 느껴진 바로는 그랬다. 배 한가운데가 날아가버린 녀석은 로로의 창에 그대로 내장까지 바닥에 모두 흩뿌린 모양인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내버려두더라도 그리 오래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료들마저 거리낌 없이 바로 버려버리고 이곳을 향해 돌격해오고 있었고 말이다.

과연, 식인을 하는 녀석이라더니 동료애도 없나보다.


“...이번에도 바록이랑 바쿠?”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로로가 물었다. 이번에도 바록과 바쿠에게 맡길거냐는 물음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자잘한 것들은 모두 둘이 처리했던 탓이었다.

“글쎄다...”

아마 여기서 대전사라고 말하는 이들... 낙스 밖에서는 최소, 중간은 가볍게 갈 수 있는 검주들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들이 여섯이나 됐다.

바록과 바쿠가 비록 검주급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신체능력은 검주정도는 압도할 정도로 강했다.  덕에 여태껏 알아서 잘해줬지만, 이번에도 둘에게만 맡기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일단 여태껏 한두 마리씩 있던 몬스터랑 비교해서 숫자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 습격을 하던 부족이라니까 이런 일에도 익숙할 테고, 조금 위험해보였다.

“주인님! 이번에는 니아도 같이 놀래요!”

그때 니아가 그렇게 말했다.


꼬리를 휙휙 휘두르며 말하는 니아의 눈동자에 ‘놀고싶다’는 네글자가 떡하니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니아도 마라의 뒤꽁무니만 쫓는 것이 어지간히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음... 여섯 명만 빼면, 나머지는  볼일 없으니까...”


이정도면 충분히 놀  있는 숫자였다.

“그럼, 니아.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렴.”


나를 올려다보는 니아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그렇게 말하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선, 주저앉는 니아가 보였다.

꼭 ‘기다려’를 당한 강아지 같은 자세를 취하는 니아를 보고서 피식 웃은 내가 날개를 펼쳤다.







“도망치지 않아? 이것들이  좋게 투룩을 쓰러트렸다고 우릴 얕잡아보는 모양이군.”

코를 찡그리며, 바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냄새’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투룩 녀석이 멍청하게도, 자기가 던진 창에 맞아버리긴 했지만... 자신들은 투르크 부족이었다. 고작  명도 채 되지 않는, 낙오자들에게 우습게 보일만한 이들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마라랑 투룩을 쓰러트린 대전사를 믿는 건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곤, 그들 곁에 있는 마라와 투룩에게 창을 던졌던 대전사급의  명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대전사만 자신을 포함해서 여섯이었다.

대전사 한  정도야, 방금 같은 갑작스런 기습이 아니라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마라도 마찬가지였다.


독니가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그들의 주무기는 투창이였다. 마라의 독니에 닿을 만큼의 거리를 주지 않고서도, 다가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호오.”

그때, 새롭게 맡아진 냄새에 바카가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사냥감 중에서 무려 두 명이나 ‘암컷’이 있었다.

부족에 새로운 피를 섞어줄 암컷은 무척이나 귀한 사냥감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부족이라 고해도, 암컷을 ‘낙오’시키는 무리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뭐, 병신이라도 아이만 낳을  있으면 되겠지. 그게 아니라도, 쓸데는 많고 말이지.”

고기도 무척이나 맛있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바카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음?”

갑작스레 드리워진 그림자에 바카가 위를 올려다봤다.

“아이가 뭘 어쨌다고?”


촤악!

펼쳐진 날개는 거대한 괴조, 전사들조차도 낚아채 잡아먹는 괴물. 얀투스보다도 더한 크기의 날개였다. 그리고 날개의 끝마다, 그들 자신이 들고 있는 창과 검보다도 훨씬 날카로운 검은 깃털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런 날개를 달고 있는 자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서, 바카는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창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였다.

창을 내던지려고 뻗었던 팔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바카의 몸 위로 그림자들이 뻗어 나왔다.

“우ㅡ 아아압?!”

그림자들이 그대로 바카의 몸을 덮었다. 팔을 감싸, 뼈를 부러뜨리고 목을 그러쥐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림자의 위에서 새로운 그림자들이 뻗어 나오고, 바카의 다리 밑에서도 그림자들이 솟구쳐서는, 그를 땅에 처박듯이 끌어당겨왔다.


대전사라는 칭호에 무색하게도, 수많은 그림자들은 하나하나가 그런 바카의 힘보다도 강했다. 마치 수십이나 되는 대전사들에게 동시에 덮쳐진 것처럼. 바카는 조금의 저항조차 못하고서 그대로 땅에 꿇려졌다.


“응? 다시 말해보도록.”

으드득...!

아마도,  그림자들을 사역하는 자가 바카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대답하려고 해도 바카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강요해오는 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바카의 목뼈를 분질러버렸기 때문이었다.

즉사는 아니였다.

대전사급에 이른 바카는 목뼈가 부러졌다고 해도, 당장 죽어버릴 만큼 연약한 생명이 아니였다.

하지만...

“끄으으윽...”

