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307화
“그래서, 무슨 일?”
재차 재촉하듯이 물어오는 로로의 말에 그런 그녀의 말대로 용건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에루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로로를 찾아온 이유를, 낙스에 가게 됐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렇게 전부 설명하고 나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로로가 보였다.
저 끄덕임이 역시나, 하고 납득하는 의미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언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로가 툭하니 내뱉은 말이 느릿하게 머릿속에 박혔다. 어지간히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인 로로의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이였다. 하지만 벌써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해도,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마, 준비가 되면 바로 갈 것 같아. 어떻게 할래? 로로. 네가 싫다면...”
낙스는 로로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썩 좋은 추억이 없는 곳이다. 그러니까, 로로가 싫다면 굳이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
“...싫지 않아.”
그런 내 말을 자르며, 로로가 손을 뻗어서 내 뺨에 올렸다.
“아버지의 곁은, 언제나 내가 지킬 거니까.”
“...이젠 내가 더 강해졌는데?”
진심이 아니였다고는 하더라도, 로로를 가볍게 제압한 나였다.
설령 로로가 진심으로 날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진심으로 그녀를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니,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로로에게 지켜질 입장은 아니였다.
그래도...
“내가 지킬 거야. 아버지는... 내 아버지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갸우뚱한 로로가 말했다.
“...그러면, 안 돼? 아버지.”
“안될게 뭐 있나!”
자고로 딸을 이길 수 없는 아빠는 없는 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로가 날 지켜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였다.
적어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마음의 안정은 엄청났으니 말이다. 내 멘탈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로로는 분명 날 지켜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잘 부르네. 로로.”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아버지.
나를 이제 거리낌 없이 그렇게 부르는 로로의 말에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보았던, 로로의 기억. 아니, ‘기억’이라는 애매한 말보다는, 그녀가 겪었던 ‘과거’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기억이.
‘우리의 피는 더욱 짙어져야한다. 로로.’
욕망과 탐욕을 드러내며. 자신의 손에 피투성이가 된 딸아이의 머리를 움켜쥐고서 그렇게 말하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 누이를 안고서, 그로 인해 태어난 딸마저, 로로마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면’ 안으려고 했던... 에루나에 의해 죽임당한 낙시안, 자락스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없는, 죽어버린 자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기억만큼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었다.
주시자의 눈으로 봐버렸던 ‘과거’는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도 않았다. 지금도 떠오르려고만 생각하면, 선명하게 그때 본 ‘과거’가 떠올랐다.
내가 어쩔 수도 없었고,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였지만, 그 과거는 온전히 내게 새겨져있었다.
“로로, 넌 내 딸이야.”
“...응.”
내가 그녀의 운명을 가져왔기에. 내 딸이 된 로로에게 정해져있던 운명을 내가 대신 짊어졌기에. 그녀에게 본래 존재했던 운명은, 나로 인해 비틀렸고... 그녀 역시 나로 인해 비틀렸다.
내가 로로를 낳은 것은 아니였으나, 지금의 로로는 온전하게 나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로로는 분명 내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다시 한 번 물을게. 정말로... 정말로 괜찮니?”
그 과거는 로로에게 있어서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처였다. 깊고 깊은, 오래된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픔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낙스로 로로를 데려가는 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 것인가?
아무리 그녀가 괜찮다고는 하더라도, 나 스스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괜찮아, 아버지.”
그런 내게, 뺨에 올려둔 손을 더듬어가며 로로가 속삭였다.
“나는 당신의 딸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로로의 검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쳐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눈동자에도, 로로가 비켜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에, 예전에 비해 더욱 희어진 피부.
정말로 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닮게 된 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 소녀가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내 입술을 더듬어왔다.
“...대신에, 돌아오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줘. 아버지.”
“소원?”
딱히 뭘 바래온 적이 없던 로로가 소원을 들어달란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생긴 거야? 응? 말만 하면 구해다줄게.”
로로를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내저은 로로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소원, 그거면 충분하니까. 약속해줘.”
약속, 그 말에 내가 멈칫했다. 전과는 달리 약속이란 것의 무게감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전에도 분명 약속은 소중한 것이긴 했다. 내가 무슨 약속을 허구헌날 어기고 다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띠링, 거리면서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이, 재차 로로와 약속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좋아, 로로. 낙스에서 돌아오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라면, 들어줄게.”
나는 처음으로 로로가 내게 부탁해온 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저릿저릿, 어쩐지 뒤통수가 매우 따갑다곤 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그런 내 말에 살며시 미소 짓는 로로가 보였다.
“응... 그거면 됐어. 약속, 했으니까... 이제 도망 못 쳐.”
뭔가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로로가 슬며시 주먹을 쥐는 것을, 나는 애써 모른 척 했다.
짠, 짜란.
어찌됐건 로로가 낙스행 파티에 합류하게 됐다. 그렇게 된 관계로, 마야와 슈슈의 경우에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
마야와 슈슈 역시 낙스 출신인건 맞지만, 둘 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약해졌다고 해야할까, 물러졌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전투 쪽보다는 가사와 정치 쪽에 특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가능이야 하겠지만, 굳이 둘을 고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둘 다 무사히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서, 로로와 함께 바록과 바쿠, 그리고 니아가 있는 천공섬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마야 진짜 많이 컸더라.”
