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9화 〉309화 (309/370)



〈 309화 〉309화

“흐음...”


별안간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딱 봐도 세계가 다르다, 그런 곳이였으니까. 주위는 온통 황폐한 대지뿐이다.

갈라지고, 비틀리고, 이미 옛적에 살점도 썩어 없어진 뼈가 나뒹구는 그런 곳이었다.


사바나, 아니, 그런 평화로운 것에 비교하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사바나에는 그나마 초원도 있고, 동물도 있어야하는데 여긴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딱 봐도 금역, 금지라는 이름이 어울리다 싶은 곳이긴 했다.

아마 마왕성이 있다면 여기에 있을 법한 비쥬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마왕인 입장에선, 이런 곳에 집짓고 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확실히, 움직이기 힘드네.”

확인 차 어깨를 풀어봤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뻐근했다. 딱히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몸을 마력으로 실시간으로 강화 중이었던 탓이었다. 투기를 몸에 두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마력이 매우 적은 낙스에서는  마력으로 강화한 것이 시원찮아서 불편한 느낌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엄청나게 어색하다. 자아를 두 개로 나눠서, 골렘을 조종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였다.


그때도 거의 대부분이  마력으로 둘러싸인 골렘이였기에 그런 거겠지만. 기계처럼 딱딱한 느낌은 있었어도 불편하진 않았는데, 여긴 그보다 더했다.

즉, 이건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삐걱인다는 느낌보다는, 둔해졌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어찌됐건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숨 쉬는 것도 꽤 답답했다.


이유는 뻔했다.


“진짜, 장난 아니게 마력이 적구나.”

마치 높은 산에 오른 것처럼 숨을 쉬는 것이 버거워서, 호흡을 골랐다. 평소에는 한 번이면 충분한 것이, 이곳에서는 대여섯 번은 숨을 쉬어야했다. 숨을 쉬는 것 자체야 별 상관은 없었지만, 호흡과 동시에 조금씩 흡수하는 마력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번 숨을 쉴 때마다 그나마 있는 마력도 쪽쪽 빨려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 오히려 무서웠다.


아무튼 그러고 있자니 로로와 바록, 바쿠가 경고했다.

“...안 돼, 아버지. 조금, 답답해도 참아.”

“주인님. 이곳에서는 그렇게 자주 숨을 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의 공기는 맹독이나 다름없으니, 주의하십시오.”

산을 올라온 기분처럼, 심호흡을 하고 있던 나를 보고서 그렇게 말하는 셋의 말을 듣고서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난 몰랐지.”


아무래도 그냥 숨을 쉬기 힘든 것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튼  말에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내 몸에 두른 마력을 도로 흡수했다.

어떻게든 호흡만으로도 충분히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니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다.


애당초 강화한다고 해도, 그리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였다.

“으응... 조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긴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그만큼 둔해진 몸의 감각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듯 싶었다. 대충,  분 정도? 뭐, 걷다보면 알아서 될 거다.


아마, 한참은 걸어야 될  같고.

“막막하구만.”

시야에 들어오는 곳, 저만치 멀리까지도 온통 황폐한 땅만이 보였다. 넓게 퍼트린 감각을 통해서 느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위로는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다.


여기에 떨어진 엘리시스와 보레아스를 찾으려면 엄청나게 고생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아서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자 귓가에 알림이 들려왔다.

[플레이어 ‘이지경’님이 기능 ‘불멸자의 심장’이 상태이상 ‘중독’에 저항합니다.]

“...으응?”


그냥 가만히 서서 숨을 쉬고 있었을 뿐인데도 중독당할 뻔했다. 확실히 사람이 살만한 곳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곳에서 살아온 로로나, 바록, 바쿠, 니아는 멀쩡한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딱히 독에 대한 내성 같은 기능이나 특성은... 아, 로로는 있구나. 독술사가 있는 로로를 제외하곤, 아무튼 다른 아이들은 그런 기능도 없는데도 멀쩡한 걸 보면 자체적인 내성이라던가,  그런게 있나보다.

하긴 없었다면 이런 곳에서 살았을 수 없었겠지.

아무튼...


“확실히 여기선 숨도 쉬기 힘들겠네.”

