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화 〉289화
드래곤들의 입장에선 조금 귀찮은 일로 끝났지만, 또 다른 당사자들이였던 인간들의 입장에서도 귀찮은 일로 끝난 것은 아니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국에서도, 가장 번영한 도시 중 하나. 브란데냐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돌연 한 날 한시에 실종된 것이다. 수천만의 제국민 중에서도 고작 백만. 한줌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들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는 것이 세상 일이였다.
경제부터, 행정, 그 밖에 모든 것들이 동시에 마비를 넘어서 스톱될 정도로 커다란 사안이였으니까.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약간의 문제로 식량 사정이 조금 좋아지지 않았을 뿐, 지극히 평화로웠던 제국에서, 일시에 백만이 넘는 이들이 사라진 것은, 단순히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공포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란자카 왕국을 압박하기 위해 떠나갔던 뮬런과, 그를 요청을 따라 뒤이어 란자카 왕국으로 떠나있었던 검은 성녀와, 그 일행들이 브란데냐로 돌아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참담하다 싶을 만큼, 텅 비어버린 도시를 보고서 철혈이라고도 불리던 재상인 뮬런 조차도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던 것도.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종된 이들 중에서, 그들 중에서 두 사람은... 사고를 칠지언정, 그가 사랑하는 아내인 엘리시스와 설령 이미 성인이 되어 기사단장까지 부임하고 있는 만큼, 자신보다도 훨씬 강하다하더라도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귀엽기 짝이 없는 딸, 보레아스였으니까.
막내인 아리스의 실종에 이어서, 둘의 실종은 뮬런의 머리를 도리어 차갑게, 그리고 맹렬하게 돌게 해주었다.
풀렸던 다리를 부성으로 일으켜 세우고, 아찔했던 머리 또한 아내에 대한 걱정... 아마도, 그런 것으로 다시 깨우친 뮬론은 곧장 사태를 파악하고, 정비에 나섰다.
아무리 데릴사위에, 여러모로 허수아비 같다고는 하더라도 뮬런은 드네아 공작가의 가주이자, 대공이였다. 애당초 평민에 불과했던 그가 엘리시스의 눈에 들어, 그녀와 결혼하게 된 이유도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8할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철혈의 재상.
그 이름다운 능력을 발휘한 뮬런은 드네아 공작가가 부릴 수 있는 온갖 것을 동원해서 실종자들의 파악, 사고의 원인에 대한 조사, 그 밖에도 여러 가지의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실종자들의 대부분이 무사히 발견되고 있다는 것과 이번 사고가 전대미문의 공간전이 재해라는 것.
제국의, 대공가의 저력을 쏟아부었음에도 결국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해야할 일은 터무니없이 많았으니까. 우선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된 브란데냐의 시민들을 공작가의 가산을 쏟아부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힘썼다.
그들을 책임지고, 지켜야하는 공작가의 가주로써 그런 것도 있지만... 당사자인만큼 무언가 아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도 그랬었다.
하지만...
“다른 실종자들의 확인은 아직 멀었나?”
“죄송합니다. 워낙 많은 수가 실종한데다가 같은 보고가 겹치는 등의 혼선까지 빚어져서...”
“...이번에 돌아왔던 실종자들의 이야기는 어땠지?”
“마찬가지로 기억이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몇몇은 자기들이 실종됐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비교적 가까운 곳, 드워프들의 도시 등에서 발견된 실종자들에게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으나, 그들은 돌연 그곳에서 눈을 떴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다른 곳에서 발견되어, 브란데냐로 돌아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아는 것이 없었다.
“...엘리시스와 보레아스의 소식은 있었나?”
“그, 그것이...”
말을 잇지 못하는 기사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인 뮬런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들어온 실종자들 중에서 자네의 가족들도 있었다고 들었네. 다행히 건강엔 아무런 문제없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더군.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서 가족들을 챙기게. 기억이 없으니 그들도 불안할 테니 말일세.”
“가, 감사합니다. 공작님!”
“물러가게.”
쿵, 하고 가슴 위로 손을 올리고 깊이 고개를 숙인 기사가 이윽고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 앉은 뮬런은 이미 식어버린 차를 입에 댔다.
씁쓸했다.
차갑게 식은 만큼, 더욱 강하게 입안에 퍼져나가는 쓴맛에 인상을 찌푸린 단숨에 찻물을 들이켰다. 쓰디쓴 찻물은, 그런 뮬런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끓어오르는 속을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뮬런은 말없이 빈 찻잔을 바라보다가 있는 힘껏 벽을 향해 찻잔을 집어던졌다.
쨍그랑!
벽에 부딪혀 깨진 찻잔이 비산하며 사방으로 조각을 퍼트렸다.
철혈이라고 불리지만, 그가 정말로 철혈이 흐르는 초인인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인간일 따름이였다.
찔리면 아파하고, 가족을 잃으면 슬퍼한다. 그것이 인간이였다. 그런 인간이였기에, 뮬런 또한, 실종된 아내와 딸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피가 마르고, 초조할 따름이었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다. 매일같이 실종자들을 확인하고 올라오는 새로운 명단에, 그녀들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뮬런은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였다.
