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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0화 〉310화 (310/370)



〈 310화 〉310화
마라라는 녀석이 대체 어떻게 해서 안내를 해준다는 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한 원리였다.


“마라의 행동반경은 엄청나게 넓어. 사냥감들은... 주로 지쳐서 낙오한 이들이나, 버림받은 아이들이지만...”


이 넓은 땅에서, 마라가 사냥감을 찾으려면 후각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애초에 먹잇감이라는 것이 부족한 땅이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방향으로든 ‘색적’에 특화되어야하는 법이었다.

 중에서도 마라는, 특히나 그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수십 키로가 떨어진 곳에 있는 사냥감의 냄새도 맡을  있는 후각이, 마라의 특기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후각은, 사냥감만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발휘했다.


바로 물이였다.

이곳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이란 엄청나게 소중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액체라고  만한 것들은, 딱 봐도 먹으면 안 될  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깨끗한 물’, 적어도 마실 수 있는 물은 무척이나 귀했다.


하물며, 이성도 잃고서... 이리저리 뒤섞인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마라 같은 몬스터라고 해도. 물이 없으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라는 물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그리고 물이 있는 주위에는 낙시안들이 사는 마을도 있다. 낙시안들이 제아무리 튼튼하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물이 있는 곳에,  주위에 생존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엘리시스나 보레아스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설령 초월자라고 해도  없이 버티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말이다.


“자, 그럼 어서 안내하렴.”


손수 발치해서, 입 안에 이빨이 텅텅 비어버린 마라의 꼬리를 꽉 쥐고서 그렇게 말했다.


이빨을 잃은 마라가, 상체만은 미녀인 뱀의 얼굴이 뚝뚝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서 마음이 약해질 리가 없었다.


어찌됐건, 나를 공격했던 몬스터다. 생긴 것이 좀 볼만하다고 봐준다면 내게 머리를 잡아 뜯겼던 고블린들이 저승에서 통곡할 거였다.

생식기까지 뽑혀서,  보양식으로 탈바꿈 당한 오우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안 움직이면... 꼬리도 잡아뜯어버린다?”

꽈아악, 하고 움켜쥔 꼬리를 잡아당기며 그렇게 말하자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몰라도 스르륵, 스르륵하고 마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란 꼬리 끝을 잡고서, 움직이는 마라의 뒤를 쫓고 있자니 꼭 개를 산책시키는 기분이었다.

뱀이지만.


“어허.”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땅을 파고 도망치려는 마라의 꼬리를 감아서 잡아당겼다. 콰드득, 하고 상체를 땅속에 파묻고 도망치려던 마라가 그대로 질질 끌려나왔다.

“바록.”

“알겠습니다.”

내가 이름을 부르자 바록이 마라를 잡아 들어올렸다. 키가 5미터에 달하는 바록이 마라를 들어 올리자 정확히 마라의 머리가 내 시선에 맞춰졌다.


“도망치면 안 되지.”

“카으으으...”

생존본능이 투철한 짐승이라 그런지, 이빨을 잡아 뽑았는데도 도망치려드는 것이 좀 귀찮았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면 또 잔뜩 쫄아서 주눅 든 모습은 그럭저럭 볼만은 했지만 말이다. 뭘, 상반신은 미녀긴 미녀였으니 볼만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아직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탈주시도만 열 번이 넘었다. 이래서야 엄청나게 귀찮았다.


“기껏 치료도 해줬건만 그러면 못쓰지. 안 그러니?”


이빨이야 그렇다 치고, 턱과 아래턱을 망가트린 것은 마라가 너무 고통스러워하기에 대충 치료까지 해줬는데. 그 은혜를 잊고서 자꾸만 도망치려드는 게 얄미웠다.

심정이야 이해는 가지만.

물론 이해가 간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 또 도망치려고 했으니까 벌을...”


벌벌 떠는 마라의 살점을 잡아 뜯으려다가 멈췄다.


생각해보니 이런 방식으론 어차피 또 금방 도망치려고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통만 주고서, 다시 치료를 반복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얌전해지는 건 잠깐뿐이고 금방  도망치려고 했었으니까.


