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5화 〉305화 (305/370)



〈 305화 〉305화

“이지경님...”


그런 나를 보며 어떻게 할 거냐는 듯이 바라보는 루시아가 보였다.

“걱정 마, 별 일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있었을 일이, 마침 오늘에서야 터진 것뿐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고. 문제없어.”

그렇게 말한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런가요... 하고 중얼거리던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르네의 일은 이지경님에게 맡길게요. 저는... 아마, 크리샤와 아르카도 수락할 테니까, 이지경님이 낙스에 갈 준비를 해두도록 할게요.”


“그래, 그럼 부탁할게.”


그렇게 말한 내가 카르네가 뛰쳐나간 곳을 바라봤다.

“정말로 못해먹을 짓인데...”


그래도 해야지,  수 있나.

“가볼게, 루시아.”

“...네, 이지경님.”

배웅해주는 루시아를 뒤로하고서, 나는 카르네의 뒤를 쫓았다.





《타오르는 정열, 카르네오스 듀락시아》




결국 참지 못하고서 밖으로 뛰쳐나온 카르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우스운 이유로 화를 냈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진짜, 너무한 거 아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짜증스레 열고 나온 문을 노려봤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 성큼성큼 다시 걸어 나갔다.

울컥울컥, 밀려오려는 감정이 터지지 않게. 하지만 그것 역시도 잠시에 불과할 뿐이었다.


참고 참았지만, 결국 터지고만 불만이 그런 카르네의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 진짜! 매번 루시아, 아샤, 아냐, 항상 셋이 먼저고 난 항상 뒷전이고... 진짜, 너무 하잖아~!”


본래대로라면, 지금 이곳에 있어야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천공성은 주기적으로, 제각각의 영지의 상공을 지나간다. 그것이 대략적으로  달에서, 두 달 사이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그런 천공성이 저마다의 영지에 있을 때.


그때, 그 영지의 주인과 이지경과 함께 있기로,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게 어쩌다보니 지금처럼 됐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의 차례란 것이었다.

“근데, 왜 항상 루시아, 루시아, 루시아, 아샤, 아샤, 아샤, 아냐, 아냐, 아냐...! 아니, 그 셋까지만이면 상관없어. 근데 에루나에, 에네스타에ㅡ 이번에는 뭐?”

루시아의 탓으로 낙스로 떨어진 인간들, 엘리시스와 보레아스라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낙스에 가겠단다.


하필이면, 자기랑 있어야할 지금.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밖에  되는 짧은 시간을, 고작 그런 일에 사용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것이다.

“진짜, 너무 하잖아~!”

사정은 이해했다.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납득은 할  없었다.

“치사하잖아~! 자기들은 전부...”

“전부, 뭐?”


덜컥,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고 놀란 카르네가 뒤를 돌아보자, 녀석이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소리도 없이 쫓아온 녀석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 너너너... 어, 언제부터...”

“루시아, 루시아, 루시아 거릴 때부터?”

거의 처음부터 다 봤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와, 왔으면 말을 하란 말이야~!”


버럭, 하고 소리를 내지른 카르네였지만, 어째선지 조금 기뻐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뒤쫓아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래서, 전부... 뭐가?”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이 다가왔다. 장난스레, 그렇게 다가오는 녀석을 보고서 불길함을 느낀 카르네가 움찔, 하고 그를 피해서 뒷걸음질 쳤지만 얼마안가서  뒤에 닿는 벽이 느껴졌다.

아무리 천공성이 넓고 크다고는 하더라도, 겨우 통로에 불과한 길이 마냥 넓을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뒤로 도망갈 곳도 없어진 카르네가 바짝 벽에 달라붙고서, 경계의 눈초리로 그를 노려봤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혹시 이런걸 말하는 건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장난치듯이 녀석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더 이상은...”

“너, 그, 그ㅡ”


화악, 하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르네가 올려다본 녀석의 얼굴은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부디, 저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마치 연기하듯이 녀석이 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카르네는 알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냐니, 나도 읽어봤으니까 알지.”