아내야 어디에 떨어졌던 간에, 어떻게든 돌아올 위인이였지만 딸의 경우에는, 검주임에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몬스터로 가득한 오지에 떨어져서, 상위의 몬스터와 마주친다면... 설령 검주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일이였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냉정을 잃지 않은 것은, 그가 지금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냉정을 잃게 된다면, 아직도 한창 혼란중인 이 도시는 굴러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유지중인 지금도, 혼선이 잇따르고는 와중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도 무너진다면 난민들은 방치될 것이고, 식량 사정이 어려워진 만큼 그들은 방치된채로, 그렇게 굶주리게 될 것이다.
굶주린 자들은, 살고자 들고 일어서기 마련이었다. 치안은 유지되지 않고, 사방에서 폭도와 약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지민을 스스로 베어죽이는 영주,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무너지면 안됐다. 그렇기에 부족하나마 일선을 정리하고, 체계를 확립하고, 긴급하게나마 새롭게 구성된 이들로 행정을 꾸려나갔다.
그들 모두가 자신을 따라 란자카 왕국으로 향했던 기사 백여명이였다. 기사는 단순히 검만을 잘 쓴다고 기사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읽고 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계산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썬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인선인 것이다. 하지만 고작 백여명이였다.
벌써 수만명이 넘게 모여든 난민들을 관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 심지어 행정 등을 도맡아 관리하는 하급 관리들조차 전부 실종된 와중에, 그들은 단지 난민만을 수용하고, 관리할 뿐만이 아니라, 평생 검만 들었던 손으로 펜까지 집어야 할 만큼, 일손이 귀한 판국이다.
그렇게 부족한 손들을, 모두 자신이 충당했다. 중과부적인 일은, 난민 중에서도 계속해서 사람을 구해 충당했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그래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조차도 냉정을 잃는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였다.
그렇기에 무너지지 않았을 뿐, 뮬런 또한 서서히 무너져가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텨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 아내와, 딸이... 풍비박산이 난 영지를 보는 것은,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였다.
“...힘내자. 뮬런.”
짝, 하고 뺨을 두들기며 그렇게 중얼거린 뮬런은, 몸을 일으켜 깨진 찻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흔적조차도, 밑에 있는 이들이 보기엔 불안을 가중시킬 따름이니. 일손이 부족한 만큼, 공작인 그 스스로 정리해야만 했으니까.
“...윽.”
날카로운 파편에 손가락을 찔려, 피를 흘려가는 와중에도. 뮬런은 신음을 삼키며 찻잔의 조각들을 주웠다.
“...성녀님, 좀 괜찮으십니까?”
공작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그대로 경로를 바꾼 발렌시아 추기경은, 성녀의 방문을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들어와도 좋아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그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발렌시아 추기경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 가득 풍겨오는 달콤한 향내. 여취에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일단은 신관 나부랭이긴 했다. 음심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냄새의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송해요. 이런 몸이라, 일어나서 인사를 드릴 수도 없군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검은 성녀가 발렌시아 추기경을 바라봤다.
검은 머리카락을 흐드러지게 내린 채, 땀으로 젖은 간편한 옷만 입고서 침대에 누워있던 검은 성녀가 겨우 상체를 일으키며 말하는 모습을 본 발렌시아 추기경은 울먹울먹한 눈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가엾으신 분. 그 사고는 천재지변이였습니다. 설령 성녀님께서 계셨어도 막을 수 없었을, 그런 재해말입니다. 제국의 대마법사들도 그 정도의 대규모 마력재해는 이번이 처음이였다고 했습니다. 가히 신의 천벌, 예... 신의 시련이나 다름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검은 성녀를 가엾게 여기는 발렌시아의 추기경의 말에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백만이 넘었던 거대한 영지. 제국에서도 가장 번영한 대도시 중 하나가 통째로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전대미문의 재해는 설령 신의 아이라고도 불리우는 성녀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런 일에도 자책하며, 란자카 왕국에서 급히 돌아와 도시의 모습을 보자마자 실신하고 말아버린 검은 성녀를 보며 발렌시아는 자책과 동시에 그녀의 굳건한 신앙심에 감화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얼마나 가엾고, 이 얼마나 숭고하신 분인가.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앙심이 무럭무럭 자라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의 가문의 자금으로 추기경의 자리까지 올랐을 뿐, 정말로 추기경의 자리에 합당한 신성력은 없던 그였지만. 검은 성녀를 옆에 두고서 모시는 가운데 점점 그 신앙심이 커져 신성력 역시 마땅히 추기경급에 이르게 된 그였다.
단지 곁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에 대한 찬미를 부르짖게 만드는, 경건한 신의 아이.
그런 그녀가, 신이 내린 것과 다름없는 시련으로 앓아누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발렌시아는 속으로 신께 기도했다.
'부디 가엾은 이 분께서 당신의 시련을 이겨내게 하소서. 모든 것들의 주인이자 우리들의 어버이신 천신이시여.'
우웅, 하고 그런 발렌시아의 등 뒤로 뿜어지는 광휘에 검은 성녀가 눈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힘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만 됐으니, 절 혼자 있게 해주시겠나요? 발렌시아 추기경님.”
“아아. 실례했습니다. 부디 보중하시고, 쾌차하소서. 성녀님.”
검은 성녀의 말에 기도를 끝내고서 그렇게 말한 발렌시아가 방 밖으로 나가고서, 얼마 뒤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히스테릭을 일으킨 광인처럼 검은 성녀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비명을 질렀다.