이래서야 마력만 낭비하는 셈이었다. 아직 잔뜩 남아있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공급이 소모량을 따라가질 못했다.

그래서 그런 마라를 바라봤다.


일단 상반신은 미녀다.


일단은 인간이라는 거였다. 이걸 인간이라고 해도 좋을 진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그저 생김새만 닮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뭘, 이 세상은 소대가리도 인간이랑 해서 소귀가 달린 미소녀가 태어나는 괴랄한 세계였다.


잡종에게 관대하다고 해야 하나, 혼혈이 태어나기 쉽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형의 종들의 유전자가 그만큼 가깝다고 해야 하나.


미노타우로스라던가, 하피라던가, 여러 몬스터들과의 다른 인류종들의 혼혈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애당초 마라라는 괴물 자체도, 낙스에 버려진 수많은 종족들이 뒤섞여 태어난 종족이고... 그렇게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이성이 없다고는 해도, 본능은 있을 것이다.


이것도 생명체니까, 번식은 할 거 아닌가.

모든 생명의 공통분모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성에 대한 욕망이었다. 번식에 대한 욕망이었다.

내 주특기이기도  것이 바로 그거였다.


“자아. 순순히  말을 따르면... 상을 주마.”

속삭이며, 매혹안을 활성화시켰다.


“캬르...”

나와 눈이 마주친 마라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통하나본데... 어디보자...”

손을 뻗어서, 마라의 뺨을 얼렀다. 방금 전까진 하악질을 하며 도망치려고 들었던 녀석이 얌전히 그런 내 손길을 받아들여 왔다.

아니 되려 내 손에 뺨을 비벼왔다.

“저기, 주인님...”

꾸물꾸물, 마라가 몸부림치자 바록이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까랑은 다른 의미로 거세진 마라의 몸부림에 바록도 잡고 있기 힘들어보였다.

“놔줘도 돼.”


“그럼...”

바록이 마라를 놓아줬다.  역시 마라의 꼬리를 잡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도망갈 생각도 않고 오히려 내게 다가와서 몸체를 비벼댔다.

부비적, 부비적.

발끝부터, 허리까지 뱀의 몽뚱이로 내 몸을 감싼 채 몸을 문질러오는 것이 꽤 좋은 느낌이었다. 고급 가죽으로 문질러대는 느낌이라고 할까.


상방신은 상반신 나름대로 볼만했다.


일단 가슴이 예뻤다. 거기에 나름 얼굴도 미형이었다.

상체만 보면, 나신의 미녀가 나를 유혹해오는 걸로만 보였다. 하반신도 같이 보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상반신은 그랬다.

“진작 이럴 걸 그랬네.”

얌전히 스르륵, 거리면서 내게 몸을 비벼오는 마라를 보면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꿈틀꿈틀하고, 꼬리의 끝이 내 팔을 감아오거나,  손끝을 혀로 핥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한데 얌전해졌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근데 이럼 이러는 대로 길안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쿠르르르...”

그건 나중에 새각하기로 하고, 카마수트라를 발동한 채로 마라의 턱을 쓸어내렸다. 부르르 몸을 떨며 낮은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내는 마라가 보였다.


움찔움찔, 뱀의 몸뚱이인 부분이 턱을 더듬을 때마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매혹안도, 카마수트라도 확실히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확인한 내가 말했다.

“내 말을 잘 들으면, 좀 더 쓰다듬어주마.”

“쉬르르릇.”

대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내 말에 혀를 날름거리며 새된 소리를 낸 마라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서 더욱 내게 몸을 비벼오는 것도 보였다.


알아듣고서 고개를 끄덕인건지, 아니면 뱀 특유의 동작처럼 그저 고개만 까딱인건지 헷갈렸다.


“...변태 아버지.”

“...내가 왜?”

느닷없는 딸아이의 매도에 당황해하고 있자니, 로로가 흘끔하고 마라를 보고는 재차 말했다.

“...변태.”

“잠깐만.”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한 모양이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뭐라고 변명하려고 했지만 로로는 마치 날 변태로 취급하는  마냥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로로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마라 녀석이 방해했다.

로로에게 뻗은 손을, 마라가 감싸 안은 것이다.