내가 와서 다행이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아이들만 데려와서 다행이기도 했다. 조금 더 빨리 찾아보겠답시고 대인원을 끌고 왔으면 단체로 골골 앓는 것을 봤을 테니 말이다.

한 것도 없는 데 중독되서 나가떨어지는 꼴은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넓은 땅덩어리에서 고작 다섯이서, 실종된 두 명을 찾아나서야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찾냐...”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이는 거라고는 갈라지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정체모를 액체가 솟아나는 땅뿐인 것을 보고 난감해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로로가 말했다.

“...꼭 그런 것도 아니야.”


“응?”

“이곳, 사람이   있는 곳은 드무니까... 살아있다면, 있는 곳은 뻔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나 혼자왔으면 확실히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혼자였으면  넓은 곳을 그냥 싹 다 뒤져보려고 했을 테니 말이다.

“근데, 거긴 어떻게 가는데?”

루시아가 꺼낸 거울을 통해서 낙스에 오기는 했지만 그 통로는 낙스의 특정한 곳과 연결된 것은 아니였다. 그냥 낙스와 연결되어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엘리시스와 보레아스가 살아있다면 있을 곳이 뻔하다고 해도, 거기가 어딘지는 낙시안 출신의 로로나, 바록과 바쿠, 니아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런 내 말에 흘끔, 하고 주위를 살펴보는 로로가 보였다. 아니, 로로만이 아니였다. 바록과 바쿠, 니아 역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듯한 아이들을 보고서 내가 물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어?”


“아니, 찾는 다기보단 기다리는 거... 이곳에서는, 이렇게 떨어진 사람들이 생기면... 낙오자들에게, 안내인이 오게 돼.”


내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로로의 중얼거림이였다.

“안내인? 이런데 그런 것도 있어?”

안내인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게 된다는 것이 뭔 소리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콰르르르륵!


땅을 가르며, 무언가가 땅 밑에서부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넓게 퍼트린 감각을 통해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육안으로 보기 전까지 눈치 챌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밑에서부터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속에서부터 다가오는 것이 있을 줄은 몰랐었으니까.


“캬아아악!”


그리고, 곧 그것의 정체 역시 알  있었다.

땅을 가르며 다가오던 녀석이, 이윽고 뛰쳐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상반신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것을 하고 있는 괴물이었다.

마누라들에 비하면 못하긴 했지만, 열에 다섯정도는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인을 보고서도 괴물이라고 부른 이유는, 상반신 밑으로 뻗어져있는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뱀의 몸 때문이었다.

반인반사, 신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괴물.

녀석이, 헐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않고서 이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가슴이 크네.”


“...변태 아버지.”

하지만 내 감상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엄청나게 느렸기 때문이었다.


낙스에 온 직후부터, 감각을 수십 배로, 지각능력을 수십 배로 늘어뜨리고 있는 탓이겠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로만 보이는 뱀 따위를 보고서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저게 뭐니?”

“...마라. 여기에선, 대전사들이나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야.”

마라, 그 이름이 저 괴물의 이름인가보다. 나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로로의 과거 속에서도 들었던 이름이였다.


자락스, 로로의 아비이기도 한 자. 하지만 동시에, 로로의 어미를 죽인 원수이기도 했던 자.


 자를 죽이기 위해, 로로가 준비했던 무기 중의 하나가 마라의 독니였다.

당시에, 로로보다 훨씬 더 강했던 자락스를 죽이기 위해, 로로가 마련했던 무기. 반대로 말하자면, 그 자락스란 녀석에게도 어느 정도 위협이 되는 녀석이란 소리였다.

그래서 물어봤다.

“강하니?”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내젓는 로로가 보였다.


“...독니만 뺀다면 위험하진 않아. 힘은 대전사보다도 약하니까. 하지만, 독니는 위험해.”


그래, 이빨만 주의하면 그만이라는 거구나.


“그럼 간단하네.”

이빨을 뽑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안내인이라고 했으니까, 살려두긴 해야겠지.”

대체 저 뱀이 어떻게 안내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카아아악!”

상반신은 미녀에, 훌륭한 가슴도 달고 있는 주제에 이성도, 뭣도 없는. 단순한 짐승에 불과해 보이는 마라라는 이름의 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콰드득!