로로도 못 본 사이에 잔뜩 컸는데, 마야는 몰라볼 정도로 컸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컸다.
전에도 얼굴만한 것이 달려 있었는데, 이젠 루시아랑 감히 비교할 수 있...
“...키, 키 얘기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줄래?”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로로에게 그렇게 변명했다. 어차피 다 들통 날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작은 건, 싫어?”
아무튼 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무리다. 전이랑 비교해서 자라긴 했지만, 키만큼은... 그리고 마야만큼은 아닌 자신의 가슴을 보며 그렇게 묻는 로로가 보였다.
작은 게 싫을 리가 없었다.
모름지기 가슴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거유도, 아름다운 선을 그리는 평유도, 애달픈 느낌의 빈유도 모두 좋은 가슴이었다. 크면 클수록, 작으면 작은대로 좋은 것이 가슴이었다.
결국 가슴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데, 거기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아주 몹쓸 짓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로로 역시 그리 작은 크기도 아니였다. 아니, 나이가 나이인만큼 성장의 여지가 있는 만큼, 이미 성장이 끝났다할 수 있는 아리스보다는 형편이...
“...아무튼, 싫지 않아.”
로로의 물음에 머릿속에 홍수처럼 밀려들은 생각을 접어들고서 그렇게 대답했다. 로로나 에루나가 읽을 수 있는 내 생각이, 그저 아주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감정의 일부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대답하자 로로가 자신의 가슴을 쪼물락거리며 만져보더니 말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는 묻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보니 금방 바록과 바쿠, 그리고 니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주인님?!”
내가 다가오자, 냄새로 알아차린 것인지 니아가 휙하고 뒤를 돌아봤다.
마야도 그렇고, 로로도 그랬지만 니아 역시 무척이나 잘...
“...자랐네.”
평소에 입던 시녀복은 어디로 갔는지, 털이 잔뜩 달린 가죽갑옷을 걸친 니아의 모습이 꽤나 낯설었다.
방어력이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가죽갑옷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소녀에서 미녀 사이의,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봉오리 같은 니아가 그런 갑옷을 걸치고서, 반가움을 표현하듯 훽훽 빠르게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자, 이리 오련.”
그래도 몇 번이나 에루나에게 주의를 들어서인지, 내게 달려들지 않고서 꼬리만 열심히 흔들고 있는 니아에게 그렇게 말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이 달려들어 내게 안겼다.
“주인님~! 주인님!”
훽훽, 꼬리를 흔들며 내 가슴팍에 뺨을 문질러오는 니아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키만 컸지 여전히 애 같은 니아를 보고 있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니아 말고도, 여기에 있는 이들이 꽤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록과 바쿠도 있었지만... 내 눈에 띈 것은 낮게 엎드리고 있는 녀석이였다.
“넌...”
기억이 날락말락하다가, 이내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그래, 카울이었지. 오랜만이구나?”
내 말에 벌벌 떨며 더욱 납작하게 엎드리는 녀석이 보였다. 니아랑은 달리, 꼬리를 다리 사이로 바짝 말은 것이 꼭 겁을 잔뜩 집어먹은 개를 닮아있었다.
웨어울프의 족장... 이었으니 개라기보다는 늑대지만, 내 눈에는 그게 그거였다.
“에루나에게 들었다. 니아를 돕고 있었다고?”
“네, 네...!”
내 물음에 기합이 바짝 들어간 대답을 돌려준 카울이 더욱 고개를 낮게 숙이며 말했다.
“보잘 것 없는 능력이나마, 니아님을 보필하고 있었나이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여러모로 살의 면적이 많아서, 내게 안긴 채 뺨을 비벼오는 니아를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어디에 손을 대던 간에, 옆에 있는 로로의 짜게 식은 시선을 받아낼 수밖에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니아가 이런 차림이 된 이유를 물었다.
“...그, 저희 종족에게 대대로 내려져오는 갑옷입니다. 본래 제가 입었던 갑옷이었으나... 지금은 니아님께서 저희 웨어울프족의 족장이 되신 바, 니아님께 바친 물건입니다.”
“...이걸 네가 입었었다고?”
그리고 그걸 지금 니아가 입고 있고?
니아가 입고 있는 갑옷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보건데, 마법이 깃들은 마갑인 듯 싶었다. 아마, 착용자에 따라 외형도 바뀌는 사양일 거다.
그렇다고 쳐도, 니아의 차림을 보고 있자니 이걸 카울이 입었을 때의 모습이 생각나서 눈이 썩어 들어갈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내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다니, 제법이다. 저번에 있었던 일의 복수인가.
그렇게 불편해하고 있자니 주위가 일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웅...
로로의 주변으로 투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할까, 아버지?”
싸늘하게 카울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묻는 로로의 말에 내가 말했다.
“일단 니아 좀 떼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