나를 유혹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손가락을 생식기라고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손가락을 잡고서 자신의 가슴에 문질렀다. 그럴 때마다 축축하게 손가락 끝이 적셔지는 것이 보였다.

가만 보니 마라의 젖가슴 위로 뿌옇게 액체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저거 모유인가 설마?

나도 모르게 마라를 바라보자, 혀를 날름거리며 이쪽을 보는 마라가 보였다. 쉬르릇, 하고 울면서 꼬리 끝을 흔드는 마라가 말이다. 거기서 다시 시선을 돌리면 이쪽을 빤히 보는 로로도 보였다.

마라가 찰싹 달라붙어있는 나를, 그저 차갑게 바라보는 딸아이의 시선도 거기에 있었다.

절대영도를 향해 식어가는 딸아이의 시선을 느끼고서 내가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이건 오해였다.


마라를 발정시킨 이유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했지, 그렇고 그런 이유가 아니였다. 생태계란 것이 원래 그렇잖은가, 아닌 것들도 많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파트너에게 얌전해지는 법이었다.


그런 점을 노리고 했을 뿐이었다.


뭐, 높은 확률로 날 잡아먹으려든다거나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마라가 날 먹을  있을 수도 없고.


나름 생각하고 벌인 일이란 거였다.

하지만 로로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얼음처럼 차가워서, 손에 대면 동상이라도 걸릴 것처럼 차가웠다.

그렇게 한참을, 나와 마라를 빤히 쳐다보던 로로가 입을 열었다.


“...역시 큰  좋은 거지?”

“아니라니까.”

물론 큰 거야 좋긴 한데. 작은  작은 대로 좋았으니  게 좋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아무튼, 이건 그게 아니라... 아, 그래. 호기심. 호기심이란다.”

“...호기심?”

내 말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로로가 그렇게 반문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서, 일단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하반신은 수 미터에 달하는 뱀인데, 상반신은 인간인 마라에게 젖이 나오다니 이상하잖아?”

“......”

막상 아무렇게나 내뱉어본건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정말로 궁금해졌다.

뱀은 분명 난생인데 인간은 포유류다. 즉, 뱃속에서 태어나고 젖을 먹이는 생물이란 거였다.


그럼 마라는 뭘까?


반인반사.

반은 인간인데 반은 뱀이란 소리였다. 그럼 마라는 파충류인가? 아니면 포유류인가?

“음...”


잘 보니 배꼽도 있었다. 탯줄이 있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젖도 나온다.

포유류가 무엇인가? 뱃속에서 태어나, 젖을 먹이기에 ‘포유류’였다. 젖주머니가 달린 동물이란 소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는 포유류였다.

헌데 나머지 반신은, 뱀쪽인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몸에 닿은 마라의 피부는 시원시원했다. 냉혈동물이란 거였다.

자고로 냉혈은 파충류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럼 마라는 파충류인가?


솔직히 엄청나게 궁금했다.

알을 낳고, 젖 대신에 가슴 쪽에서 분비되는  같은 걸 먹이는 포유류인 오리너구리같은 케이스일지도 몰랐다.


“...돌아갈  데려갈까?”

미노의 친구를 만들어주는 셈치고 말이다. 어디까지나 펫으로써 데려가는 거니까 마누라들도 허락해줄 거다.

더군다나 낙스에만 있는 종족, 몬스터다. 희귀한 걸 좋아하는 마누라들도 분명 좋아할 거다. 완벽한 논리였다.

“...변태.”

“아니, 솔직히 너도 궁금하잖아. 저거 포유류야 파충류야?”


“몰라, 그런 거. 안 궁금해.”

내 딸아이는 호기심이 없어서 탈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마라에 발정하는 변태 아버지에서 괴상한  좋아하는 아버지로 격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 쪽이든, 내 평판이 떨어진 것은 매한가지같지만, 어쨌거나 좋은 일이었다.

“아무튼, 그만하고... 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마라.”


툭툭, 하고 마라를 떼어내고서 그렇게 말해봤다. 여전히 말은 안 통하지만, 대충 뜻은 통했는지 녀석이 아쉽다는 듯이 혀를 날름거리고는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궁금한데...”


포유류인가 파충류인가.


정말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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