억지로 입을 벌리고서 목으로 넘어오는 그림자가, 위장을, 살점을 뚫고서 심장을 그러쥐는 것이 느껴졌다. 산채로 심장이 붙잡힌 기분은, 곧장 죽는 것이  배는 낫다고 여겨질 만큼 끔찍한 기분이었다.


'주, 주술사였나...!'


주술사들은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그림자도 저 주술사의 짓인 것이 분명했다.

놈이 주술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방심하지 않았을텐데, 방심해버렸다.

자신이 진심으로, 그에게 창을 던지려고 했던 것도 있고 바카는 그렇게 자기를 합리화했다.

방심해서 당했다고.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이죽거리는 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놈에게 창을 찔러오는 동족의 모습도 보였다.

‘그래, 죽여!’

놈이 죽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죽어서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주술사는 몸싸움에 취약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주술사를 공격하는 동족 역시 자신과 같은 대전사였다.

자신이 당한 것을 알았으니, 동족은 방심하지 않고 주술사놈의 심장을 뚫어버릴 것이다.

주술사가 죽어버리면 주술 역시 풀릴 것이고, 지금이라면...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어찌 저찌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바카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귀찮게 굴지마라.”


그렇게 말하며, 휙하고 거대한 한쪽 날개를 휘두르자 동족의 몸 위로 가느다란 실선들이 그어졌다.

단지  번. 그뿐이었는데 동족은 몸 위에 그어진 수백 개의 가느다란 실선과 함께, 이내 붉은 핏물을 쏟으며 흙 위로 수많은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괴물...!’

족장급.

눈 앞에 있는 자가 족장급의, 아니, 그보다 더한 괴물이란 사실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아주 조금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마무시한 힘을 감추고 있을 뿐이란  그제야 눈치 챘다.

‘사냥당하는 건... 우리였나.’

“할 말이 없으면, 그대로 죽어라.”

그렇게 말하는 놈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바카는 자신의 심장이 터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가볍게 제압만 하려고 했었는데, 워낙 더러운 소리를 하는 걸 들어버려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사자심이 빠르게 냉정을 되찾아주긴 했지만, 냉정을 되찾은 후는 이미 늦은 뒤였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기 전에, 그보다 빠르게 발라버리고 말았다.


“니아가 삐지겠는데...”

대전사급의 여섯 명만 처리하고서 나머지는 애들에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반대로 여섯명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버리고 말았다.


남은 여섯 명도 그림자의 손들에 붙잡혀 뼈들을 모조리 부러뜨려서, 이래서야 가지고 놀라고 하는 것이 실례일 정도였다.

“쯧.”


혀를 차고선,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녀석을 바라봤다.


무릎을 꿇고서, 입을 벌린 채로 죽어있는 녀석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봤다. 가볍게 휘두른 날개에 산산조각이 나서 죽어버린 녀석들을 제외하면, 다들 깔끔하게 죽은 편이었다.


“...별 수 없지.”


꾸루룩, 그림자의 손들이 죽어버린 쓰레기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우둑, 두두둑...!


살을 찢고, 뼈를 조각조각내고, 그 사이사이를 그림자의 손들로 엮었다.


“일어나렴.”


뚜둑, 하고 그 말과 함께 심장을 터트려 죽였던 녀석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였다. 되살린 것도 물론 아니였다.

단지, 고깃덩이가 되버린 시체를, 그림자의 손으로 대신 움직일 뿐이었다.


“자, 가서 적당히 놀아주다가 쓰러지렴.”


한 삼십 분정도는 버틸 만큼의 마력을 그림자의 손에 부여하고서, 살아있는 시체덩이들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이정도라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큼 놀아줄 수 있을 것이다.


튼튼하기로는 내가 전에 사용했던 골렘보다 튼튼한 가죽과 근육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럭저럭 때리는 맛도 있을 거고.

아무튼 니아의 문제도 해결했겠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직은 살려둔 여섯 명에게 다가갔다.

“하나만 물으마. 대답을 잘하면 살려줄 수도 있으니... 잘하렴.”

그런 나를 올려다보는 낙시안들의 시선에, 죽음의 공포가 엿보였다.


아주 오래전처럼만 느껴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전에. 살기 위해 나에게 빌었던 노예사냥꾼들의 표정을 닮아있었다.

우습게도, 그때는 직접 죽이지도 않아놓고서 징징 짰던 내가, 지금은 직접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심지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도 용화, 아니 이젠 드래고니안이라고 해야겠다. 아무튼, 종족이 달라진 탓일 것이다.

내가 느끼기엔 그저, 내가 아끼는 것에 달라붙으려고 했던 벌레 몇 마리를 잡아 죽였다는 느낌의, 그런 불쾌함 정도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이 벌레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있을지, 없을 지였다.


손을 뻗자, 그림자들이 그런 벌레의 머리를 상냥하게 더듬었다. 그러자 히익, 하고 비명소리를 내는 녀석들에게 내가 물었다.

“혹시 팔 두 짝이 없는 미친년이랑, 그 미친년이랑 닮은 여자 못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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