그 말에 카르네는 부끄러워 몸을 비틀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생각해도, 그때 읽었던 그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재, 재미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인 자신이 읽을 만한 것은 아니였다. 고도의 마법에 대한 논리가 담겨져있는 서적도 아니고, 감춰진 비밀이 담겨져 있는 역사서도 아니고, 한낱 사랑이야기가, 그것도 재미를 위해 창작된 소설에 불과한 것이였으니 말이다.


그것을, 눈앞에 있는 녀석도 읽었노라고 말하자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본위였다.

 루시아가, 그 크리샤가, 그 카르네가.

차례대로, 이세계에서 소환된 인간 남자에게 빠져서, 심지어   둘은 그 인간의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들었던, 아주 작은 호기심때문이었다.


사랑에 대한 것.


인간이 말하는, 전생에도, 현생에도 자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런 감정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겨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그 감정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손을 뻗었던 것은, 인간들이 말하는... 흔히 연애소설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흥미본위로 읽었었을 뿐인 책에서 나왔던 대사를 그대로 읊는 녀석을 보고서, 카르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읏...”


그저, 소설 속에서 나왔던 것처럼. 공주에게 숨겨왔던 감정을 고백하며, 다가왔던 기사처럼. 천천히 자신의 뺨을 더듬어오는 녀석의 손길에 얼굴을 붉힐 따름이었다.

“재밌는 소설이더라. 공주와 호위기사의 사랑이야기라니, 낭만이 있잖아? 안 그래? 카르네.”

이윽고 손을 떨어뜨리며, 히쭉하고 웃는 녀석의 말에 카르네는 있는 힘껏 그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오... 이번건 좀 셌는데...”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이 보였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론 본신의 힘을 조금정도밖에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바위도 가볍게 부술 만큼의 힘은 있는 카르네였다.

근데, 이 녀석은 그런 자신이 아무리 진심으로 밀어내려해도 아주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을 보고서, 카르네는 더더욱 얼굴을 붉혔다.


‘대, 대체 그때, 그 평범했던 인간이 어떻게...’


처음 소환됐을 당시, 그저 어수룩해 보이고 평범해보였을 뿐이었던 인간. 그저 그뿐이었던 인간이 지금은 드래곤인 자신을 힘으로 억누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비, 비켜~!”

꾸욱,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그렇게 말하자. 그런 자신을 보며 녀석이 미소 지었다.

“오, 그래. 분명 그런 대사가 있었지.”


즐겁다는 듯이,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녀석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조금만 어울려볼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녀석의 다리가 다리 사이로 밀어 들어왔다.


“으웃...♥”

그대로 꾸욱, 하고 눌러오는 다리에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온 신음에, 카르네가 입술을 꽉 물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부끄러워졌다. 순간적으로, 그런 녀석의 다리가 ‘좀 더’ 문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으니까.


적어도 그건, 아직까지 카르네의 ‘상식’안에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화악하고 얼굴이 붉어진 카르네가 다시 한  녀석을 밀쳐내려고 했다.


“비, 비키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치자 녀석이 그런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꽈악, 하고 강하게 움켜쥐어진 팔이 아려왔다가, 이내 부드럽게 팔을 감싸오는 손길에 체온이 상승하는 것을 느끼며.


느릿하게, 팔을 잡아당기며 자신을 품에 안은 녀석이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공주님.”

또 다시 그런, 소설 속에서 나온 대사를 읊은 그 녀석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아, 이거...’


그 순간에, 카르네는 지금의 상황이 소설 속에서 나왔던 것과 똑닮아있다는  눈치챘다. 그리고,  덕분에 이후에 있을 일도  수 있었다.


“읍, 으읍...!”


그대로 덮쳐온 입술에 카르네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역시, 치사해...’

그저 입맞춤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오싹오싹, 하고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쾌락에 카르네의 저항은 점점 약해져가만 갔다. 그런 자신을 눈치 챘는지, 녀석의 입맞춤은 더욱 깊어져왔다.

톡톡, 하고 입 안에서 건드려오는 혀에, 그 감촉이 전해져오는 쾌락에.

결국 카르네는 욕망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읍, 으읍... 츄우...♥”


방금까지 밀쳐내려고 했던 것도 잊고서, 녀석의 등을 얼싸안고서 혀를 섞었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징징하고 울려왔다.