엄청나게 느릿하게, 내게 달려들은 마라가 뻗은 손을 물어뜯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카윽...?!”


녀석의 이빨은, 내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차원을 넘은 자.


분노한 마누라가 쏘아 보냈던 마법까지도, 드래곤의 마법조차도 가뿐하게 막아내던 보호막을 녀석의 이빨이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뱀은 이렇게 잡아야지.”


그대로 손을 돌려서 녀석의 윗턱을 붙잡았다. 내 손을 물기 위해 입을 벌렸던 지라 잡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엿차.”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빠드득!


“캬아아아아악!”

윗턱을 뒤집어 올리자, 비명을 지르며 육중한 무게의 꼬리로 나를 감싸왔다.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이빨이 통하지 않자, 그 대신에 거대한 뱀의 몸으로  압박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런 점을 봐서는 확실히 뱀이였다.

꽈아아악, 하고  몸을 조여 오는 마라의 몸이,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가슴이 보였다.


“그다지 강하진 않구나?”


보호막이 없더라도, 이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를 감싸오는 뱀의 몸체를,  역시 붙잡았다. 내가 저항하려고 하자, 더욱 강하게 조여오는 뱀의 몸이 보였다. 더욱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가슴도 보였다.

뭘,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 가슴에 한눈을 팔 생각은 없었다.


“카아, 카아아아?!”


쭈욱, 하고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압박이 가벼워졌다. 조여들던 뱀의 동체를, 내가 억지로 잡아벌렸기 때문이었다.

“로로.”

“응, 아버지.”


그때까지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로로가, 내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폴짝하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라의 아래턱을 걷어찼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마라의 턱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내게 윗턱을 붙잡힌 채, 날아가지도 못하는 마라를 재차 억누르고서 바닥에 엎어쳤다.


“캬으으! 캬아아악!”


버둥거리며 녀석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대충 발로 밟아 누르면서, 로로의 발차기로 돌아가 버린 아래턱과 내가 뒤집어놓은 윗턱을 붙잡았다.


“호오, 이빨은 깨끗한걸. 의외인데.”


치아상태가 훌륭하다.


동물 중에는 이빨을 뽑아도 계속 자라나는 것들도 있었다. 상어가 그 예였다. 아마 이 마라라는 녀석도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다.


“샤아아악!”

입안을 구경하고 있자니, 녀석의 혀가 창처럼 쏘아졌다.

별의 별 능력이 다 있는 녀석이었다. 깜짝 놀라서 무심코 피해버렸다. 굳이 피하지도 않아도 되긴 했지만 말이다.

“좀 얌전히 있으렴.”


우드드득!

녀석이 저항할 생각도 못하게, 더욱 입을 찢어서 벌려버렸다. 그리고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또 움직이면, 그대로 대가리를 날려버릴 줄 알아.”

“커, 흐... 흑...”

아무튼, 다시 입을 벌리고서 보자 주르륵, 하고 벌어진  사이로 로로가 말한 맹독인지 뭔지 보랏빛의 액체가 뚝뚝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맹독이라...”

대체 얼마나 맹독이기에 대전사급... 아마도 검주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 투기를 잘 다루는 녀석들도 맥을 못 추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검주정도만 되더라도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는 신체 능력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검주들에게도 통하는 독이라니 조금 궁금했다.

그래서 확인 삼아 손을 뻗어보자 치이익, 하고 보호막에 닿자 자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라의 맹독이 보호막에 닿아서 사라지는 소리였다.

맹독이라고는 했는데,  맹독도 보호막을 뚫지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이거 독이라기보단 산성 물질에 가까운 다른 무언가 같은데.


어쨌거나 공기 중의 맹독은 잘만 통과시켜놓고, 이건 또 잘만 막으니 내 몸 주위를 두르고 있는 보호막도 참 알수록 알  없는 이상한 녀석이다.

아무튼 간에, 마라의 맹독도 내게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맹독은 커녕 송곳니조차도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으니 신경 쓸 필요 자체가 없다는 뜻이였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 얘기였다.

나 외의 존재에겐 위협적인 것은, 아이들에겐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다.


“자, 위험한 물건은 일주일동안 압수란다.”

뚜둑!

마라의 송곳니를 잡아 쥐고서,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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