소설속의 공주도, 기사의 뜨거운 키스에 결국 숨기려했던 감정에 충실해졌던 것처럼.


‘진짜로, 치사해... 이런 거...’

부웅, 하고 멍해져만 가는 머릿속으로 카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허리를, 녀석이 감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서로의 마음을, 감정을 확인한 공주와 기사는 이후에, 여지껏 참아왔던 것을 풀어헤치듯, 서로를 탐하고 살을 섞었다.

그렇게,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었다.


살을 섞었다느니 뭐니하는 말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공주와의 행위를 들켜서 전쟁에 끌려갔다 돌아온 기사를 임신한 공주가 배웅하는 이야기로 책이 끝마쳤었으니... 그 살을 섞는다는 행위가, 아이를 만드는 것임을 정황상 유추할 수는 있었다.

‘나, 나도...’


두근, 두근...!


거칠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소리에, 스스로가 놀라서, 진정시켜보려고했지만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그저, 천천히 허리를 쓸어내려오는 녀석의 손길에 몸을 맡기면 맡길수록, 더욱 커다랗게 두근거릴 뿐이었다.

지이잉~♥


그런 와중에, 하복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마음을 다진 카르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살을 섞느니, 뭐니... 하는 그런 얘기가 있었으니까.


‘아, 아픈거려나?’

문장 자체로만 보면 꽤나 끔찍한 행위일 것도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이후’의 행위는 찾아오지 않았다.


되려, 천천히 입술을 떨어트리는 녀석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

여기서 왜~?!라고 외치지 않은 것을, 스스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멍하니 녀석을 올려다보자,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쓴웃음을 짓는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입을 열었다.


“자, 일단 여기까지.”


그렇게.

초를 확 치는,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이 들려왔다.





“자, 일단 여기까지.”

입술을 떨어뜨리며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잔뜩 붉어져있던 카르네의 얼굴이, 점점 색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나도 치사한 거 안다.


카르네와 입술을 맞추면서, 시야  편으로 그녀의 정보창을 읽고 있던 나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정말로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런 치사한 방법으로 두루뭉술 넘어가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


띠링~

[‘카르네오스 듀락시아’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대상 ‘카르네오스 듀락시아’가 플레이어 ‘이지경’님을...]


뒤늦게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과 함께, 카르네의 눈동자에 이성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천천히, 내가 꺼낸 말의 의미가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처럼. 이윽고 평상시의 카르네로 돌아온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아~?”


저 하아~?가 지금 장난 치냐? 어? 지금 장난 치냐고~?!의 하아~?라는 걸 아는 건 아마 나뿐일 거다.

[‘카르네오스 듀락시아’의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심지어 호감도도 떨어졌다. 그래도 가까스로 70에 걸쳐져 있기는 한데, 아무튼 방금의  말에 카르네가 엄청나게 실망했다는 반증이었다.

지금도, 미쳐 날뛰는 듯한 카르네의 속마음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니,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카르네의 속마음을 애써 못 본체 하면서, 내가 말했다.

“역시 조금 부족한가?”


“내,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다고~?!”


“응, 알고 있어.”

그렇지만, 하고 카르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그 ‘다음’을 할 순 없잖아? 카르네.”

그렇게 말하자, 카르네의 얼굴이 다시 불꽃처럼 화르륵하고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 다음.


카르네가 읽었고, 나도 찾아서 읽어봤던 소설책의 다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공주와 기사가 감정에 충실한채, 서로 탐하고 살을 섞었다, 뭐다 그렇게 적혀져 있었다.

아마 전연령판이였던 듯, 아샤와 아냐가 읽었던 것처럼 노골적인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없었지만... 뭐, 그것이 카르네가 ‘지식은 있지만, 아직은 순진무구’하다고, 그렇게 여겨진 이유일 것이다.


키스라던가, 이것저것 알고 있었으면서 중요한 것만 쏙 빼놓고 모르는 이유도 아마 그거일거고.


아무튼, 내 말의 의미를 확실히 들어먹은 듯, 카르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런 카르네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그 대신, 그 다음은 낙스에 다녀오고 나서 해줄게. 어때? 카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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